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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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은 아꾸살라 깜마(부도덕한 행위)인가?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Is Eating Meat an Akusala Kamma (Immoral Deed)?’ 포스트

-2015년 10월 23일 전에 공개; 2016년 10월 19일 개정; 2018년 2월 16일 개정; 2022년 11월 6일 개정[영문법 및 경미한 사항 개정임]

 

2016년 6월 2일 추가된 메모 : 필자는 이 포스트가 사람들에게 고기를 먹도록 부추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몇 사람들로부터 코멘트를 받았기 때문에 이 포스트를 수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필자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두 번 생각하는 것이 없이도 일상적으로 행하는 나쁜 일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단지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물에 대한 연민심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1. 붓다께서는 당시의 베다 브라만(vedic brahmin)들이 고수하는 ‘바무누 마타(bamunu matha, 도덕에 대한 피상적 개념)’를 불식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 * 불행하게도, 현재 많은 ‘불교도들’이 그같은 ‘마무누 마타(bamunu matha)’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한 바퀴를 돌았고, 붓다께서 바꾸려고 매우 노력하셨던 원래 상태로 되돌아 왔습니다.

  • *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이 겉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5가지 육체적 감각으로 그것들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에는 우리가 보고(딧타, ditta), 듣고(수따, suta), 맛보고 냄새맡고(무따, muta), 인지하는(윈냐따, vinnata) 것 이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부처님이 출현하시는 진정한 의미는 그 진리가 훨씬 더 깊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가 빤냐(panna, 지혜)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담마를 배움에 따라 분명해질 것입니다. 

  • * 그래서 붓다께서는 우리에게 겉으로 보이는 것을 넘어서 ‘붑베 아나눗수떼수 담메수...(pubbe ananussutesu dhammesu, 이전에 전혀 들어보지 못한 담마...)’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 실상을 보라고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이고 운명론적인 깜마(kamma)의 교리가 아닌, ‘원인과 결과’의 교리를 사용하여 이 문제를 분석해 봅시다. ‘깜마란 무엇인가? – 깜마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때때로 도덕의 외형적인 모습은 단지 밋짜 딧티(micca dhtthi, 그릇된 견해)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의례 의식으로 닙바-나(Nibbāna)를 얻으려고 애쓰는데, 이것은 사실 소따빤나(Sotapanna, 수다원) 단계에 이르기  전에 제거해야 하는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amasa)’라는 하나의 밋짜 딧티(micca ditthi)입니다.

  • * ‘고기를 먹는 것’을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로 분류하는 오해도 밋짜 딧티(micca ditthi)입니다.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는 붓다께서 일정한 조건(아래 9번 참조)에서 준비된 고기를 받아들이셨다는 증거가 충분히 있으므로 붓다께서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를 행하셨다고 이 사람들은 말하는 것일까요?

 

2. 아-마간다 숫따(Āmagandha Sutta (Sutta Nipata 2.2))에서, 붓다께서는 브라만(brahmin)에게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하고 그리고 올바르게 준비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어째서 둑짜리따(duccarita, 부도덕한 행)인지 설명하셨습니다.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을 죽이면, 그것은 ‘올바르게 준비되지’ 않은 것입니다.

 

다음은 번역( English translation )의 한 절입니다.

 

“살생, 고문, 절단도,

구속, 도둑질, 거짓말, 사기 행위;

기만, 간통(간음) 및 비뚤어진 견해 공부:

이것들이 썩은 고기의 악취이며, 고기를 먹는 것이 [악취가] 아니다.”

 

3. 부처님을 죽이고 ‘부처가 되려고’ 했던 데와닷따(Devadatta)는 먼저 ‘빅쿠(bhikkhu)들이 따라야 할 5가지 엄격한 조건’을 제시하여 붓다 사사나(Buddha Sasana,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상가를 분열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는 그가 부처님보다 더 도덕적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 데와닷따(Devadatta)는 승려들이 다섯가지 규율을 준수하는 것에 대해 붓다께서 승낙하시도록 요구했습니다. 그 다섯가지 규율은 ‘승려들은 평생 숲에서 살아야 하고, 구걸로 얻은 것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살아야 하며, 버려진 누더기로 만든 가사만 입어야 하고, 나무 아래에 거주해야 하며,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 붓다께서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의례 의식의 길’(와따, vata)을 표방하지 않는다고 답변하셨습니다. 그 대신에 마음을 깨끗하게 함으로써 닙바-나(Nibbāna)에 도달하면 도덕적 행위가 자동으로 따릅니다. 이것은 ‘상와랏떼나 실란(saṁvaraṭṭhena silan)’,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하여 산(san)의 무익함(헛됨)을 볼 때, 도덕적 행위(실라, sila)는 자동적으로 실현된다’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다른 한편으로, 가혹한 조건에서 살고 축산 농장에서 도축되는 가축을 생각함에 따라 정말로 거부감이 들어 고기를 먹는 것을 자발적으로 그만둔 사람들이 있으며,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빤냐(panna, 지혜)를 얻음에 따라, 고기뿐만 아니라 감각적 즐거움을 갈망하는 많은 것들이 자동으로 줄어듭니다.

  • *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를 느끼기 시작하고 그것(니라미사 수카)이 훨씬 더 평온(고요)하고 ‘어떤 짧은 감각적 즐거움’보다 마음에 오래 지속된다는 것을 깨닫을 때, 과도한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은 자동적으로 감소합니다.  “세가지 유형의 행복 – '니라-미사 수카'란 무엇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나 요점은, 빤냐(panna, 지혜)는 [세상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함으로서 얻어지며, 비진리(진리가 아닌 것)를 통해 설득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 지와까 숫따(Jivaka sutta)에서, 붓다께서는 그 고기가 공양물로 올리기 위해 고의로 살생된 것임을 보거나 듣거나 의심되지 않을 때는 빅쿠가 그 고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필자는 또한 그 당시의 관습은 빅쿠에게 ‘빠왓따 만-사(pavatta mānsa)’를 적용하는 것이었음을 최근에 발견했습니다. 즉, 그 고기가 숲(야생)에서 다른 동물들에 의해 살해된 동물의 고기일 때는 빅쿠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사자 및 호랑이는 보통 [사냥한] 동물의 일부만 먹고 나머지는 남기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거두어 먹습니다).

 

  • * 그러나, 붓다께서는 [야생에서 살해당한 것이라도] 인간, 코끼리, 말, 개, 고양이, 사자, 호랑이, 표범, 곰, 하이에나의 살(고기)을 먹지 못하도록 금지하셨습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금지해졌으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사람의 소비물(음식)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 * 어떤 초목이 독성이 있는 것처럼 어떤 고기는 해로운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 말고 ‘죽은 동물의 고기’는 옥수수나 밀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사따라 마하 부따(satara maha bhuta, 사대요소)’, 즉 빠따위(patavi, 지대), 아뽀(apo, 수대), 떼조(tejo, 화대), 와요(vayo, 풍대)로 만들어졌습니다.

  • * 일단 마음(정신적 몸)이 몸(물질적 몸)을 떠나면, 몸은 통나무처럼 불활성 상태가 됩니다. 부도덕한 것은 살아있는 존재(유정체)의 삶을 고의로(의도적으로) 끝내거나 그러한 행위(살생)를 돕는 것입니다. 일단 그 행위가 행해지고 나면, 남아 있는 것(몸)은 통나무와 다르지 않습니다.

  • * 그렇다고 이것이 붓다께서 고기를 먹는 것을 옹호(표방)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기를 적게 먹고 야채와 과일을 더 먹는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음식을 먹으며, 이는 비만으로 시작되는 많은 건강 문제를 초래합니다.[역자주: 추가 이유로, 업력이 다하지 않은 사람과 동물의 간답바는 그 육체 주위에 오래 머물며 자신의 육체가 어떻게 되는지 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5. 중요한 점은 고기를 먹거나 다른 어떤 것을 먹거나 탐욕으로 행하면, 그것은 아빗자(abhijja, 강한 욕망)의 마음으로 행해지는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 부도덕한 업)라는 것입니다.

 

6. 일부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고기를 먹는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축산 농장을 운영하고 동물(가축)을 죽이도록 장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생각으로 신경이 쓰이며 괴로운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위해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필자는 연민심에서 많은 것을 끊었습니다(그만 두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어떤 행위가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로 분류되는지 그 이유를 조사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 * 농민들이 우리의 소비(수요)를 위해  쌀, 밀, 야채를 재배할 때 살충제를 사용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물(유정체)를 죽이지 않나요? 위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사는 어떤 음식을 먹음으로써 농부들이 그 모든 곤충을 죽이도록 장려하지 않나요?

  • * 이것들이 정말로 무사-와-다(musāvāda)가 의미하는 것이며, 다시 말하면, 잘못된 전제를 사용하여 논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무사-(musā)는 ‘잘못된’을 의미하고, 와-다(vāda)는 ‘토론’을 의미합니다. 그것들은 표면적으로는(겉보기에는) 이치에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주의깊게) 조사 검토해 보면 실속(본질)이 없습니다.

  • * 니야따 밋차- 딧티(niyata micchā diṭṭhi, 확고하게 자리잡은 그릇된 견해)는 아빠야(apaya, 악처, 사악처)에 재탄생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갖는 것에 대해 조심해야 합니다. 많은 그런 그릇된(잘못된) 신념(믿음)이 ‘무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물의 참된 본질을 알지 못하는) 밋짜 딧티(micca ditthi)로 간주되며, 그것은 사람들이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하기 어려웠던 또 다른 이유입니다.

  • * 요컨대, 특히 고기를 먹는 것이 특히 양심의 가책으로 신경쓰이고 괴롭다면,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먼저 다른 해로운 행위들에 대해 염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깜마의 무게를 평가하는 방법’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7. 부도덕한 행위를 하고 그것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이 항상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도덕적이 되도록 강제할 수는 없으며, 단지 무엇이 도덕적이고 무엇이 부도덕한 것인지 가리켜 보일 수는 있습니다. ‘무엇을 심고 거둘 것인가’를 결정하고 이해하는 것은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 * 언급했듯이, 붓다께서 다년간 거주하셨던 웰루와나-라-마야의 바로 옆에서, 돼지 도축자인 ‘쭌다 수까라’는 푸줏간(정육점)을 운영하였습니다. 붓다 시대에도 일부 사람들은 왜 붓다께서 그를 구하려 하지 않으셨는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붓다께서 그렇게 하셨더라면, ‘쭌다 수까라’는 붓다를 향하여 증오심을 품었을 것이고, 붓다께서 설명하신 바와 같이 훨씬 더 나쁜 아빠-야(apāya, 악처)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겉모습에 따르는 것보다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 *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축산 농장에서 그지없이 가혹한 조건에서 가축을 기르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방식으로 가축을 죽이는 것의 심각한 결과를 지적해야 합니다(아래 10번 참조). 비록 동물들은 의식 수준이 훨씬 낮더라도 우리과 같은 고통을 느낍니다. 그래도, 우리는 (사대 요소로 만들어진 다른 음식과 같은) 고기를 먹는 것이 동물을 먹는 것과 같다는 ‘잘못된  산냐’를 제거해야 합니다. '산냐-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일단 동물이 죽으면, 그 시체는 불활성 상태가 되고, 간답바(gandhabba)는 그 ‘불활성 껍데기’를 떠났습니다. ‘기계 속의 유령 ㅡ 마노마야 까야와 유사한 말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스리랑카에서, 그리고 아마 많은 불교 국가들에서도 도축자로부터 소와 다른 동물들을 구출하기 위한 운동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행위를 ‘아바야 다-나(abhaya dāna)’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그 동물의 생명을 돌려주거나 구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8. 먼저, 소는 왜 처음에 소로 태어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소는 싱할라어로 ‘하라까-(harakā)’라고 하는데, 여기서 ‘하라(hara)’는 ‘본질 또는 좋은 것’을 의미하고, ‘까-(kā)’는 ‘먹다 또는 파괴하다’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소 상카-라(cow sankhāra)’로 인해, 즉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초래하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소로 태어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하거나 최소한 다른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초래하는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소, 돼지, 및 다른 동물로 태어나 ‘그 빚을 갚게’ 되어 있습니다.

  •  
  • * 비록 우리가 도축자에게 돈을 지불하여 소의 생명을 구할지라도, 그 소는 ‘소 바와(cow bhava)’의 업 에너지(업력)가 소진될 때까지 많은 그러한 ‘소의 삶’을 겪을 것이고, 그 기간 동안 수많은 살해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이 현실(실제 상황)입니다.

  • * 위에서 본 것처럼 ‘현재의 소를 구하려고 노력하는’ 쓸데없는(헛된) 일을 하는 대신,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미래의 생에 소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일단 누군가 ‘소 바와(cow bhava)’를 받으면, 그 ‘바와’에서 여러 번 태어납니다. ‘바와 및 자띠 - 존재 상태와 거기로 태어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담마(true Dhamma)’를 접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 * 따라서, 사람들이 그러한 동물을 구출하는 것을 막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할지라도(생명을 구하는 것은 항상 좋습니다), 우리는 다른 행위의 상대적인 공덕(장점)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대해 사람들에게 교육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9. 그 맥락에서, 아바야 다-나(abhaya dāna)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봅시다. ‘바야(bhaya)’는 ‘두려움’을 의미하고, ‘아바야(abhaya)’는 두려운(무서운) 결과를 막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다-나(dāna)’는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바야 다-나(abhaya dāna)’는 두려움을 없애는 선물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 * 4가지 아빠야(apaya), 즉 존재의 가장 낮은 4가지의 영역에서 겪을 수 있는 고통(괴로움)에 대해 두려워해야 합니다. 동물 영역의 존재는 그 중의 하나입니다. 만약 한 사람에게라도 그것(두려움)에 대해 숙고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수백만 마리 소의 생명을 ‘구하는’것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칭찬할 만한) 것입니다. 물론, 위에서 보았듯이, ‘구원된 소’는 진정으로는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 구원된 소는] 어떻게든 빚을 갚을 것입니다[갚아야 할 것입니다].

  • * 하지만, 누군가 다른 한 사람을 소따빤나(Sotapanna)가 되게 할 수 있다면, 구할 수 있는 소, 돼지 등 삶의 횟수를 상상해 보세요. 그 사람은 [소따빤나로 구해진 후] 결코 4가지 아빠야(apaya)에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한 사람을 구함으로써 구원되는 셀 수 없는 횟수의 삶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아바야 다-나(abhaya dāna)’이며, 어떤 돈[도축자에게 지불하는 돈]도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10.  여기서 중요한 점은 소(또는 다른 동물)에게는 담마(Dhamma)의 이해를 통한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존재의 시간’, 즉 이 경우에 ‘소 바와(cow bhava)의 지속 시간’을 단축시킬 방법이 없습니다. 그 존재(소)는 단지 많은 횟수로 ‘소의 일생’을 통해 그 업 에너지(업력)이 소진될 때까지 [‘소 존재’에서 벗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 * 그러나 인간은 담마(Dhamma)를 이해할 수 있고 존재의 유형을 바꿀 수 있으며, 예를 들어 브라흐마(brahma, 범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하여 아빠야(apaya)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심지어 아라한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 단계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 * 그래서, 동물의 생명을 구하는 것과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 * 그래도 필자는 어느 누구에게도 동물을 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주어진] 자원(노력 등)을 활용하여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더 좋은 방법들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스리랑카에서]는 가끔 집에 들어오는 벌레나 파리를 절대로 죽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잡아서 밖으로 던질 때 사용하는 ‘벌레잡이 컵(기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컵(기구)에 벌레를 들어가게 한 후, 판지(cardboard)를 천천히 아래로 밀어 넣어, 그것을 문밖으로 가져 갑니다.

 

11. 필자는 또한 붓다께서도 위 4번에서 언급한 조건하에 공양 올려진 고기를 드셨다는 것을 가리켜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마지막 식사는 붓다께서 궤양 같은 병으로 인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돼지 요리’였습니다.

 

  • * 이 맥락에서, 마지막 식사에 대한 또 다른 오해에 대해 논의해 봅시다. 그 식사가 끝난 뒤, 붓다께서는 남은 식사음식을 어떤 사람도 먹게 하지 말고 [땅에] 묻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그 식사음식의 오염 문제’ 때문이며, 그것으로 인해 붓다께서 불편해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 음식에 문제가 있었다면, 붓다께서는 미리 보셨을 것입니다.

  • * 붓다께서 남은 식사음식을 버리라고 하신 것은 단지 그 식사음식이 붓다후드(Buddhahood, 붓다의 지위)의 성취시에 공양올려진 첫 우유밥과 같이 특별한 식사음식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사음식은 부처님만이 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데와(deva, 천신)들과 브라흐마(brahma, 범천)들은 그런 식사음식에 매우 강력한 영양분을 주입합니다. 붓다께서는 [붓다후드 성취시에] 한끼의 우유밥으로 7주 동안 [육체가] 유지되셨습니다.

 

12. 마지막으로, 동물의 고통은 실제 현실이며, 이것은 붓다께서 언급하신 상사라(윤회) 고통의 한 형태입니다. 여러분이 강철 심장(신경)을 가지지 않고는 일부 축산 농장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행동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Nationearth.com’  사이트에 있는 ‘Earthlings’ 이라는 전체 영화를 한 번 보세요(경고 : 특히 약 10~15분 후의 장면은 마음을 불안(교란)하게 합니다).

 

  • * 우리는 축산 농장에서 그지없이 가혹한 조건에서 가축을 키우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방식으로 죽이는 것의  나쁜 결과(과보)를 지적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 * 위에서 지적했듯이, 동물들은 ‘이전 생에서 이미 심은 것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자연은 항상 깜마 위빠까(kamma vipaka, 업보)를 부여하는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이 자진하여 그러한 형벌을 시행하고, 스스로 많은 미래 고통을 야기한다는 것입니다.

  • * 따라서, 그러한 활동에 참여하는 현재 사람들에게 (미래 탄생에서)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비극일 뿐이지만, 피할 수 있습니다.

  • * 아무튼,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덕을 강요(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 위험을 지적하고 그러한 부도덕한 활동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집행하여 도울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 노력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닭 싸움을 시키는 것은 불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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