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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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착까 숫따 - 6가지 유형의 위빠-까 윈냐-나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Chachakka Sutta – Six Types of Vipāka Viññāna’ 포스트

- 2019년 10월 19일 작성; 2020년 9월 28일 개정(#12); 2021년 4월 3일 개정; 2021년 12월 30일 개정(제목); 2022년 8월 29일 개정

 

차착까 - 여섯의 여섯 세트

 

1. 우리는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의 여섯 단계에 대한 논의를 마쳤습니다. ‘붓다의 세계관(Worldview of the Buddha)’ 서브섹션을 보세요. ‘여섯의 여섯 세트’(Cha chakka)를 간략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 * 숫따의 첫부분에는 ‘여섯 세트’(여섯 모음)가 다음과 같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Cha ajjhattikāni āyatanāni veditabbāni, cha bāhirāni āyatanāni veditabbāni, cha viññāṇakāyā veditabbā, cha phassakāyā veditabbā, cha vedanākāyā veditabbā, cha taṇhākāyā veditabbā.”

 

그 의미: 다음 ‘여섯의 여섯 세트’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섯가지 내부 아-야따나(internal āyatana), 여섯가지 외부 아-야따나(external āyatana), 여섯부류의 (위빠-까) 윈냐-나(viññāṇa), 여섯부류의 팟사(phassa), 여섯부류의 웨-다나-(vēdanā), 여섯부류의 땅하-(taṇhā)

그것들이 무엇인지 간략히 적어보겠습니다. 이전(선행) 포스트에서 그것들을 상세히 설명하였습니다.

 

  • * 여섯가지 내부 아-야따나(internal āyatana): “짝카-야따낭, 소따-야따따낭, 가-나-야따낭, 지와-야따낭, 까-야-야따낭, 마나-야따낭.(cakkhāyatanaṃ, sotāyatanaṃ, ghānāyatanaṃ, jivhāyatanaṃ, kāyāyatanaṃ, manāyatanaṃ.)”

  • * 여섯가지 외부 아-야따나(external āyatana): “루-빠-야따낭, 삿다-야따낭, 간다-야따낭, 라사-야따낭, 폿탑바-야따낭, 담마-야따낭.(rūpāyatanaṃ, saddāyatanaṃ, gandhāyatanaṃ, rasāyatanaṃ, phoṭṭhabbāyatanaṃ, dhammāyatanaṃ.)”

  • * 여섯부류의 (위빠-까) 윈냐-나(viññāṇa): “짝쿠윈냐-나, 소따윈냐-나, 가-나윈냐-나, 지와-윈냐-나, 까-야윈냐-나, 마노윈냐-나.(cakkhuviññāṇa, sotaviññāṇa, ghānaviññāṇa, jivhāviññāṇa, kāyaviññāṇa, manoviññāṇa.)”

  • * 여섯부류의 팟사(phassa):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윈냐-낭, 띤낭 상가띠 팟소(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āti cakkhuviññāṇaṃ, tiṇṇaṃ saṅgati phasso)” 및, 이와 유사한 다른 다섯부류. (즉, 그것들은 ‘산 팟사, san phassa’의 여섯 가지 유형임)

  • * 여섯부류의 웨다나-(vedanā): 이전 여섯가지 유형의 ‘산 팟사(san phassa)’ 각각으로 인해 일어나는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 

  • * 여섯부류의 땅하-(taṇhā): 이전 여섯가지 유형의 웨다나-(vedanā)로 인한 ‘웨다나- 빳짜야- 땅하-(vedanā paccayā taṇhā)’

  • * 논의 중인 구절이 숫따에서 어느 부분인지 파악할 수 있도록 빠알리(Pāli) 버전의 숫따를 인쇄하여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차착까 숫따는 새로운 아-람마나에 기반한 초기 감각 경험을 묘사한다

 

2.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 MN 148)’의 첫 4분의 1 가량은 다음 단계에 대해 설명합니다.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윈냐-낭, 띤낭 상가띠 팟소, 팟사 빳짜야- 웨다나-, 웨다나- 빳짜야- 땅하-.(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āti cakkhuviññāṇaṃ, tiṇṇaṃ saṅgati phasso, phassa paccayā vedanā, vedanā paccayā taṇhā.)” (여섯 감각 기능에 대해 반복됨.)

 

차착까 숫따는 새로운 아-람마나(ārammana)에 대한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설명합니다. 여러 포스트를 통해 이 모든 단계들을 자세히 논의했습니다. 아주 간략히 말하면, 이 단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짝꾸 윈냐-나_cakkhu viññāna’에만 초점을 맞춤).

 

  • * 짝쿠(cakkhu), 즉 짝쿠 빠사-다 루-빠(cakkhu pasāda rūpa)와 (그 ‘외부 루-빠’의 스냅사진인) 루-빠(rūpa) 사이의 결합(접촉)으로 인해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가 일어납니다. 짝쿠(cakkhu)는 육체적 눈이 아닙니다. ‘봄(시각)’은 루-빠(rūpa)가 짝쿠 빠사-다(cakkhu pasāda)와 접촉할 때만 발생합니다. 필요하면 이전 포스트를 복습해 보세요.

  • * 그 루-빠(rūpa)가 까-마 구나(kāma guna)를 지니고 있을 때, (상응하는 ‘산 가띠_san gati’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것에 관심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단계는 단지 그 루-빠(rūpa), 즉 그 아-람마나(ārammana)에 매칭되는(어울리는) 그런 가띠(gati)가 있는 경우에 일어납니다.

  • * 매칭되는 ‘산 가띠(san gati)’가 있다면, 상응하는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jā-vēdanā)가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감각 사건에서 위빠-까 웨-다나-와 삼팟사 자- 웨-다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다음 단계인 ‘웨다나- 빳짜야- 땅하-(vedanā paccayā taṇhā)’는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jā-vēdanā)’가 더 행동을 취할만큼 충분히 강할 때 일어납니다. 그 마지막 단계는 ‘까-마 구나 -  들러붙음(땅하-)의 기원’ 포스트에서 논의했습니다.

 

아-람마나는 감각 경험을 촉발시킨다

 

3. 그러므로, 차착까 숫따는 6가지 내부 감각기반(내부 아-야따나, internal āyatana) 중의 하나를 통해 새로운 아-람마나(ārammana)가 마음에 올 때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묘사합니다.

 

  • * 이 모든 활동들이 자동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들은 의식적인 사고를 요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관여된 [의식적 사고에 의한] 의도가 없습니다.

  • * 그것이 이해해야 할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여러분은 “나는 내가 원할 때는 언제든지 어떤 감각 기능(내부 아-야따나, internal āyatana)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든 생각해 보면, 그것[의 기원]은 항상 그 자신의 마음에 온 아-람마나(ārammana)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 * 예를 들어, 붐비는 거리를 걸어갈 때 많은 것들을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시각대상이나 소리가 자신을 멈추게 하고 다른 어떤 것을 시작하게 할 수 있습니다. 상점 윈도우에서 눈길을 끄는 물건을 보고, 멈춰서 바라본 다음, 상점 안으로 들어가서 구입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윈냐-낭(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āti cakkhuviññāṇaṃ)”을 통해 촉발되었습니다. 차착까 숫따에서는 그 아이템을 본 순간에만 일어나는 것을 설명합니다. 일단 그것에 들러붙으면, (의식적으로 그 아이템에 대해 생각하는)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와 (상점 안으로 들어가는)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를 생성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업 발생(kamma generation)’ 단계입니다. 그것은 나중 포스트들에서 논의하겠습니다.

  • * 논의하는 중간에도 누군가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고, 그러면 그 사람이 제시한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모두가 이야기를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대화는 새로운 아-람마나(ārammana)를 가진 새로운 주제로 바뀝니다. 그것은 “마난짜 빠띳짜 담메 짜 웁빳자-띠 마노윈냐-낭(manañca paṭicca dhamme ca uppajjāti manoviññāṇaṃ)”을 통해 마음에 떠오른 담마-(dhammā)(아이디어)로 발생했습니다.

 

차착까 숫따는 ‘깜마 위빠-까’만 묘사한다

 

4. 위 #2의 모든 단계는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의식적인 사고가 없이 일어납니다. 그것들은 모두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입니다.

 

  • * 물론, [차착까 숫따의] 그 과정은 초기 감각접촉 직후의 그 사건만을 설명합니다. 그 감각 접촉을 처음 경험한 후 의도적으로 반복해서 그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흥미로운 광경을 계속 보거나 즐거운 소리를 계속 들을 수도 있습니다. (탐함, 성냄, 또는 무지로 행해졌다면,) 그때에 그 사람은 새로운 업을 축적합니다. 이 단계들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와 관련된 향후 포스트들에서 논의하겠습니다.

  • * 과거 업(kamma)의 결과는 자동으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이어집니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업(kamma)을 생성합니다. 그렇게 재탄생 과정(윤회)이 계속됩니다.

 

감각 입력 - 한 번에 하나의 패킷

 

5. 이전 포스트에서 자세히 논의한 바와 같이, 모든 감각 입력은 먼저 뇌에서 ‘패킷’으로 처리됩니다. 뇌는 그 6가지 유형의 데이터를 (동시에) 병렬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각 ‘패킷’의 지속 시간은 약 100분의 1초 (10밀리초)입니다. 그 처리된 신호는 정신적 몸(마노-마야 까-야, 간답바)에 있는 마음 자리(hadaya vatthu, 하다야 왓투)에 도달합니다. 뒤따라서, 마음은 한 번에 하나의 정보 패킷만 분석합니다. 이전 포스트인, ‘시각은 일련의 스냅사진 - 영화 비유’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예를 들어, 마음이 ‘시야(광경)’, 즉 루-빠 루-빠(rūpa rūpa)를 처리하는 중에는  ‘소리’, 즉 삿다 루-빠(sadda rūpa)를 처리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시야(광경)의 ‘스냅사진’을 분석한 후에, 다른 감각 입력으로 전환합니다. 물론, 우리의 눈과 귀는 잠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마음이 육체적 눈으로부터 온 입력을 처리하는 동안에만, 단지 그 짝쿠(cakkhu)가 살아(활성화) 있습니다

  • * 그러므로, 주어진 순간에 오직 하나의 내부 아-야따나(āyatana) 만이 살아 있습니다. ‘짝쿠(cakkhu)’는 마음이 외부 루-빠(external rūpa)의 ‘스냅사진’을 받는 동안만 활성화됩니다. ‘소-따(sōta)’는 단 한마디의 말처럼 ‘소리 비트(bit of sound)’를 받는 짧은 순간에만 살아(활성화) 있습니다. 그것들은 연속적인 흐름이 아니라, ‘패킷’으로 마음에 옵니다. 그러나 마음이 모든 입력들을 매우 빠르게 처리하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그것들이 모두 동시에 경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 * 다음 예는 기본 개념을 얻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메시지가 한 번에 한 글자씩 빠르게 실행되는 표지판을 보았을 것입니다. 주어진 순간에 하나의 글자만 표시됩니다. 그러나 순식간에 그 글자가 꺼지고, 다음 글자가 켜지고, 등이 계속됩니다. 그 꺼지고 켜지는 것이 빨리 이어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 * 마음은 신속합니다. 마음은 그런 입력 신호의 스트림(stream)을 조합할 뿐만 아니라 그 신호들을 6가지 감각입력별로 분리할 수 있습니다. 이전 포스트(그곳의 #8 참조)에서, 마음은 마나시카-라 쩨따시까(manasikāra cetasika)의 도움으로 이렇게 한다고 간략하게 언급했습니다.

  • * 더 자세한 내용은 ‘찟따와 쩨따시까 ㅡ 윈냐-나가 일어나는 방법’ 포스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짝쿠가 ‘앗따-’면, 분명히 항상 작용할 것이다 

 

이제 차착까 숫따에서 다음 구절을 논의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핵심 빠알리 용어인 앗따-(attā) 및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6. 우리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감촉하고, 담마-(dhammā)를 회상하는 것을 모두 동시에 하는 자아(self)가 있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 * 그러나 우리는 6가지 모든 감각 입력을 동시에 경험하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의 감각 입력에서도, 마음은 한 번에 그것의 짧은 ‘스냅사진’만 받습니다. ‘시각은 일련의 스냅사진 - 영화 비유’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다르게 말하면, 짝쿠(cakkhu), 소-따(sōta), 가-나(ghāna), 지와-(jivhā), 까-야(kāya), 및 마노-(manō)라는 여섯 가지 내부 아-야따나(internal āyatana)는 해당 아-람마나(ārammana)가 나타날 때만 일어납니다. 강조했듯이, 육체적인 눈, 귀, 코, 혀, 몸은 우리의 내부 아-야따나(internal āyatana)가 아닙니다. ‘불교의 세계관 – 소개’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36가지 실체의 어느 것에도 ‘자신의 자아(self)’가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순간적으로 존재하고 사라집니다. 그것은 아-람마나(ārammana)가 들어올 때만 시시각각으로 일어납니다.

  • * 그것은 ‘아낫따-(anattā)’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결정적인) 결론입니다. 또한 아낫따-(anattā)가 (장음 ā 가 없는) 아낫따(anatta)와는 다르다는 것도 분명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아낫따(anattā)에 대해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이전(선행) 과정에 ‘자아’는 관련되어 있지 않다

 

7. 위 #2의 단계를 거친 후, 차착까 숫따의 그 다음 부분은 다음 구절로 시작합니다.

“ ‘Cakkhu attā’ti yo vadeyya taṃ na upapajjāti. Cakkhussa uppādopi vayopi paññāyati. Yassa kho pana uppādopi vayopi paññāyati, ‘attā me uppajjāti ca veti cā’ti iccassa evamāgataṃ hoti. Tasmā taṃ na upapajjāti: ‘cakkhu attā’ti yo vadeyya. Iti cakkhu anattā.)”

 

대략적인 번역: “만약 누군가가 ‘짝쿠(cakkhu)는 자아(delf)다’ (또는 ‘시각은 나의 것이다’, 또는 ‘그것은 보는 내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옹호(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짝쿠(cakkhu)(육체적 눈이 아님)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명백하다. 만약 짝쿠(cakkhu)가 자아(self)라면, 그것은 ‘나의 자아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또는 나는 순간적으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눈은 자아다’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짝쿠(cakkhu)는 ‘자아 아님(not-self)’ 또는 ‘아낫따-(anattā)’다.” (‘not  attā’를 의미하는 ‘na attā’는 ‘na āgāmi’가 ‘Anāgāmi’로 운이 맞추지는 것과 같이, ‘anattā’로 운이 맞춰집니다.)

 

  • * 그 다음, 그 구절은 짝쿠(cakkhu)에 관련된 다른 다섯가지 실체, 즉 루-빠(rūpa),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 짝쿠 삼팟사(cakkhu samphassa), 짝쿠 삼팟사 자- 웨-다나-(cakkhu samphassa-jā-vēdanā), (‘짝쿠 삼팟사 자- 웨-다나-’로 인한) 땅하-(taṇhā)에 대해 반복됩니다. 그 시리즈의 마지막 구절은 “Iti cakkhu anattā, rūpā anattā, cakkhuviññāṇaṃ anattā, cakkhusamphasso anattā, vedanā anattā, taṇhā anattā."입니다.

  • * 그 다음, 그것은 소-따(sōta), 가-나(ghāna), 지와-(jivhā), 까-야(kāya), 및 마노-(manō) (6 x 6)와 관련된 6가지 실체에 대해 반복됩니다. 마지막 구절은 “Iti mano anattā, dhammā anattā, manoviññāṇaṃ anattā, manosamphasso anattā, vedanā anattā, taṇhā anattā.”입니다. 여기까지가 차착까 숫따의 절반 정도입니다.

  • * 그러므로, 자아는 그 어떤 것에서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 * 이제, 그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두 개의 다른 숫따를 간략히 논의해 보겠습니다.

 

바-히야 숫따 - “딧테 딧타맛땅 바윗사띠”

 

8. ‘바-히야 숫따(Bāhiya Sutta, Udāna 1.10)’에서, 붓다께서는 바-히야(Bāhiya)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Tasmātiha te, bāhiya, evaṃ sikkhitabbaṃ: ‘diṭṭhe diṭṭhamattaṃ bhavissati, sute sutamattaṃ bhavissati, mute mutamattaṃ bhavissati, viññāte viññātamattaṃ bhavissatī”ti.

 

번역: “ ‘바히-야’여, 너 자신을 다음과 같은 식으로 훈련해야 한다. 어떤 순간에, 너가 보는 것(diṭṭhe, 딧테)은 단지 스냅사진일 뿐이다(‘diṭṭhamattaṃ’는 말 그대로는 ‘시각의 흔적’임). 너가 듣는 것(sute, 수떼)은 짧은 소리다(sutamattaṃ). 너가 경험하는 ‘맛, 냄새, 및 감촉(mute, 무떼)’은 그 흔적이다(mutamattaṃ)이다. 너의 윈냐-나(viññāna) (viññāte, 윈냐-떼)는 윈냐-나(viññāna)의 흔적이다(viññātamattaṃ).”

 

그 다음,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이 더 설명하십니다.

Yato kho te, bāhiya, diṭṭhe diṭṭhamattaṃ bhavissati, sute sutamattaṃ bhavissati, mute mutamattaṃ bhavissati, viññāte viññātamattaṃ bhavissati, tato tvaṃ, bāhiya, na tena; yato tvaṃ, bāhiya, na tena tato tvaṃ, bāhiya, na tattha; yato tvaṃ, bāhiya, na tattha, tato tvaṃ, bāhiya, nevidha na huraṃ na ubhayamantarena. Esevanto dukkhassā” ti.

 

번역: “ 바-히야여, 너가 보는 것(diṭṭhe, 딧테)은 단지 스냅사진일 뿐이기 때문에(그리고 다른 것들도 유사함), 거기에는 (관여된) ‘너’가 없다; 그 때문에 들러붙지 말아야 한다(na tattha); 바-히야여, 너가 그렇게 한다면, ‘너’는 이 존재에 없고(nevidha), 또는 또 다른 존재에도 없고(na huram), 또는 그 둘 사이에도 없다(na ubhayam antarena). 그것(이해)이 고통(괴로움)의 끝이다(Esevanto dukkhassā” ti). 

 

필자 코멘트:

 

  • * 그것은 감각 사건의 그 흔적을 경험하는 ‘자아(self)’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것들은 과거 업(kamma)의 결과(vipāka)일 뿐입니다. 즉, 원인들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래의 ‘말-루카뿟따 숫따(Mālukyaputta Sutta)’로 이것을 더 설명하겠습니다.

  • * 그러나 위의 설명은 ‘모든 것이 결정적’이라는 인상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그렇지 않으며, 초기 ‘위빠-까(vipāka) 단계’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룰 때 분명해질 것입니다.

  • * 많은 사람들이 ‘mattam(맛땅)’을 영어로 ‘only(단지)’로 잘못 번역합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현재 번역가들은 “딧테 딧타맛땅(diṭṭhe diṭṭhamattaṃ)”를 “seeing is only seeing(보는 것은 단지 보는 것이다)”으로 번역합니다.

  • * 딧타맛따(diṭṭhamatta)는 ‘스냅샷(스냅사진)’을 의미하며, 말 그대로는 ‘보는 것(시각)의 흔적’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압빠맛따(appamatta)는 ‘중요하지 않은(하찮은)’을 의미합니다. ‘압빠(appa)’는 ‘작은(사소한)’을 의미하고, ‘맛따(matta)’는 ‘자취(흔적)’을 의미합니다. 맛따(matta)는 산스크리트어로 ‘마-뜨라(mātra)’이고, 싱할라어로 'මාත්ර’입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논의했듯이,  우리에게 ‘경험자’를 암시하는 연속적인 감각 경험의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마음(윈냐-나, viññāna)입니다. 그 때문에 붓다께서는 윈냐-나(viññāṇa)를 마술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각은 일련의 스냅사진 - 영화 비유’ 포스트의 #2를 참조하세요.

 

말-루카뿟따 - 더 자세한 동일한 구절

 

9. #8에 있는 위의 그 구절들은 붓다께서 말-루카뿟따 빅쿠에게 말씀하신 숫따인 ‘말-루카뿟따 숫따(Mālukyaputta Sutta (SN 35.95))’에도 있습니다.

“Ettha ca te, mālukyaputta, diṭṭhasutamutaviññātabbesu dhammesu diṭṭhe diṭṭhamattaṃ bhavissati, sute sutamattaṃ bhavissati, mute mutamattaṃ bhavissati, viññāte viññātamattaṃ bhavissati. Yato kho te, mālukyaputta, diṭṭhasutamutaviññātabbesu dhammesu diṭṭhe diṭṭhamattaṃ bhavissati, sute sutamattaṃ bhavissati, mute mutamattaṃ bhavissati, viññāte viññātamattaṃ bhavissati; tato tvaṃ, mālukyaputta, na tena. Yato tvaṃ, mālukyaputta, na tena; tato tvaṃ, mālukyaputta, na tattha. Yato tvaṃ, mālukyaputta, na tattha; tato tvaṃ, mālukyaputta, nevidha, na huraṃ, na ubhayamantarena. Esevanto dukkhassā”ti.)

 

  • * 그것은 위 ‘바-히야 숫따(Bāhiya Sutta)’와 매우 유사합니다. 그러나, 이제 빅쿠 말-루카뿟따(Mālukyaputta)는 자신이 이해한 것을 자세히 말합니다. 그것은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말-루카뿟따 - 들러붙게 되면 일어나는 것

 

10. 그 다음, 빅쿠 말-루카뿟따(Bhikkhu Mālukyaputta)는 위 절에서 붓다께서 의미하신 바를 이해했다고 말합니다. 말-루카뿟따는 자신이 이해한 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루-빵 디스와- 사띠 뭇타-(rūpaṃ disvā sati muṭṭhā),

삐양 니밋땅 마나시 까로또(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

사-랏따찟또 웨데띠(sārattacitto vedeti),

딴짜 앗조사 띳타띠(tañca ajjhosa tiṭṭhati).

 

땃사 왓단띠 웨다나-(tassa vaḍḍhanti vedanā),

아네까- 루-빠삼바와-(anekā rūpasambhavā);

아빗자- 짜 위헤사- 짜(abhijjhā ca vihesā ca),

찟따맛수-빠한냐띠(cittamassūpahaññati);

에왕 아-찌나또 둑캉(evaṃ ācinato dukkhaṃ),

아-라- 닙바-나 윳짜띠(ārā nibbāna vuccati).”

 

번역:

 

“사띠(sati)없이(즉, 그것은 단지 시각의 흔적이라는 것을 모르고) 형색(루-빠, rūpa)을 볼 때,

그것(니밋따 또는 아-람마나)에 들러붙고; 

(탐욕으로) 홀린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며,

그리고 그것에 매여 있게 됩니다.

 

많은 감정이 내면에서 번성하는데, 

그것은 관련된 많은 루-빠(rūpa)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고(anekā rūpasambhavā);

탐욕과 분노도 또한 그렇고,

그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 어지럽혀지며;

이렇게 괴로움을 축적하는 자에게는, 

닙바-나(Nibbāna)는 요원합니다(멀리 있습니다).”

 

말-루카뿟따 - 들러붙지 않게 되면 일어나는 것

 

11. 그 다음, 빅쿠 말-루카뿟따(Mālukyaputta)는 닙바-나(Nibbāna)를 얻기 위해 어떻게 자기 자신을 훈련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 소 랏자-띠 루-뻬수(na so rajjāti rūpesu),

루-빵 디스와- 빠띳사또(rūpaṃ disvā paṭissato);

위랏따찟또 웨데띠(virattacitto vedeti),

딴짜 낫-조사 띳타띠(tañca nājjhosa tiṭṭhati).

 

야탓-사 빳사또 루-빵(yathāssa passato rūpaṃ),

세와또 짜-삐 웨-다낭-(sevato cāpi vēdanāṃ);

키-야띠 노빠찌-야띠(khīyati nopacīyati),

에왕 소 짜라띠- 사또(evaṃ so caratī sato);

에왕 아빠찌나또 둑캉(evaṃ apacinato dukkhaṃ),

산띠께 닙바-나 윳짜띠(santike nibbāna vuccati).”

 

번역:

 

“사띠(sati)로(적절한 이해로) 형색을 볼 때,

형색에 대한 욕망으로 불타 오르지 않고;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며,

그리고 그것을 꽉 붙잡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띠로 행하며

형색에 들러붙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감정들을 경험하는 동안에도;

괴로움은 증가하지 않고, 소진되며;

이렇게 괴로움을 쌓지 않는 사람에게는,

닙바-나(Nibbāna)가 가까이 있습니다.”

 

다음 포스트

 

12. 위에서 빅쿠 말-루카뿟따(Mālukyaputta)가 말한 것으로부터, 우리는 그것이 무아(no-self)라고 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아-람마나(ārammana)와 함께 오는 ‘위빠-까(vipāka) 단계’가 끝난 후에는, 감각 경험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위빠-까(vipāka) 단계에 관련된 그 아낫따-(anattā) 본질을 이해해야만 가능합니다. 그 이해가 없다면, 차착까 숫따의 그 다음 절이 지적하는 것처럼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가질 것입니다.

 

  • * ‘무아(no-self)’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나두고라도, 다음과 같습니다. 위빠-까(vipāka) 단계의 끝에서(즉,  ‘웨다나- 빳짜야- 땅하-’ 단계에서), 감각 경험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됩니다. 그것이 ‘업(kamma) 축적’ 단계입니다. 마음이 그 아-람마나(ārammana)에 견고히 들러붙어 있다면, 그 새로운 단계는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 아-람마나(ārammana)를 즐기는 더 많은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말하고, 그 아-람마나(ārammana)를 추구하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상카-라(saṅkhāra)이고,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a paccayā viññāna)’ 단계를 통해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로 이어집니다

  • * 그러나,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는 (감각 경험과 함께) 위빠-까 단계에서 시작하고 사람이 산가띠(saṅgati)를 가지는 경우만(사람이 해당하는 ‘san gati’를 가지는 경우만) 어떻게 깜마를 축적하기 시작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위 #2를 참조하세요. 들러붙는 그 결정은 찟따 위티의 옷땁빠나 단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위빠-까 윈냐-나와 관련한 아브야-까따 빠띳짜 사뭅빠-다’ 포스트의 #15를 참조하세요.

  • * 그것은 위 #10과 #11에서 빅쿠 말-루카뿟따(Mālukyaputta)가 설명한 것입니다. 차착까 숫따에 대한 논의를 마친 후, 그것을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 * 그 ‘업(kamma) 축적’ 과정의 세부 사항은 자신이 여전히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가지는 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그것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한 초기 감각 경험에 관련된 ‘자아(self)’ 또는 ‘앗따(attā)’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그것은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의 이어지는 절에 있으며, 그것은 다음 포스트에서 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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