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사띠빳타-나 ㅡ 소개
원문: Sutta Interpretation 섹션의 ‘Satipaṭṭhāna – Introduction’ 포스트
- 2019년 1월 26일 개정; 2022년 6월 6일 개정
이 긴 숫따(sutta)의 기본 배치(레이아웃)를 설명하는 ‘사띠빳타-나 숫따 ㅡ 구조’라는 포스트를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 포스트를 읽기 전이나 읽은 후에 읽어 볼 수 있습니다.
1. 먼저 ‘사띠(sati)’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일부 주요 빠알리 낱말을 필자가 [빠알리어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양해해 주세요. 그것은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래에 진행함에 따라 그것들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먼저 링크[포스트의 주소]를 클릭하지 않고 포스트를 끝까지 읽고, 필요에 따라 되돌아와서 관련된 다른 포스트들을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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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띠(sati)는 ‘좋은’ 정신 요소(소-바나 쩨따시까, sōbhana cetasika)입니다. 그러므로 ‘사띠(sati)는 도덕적 생각(꾸살라 찟따, kusala citta)에서만 일어나고 아꾸살라 찟따(akusala citta)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쩨따시까(정신 요소)’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좋은 쩨따시까(good cetasika)’는 아꾸살라 찟따(akusala citta)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마찬가지로, ‘나쁜 쩨따시까’는 꾸살라 찟따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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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띠(asati)’ 쩨따시까(cetasika)는 없습니다. 따라서 ‘아사띠(asati)’라는 낱말은 ‘좋은 쩨따시까(good cetasika)’인 이 ‘사띠(sati)’의 반대말로 절대 사용되지 않습니다.
2. 그러나, ‘사띠(sati)’에는 ‘주의/주목/관심’ 또는 ‘마음 챙김’이라는 또 다른 ‘평범한(통념적/일상적)’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주제에 따라) 주어진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사용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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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어떤 사람이 당면한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는 무엇을 숙고(생각)하는지 신경쓰지 않고(마음 챙기지 않고) ‘아사띠(asati)’로 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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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야 ‘사띠(sati)’의 두 가지 다른 의미를 명확하게 알(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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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사람은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에서 마음챙김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마음챙김해야 할 것을 파악하기 위해 더 깊은 의미도 알아야 합니다.
3. 다음 예를 통해 평범한(일상적/통념적) 의미를 명확히 할 수 있습니다. 자살 폭탄 테러범은 폭탄 배선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로 폭발시킬 수 있습니다. 세세한 부분에 걸쳐 대규모 강도 계획을 세우는 전문(직업적) 도둑도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에 완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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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띠(sati)’의 더 깊은 의미는 두 경우 모두에 포함(관련)되지 않습니다. 자살 폭탄 테러범이나 도둑은 좋은 정신 요소인 ‘사띠(sati)’를 갖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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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띠(sati)’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이마스밍 사띠 이당 호띠 ㅡ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포스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4. 어떤 사람이 멈추어 자신이 하려는 행위가 어떤 도덕적 또는 부도덕한 결과를 가져 오는지 숙고하고, 도덕적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만 행할 때, 그 사람은 ‘좋은 정신 요소’인 ‘사띠(sati)’로 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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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를 행하는 사람의 마음가짐(마음성향)에 있는 ‘사띠(sati)’입니다. 물론, 그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일어나는 부도덕한 생각을 파악(포착)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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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를 행하는 사람은 두 가지 유형의 ‘사띠(sati)’를 모두 사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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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에서 빳타-나(patthāna)가 의미하는 바를 살펴봅시다.
5. 빳타-나(patthāna)는 설립/확립, 준비, 또는 ‘성형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는 ‘사띠(sati)’의 확립, 또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 ‘사띠(sati)’로 행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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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훈련 과정은 4단계로 이루어지며, 그것이 ‘사따라(satara)’가 4를 의미하는 ‘사따라 사띠빳타-나(satara Satipaṭṭhāna)’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4단계가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순서가 있습니다. 네 단계는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 웨다나-누빳사나-(vedanānupassanā), 찟따-누빳사나-(cittānupassanā), 담마-누빳사나-(dhammānupassan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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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누빳사나(anupassana)’의 의미는 ‘바와나(명상)’ 섹션에 있는 ‘[4] 이 모든 다양한 명상 기법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포스트의 #4 항목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6.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마음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이 진정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평온하게 되는 핵심(열쇠)입니다. 오염된 마음은 오염된 생각(찟따, citta)을 낳습니다. 오염된 생각은 (시차를 두고) 오염된 말과 (훨씬 더 긴 시차를 두고) 오염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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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정화하는 순서는 거꾸로입니다. 먼저 몸의 행동을 통제하고, 그 다음(또는 동시에) 말을 통제합니다. 그리고 (생각이 일어나는 대로) 그 생각을 통제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그 이유를 살펴 보겠습니다.
7. 아비담마(Abhidhamma) 섹션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생각(찟따, citta)은 매우 빠르게 일어납니다. 초당 수십억이 훨씬 넘는 찟따(citta)가 있습니다. 그러나 물론 우리는 적어도 약 0.05초 동안 축적된 ‘찟따(citta)의 묶음(다발/꾸러미)’만을 ‘경험’합니다. 그때에도 순전한 의지력으로 생각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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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우리 생각은 우리 성격과 습관(‘가띠_gati’)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리고 이 성품(가띠)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을 통제함으로써 일치 협력된 노력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섹션에 퍼져 있는 많은 포스트에서 ‘가띠(gati)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8. 이것이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가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먼저 도덕적인 말만 하고 도덕적인 행동만 하도록 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훈련합니다. 말과 행동은 모두 생각에서 비롯되지만 ‘시간지연(시차)’이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이 사람이 나에게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나서 그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말을 멈추기에 충분한 ‘시간 지연(시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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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말을 할 때보다 훨씬 더 오래 지연하여 신체적 행동을 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화가 나 있지 않는 한, 자신을 붙잡아 어떤 나쁜 행동을 멈출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그것을 잘하게 되고, 말과 행동을 모두 통제할 때, 분노로 행하는 그런 경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들고 사라집니다. 이것은 ‘사띠(sati)’로 행하면 행할수록 나쁜 가띠(gati)를 버리고 좋은 가띠(gati)를 기르기 때문입니다.
9. 따라서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 말하거나 행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붙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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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 말하면, 우리가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로 성취해야 할 것은 항상 우리의 말과 행동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지금쯤에는 왜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가 ‘정식(공식) 좌선 명상 기간’에 국한될 수 없는지가 분명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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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몸접촉하고, 생각하는 것에 반응하여 말하거나 행동합니다. 말이나 행동은 우리가 외부에서 ‘입력’을 받는 시간이나 마음 자체에 의해 생성된 시간부터 시간 지연(시차)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나쁜 말을 하기 시작하더라도 우리는 자신을 붙잡아 멈출 수 있습니다(그리고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면 사과할 수도 있습니다). 일어나서 누군가를 때리더라도 그런 행동의 나쁜 결과를 깨닫고 즉시 멈출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10. 실천을 하면 자신의 가띠(gati)가 바뀌고, 그런 어색한(적절하지 않은) 일이 점점 덜 일어날 것입니다. 사이트에는 ‘가띠(gati)’에 대한 많은 포스트가 있으며 ‘바와나(명상)’ 섹션에 있는 ‘[9] 아-나-빠-나사띠의 핵심 ㅡ 습관과 성향(가띠)을 바꾸는 방법’ 아래에 일부 포스트가 있습니다.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는 기본적으로 아나빠나사띠(anapanasati)를 행하는 체계적인 방법입니다. 과학적 관점은 ‘습관은 어떻게 형성되고 부서지는가 ㅡ 과학적 관점’에서 논의됩니다.
11. 그러므로,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가 사따라 사띠빳타-나(satara Satipaṭṭhāna)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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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가 행해지면, 그 사람의 가띠(gati)는 점차적으로 바뀌고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느낌에 충동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웨다나-누빳사나-(vedanānupassanā)'라는 다음 단계, 즉 ‘특정 느낌이 일어날 때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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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두 가지를 모두 실천할 때 ‘가띠(gati)’는 초기 생각조차도 ‘독이 덜’될 정도로 변화하므로, 자동적으로 ‘찟따-누빳사나(cittānupassana)', 즉 ‘도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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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사마-디(samādhi)에 들어가고 ‘담마-누빳사나-(dhammānupassanā)'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또는 어떤 다른 담마 개념)를 숙고하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12. 따라서, 먼저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로 시작하여 다른 세 가지 아누빳사나-(anupassanā)로 넘어갑니다. 네 가지를 모두 완료하면 과정이 완료되고 온전한 ‘삼마- 사띠(sammā sati)’가 있게 되며, 이는 온전한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 즉 아라한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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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것은 일반적으로 4단계로 달성되는데, 그 첫 번째 단계는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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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과정)를 마치지 않고 중학교(과정)를 밟을 수 없고, 고등학교(과정)를 통과하지 않고 대학 과정을 밟을 수 없듯이, 4단계를 체계적으로 거쳐야 합니다. 먼저 자신의 행동과 말을 통제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 포스트에서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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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를 행하는 동안 다른 세 가지를 행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말과 몸으로 행해지는 ‘8가지 큰 오염 행위(BIG EIGHT)'[살생, 도둑질, 성적 비행, 거짓말, 잡담/쓸데없는 말, 비방/중상하는 말, 욕설/거친 말, 마약이나 술 뿐만 아니라 부, 명성, 권력 등에 취하는 것]를 멈추는 것을 적극적으로 행하지 않는 한, 나머지 세 가지를 하는 것이 ‘별로 이익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명상의 기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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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다른 세 가지를 행하더라도 그 사람은]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를 행하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이 됩니다. 그 이익을 보면 진전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 사람은 계속해서 다른 세 가지를 점진적으로 통합하고, 머지않아 네 가지 모두를 행할 것입니다. 하지만,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가 그 토대(기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