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빤짜 우빠-다-낙칸다- ㅡ 소개
원문: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Pañca Upādānakkhandhā – Introduction’ 포스트
- 2020년 5월 19일 작성
빤짜 우빠-다-낙칸다- ㅡ 우빠-다-나의 핵심 역할
빤짜 우빠-다-낙칸다-(Pañca Upādānakkhandhā)는 보통 ‘다섯가지 집착 무더기(오취온)’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것으로는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습니다[그러므로 많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1. 빤짜 우빠-다-낙칸다-(Pañca Upādānakkhandhā)의 개념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첫 설법인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pavattana Sutta, SN 56.11)’에서 붓다께서는 둑카(dukkha, 괴로움, 고통)를 한 구절로 요약하셨습니다. 즉, “상킷떼나 빤쭈빠-다-낙칸다 둑카-(Saṃ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입니다. 대부분의 영어 문헌에서 그 번역은 “간단히 말해, 다섯가지 집착 무더기(오취온)가 괴로움(고통)이다”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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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번역은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때까지는 그 구절의 의미를 전해주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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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라는 낱말은 빤짜(pañca), 우빠-다-나(upādāna), 및 칸다-(khandhā)라는 세 낱말의 조합에서 비롯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빤짜 칸다-(pañca khandhā)’는 ‘다섯 무더기’를 의미하며, ‘우빠-다-나(upādāna)’는 ‘가까이 유지하려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보게 될 것처럼, ‘가까이 유지함’은 대부분의 번역에서 사용되는 ‘움켜 잡음’보다 더 나은 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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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그 구절은 세상의 괴로움(고통)이 그 다섯 무더기의 어떤 부분을 ‘가까이 유지’하려는 우리의 경향으로 인해 일어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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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미 그 다섯 무더기의 특징 일부를 논의했습니다. 다섯 무더기(The Five Aggregates, Pañcakkhandha)에 대한 이전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우빠-다-나 ㅡ 마음에 가까이 유지함
2. 우빠-다-나(upādāna)는 ‘우빠(upa)’ + ‘아-다-나(ādāna)’가 합성된 낱말이며, ‘어떤 것을 더 가까이 끌어당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빠(upa)’는 ‘가까이’를 의미하고, ‘아-다-나(ādāna)’는 ‘끌어당김’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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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빠-다-나(upādāna)는 마음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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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연기)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묘사합니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요약될 수 있습니다. 아-람마나(ārammaṇa, 생각 대상)에 들러붙는 것은 땅하-(taṇhā, 그것에 들러붙게 됨)입니다. 그 들러붙게 되는 것은 우빠-다-나(upādāna, 그것을 각자의 마음에 가까이 유지함)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입니다. ‘땅하와 우빠다나 사이의 차이’ 포스트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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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우리는 루빡칸다(rupakkhandha)도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루빡칸다(rupakkhandha)가 ‘루빠(rupa)의 모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루-빠와 루-빡칸다 사이의 차이’라는 포스트에서 루빡칸다(rupakkhandha)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했습니다.
3. 그 포스트에서, 우리는 또한 루-빡칸다(rūpakkhandha)의 일부가 어떻게 루-빠 우빠-다-낙칸다(rūpa upādānakkhandha), 즉 루-뿌빠-다-낙칸다 (rūpupādānakkhandha) 의 일부가 되는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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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는 ‘그 다섯 무더기, 즉 루빡칸다(rupakkhandha), 웨다낙-칸다(vedanākkhandha), 산냑-칸다(saññākkhandha), 상카-락칸다(saṅkhārakkhandha), 및 윈냐-낙칸다(viññāṇakkhandha)를 ‘자신의 마음에 가깝게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 각자는 다섯 무더기 중에서 특히 마음을 끄는 부분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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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하여, 빤짝 칸다-(pañca khandhā)의 다른 네 가지 칸다-(khandhā)뿐만 아니라 모든 루-빡칸다(rūpakkhandha)는 마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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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모든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는 마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에 따라 계획합니다. 과거의 성관계 경험을 (마음에서) 재현하여 그것을 즐기는 것은 좋은 예입니다. 또 하나는 마음 속에서 미래에 기대되는 경험을 만들어 그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활동 모두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를 수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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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알) 수 있듯이, 빤짝칸다-(pañcakkhandhā)는 거대하고 무한합니다. 그것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부터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입니다. 그러나 빤짜 우빠-다-낙칸다-(pañca upādānakkhandhā)는 그것의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딧티와 땅하- ㅡ 우빠-다-나의 근본 원인
4.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믿는다면, 무언가를 가까이에 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것이 우리에게 좋지 않고 괴로움(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피하고 멀리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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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아름다운 물건 안에 폭탄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매력적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에서 멀리 떨어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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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때로, 우리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에 숨겨진 위험을 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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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자주 사용하는 예는 갈고리에 끼워진 지렁이(미끼)를 무는 물고기입니다. 물고기는 숨겨진 갈고리나 그 갈고리가 달린 줄이 매인 낚시대를 잡고 있는 낚시꾼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물고기가 그 맛있는 미끼를 물면 어떻게 될지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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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우리는 감각적 즐거움에 숨겨진 위험을 볼 수 없습니다. 부도덕한 행위가 수반되지 않더라도 왜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이 위험한지를 부처님만이 알아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부도덕한 행위(다사 아꾸살라, dasa akusala)가 수반되지 않더라도 왜 감각적 즐거움이 나쁜가 하는 것입니다. 감각적 즐거움에는 숨겨진 위험이 있습니다. ‘까-마 앗사-다 ㅡ 괴로움의 근본 원인’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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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흘려진(쏟아진) 꿀에 들어붙어 [꼼짝 못하고] 있는 개미를 본 적이 있지요? 개미들은 그 꿀을 먹기 시작하고 들어붙게 됩니다. 그 개미들도 맛있는 꿀 웅덩이에 숨겨진 위험을 보지 못합니다.
생명이 위험해도 놓지 않는 원숭이
5. 위의 예에서 ‘맛있는 미끼’를 무는 물고기 또는 꿀에 끌린 개미는 적어도 ‘숨겨진 위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 동영상에서 원숭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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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숭이는 사냥꾼(사람)이 오는 것을 보았을 때 주먹 안에 쥐고 있는 곡물을 놓고 구멍에서 손을 빼서 달아날 수도 있었습니다.(참고: 우리가 논의하는 것과 관련된 부분만 보여주려고 영상을 일찍 멈추도록 설정했습니다. 다시 재생하면 전체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뒷 부분에서는 사냥꾼이 원숭이의 수원(water source)이 어디에 있는지 찾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원숭이에게 짠 음식을 먹여서, 원숭이를 놓아주고, 물을 먹으러 달려가는 원숭이를 따라 갔습니다.) [역자주: 영상의 멈춤 설정은 영어 원문 사이트의 포스트 화면에서만 설정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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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원숭이는 주먹 안에 쥐고 있는 곡물을 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냥꾼에게 잡히는 위험을 보면서도 ‘맛있는 곡물’을 놓아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곡물을 쥔 상태로 손을 구멍에서 뺄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hopin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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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 때문에, 세상 안에 있는 위험을 볼(알) 수 있는 소따빤나(Sotapanna)라도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욕망)을 없애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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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소따빤나(Sotapanna) 성자에게는 우빠-다-나(pādāna)의 큰 부분이 제거되었습니다. 소따빤나 성자는 감각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어떤 부도덕한 행위도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소따빤나 성자는 어떤 때에도 성적 비행을 하지 않습니다.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욕망)은 까-마 로까(kāma loka)에 묶여 있게 합니다. 그러나 감각적 즐거움을 얻으려고 행해진 부도덕한 행위(다사 아꾸살라, dasa akusala)들만이 아빠-야(apāya)에 재탄생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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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 말하면, 소따빤나(Sotapanna) 성자는 까-마 우빠-다-나(kāma upādāna)를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아나-가-미(Anāgāmi) 성자는 ‘까-마 우빠-다-나(kāma upādāna)를 제거했습니다. 따라서 네 가지 유형의 우빠-다-나(upādāna)가 단계적으로 제거될 필요가 있습니다.
다섯 무더기(빤짝칸다-)는 크게 두 범주로 나뉜다
6. 다섯 무더기(The Five Aggregates, Pañcakkhandha)에 대한 이전 포스트들로부터, 다섯 무더기는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가지 주된 범주로 나누어질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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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무더기에는 11가지 유형의 개체가 있습니다. ‘루-빠와 루-빡칸다 사이의 차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러나 이들 모두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가지 시간대(time-frame)에 속합니다. ‘현재 순간’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다른 범주 (예: 내부 및 외부, 또는 근거리 및 원거리)는 각 시간대에 속합니다. 따라서 사실상 각 무더기에는 두 가지 주된 범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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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두 가지는 ‘과거 무더기’와 ‘미래 무더기’입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다섯 무더기는 우리의 ‘기억’과 ‘미래 기대/희망’을 포함합니다.
빤짜 우빠-다-낙칸다- ㅡ 기억을 되살리고 미래를 계획한다
7.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는 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일어난 의미있는(중요한) ‘사건’과 우리가 미래에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건 세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 즉 ‘빤짝칸다-의 우빠-다나(upādāna of pañcakkhandhā)’는 다음 두 경우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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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경험을 다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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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우리는 미래의 계획/희망을 이루기 위해 똑같이 합니다.
그 활동들은 마노(mano), 와찌(vaci), 및 까-야(kāya) (아비)상카-라를 통해 행해집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서 논의하겠습니다.
우빠-다-나 ㅡ 왜 어떤 것을 다른 것들보다 기억해 내기가 더 쉬울까?
8. 이 포스트 시리즈에서 지금까지 논의한 것으로부터, 우리의 모든 과거 행동(그리고 말과 생각)에 대한 기록은 나-마 로까(nāma loka)에 ‘영구적으로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기억을 새롭게 하기 위해 ‘기억 기록(나-마곳따) ㅡ 다섯 무더기의 결정적 중요 부분’ 포스트를 읽어 보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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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우리는 과거의 일부 사건은 대부분의 나머지 과거 사건보다 상기하기가 더 쉽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어떤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바로 어제 일어난 것조차도 상기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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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우리가 마음 속에 ‘가까이 유지하는’ 경향이 있는 사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탐함, 성냄, 또는 무지로부터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을 다시 맛보고 싶습니다. 누군가 ‘나쁜’ 짓을 했다면, 화가 나서 그것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또한 무지로 인해 의미없는 ‘웃기는 것들’(예를 들면, 음란한 농담)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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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지 기록(나-마곳따, nāmagotta)외에, 그런 ‘잊을 수 없는’ 사건들은 나-마 로까(nāma loka)에 에너지를 남깁니다. 그것들은 업 에너지(kammic energy)이며, ‘깜마 바와(kamma bhava)’에 있습니다. 그것들은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의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런 사건은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를 수반합니다.
‘나-마곳따’와 ‘깜마 비자’ 사이의 차이
9. 모든 사건의 기록은 그 사건이 끝나자마자 ‘나-마곳따(nāmagotta)’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일부 사건은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를 통해 생성된 ‘좋은’ 또는 ‘나쁜’ 강한 업을 수반합니다. 언급했듯이,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에는 아뿐냐 아비상카-라(apuñña abhisaṅkhāra), 뿐냐 아비상카-라(puñña abhisaṅkhāra), 및 아-넨자 아비상카-라(āneñja abhisaṅkhāra)라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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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들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 단계에 있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 유형입니다. ‘깜마, 상카-라, 및 아비상카-라 ㅡ 의도란 무엇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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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꿔 말하면, 그런 행위들은 깜마 비자(kamma bija, 업 씨앗)의 형성으로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까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가져올 잠재력이 있습니다. 특히 강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는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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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런 깜마 비자(kamma bija, 업 씨앗)가 그 위빠-까(vipāka, 과보)를 가져올 기회를 얻지 못하면, 그 에너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고갈됩니다. 그 때, 그것들은 어떤 연관된 에너지도 없이 단지 나-마곳따(nāmagotta)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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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마 비자(kamma bija, 업 씨앗)는 우리가 그것을 기억해 내려고 하지 않더라도 그 스스로 아-람마나(ārammaṇa)를 마음에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즉,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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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마 비자(kamma bija, 업 씨앗)는 (그 에너지로 인해) 그 스스로 아-람마나(ārammaṇa)를 마음에 불러 일으킬 수 있지만, 나-마곳따(nāmagotta)는 상기되어져야 합니다[상기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추후에 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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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강한 깜마 비자(kamma bija, 업 씨앗)와 관련된 그 사건들을 상기하기가 더 쉽습니다. 그런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기억해 내기가 쉽습니다. 반면에, 나-마곳따(nāmagotta)는 기억해 내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놀랄만큼 상세하게 기억해 낼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아래 참조).
모든 ‘나-마곳따’가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증거
10. 비디오 테이프와 꼭같이 자신의 과거에 대한 ‘완전한(온전한) 기록’이 실제로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은 질 프라이스(Jill Price)와 함께 시작되었는데, 질 프라이스는 자신이 1974년 이후의 모든 것을 기억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에 대해 2000년대 초반에 (과학) 연구팀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음 동영상은 ABC 뉴스 프로그램에서 다이앤 소여(Diane Sawyer)와 함께 찍은 동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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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질 프라이스)는 1974년 이후의 어느 날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마음 속에서 볼 수 있다고 말한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그것은 요약이나 일어난 일의 요지(요점)를 기억해 내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녀는 실제로 전체 사건(에피소드)을 상세히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요일과 날짜까지도 힘들이지 않고 기억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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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자신이 경험했던 것들만 기억해 낼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그것은 바로 1974년부터 그녀의 빤짝칸다-(pañcakkhandhā)의 일부임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그녀가 TV 시리즈 ‘달라스(Dallas)’를 보지 않았다면, 어느 날 ‘JR이 총에 맞았다’는 것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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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로 더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진술(보고)을 했습니다. ‘끊기지 않은 기억 기록(HSAM)에 대한 최근 증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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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어떤 아이들이 그들의 전생을 기억해 낼 수 있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전생을 상기(회상)하는 능력은 기억이 뇌에 저장되어 있을 수 없었고 물질적 몸(육체) 외부에 저장되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재탄생(윤회)의 증거’와 ‘Boy Who Remembered Pāli Suttas for 1500 Year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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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 선정(자-나, jhāna)에 도달할 수 있는 고대 요기(yogi, 금욕 수행자)들은 현 겁(kappa, 깝빠)의 모든 전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짧은 시간 안에 무수한 겁을 보실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