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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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낫따락카나 숫따' 내의 아낫따-, 영혼이나 아-뜨마 없음


원문 :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Anattā in Anattalakkhana Sutta – No Soul or an Ātma‘ 포스트

2019년 5월 31일


1. 앗따-(attā)는 매우 다르고 문맥 따라 달라지는 두 가지 기본 의미를 가진 빠알리 낱말입니다.


  • * 관습적인 의미에서, ‘앗따-(attā)’는 누군가를 ‘존(John)’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스리랑카 시골에서는 누군가를 언급하기 위해 ‘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 앗따-’(මේ ඇත්තා 또는 මේ අත්තා)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 * ‘앗따(atta)’의 더 깊은 의미는 ‘완전히 통제함’ 및 ‘실질 있음’입니다.

  • * 어떤 사람이 무엇을 완전히 통제한다면, 그것을 자신의 앗따-(attā)로 부를 수 있습니다. 무언가가 충만하게 완전한 통제하에 있지 않다면, 그것은 아낫따-(anattā)입니다.

  • * 이것은 띨락카나(Tilakkhana, 삼법인) 또는 자연의 3가지 특성 중의 하나인 ‘아낫따-(anattā)’와 ‘아낫따(anatta)의 핵심 개념과 관련이 있습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아닛짜, 둑카, 아낫따’ 서브 섹션을 참조하세요. ‘아낫따(Anatta)’에는 ‘통제 없음’과 ‘실질 없음’과 ‘본질 없음’의 의미가 있습니다.


2. 그러므로 그 낱말이 사용되는 문맥에 따라 어떤 ‘앗따-(attā)’를 의미하는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 * 예를 들어, ‘I saw bear’에서 ‘bear’은 ‘큰 동물’을 의미하지만, ‘to bear a burden’에서 그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 * 띠삐따까(Tipitaka, 삼장)를 직접 이용하여 ‘앗따-(attā)’의 두 가지 의미를 명확하게 해 보겠습니다.


3. 세간적(평범한) 의미에서 ‘앗따-(attā)’의 용법은 잘 알려진 담마빠다(Dhammapada, 법구경) 구절에서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Attā Hi Attanō Nāthō’ 포스트를 보세요. 거기서 ‘앗따-(attā)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구원(닙바-나)을 위해 각자가 노력한다(노력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붓다께서도 길을 가르쳐주시기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 * 또 다른 하나는 ‘앗따-낭 담마얀띠 빤디따-(attānam damayanti panditā)인데, 이는 ‘현명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통제/훈련한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 담마빠다 게송 80에 있습니다.


4. ‘앗따-(attā)’, 또는 실제로 앗따-(attā)의 반대, 또는 아낫따-(anattā)의 두번째이자 더 깊은 의미는 붓다께서 붓다후드(붓다의 지위)에 도달하신 후 설하신 두 번째 법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법문인 ‘아낫따락카나 숫따( Anattalakkhana Sutta, SN 22.59 )’는 다음 구절로 시작합니다.

“루-빵, 빅카웨, 아낫따-. 루-빤짜 히당, 빅카웨, 앗따- 아바윗사, 나이당 루-빵 아-바-다-야 상왓떼이야, 랍베타 짜 루-뻬: ‘에왕 메 루-빵 호뚜, 에왕 메 루-빵 마- 아호시-’띠. 야스마- 짜 코, 빅카웨, 루빵 아낫따-, 따스마- 루-빵 아-바-다-야 상왓따띠, 나 짜 랍바띠 루-뻬: ‘에왕 메 루-빵 호뚜, 에왕 메 루-빵 마- 아호시-’띠”

(“ Rūpaṃ, bhikkhave, anattā. Rūpañca hidaṃ, bhikkhave, attā abhavissa, nayidaṃ rūpaṃ ābādhāya saṃvatteyya, labbhetha ca rūpe: ‘evaṃ me rūpaṃ hotu, evaṃ me rūpaṃ mā ahosī’ti. Yasmā ca kho, bhikkhave, rūpaṃ anattā, tasmā rūpaṃ ābādhāya saṃvattati, na ca labbhati rūpe: ‘evaṃ me rūpaṃ hotu, evaṃ me rūpaṃ mā ahosī’ti ”).


  • * 번역: “빅쿠들이여, 형태(육체적 몸)는 아낫따-(anattā, attā가 아님)다. 빅쿠들이여, 만약 자신의 몸이 앗따-(attā)라면, 그것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고, ‘내 몸이 이렇게 되라; 내 몸이 이렇게 되지 말라’고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몸이 아낫따-(anattā)이기 때문에 노화되고 질병에 걸리게 되어 있다. ‘내 몸이 이렇게 되라; 내 몸이 이렇게 되지 말라’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5. 위 4번의 구절은 깊은 의미에서 앗따-(attā)와 아낫따-(anattā)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앗따-(attā)는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무언가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예를 들어, 우리가 무언가를 소유한다면 그것에 대해 완전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자동차, 주택,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이든 그것들의 방식으로 변화합니다. 금 보석류와 같은 것들이 안정적이더라도, 우리는 죽을 때 그것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됩니다).

  • * 구체적으로, 우리 신체가 앗따(attā)라면, 우리는 몸을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강하고 건강하며 잘 생기고/아름답게, 질병이나 상처를 입지 않고 [원하는 대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원하는 대로] 몸이 영원히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그 방식으로 변화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늙고 쇠퇴하고 죽습니다.


6. 이것은 다음과 같이 그 숫따(sutta)의 또 다른 구절로 강조되어 있습니다. 

“땅 킹 만냐타, 빅카웨, 루-빵 닛짱 와- 아닛짱 와-”띠? “아닛짱, 반테”. “양 빠나-닛짱 둑캉 와- 땅 수캉 와-”띠? “둑캉, 반떼”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rūpaṃ niccaṃ vā aniccaṃ vā”ti? “Aniccaṃ, bhante”.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ā taṃ sukhaṃ vā”ti? “Dukkhaṃ, bhante”).


번역: "빅쿠들이여, 자신의 몸을 좋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에 따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불가능합니다. 스승님.” - “그것(불가능한 것)은 고통으로 이끄는가? 행복으로 이끄는가?” - “고통으로 이끕니다. 스승님.”


  • * 이전에 본 바와 같이, 그것은 고통으로 이끄는 아닛짜(anicca) 특성(자신이 바라거나 기대하는 대로 만족시킬 수 없음)입니다. ‘Anicca – Inability to Keep What We Like’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우리는 자신이 소유한 어떤 것(집, 자동차 등)이 파손되거나 손상될 때나 사랑하는 사람이 병들거나 죽을 때마다 그러한 고통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최악의 고통은 우리 자신이 병들거나 죽음에 직면할 때입니다. 이것은 위 구절의 다음 부분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7. 구절은 다음과 같이 계속됩니다.

“양 빠나-닛짱 둑캉 위빠리나-마담망, 깔랑 누 땅 사마누빳시뚱: 에땅 마마, 에소하마스미, 에소 메 앗따-’ ”띠? “노 헤땅, 반떼”.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 kallaṃ nu taṃ samanupassituṃ: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No hetaṃ, bhante”).


번역: “어떤 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유지될 수 없다면,  그것이 예기치 않는 변화를 겪으며 고통으로 이어진다면,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앗따-(나의 본질)’라고 하는 것이 적당한가?” - “그렇지 않습니다. 스승님.”


  • * 이제 우리는 더 깊은 측면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X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면 X는 “이 자동차는 내 것이다”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자동차가 고장나면  X는 불행해(괴로워)질 것입니다.

  • * 그러나, X는 “이 자동차는 나이고, 나의 앗따-(나의 본질)이다.”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 * 그 반면에, X는 “이 몸은 나이고, 나의 앗따-(나의 본질)이다.”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8. 붓다께서 이 구절의 위 섹션에서 논리적으로 지적하신 것은, 자신의도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겪고 고통으로 이끌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앗따-(나의 본질)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 * 이것은 깊이 숙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 장차 포스트에서 논의할 것이지만, 이것은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하는 하나의 핵심 측면입니다.


9. 또한, 우리 몸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루-빠’(가족, 친구, 자동차, 집, 등)도 우리의 통제 하에 있지 않습니다. 오래고 오랜 과거에 [악처에서], 우리는 어떤 외부 또는 내부 루-빠(rūpa)도 전혀 통제할 수 없었으며, 미래에도 그와 같이 전혀 통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전체[로 볼때] 루-빡칸다(rūpakkhandha)는 아낫따-(anattā)입니다.


  • * 숫따(sutta)는 이제 다른 4가지 칸다(khandha, 무더기), 즉 웨다나-악칸다(vedanākkhandha), 산냐-악칸다(saññākkhandha), 상카-락칸다(sankhārakkhandha), 윈냐-낙칸다(viññānakkhandha)에 대해 같은 논증을 반복합니다.

  • * 그것들은 우리의 생각, 경험, 희망 및 꿈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많은 통제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우리가 가진 모든 통제권은 죽음 시에 잃을 것입니다. 우리는 내생에 어디에 태어날지 모릅니다.

  • * 우리는 이 시작없는 재탄생 과정(윤회)에서 정말로 무력하며, 그것이 아낫따(anatta) 특성입니다.


10. 5가지 무더기(오온)에 포함되지 않는 유정체는 없습니다. 5가지 무더기의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실제로 어떤 통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 중 그 어느 것도 자신의 앗따-(attā)라고 할 수 없습니다.


  • * 그래서,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어디에 태어날지에 대해 어떤 통제를 할 수 없습니다.

  • * 그것은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에 의해 좌우되며, 대부분의 재탄생은 많은 고통을 받는 낮은 영역(사악처)입니다. 따라서 자신은 정말로 무력하며, 아낫따-(anattā)입니다.


11. 이것은 ‘진정한 본질이 없다’,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무력하다’, ‘[세상에서]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등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완벽하고 건강한 삶을 산다고 해도, 미래는 완전히 불확실하여 죽음에 무력하게 될 것입니다.  


  • * 그렇기 때문에 유정체는 항상 아낫따(anattā) 특성에 지배됩니다. ‘루빵 아낫따-(rupam anattā)’는 자신의 몸이 자신의 앗따-(attā)가 될 수 없다는 사실과 아낫따(anatta, 긴 a가 아님)가 자연의 특성이라는 점을 나타냅니다.

  • * 아낫따(anatta) 특성의 이러한 특정 측면, 즉 자신의 5가지 무더기(오온)가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12. 이제 우리는 이 아낫따(anattā) 개념이 아브라함 계열 종교의 ‘영혼(soul)’ 개념과 힌두교의 ‘아-뜨마(ātma)’ 개념과 어떻게 명백히 반대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종교에 따르면 ‘영혼(soul)’ 또는 ‘아-뜨마(ātma)’인 ‘앗따-(attā)’가 있습니다.


  • * 아브라함 계열 종교의 경우, 목표는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여 영원히 살 수 있는 천국에 이르는 것입니다.

  • * 힌두교의 경우, 목표는 자신의 아-뜨마(ātma)를 마하- 브라흐마(Mahā Brahma)에 합병시켜 다시 그 브라흐마(Brahma) 영역에 영원히 있게 하는 것입니다.

  • * 그러나 붓다께서는 이 세상에는 그런 영원한 존재가 있는 영역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 ‘영원한 정체’, ‘영혼’ 또는 ‘아-뜨마(ātma)’라는 이 개념은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서 ‘사-싸따와-다(sāssatavāda)’라고 합니다.


13. 재탄생(윤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사람’은 자신의 몸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정체(identity)는 종료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 개념을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 생으로 ‘이행’되는 것은 없습니다. 이 개념(또는 논증)은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서 ‘웃쩨다와-다(uccedavāda)라고 합니다.


  • * 그러나 붓다께서는 실제의 본질은 이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 사이에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모든 유정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흐름(lifestream)으로 존재하며 그 ‘생명흐름(lifestream)’은 새로운 삶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 ‘생명흐름’에서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음 생(내생)’은 현재의 삶과는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What Reincarnates? – Concept of a Lifestream’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다음 생(내생)’은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를 기반으로 ‘현 존재’를 떠나는 순간(쭈띠-빠띠산디 순간, cuti-patisandhi moment)에 있는 근본 원인과 조건에 의해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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