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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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닙바-나 ㅡ 라-각카야 도삭카야 모학카야 ㅡ 제1부

     

    원문: Paṭicca Samuppāda 섹션의 ‘Nibbāna – Rāgakkhaya Dosakkhaya Mohakkhaya – Part 1’ 포스트

    - 2021년 2월 19일 작성; 2023년 8월 5일 개정

     

    닙바-나(Nibbāna, 열반)은 “라-각카요 도삭카요 모학카요 ㅡ 이당 윳짜디 닙바-난’띠(rāgakkhayo dosakkhayo mohakkhayo-idaṃ vuccati nibbānan'ti)”, 즉 “닙바-나는 라-가(rāga), 도사(dosa) 및 모하(moha)가 끝나는 것이다”로 정의됩니다.

     

    닙바-나는 무엇인가?

     

    1. 닙바-나(Nibbāna, 열반)를 설명하는 위 구절은 많은 숫따(sutta, 경)에 나타납니다. 위 인용문은 ‘닙바-나빤하- 숫따’( Nibbānapañhā Sutta (SN 38.1) )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 * 라-가(rāga)의 더 강한 버전으로, 로바(lobha, 극도의 탐함)가 있습니다. 로바(lobha)의 마음성향(mindset)을 지닌 사람은 사성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닙바-나(Nibbāna)가 위와 같이 정의된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 * 미래의 모든 괴로움/고통은 로바(lobha), 도사(dosa), 모하(moha)로 인해 발생합니다. 그러나, 로바(lobha)가 라-가(rāga) 수준으로 줄어들 때까지는 성스런 진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로-바, 도-사, 모-하’ 대 ‘라-가, 빠띠가, 아윗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10가지 유형의 잘못된 견해를 제거한 ‘도덕적 마음성향’을 지닌 사람은 대개 ‘라-가(rāga), 빠띠가(patigha), 아윗자-(avijjā) 버전으로 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성향은 어떤 조건(유혹이 충분히 높은 경우)에서 더 강한 로바(lobha), 도사(dosa), 및 모하(moha)로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 * 10가지 유형의 잘못된 견해를 제거한 사람은 사성제를 이해하고 아윗자-(avijjā)(이 세상의 참된 본질에 대해 모름)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라한 단계에서 완결되는 네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 * 이 설명은 요약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및 다음 포스트에서 논의하겠습니다.

     

    위와 같이 정의된 닙바-나는 궁극적인 버전이다 

     

    2. 위에서 정의된 것은 닙바-나(열반)의 궁극적인 버전, 즉 ‘모든 미래의 고통/괴로움을 제거하는 것’을 통한 ‘궁극적인 쿨링 다운(열 내림)’입니다.

     

    • * 이전 세 개의 포스트에서, 필자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핵심(그리고 더 깊은) 기반을 간략하게 설명했습니다. 필자는 사람들이 개요를 볼 수 있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물론 그것들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 * 우리는 그 개념들을 점차적으로 명확하게 할 것입니다.

    • * 그것을 하는 길/방법은 우리가 로바(lobha), 도사(dosa), 모하(moha)를 라-가(rāga), 빠띠가(patigha), 아윗자-(avijjā)로 점차적으로 줄이고 그것들을 로바(lobha), 도사(dosa), 모하(moha) 레벨로 다시 상승시키지 않고 그것들(라-가, 빠띠가, 아윗자-)을 유지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쿨링 다운(cooling down, 열 내림)의 초기 단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 * 빠알리어 한 낱말로바, 도사, 모하 (그리고 라-가, 빠띠가, 아윗자-라는 감소된 레벨)을 나타냅니다. 그 낱말이 ‘산(san)’입니다. ‘산(san)’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산( San )’ 서브섹션에 있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산딧티깡 닙바-낭 ㅡ 닙바-나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염원(번뇌)을 보아야 한다

     

    3. 닙바-나(Nibbāna, 열반)에 이르는 길을 보기(알기) 위해서는 우선 ‘오염원(번뇌)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산_san’을 볼(san diṭṭhika, 산 딧티까)’ 필요가 있습니다.

     

    • * 그렇기 때문에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산딧티까(sandiṭṭhika)’입니다. 붓다 담마의 덕(공덕)을 가리켜 보이는 구절에서, “..바가와따- 담모 산딧티꼬 아깔-리꼬 에히빳시꼬 오빠네이꼬 빳짯땅 웨디땁보 윈뉴-히-띠(..bhagavatā dhammo 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opaneyiko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īti)”에 있는 ‘산딧티까(sandiṭṭhika)’는  붓다 담마를 특별한(독특한) 것 으로 만드는 특질의 하나입니다.

    • * ‘산(san)’의 위험을 보고 그것들을 점차적으로 제거함으로써 닙바-나(마음의 쿨링 다운/열내림)의 첫 번째 단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 그것이 이 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닙바-나(열반)입니다! 특히 ‘산(san)’ (탐함, 성냄, 어리석음/미혹함)의 결점을 볼 수 있다면, 그것(열반)에 이르기가 쉽습니다.

     

    4. 그것이 붓다께서 닙부따 숫따( ‘Nibbuta Sutta (AN 3.55)’ )에서 자-눗소니(Jāṇussoṇi)에게 설명하신 것입니다. 타당한 영어 번역은 ‘Nibbāna (AN 3.55)’에 있습니다.

     

    • * 자-눗소니(Jāṇussoṇi)가 붓다께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고따마 스승님, '직접 보이는 닙바-나(열반), 직접 보이는 닙바-나(열반)'라고 합니다. 닙바-나(열반)는 어떤 식으로 직접 보이고, 즉각적이며, 사람들이 와서 보게 하고, 적용되고, 현명한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합니까?”

    • * 거기에 설명된 것처럼, 탐욕, 증오, 무지(참된 본질에 대한 무지)가 있는 마음은 ‘..정신적 고통과 낙담을 경험합니다.’

    • * 따라서, 탐욕, 증오, 무지(또는,  한 낱말로 ‘산_san’)의 나쁜 결과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을 줄여 ‘더 나은 마음 상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것[더 나은 마음 상태]은 동요가 적은 ‘열내린 마음 상태’이고 낙담하지 않습니다.

    • * 특히, 그것은 자신의 마음에 탐함과 성냄이 일어날 때 알아보기가 쉽습니다. 사람들은 그것들(탐함과 성냄)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나-빠-나(Ānāpāna)와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 명상입니다. 즉 ‘마음챙김’을 하는 것입니다.

    • * 그것이 바로 닙바-나(열반)가 직접 보이고 이 삶에서 경험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아-딧따빠리야-야 숫따(불에 관한 법문)는 ‘마음 속의 불’에 관한 것이다

     

    5. 영어 번역은 아-딧따빠리야-야 숫따( ‘Ādittapariyāya Sutta (The Fire Sermon) )에 있습니다. 모든 영어 번역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그 ‘불(fire)’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하지 않은 ‘낱말별(word-by-word)’ 번역입니다. (Sutta Central에 있는 다른 번역은 ‘Āditta Sutta (SN 35.28)’을 참조하세요.)

     

    • * 그 번역은 “이 불타고 있고, 형상이 불타고 있고, 눈-의식이 불타고 있고, 눈-접촉이 불타고 있고, 그 필수 불가결한 조건의 눈-접촉으로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모든 느낌도 불타고 있다.”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 속의 불’로 이어지는 그 다섯 가지에 대한 들러붙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뜻이 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5가지는 ‘보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 * 그 직역에도 “무엇으로 불타는가? 탐욕의 불로, 증오의 불로, 무지의 불로 불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 그런 5가지 유형의 ‘불의 원천’은 다른 감각, 즉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및 마음 자체로도 일어납니다.

    • * 그러나 그 30가지의 ‘불의 원천’은 항상 ‘마음 속의 불’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30가지 유형의 감각 경험이 모두 마음에 등록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 * ‘보는 것’으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바람(원함)으로 취하는 행위(상카-라를 통한 깜마)로 인해 (조만간) 불타게 되는 것은 마음입니다.

    • * 그 ‘불타는 것’의 어떤 것은 현생에서 나중에 또는 심지어 내생에서 구체화(실현)됩니다. 그 ‘괴로움/고통을 가져올 가능성’은 업 에너지로 축적되고, 그것은 또한 바와(bhava)(미래 괴로움/고통의 원인)와 같습니다! 그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불타는 것(따-빠)은 라-가(탐함)과 도사(화냄)에 근본 원인이 있다 

     

    6. 우리는 좋아하는 것에 들러붙습니다. 이 ‘들러붙음’은 붓다께서 잇차-(icchā), 땅하-(taṇhā), 난디(nandi), 삐야(piya), 까-마(kāma) 등 여러 방식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런 '좋아하는 것'에 접하게 되면 우리는 기뻐하게 되고 부도덕한 행위를 하면서라도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 * 이 세상에서 그런 들러붙음과 기쁜 느낌으로 이어지는 그것들은 우리의 무지한 마음이 ‘까-마구나(kāmaguṇa)' 또는 ‘까-마(kāma)의 특성(특징)/근원(원천)’을 부여하는 것들입니다. 까-마 구나 - 들러붙음(땅하-)의 기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비록 그것들이 일시적인 기쁨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것들은 항상 마음에 ‘열이 있는/불타는 것’(따-빠, tāpa)으로 이어집니다.

    • * #10에 있는 담마빠다(Dhammapada, 법구경) 게송에서 ‘땁빠띠(tappati)’라는 낱말은 ‘뜨거워진/불타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라-가와 도사 ㅡ 동전의 양면

     

    7. 라-가(rāga)와 도사(dosa)는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그 동전 자체가 모하(포괄적으로 ‘아윗자-_avijjā’)입니다. 아윗자-(avijjā)가 있는 한, 라-가(rāga) 또는 도사(dosa)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 * 도사(dosa, 분노/증오/싫어함)는 라-가(rāga)(그리고 ‘로바_lobha’)의 반대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또한 더 많은 감각적 즐거움을 얻으려고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싫어하거나 증오합니다.

    • * 우리는 우리에게 즐거움/행복을 주는 능력 또는 그들이 추한/혐오스러운/우리의 길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외부 대상(사람 또는 사물)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것이든 좋아함/싫어함이라는 두 가지 범주 중 하나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하(moha)라는 근본 원인 때문입니다. 이 명시적 ‘측정/판단’ 또는 ‘평가’는 ‘마-나(māna)’입니다.

    • * 우리는 ‘나(me)’라는 인식으로 ‘측정/평가’를 하고 무엇이 ‘나의 즐거움’을 높이고 ‘나의 불쾌함’을 최소화할 것인지 결정하는 노력으로써 그렇게 합니다. 그것은 그런 행위가 미래의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지게 할 뿐인 우리의 아윗자-(avijjā, 무지) 때문입니다.

     

    모하는 라-가와 도사의 근본 원인이다

     

    8. 때때로 마음은 무엇을 해야 할지 불확실해집니다(위찌낏차-, vicikicchā). 또, 어떤 것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동요/흥분(웃닷짜, uddhacca)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들에는 모하(moha)(또는 ‘아윗자-_avijjā’)만 있습니다.

     

    • * 달리 말하면, 모하(moha)는 라-가(rāga), 도사(dosa), 및 다른 모든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의 근본 원인입니다.

    • * 더욱이, 모하(moha)의 가장 깊은 레벨은 마-나(māna), 웃닷짜(uddhacca), 아윗자-(avijjā)에 있습니다. 그것들은 아라한 단계에서만 제거됩니다. 그것은 루빠 라-가(rupa rāga), 아루빠 라-가(arupa rāga), 마-나(māna), 웃닷짜(uddhacca), 아윗자-(avijjā)라는 마지막 다섯 가지 상요자나(Saṃyojana, 윤회 과정에 결박/족쇄) 중의 하나입니다.

    • * 그런데, 까-마 라-가(kāma rāga)는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다음 단계인 아라한뜨 아누가-미(Arahant Anugāmi)가 되면, 루빠 라-가(rupa rāga)와 아루빠 라-가(arupa rāga)가 없어집니다. 오직 아라한 단계에서만 마지막 세 가지, 즉 마-나(māna), 웃닷짜(uddhacca), 아윗자-(avijjā)가 제거됩니다. 여기서, 마-나(māna)와 웃닷짜(uddhacca)는 라-가(rāga)와 도사(dosa)가 남긴 마지막 흔적이다. 아윗자-(avijjā)는 제거된 모하(moha)의 마지막 흔적이며, 그것을 끊는 것은 재탄생 과정(‘상사-라_saṃsāra’, 윤회)에 대한 모든 유대(결박, 족쇄)를 끊는 것입니다.

     

    아윗자-와 땅하-는 함께 간다!

     

    9. ‘나(me)’에 대한 현명하지 못한 인식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것에 들러붙고(라-가, rāga), 다른 것을 멀리하려고(도사, dosa)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두 가지 유형에 모두 '정신적으로 묶여' 있습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더 가까이 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을 멀리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땅하-(taṇhā)는 두 경우에 모두 관련되어 있습니다. ‘땅하-, 탐함과 미워함과 미혹함을 통해 어떻게 들러붙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붓다께서 설명하신 이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아윗자-(avijjā)를 제거하지 못하는 한, 땅하-(taṇhā)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 그 이해를 향한 첫 번째 단계는 도덕적 삶을 살고 마음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담마(Dhamma), 즉 ‘왜 감각적 즐거움(까-마, kāma)은 반드시 미래의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 * 따라서, 우리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와 다사 꾸살라(dasa kusala)를 이해하는 다음 단계에 도달해야 합니다.

    • * 이 모든 빠알리(Pāli) 용어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더 논의할수록 그것들은 [그 의미가] 명확/분명해질 것입니다. [억지로]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개념을 이해하면 그것들은 익숙해질 것입니다.

     

    다사 아꾸살라와 다사 꾸살라

     

    10. 닙바-나(열반)로 가는 길은 부도덕한 행위, 즉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부도덕한 행위(다사 아꾸살라)’ 참조)를 피하고, 공덕 행위, 즉 다사 꾸살라(dasa kusala)( ‘다사 아꾸살라/다사 꾸살라  ㅡ 붓다 담마의 기초 ㅡ 제1부’ )를 행하는 것입니다.

     

    • *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의 단점/결점은 아래 담마빠다(Dhammapada) 게송으로 간결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Idha tappati, pecca tappati,    현재도 고통 당하고, 미래에도 고통 당하며,

    pāpakārī ubhayattha tappati.    악행을 하는 자는 두 세상에서 모두 고통을 겪는다.

    Pāpaṃ me katan’ti tappati,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현재에 고통을 겪고,

    bhiyyo tappati, duggatiṃ gato.    악처에 태어났을 때 더 많은 고통을 겪는다.

     

    • * 같은 식으로, 다사 꾸살라(dasa kusala)의 이점은 현생과 내생에서 분명합니다.

     

    Idha nandati, pecca nandati,    현재도 기쁨을 누리고, 미래에도 기쁨을 누리며,

    katapuñño ubhayattha nandati.    선행을 하는 자는 두 세상에서 모두 기쁨을 누린다. 

    Puññaṃ me katan’ti nandati,    도덕적으로 행했다는 것을 알고 현재에 기쁨을 누리고,

    bhiyyo nandati, suggatiṃ gato.    선처에 태어났을 때 더 많은 기쁨을 누린다.

     

     

    [관련] 포스트들은 이 서브섹션 ‘빠띳짜 사뭅빠-다 ㅡ 필수 개념(Paṭicca Samuppāda – Essential Concept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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