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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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링 다운 과정(닙바-나) – 근본원인은 어떻게 제거되는가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The Cooling Down Process (Nibbāna) – How Root Causes are Removed’ 포스트

 

1. 물질 세계는 로-바(lōbha), 도-사(dōsa), 모-하(mōha), 아로-바(alōbha), 아도-사(adōsa), 아모-하(amōha)라는 6가지 근본 원인으로 인해 존재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한바탕 누릴 수 있을지라도, 이 6가지 원인으로 인해 재탄생 과정(윤회)에서 상상을 초월한 시달림(괴로움, 고통)을 겪습니다.

 

  • * 6가지 근본 원인이 있다면, 왜 붓다께서는 ‘라-각카요- 닙바-난(rāgakkhayō Nibbānan), 도-삭카요- 닙바-난(dōsakkhayō Nibbānan), 모-학카요- 닙바-난(mōhakkhayō Nibbānan)’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즉, 왜 닙바-나(Nibbāna)에 도달하기 위해 3가지 원인만 제거하면 될까요? (그런데, ‘로-바’는 ‘라-가’의 강한 형태이므로, ‘라-각카야_rāgakkhaya’는 ‘로-바’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사실, 로-바(lōbha), 도-사(dōsa), 모-하(mōha)를 제거하기 위해 아로-바(alōbha), 아도-사(adōsa), 아모-하(amōha)를 육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 * (2020.06.25. #1 및 #2 개정) 로-바(lōbha), 도-사(dōsa), 모-하(mōha)가 점진적으로 제거됨에 따라, 이 과정에서 얻은 지혜(pannā, 빤냐-)는 필요에 따라 아-로바(alōbha), 아도-사(adōsa), 아모-하(amōha)를 자동으로 감소시킵니다. 아라한뜨(Arahant)는 6가지 모두를 제거했습니다. 아로-바(alōbha), 아도-사(adōsa), 아모-하(amōha)는 아라한뜨(Arahant) 단계에 이르기까지 내내 육성해야 합니다.

 

2. 로-바(lōbha)는 극단적으로 탐하는 것입니다. 로-바(lōbha)는 ‘로(lō)’ + ‘바(bha)’로 합성된 말이며, 여기서 ‘로-(lō)’는 ‘로-까야(lōkaya, 세계)’를 나타내고 ‘바(bha)’는 ‘비히위마(bihiveema, 생기다 또는 세우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탐함’으로 물질 세계가 어떻게 창조되고 지탱되는가 하는 주된 이유입니다.

 

  • * 로-바(lōbha) 때문에 까-막찬다(kāmacchanda, 5가지 장애 중 하나)가 발생합니다. 까-막찬다(kāmacchanda)로 행할 때 사람은 정신을 잃는다고 합니다. 까-막찬다(kāmacchanda)는 ‘까-마(kāma)’ + ‘잇짜(icca)’ + ‘안다(anda)’로 합성된 말입니다. 여기서, ‘잇짜(icca, ichcha)’는 ‘좋아함’이고 ‘안다(anda)’는 ‘눈이 멀게 되는’ 입니다. 따라서, 까-막찬다(kāmacchanda)는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어 눈이 멀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 * 까-막찬다(kāmacchanda)에 의해 눈이 멀고 ‘가는 길(하려는 것)’에 방해물이 생기면,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미워하는 도-사(dōsa), 즉, 드웨사(dvesa)가 일어납니다. 드웨사(dvesa)는 ‘드위(dvi)’ + ‘웨사(vésa)’로 합성된 말이며, 탐함의 두 번째 나타남(징후)을 의미합니다. 발음에 대해서는 ‘Pāli Glossary’를 참조하세요.

  • * 그리고 그 자는 이 세상에 대한 진실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즉 모-하(mōha)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로-바(lōbha)를 지니고 있습니다. ‘모-하(mōha)’는 ‘무와(muva)’ + ‘하-(hā)’ 에서 나온 말이며,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닫힌 입’입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용기가 있는데 그 입구나 개구부가 닫혀 있다면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하(mōha)가 있을 때 그 사람은 이 세상의 진정한 특성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겉모양만 보고 맹목적이고 어리석게 행합니다.

 

3. 붓다 세계관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하(mōha)로 행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로-바(lōbha)와 도-사(dōsa)도 번갈아 나타납니다.

 

  • *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로-바(lōbha), 도-사(dōsa), 모-하(mōha)의 강한 버전을 지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최근의 전생에서 붓다 담마를 접하여 아로-바(alōbha), 아도-사(adōsa), 아모-하(amōha)에 맞는 그런 습관(가띠)을 이어나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느 누구든 과거 어느 시점에 붓다  담마를 접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 지연이 많을수록 그러한 자질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 * 어쨌든, 까-막찬다(kāmacchanda)가 있으면, 그 당시 문제가 된 감각 대상이라면 무엇이든지 그것을 소유하려는 욕구에 눈이 멀게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 모두는 까-막찬다(kāmacchanda)를 넘겨 받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누구나 최소한 잠시동안 ‘이성적 추론 능력’을 잃어버린 경우를 상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과거 상황을 생각하고 이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4. 까-막찬다(kāmacchanda) 때문에 ‘길게 지속되는 증오 상황(도-사, dōsa)’이 발생합니다. 다시 돌아가서 그런 상황을 상기해 보세요. 이 때문에 도-사(dōsa 또는 dvesa)가 탐함의 두 번째 나타남(징후)이라고 합니다. 극단적으로 도-사(dōsa)는 5가지 장애 중 두 번째인 브야-빠다(vyāpada)를 끌어냅니다. 이 낱말은 ‘와야(vaya)’ + ‘빠다(pada)’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와야(vaya)’는 쇠퇴를 의미하고, ‘빠다(pada)’는 ‘~을 향해 걷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브야-빠다(vyāpada)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쇠퇴의 길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사람이 극도로 화를 내면, 다시 자제력을 잃게 되며 이것은 까-막찬다(kāmacchanda)보다 훨씬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분노의 순간에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화를 내면 브야-빠다(vyāpada) 상태가 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으며, 그것이 멈추지 않으면 ‘통상적인 상태’, 즉 ‘가띠(gati)’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에서 (정치적) 토론 또는 논쟁 중에 ‘브야-빠다(vyāpada) 모드’에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 5가지 장애는 모두 갈망이나 미워함의 부질없음(무익함)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탐욕과 증오를 통해 ‘이 세상에 들러붙어 있는’ 이것을 땅하-(taṇhā)라고 합니다. ‘딴하-, 탐함과 성냄과 미혹함을 통해 어떻게 들러붙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5. 아윗자-(avijjā, 무지)와 땅하(taṇhā)는 서로 먹여 살리지만, 먼저 대처(처리)해야 할 것은 아윗자-(avijjā)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땅하(taṇhā) 뒤에 숨겨져 있는 위험을 보지 못하는 한, 땅하-(taṇhā)를 줄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 * 담마를 배우기 시작할 때, 유정체가 태어남을 반복(윤회)하는 31영역으로 된 ‘더 넓은 세계(광대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즉, 유정체가 어떻게 대부분 사악처에서 고통을 겪는지, 모든 행위에는 결과(과보)가 있다는 것, 그리고 잠깐 동안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부도덕한 행을 하는 것이 왜 장기적으로 볼 때 현명하지 않은지(아닛짜 개념)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아닛짜, 둑카, 아낫따 – 잘못된 해석’ 포스트와 이어지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아닛짜(anicca)를 진정으로 이해하면, 자신의 아윗자-(avijjā)는 마음챙김없이 행하는 윗찌낏짜-(vicikiccā)를 일으키는 ‘강한 모-하(mōha)’ 단계에서 먼저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그 결과로 탐욕과 증오를 줄입니다.

  • *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흡 명상을 통해) 탐욕과 증오를 없애려고 하는데, 그것은 가능하지 않는 실수입니다. 올바른 ‘아-나빠-나(ānapāna)’ 명상 수행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Anāpānasati Bhāvanā (Introduction)’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잘못된 세계관을 지니고 있고 과도한 탐욕과 과도한 증오의 생각을 가지는 것에 대한 위험을 보지 못하는 한, 탐욕과 증오를 강제로(순전히 의지력으로)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Difference Between Giving Up Valuables and Losing Interest in Worthles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 때문에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 또는 올바른 세계관이 성스런 팔정도에서 맨 처음에 있습니다.

  • * 호흡 명상을 할 때,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은 까-마찬다(kāmacchanda)와 브야-빠다(vyāpada) 및 다른 장애를 강제로 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6.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이르면, 로-바(lōbha)가 까-마 라-가(kāma rāga) 수준으로 영구적으로 감소하고, 도-사(dōsa)는 빠띠가(paṭigha) 수준으로 영구적으로 감소합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장애인 위찌낏짜-(vicikiccā)가 제거되고, 다른 두 가지 장애도 감소됩니다. 빠띠가(paṭigha)는 브야-빠다(vyāpada)보다 강도가 더 낮습니다. ‘빠띠(pati)’ + ‘가(gha)’는 마찰 또는 반감을 통해 들러붙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빠띠까(paṭigha)는 땅하-(taṇhā)에 포함됩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 성자가 왜 사악처에 태어날 수 있는 ‘극히 부도덕한  행위’를 할 수 없는지를 우리는 이제 알 수 있습니다. 소-따빤나 성자는 위찌낏짜-(vicikiccā) 장애를 영구적으로 제거했고 항상 마음챔김으로 행합니다. 이 높은 수준의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 올바른 세계관)는 그 성자의 마음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으며 미래의 탄생에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어느 정도의 탐함과 미워함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7. 닙바-나(Nibbāna)의 다음 레벨인 사까다-가미(Sakadāgami) 단계에 도달하면, 까-마 라-가(kāma rāga)와 빠띠가(paṭigha)가 영구적으로 감소합니다. 이러한 진전에 따라, 육체가 질병과 늙음에 시달릴 수 있는 영역에 더 이상 태어나지 않습니다. 즉, 다섯 번째 영역인 인간계 위의 영역(천상계) 이상에 태어날 것입니다.

 

8. 아나-가미(Anāgami) 단계에서는 까-마 라-가(kāma rāga)와 빠띠가(paṭigha)가 영구적으로 제거됩니다. 따라서 아나-가미 단계에서 두 번째 근본 원인인 도-사(dōsa)의 모든 형태가 완전히 제거됩니다. 아-나가미(아나함) 성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거나 미워하지 않으며, 도-사 쩨-따시까(dōsa cētasika)는 영구적으로 제거됩니다. 까-마 라-가(kāma rāga)도 제거되었으므로 이제 데와 세계(천상계)를 포함하여 까-마 로-까(kāma lōka)의 어떤 영역에도 태어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 * 따라서 아나-가미(Anāgami) 성자에게는 루-빠 라-가(rūpa rāga)와 아루-빠 라-가(arūpa rāga)만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아나-가미 성자가 담마 개념을 듣고(읽고) 숙고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감각적인 즐거움에 대한 욕구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로-바 쩨-따시까(lōbha cētasika)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감소합니다. 

  • * [아나-가미(Anāgami) 성자에게] 모-하 쩨-따시까(mōha cētasika)는 아윗자-(avijjā)로서 낮은 강도로만 남아 있습니다.

 

9. 따라서 10가지 상요-자나(sanyōjana) 또는 상요-가(sanyōga, ‘san’ + ‘yoga’, ‘산’을 통해 묶임) 중에서, 삭까야 딧티(sathkaya diṭṭhi), 위찌낏짜-(vicikiccā),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amasa) (세가지 모두 강한 ‘아윗자-’로 인한 것임)는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 * 이것은 중요한 점입니다. 즉, 소-따빤나(Sōtapanna)가 되기 위해서는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함으로써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특징)을 이해하는 것만 필요합니다.

  • * 단지 이 이해로, 까-막찬다(kāmacchanda), 브야-빠다(vyāpada) 및 위찌낏짜-(vicikiccā)를 제거합니다. 이 때문에 소-따빤나(Sōtapanna)를 ‘닷사네-나 삼빤노-(dassanēna sampannō)’, 즉 ‘비전(시각)을 지닌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 * 한때 붓다께서는 손톱에 약간의 흙을 얹어 놓고 빅쿠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대지에 있는 모든 흙을 제거해야 할 오염이라고 한다면, 소-따빤나(Sōtapanna) 성자에게 남아 있는 오염은 이 손톱에 있는 약간의 흙 정도에 불과하다.”

  • * 이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놀랍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부도덕한 행위는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가 적어도 상당한(의미 있는) 수준으로 있지 않기 때문에 행해진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 남아있는 ‘상요-자나(상요-가)’ 중에서, 까-마 라-가(kāma rāga)와 빠띠가(paṭigha)는 사까다-가-미(Sakadāgāmi) 단계에서 줄어들고, 아나-가미(Anāgami)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나머지 ‘상요-자나(상요-가)’인, 루-빠 라-가(rūpa rāga), 아루-빠 라-가(arūpa rāga), 마나(mana), 웃닷짜(uddacca), 아윗자-(avijjā)는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10.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서, 우리는 감각 기관과 그에 상응하는 감각 대상이 조밀한 형태로, ‘올라리까 수카(olarika sukha, 원시적 형태의 거친 느낌)’를 경험합니다. ‘조밀한 물질’에 의한 즐거움에 들러붙음이 줄어들면서, ‘더 조밀한 세계’에 재탄생하는 것이 점차적으로 제거됩니다(한 가지 예외는 ‘뻬따_peta’ 영역이며, 이 영역에서는 몸이 미세하지만, 그 몸은 강한 정신적 시달림을 일으키게 합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 stage) 단계에서는 사악처에서 겪는 거친 형태의 시달림(고통, 괴로움)에서 영구적으로 해방됩니다. 사까다-가미(Sakadāgami) 단계 후에는, 비교적 조밀한 몸이 여전히 육체적 고통과 질병을 겪는 인간계에도 재탄생하지 않습니다. 아나-가미(Anāgami) 성자는 봄, 들음, 및 마음만 작용하는 미세한 몸만 있는 ‘숫다-와사 루-빠 로-까(suddhāvasa rūpa lōka)’에만 태어납니다.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성자는 물질과 어떤 관련이 있는 31영역의 어느 곳에도 다시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루-빠는 무엇인가?(닙바-나와 관련하여)’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아라한 성자가 세상을 떠날 때, 마음은 31영역을 이루는 물질 세계에 대한 어떠한 들러붙음에서도 해방됩니다.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또는 죽음으로 더 이상 고통받지 않습니다. 아라한 성자는 ‘아마라니야(amaraneeya, 죽음 없음)’ 상태에 도달한 것입니다.

 

11. 닙바-나(Nibbāna)로 가는 단계를 분석하는 또 다른 방법은 12가지 아꾸살라 찟따(akusala citta)가 어떻게 단계별로 제거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Akusala Citta – How a Sōtapanna Avoids apāyagami Citt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2. 그러므로, 닙바-나(Nibbāna)의 4단계는 장애, 상요-가(상요-자나, 족쇄), 물질의 밀도, 아꾸살라 찟따(akusala citta) 등 여러가지 다른 방식으로 특징 지을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일관성이 있습니다.

 

13.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 이전에도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를 느끼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세가지 유형의 행복 – '니라-미사 수카'란 무엇인가?’ 포스트와, ‘니라-미사 수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아리야 자-나(Ariya jhāna)에 이를 수 있다면,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는 현저하게  증가할 수 있습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가 되기 위해 아리야 자-나(Ariya jhāna)를 반드시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리야 자-나(Ariya jhāna)는 이미 소-따빤나(Sōtapanna)인 경우에만 얻을 수 있습니다. ‘How does one know whether the Sōtapanna Stage is Reached?’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것은 최근에야 필자에게 분명 해졌고, 필자는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ero)의 데사나(desana, 법문)에서 이것을 확인했습니다.

* 따라서, 아리야 자-나(Ariya jhāna)에 도달할 수 있다면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가 달성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리야 자-나(Ariya jhāna)는 외부 영향이나 심지어 오염된 생각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와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Magga Phala via Cultivation of Saptha Bojjhaṅg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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