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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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하(어두운)와 숙까(밝은) 깜마와 깜막카야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Kanha (Dark) and Sukka (Bright) Kamma and Kammakkhaya’ 포스트

- 2018년 6월 11일; 2019년 1월 21일 개정; 2020년 7월 26일 개정; 2022년 8월 27일 개정

 

깐하/숙카 깜마는 빠-빠/뿐냐 깜마와 동일하다

 

1. 깐하(kanha, 어두운), 숙카(sukka, 밝은), 및 깜막카야-야 깜마(kammakkhayāya kamma)는 꾹꾸라와띠까 숫따(Kukkuravatika sutta)에서 니데사(niddesa) 버전으로 간략하게 논의된 중요한 용어입니다. 이 포스트는 오늘 게시된 두 번째 포스트(‘꾹꾸라와띠까 숫따(맛지마 니까-야 57) ㅡ 깜막카야’ 포스트)에 있는 그 숫따를 논의하기 전에  이들 용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할 것입니다. 2018년 6월 19일: Siebe님은 이들 용어를 언급하고 있는 더 많은 숫따(앙굿따라 니까야에 있는 AN 4.232 ~ AN 4.238)를 필자에게 보내주셨습니다. Siebe님, 감사합니다!

 

  • * 깐하 깜마(kanha kamma)와 숙카 깜마(sukka kamma)는낄레사 ㅡ 아꾸살라, 꾸살라, 및 뿐냐 깜마와 관계’ 포스트에서 논의된 빠-빠 깜마(pāpa kamma)와 뿐냐 깜마(puñña kamma)에 지나지 않습니다.

  • * 깐하(kanha)는 ‘어두운’을 의미하며 빠-빠 깜마(pāpa kamma, 나쁜 깜마)를 나타냅니다. 숙카(sukka)는 ‘밝은’ 또는 ‘흰’을 의미하며 뿐냐 깜마(puñña kamma, 좋은 깜마)를 나타냅니다. 신들의 왕은 ‘숙카(뿐냐) 깜마’를 행하므로  ‘삭까(Sakka)’라고 합니다.

  • * 두 가지(깐하 깜마와 숙카 깜마) 모두 ‘꾸살라 깜마(kusala kamma)’와는 다릅니다. 여기서 의도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깜마, 상카-라, 및 아비상카-라 ㅡ 의도란 무엇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 포스트는 닙바-나(Nibbāna)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므로, ‘세 단계 실천’ 섹션의  ‘열반을 구하기(Seeking Nibbāna)’ 서브섹션에 배치하였습니다.

 

깜막카야-야 깜마는 꾸살라 깜마와 동일하다

 

2. 깜막카야-야 깜마(kammakkhayāya kamma)라는 용어는 ‘꾸살라 깜마(kusala kamma)’와 동일한 의미입니다.

 

  • * 깜막카야-야 깜마(kammakkhayāya kamma)는 기존의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을 무효화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깜마(kamma)’를 의미합니다. 깜막카야(kammakkhaya)의 문자적 의미는 ‘깜마/깜마 위빠-까(kamma/kamma vipāka)의 제거’라고 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 깜막카야-야(kammakkhayāya)와 깜마카야(kammakkhaya)라는 말 사이의 차이에 주목하세요. 

  • * 깜막카야(kammakkhaya) 단계는 ‘깜막카야-야 깜마(kammakkhayāya kamma)’ 또는 ‘깜막카야(kammakkhaya)로 이어지는 깜마(kamma)’를 행하여 자신의 마음을 정화함으로써 도달됩니다. 이것들은 꾸살라 깜마(kusala kamma)와 같습니다.

 

깜막카야는 빤냐-를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3. 깜마(kamma)가 행해지면, 그것의 에너지는 자연적으로 닳아 없어질 때까지 오랫동안 유지됩니다. 그러나 각자는 그 깜마(kamma)가 위빠-까(vipāka)를 가져올 수 있는 조건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깜막카야(kammakkhaya)’의 의미입니다.

 

  • * 예를 들어, 앙굴리말라(Angulimala)는 999명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 행위는 깜마 비-자(kamma bīja, 적절한 ‘위빠-까’를 가져올 수 있는 에너지)를 생성했고, 그 에너지 중 일부는 여전히 거기에 있을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앙굴리말라(Angulimala)는 부처님을 만난지 두어주 만에 아라한과를 얻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앙굴리말라 존자(Ven. Angulimala)의 마음은 순수해졌고 그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가 싹트는 데 적합한 조건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 * 수많은 년 동안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보관되어 있는 씨앗이 결국에는 쓸모없게(더 이상 발아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앙굴리말라(Angulimala)의 깜마 비-자(kamma bīja)는 언젠가는 정말로 쓸모없는 씨앗이 될 것입니다.

  • * 비록 그 깜마 비-자(kamma bīja)는 앙굴리말라 존자(Ven. Angulimala)의 임종 때 강력(활성)하였지만, 임종 때(즉, 쭈띠-빠띠산디 순간에) 그 마음에서 싹틀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사실상 무효(쓸모없음)’로 되었습니다. 그것이 ‘깜막카야(kammakkhaya)’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빠-다-나가 없이는 깜마 비-자는 새로운 바와를 가져올 수 없다

 

4. 각자의 마음은 다양한 깜마 비-자(kamma bīja)가 싹트는 곳입니다. 보통 인간은 누구나 이 생이 아니더라도 전생 중에 아빠-야(apāya)로 재탄생하기에 적합한 많은 깜마 비-자(kamma bīja)를 생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깜마 비-자-(kamma bījā)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위빠-까(vipāka)를 가져올 것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 * 여기서 핵심은 (앙굴리말라 존자와 같은) 정화된 마음이 나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움켜잡지(우빠-다-나)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존자의 육체(physical body)는 임종할 때까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받았습니다.

정화된 마음이 왜 깜마 비-자(kamma bīja)를 움켜잡지 못하는지 알 수 있는 다른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마음을 ‘훅(갈고리)이 볼(링)에 들러붙은 것’으로 시각화해 보세요(위 그림 참조). 갈고리의 크기는 마음이 오염되어 있는 정도에 비례합니다.

 

그리고, 깜마 비-자(kamma bīja)를 다양한 크기의 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깜마 위빠-까를 가져올 수 있는 작은 깜마 비-자부터 큰 깜마 비-자를 나타내는) 아주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한 크기의 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 * 앞으로도 이 비유를 계속 되짚어 볼 것이므로 확실히 이해하도록 해 보세요. 그렇게 되면, 아-사와(āsava), 아누사야(anusaya), 및 가띠(gat)와 같은 많은 다른 개념을 이해하기가 더 쉬워질 것입니다.

 

우빠-다-나는 훅(갈고리)과 같다

 

5. 크게 오염된(즉, 들러붙는 큰 갈고리를 가진) 마음을 상상해 보세요. 또한, 다양한 크기의 많은 깜마 비-자(kamma bīja)(다양한 크기의 많은 링)가 있는 곳을 상상해 보세요.

 

  • * 갈고리는 비슷한 크기의 링을 집게 됩니다. 그 갈고리는 작은 링을 집을 수도 없고 너무 큰 링을 집을 수도 없습니다.

  • * 이와 같은 식으로, 크게 오염된 마음은 ‘큰 깜마 비-자(kamma bīja)’를 집고, 덜 오염된 마음은 ‘더 작은 깜마 비-자(kamma bīja)’만 집습니다.

  • * 이것은 마음이 자신의 가띠(gati)와 어울리는 바와(bhava), 즉 깜마 비-자(kamma bīja)를 움켜잡는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살인을 한 자는 ‘큰 링’에 해당하는 지옥(니라야, niraya)의 바와(bhava)를 움켜잡을 것입니다. 그 자는 인간이나 데와(deva, 천신) 영역의 바와(bhava)를 움켜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 작아서 그 자의 큰 갈고리(크게 오염된 마음)에 집히지(얽히지) 않을 것입니다.

  • * 이것은 또한 위 3번에서 ‘자신의 마음으로 조건을 바꾸는 것’의 의미입니다. 완전히 정화된 마음은 ‘정신적 갈고리’가 없습니다. 그 마음 상태가 바뀌었습니다.

 

6. 붓다께서 가르치신 성스런 길(팔정도)을 따라갈 때 일어나는 일은, 이 비유에서 자신의 ‘정신적 갈고리’ 크기가 작아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빤냐-가 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를 행하여 이 일을 합니다. 꾸살라(kusala)는 마음에서 오염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꾸살라(kusala)는 ‘꾸(ku) + 살라(sala)로 합성된 말이며, 여기서 꾸(ku)는 오염을 의미하고, 살라(sala)는 ‘제거’를 의미합니다.

  • *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는 기존의 나쁜 또는 좋은 깜마 비-자(kamma bīja)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꾸살라 깜마는 단지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며, 현재 비유에서, 다양한 좋거나 나쁜 깜마 비-자(kamma bīja) 링을 집을 수 있는 ‘정신적 갈고리를 마모(축소)’시킵니다.

  • * 따라서, 깜막카야(kammakkhaya)는 이 비유에서 정신적 갈고리를 축소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그런데, 가장 큰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는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입니다.

 

우빠-다-나의 감소

 

7.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 단계에 도달하기 전에도 정신적 갈고리는 그 크기가 계속 줄어들 수 있지만, 그 감소가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물론, 깜마 비-자(kamma bīja), 즉 링은 거의 그대로 유지됩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하면, 이 세상이 결실 없고 위험하다는 특성, 특히 아빠-야(apāya)의 위험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한 생각 순간(소-따빤나 팔라 순간, Sōtapanna phala moment)에 정신적 갈고리가 급격히 작아집니다.

  • * 아윗자-(avijjā)는 그 감소 규모에 따라 감소할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때(도과 순간)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행동 변화를 예전과 비교해 보면 며칠 또는 몇 주 내에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의 마음은 아빠-야(apāya)에 재탄생할 수 있는 강한 깜마 비-자(kamma bīja)에 해당하는 큰 링을 더 이상 잡을 수 없습니다.

  • * 띨락카나(Tilakkhana, 삼법인)의 이해를 통해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의 두 번째 층을 제거함으로써 소-따빤나가 됩니다.

 

8.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사다함) 단계와 아나-가미(Anāgāmi, 아나함) 단계를 거치면서, 정신적 갈고리의 크기가 줄어듭니다. 아라한뜨 팔라(Arahant phala) 단계에서,   ‘아윗자-(avijjā)’가 완전히 제거됨과 함께 갈고리가 사라지고, ‘빤냐-(paññā)’가 절정에 이릅니다.

 

  • * 따라서, ‘깜막카야(kammakkhaya)’는 깜마 비-자(kamma bīja)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자신의 아-사와(āsava) 또는 가띠(gati)를 줄여, 자신의 마음이 ‘큰 깜마 비-자(kamma bīja)’에 해당하는 ‘나쁜 바와(bad bhava)’를 움켜잡지 못합니다.

  • * 앙굴리 말라 존자(Ven. Angulimala)의 경우에, 존자의 모든 링(살인한 큰 것 포함)은 임종 당시 거기에 있었습니다. 단지 존자의 마음이 청정하게 되어 정신적 갈고리가 사라진 것입니다. 존자의 마음은 임종시에 31영역의 어떤 바와(bhava)도 움켜잡을 수 없었습니다.

  • * 그래서, 정신적 갈고리를 마모(축소)시키는 것은 아-사와(āsava)와 아누사야(anusaya)를 줄이고 가띠(gati)를 제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정신적 갈고리’가 사라집니다(그리고, 아사왁카야(asavakkhaya) 또는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로 이어집니다).

 

꾸살라 깜마-는 기존의 깜마 비-자를 제거하지 않는다

 

9. 깜막카야-야 깜마(Kammakkhayāya kamma, ‘깜막카야’로 이어지는 ‘깜마’) 또는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는 기존 깜마 비-자(kamma bīja)를 직접 제거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기존 깜마 비-자(kamma bīja)가 위빠-까(vipāka)를 가져올 수 없는 마음 상태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이해할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만큼 이 포스트를 다시 읽어 보세요. 그리고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토론 포럼에서 질문해 보세요.

 

  • * 이것은 ‘아난따라와 사마난따라 빳짜야( ‘아난따라와 사마난따라 빳짜야-’ 포스트 참조)’를 기반으로 합니다.

  • *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를 계속 행함에 따라, 자신의 지혜(paññā)가 자라서 이 세상의 참된 본질(불만족스러운 본질) 즉 띨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닙바-나(Nibbāna)의 네 단계를 통해 까막카야(kammakkhaya)로 이어질 것입니다.

  • *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를 통한 깜막카야(kammakkhaya)는 정신적 갈고리(아-사와_āsava / 아누사야_anusaya / 가띠_gati)의 축소로 이어지고, 그래서 점점 더 많은 깜마 비-자(kamma bīja, 위 비유에서 링)가 ‘사실상 무효(쓸모없음)’로 될 것입니다. 위 4번과 5번을 참조하세요.

  • * 위 비유로 볼 때, 다음이 일어납니다. 비록 모든 링이 여전히 거기에 있지만, 점점 더 많은 링들이 ‘축소되는(줄어드는) 갈고리’에 걸리지(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10. 따라서, 깜막카야(kammakkhaya)는 여러 레벨에서 일어납니다.

 

  • * 아빠-야(apāya)에 재탄생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서 ‘사실상 무효(쓸모없음)’가 됩니다. 이 단계에서 그 마음은 아빠-야(apāya)에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의 위험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심적 경향(사고방식, mindset)의 급격한 변화’이며, 다른 ‘세계관’입니다.

  • * 인간계에 재탄생을 가져올 수 있는 것들은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사다함) 단계에서 ‘사실상 무효(쓸모없음)’가 됩니다. 그 성자는 ‘감각적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소유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 * 까-마 로-까(kāma lōka)의 어느 한 곳에라도 재탄생을 가져올 수 있는 것들은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 ‘사실상 무효(쓸모없음)’가 됩니다. 이제, 그 성자는 감각적 즐거움이 위험하다는 것을 ‘가슴 깊이’ 알고 있습니다. 

  • * 31 영역의 어느 한 곳에라도 재탄생을 가져올 수 있는 것들은 아라한뜨(Arahant) 단계에서 ‘사실상 무효(쓸모없음)’가 됩니다.

 

뿐냐 깜마와 빠-빠 깜마

 

11. 이제 뿐냐 깜마(puñña kamma)와 빠-빠 깜마(pāpa kamma)의 의미를 살펴 보겠습니다. 뿐냐(숙카) 깜마(puñña (sukka) kamma) 및 빠-빠(깐하) 깜마(pāpa (kanha) kamma)가 무엇인지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에 재탄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 * 31 영역에 바와(bhava)(따라서 자-띠, jāti)를 일으키는 6가지 근본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로-바(lōbha, 탐함), 도-사(dōsa, 미워함), 모-하(mōha, 무지함), 아로-바(alōbha, 탐함없음), 아-도사(adōsa, 미워함 없음), 아모-하(amōha, 무지함 없음)입니다. 아-모하(amōha)는 빤냐-(paññā, 지혜)를 의미하지는 않음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모하’는 단지 어리석거나 도덕적으로 눈멀지 않고 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3가지 나쁜 근본원인(로-바, 도-사, 모-하)의 어떤 조합으로 행위할 때, 빠-빠 깜마(pāpa kamma)를 짓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또한 깐하(kanha, 어두운) 깜마(kamma)라고도 합니다. 이 깜마의 생각에서는 아소-바나 쩨따시까(asōbhana cetasika, 나쁜 또는 어두운 정신 요소)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또한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입니다. 이로 인해 아빠-야(apāya )에 태어나게 됩니다(두가띠, dugati).

  • * 3가지 좋은 근본원인(아로-바, 아도-사, 아모-하)의 어떤 조합으로 행위할 때,  뿐냐 깜마(puñña kamma)를 짓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또한 숙까(sukka, 밝은) 깜마(kamma)라고도 합니다. 이 깜마의 생각에서는 소-바나 쩨따시까( sōbhana cetasika, 좋은 또는 밝은 정신 요소)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그 자가 아라한과에 이를 때까지, 좋은 영역에 태어나게 합니다(수가띠, sugati).

  • * 아라한 성자의 정화된 마음은 빤냐-(paññā,  지혜)를 포함하여 소-바 나 쩨따시까(sōbhana cetasika)를 극대화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쭈띠-빠띠산디(cuti-patsandhi, 죽음-재생연결) 순간에 어떤 바와(bhava)도 움켜잡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31영역의 어떤 존재도 무의미(무익)하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12. 뿐냐(숙카) 깜마(puñña (sukka) kamma)는 좋은 영역(인간계 이상)에 재탄생할 수 있는 ‘좋은 깜마 비-자(kamma bīja)’를 생성합니다. 그것들은 또한 삶 중에 ‘좋은 위빠-까(vipāka)’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 * 빠-빠(깐하) 깜마(pāpa (kanha) kamma)는 나쁜 영역(인간계 아래, 즉 아빠-야, 악처)에 재탄생할 수 있는 ‘나쁜 깜마 비-자(bad kamma bīja)’를 생성합니다. 그것들은 또한 삶 중에 ‘나쁜 위빠-까(vipāka)’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 * ‘낄레사 ㅡ 아꾸살라, 꾸살라, 및 뿐냐 깜마와 관계’ 포스트에서 논의했듯이, 빠-빠(깐하) 및 뿐냐(숙카) 깜마 비-자(kamma bīja) 모두로 이어지는 깜마(행위)가 또한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꾹꾸라와띠까 숫따(Kukkuravatika sutta)에서 그것들을 ‘깐하숙카(kanhasukka)’ 깜마(kamma)라고 하셨고, 그것들의 위빠-까(vipāka)를 ‘깐하숙까 위빠-까(kanhasukka vipāka)’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깐하숙까 위빠-까’는 일부 영역(인간, 데와, 및 위니빠따 영역)에서 좋고 나쁜 위빠-까(vipāka)를 일으킵니다. ‘꾹꾸라와띠까 숫따(맛지마 니까-야 57) ㅡ 깜막카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뱀이 개구리를 잡는 것을 막는 자의 행위가 그 예입니다. 그 자는 개구리의 생명을 구함으로써 뿐냐 깜마(puñña kamma)를 행하는 것이지만, 또한 그 자는 뱀이 먹는 것을 먹지 못하게 막음으로써 빠-빠 깜마(pāpa kamma)를 행하는 것입니다.

 

꾸살라/뿐냐 깜마는 아빠-야-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13. 이해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아빠-야(apāya, 악처)에 태어났을 때는 어떤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도 행할 수 없고 정신적 갈고리를 마모(축소)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빠-야(apāya)의 4가지 영역에 있는 유정체는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를 할 수 없고 뿐냐 깜마(puñña kamma)도 거의 할 수 없습니다.

 

  • * 이 때문에 뿐냐 깜마(puñña kamma)를 행하고 빠-빠 깜마(pāpa kamma)를 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좋은 영역에 태어나서 닙바-나(Nibbāna)를 향해 일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합니다.

  • * 이것을 숙고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뿐냐 (숙카) 깜마(puñña (sukka) kamma)가 재탄생으로 이어지지만, 그 재탄생은 닙바-나(Nibbāna)를 향해 일할 수 있는 좋은 영역, 즉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를 행하고 정신적 갈고리를 마모(축소)시킬 수 있는 좋은 영역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 * 또한,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필요한 배경을 설정합니다. 즉, 아-유(āyu, 긴 수명), 완나(vanna, 건강함), 수카(sukha, 세간 행복), 발라(bala, 부유함) 및 빤냐-(paññā, 지혜)를 얻게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2가지 종류(버전)의 37조도품’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인간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런 배경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누군가 극도로 가난하고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태어났다면, 담마를 이해하는 올바른 ‘심적 경향(사고 방식, mindset)’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14. 위 설명은 꾹꾸라와띠가 숫따(Kukkuravatika Sutta)에 닛데사(간략한 설명) 버전으로 응축되어 있습니다. 빠띠닛데사(patiniddesa, 상세한 분석)는 이 포스트와, 이와 동반하는 ‘꾹꾸라와띠까 숫따(맛지마 니까-야 57) ㅡ 깜막카야’ 포스트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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