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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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으로 가능한 효과 ㅡ 쿤달리니 각성

 

원문: Bhāvanā (Meditation) 섹션의 ‘Possible Effects in Meditation – Kundalini Awakening’ 포스트

- 2016년 6월 25일 작성; 2016년 7월 19일 업데이트

 

신화인가, 실화인가?’ 섹션에 있는 ‘Can Buddhist Meditation be Dangerous?’ 포스트에서, 필자는 평범한(전통적) 명상과 진정한(참된) 불교 명상 모두에서 명상으로 가능한 어떤 효과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여기서는 불교 명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변화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경험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러한 징후들은 일반화될 수 없으며 어떤 사람들은 느끼지도 못할 수 있습니다.

 

1. 자신의 마음이 크게 깨끗해지기 시작할 때, 먼저 육체적 감각이 좀 완화되고 그 다음에 약간의 불편함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그런 효과의 기원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배경 자료가 있을 때까지 이 주제에 대해 논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 * 어떤 사람들은 그런 첫 경험이 전혀 나쁘지 않다고 느끼고, 심지어 그것들에 들러붙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필자는 힌두교에서 ‘쿤달리니(kundalini) 각성(깨어남)’으로 알려진 것도 이 효과의 발현이라고 믿습니다. 그것들은 아나리야(anariya, 평범한/세간) 명상 기법에서 접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사람들은 이 단계에서 [마음] 정화 과정을 멈춥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비불교 명상 수행자들의 목표입니다.

  • * 그런 효과는 진짜 불교 명상에서도 경험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약간 고통스럽기조차 할 수 있으며 그리고 나아지게 됩니다. 그런 단계를 거쳐 진정한 평온을 얻기 위해서는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야 합니다.

  • * 이 포스트를 읽어 보기 전에, 먼저 ‘Can Buddhist Meditation be Dangerous?’ 라는 소개 포스트를 읽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 소개 포스트에는 명상 초기 단계에서 접하게 되는 어떤 신체 감각이 논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 현재의 이 포스트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간답바(gandhabba) 개념에 대한 배경 자료(지식)가 필요합니다.  간답바(gandhabba)에 대한 발음을 들으려면 다음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s://puredhamma.net/wp-content/uploads/gandhabba.mp3

비활성 육체는 간답바(gandhabba)(또는 마노마야 까야, manomaya kaya)에 의해 살아있게 되며(활성화되며), 이 간답바는 ‘유체이탈 체험(out-of-body experience, OBE)’의 경우에 육체에서 나오는 그것입니다. ‘Manomaya Kaya and Out-of-Body Experience (OBE)'를 참조하세요.

 

  • * 간답바(gandhabba)의 다양한 측면을 설명하는 많은 포스트가 사이트에 있습니다. ‘Gandhabba (Manomaya Kaya)’, ‘The Grand Unified Theory of Dhamma’, 및 ‘Udayavaya Ñāna’ 서브 섹션에 있는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 닙바-나(Nibbāna)를 얻기 위해 간답바에 대해 배울 필요는 없지만, 이 ‘명상 경험들’의 기본 메커니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면, 간답바는 마음과 육체 사이의 다리(연결 개념)입니다. 어쨌든, 이 가능한 효과들에 대해 아는 것이 좋습니다(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논의되어 있음). 그래야 그 효과들을 경험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3. 간답바(gandhabba)는 사실 육체에 대한 보이지 않는 청사진인 아주 미세한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미세한 몸은 마음의 명령에 따라 무거운 육체를 제어하는 몸으로, 마음 또한 간답바(gandhabba)에 위치하고 있습니다(하다야 왓투, hadaya vatthu에 있음).

 

  • * 이것을 시각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간답바(gandhabba)를 육체와 겹치는 미세한 그물망으로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 미세한 몸은 육체의 모든 부분을 지니고 있으며, 움직이기를 바라는 어떤 부분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답바가 그 미세한 팔을 움직일 때, 육체적인 팔은 [간답바의] 미세한 팔과 함께 움직입니다.

  • * 이것이 우리가 육체를 제어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뇌가 중개자(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과 함께 더 많은 세부 사항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Brain – Interface between Mind and Body’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예를 들어, 무거운 신체 부위를 움직이는 에너지의 대부분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 나옵니다. 간답바(gandhabba)는 단지 ‘제어 신호’를 보냅니다.

 

4. 육체의 신경계는 간답바의 미세한 신경계와 겹치며, 항상 겹치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다리를 꼬고 앉는다면, 육체의 신경계가 간답바의 신경계와 어긋날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의 신경계가 그 어긋남(변화)에 맞추려고 하여, 그것(육체)에 붙어 있는 근육을 당기려고 합니다.

 

  • * 그렇기 때문에 특히 다리를 꼬고 앉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다리를 꼬고 앉는 데에 익숙해질 때는, 육체 시스템이 익혀서 빠르게 적응하는(맞추는) 것입니다.

  • * 따라서, 이 효과(자세를 불편하지 않고 쉽게 취하는 효과)는 명상의 진전(진행)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의미있는 효과는 아래에서 설명합니다.

 

5. 우리 생각(즉, 찟따자 까야, cittaja kaya)은 간답바(gandhabba)의 미세한 몸(우뚜자 까야, utuja kaya)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뚜자 까야(utuja kaya)는 찟따자 까야(cittaja kaya)와 깜마자 까야(kammaja kaya)에 의해 생성된 숫닷-타까(Suddhāṭṭhaka)에서 발생합니다.

 

  • * 따라서 간답바(gandhabba)의 미세한 몸은 두 가지 방식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깜마자 까야(kammaja kaya)(즉, ‘깜마 위빠-까_kamma vipāka’)와 찟따자 까야(cittaja kaya)(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 * 첫 번째 효과는 (간답바의 몸을 단기간에 육체와 불균형되게 이동/변화함에 따라, 우리가 그 어긋남을 느낄 수 있는)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해 육체에 가벼운 통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대부분 경험하는 것이고(예를 들어, 만성 요통), 물론 명상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 중 어떤 것은 명상을 통해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6.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에 의한 변화/이동 외에, 우리는 장기간에 걸쳐 일관된 생각으로 간답바의 미세 신경계의 평형 위치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미워하는(증오하는) 생각을 많이 하면, 간답바의 신경계가 특정한 방식으로 비틀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로 욕심많은 생각을 하면, 다른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 * 따라서, 우리가 오염된 생각들을 하고 그것들에 따라 규칙적으로 행동하면, 간답바의 신경 다발이 점진적으로 비틀리게 되고, 그에 따라 육체적 근육도 비틀리게 됩니다. 그것은 첫 번째 효과에 비해 점진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늙을 때까지) 우리는 보통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 *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정화하기 시작할 때, 간답바의 미세한 몸은 그 평형 상태로 돌아 가려고 합니다. 좋은 명상 세션 동안, 이것은 상당히 빠르게 일어날 수 있으며, 그런 신경(및 근육) 움직임을 느끼기 시작할 때 발생합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다년간에 걸쳐 일어난 신경 다발의 그 비틀림을 없애려고 하는 것입니다.

  • * 이 때문에 어린 아이들에게는 이 효과가 훨씬 적습니다. 그들의 신경은 아직 너무 많이 이동/변화하지(비틀리지)는 않았습니다.

 

7. 따라서 두 번째 효과는 우리의 생각에서 유래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효과는 허리 위, 척추, 목 및 머리에서 발생합니다. 이것은 신경 다발이 척추를 통해 전파되고 또한 뇌에 뇌신경이 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쿤달리니(kundalini) 각성(깨어남)’은 이 범주의 예입니다.

 

  • * 이 효과는 명상하는 사람마다 다소 다르게 경험됩니다. 그러나 지배적인 특징은 허리 위에서 발생하는 ‘압력파’이며, 보통 척추, 목, 목구멍(인후), 머리 주위에 위치합니다. 이것들은 ‘쿤달리니 각성(깨어남)’에서 에너지 센터, 즉 차크라(chakra)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Kundalini’ 기사를 참조하세요.

  • * 그것 때문에 그들은 명상하는 중에 쿤달리니(kundalini) 에너지가 ‘풀렸다(uncoiled)’ 또는 ‘깨어났다(awakened)’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균형이 맞지 않는 신경계가 평형 상태로 돌아 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나리야(anariya, 평범한/세간) 명상에서는 더 이상 정화가 가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본질(특성)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8. 불교 또는 아리야(Ariya) 명상에서는, 어떤 유형의 육체 감각이라도 시작할 때 아닛짜 본질(특성)에 대해 숙고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어떤 유형의 육체 감각이든 마음은 몸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그 사람은 정화 과정에서 진전을 이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아나리야 명상의 이 단계(쿤달리니 각성 단계)에 이른 그 힌두 요기(수행자)들은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것을 방지했고 그런 생각을 억눌렸으며, 그래서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마음의 평온을 얻었습니다.

 

  • * 그러나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특성(아닛짜_anicca, 둑카_dukkha, 아낫따_anatta)에 대한 이해와 함께 영구적인 방법으로 마음을 정화하지 않으면, 그런 교정은 일시적이며 비틀린 위치로 바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효과는 다양한 정도로 다시 경험될 수 있습니다.

 

9. 아닛짜(anicca) 본질(특성)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이 ‘풀리는 과정(쿤달리니 각성)’이 가속화될 수 있으며(신체 감각도 함께), 이것은 상당한 불편함이나 경미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할 수도 있는 때입니다.

 

  • * 육체가 실제로 [간답바의 미세한 몸과] ‘어긋나’ 있다면, 그 재정렬 과정은 다양한 유형의 감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경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것은 좀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10.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리는 것을 경험하는데, 이는 확실히 ‘정화 과정’의 일부입니다. 우리의 오염된 생각은 다양한 신체 부위에 ‘불순물’을 발생시킵니다. 명상으로 생성된 순수한 찟따는 그것들을 태울 수 있으며 몸도 땀을 통해 노폐물을 제거합니다. 따라서 땀을 흘리는 것도 ‘좋은(올바른) 명상 세션’ 중에 가능합니다(진전의 초기 단계에 땀을 흘리며, 물론 이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집니다).

 

  • * 또 다른 관련 증상(징후)은 ‘좋은(올바른) 세션’ 중에 목이 마르는 것이며, 입이 건조해질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물 한 잔을 가까이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 * 그런데, 자-나(jhāna)에 들어 있는 중에도 사람은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사실 자-나(jhāna)를 기를 때, 눈을 뜨고 [보이는 대상에]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필자는 그것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사실, 신통력을 지닌 사람들은 신통력을 사용하면서 평상시의 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 * 예를 들어,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는 쭐라빤타까(Chullapanthaka) 존자가 어떻게 신통력으로 자신과 같은 천 명을 복제하여 그들이 사원 건물/부지들을 모두 청소하게 했는지를 묘사하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11. 다음은 필자의 스승이신 와하라까 테로님의 녹음 법문 중에서, 사람들이 묘사하는 것을 들은 또 다른 경험입니다.

 

  • * “무언가 목 부위에서 머리 끝까지 전파되어 ‘명상 세션’ 동안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이것은 이어진(후속) 명상 세션에서도 발생했습니다.” 그런 ‘전파’는 아마도 ‘압력파’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쿤달리니 형태’의 효과입니다.

  • * 이 ‘압력파’들이 강하면, 좀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명상을 계속함에 따라 신경계가 다시 평형 상태로 돌아올 때 그 효과들은 점차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확실하므로 안심하세요. 그러나, 그런 감각이 ‘명상 세션’이 아닐 때에 지속된다면, 의학적 상태(육체 건강) 때문일 수 있으므로 건강 검진을 받아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12. 실제로 이 감각들을 어느 정도 줄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필자가 들은 법문 중에 스승님(와하라까 테로)께서 제안하신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초기 단계에 하는 것이 좋은 것처럼) 눈을 감고 명상을 하더라도, 눈꺼풀 안쪽의 안구는 계속 움직입니다. 안구는 이리저리 많이 움직입니다.

 

  • * 코 부분에 눈을 집중시키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뭐랄까 자신의 마음에 의해 행해집니다. 그러나 안구는 그 후에 계속해서 코를 향하게 됩니다. 필자의 경우에는 머리에 있는 대부분의 감각이 멈췄습니다. 결국 이 감각들은 일단 평형에 도달하면, 사라집니다. 그 다음 눈을 뜨고도 명상을 진행할 수 있지만, 여전히 코/입 영역에 집중합니다.

  • * 이제 필자는 목구멍(인후) 부분에서 경험한 ‘압력파’가 전혀 없고, 최근에는 머리 부분에서도 그것이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효과 중 일부는 지난 1년 반 동안 있었습니다.

  • * 그런데, 필자는 비록 진전을 이루었지만(‘자-나-_jhānā’는 약, 중, 강이라는 3가지 레벨이 있음), 지난 1년 반 정도 동안 세 번째 자-나(jhāna)를 넘을 수 없었습니다. 네 번째 아리야 자-나(Ariya jhāna)에 도달한다는 것은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며, 그 단계에서는 모든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구를 잃습니다(즉, ‘까-마 로까’, 즉 욕계를 초월함).[역자 주: 개정 내용에 따라 ‘아리야 자-나’에 대한 설명이 수정될 필요가 있음. https://puredhamma.kr/mundane-vs-supramundane-jhana 참조]

 

13. 우리의 생각, 즉 우리의 찟따자 까야(cittaja kaya)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네 가지 유형의 까야(kaya) 중 가장 중요합니다. 이 네 가지 유형의 몸에 대한 논의는 ‘세 단계 실천’ 섹션의 ‘우다야와야 냐-나’ 서브섹션의 추후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 * 우리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육체(까라자 까야, karaja kaya)는 약 100년 동안만 유지되는 반면, 인간 바와(인간 존재)는 아마도 수백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까야(kaya)의 다른 세 가지 유형은 깜마자 까야(kammaja kaya), 찟따자 까야(cittaja kaya), 및 우뚜자 까야(utuja kaya)입니다. 이 세 가지 모두가 [육체보다] 인간 바와(human bhava) 전체를 통해 우세합니다(물론 그것들도 끊임없는 변화를 겪습니다).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 죽음-재생연결) 순간에 새로운 바와(bhava)가 움켜잡힐 때, 그것들은 ‘큰 변화(전환)’을 일으킵니다.

  •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찟따자 까야(cittaja kaya) (기본적으로 우리의 생각 흐름)입니다. 찟따자 까야(cittaja kaya)를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우리는 닙바-나(Nibbāna)을 추구하는 것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삶에서도 진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세 단계 실천’ 섹션의 ‘우다야와야 냐-나’ 서브섹션의 추후 포스트에서 자세히 논의할 것입니다.

 

14. 여기서 요점은 이 신체 감각들을 느끼기 시작하면, 더 쉽게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또는 어떤 다른 담마 개념)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정화한다는 것입니다. ‘Buddha Dhamma – In a Chart’ 차트 및 그 차트에 대해 논의한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 단계에서(즉, 갈증, 땀, 신체 감각 등을 느낄 때), 그 사람은 이 ‘바와나(명상)’ 섹션의 ‘9. Key to Ānāpānasati – How to Change Habits and Character (Gati)’ 단계 쯤이 될 것 같습니다.

  • * 물론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미 이해하고 어떤 그런 증상(징후)이 없이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 도달했을 수도 있습니다. 각자가 스스로 그것을 판단해야 합니다.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했는지 어떻게 아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십시오. 근본적인 지침은 마음을 정화하여 ‘아빠-야가미 가띠(apäyagami gati, 사악처로 향하는 성향)’를 제거했는지 여부입니다. 육체는 위에서 논의한 단서를 줄 수도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막가 팔라(magga phala)를 얻기 위해 자-나-(jhānā)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아리야 자-나(Ariya jhānā)는 적어도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 먼저 도달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11. Magga Phala and Ariya Jhanas via Cultivation of Saptha Bojjhaṅg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정신적(및 관련 육체적) 현상은 매우 개인적입니다. 따라서 위에서 논의된 증상(징후)은 특정 사람이 경험할 수도 있고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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