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마음 ㅡ 숫따와 아비담마 용어 비교
원문: Sutta Interpretation 섹션의 ‘Mind – Terminologies in Suttās versus Abhidhamma’ 포스트
숫따(sutta)에 있는 다양한 용어의 용법을 명확히 이해하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반면에, 아비담마(abhidhamma)의 용어는 정확합니다. 마음과 관련된 용어를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2022년 6월 28일 작성
찟따, 마노, 윈냐-나 ㅡ 마음과 관련된 실체
1. 찟따(citta), 마노(mano), 및 윈냐-나(viññāṇa)는 마음과 연관된 실체를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Assutavā Sutta (SN 12.61)’는 “Yañca kho etaṁ, bhikkhave, vuccati cittaṁ itipi, mano itipi, viññāṇaṁ itipi, tatrāssutavā puthujjano nālaṁ nibbindituṁ nālaṁ virajjituṁ nālaṁ vimuccituṁ”, 즉, “찟따, 마노, 및 윈냐-나라는 마음과 관련된 실체에 관해서는 배우지 못한 평범한 사람은 환상에서 깨어나거나 냉정해지거나 자유로워질 수 없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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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크 주소의 영어 번역에서는 세 낱말을 각각 ‘mind(마음)’, ‘sentience(지각/직각)’, 및 ‘consciousness(의식)’으로 번역한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그러나, 찟따(citta), 마노(mano), 및 윈냐-나(viññāṇa)라는 용어에는 (예를 들어, ‘아닛짜_anicca’처럼) 상응하는 영어 낱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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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찟따(citta)는 ‘chiththa’로 발음된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1800년대에 빠알리 성전 협회(Pāli Text Society, PTS)는 낱말 길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빠알리 낱말을 영어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규약을 채택했습니다. ‘초기 유럽 학자들이 채택한 '띠삐따까 영어' 규약 ㅡ 제1부’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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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용어들의 의미를 추출하기 위해 몇 가지 숫따를 살펴보겠습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찟따(citta)라는 용어만 숫따에서 아비담마와 다르게 사용됩니다.
찟따 ㅡ 마음의 대략적인 의미
2. ‘Accharāsaṅghātavagga (AN 1.51-60)’의 첫째 짦은 숫따는 “Pabhassaramidaṃ (Pabhassaram idaṃ), bhikkhave, cittaṃ. Tañca kho āgantukehi upakkilesehi upakkiliṭṭhaṃ. Taṃ assutavā puthujjano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Tasmā ‘assutavato puthujjanassa cittabhāvanā natthī’ti vadāmī”ti.라고 합니다.
번역: “빅쿠들이여, 마음은 빠밧사라(pabhassara) 본질, 즉 오염이 없는 본질이다. 그 ‘오염이 없는 마음’은 오염원(keles, 또는 kilesa)으로 오염된다. 나의 담마를 듣지 못한 평범한 사람(assutavā puthujjano)은 이 참된 본질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들에게 찟따 바와-나(citta bhāvana)를 권하지 않는다.” 붓다께서 말씀하신 ‘찟따 바와-나’는 ‘사띠빳타-나/아-나-빠-나사띠’에서 말하는 찟따-누빳사나-(cittānupassanā)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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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괴로움 없는(빠밧사라) 마음을 드러내는 것’ 및 ‘빠밧사라 찟따, 빛나는 마음, 및 바왕가’ 에서, 오염 없는 빠밧사라(pabhassara) 찟따가 어떻게 오염된 빠바사라(pabhasara, ‘s’가 하나임) 찟따로 바뀌는지 자세히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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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따에서, 찟따(citta)는 다양한 단계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띠빳타-나/아-나-빠-나사띠’의) 찟따-누빳사나-(Cittānupassanā)에서는 마음을 어떻게 훈련하여 (오염된 마음을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마음으로 바꾸는 의미로) 오염된 찟따(defiled citta)에서 순수한 찟따(pure citta)로 바꿀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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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아비담마에서는 찟따(citta)라는 낱말은 마음이 아닌 인식의 기본 단위를 지칭합니다. 아래를 참조하세요. 이 구분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노 ㅡ 여섯가지 아-야따나 중의 하나
3. 아라한에게는 여섯 가지 유형의 ‘순수 감각 기관’(인드리야)이 있는데, 짝쿠 인드리야(cakkhu indriya)부터 마나 인드리야(mana indriya)까지입니다. 이것들은 세상을 경험하는 데 사용되며, 아라한이 이것들을 사용할 때는 라-가(rāga), 도사(dosa), 모하(moha)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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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뿌툿자나(puthujjana)는 절대 그런 식으로 감각 기관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항상 마음에 최소한 모하(또는 아윗자-)로 사용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아-야따나(āyatana)라고 불리는데, 짝쿠 아-야따나(cakkhu āyatana, cakkhāyatana)부터 마나 아-야따나(mana āyatana, manāyatana)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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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숫따에서, ‘마노(mano)’는 위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Upādāya Sutta (SN 35.105)’를 참조하세요. 표식 3.4부터 표식 15.1까지의 구절은 짝쿠 아-야따나부터 마나 아-야따나까지를 언급합니다. 따라서, 마노(mano), 마나(mana), 및 마나 아-야따나(mana āyatana)는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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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사람을 지칭할 때, 마노(mano)는 사람의 ‘마음’을 묘사하는 데 사용됩니다. 마음은 언제나 오염되어 있습니다!
마노는 아라한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4. 아라한 단계(즉, 아라한 팔라 순간)에 도달하면 여섯 가지 아-야따나(āyatana)는 모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순수한 감각 기능’, 즉 여섯 가지 인드리야(indriya)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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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설법 중에 아라한 단계에 도달한 사람을 상상해 보세요. 육체에는 외적인 변화가 없지만, 그 여섯 가지 아-야따나는 모두 그에 상응하는 인드리야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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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Cetanā Sutta (AN 4.171)’에 명확히 명시되어 있는데, “avijjāya tveva asesavirāganirodhā so kāyo na hoti yaṁpaccayāssa taṁ uppajjati ajjhattaṁ sukhadukkhaṁ, sā vācā na hoti yaṁpaccayāssa taṁ uppajjati ajjhattaṁ sukhadukkhaṁ, so mano na hoti yaṁpaccayāssa taṁ uppajjati ajjhattaṁ sukhadukkhaṁ”, 즉, “그러나 무지가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면, 자신에게 일어나는 (마음이 만든) 즐거움과 고통에 의해 조건지어진 까-야(kāya), 와-짜-(vācā), 및 마노(mano)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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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크 주소의 영어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But when ignorance fades away and ceases with nothing left over, there is no body and no voice and no mind, conditioned by which that pleasure and pain arise in oneself.(그러나 무지가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면, 자신에게 일어나는 즐거움과 고통에 의해 조건지어진 몸도, 목소리도, 마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은 육체를 잃고 그 순간 사라져서 아라한이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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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아라한은 마나 인드리야(mana indriya)를 가지지만 마노(mano) 또는 마나-야따나(manāyatana)를 가지지 않습니다.
까-야 및 와찌 상카-라도 아라한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5. 그런데, 위 #4의 구절에서 까-야(kāya)와 와-짜-(vācā)를 잃는다는 것은 까-야 및 와찌 아비상카-라가 멈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숫따에서 ‘상카-라(saṅkhāra)’는 아비상카-라, 즉 오염된 상카-라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또한 대부분의 맥락에서 까-야 상카-라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assāsapassāsā kāyasaṅkhāro’ 구절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와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위 #4의 ‘Cetanā Sutta (AN 4.171)’에 따르면, 아라한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가 멈춘다 하더라도 계속 숨을 들이쉬고 내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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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 때문에 숫따에서 논의되는 내용의 맥락에서 낱말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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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숫따에서는 ‘까-야(kāya)가 육체를 지칭하는데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까-야 깜마(kāya kamma)’는 육체가 행하는 행위(예, 도둑질이나 성적 부정행위)를 지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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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Kammanirodha Sutta (SN 35.146)’는 “Yaṁ kho, bhikkhave, etarahi kammaṁ karoti kāyena vācāya manasā”, 즉 “몸, 말, 및 마음으로 행하는 (오염된) 행위”라고 합니다. 여기서, 까-예나(kāyena)는 ‘까-야와 함께 또는 까-야를 사용하여’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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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위 링크 주소의 영어 번역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에서 논의된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에서 행하는 나와 깜마(nava kamma)를 지칭합니다. 위 포스트의 #8에서 이 숫따를 논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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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사띠빳타-나 또는 아-나-빠-나사띠를 논의하는 숫따를 포함하는) 많은 숫따에서, ‘까-야(kāya)’는 육체를 지칭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는 육체를 숙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 즉 의식적인 생각 없이 ‘초기 깜마 생성’이 일어나는 곳을 숙고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추후 포스트에서 다루겠습니다.
윈냐-나 ㅡ 마음의 오염 상태
6. 윈냐-나는 ‘오염된 마음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앞서 논의했듯이, 루빠-, 웨다나-, 산냐-, 및 상카-라는 모두 ‘정신적 실체’, 또는 감각 입력을 받음에 따라 ‘마음 속에 일어나는 실체’입니다.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 ㅡ 대부분 오해임’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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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들은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pañca upādānakkhandha)’ 중의 처음 네 가지입니다. 우리는 윈냐-나가 ‘이 네 가지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에 오염원들이 개입하여, 마음은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윈냐-나는 잘못된 결론과 그에 기반한 기대를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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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냐-나(viññāṇa)라는 낱말은 ‘냐-나(ñāṇa)가 없음’, 또는 세상의 참된 본질에 대한 지혜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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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사항은 ‘윈냐-나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윈냐-나에는 ‘마음이 움켜잡은 루빠’가 포함된다
7. 이것은 필자가 아직 명확하게 논의하지 않은 측면입니다. 이것에 대해 적어도 간략하게 논의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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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논의했듯이, 감각 경험은 빤짜 우빠-다-낙칸다(pañca upādānakkhandha)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감각 입력을 받으면, 마음은 외부 루빠의 그 버전을 구성하는데, 여기서, ‘루빠’는 형색, 소리, 맛, 등을 의미합니다. 그 ‘마음이 만든 버전’이 루빠 우빠-다-낙칸다(rupa upādānakkhandha)입니다. ‘왜곡된 산냐-’(saññā upādānakkhandha)는 그 ‘마음이 만든 루빠’를 편집(구성)하는 근본 원인입니다.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 ㅡ 대부분 오해임’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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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마음이 만든 루빠’에 기반하여, 마음은 ‘마음이 만든 웨다나-’(samphassa-ja-vedanā)를 생성하는데, 그것이 웨다나- 우빠-다낙칸다(vedanā upādānakkhandh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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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그 세 가지 모두에 기반하여, 마음은 (아비)상카-라를 생성하는데, 그것이 상카-라 우빠-다낙칸다(saṅkhāra upādānakkhandh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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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냐-나 우빠-다낙칸다(viññāna upādānakkhandha)는 그 최종 결과입니다. 이것은 그 네 가지를 모두 통합하는데, 특히 윈냐-나는 웨다나-, 산냐-, 상카-라의 ‘나-마 측면’과 ‘루빠 측면’을 결합하여 ‘나-마루빠(nāmarupa)’를 합성합니다. 이것이 빠띳짜 사뭅빠-다의 ‘윈냐-나 빳짜야 나-마루빠(viññāna paccayā nāmarupa)’ 단계입니다. 이 ‘나-마루빠 형성’은 아라한 단계에서 멈춥니다.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 ㅡ ‘무더기’를 지칭
8.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는 거의 항상 각각의 우빠-다-낙칸다(upādānakkhandha)를 지칭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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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 입력을 받으면, 마음은 ‘확장’되고, 그 우빠-다-낙칸다(upādānakkhandha)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합니다. 마음이 그 감각 입력에 머물러 있으면, 그 감각 입력에 반복적으로 들러붙게 됩니다. 이것이 필자가 ‘두 개의 콘’을 사용한 도표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의 #6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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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가지 우빠-다-낙칸다는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는 느리게 성장하고, 마음이 의식적으로 깜마를 축적하기 시작하는 ‘나와 깜마’ 단계에서는 빠르게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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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 ㅡ 대부분 오해임’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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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포스트에서는, ‘뿌라-나 깜마’ 단계의 윈냐-나를 ‘위빠-까 윈냐-나’로 지칭하고, ‘나와 깜마’ 단계의 윈냐-나를 ‘깜마 윈냐-나’로 지칭했습니다. 그것은 더 강하게 계속 자라는 동일한 윈냐-나입니다. 위빠-까 윈냐-나도 오염되었습니다. ‘짝쿠 윈냐-나에는 오염이 없는가?’를 참조하세요. 그 포스트에서, 우리는 감각 입력으로서 ‘보는 사건’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숫따와 아비담마 사이의 차이
9. 위의 내용은 위 #1의 찟따, 마노, 윈냐-나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며, 이는 숫따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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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는 아비담마에서 찟따(citta)라는 낱말이 다른 맥락에서 사용되는 문제를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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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담마에 익숙하지 않다면, 이 부분부터 #12까지를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래 #12까지 건너뛰어도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도 괜찮지만,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낙담하지 마세요.
아비담마는 명확한 설명을 제공한다
10. 숫따에서는 찟따(대략 ‘생각’으로 번역됨)가 어디에서 발생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논의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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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담마는 찟따(citta)가 마노마야 까-야(manomaya kāya, ‘간답바’라고도 함)의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 마음의 자리)에서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마노마야(manomaya)’는 ‘오로지 마노(mano)에 의해 생성됨’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마노마야 까-야는 존재가 새로운 존재를 받아들일 때마다 업 에너지를 통해 생성됩니다. 그 업 에너지는 이전 생에서 ‘마노’(마나-야따나)에 의해 생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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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우리의 육체(숫따에서는 ‘cātumahābhūtikassa kāya’라고 함)는 우리가 먹는 음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짜-뚜마하-부-띠깟사 까-야(cātumahābhūtikassa kāya)’는 ‘네 가지 대요소로 만들어진 몸’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Paṭhamakāmabhū Sutta (SN 41.5)’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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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에 만족하지 못하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데, 그들은 자신의 육체에 싫증이 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육체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그것으로 괴로움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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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로움을 끝내려면, 마노마야 까-야(manomaya kāya)가 어떻게 강력한 업에 기반하여 발생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더욱이, 강력한 업의 생성은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초기 업 형성’을 멈출 때까지 멈출 수 없습니다. 이는 열가지 상요자나, 즉 윤회 족쇄를 제거함으로써 중단됩니다. (이것은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부처님의 가르침이며, 고대 요기들이 ‘괴로움의 끝’ 도달할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로까 ㅡ 각자는 '외부 세계'를 다르게 인식한다’의 #21부터 #23까지를 참조하세요.
11. 아비담마는 낱말 사용이 더 정확합니다. 예를 들어, 찟따(citta)는 항상 인식의 기본 단위를 지칭합니다. 찟따와 함께 최소 7가지 쩨따시까(마음 요소)가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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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찟따(citta)는 고립되어 일어나지 않습니다. 즉, 단일 찟따는 그 자체로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일련의 찟따’(찟따 위티)가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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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은 감각 입력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비활성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잠자는 동안에는 대부분 비활성 상태입니다. 의식이 없는 상태라면 완전히 비활성인데, 예를 들어, 큰 수술을 받기 전에 의식을 잃게 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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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 들어오는 감각 입력을 생각해 보세요. 항상 감각 입력에 대한 ‘인식’이 생성됩니다. 붓다께서는 그것이 항상 ‘잘못된 인식’, 즉 ‘왜곡된 산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첫 번째 찟따 위티(citta vithi) 자체 내에서, 마음은 좋아함, 싫어함, 또는 무지로 그 ‘왜곡된 산냐-’에 들러붙습니다. ‘왜곡된 산냐-’에 들러붙음은 마음의 오염된 ‘마노(mano)’ 상태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발생합니다. 이것은 마나 인드리야(또는 ‘순수한 마음’)가 마나 아-야따나/마나-야따나/마노로 변할 때입니다. 이것은 ‘마노 붑방가마 담마…(mano pubbangama dhamma…)’에 있는 ‘마노(mano)’입니다.
이 문제들로 인해 낙담하지 마세요
12. 하지만, 해결되지 않았거나 불분명한 문제 때문에 낙담하지 마세요. 필자는 지난 10여년 동안 이러한 문제들 중의 일부와 씨름해 왔습니다. 지난 3년 남짓 동안에야 좀 더 깊은 통찰력을 얻기 시작했고, 모든 것이 더 명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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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웹사이트에는 개정이 필요한 포스트(특히 오래된 포스트)가 많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문제는 지체없이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에 대한 이 새로운 섹션을 마치면, 해당 포스트들을 개정할 예정입니다. 포스트에 모순되는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에 따라 개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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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세상 것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질문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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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질문에 답하지 않은 것은 단지 논의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그런 질문을 ‘나쁜 질문’이라고 여긴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은 단지 일부 질문에 답하는 것이 핵심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런 질문들이 해결될 수도 있고, 아예 그런 의문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