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아니미사 로-짜나 보-디 뿌자- ㅡ 감사 행위의 서막
원문: Myths or Realities? 섹션의 ‘Animisa Locana Bodhi Poojawa – A Prelude to Acts of Gratitude’ 포스트
- 2016년 4월 29일 작성; 2017년 12월 1일 개정
1. 아니미사 로-짜나 보-디 뿌자-(Animisa Lōcana Bōdhi Poojā)(여기서 ‘locana’는 ‘lochana’로 발음됨)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붓다께서 깨달음(붓다후드, Buddhahood)을 달성했을 때 그늘을 만들어준 신성한 보리수(Bōdhi tree)에 감사를 표하셨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문헌에서, 그것은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성스런 노력을 하시는 동안 보호해 준 것에 대해 [보리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눈도 깜빡이지 않고 보리수를 바라보며 둘째 주를 보내셨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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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수는 특별한 나무였으며(지금도 마찬가지) 많은 독특한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향후 포스트에서 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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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붓다께서 눈도 깜빡이지 않고 보리수를 바라보고 계셨다는 해석에는 근거가 없습니다. 거기서 ‘아니미사(animisa)’라는 낱말은 ‘깜빡이지 않음’으로 잘못 번역되었습니다. 붓다께서 그 주 동안 하신 것은 다음에 있을 감사의 행위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2. 니미사(nimisa) 또는 니메-사(nimēsa)는 순간이고, 아니미사(animisa)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입니다. ‘로-(lō)’는 ‘로-까야(lōkaya, 세상)’를 의미하고, ‘짜(ca)’는 찟따(citta, 생각)을 의미하며, 따라서 ‘로-짜나(lōcana)’는 기본적으로 ‘숙고(contemplation)’인데, 이 경우에는 붓다후드(Buddhahood, 붓다의 깨달음)에 이른 자신의 긴 여정에 대한 숙고입니다. 보-디(bōdhi)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며, 따라서 37 보-디빠악시까 담마(37 Bōdhipākshika Dhamma)라고 하며, 여기서 ‘빠악시까(pākshika)’는 ‘~와 관련된’ 또는 ‘~와 연관된’을 의미합니다. 현재 영어 번역은 ‘37 Factors of Enlightenment(깨달음의 37가지 요인)’이며, 그다지 멀리 떨어진 의미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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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가 그 ‘아니미사 로-짜나 보-디 뿌자-(Animisa lōcana Bōdhi Poojā) 동안(7일 동안) 하신 것은 붓다가 되기 위한 요건(빠-라미따-, pāramitā)을 충족하기 시작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신 것입니다. 즉, 자신의 전생의 기억 기록(나-마 곳따, nāma gotta)을 훑어보시고 그 전체 기간 동안 누가 자신을 도왔는지를 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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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과거 기록은 기본적으로 영원히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나마곳따, 바와, 깜마 삐-자, 및 마노 로까’ 및 ‘끊기지 않은 기억 기록(HSAM)에 대한 최근 증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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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수(Bōdhi tree)가 있는 곳을 떠나신 후, 붓다께서는 처음 몇 년을(나중에도) 그 전체 기간 동안 자신을 도운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닙바-나(열반)를 얻도록 도왔습니다. 우리는 아래에서 몇 가지 경우에 대해 논의할 것입니다.
3. 붓다후드(Buddhahood, 붓다의 깨달음)를 얻기 위한 요건(빠-라미따-, pāramitā)을 충족하기 위해 붓다(‘보살’이라는 말이 더 타당함)께서 ‘사-라 아센케이야 깝빠 라카약(sāra asenkkheyya kappa lakhayak’을 필요로 하셨다고 합니다. 빠-라미따-(pāramitā)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원함(바람)과 결의(빠라미따)의 차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마하- 깝빠(mahā kappa)안에는 4개의 아센케이야 깝빠-(asenkkheyya kappā)가 있으며, ‘라카약(lakhayak)’은 100,000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의 아센케이야 깝빠(asenkkheyya kappa) 동안에만 까-마 로까(kāma loka)에 살고, 다른 세 개의 아센케이야 깝빠-(asenkkheyya kappā) 동안에는 까-마 로까(kāma loka)(및 일부의 하위 루-빠 로까-)는 파괴되고 재형성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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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빠-라미따-(pāramitā) 시간을 계산할 때, ‘아센케이야 깝빠 라카약(asenkkheyya kappa lakhayak)’은 실제로 마하- 깝빠(mahā kappa)의 시간이 걸립니다. 필자는 몇 가지 추정을 보았지만, ‘사-라(sāra)’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만족스러운 의미를 아직 찾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빠-라미따(pāramitā)를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십만(100,000) 마하- 깝빠(mahā kappā)의 어떤 수(‘사-라_sāra’)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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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긴지 알려주는 다른 데이터 포인트(data point)가 있습니다. 띠삐따까(Tipiṭaka)에 따르면, 고따마 붓다께서 자신의 빠-라미따-(pāramitā)를 충족하는 중에 우리 세상에 나타나신 붓다는 512,000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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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31 마하- 깝빠-(mahā kappā) 동안 6 분의 붓다가 출현하셨고, 이 마하- 깝빠-(mahā kappā)가 끝나기 전에 출현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는 멧떼이야 붓다(Metteyya Buddha, 미륵불)와 함께, 그 31 마하- 깝빠-(mahā kappā)에는 7 분의 부처님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대략 4 마하-깝빠-(mahā kappā)마다 한 분의 부처님이 출현한다고 가정하면, 우리 보살(고따마 부처님)이 빠-라미따-(pāramitā)를 완성하는데 걸린 시간은 2백만(2x10^6) 마하- 깝빠-(mahā kappā, 대겁)가 될 것입니다. 1 마하- 깝빠-(대겁)가 약 300억 (30x10^9) 년이라고 가정하면(‘윤회 시간 스케일, 불교 우주관, 빅뱅 이론’ 참조), 이 시간은 약 60x10^15 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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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소요된 시간에 관계없이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라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붓다께서 한 순간도 쉬지않고(‘아니미사’가 의미하는 것) 이 기간을 훑어보시는데(‘나-마 곳따’를 회상하는데) 꼬박 7일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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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많은 주요 인물들은 붓다(보살)와 함께 반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그 기록들을 살펴보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7일)이 걸린 이유입니다.
4. 붓다께서 깨달음에 이르신지 7주 만에 보리수가 있는 곳을 떠났을 때, 붓다께서는 즉시 그들에게 ‘빚을 갚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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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빚을 갚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깜마, 빚(부채), 및 명상’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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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가지 잘못된 견해 중 하나는 빚을 갚거나 감사를 표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세 가지 유형의 딧티, 팔도, 및 사마디’ 및 ‘잘못된 견해(밋짜- 딧티) - 더 간단한 분석’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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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 몸소 그렇게 행하신 것은 그 잘못된 견해를 없애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5. 붓다께서는 자신의 가장 최근의 스승인 알라라 깔라마(Alara Kala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amaputta)에게 먼저 보답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불행하게도, 두 사람 모두 최근에 죽었고 모두 아루-빠 로-까(arūpa lōka, 무색계)에 태어났습니다(두 사람 모두 ‘아나-리야 아루-빠 자-나-_anāriya arūpa jhānā’를 육성했음). 아루-빠 로까(arūpa loka)에 있는 유정체는 눈과 귀가 없으므로 담마를 배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붓다께서는 그들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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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 붓다께서는 6년 동안 고행 수행을 하는 동안 자신을 보살폈던 다섯 수행자(Kondanna, Bhdiya, Vappa, Mahānāma, Assaji)에 대해 생각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이시빠타나(Isipathana)에 있는 사슴공원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설하신 것은 바로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pavattana Sutta)과 아낫따 락카나 숫따(Anatta Lakkhana Sutta)입니다. 그들은 두 가지 설법 후에 모두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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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붓다께서는 근처에 살았던 부유한 바라문의 아들 야사-(Yasä)를 찾아내어 담마를 설하셨습니다. 야사-(Yasä)와 그의 친구 54명은 빅쿠가 되었고 곧 아라한과를 얻었습니다.
6. 또한 보살의 노력을 도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처님의 주요 제자가 되기 위해 빠-라미따-(pāramitā)를 채웠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전생에 해탈(닙바-나)를 향해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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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그들 대부분이 짧은 시간에 아라한이나 닙바-나(열반)의 여러 단계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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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도,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과거의 노력 때문에 남들보다 더 쉽게 성취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자신들의 노력에 낙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 노력들은 시간이 지나면 결실을 맺을 것이며, 어쩌면 훨씬 나중에 이생이나 내생에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7. 붓다께서 이시빠타나를 떠나실 때 쯤에는, 따라서 부처님의 사-사나(Sāsana, 교법/가르침)에는 60명의 아라한이 있었습니다. 붓다께서는 해탈(열반)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그 아라한들을 여러 방향으로 보내신 후, 자신은 오랜 과거에 수많은 삶에서 그와 함께했던 세 명의 깟사빠 형제와 그들의 추종자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우루웰라를 향해 떠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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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으로 가는 길에, 붓다께서는 자신들의 귀중품을 강탈한 여자를 찾고 있는 30명의 부유한 젊은이들을 제지하였습니다. 그것도 우연한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그 30명은 모두 전생에 부처님을 만났고 담마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라한의 지위에 이르렀습니다.
8. 우루웰라에 도착하신 붓다께서는 아라한이 아닌 깟사빠(Kassapa) 형제를 설득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해탈했다고 여겼던 요-기(yōgi, 수행자)들이었고 붓다 담마를 받아들이기를 매우 꺼렸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고 1000여명 모두가 아딧따 빠-리야야 숫따(Aditta Pāriyaya Sutta)를 듣고 아라한과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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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붓다께서는 그 1000여명의 아라한과 함께 마가다 왕국의 수도인 라자가하로 여행하셨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소따빤나가 되었고, 부처님에게 첫 번째 사원인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죽림정사)을 보시했습니다.
9. 붓다께서 죽림정사에 머무시는 동안 우빠띳사(Upatissa)와 꼴리따(Kolita)라는 두 바라문이 앗사지 테로(Assaji Thero, 다섯 고행 수행자 중의 한 분)를 만났고, 앗사지 테로로부터 한 구절을 듣고 소따빤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두 사람은 부처님을 뵈러 와서 빅쿠가 되기를 청했고, 2주 내에 아라한과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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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들은 부처님의 두 상수 제자가 되었으며, 바로 사리뿟따 존자(Ven. Sariputta)와 목갈라나 존자(Ven. Moggallana)입니다.
10. 그 다음, 붓다께서는 빅쿠들과 함께 자신의 아버지의 왕국인 까삘라왓투(Kapilavatthu)로 가셨습니다. 여기에서, 붓다께서는 과거에 그와 많은 삶을 함께 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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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같은 가정에서 태어나 공통의 친척과 친구를 가지는 것은 서로에게 상호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의무는 대부분 그 순서입니다. 물론 사람은 자신의 부모에게 가장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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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이것은 잘못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날 많은 정치인들이 행하는, 정부 자원을 오용하여 가족과 친구에게 ‘특혜를 주는’ 일반적인 관행을 용납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것만 주어야 합니다.
11. 따라서, 부처님의 생애의 처음 몇 년은 붓다가 되기 위한 노력에서 여러 번의 재탄생을 통해 함께 하고 여러 면에서 도와 준 사람들을 돕는 데 바쳐졌습니다. 물론 보살(부처가 되기 전)도 그의 조력자들도 사전에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자연이 작용하는 방식입니다. 이 시리즈의 다음 포스트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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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은 비슷한 가띠(gati)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함께 지내는 경향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여러 번 접한 매우 심오한 개념입니다. ‘끌림의 법칙, 습관, 성격(가띠), 및 갈망(아-사-와)’이라는 포스트에 간단한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12. 싯다르타 왕자의 아버지인 숫도다나왕은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은 지 약 5년 후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아라한과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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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따와띰사 데-와(Tavatimsa dēva) 영역에 데-와(천신)로 태어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3개월 동안 계속하여 다른 데-와와 함께 어머니에게 아비담마(Abhidhamma)를 설하셨습니다. 그 후 붓다께서는 아비담마의 주요 주제를 사리뿟따 존자에게 반복하여 설하셨고,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이후 자신 문하의 500여명의 빅쿠와 함께 오늘날 우리가 가진 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 Piṭaka, 논장)을 편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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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야소다라(Yasodhara) 공주와 라훌라(Rahula) 왕자도 출가하여 아라한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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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많은 친척들이 출가하여 닙바-나(열반)의 다양한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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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대기를 자세히 설명하는 꽤 좋은 책은 냐나몰리 빅쿠의 ‘The Life of the Buddha’입니다. 띠삐따까(Tipiṭaka) 자체는 사건의 실제 연대기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다른 기준에 따라 분류됩니다.
13. 때로는, 서로 돕는 자만이 아니라, 서로가 재탄생의 순환(삼사-라)을 통해 따르는 원수들도 있습니다. 부처님(싯다르타 왕자)의 거의 모든 다른 친척들은 닙바-나(열반)를 얻을 수 있었지만, 붓다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를 극복하지 못한 소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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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좋은 예는 각각 야소다라 공주의 형제와 아버지인 데-와닷따(dēvadatta)와 숩빠붓다 왕(King Suppabuddha)입니다. 그 두 사람은 결국 부처님께 폭력을 행사한 죄로 니라야(지옥)에 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