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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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카 ㅡ 괴로움에 대해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진리

 

원문: ‘Is There A Self?’ 섹션의 ‘Dukkha – Previously Unknown Truth About Suffering’ 포스트

 

불교에서 둑카(Dukkha)는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 즉 어떤 주어진 순간에 느껴진 고통/침울한 느낌에 대한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래 괴로움의 근본ㅇ 원인에 대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의 즐거운 경험조차 미래 괴로움을 영속화합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가르침입니다. 

 

2023년 9월 30일 작성

 

두카와 둑카 ㅡ 붓다 담마는 둑카에 대한 것이다

 

1. 이전 포스트인 ‘아닛짜 본질 ㅡ 세간적 즐거움을 쫓는 것은 무의미하다’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보통 사람(뿌툿자나)은 좋아하지 않는 감각 경험, 즉 침울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단 한가지 선택만 한다는 사실에 대해 논의했는데, 그들은 더 많은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 * 그러나, 거기서 나타내 보인 바와 같이, 붓다께서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선택을 설명하셨습니다. 우리의 오염된 마음 아래에는 ‘괴로움이 없는 순수한 마음’(pabhassara citta, 빠밧사라 찟따)이 있습니다. 세속적/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할 때, 우리 행위는 ‘순수한 마음’을 더욱 숨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 * 라-가(rāga)로 들러붙으면(‘sukha vedanā’에 기반하여 감각 입력을 좋아함), 그것을 더 얻기 위해 부도덕한 행위를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미래의 나쁜 결과, 즉 미래 괴로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부도덕한 행위가 없더라도, 들러붙는 그 자체가 까-마 로까(kāma loka, 욕계)에 묶여 있게 합니다. 

  • * 도사(dosa)(‘dukha vedanā’의 감각 입력을 싫어함)로 인한 들러붙음은 확실히 부도덕한 행위로 이어집니다.

  • * 라-가(rāga)와 도사(dosa)가 없더라도, 사람의 마음은 항상 모하(moha)(‘세상의 참된 본질’에 대한 무지)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중립, 즉 ‘아둑카마수카(adukkhamasukha)’ 웨다-나가 일어나는 대다수의 경우에도 세상에 대한 각자의 왜곡된 견해/인식(딧티 및 산냐- 위빨라사)에 기반한 미묘한 들러붙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처음에는 보기 어렵습니다.

 

2. 그러므로, 각 감각 사건은 사람을 ‘숨겨진 순수한 마음’, 즉 빠밧사라 찟따(pabhassara citta)에서 멀어지게 이끕니다. 그 매우 중요한 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위에서 언급한 포스트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 위의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보통 사람(뿌툿자나)은 항상 닙바-나(괴로움이 없는 순수한 마음)에서 멀어지는 하향 길에 있습니다. 빠알리어로, 이것을 ‘아-짜야가-미(ācayagāmi)’(‘aachayagaami’로 발음), 즉 ‘닙바-나에서 멀어짐’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윤회 폭류(빠알리어로 ‘ogha’)의 방향으로 가는 경향입니다.

  • * 세상의 아닛짜, 둑카, 및 아낫따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감각 입력에 들러붙음이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의지력만으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지혜(빤냐-)로 아닛짜, 둑카, 및 아낫짜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세상에 대한  잘못된 견해와 인식(딧티 및 산냐- 위빨라사)이 자동적으로 엷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것이 일어날 때, ‘폭류에 거슬러’ 가기 시작합니다.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 ㅡ 결정적 구절’의 #4를 참조하세요.

  • * 여기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현재 삶에서 느껴지는 괴로운 느낌(두카, dukha)를 제거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재탄생 과정의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을 끝내는 것(둑카 삿짜, Dukkha Sacca)에 관한 것임에 주목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첫번째 성스런 진리는 괴로움만 나타내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괴로움의 기원 ㅡ 둑카 삿짜

 

3. ‘Dukkha Sutta (SN 12.43)’는 “빅쿠들이여, 괴로움의 기원은 무엇인가? 짝쿠(cakkhu)와 루빠(rupa)에 의존하여 ‘눈 의식’이 일어난다. 그 루빠는 마음에 ‘오염된 가띠(saṅgati, saṅ gati)’를 촉발시킬 수 있다. 그것은 ‘마음이 만든 웨다나-’를 생성한다. ‘마음이 만든 웨다나-(vedanā)’에 기반하여 마음은 그 감각 입력에 들러붙는다(땅하-, taṇhā). 빅쿠들이여, 그것이 괴로움의 기원이다.”라고 합니다(빠알리 구절은 ‘참고 자료 1’에 있음).

 

  • * 그 구절은 다른 다섯 가지 감각에 대해 반복됩니다. 따라서, 붓다께서는 괴로움의 기원은 감각 입력에 대한 들러붙음(땅하-, taṇh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 그것을 다른 식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래 고통의 원인은 여섯 감각, 즉 눈, 귀, 혀, 코, 몸, 및 마음 중의 하나를 통해 들어오는 감각 입력과 함께 시작한다! 

  • * 필자가 그 구절을 기존 번역보다 다르게 번역한 이유가 분명해질 것입니다. 위 링크에서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의 두  번역을 참조하세요. 필자가 설명한 바와 같이, 어떤 숫따들은 문맥을 이해하지 않고 행해진 낱말별 직역이 아니라 상세한 설명을 필요합니다. 

 

괴로움의 끝 ㅡ 둑카 숫따

 

4. 그 다음, 숫따의 둘째 부분은, “빅쿠들이며, 이 괴로움을 어떻게 끝낼 수 있는가? 짝쿠(cakkhu)와 루빠(rupa) 간의 접촉으로, ‘눈 의식’이 일어난다. 그 감각 경험은 마음에 ‘오염된 가띠(saṅgati, saṅ gati)’를 촉발시킬 수 있다. 즉, 그것은 ‘마음이 만든 웨다나-’를 생성할 수 있다. ‘마음이 만든 느낌(vedanā)’에 기반하여 마음은 그 감각 입력에 들러붙을 수 있다(땅하-, taṇhā). 그 갈망이 남김없이 사라지고 그치면, (그런 경험을 추구하는) 우빠-다-나(upādāna)가 그치고; 우빠-다나가 그치면, 바와(bhava)가 그치고; 바와가 그치면 재탄생(자-띠, jāti)이 그치고; 자-띠가 그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불쾌함, 및 절망이 그친다. 그것이 괴로움의 전체 덩어리가 그침이다.”라고 합니다(빠알리 구절은 ‘참고 자료 2’에 있음).

 

  • * 그 갈망(땅하-, taṇhā)은 위 #3의 괴로움의 기원입니다. 갈망(땅하-)의 그침은 괴로움의 그침으로 이어집니다.

  • * 그것은 빠띳짜 사뭅빠-다11 단계(아윗자-, 상카-라, 윈냐-나, 나-마루빠, 살라-야따나, 팟사, 웨다나-, 땅하-, 우빠-다-나, 바와, 및 자-띠) 중에서  우빠-다나, 바와, 및 자-띠라는 3가지 단계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일까요?

  • * 그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귀중한 통찰력을 우리에게 줄 수 있습니다. 그 답은 우빠-다-나(upādāna)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에 있습니다.

  • * 땅하-와 우빠-다-나에 기반한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그 다른 항목들의 관련은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 ㅡ '빠띳짜 사뭅빠-다'의 결정적 단계’ 포스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기존 세계관과 붓다 담마 사이의 차이

 

5. 위 #1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붓다 담마를 접하지 못한 모든 사람은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들을 잃음 또는 괴로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하나의 길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더 많은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일시적 만족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결코 괴로움의 끝으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 * 위 서술은 아닛짜 본질의 한 측면입니다. ‘아닛짜 - 끊임없는 압박(삘-라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사람이 얼마나 많은 부를 가졌는지에 상관없이 ‘완전히 만족하는 마음 성향(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 가장 만족하는 활동을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불만족스럽게 됩니다. 가장 맛있는 식사를 하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없습니다. 그 똑같은 식사를 매일 하면, 질리게 되고 다른 어떤 것을 먹고 싶어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불충족’ 또는 ‘불만족’(빠알리어로, ‘pīḷana’)의 감각이 있습니다.

  • * 붓다께서는 그 문제의 근본은 추적할 수 없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 해온 라가(raga), 도사(dosa), 및 모하(moha)라고 이해하셨습니다. 그것들은 아누사야(anusaya), 즉 ‘숨겨진 오염’으로 우리와 함께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영구적인 해결책은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없애는 것입니다.

  • * 그것은 감각적 즐거움이 닛짜 본질인 마음 성향을 가진 보통 사람(뿌툿자나)의 그것과 정확히 반대방향의 접근입니다.(이 아닛짜 본질은 삘-라나 특성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는데, 이에 대해서는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아닛짜 - 진정한 의미(Anicca – True Meaning)’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그것들은 모두 이 세상에 내재된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감각적 즐거움을 구하는 것의 헛됨을 강조합니다.)

  • * 닛짜 본질이라는 그 잘못된 견해/인식은 여섯 감각을 통해 오는 감각 입력에 대해 땅하-(갈망/들러붙음)로 나타납니다.

 

여섯 가지 부류의 땅하-

 

6. ‘Vibhaṅga Sutta (SN 12.2)’는 ‘땅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Katamā ca, bhikkhave, taṇhā? Chayime, bhikkhave, taṇhākāyā—rūpataṇhā, saddataṇhā, gandhataṇhā, rasataṇhā, phoṭṭhabbataṇhā, dhammataṇhā.”

 

번역: “빅쿠들이여, 땅하-는 무엇인가? 여섯 가지 부류의 땅하-가 있다. 루-빠 땅하(rūpa taṇhā), 삿다 땅하-(sadda taṇhā), 간다 땅하-(gandha taṇhā), 라사 땅하-(rasa taṇhā), 폿탑바 땅하-(phoṭṭhabba taṇhā), 담마 땅하-(dhamma taṇhā)가 그것이다.”

 

  • * 위의 번역은 땅하-(taṇhā)를 갈망(craving)으로 번역하는 것에 유의하세요. 그러나, ‘땅하-(taṇhā)는 한 낱말의 영어로 번역될 수 없습니다. ‘땅하-’는 ‘아-람마나(대상)에 들러붙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아-람마나(ārammaṇa)는 여섯 감각 중의 하나를 통해 오는 ‘루빠(rupa)’입니다. 여섯 가지 유형의 루빠가 있는데, 루빠 루빠(시각 대상), 삿다 루빠(소리), 간다 루빠(냄새), 라사 루빠(맛), 폿탑바 루빠(감촉), 및 담마(메모리) 루빠가 그것입니다.

  • * 눈을 통해 오면, 그것은 광경(루빠 루빠)입니다. 각 사람은 그들이 갈망하는 광경에 들러붙습니다. 그 들러붙음은 좋아함, 즉 갈망 때문에 일어날 수 있지만, ‘화냄/증오’를 통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력적인 사람/사물 또는 싫어하는 사람/사물을 볼 때, 루-빠 땅하-(rūpa taṇhā)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핵심 포인트는 광경이 각자의 마음을 잡히게(갇히게) 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루빠 아-람마나(즉, 루빠-람마나, rupārammaṇa) 때문에 루-빠 땅하-(rūpa taṇhā)가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삿다-람마나(saddārammaṇa), 간다-람마나(gandhārammaṇa) 등에 대해서도 동일합니다.

 

업 에너지는 자와나 찟따에서 생성된다

 

7. 업 에너지는 자와나 찟따(javana citta)라는 특별한 유형의 찟따에서 생성됩니다. ‘citta’는 ‘chiththa’로 발음된다는 것에 유의하세요. 빠알리 낱말의 쓰기/읽기(발음)에 대해서는 ‘참고 자료 3’을 참조하세요.

 

  • * 모든 찟따(개략적으로 ‘생각’으로 번역됨)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는 쉽습니다. 어떤 것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에 대한 우리의 찟따는 약합니다. 반면에, 어떤 것에 대해 열정적이라면, 우리의 목소리 음색에서도 나타나는 강한 느낌을 가집니다. 그것은 찟따의 자와나 힘이 증가한 것을 나타냅니다.

  • * 예를 들어, 아침에 깨어나 비오는 날에 학교에 가는 아이는 일어나고 학교에 가는 것에 대해 열의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때에 그 아이의 찟따는 약합니다.

  • * 동일한 아이가 친구들과 놀 준비를 하고 있으면 그것에 열의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그 아이의 찟따는 강한 ‘자와나 힘’을 가질 것입니다.

  • * 그러나, 붓다 담마에서, 우리는 라-가(rāga), 도사(dosa), 및 모하(moha)와 함께 생성된 자와나 찟따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8. ‘생각이 에너지를 생성한다’는 개념은 획기적인 개념이며, 특히 서구 국가의 사람들에게 그렇습니다. 

 

  • * 그러나, 그것은 붓다 담마의 기본입니다. 마음은 이 세상 모든 것의 선구자입니다. ‘마노-뿝방가마- 담마-..’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것이 또한 붓다께서 “나의 가르침은 이 세상에 결코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위 #1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싫어하는 감각적 경험이나 침울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단 하나의 선택만 가지는데, 그들은 더 많은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 * 이해해야 할 결정적인 점은 세상 것들에 들러붙는 경향을 세상 것들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없을 때도, 사람들은 그런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들’을 피하는 것이 평화로운 마음으로 이어지고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요기(고행 수행자)들은 깊은 숲속에 들어가 감각적 즐거움을 멀리하고 자-나를 육성했습니다. 그러나, 매력적인 외부 루빠를 피하는 것은 단지 일시적(임시적) 해결입니다. 매력적인 여성을 보는 것만으로 자-나에 들어가는 능력을 잃게 할 수 있습니다.

  • * 세상 것들에 들러붙는 경향을 잃게 하는 영구적인 방법은 라-가(rāga), 도사(dosa), 및 모하(moha)가 함께 하는 그런 가띠(gati), 즉 그런 경향의 마음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자로부터 이 세상의 참된 근본 본질에 듣고(자-나또, jānato), 지혜로 그것을 이해한(passato) 후에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둑카 숫따(SN 12. 43)의 결정적 함의(내포 의미)

 

9. 여러분이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위 #3(둑카 숫따의 첫째 부분)에서, 붓다께서는 모든 미래 괴로움은 여섯 가지 감각을 통해 오는 감각 입력에 들러붙는 것을 멈춤으로서 멈춰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여섯 가지 감각은 눈, 귀, 코, 혀, 몸, 및 마음입니다.  필자는  ‘빠띳짜 사뭅빠-다 ㅡ 소개’ 포스트에서 이 점을 암시했습니다. 

 

  • * 그 다음, 둘째 부분에 그 점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위 #4의 구절로, 붓다께서는 감각적 즐거움을 갈망하는 땅하-가 그침으로써 미래 괴로움이 어떻게 그치는지를 간략히 설명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땅하-의 그침이 우빠-다-나, 바와, 및 자띠의 그침으로 이어지고, 따라서 모든 미래 괴로움이 그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 우리가 또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그 구절은  “salāyatana paccayā phassō”로 시작하여, “phassa paccayā vēdanā, vēdanā paccayā taṇhā, taṇhā paccayā upādāna, upādāna paccayā bhavō, bhava paccayā jāti, jāti paccayā jarā, marana, soka-paridēva-dukkha-dōmanassupāyasā sambhavan’ti.”를 통해 진행되는 빠띳짜 사뭅빠-다를 지칭합니다. 감각 입력은 여섯 감각 기능, 즉 살라-야따나(salāyatana)를 통해 옵니다. 

  • * 다음 포스트에서, 우리는 아닛짜둑카 특성이 어떻게 아낫따 특성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다음 단계인, 아낫따에 초점을 맞춰 이 논의를 진행하겠습니다. 따라서, 아낫따는 ‘자아(self)’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참고 자료

 

1. “Katamo ca, bhikkhave, dukkhassa samudayo? 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viññāṇaṁ. Tiṇṇaṁ saṅgati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paccayā taṇhā. Ayaṁ kho, bhikkhave, dukkhassa samudayo.”

 

2. “Katamo ca, bhikkhave, dukkhassa atthaṅgamo? 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viññāṇaṁ. Tiṇṇaṁ saṅgati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paccayā taṇhā. Tassāyeva taṇhāya asesavirāganirodhā upādānanirodho; upādānanirodhā bhavanirodho; bhavanirodhā jātinirodho; jātinirodhā jarāmaraṇa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nirujjh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i. Ayaṁ kho, bhikkhave, dukkhassa atthaṅgamo.”

 

3. 수많은 년 전(1800년대)에 채택된 독특한 ‘띠삐따까 영어’ 표기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초기 유럽 학자들이 채택한 '띠삐따까 영어' 규약 ㅡ 제1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띠삐따까(Tipiṭaka)의 영어 버전은 1900년대 초에 이 형태로 쓰여졌고, 그것은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사이트를 포함하여, 대부분 영어 웹 사이트에서 오늘날 사용되는 버전입니다. 빠알리 낱말을 정확하게 발음하는 법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Pāli Glossary – (A-K)”도 또한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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