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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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마와 상카-라, 쩨따나-와 산쩨따나-

 

원문: Paṭicca Samuppāda 섹션의 ‘Kamma and Saṅkhāra, Cetanā and Sañcetanā’ 포스트

 

쩨따나-(cetanā)는 쩨따시까(cetasika)의 세트를 통한 ‘의도’를 나타냅니다. 상카-라(saṅkhāra)는 그 의도와 함께 행위(action)로 이어집니다. 깜마(kamma)는 그 의도로 행해진 행(deed)입니다. 

 

2021년 12월 14일 작성; 2022년 11월 24일 개정; 2023년 4월 2일 재작성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 8. Kamma and Saṅkhāra

 

소개

 

1. 대부분의 사람들은 ‘깜마(kamma)’라는 낱말을 ‘나쁜 행’을 나타내거나 심지어 ‘과거의 나쁜 행의 결과’(실제로는 ‘깜마 위빠-까’)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합니다. 끔찍한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아, 이것이 나의 깜마(kamma, 업)다.”라고 말합니다.

 

  • * 그러나, 깜마(kamma, 업)는 ‘행위’를 총칭하여 나타내는 낱말입니다. 그것은 몸을 움직이거나,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까-야, 와찌, 및 마노 깜마). 깜마(kamma, 업)는 주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i) 중립 깜마(neutral kamma): 칼로 야채를 썰거나 누군가에게 길을 묻는 것과 같은 것.
    (ii) 아꾸살라_akusala(또는 빠-빠/아뿐냐) 깜마: 예를 들어, 누군가를 칼로 찌르거나 돈을 벌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
    (iii) 뿐냐(puñña) 깜마: 예를 들어, 칼을 사용하여 덫에 걸린 동물을 풀어주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담마를 설명하는 것. 꾸살라(kusala) 깜마는 사성제를 이해하고 행한, 즉 성자가 행한 뿐냐 깜마입니다.  물론, 모든 뿐냐 깜마는 아라한에게만 꾸살라 깜마가 됩니다.

  • * 세 가지 유형 모두는 특정 의도로 행해집니다. 우리는 일을 해내기 위해 일상 생활에서 다양한 첫 번째 유형의 깜마(중립 깜마)를 해야 합니다. 두 번째 유형에서 그 ‘의도’는 악하거나 부도덕한 반면, 세 번째 유형에서 그 ‘의도’는 선하거나 도덕적입니다.

 

2. 첫 번째 유형의 깜마는 그 때에만 결과를 낳으며, 그것들은 미래에 ‘업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 행위들은 도덕적으로 좋거나 나쁜 의도가 없습니다.

 

  • * 두 번째/세 번째 유형은 그 때 또는 미래에 ‘좋은/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일어나는 도덕적 또는 부도덕한 ‘의도’는 보이지 않는 업 에너지의 생성으로 이어지는데, 그 업 에너지는 윈냐-나 다-뚜(viññāṇa dhātu)에 남아서 미래에 위빠-까(과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아래를 참조하세요.

  • * 그 ‘의도’는 그 자체가 쩨따나- 쩨따시까(cetanā cetasika, 정신 요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 설명된 바와 같이 다른 도덕적/부도덕한 쩨따시까의 세트를 매개로 반영(추가)된 것입니다.

  • * 쩨따나 쩨따시까(cetanā cetasika)는 적절한 제따시까를 찟따에 합병하기만 하는 것인데, 쩨따나-는 찟따를 (적절한) 쩨따시카로 조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의도로, 행하기 위한 세 가지 유형의 상카-라(saṅkhāra)를 생성합니다. 깜마는 상카-라로 행해진 행위입니다. 까-야, 와찌, 및 마노 상카-라는 까-야, 와찌, 및 마노 깜마로 이어집니다. 깜마(kamma)는 아래에 설명된 바와 같이, 부도덕한 또는 도덕적인(아소바나/소바나) 쩨따시까를 병합함으로써 부도덕적 또는 도덕적이 됩니다.   

 

쩨-따나-는 모든 찟따에 있다!

 

3. 닙베디까 숫따( ‘Nibbedhika Sutta (AN 6.63)’ )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많은 핵심어(키워드)를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숫따(경)입니다. 그 숫따의 마지막 부분에서 깜마(kamma, 업)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나는 쩨따나-(Cetanā)가 깜마(kamma)라고 말한다. 의도를 가지고, 사람은 몸(body), 말(speech), 및 마음으로 깜마(kamma)를 짓는다.” ‘참고 자료 1’을 참조하세요.

 

  • * 자, 쩨따나-(cetanā)는 ‘보편 쩨따시까(uinversal cetasika)’로 그것은 모든 찟따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항상 선업(good kamma)이나 악업(bad kamma)을 짓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깜마(kamma)는 모든 신체 활동, 말, 또는 심지어 생각까지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호흡도 찟따-(cittā)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 그러므로, 팔을 들어올리는 것과 같은 모든 행위도 깜마(kamma)입니다. 사람은 또한 도덕적으로 좋거나 도덕적으로 나쁜 의도가 없이 어떤 일을 하려는 의도로 말하거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아꾸살라(akusala), 빠-빠(pāpa), 뿐냐(punña), 또는 꾸살라(kusala) 깜마(kamma)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냥 깜마(kamma)일 뿐입니다. 그런 ‘중립 깜마(neutral kamma)’에는 소바나(sobhana)(도덕적) 또는 아소바나(asobhana)(부도덕적) 쩨따시까(cetasika)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편 쩨따시까이므로 거기에는 여전히 쩨따나- 쩨따시까(cetanā cetasika)가 있습니다.

 

4. 모든 찟따에는 7가지 그런 ‘보편 쩨따시까(universal cetasika)’가 있는데, 팟사(phassa, 아-람마나와 접촉), 웨-다나-(vēdanā, 느낌), 산냐-(saññā, 인식/지각), 쩨따나-(cetanā, 모든 관련된 정신 요소를 모아 구성함), 에깍가따(ekaggata, 한 곳에 집중), 지위띤드리야(jivitindriya, 생명 기능), 마나시까라(manasikāra, 기억/메모리 기능)입니다. ‘참고 자료 2’를 참조하세요.

 

  • * 마노 상카-라(mano saṅkhāra)는 웨다나-(vedanā)와 산냐-(saññā)로 정의됩니다. ‘상카-라 ㅡ 단일 낱말로 번역해서는 안된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웨다나-와 산냐-는 보편 쩨따시까이므로, 마노 상카-라는 모든 찟따에 일어납니다. 따라서, ‘중립 깜마’는 ‘마노 상카-라’만으로 행해집니다.

  • * 새로운 아-람마나(ārammaṇa)가 들어올 때 새로운 찟따 위티(citta vithi)가 일어납니다. 새로운 아-람마나와 접촉하는 것은 팟사(phassa)입니다. 마음은 유사한 과거 사건을 상기할 수 있는 마나시까라 쩨따시까(manasikara cetasika)의 도움으로 그것을 느끼고(웨다나-) 인식(산냐-)합니다. 에깍가따(ekaggata)는 마음이 그 아-람마나(대상)에 집중하게 합니다. ‘찟따와 쩨따시까 ㅡ 윈냐-나가 일어나는 방법’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 복잡한 과정은 수십억분의 1초(찟따의 수명) 내에 일어납니다. ‘정말 놀라운 속도로 빠른 생각(찟따)의 순간적 진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 기본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포스트를 읽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 쩨따나-(cetanā)가 오염된 의도를 병합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산쩨따나-(sañcetanā)가 되고, 상카-라(saṅkhāra)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가 됩니다.

 

쩨-따나-가 산쩨따나-로 된다

 

5. 산쩨따나-(sañcetanā)라는 낱말은 ‘산(saṅ)’ + ‘쩨따나(cetanā)’에서 유래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쩨따나- 쩨따시까가 미래 재탄생을 위한 업에너지를 생성하는 요인이 될 수 있는 산(saṅ)를 병합했음을 의미합니다. 필자는 많은 포스트에서 산(saṅ)의 중요성을 논의했습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산 - 결정적인 빠알리 어원(San – A Critical Pāli Root)’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상카-라(saṅkhāra)는 쩨따나-(cetanā)와 연관되어 있고,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재탄생 과정의 요인이 되는 것)는 산쩨따나-(sañcetanā)를 수반합니다.

  • * 의도는 어떤 유형의 쩨따시까가 일어날 때 ‘오염’됩니다. 예를 들어 ‘화냄 마음 상태’는 도사와 모하 쩨따시까가 찟따에 병합될 때 나타납니다. 탐하게 될 때는 로바, 모하, 및 질투(잇사-) 쩨따시까도 찟따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 * 쩨따나-(cetanā)가 미래 위빠-까의 원인이 되는 쩨따시까 유형을 병합할 때, 그것은 쩨따나-(sañcetanā)가 됩니다. 그러면 상카-라아비상카-라가 됩니다.

 

6. 산쩨따나-가 있는아비상카-라’만이 재탄생 과정(상사-라)의 원인입니다.

 

  • * ‘상사-라(saṃsāra)’는 ‘산(saṅ)’ + ‘사-라(sāra)’에서 유래하는데, ‘사-라(sāra)’는 ‘좋은’ 또는 ‘유익한’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유익하다’는 잘못된 견해 때문에 재탄생 과정에 갇혀 있습니다. 

  • * 이것이 사성제를 모르는 것(즉,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 avijjā paccayā saṅkhārā’)으로 인해 일어나는 상카-라(saṅkhāra)의 유형이 까-야 산쩨따나-(kāya sañcetanā), 와찌 산쩨따나-(vaci sañcetanā), 및 마노/찟따 산쩨따나-(mano/citta sañcetanā)를 수반하는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 및 찟따 상카-라(citta saṅkhāra)인 이유입니다.

  • * ‘Paṭiccasamuppāda Vibhaṅga’에서는  “Kāyasañcetanā kāya saṅkhāro, vacīsañcetanā vacī saṅkhāro, manosañcetanā citta saṅkhāro. Ime vuccanti ‘avijjā paccayā saṅkhārā’.”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웁빳띠 빠띳짜 사뭅빠-다(Uppatti Paṭicca Samuppāda)에서 상카-라는 항상 산쩨따나-를 가진 아비상카-라를 수반합니다.

  • * 그러나, ‘까-야 아비상카-라’와 ‘와찌 아비상카-라’만이 직접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마노/찟따 산쩨따나-아비상카-라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향후에 다룰 미묘한 점입니다. 

  • * 부처님 또는 아라한은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 또는 산쩨따나-(sañcetanā)를 생성하지 않지만, 그 분들은 빠리닙바-나에 드실 때까지 쩨따나-를 가진 상카-라를 생성합니다. 그 분들의 행동, 말, 또는 생각은 그것들과 관련된 업적으로 중립인 까-야, 와찌, 및 마노 상카-라를 가집니다.

 

의도는 아-람마나와 각자의 가띠에 기반하여 더해진 쩨따시까로부터 온다

 

7. 아-람마나(ārammaṇa)가 마음을 기분좋게 하면, 마음에 로바(lobha, 탐욕)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로바 쩨따시까가 찟따에 합병될 때, 그것은 ‘로바 찟따(lobha citta)’가 됩니다. 반면에, 적을 보면 도사(dosa, 화남)가 일어나고, 그에 상응하는 찟따(citta)는 분노 찟따(angry citta)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쩨따나-(cetanā)는 도사 쩨따시까(dosa cetasika)를 찟따에 통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쩨따나-는 마음의 상태에 기반하여 다른 관련된 (좋은 또는 나쁜) 쩨따시까를 추가하는 감독자/관리자와 같습니다.

 

  • * 위 #1에 있는 깜마(kamma)의 유형으로 돌아가서, 이제 우리는 쩨따나- 쩨따시까(cetanā cetasika)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의도’는 아-람마나(ārammaṇa)와 각자의 가띠(gati)에 기반하여 마음에 일어나는 쩨따시까(cetasika)의 유형에서 유래합니다. 예를 들어, ‘화냄 가띠’를 가진 누군가는 가벼운 비난에도 화를 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가띠(gati)에 대한 소개는 ‘끌림의 법칙, 습관, 성격(가띠), 및 갈망(아-사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쩨따나- 쩨따시까(cetanā cetasika)는 각자의 가띠와 아-람마나의 유형에 기반하여 적절한 쩨따시카를 합병하여 찟따를 ‘구성’합니다. 따라서, 가띠와 아-람마나는 의도를 결정짓습니다. 이것은 이해해야 할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8. 사람이 로바(lobha), 도사(dosa), 모하(moha)로 일을 한다면, 그것은 아꾸살라(akusala)(또는 ‘빠-빠_pāpa’) 깜마(kamma)입니다. 미묘한 방식으로 또 다르게 말하면, 찬다라-가(chandarāga)(세상의 즐거움은 추구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마음가짐/사고방식)로 행해진 모든 행위에는 적어도 아꾸살라 본질/특성의 흔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 * 관대함, 연민 등을 수반하는 특정 활동은 뿐냐 깜마(puñña kamma)입니다. 여기에는 알로바(alobha) 및 아도사(adosa) 쩨따시까가 찟따에 합병됩니다. 재탄생 과정의 위험함을 이해하지 못하면, 즉 여전히 (사성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윗자를 가지기 때문에, 여기서 쩨따나-(cetanā)는 여전히 산쩨따나-(sañcetanā)입니다.

  • * 그것은 그 좋은 깜마(good kamma)는  까-마 로까(kāma loka) 중의 더 높은 영역(인간과 천신 영역)에 ‘더 나은 재탄생 또는 좋은 위빠-까(vipāka)’를 기대하면서 행해졌기 때문입니다.

  • *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는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띨락카나에 대한 이해와 함께 행해진 뿐냐 깜마(puñña kamma)의 ‘더 나은 버전’입니다.

  • * 동일한 뿐냐 깜마((puñña kamma)가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연기)/틸락카나(삼특상)을 이해하는 누군가에 의해 행해지면, 그것은 자동적으로 꾸살라 깜마가 될 것입니다. 그런 꾸살라 깜마는 세속적 이득에 대한 기대가 없이, 오직 닙바-나(Nibbāna)를 얻어 괴로움/고통으로 가득 찬 재탄생 과정을 멈추고자 하는 기대로서만  행해집니다.

  • * 자세한 내용은  ‘6가지 근본원인 - 로까 사무다야(괴로움의 발생)와 로까 니로다야(열반)’와 ‘낄레사 ㅡ 아꾸살라, 꾸살라, 및 뿐냐 깜마와 관계’ 포스트에 있습니다.

 

깜마(업) 에너지는 마음 안에 일어난다

 

9. 세 가지 유형의 깜마(kamma)는 까-야(kāya), 와찌(vaci), 및 마노(mano) 깜마(kamma)입니다. 그것들은 까-야(kāya), 와찌(vaci), 및 마노(mano) 상카-라(saṅkhāra)에 기반하여 행해집니다.

 

  • * 중립 깜마(neutral kamma)가 (아비상카-라가 아닌) 상카-라로 행해진다면, 생성된 깜마 에너지는 그 일을 완료하기에 충분하기만 합니다. 윈냐-나 다-뚜(viññāṇa dhātu)에 축적되어 미래에 위빠-까를 가져올 수 있는 ‘잔여의 깜마 에너지’가 없습니다.

  • * 그러나, 깜마가 (산쩨따나-를 가진) 아비상카-라로 행해질 때, 깜마 에너지의 일부는 윈냐-나 다-뚜(viññāṇa dhātu)에 축적됩니다. 그것은 재탄생을 포함하여, 미래에 위빠-까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깜마 에너지는 윈냐-나 다-뚜에 남아 위빠-까를 가져온다

 

10. 서구 사람들은 깜마와 관련된 개념에 마음을 두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것은 주로 [마음의] 초점이 우선적으로 물질 세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물질의 관점에서만 세계를 설명하려고 했으며, 그 전통은 현대 과학과 함께 지속되어 왔습니다. 현대 과학은 공간에 위치하는 물질 대상(물체)을 수반하는 물질 현상을 조사합니다. 붓다 담마의 용어로, 그 설명은 ‘세계’를 빠따위(pathavi, 지), 아-뽀(āpo, 수), 떼조(tejo, 화), 와-요(vāyo, 풍), 및 아-까-사(ākāsa, 공간)라는 단지 다섯 가지 다-뚜(dhātu)으로 제한합니다. 모든 물질 대상(물체)은 빠따위, 아-뽀, 떼조, 와-요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까-사 다뚜에 있습니다.

 

  • * 그러나, 붓다 담마에서는 여섯 번째 다-뚜인 윈냐-나 다뚜(viññāṇa dhātu)가 있으며,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음/마노에 일어나는) 윈냐-나는 물질 세계의 선구자입니다. ‘마노-뿝방가마- 담마-..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모든 메모리/나마곳따뿐만 아니라) 오염된 찟따에서 생성된 깜마 에너지는 윈냐-나 다-뚜에 저장됩니다. ‘기억은 어디에 저장되는가? ㅡ 윈냐-나 다-뚜’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빠띳짜 사뭅빠-다를 이해하지 않고 그 포스트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는 이 포스트 시리즈를 PS(연기)에 있는 항목들을 명확히 하여 그 그림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계획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시리즈의 모든 포스트들은 ‘’ 섹션의 ‘도표로 본 불교(Buddhism – In Charts)’에 있습니다.

 

참고 자료

 

1. 닙베디까 숫따( ‘Nibbedhika Sutta (AN 6.63)’ )에서:

“Kammaṁ, bhikkhave, veditabbaṁ …pe… kammanirodhagāminī paṭipadā veditabbā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Variant: kammanirodhagāminī → sabbatthapi evamevaKiñcetaṁ paṭicca vuttaṁ? Cetanāhaṁ, bhikkhave, kammaṁ vadāmi. Cetayitvā kammaṁ karoti—kāyena vācāya manasā.”

 

2. 삼마-딧티 숫따( ‘Sammādiṭṭhi Sutta (MN 9)’ )는 나-마(nāma, 정신)을 “Vedanā, saññā, cetanā, phasso, manasikāro—idaṁ vuccatāvuso, nāmaṁ.”로 정의합니다.  아비담마(Abhidhamma)에서는, 위의 5가지 쩨따시까(cetasika)와 함께 지위띤드리야(jivitindriya)와 에깍가따(ekaggata)라는 두 가지 쩨따시까(cetasika)가 더 열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찟따(citta)에는 7가지 쩨따시까(cetasika)가 있습니다. 요점은 ‘의도(intention)’는 쩨따나-(cetanā)에 대한 좋은 번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의도’는 찟따(citta)에 포함된 (‘로바_lobha’나 ‘아로바_alobha’와 같은) 부도덕적(아소바나) 또는 도덕적(소바나) 쩨따시까(cetasika)의 유형을 통해 나옵니다. 쩨따나 쩨따시까(cetana cetasika)는 ‘적합한 쩨따시까(cetasikā)를 조합하여 찟따(citta)를 구축하는’ 역할을 합니다. ‘생각(찟따)이란 무엇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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