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google":["PT Serif","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Nanum Barun Gothic"]}

 

'까-마 앗사-다'는 '팟사 빳짜야 웨다나(삼팟사 자 웨다나)'로 시작한다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Kāma Assāda Start with Phassa Paccaya Vedana or Samphassa Ja Vedana’ 포스트

 

고급 개념(심오한 개념)을 가진 포스트에서, 필자는 빠알리 용어를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a vedana)와 같은 구절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짧은 영어 구절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 빠알리 단어와 구의 의미를 배우고, 또한 도움이 될 것 같으면 발음할 수 있는 것이 유익합니다. ‘Pāli Glossary’ 게시물에 오디오 파일을 포함시켰습니다[로딩 문제로 오디오 파일은 삭제되었음. Popup Pāli Glossary with Pronunciation 이용가능함]. 이 포스트의 제목에 있는 빠알리어 발음은 다음 오디오 플레이어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오디오 플레이어:Kāma Assāda Start with Phassa Paccaya Vedana or Samphassa Ja Vedana’ 원문 포스트에 있음.

 

1. 이전 포스트인 '까-마'란 무엇인가? 그것은 섹스만이 아니다’에서, 까-마(kāma)가 섹스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매력적인 감각 대상,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 맛있는 음식, 좋은 냄새, 또는 감각적인 몸 접촉도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까-마(kāma)는 시선을 사로잡는 대상이든,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든, 맛있는 음식이든, 좋은 냄새든, 몸 접촉이든, 기본적으로 감각을 만족시키는 대상에 대한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 (그 즐거움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 * 우리는 까-마(kāma)(또는 까-마 앗사-다, kāma assāda)가 그런 감각적 대상을 생각하고 우선시한다는 뜻의 ‘상깔삐따 라-가(sankalpita rāga)’인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그런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가 우리의 깊은 곳에 있는 아사와/아누사야(asava/anusaya)(우리의 습관, 즉 가띠_gati와 관련됨)가 어떤 감각 입력에 의해 촉발될 때 생기는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임을 보았습니다.

  • * 따라서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 상깔삐따 라-가(sankalpita rāga), 마노 상카-라(mano saṅkhāra)가 기본적으로 동일한 것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 * 다시 강조하자면, (그것들에 익숙해지고 상응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기 때문에, 비록 높은 즐거움의 활동을 멀리할 필요가 있을지라도),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는 좋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해 오는 그 감각 입력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는 그런 감각 입력에 대해 갈망하고 생각하고 계획합니다.

  • * 어떤 극도의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또는 적어도 그것들에 의해 시작된 행동과 말)는 그것들의 나쁜 결과(아-디-나와, ādīnava)를 이해함으로써 억제 될 수 있습니다.

  • * 세상에 붓다께서 출현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가벼운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도 나쁜 결과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전 포스트에서 보았던 것처럼 나쁜 결과가 있습니다.

 

2. 어떻게 하면 가볍지만 여전히 해로운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가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이제 논의할 필요할 있는 중요한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이전 포스트와 또한 이 시리즈의 소개 포스트인 ‘앗사-다, 아-디-나와, 닛사라나 - 소개’에서 논의되었던 것과 같은  전술을 사용해야 합니다.

 

  • * 어떤 행위가 해롭다는 것을 마음이 이해할 때, 그런 행위를 피합니다. 소개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담배를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습관의 나쁜 결과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대신에 좋은 습관(예를 들면, 담마를 듣기/읽기 등)을 기르는 것입니다.

  • * 이전 포스트에서는 그런 행위의 나쁜 결과를 이해함으로써 어떻게 말과 몸의 행위를 통해 부도덕한 행위를 피하는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 * 다시 말해, 나쁜 습관(nissarana, 닛사라나)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일차적인 방법은 마음에 일어나는 그런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의 나쁜 결과(아-디-나와, ādīnava)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3. 이것이 부처님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인 “이전에 들은 적이 없는 담마”가 작용하는 지점입니다. 이 독특한 메시지는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가 해로울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볼 때 결실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보통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지만, 붓다께서 가르치신 담마에 따라 분석할 때, 그것들은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무지 때문에 단지 마음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위빠-까 웨다나(vipāka vedana)와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 사이의 큰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위빠-까 웨다나(vipāka vedana)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깨끗하게 함으로써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습니다.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는 보통 위빠-까 웨다나(vipāka vedana)에 의해 촉발됩니다. 또한,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는 완전히 마음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더 많은 통찰력을 얻도록 간단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 * 남편과 아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아내가 멈춰서서 가게 창문을 통해 보이는 ‘전시된 아름다운 그림’을 바라봅니다. 남편은 그것을 보고 어깨를 으쓱하며 가던 길을 계속 가고 싶어합니다. 가격이 좀 비싸서 아내는 지금 당장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 중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것을 사고 싶어합니다. 남편은 그것에 관심이 없으며 그것을 사는 것은 돈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 * 남편과 아내는 모두 위빠-까 웨다나(vipāka vedana)로서 동일한 그림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보는 것’이었고, 아비담마(Abhidhamma) 섹션에서 논의할 것처럼 대부분의 위빠-까 웨다나(vipāka vedana)는 보거나 듣는 것과 같이 중립적입니다. 신체 접촉은 예외로, 나쁜 위빠-까 또는 좋은 위빠-까에 따라 그것은 신체적 둑카 웨다나(베이거나 두통 등) 또는 신체적 수카 웨다나(마사지를 받거나 더운 날에 에어컨이 설치된 방에 있는 것 등) 일 수 있습니다.

  • * 자, 그 아내의 마음에 생겨난 즐거운(행복한) 느낌은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즐거운(행복한) 느낌’은 그 남편의 마음에 생겨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점입니다. 그 아내에게 생겨난 즐거운(행복한) 느낌은 그림의 특성일 수 없습니다. 그림의 특성이 즐거운 것이라면, 그 남편에게도 동일한 즐거운(행복한) 느낌이 일어나야 합니다! 

 

5. 따라서 위의 특정 경우에, 아내만이 그림을 보는 것으로 인한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를 즐기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빠윳띠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pavutti 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이 그 아내에게만 작동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런 대상에 대한 그 아내의 뿌리깊은 갈망(아사와/아누사야, asava/anusaya)에 의해 촉발되었습니다. 그 갈망은 그 아내를 아윗자-(avijjā)로 행하게 했습니다.

 

  • * 우리는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윈냐-낭(cakkhuñca paṭicca rūpē ca uppajjāti cakkhuviññāṇaṃ)’이 ‘틴낭 상가띠 팟소(thinnan sangati phasso)’와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a)’로 이어졌다고 말함으로써, 동일한 과정을 또한 다르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딴하-, 탐함과 미워함과 미혹함을 통해 어떻게 들러붙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제, 그 아내는 [그림에] 들러붙어 의도적으로 그림을 바라보며,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 단계가 시작되고, 순식간에 ‘(삼)팟사 빳자야- 웨다나((san)phassa paccayā vedana)’ 단계를 거쳤습니다. ‘Idappaccayatā Paṭicca Samuppāda ’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나, 동일한 그림을 본 그 남편에게는 그런 대상에 들러붙게 하고 아윗자-(avijjā)로 행하고 그 과정을 시작하게 하는 아사와/아누사야(asava/anusaya)가 없었습니다. “ ‘Self’ and ‘no-self’: A Simple Analysis – Do We Always Act with Avijja? ” 포스트도 또한 참조하세요.

  • * 개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명명백백할 수 있지만, 개념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관련 포스트를 복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6. 이제 그림에 들러붙게 되었으므로, 그 아내는 한동안 계속 그림을 바라보게 되는데, 그것은 수많은 그런 빠윳띠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pavutti 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로 이어집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아내는 그곳을 떠난 후에도 그것을 떠올리며 그 그림에 대해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를 즐깁니다. 이제 그 아내는 그것에 대해 윈냐-나(viññāṇa)와 바와(bhava)를 만들었습니다.

 

  • * 그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는 그 아내가  집에 있을 때 오직 마음만을 수반하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로 다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난짜 빠띳짜 담메 짜 웁빳자-띠 마노-윈냐-낭(manañca paṭicca dhammē ca uppajjāti manōviññāṇaṃ)’으로 시작합니다. 즉, 그 아내는 설거지를 하면서 그 그림을 잊지 않습니다. 그 아내가 다른 일로 바쁠 때 어떻게 그 그림을 생각하기 시작할까요?

  • * 그것을 설명하는 한 가지 방식은 ‘그 아내는 그 그림에 대한 윈냐-나(viññāṇa)를 길렀고, 이제 프롬프트(상기시키는 것)가 없어도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때로 ‘잠재 의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 Viññāṇa, Thoughts, and the Subconsciou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것을 설명하는 또 다른 방식은  ‘그 아내는 그 그림을 좋아하는 바와(bhava)를 만들었고, 그것(바와)은 조건이 맞을 때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담마(dhamma)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마난짜 빠띳짜 담메 짜 웁빳자-띠 마노-윈냐-낭(manañca paṭicca dhammē ca uppajjāti manōviññāṇaṃ)’ 입니다. 그러나 그 아내가 법문을 듣거나 아닛짜(anicca)와 같은 핵심 개념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 특정한 담마, 개념 또는 생각은 결코 마음과 접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아내는 그런 ‘잠재하는 윈냐-나(subconscious viññāṇa)’가 표면화되는 큰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일(설거지)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7. 물론, 이제 그 ‘마난짜 빠띳짜 담메 짜 웁빳자-띠 마노-윈냐-낭(manañca paṭicca dhammē ca uppajjāti manōviññāṇaṃ)’ 단계는 ‘틴난 산 가띠 팟소(thinnan san gati phasso)’ 및 ‘(산)팟사 빳짜야- 웨다나( (san)phassa paccayā vedana)’로 이어집니다. ‘Difference between Phassa and Samphass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런 그림을 좋아하는 그 아내의 ‘가띠(gati)’는 자신의 마음을 ‘삼팟사(samphassa)’로 만들고, 이것은 ‘삼팟사 빳짜야- 웨다나(samphassa paccayā vedana)’, 또는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a vedana)’로 이어집니다.

 

  • * 이것은 그녀의 남편은 가지지 않는 웨다나(vedana)입니다. 그 남편은 그 그림에 대해 윈냐-나(viññāṇa) 또는 바와(bhava)를 만들지 않았고, 그래서 그것은 그 남편의 마음에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8. 이제, 일주일 후에 그들이 같은 가게를 지나가고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 아내는 그때 그 그림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나, 이제  그 그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군가 그것을 샀습니다. 이제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생각해 보세요.

 

  • * 그 아내는 ‘내가 그것을 샀어야 했는데, 이제 나는 그렇게 멋진 그림을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며 심란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남편은 아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어떤 나쁜 느낌은 있을 수 있으나, 그 외에 다른 어떤 나쁜 느낌은 갖지 않을 것입니다.

  • *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생에서도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는 괴로움입니다. 그 괴로운 느낌은 위빠-까 웨다나(vipāka vedana)가 아니라,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a vedana)’입니다. 그 아내는 그 그림에 들러붙었다는 이유만으로 심란해졌지만, 그 남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9. 필자는 단지 실생활에서 아주 간단한 예를 들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큰 결과가 없는 비교적 사소한 딴하(tanha)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사소한 예를 들었습니다. 물론 누군가가 더 중대한 어떤 것에 들러붙어 계속 그것에 대해 생각하여 윈냐-나(viññāṇa)가 자라게 하고 결국 그것을 얻기 위해 나쁜 일을 한다면, 그 결과는 훨씬 더 가혹할 수 있습니다.

 

  • * a) 예를 들어, Y와 (짝)사랑에 빠진 X는 하루 종일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매우 강력하고 탐욕스러운 윈냐-나(viññāṇa)’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X는 Y에 대해 자신의 마음에 온갖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것을 더 많이 할수록 그 윈냐-나(viññāṇa)가 더 강력해집니다.

  • * b) 윈냐-나(viññāṇa)가 더 강력할수록 자신의 마음에 떠오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 주변에 끊임없이 서성거리는(또는 잠재 의식 속에 있는) 담마(dhamma)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난짜 빠띳짜 담메 짜 웁빳자-띠 마노-윈냐-낭(manañca paṭicca dhammē ca uppajjāti manōviññāṇaṃ)’으로 더 많은 PS(연기) 과정을 쉽게 시작합니다.

 

10. 위 a)와 b)의 차이에 주목하세요. a)에서, 그 (연기) 과정은 X가 처음 Y에 대해 생각하고 아윗자-(avijjā)로 Y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여 자신의 마음에 ‘Y에 들러붙음’이 있을 때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시작합니다. 이 시점에, Y에 대한 ‘새끼 윈냐-나(baby viññāṇa)’가 형성됩니다.

 

  • * 지금은 초기 단계이므로 이 ‘Y에 대한 새끼 윈냐-나(baby viññāṇa)’는 ‘마난짜 빠띳짜 담메 짜 웁빳자-띠 마노-윈냐-낭(manañca paṭicca dhammē ca uppajjāti manōviññāṇaṃ)’(과정 b)을 자주 유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X가 Y에 대해 한동안(얼마동안) 생각하지 않게 되면, 그 윈냐-나(viññāṇa)는 사라지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X가 며칠 후에 다시 Y를 보면, ‘Y에 대한 새끼 윈냐-나(baby viññāṇa)는 다시 먹이를 얻습니다. Y를 보는 것은, X가 많은 PS(연기) 사이클을 거치게 하고, 그 ‘Y에 대한 윈냐-나(viññāṇa)’를 강화시킵니다.

  • * X가 Y를 자주 보게 되고 ‘Y와 어울려 다니기까지 한다면, 이제 X는 많은 먹이(아하라)을 주고 있기 때문에 ‘Y에 대한 그 윈냐-나(viññāṇa)’가 자랍니다.

  • * 이제 ‘Y에 대한 강한 윈냐-나(viññāṇa)’로, X의 마음은 끊임없이 ‘Y에 대한 담마(dhamma)’와 함께 있고, X가 다른 일을 하는 동안에도  ‘마난짜 빠띳짜 담메 짜 웁빳자-띠 마노-윈냐-낭(manañca paṭicca dhammē ca uppajjāti manōviññāṇaṃ)’이 유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11. 그러던 어느 날, X는 Y가 다른 사람과 약혼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X는 어떻게 될까요?  X는 몹시 심란해질 것이고, 그 끌림(그리고, X의 가띠)의 레벨에 따라 나쁜 행위를 할 수도 있습니다.

 

  • * 예를 들어, 끌림(땅하 레벨)이 매우 강하고 X가 ‘폭력적 성격’(즉, ‘폭력적 가띠’)이라면, X는 Y나 Y가 약혼한 사람에게 육체적 해를 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X는 ‘Y를 잃은 것’으로 인한 고통(괴로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나쁜 깜마(kamma)를 범함으로써 미래 고통(괴로움)의 원인도 만들었을 것입니다.

 

12. 이제 우리는 땅하(tanha)와 가띠(gati) 두 가지가 어떻게 결정적인 문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리석게 행하는 것의 나쁜 결과(아-디-나와, ādīnava)에 대해 숙고함으로써, 두 가지 모두 줄어들 수 있습니다.

 

  • * 그리고 그것은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함으로써 영구적 바탕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가띠(gati)는 소따-빤나(Sotāpanna)의 도덕적 가띠(moral gati)로 영구히 변하게 되고, 아빠-야-(apāyā)에 태어나는 것으로 이어지는 행은 결코 하지 않게 됩니다. 소따-빤나는 어떤 감각 입력으로 인해 여전히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a vedana)를 생성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가볍고 따라서 초래되는 고통(괴로움)은 미미합니다.

  • *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 또는 감각 대상에 대한 생각을 강제적으로 억누르는 것[억눌러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 논의를 통해 명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줄이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유일한 길은 담마(Dhamma)(특히, 이 세상의 아닛짜 특성)를 배우고 그런 생각의 나쁜 결과(아-디-나와, ādīnava)를 숙고함으로써 마음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붓다께서 아사왁카야 냐나(asavakkhaya nana)로 깨달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나쁜 습관(가띠)을 없애고 좋은 습관(가띠)을 길러 아사와(asava)(및 아누사야, anusaya)를 제거하는 방식(길)입니다.

  • * 그리고, 이것은 ‘바와나(명상)’ 섹션의 ‘9. Key to Ānāpānasati – How to Change Habits and Character (Gati)’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google":["PT Serif","PT Sans"],"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Nanum Barun Gothic"]}
{"google":["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