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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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와 닙바-나 단계 간의 차이 


원문: Buddha Dhamma 섹션의 ‘Difference Between Jhana and Stages of Nibbana’ 포스트

2017년 3월 24일; 2018년 4월 28일 개정


1. 자-나(jhāna)와 막가 팔라(magga phala, 닙바-나의 네 단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오해가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나’가 ‘막가 팔라’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고, 다른 이들은 ‘자-나’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막가 팔라’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습니다.


  • * 첫 번째는 잘못되었고, 두 번째는 아리야 자-나(Ariya jhāna)에 도달한 경우라면 바릅니다.

  • * 자-나(jhāna)와 막가 팔라(magga phala)의 의미와 ‘아-나리야 자-나(anāriya  jhāna)’와 ‘아리야 자-나(Ariya jhāna)’의 차이점을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2. 탐함과 미워함과 (이 세상의 본질, 즉 띨락카나_Tilakkhana_삼법인에 대한) 미혹함을 영구적으로 제거하여 ‘막가 팔라(닙바-나의 여러 단계)’를 달성합니다. 이것은 “라-각카요- 닙바-난, 도-삭카요- 닙바-난, 모-학카요- 닙바-난(rāgakkhayō Nibbānan, dōsakkhayō Nibbānan, mōhakkhayō Nibbānan)”으로 설해져 있습니다.


  • * 이것은 닙바-나(Nibbāna)를 달성하기 위해 ‘7가지 아누사야(anusaya)나 이와 동등한 10가지 상요자나(samyojana)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으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서 2가지 아누사야와 3가지 상요자나를 제거합니다. ‘Conditions for the Four Stages of Nibban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가장 흔히 사용되는 평가는 소따-빤나 성자는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 위찌낏짜-(vicikiccā) 및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amasa)라는 3가지 상요자나를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 * 그래서, 막가 팔라(magga phala)를 달성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첫째 단계는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의 정확한 해석을 접하는 것입니다. ‘아닛짜, 둑카, 아낫따 – 잘못된 해석’을 참조하세요.

  • * 둘째 단계는 물론 아닛짜(그리고 둑카와 아낫따) 산냐-(saññā)를 어느 정도 파악하는 것입니다. ‘리빙 담마’ 섹션 중 ‘산냐-(지각)는 무엇인가?’ 서브 섹션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3. 자-나(jhāna)(때로는 ‘댜-나(dyāna)’라고도 씀)는 행복한 육체적, 정신적 감각을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염이 없는’ 생각에 의해 유발된 ‘육체와 신경계의 정화’로 인해 일어납니다. 이에 대해서는 ‘선정 경험에 대한 상세 설명 - 사-만냐팔라 숫따(DN 2)’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자-나(jhāna)는 루-빠-와짜라(rūpāvacara)와 아루-빠-와짜라(arūpāvacara) 영역에 해당하는 정신 상태입니다. 그것들은 여전히 31영역의 ‘이 세상’에 속해 있습니다. 인간 영역이 동물 영역보다 ‘일반적으로 더 평화로운’ 것처럼 자-나 상태는 인간 영역보다 ‘일반적으로 더 평화로운’ 것입니다.

  • * 우리 모두는 31영역의 대부분(아나-가-미 성자들에게 예약된 영역을 제외)에 셀 수 없이 많이 태어 났으며, 따라서 이전의 삶에서 셀 수 없이 많이 자-나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 * 자-나의 이 두 번째 현상(해당 영역에 태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자-나 상태에 도달하는 현상)도 현대 과학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난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자-나 현상을 설명할 수 없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나 상태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에, 머지 않아 이것을 환각이라고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4. 자-나(jhāna)를 기르는 데는 두 가지 주요 요인이 작용합니다.


  • * 최근의 전생에서 자-나(jhāna)를 길렀던 이들은 아-나리아 자-나(세간 선정)에 매우 빠르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무런 노력없이 단지 침대에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자-나 상태에 들어갈 수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그런데, 이것은 붓다 담마를 접했든 접하지 못했든 도덕적인 삶을 사는 이들은 모두 가능합니다).

  • * 두 번째 요인은 아래에서 논의하는 바와 같이, ‘육체 정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외에, 신경계가 있는 실제 육체가 [정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5. 필자의 성스런 스승이신 고 와하라카 테로(late Waharaka Thero)께서는 아래와 같은 비유를 들어 이 ‘정화 과정”을 설명하시고 ‘자-나(jhāna)’와 ‘막가 팔라(magga phala) 간의 주요 차이점을 설명하셨습니다.


  • * 내장 기름통에 심지가 담겨 외부로 나와 있고 ‘유리 봉입용기’가 있는 구 오일 랜턴(등불)을 보았거나 적어도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 * 기름이 오염되어 있으면 ‘유리 봉입용기’가 빠르게(쉽게) 더러워집니다. 이와 같은 식으로, 오염된 생각은 육체가 오염되는 결과로 이끕니다.

  • * 육체적 고통과 질병까지 포함한 많은 신체 질환은 마음을 깨끗하게 함으로써 감소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처음에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해 발생하며, 더 강한 것은 이 과정이 극복될 수 없습니다. ‘What is Kamma? – Is Everything Determined by Kamma?’ 포스트를 보세요.


6. 위 비유에서, 생각(마음)은 타오르는 심지에, 육체는 유리 봉입용기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생각(마음)이 오염될 때, 육체도 오염되어 불편함과 심지어 질병까지 유발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 그 원인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 * 램프가 다시 빛나게 할 수 있도록, 즉  램프 몸체를 다시 깨끗하게 하도록 유리 봉입용기를 꺼내어 세척할 필요가 있습니다.

  • * 이에 반하여, 우리 몸이 깨끗하게 될 수 있는 내장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 * 이 내장 메커니즘은 찟따자 까야(cittaja kaya, 생각)입니다. 기본 메커니즘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의 생각(찟따자 까야, cittaja kaya)는 유뚜자 까야(utuja kaya)라고 하는 좋거나 나쁜 에너지 장(energy field)을 생성합니다. 이것들은 실제로 숫다쉬따까(suddhashtaka) 단계 아래에 있는 매우 미세한 루빠(rupa)이며, 물리학의 전자기파와 유사합니다.

  • *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와 관련된 나쁜 생각은 육체의 오염을 초래하고, 좋은 생각은 그런 오염을 정화할 수 있는 있는 유투자 까야(utuja kaya)를 생성합니다.

  • * 이 용어들을 더 알 필요가 있으면, 우측 상단에 있는 검색창을 이용하여 관련된 포스트를 더 찾아 볼 수 있습니다.


7. 이 유투자 까야(utuja kaya)(실제로 에너지 장)는 우리 육체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한 사람이나 분노 또는 탐욕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사소한 병이나 심각한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으며, 즐거운 마음 가짐의 사람들은 비교적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 이 효과는 ‘도덕적 생활’로 인해 일어나는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를 통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에서 멀어질수록 더 행복해지고 몸 자체에서 ‘수카(sukha)’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빠르지는 않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히 일어납니다.

  • * 띨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함으로써 훨씬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 차이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행함으로써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의 결실없음(헛됨)과 위험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대부분 멀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8. 필자는 ‘리빙 담마’ 섹션에서 우리 생각이 어떻게 웰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기초부터 시작하여 논의했습니다. 그 기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더 깊은 개념을 이해하고 그 섹션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아나빠나(Anapana)와 사띠빳타나(Satipattana) 바와나(bhavana, 수행)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 * 오염된 생각이 짧은 시간 동안(법문을 듣하거나 담마 내용을 읽는 동안)이라도 억압될 때, 마음이 즐거워지고 짧은 시간 동안 사마디(samadhi)를 얻을 수 있습니다(따당가 빠하-나, tadanga pahāna).

  • * 그런 활동을 하는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이 차분한 마음가짐(사마디, samadhi)의 지속 시간은 길어질 수 있고 몇 주간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윅캄바나 빠하-나, vikkambana pahāna). 세가지 유형의 빠하나(pahāna)는 ‘이 삶의 괴로움 - 정신적 오염물의 역할’ 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 * 그것은 아직 자-나(jhāna)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마타(samatha) 또는 위빳사나(vipassana) 명상으로 노력을 더해가면 자-나(jhāna)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 * 어떤 사람들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최근의 전생에 자-나(jhāna)를 길렀기 때문에 자-나를 얻는 것이 더 쉽습니다. 


9.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의 힘은 사마디(samadhi)에 있을 때 증가하고, 자-나(jhāna)에 이르면 더욱 커집니다. ‘육체의 정화 효과’가 강화되어, 환희의 얼굴이 되고 몸에 수카(sukha, 유쾌한 느낌)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 * 이것은 더러워진 유리 봉입용기를 자동으로 청소하는 ‘고출력 레이저 광’을 생성하는 오일 램프의 심지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 * ‘끼라나(kirana)’(또는 물리학의 전자기파)라고도 불리는 그 밝은 ‘유투자 까야(utuja kaya)’는 우리 몸에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나쁜 집적물”을 태우고 신경계를 바로잡아 줄 수 있습니다.

  • * 이것은 길(팔정도)을 가기 시작하는 자가 마음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첫 번째로 확인하는 경험입니다. [이를 통해] 실제로 몸은 자신의 생각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10. 이 모든 것은 빤짜니와라나(pancanivarana, 5가지 장애)를 단지 오랫동안 억누르는 것만으로도 가능합니다. ‘Key to Calming the Mind – The Five Hindrances’ 를 참조하세요.


  • * 붓다 출원 전에도 고대 요기(yogi, 금욕 수행자)들은 오염된 생각(빤짜니와라나, 5가지 장애)을 억눌려 자-나(jhāna)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개 숲이나 외딴 곳에서 주로 감각적인 대상을 멀리함으로써 이것(자-나에 도달)을 했습니다.

  • * 사실, 그들은 강력한 신통력을 기를 수 있었고 심지어 하늘을 날 수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4번째 아나-리야 자-나(the fourth anāriya jhāna, 제4 세간 자-나)에 이른 자들도 주변에 [나타나는] ‘흰 빛’을 경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 * 자신의 마음이 탐욕스럽고 증오하는 생각에서 멀어져 있을 수 있는 한, 그런 사마디(samadhi)와 자-나(jhāna)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습니다.

  • * 이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아나-리야(anāriya, 세간) 명상회(호흡 명상)에 가서 수행하는 것으로도 한번에 며칠 동안 평화로운 느낌을 얻을 수 있는지 그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와서 평소의 생활 방식으로 돌아가면 [그 평화로운 상태는] 서서히 사라집니다.


11. 문제는 이러한 효과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아나-리야 자-나(anāriya jhāna)로서는 일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수행자들은 탐함과 미워함에 들러붙는 근본 원인을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들(탐함과 미워함)은 아누사야/상요자나(anusaya/samyojana)로서 깊은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12. 이제 더 근접하여 아나-리아 자-나(anāriya jhāna)와 아리야 자-나(Ariya jhāna)의 차이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 * 주된 차이는 아리야 자-나(Ariya jhāna)는 영구적이라는 것이며, 그 이유는 아리야 자-나가 아누사야/상요자나(anusaya/samyojana)를 단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제거를 통해 얻어진다는 것입니다. 

  • * 닙바-나(Nibbāna)의 수다원 단계에 이를 때 지혜를 통해 한 번 제거되면, 아누사야/상요자나(anusaya/samyojana)의 일부는 마음에서 영구적으로 제거됩니다(웃쩨다 빠하-나, ucceda pahāna).

  • * 그 후에, 아무리 강한 매력적/증오스런 감각 입력이 들어온다고 해도, 강하게 오염된 생각(마음)은 수다원의 마음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Akusala Citta – How a Sotapanna Avoids Apayagami Citta’ 포스트와, ‘세 단계 실천’ 섹션의 ‘Sotapanna Stage of Nibbana’ 서브 섹션에 있는 다른 관련된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13. 퍼즐의 나머지 열쇠는 자-나(jhāna)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마디(samadhi)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 각자의 가띠(gathi, 성격)와 능력에 따라 삿따(saddha), 위리야(viriya), 사마디(samadhi), 사띠(sati), 빤냐(panna)가 다른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띠삐따까(Tipitaka, 삼장)의 숫따(sutta)는 그에 기초하여 5가지의 니까야(Nikaya)로 분리되어 있으므로 각자는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숫따(sutta)로 공부할 수 있습니다. ‘Nikaya in the Sutta Pitak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빤냐 인드리야(panna indriya)가 지배적인 사람은 세부 사항에 대한 설명이 없이 그리고 자-나(jhāna)를 거치지 않고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 * 다른 이들은 자-나(jhāna)를 거쳐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것이 아니지만, 상상은 되는 것입니다.


14. 요점은 자-나(jhāna)가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를 얻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상당히 짧은 시간 내에 둘 다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리야 자-나(Ariya jhāna)에는 적어도 수다원 단계의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를 성취한 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 * 그 이유는 12번에 언급된 아리야 자-나(Ariya jhāna)에 필요한 웃쩨다 빠하-나(ucceda pahāna)가 띨락카나(Tilakkhana, 삼법인)를 이해하여 소따빤나(So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 일반적으로 자신이 본 닙바-나(Nibbāna) 단계)와 그렇게 경험한 ‘쿨링 다운(cooling down)’을  회상함으로써 아리야 자-나(Ariya jhāna)에 도달합니다. ‘인간 마음의 힘 - 아리야 자-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5. 빤냐(panna)의 레벨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따당가 빠하-나(tadanga pahāna) (위 8 번 참조)라고 하는 간략한 사마디(samadhi) 상태로도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하기에 충분합니다. 잘 알려진 예는 단 한 구절만 듣고도 아라한 과(Arahantship)을 달성한 바히야 다루치리야(Bahiya Daruchiriya)입니다.


  • * 그리고, 주로 붓다께서 설하시는 법문을 듣는 동안에 윅캄바나 빠하-나(vikkambana pahāna)(위의 8번 및 10번 참조)를 통해 소따빤나(So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 * 예를 들어, 알라와까(Alavaka) 약사(yaksa, 야차)는 붓다께 위협하고 법문을 듣기 위해 앉아 법문 중에 소따빤나(수다원)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약사(yaksa, 야차)는 니라야 약사(niraya yaksa, 지옥의 야차)가 아니라 데와 약사(deva yaksa, 천상의 야차)입니다. 앙굴리말라(Angulimala)는 부처님을 죽이려고 뒤쫓았으나, 곧바로 소따빤나(수다원)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 * 세가지 유형의 빠하-나(pahāna)에 대한 더 많은 내용은 '낄레사(정신적 오염물)란 무엇인가? -  쩨따시까에 연결’ 포스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16. 따라서, 어떤 아나-리야 자-나(anāriya jhāna)나 아리야 자-나(Ariya jhāna)가 없이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에 이른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 * 자-나(jhāna) 없이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에 이른 사람들은 몸으로 느끼는 자-나 수카(jhānic sukha)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몸을 더 오염시키는 ‘나쁜 생각(나쁜 마음)’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구 오염물을 정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선정의 자와나 찟따(Jhanic javana citta)는 아나-리야 자-나(anāriya jhāna)에서도 몸에 있는 오염물을 깨끗이 할 수 있는 레이저 빔과 같으며, 보통 찟따 위티(citta vithi)에서 계속되는 단지 7개의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와 비교하여 오랫동안 계속 진행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Citta Vithi – Processing of Sense Inputs’ 포스트의 ‘마노드와라 찟따 위티(Manodvara Citta Vithi)’의 4번을 참조하세요.

  • * 위 5번의 비유에서, 이것은 더 이상 연기(smoke)를 방출하지 않는 심지이지만 유리 봉입용기는 아직 청소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 * 물론, 막가 팔라에 도달한 사람은 아리야 자-나(Ariya jhāna)를 얻기가 더 쉬울 것이며, 그들은 아나-리야 자-나를 얻지 않을 것입니다. 


17. 마지막으로, 위 논의로부터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이르렀는지를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 위찌낏짜(vicikicca), 및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amasa)라는 3가지 상요자나(samyojana, sanyojana)를 제거했는지 여부를 보는 것입니다.Sakkaya Ditthi is Personality (Me) View?’ 포스트를 보세요.


  • *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알 수 없고, 자신만이 그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18. 2018년 4월 28일: 필자는 자-나(jhāna )가 막가 팔라(magga phala)를 얻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를 보여주는 와하라까 테로님의 법문을 발견했습니다(아래 링크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s://puredhamma.net/wp-content/uploads/CD5-2-Are-Jhana-Required-for-Magga-Phala.mp3


  • * 테로께서 말씀하신 요점은 우리는 인간계에 태어난 자-티 소따빤나(jāti Sotapanna, 선천적 수다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자-나(jhāna)가 필요하다면, 그 사람(자-띠 소따빤나 성자)은 인간계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나(jhāna)에 해당하는 브라흐마 영역에 태어날 것입니다.


숫따(sutta)를 인용한 더 많은 내용은 ‘리빙 담마’ 섹션의 ‘사마-디, 자-나(댜-나), 막가 팔라’ 서브 섹션에 있는 포스트들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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