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아닛짜 특성이 어떻게 둑카로 이어지는가?
원문: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How Does Anicca Nature Lead to Dukkha?’ 포스트
- 2021년 8월 30일 작성
물질적 루빠(rupa)(우리가 보는 대상, 소리, 냄새를 유발하는 입자, 물질적 음식, 우리가 접촉하는 대상)와, 과거, 현재, 미래의 물질적 루빠(rupa)(즉, ‘루빡칸다_rupakkhandha’)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의 기억/희망은 모두 아닛짜(anicca) 본질(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느 쪽에든 그것에 대한 갈망/들러붙음은 결국 괴로움/고통(둑카, dukkha)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런 들러붙음을 포기하는 것은 성스런 진리/틸락카나(Tilakkhana)/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루빡칸다와 물질적 루빠
1. 논의한 바와 같이, 루빡칸다(rupakkhandha)는 그런 물질적 루빠(physical rupa)에 대한 우리의 정신적 인상으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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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숫따(sutta, 경)에서는 두 가지 유형 모두에 대해 루빠(rupa)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맥에 따라 어떤 유형인지 또는 두 유형을 모두 언급하는 것인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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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질적 루빠(physical rupa)와 루빡칸다(rupakkhandha)는 모두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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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루빡칸다(rupakkhandha)는 물질적 루빠(physical rupa)로 인해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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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영어 번역(숫따 센트럴 사이트의 번역 포함)은 이러한 구분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차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붓다께서는 물질적 루빠를 어떻게 특징지으셨는가?
2. 모든 ‘물질적 루빠(physical rupa)’는 유한한 수명을 가지며 존재하는 동안 변형/압박을 받습니다!
루빠(rupa)라는 낱말은 캇자니-야 숫따( ‘Khajjanīya Sutta (SN 22.79)’ )에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습니다.
“Kiñca, bhikkhave, rūpaṁ vadetha? Ruppatīti kho, bhikkhave, tasmā ‘rūpan’ti vuccati. Kena ruppati? Sītenapi ruppati, uṇhenapi ruppati, jighacchāyapi ruppati, pipāsāyapi ruppati, ḍaṁsamakasavātātapasarīsapasamphassenapi ruppati. Ruppatīti kho, bhikkhave, tasmā ‘rūpan’ti vuccati.”
번역: “빅쿠들이여, 왜 그것을 ‘루빠(form, 형태)’라고 하는가? 빅쿠들이여, ‘그것은 변형/압박을 받는다.’ 그래서 그것은 ‘루빠(form, 형태)’로 불린다. 무엇에 의해 변형되는가? 차가움에 의해 변형/압박되고, 뜨거움에 의해 변형/압박되고, 허기짐에 의해 변형/압박되고, 갈증에 의해 변형/압박되고, 파리, 모기, 바람, 햇빛, 뱀 등에 의해 변형/압박된다. 그것은 [그와 같이] 변형/압박된다. 빅쿠들이여, 그러므로 그것을 형태(form, 루빠_rupa)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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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위의 구절은 [루빠가] 구체적으로 우리의 육체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어떤 루빠(rupa)에도 예기치 못한 변형이나 변화의 특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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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천신과 범천의 ‘몸’도 같은 원리를 따릅니다. 집이나 자동차와 같은 비활성 루빠(rupa)도 같은 원리를 따릅니다. 그것들 모두는 존재하는 동안 예기치 않은 변화를 겪을 수 있으며, 그리고 죽음(또는 파괴)은 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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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빡칸다(rupakkhandha)도 또한 아닛짜(anicca)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루빠(rupa)에 대한 과거 경험의 기억을 갈망하는 것은 또한 둑카(dukkha)로 이어집니다.
“야드 아닛짱 땅 둑캉” ㅡ 아닛짜 특성은 둑카로 이어진다
3. 다음 구절은 붓다 담마의 많은 기초적인 측면을 담고 있습니다. “Rūpaṁ aniccaṁ. Yadaniccaṁ taṁ dukkhaṁ; yaṁ dukkhaṁ tadanattā; yadanattā taṁ ‘netaṁ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ṁ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ṁ”. 이 구절은 많은 숫따(sutta)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 results for “yadaniccaṃ AND taṃ AND dukkhaṃ’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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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 시리즈( 붓다 담마의 기본 틀, Basic Framework of Buddha Dhamma )의 포스트들에서 그 전체 구절에 집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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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트는 그 구절의 일부인 ‘야다닛짱 땅 둑캉(Yadaniccaṁ taṁ dukkhaṁ)’ 또는 ‘야드 아닛짱 땅 둑캉(Yad aniccaṁ taṁ dukkhaṁ)’, 즉 ‘아닛짜 특성(본질)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고통으로 이어진다’에 대한 것입니다.
4. 우리의 마음은 닛짜(nicca) 견해(시각)로 이 세상에서 ‘마음을 즐겁게(기쁘게)하는 루빠(mind-pleasing rupa)’에 들러붙게 됩니다. 우리는 ‘물질적 부’를 축적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런 루빠(rupa)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잘못된 딧티(diṭṭhi, 견해)와 산냐-(saññā, 인식)를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위빨라-사(딧티, 산냐, 찟따)는 상카-라에 영향을 미친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에 대해서는 이 시리즈에서 더 논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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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붓다께서는 이 전체 세상이 아닛짜 특성(본질)이라고 분명히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모든 루빠(rupa)는 존재하는 동안 예기치 않게 변하고, 그것들은 모두 결국 파괴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나이가 들게 되면서 몸의 각 부분들을 좋은 상태로 유지할 수 없습니다. 결국에는 몸 전체가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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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은 비활성적인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임을 확인했습니다. 과학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데 동의합니다. 더욱이, 열역학 제2법칙은 사물이 ‘존재하는 동안에도 무질서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간단한 비유
5. 어린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는 것에서 엄청난 만족과 기쁨을 느낍니다. 그들은 그것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완성된 결과물을 보는 것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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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거센 파도나 달리는 개가 그 모래성을 무너뜨리면 그들의 기쁨은 슬픔으로 바뀝니다. 그들은 [모래성을 쌓아 놓고] 행복한 마음으로 집에 갈 수 있지만, 다음날 돌아왔을 때 모래성이 파괴되어 있는 것을 보면 슬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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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문에 어른들은 모래성을 쌓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성장하게 됨에 따라, 모래성을 쌓는 것이 즐거운 활동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시간낭비’라는 것을 서서히 이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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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완전히 성장하고 지적인 어른들은 평생 동안 똑같은 일을 합니다. 그들은 더 나은 삶을 바라면서 지칠 줄 모르고 일합니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이 되어서야 그들은 그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더욱이, 그들이 부도덕한 생각과 행위를 하여 ‘부도덕한 마음 성향(마음 가짐)’을 길렀다면, 실망/낙담할 뿐만 아니라 내생에서 많은 고통/괴로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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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성은 아닛짜(anicca) 특성(본질)입니다. 그것에 들러붙는 것은 필연적으로 실망/낙담(dukkha, 둑카/괴로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활동을 하는 것은 결실이 없고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습니다(anatta, 아낫따). ‘아낫따(anatta)’에 대해서는 곧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열역학 제2법칙과 관계
6. 열역학 제2법칙은 루빠(rupa)가 (영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안정하고/예측할 수 없는 본질이 있음을 입증(뒷받침)해 줍니다. 이 부분은 건너뛰어도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 것들이 무질서(혼란 상태)로 향하는 경향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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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역학 제2법칙은 어떤 고립계(isolated system)의 무질서는 항상 증가한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그것은 '무질서가 증가한다'는 뜻이고, 우리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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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본질적으로 아닛짜(anicca) 특성(본질)을 표현한 것입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아닛짜의 일부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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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역학 제2법칙을 생각하는 간단한 방법은 방을 정기적으로 청소하고 정리 정돈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항상 지저분하고 무질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방을 청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것은 상카-라 둑카(saṅkhāra dukkha)의 일부입니다. ‘소개-2 ㅡ 괴로움의 세가지 범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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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상한(impermanent)’ 본질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은 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더욱이, 그런 상카-라(saṅkhāra)는 종종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가 되어 ‘나쁜 태어남’으로 훨씬 더 많은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아닛짜(anicca)가 ‘무상한(impermanent) 본질’ 그 이상을 의미하는 이유입니다.
정신 무더기도 아닛짜 특성이다!
7. #3에 언급된 그 모든 숫따(sutta)와, 그 외 많은 숫따에서는 다섯 무더기(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가 모두 아닛짜(anicca) 특성(본질)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의 기대대로 유지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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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야다닛짜 숫따( ‘Yadanicca Sutta (SN 22.15)’ )는 (루빠에 추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Vedanā aniccā. Yadaniccaṁ taṁ dukkhaṁ; yaṁ dukkhaṁ tadanattā; yadanattā taṁ ‘netaṁ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ṁ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ṁ. Saññā aniccā …pe…saṅkhārā aniccā …viññāṇaṁ anicc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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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다나- 아닛짜-, 산냐- 아닛짜-, 상카-라 아닛짜-, 윈냐-낭 아닛짱(Vedanā aniccā, saññā aniccā, saṅkhārā aniccā, viññāṇaṁ aniccaṁ)”를 “느낌은 무상하고 ... 지각(인식)은 무상하고 ... 선택 행위는 무상하고 ... 의식은 무상하다.”로 번역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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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모든 것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붓다께서 세상에 출현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가장 바보같은 사람이라도 그 어떤 것도 영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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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들은 무상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에 들러붙으면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물론, 그 고통/괴로움의 일부는 좋아하는 것이 파괴되었을 때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심오한) 점은 그것을 우리가 좋아하는 식으로 유지하려는 우리의 행위가 깜마(kamma)를 생성하고 결국에는 나쁜 태어남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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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아비)상카-라를 생성하는 것이 어떻게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시작하여 (원하지 않는) 태어남으로 이어지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것은 아래 #10에서 논의하겠습니다.
숫따 센트럴 번역에 있는 명백한 모순
8. 그 구절의 다음 부분을 포함하면, 그것은 “웨다나- 아닛짜-. 야드 아닛짱 땅 둑캉(Vedanā aniccā. Yad aniccaṁ taṁ dukkhaṁ)”입니다. 잘못된 번역에 따르면 이것은 “느낌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고통/괴로움이다.”를 의미합니다. 위 링크에서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사이트에 있는 번역을 참조하세요.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사이트에서만이 아니라 많은 번역에 이러한 명백한 모순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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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의 결말은 괴로움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둑카 웨다나-(dukkha vedanā)의 결말은 오히려 심한 두통을 제거하는 경우와 같이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둑카 웨다나-(dukkha vedanā)가 무상한 것은 괴로움/고통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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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다나-(vedanā)가 무상하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괴로움/고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 그것은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9. 다시 말하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번역가들은 왜 그렇게 크게 잘못 번역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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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추측하건대, 그들은 숫따(sutta)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그것들이 말이 되는지 아닌지 신경도 쓰지 않고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와 같은 핵심 빠알리 낱말을 (무상과 무아로) ‘잘못된 영어 번역 표준지침’을 사용하여 단지 기계적으로 번역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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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같은 사람들은 “와하라까 테로님의 해석”에 대해 불만(항의)을 표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간단하고 명백한 문제는 ‘해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적어도 한번 설명되면) 자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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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그런 명백한 문제 여러 가지를 분명히 나타내 보였습니다. 이 심각한 문제는 언제 바르게 될까요? 어느 시점에 이르면,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희망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할 것이며, [그러면] 그들은 이 명백한 불일치(모순)들을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빠띳짜 사뭅빠-다는 아닛짜 특성이 어떻게 둑카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한다
10. (깜마의 결과, 특히 재탄생의 결과를 가질 수 있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의 모든 유형은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 아-넨자-비상카-라(āneñjābhisaṅkhāra)라는 3가지 범주에 속합니다. 그 모든 것들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를 통해 생성된 상카-라(saṅkhāra)이며, 이에 대해서는 [이 시리즈의] 이전 포스트인 ‘아닛짜 특성, 첫 번째 성스런 진리, 및 빠띳짜 사뭅빠-다’와 [리빙 담마 섹션]의 ‘상카-라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에서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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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해서,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지는)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 과정은 네 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 띨락카나(Tilakkhana),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이해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작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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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마(kamma)의 생성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시작됩니다. 따라서, 위에 언급된 2개의 포스트를 완전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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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도덕적이라고 해도, 그들은 네 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 띨락카나(Tilakkhana),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미래 고통을 멈추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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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이, 그런 유형의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를 생성하는 것은 ‘닛짜(nicca) 본질(특성)’에 대한 타고난 견해/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윗자-(avijj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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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매우 중요한 측면들을 이해하기 전에는 더 이상 진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망설이지 말고 문의하세요!
11. 다른 식으로 요점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지는)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는 네 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 띨락카나(Tilakkhana),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이해하지 못하는 누구에게나 작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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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 말하면, 이 세상의 참된 본질(특성)이 (‘닛짜_nicca’가 아니라) ‘아닛짜_anicca’라는 것을 이해할 때까지, 까-마 로까(kāma loka), 루빠 로까(rupa loka), 및 아루빠 로까(arupa loka)의 영역에 재탄생하는 과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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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번 논의했듯이, 문제는 그 재탄생들의 대부분이 (인간 영역 또는 그 위의) 더 높은 영역이 아니라 (4가지 가장 낮은 영역인) 아빠-야-(apāyā)에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12. 이것이 붓다께서 “아닛짱 카얏테나 둑캉 바얏테나 아낫따- 아사-라깟테나-띠(aniccaṁ khayaṭṭhena dukkhaṁ bhayaṭṭhena anattā asārakaṭṭhenāti)”라고 설명하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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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논의했듯이, 그것은 아닛짜 본질(anicca nature)이 있는 어떤 것에 들러 붙으면 그 사람의 도덕 성품(질)이 사라지는 것으로 이어지기만 할 것임을 의미합니다(‘아닛짱 카얏테나, aniccaṁ khayaṭṭh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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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결국 자신이 두려워할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둑캉 바얏테나, dukkhaṁ bhayaṭṭhena’). 그러므로, 그런 갈망은 결실이 없고 재탄생 과정에서 자신을 어찌할 수 없이 난감하게 합니다(‘아낫따- 아사-라깟테나-띠, anattā asārakaṭṭhen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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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 담마 ㅡ 성스런 진리, 빠띳짜 사뭅빠-다, 띨락카나’로 돌아간 [앞] 2개의 포스트에 있는 논의를 다시 읽어 보세요. 이 포스트들을 인쇄하여 참조하도록 준비해 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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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포스트에서는 아낫따(anatta) 특성(본질)이라는 세 번째 측면(‘아낫따- 아사-라깟테나, anattā asārakaṭṭhena’)에 대해 논의할 것입니다. 그것은 아닛짜(anicca) 특성/본질이 있는 것을 갈망하면 둑카(dukkha)로 이어지고, 따라서 그런 갈망(그리고 그런 갈망에 기초한 노력)은 헛되고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닙바-나 ㅡ 고통/괴로움이 없음
13.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장기적' 행복이나 '고통/괴로움 없음’의 관점에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과당 경쟁 사회(rat race)’에 들어가 삶을 즐기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돈을 벌려고 계속 열심히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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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육체가 사람을 정의(명확히 규정)한다고 믿는 사람들, 즉 정신 현상이 뇌에서 발생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뇌가 육체와 함께 죽으면, 그것이 '나'의 끝이라고 합니다. ‘사후(내생)’에 대해 걱정할 것은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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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극단은 영혼 또는 아트만(ātman)에 대한 잘못된 견해입니다. 영원한 행복 상태, 또는 지옥에서의 영구적 비참함/불행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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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중도(middle way)’를 가르치셨습니다. 유정체(생명체)는 그것이 되게 하는 원인과 조건에 따라 존재합니다. 원인과 조건으로 인한 존재의 발생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로 자세히 설명됩니다. (빠띳짜 사뭅빠-다는 통상적으로 ‘조건적 발생’으로 번역됩니다. 이런 번역은 원인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배제하므로 빠알리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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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 가지 견해 중 어느 것이 올바른지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항상 각 개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들여, 그 이론들 각각의 기초(바탕)를 주의깊게(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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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아무에게도 ‘맹신’적으로 붓다 담마를 받아들이도록 요청(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붓다께서는 빅쿠들에게 어떤 의심이나 까다로운 문제가 있으면 질문(의문)을 제기하기를 요청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Kālāma Sutta or Kesamutti Sutta (AN 3.65)’을 참조하세요.
스리랑카에서 제안된 가혹한 법률
14. 이 시리즈의 포스트에서는 오직 띠삐따까(Tipiṭaka)만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분석을 할 것입니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삐띠따까(Tipiṭaka)에는 어떤 모순도 없습니다. 그것들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논의할 의향이 있다면, 어떤 논리적 반대에 대해서도 기꺼이 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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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분명히 나타내 보였듯이, 산스크리트 문헌이나 붓다고사(Buddhaghosa)의 것과 같은 후기 주석(서)을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붓다고-사의 위숫디막가 ㅡ 집중된 분석’ 및 ‘붓다 담마의 보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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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두 번째 포스트인 ‘붓다 담마의 보존’에서는, 붓다께서 붓다 담마를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지 말라고 훈계(경고)하신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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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히도, 현재 스리랑카 정부에서는 그런 ‘산스크리트어에 기반한’ 해석을 시행(강요)하고 다른 해석을 금지하려고 하는 노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스리랑카에서는 인쇄된 출판물을 금지할 수 있겠지만, 이와 같은 웹사이트를 폐쇄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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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품고 있는 주된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시행(강요)을 감독하는 ‘위원회’의 사람들이 붓다 담마를 참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들은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를 얻었을까요? 도과를 얻지 못했다면, 그들에게는 그것을 시행(강요)할 권한이 실제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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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Mahāparinibbāna Sutta (DN 16)’ )에서 붓다께서는 필요하다면 누구든지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의 성취를 선포할 수 있도록 허용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런 성취를 얻었다면, 그들은 공신력을 구축하도록 그것을 공개(공표)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들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그러한 성취가 없다고 인정할 것입니다. 대신, 그들은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를 성취한 사람들에 의한 출판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라는 결론이 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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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침착한(신중한) 사람들이 이 근시안적인 과정을 멈추기를 바랍니다. ‘Proposed Tipitaka Conservation Bill in Sri Lanka’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