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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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까-야 딧티는 '개성(나)'이라는 견해인가?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Sakkaya Diṭṭhi is Personality (Me) View?’ 포스트

- 2017년 3월 10일 작성; 2018년 1월 20일 개정; 2019년 6월 1일 개정; 2019년 10월 3일 개정; 2020년 7월 24일 개정

 

이 포스트에서는 현재 많은 영어 간행물(테라와다 문헌 포함)에서 두 가지 핵심 개념인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 ) 및 상요-자나(samyōjana)에  대한 해석이 왜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논의할 것입니다.

 

잘못된 견해와 잘못된 인식의 차이

 

1. 대부분의 문헌은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자아 환상’ 또는 ‘나라는 믿음’, 즉 ‘자아 또는 내가 존재한다는 믿음’이라고 설명합니다(‘sakkāya diṭṭhi’를 구글로 검색하여 볼 수 있음). 여기서 ‘잘못된 견해’와 ‘잘못된 인식’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소따-빤나(Sotāpanna) 성자는 잘못된 견해(딧티, diṭṭhi)는 제거했지만, 잘못된 인식(산냐-, saññā)은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 * 그러나 ‘자아’(또는 ‘아-뜨마’라고 하는 ‘영혼’)에 대한 이 인식(산냐-, saññā)은 아래에서 논의하는 것처럼 띠삐따까(Tipiṭaka)에 따른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이어온 샨나-(saññā, 인식)입니다. 산냐-(saññā)에 대한 논의는 ‘산냐-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로 시작되는 부분을 참조하세요.

  • * ‘자아’ 또는 ‘나’라는 선천적인 감각에 대한 뿌리깊은 생각은 마-나 제따시까(māna cetasika)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 * 무례한 대우를 받고 기분이 상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아직 마-나(māna)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아나-가-미(Anāgāmi) 성자도 자신이 나쁜 대우를 받는다고 인식한다면 다소 동요될 수 있습니다. 아스미 마-나( asmi māna)라고 하는 마-나(māna)의 요소는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마-나(māna)는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가 아니라 아라한뜨(Arahant)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소따-빤나 성자는 ‘불변하는 자아’에 대한 잘못된 견해만 제거한다

 

2.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서 제거되는 것은, 자신과 관련된 ‘영혼’과 같이 변하지 않고 영구적인 어떤 것이 있다는 잘못된 견해(딧티, diṭṭhi)입니다. 그것은 단지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만으로(비록 그것이 필수적이지만) 지속적인(영구적인) 행복이 달성될 수 있다는 믿음과 일치합니다.

 

  • * 유정체와 관련된 (영혼이나 아트마 같은)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때,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라는 이 잘못된 견해가 사라집니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따라 생명 흐름이 진행됩니다. ‘아낫따락카나 숫따 내의 아낫따-, 영혼이나 아-뜨마 없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서 ‘자아(자기)’에 대한 인식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위험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단계에서 가능하지 않는 것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초등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따려고 애쓰는 아이와 같습니다.

 

소따-빤나 단계 - 4가지 조건

 

3. ‘소따-빤나 막가/팔라를 얻기 위한 4가지 조건’ 포스트에서, 우리는 닙바-나(Nibbāna)의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를 얻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4가지 조건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 * 그 조건이 충족되면, 3가지 상요-자나(정신적 족쇄)를 부수고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영구적으로 해방됩니다. 상요-자나(samyōjana, sanyōjana 또는 sanyōga)라는 빠알리 용어는 대개 ‘족쇄(속박)’로 번역됩니다. 예로서, 위키페디아(Wikipedia) 기사 ‘Fetter (Buddhism)’ 를 참조하세요.

  • * 그러나, 많은 영어 간행물(책, 인터넷 게시물들)처럼, 위 위키페디아 기사도 상요-자나(samyōjana)를 잘못 설명하고 있습니다.

 

4. 우리는 10가지 정신적 밧줄(사슬), 즉 상요-자나(samyōjana)로 이 31영역 세상에 묶여 있습니다. 그것은 밧줄로 기둥에 묶인 자로 시각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31 영역에 강제로 묶는 자는 없습니다.

 

  • * 상요-자나(sanyōjana) 또는 상요-가(sanyōga)는 산(san)을 통해 묶인 것을 의미합니다. 상요-가(sanyōga)는 ‘산(san)’ +  ‘요-가(yōga)’로 합성된 말이며, 여기서 ‘요-가(yōga)’는 묶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우리는 자발적으로 마음으로 이 세상에 자신을 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31영역 중 어딘가에서 영구적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삶 자체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늙고 무력하게 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숙고하기 위해 멈추지도(시간을 내지도) 않습니다. 시간을 내어 관찰해 본다면, 유명하고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가 늙어 장애인이 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예가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3가지 상요-자나를 제거함

 

5. 소따-빤나(Sotāpanna) 성자는 그 10가지 상요-자나(sanyōjanā, 족쇄) 중 3가지를 끊고 사악처(아빠-야-,  apāyā)에서 영구적으로 해방됩니다. 소따-빤나 성자는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즉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를 얻음으로써 이렇게 해방됩니다.

 

핵심어인 삼마-(sammā)‘산(san) + 마-(mā)’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그 뜻은 ‘산(san)’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 * “마- 호-띠 자-띠, 자-띠( hōti jāti, jāti)”는 “내가 계속 태어나지 않기를(태어나는 것에서 해방되기를)”을 의미합니다.

  • * “마- 메- 발-라 사마-가모-( mē bāla samāgamō)”는 “내가 담마를 모르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기를(어울리는 것에서 해방되기를)”을 의미합니다.

  • * 따라서,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는 잘못된 견해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소따-빤나 단계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를 얻고,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서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를 완성합니다. 

 

이 세상의 결실없음/위험함(띨락카나)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

 

6. 마음 속의 그 묶임(족쇄)을 끊어야 합니다. 이 31영역 세상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 즉 ‘산(san)에서 자유롭게 되는(해방되는) 바른 견해’를 얻습니다.

 

아닛짜(anicca) -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장기적으로 볼 때 영구적인 행복을 가져올 수 없다.

 

둑카(dukkha) -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재탄생 과정(윤회)에 남아 있다면 즐거움보다는 훨씬 더 많은 괴로움을 받게 되어 있다.

 

아낫따(anatta) -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 본질적인 것’을 얻기 위한 이 분투는 정말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분투는 단지 환상일 뿐이다.

 

 

2가지 팔정도

 

7. 두 가지 유형의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로 2가지 팔정도가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Buddha Dhamma – In a Chart’와 ‘Maha Chattarisaka Sutta (Discourse on the Great Forty)’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우선 오계에 새겨진 부도덕한 행위를 멀리함으로써 ‘도덕적인 마음가짐(심적 경향)에 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간적(평범한) 삼마- 딧티(mundane  sammā diṭṭhi)’를 얻는 것입니다.

  • * 그러면, 자신의 마음은 이 세상의 세가지 특성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tta)를 이해하기에 충분하도록 깨끗해집니다. 

  • * 이 ‘로-꿋따라 삼마- 딧티(lōkuttara sammā diṭṭhi, 출세간적 삼마- 딧티)’를 어느 정도 얻을 때, 성스런 팔정도를 정말로 시작합니다. ‘아닛짜, 둑카, 아낫따로 시작하여 성스런 팔정도를 육성하는 방법’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많은 사람들은 이 구분을 인식하기가 어렵습니다. 필자는 그들에게 ‘리빙 담마’ 섹션의 첫 부분 서브섹션 몇 개를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8. 이제 로-꿋따라 삼마- 딧티(lōkuttara sammā diṭṭhi)를 얻는 것이 어떻게 재탄생 과정에 묶는 10가지 정신적 사슬(또는 족쇄) 중 3가지를 제거하게 되는지에 대해 논의해 봅시다. 특히, [이 3가지의 제거는] 아빠-야-(apāyā)에서 겪는 가장 심한 유형의 고통(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 * 그 3가지 상요-자나(samyōjana)는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 sathkāya diṭṭhi 라고도 함), 위찌낏짜-(vicikiccā) 및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āmāsa)입니다.

 

2가지 지배적인 주된 잘못된 견해

 

9. 붓다께서는 브라흐마잘-라 숫따(Brahmajāla Sutta)에서 그 당시 존재했던 62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diṭṭhi)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들 모두를 언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날 널리 퍼져있는 잘못된 견해는 단지 두 가지뿐이기 때문입니다. 

 

  • * (창조자에 기반을 둔 종교의) 종교인은 ‘영구적 영혼’이 있고, 이 생이 끝나면 천국이나 지옥에 태어나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스마(āthma)’ 또는 ‘자아(self)’에 대한 이 개념은 삿사따 딧티(sassata diṭṭhi)였습니다.

  • * 오늘날 과학은 우리 생각이 뇌에서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즉, 우리의 ‘정신적 몸’이 ‘물질적 몸’과 같다고 믿습니다(‘나는 내 몸이다’고 믿는 것). 그래서 우리가 죽을 때, 그것은 물질적 몸이 먼지로 흩어지기 때문에 이야기의 끝입니다. 그래서 그들[유물론적 과학자]은 ‘육체가 살아있는 동안 삶을 즐겨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웃쩨-다 딧티(uccēda diṭṭhi) 였으며, 붓다께서도 거부하신 것이며, ‘삶은 물질적 몸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 * 따라서 붓다께서는 ‘자아(self)가 존재한다’와 ‘자아(self)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견해를 모두 거부하셨습니다. 원인들로 인해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고, 그 원인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설명된 원인과 결과의 원리입니다. 존재(유정체)는 아윗짜-(avijjā)와 땅하-(taṇhā) 때문에 존재하며, 그것들이 그칠 때 그들(유정체)도 그치고 영구적 행복에 이릅니다(즉, ‘닙바-나’에 이릅니다).

 

10. 그 종교인들조차 ‘나는 나의 육체(물질적 몸)다’는 웃쩨-다 딧티(uccēda diṭṭhi)의 일부를 무의식적으로 가질 수 있습니다.

 

  • * 점점 물질(만능)주의적으로 변해가는 우리 사회는 텔레비젼과 영화를 통해 항상 이 이야기, 즉 내 몸이 바로 나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강건하게 보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에 힘을 실어 줍니다.

  • * 다시 말해서, 현 시대에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는 ‘나는 나의 육체(물질적 몸)다’라는 견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내 몸에 즐거운 감각 입력을 많이 공급함으로써 행복을 이룰 수 있다’는 인식으로 이어집니다.

 

삭까-야(또는 사쓰까-야)의 의미

 

11. ‘사스(sath)’는 ‘좋은’ 또는 ‘결실많은’을  의미합니다.

 

  • *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까-야(kāya)는 자신의 행동이나 자신의 몸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Kāyānupassanā – Section on Postures (Iriyapathapabb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Sakkāya diṭṭhi는 주로 다음 2가지 견해를 포함합니다. (i) ‘나는 나의 몸이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그것을 아름답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ii) 나는 이 세상에서 부지런히 좋은 것을 추구함으로써 행복을 이룰 수 있다.

  • * 물론 이 견해는 닛짜(nicca) 인식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좋아하는 대로(icca, 잇짜) 세상 것들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Sakkāya Diṭṭhi – “Me and Mine” View’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삭까-야 딧티’의 제거

 

12. 그러므로 현 시대에 사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없애려면, 이 육체는 약 100년 동안만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 * 그렇기 때문에 수 천년 동안 살 수 있는 우리의 정신적 몸인 ‘간답바(gandhabba)’의 역할을 깨닫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그 간답바는 그 자체가 죽는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 죽음-재생연결)’ 순간에 우리가 새로운 존재(바와, bhava)를 움켜잡을 때, [이전 간답바는] 사라집니다.

  • * 우리의 다음 존재는 육체(물질적 몸)를 얼마나 잘 유지하는지(육체를 건강하게 유지할 필요는 있음)가 아니라, ‘정신적 몸’을 얼마나 잘 향상시키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담마(dhamma)을 배우고 그 담마(dhamma)에 따라 살면, 정신적 몸의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 * 간답바에 대해서는 ‘리빙 담마’ 섹션의 ‘멘탈 바디- 간답바’ 서브 섹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설명은 ‘아비담마’ 섹션의 ‘Gandhabba (Manomaya Kaya’ 서브섹션에 있습니다. 

 

13. 두 번째 견해는 위 #10에 있는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와 관련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부지런히 좋은 것을 추구함으로써 행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는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해야만 제거할 수 있습니다.

 

  • * ‘주요 담마 개념’ 섹션에 있는 ‘아닛짜, 둑카, 아낫따’ 서브섹션 부분을 참조하세요. 

  • * 아닛짜(anicca)를 이해할 때,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재탄생 과정(윤회)에 머무르는 것은 결국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비록 한바탕의 행복이 있다고 해도, 그 행복은 장기적으로 특히 아빠-야(apāyā)에 태어나 고통을 받게 되면 무의미합니다.

 

쭐-라웨달라 숫따(MN 44)

 

14.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에 대한 전체 설명은 ‘Cūḷavedalla Sutta (MN 44)’에 주어져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 경에서 담마디나 존자께서는 자신의 전 남편인 위사까에게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까탕 빠나-이예, 삭까-야딧티 호띠-”띠? “이다-우소 위사-카, 앗수따와- 뿌툿자노, 아리야-낭 아닷사-위- 아리야담맛사 아꼬위도 아리야담메 아위니-또, 삽뿌리사-낭 아닷사-위- 삽뿌리사담맛사 아꼬위도 삽뿌리사담메 아위니-또, 루-빵 앗따또 사마누빳사띠, 루-빠완땅 와- 앗따-낭, 앗따니 와- 루-빵, 루-빠스밍 와- 앗따-낭. 웨다낭 … 뻬 … 산냥 … 상카-레 … 윈냐-낭 앗따또 사마누빳사띠, 윈냐-나완땅 와- 앗따-낭,  앗따니 와- 윈냐-낭, 윈냐-나스밍 와- 앗따-낭. 에왕 코, 아-우소 위사-카, 삭까-야딧티 호띠-”띠.

(“..Kathaṃ panāyye, sakkāyadiṭṭhi hotī”ti? “Idhāvuso visākha, assutavā puthujjano, ariyānaṃ adassāvī ariyadhammassa akovido ariyadhamme avinīto, sappurisānaṃ adassāvī sappurisadhammassa akovido sappurisadhamme avinīto, rūpaṃ attato samanupassati, rūpavantaṃ vā attānaṃ, attani vā rūpaṃ, rūpasmiṃ vā attānaṃ. Vedanaṃ … pe … saññaṃ … saṅkhāre … viññāṇaṃ attato samanupassati, viññāṇavantaṃ vā attānaṃ, attani v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smiṃ vā attānaṃ. Evaṃ kho, āvuso visākha, sakkāyadiṭṭhi hotī”ti.)

 

  • * 먼저, 위의 구절에서 ‘앗따(atta)’가 관습적인 의미에서 ‘나(I)’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 * ‘나는 내 몸이다’에 관해 논의한 내용은 위 인용문에서 굵은 글씨로 된 부분으로 언급되어 있으며, “나는 내 몸이고, 내 몸은 나이며, 내 몸은 나 안에 있고, 나는 내 몸안에 있다”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아낫따락카나 숫따 내의 아낫따-, 영혼이나 아-뜨마 없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따라서 각자는 자신의 루빡칸다(rupakkhandha, 물질 무더기)를 4가지 면에서 자신의 앗따-(attā)로 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 * 같은 방식으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웨다나(vedana),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및 윈냐-나(viññāna)를 위와 같이 네 가지 면에서 자기 자신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정신 요소들은 “나는 오래 전에 나에게 일어난 이런 저런 일을 기억한다. 따라서 몸이 죽을 때까지 내가 계속될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이 잘못된 견해는 20 가지 유형(visativatthuka, 위사띠왓투까)의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포함합니다.

  • * 프랑스 철학자인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유명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그 생각이 뇌의 송과선(pineal gland)에서 일어난다고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웃쩨-다 딧티(uccēda diṭṭhi, 단견)의 일부입니다.

 

‘앗따’의 두가지 의미

 

15.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하면, 위와 같이 ‘나는 내 몸이다’ 등의 입장을 취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혜로 봅니다. 즉, ‘닷사네-나 삼빤노-(dassanēna sampannō)가 됩니다.

 

  • * 하지만, 합리적으로 단지 보는 것과, 그것을 정확한 것으로 검증하고 경험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아라한(Arahant) 단계에서만, 마침내 그것을 정확한 것으로 확인하여 ‘나’(‘아스미 마-나_asmi  māna’라고 함)라고 인식하는 것을 제거합니다.

  • * 토론 포럼에서 이 이슈에 대한 긴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짧은 포스트에 담을 수 없으므로 그 논의 내용을 읽어보길 권합니다. ‘Wrong English translations of Aniccha, Anatta, Sakkaya diṭṭhi’ 를 보세요.

 

16.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에 대한 종래의 번역에서 혼동은 위 구절(‘rupam attāto’) 속의 ‘앗따(atta)’를 띨락카나(Tilakkhana)의 아낫따(anatta)의 반대로 결부시키려고 할 때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앗따(atta)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한 가지 의미는 ‘앗따- 히 앗따노- 나토-(attā hi attanō nathō, 나만이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에 있는 것처럼 ‘나’ 또는 ‘나 자신’이며, 그것이 위 구절에 내포된 의미입니다.

 

  • * ‘앗따(atta)의 다른 의미는 ‘통제됨’ 또는 ‘본질 있음’이고, 그 반대는 띨락카나(Tilakkhana)의 아낫따(anatta)입니다. ‘중생은 이 재탄생 과정(윤회)에서 어쩔 수 없습니다.’

  • * 이 두 가지 의미는 ‘Atta Hi Attano Natho’ 포스트에 설명되어 있으며, ‘Pāli Dictionaries – Are They Reliable?’ 포스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 * 그 때문에 빠알리(Pāli) 사전을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합니다. 빠알리 말(낱말)의 의미를 정의하고 고쳐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은 맥락(문맥)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Pāli Dictionaries – Are They Reliable?’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위찌낏짜-’는 무엇인가?

 

17.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서 제거된 두 번째 상요-자나(samyōjana)는 위찌낏차-(vicikiccā)입니다. 많은 번역판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것은 붓다(Buddha), 담마(Dhamma), 상가(Saṅgha)에 대한 의심을 의미할까요? 그런 의심이 띨락카나(Tilakkhana)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보는 것은 유익합니다.

 

  • * 위찌낏짜-(vicikiccā)는 위(vi) + 치(chi) + 끼(ki) + 잇짜-(iccā)에서 유래합니다. 세속적인 것들이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리의 왜곡된 견해(diṭṭhi, 딧티)는 그것들을 우리가 좋아하게 합니다(iccā, 잇짜-). 그 다음 우리는 갈망을 바탕으로 행동을 취합니다(‘끼_ki’ 또는 ‘끼리야_kriya’). 그리고, ‘차(cha)’는 찟따(citta) 또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의미하며, 여기서 그런 딧티(diṭṭhi)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 경우에, ‘위(vi)’는 ‘왜곡됨(싱할라어로 විකුර්තී)’을 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대로 세상 것들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잘못된 견해를 바탕으로 하여 행하는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  위찌낏짜-(vicikiccā)입니다. 위 #11을 참조하세요.

  • * 그래서, 위찌낏짜-(vicikiccā)는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가 제거되면 동시에 제거됩니다.

  • *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그런 잘못된 견해로부터 떨어집니다. 소-따빤나(Sōtapanna)가 되면 많은 부도덕하거나 부적절한 행위에서 ‘결실없음’을 자동으로 봅니다.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노력의 대부분이 헛수고라는 것을 진실로 깊이 압니다. 그러나 아나-가-미(Anāgāmi)가 되기 전까지는 여전히 감각적 욕망에 들러붙습니다.

  • * 예를 들어, 소-따빤나(Sōtapanna)는 여전히 성관계를 할 수도 있지만, 결혼한 부부 사이 이외의 부도덕한 성관계는 하지 않습니다. 부부 사이의 성관계 행위는 인간계와 천상계에 재탄생할 수 있는 행위이지만, 부부 사이 이외의 부도덕한 성관계 행위는 아빠-야-(apāyā)에 태어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소-따빤나(Sōtapanna)는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서만 벗어났습니다.

  • * 다시 말해, 만약 누군가 위찌낏짜-(vicikiccā)가 있다면, 그 사람은 유혹적인 상황(조건)에서 부도덕한 아빠-야가-미(apāyagāmi, 사악처로 향하는) 행위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따빤나(Sōtapanna) 성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런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소-따빤나는 어떤 활동이 부도덕한 것인지에 대해 어떤 의심도 없습니다.

 

‘실랍바따 빠라-마-사’는 무엇인가?

 

18. 세 번째 상요-자나(sanyōjana)인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āmāsa)는 닙바-나(Nibbāna)가 특정한 계율이나 의례 의식을 따름으로써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그것들에는 5계 또는 8계(또는 단지 선한 일을 행함)가 포함됩니다.

 

  • * 닙바-나(Nibbāna)에 도달하려면, 로-꿋따라 삼마- 딧티(lōkuttara sammā diṭṭhi, 출세간적 올바른 견해)가 필요합니다. 로-꿋따라 삼마- 딧티(lōkuttara sammā diṭṭhi)를 얻으려면, 틸라카나(Tilakkhana),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아닛짜, 둑카, 아낫따’ 서브 섹션을 참조하세요.

  • * 아닛짜(anicca)를 이해할 때, 부도덕한 행위를 멀리하고 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일련의 계나 의례 의식 들을 확고히 고수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아닛짜를 이해할 때] 그러한 활동[부도덕한 행위]이 장기적으로 결실이 없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내부 깊이 알고 있습니다.

  • * 그러나, 세간적 삼마- 딧티(mundane sammā diṭṭhi)에 이르기 위해서는 계를 지키는 것(부도덕한 행위를 멀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틸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깨끗하게 해 줍니다.

 

‘까-마 라-가’는 소따-빤나 단계에서 제거되지 않는다

 

19. 마지막으로, 소-따빤나(Sōtapanna)는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서 자유 로워지기 위해 두 개의 상요-자나(samyōjana, 족쇄), 즉 까-마 라-가(kāma rāga)와 빠띠가(paṭigha)를 더 깨야 합니다. 아나-가미(Anāgami) 만이 인간계와 6가지 데와 영역(천상계)을 포함하는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 어디에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2020년 7월 24일: 상세한 논의는 ‘The Five Aggregates (Pañcakkhandha)’ 서브섹션과  ‘Origin of Life’ 서브섹션에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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