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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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 마-라 세나-(마-라세나-) ㅡ 열 가지 오염원

 

원문: Myths or Realities? 섹션의 ‘Dasa Māra Senā (Mārasenā) – Ten Defilements’ 포스트

 

‘다사 마-라세나-(dasa mārasenā)’는 ‘마-라의 10가지 군단’을 나타내고, 여기서 마-라는 마-라 데와뿟따(Māra Devaputta)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다사 마-라세나-’는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우리들의 갈망, 즉 까-마 라-가(kāma rāga)로 인해 우리 마음에 주로 일어나는 ‘열 가지 오염원’입니다.

 

2024년 2월 19일 작성

 

마-라 데와뿟따는 누구인가?

 

1. 마-라(Māra)는 가장 높은 데와 영역인 ‘빠라님밋따 와사왓띠- 데와(Paranimmita Vasavattī Deva) 영역’에 있는 데와-들의 지도자 명칭입니다. 그를 흔히 마-라 데와뿟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사악한 존재라고 많은 이들이 지니는 인상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하- 브라흐마와 같이, 자신이 영구적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자신이 인간일 때 육성한 뿐냐 깜마(puñña kamma) 때문에 그곳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살고 뿐냐 깜마를 행하여, 자신처럼 데와로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 * 그러나, 그는 빠띳자 사뭅빠-다 또는 사성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닙바-나는 단멸(절멸)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이것은 오늘날 많은 세속 불교도들의 잘못된 견해입니다. ‘재탄생(윤회)과 닙바-나(열반)가 없는 불교는?’를 참조하세요. 

  • * 그 때문에 그는 붓다와 불제자들을 [닙바-나에 이르지 못하도록] 설득하려고 힘썼습니다. 아래 #3을 보세요.

  • * 그러나, 어떤 데와나 브라흐마도 어떤 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을 그만두게 할 수 없습니다. 각자는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 31 영역으로 된 세상에 대한 오해를 없애고 모든 ‘즐길만한 경험’이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지혜로’ 보는(담마 짝쿠) 것입니다. ‘세 단계 실천’ 섹션의 ‘인식(산냐-) 이해를 통한 소따빤나 단계(Sotapanna Stage via Understanding Perception (Saññā))’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2. 따라서, 마-라 데와뿟따(Māra Devaputta)는 그가 다른 사람들이 닙바-나를 얻지 못하도록 힘쓰기 때문에만 악합니다. 

 

  • * ‘Māratajjanīya Sutta (MN 50)’에서, 목갈라나 존자는 자신이 과거에 두-시-(Dūsī)라는 이름으로 불린 마-라(즉, 빠라님밋따 와사왓띠- 데와 영역의 지도자)였다고 마-라 데와뿟따에게 말합니다. 그것은 까꾸산다 붓다(Kakusandha Buddha) 시대였으며, 숫따에서는 두-시- 마라가 어떻게 부처님의 상수 제자 중의 한 분인 위두라(Vidhura)에게 상처를 입혔는지를 묘사합니다. 

  • * 그리고 목갈라나 존자는 자신이 어떻게 그 부도덕한 행위 때문에 아빠-야(사악처)에 태어났는지를 설명했습니다.

  • * 요점은 빠라님밋따 와사왓띠- 데와 영역의 지도자도 아-빠야-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즉 뿐냐 깜마를 행하는 것으로는 미래 괴로움을 멈출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라 데와뿟따의 노력

 

3. 마-라 데와뿟따는 모든 이들이 뿐냐 깜마를 행하여 데와 영역에 태어나서 감각적 즐거움을 즐겨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는 자신이 미래에 아빠-야-에 태어나는 것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닙바-나가 단멸(절멸)을 의미한다고 믿습니다.

 

  • * ‘홈’ 섹션의 ‘괴로움 없는 순수한 마음을 회복(Recovering the Suffering-Free Pure Mind)’을 시작하는 포스트 시리즈에서, 단멸되는 (사람과 관련된) 영혼과 같은 본질이 없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 * 마-라 데와뿟따는 부처님을 많이 만났습니다. ‘Tapokamma Sutta (SN 4.1)’로 시작되는 20개의 숫따 시리즈를 참조하세요. 그는 또한 빅쿠/빅쿠니들을 [열반에 이르는 것을] 그만두게 하려고 힘썼습니다. ‘Sambahula Sutta (SN 4.21)’로 시작되는 5개의 숫따와 ‘Āḷavikā Sutta (SN 5.1)’로 시작되는 10개의 숫따를 참조하세요.

  • * 마-라 데와뿟따는 어느날 죽을 것이고, 그 후에 그는 재탄생 과정으로 떠돌며 (닙바-나를 달성하지 못하는 한) 여러 번 아빠-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 * 주: 관련없는 낱말로 마-리사(mārisa)가 있습니다. 그것은 존경하는 표현이고, ‘Sir(선생님)’과 비슷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Brahmanimantanika Sutta (MN 49)’에서, 붓다께서 바까 브라흐마를 방문했을 때, 그 브라흐마는 붓다께 “ehi kho, mārisa, svāgataṁ, mārisa’, 즉 “어서 오세요, 선생님! 환영합니다, 선생님!”라고 인사했습니다. 

 

빤짜 우빠-다-낙 칸다는 ‘마-라’다

 

4. ‘Māra Sutta (SN 23.1)’에서,  라-다 존자는 붓다께 “사람들은 ‘마-라’라고 말합니다. 마-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 * 붓다께서는 빤짜 우빠-다낙칸다(pañca upādānakkhandha)(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를 마-라(Māra), 즉 ‘죽음’으로 여겨야 할 것이라고 존자에게 설명하셨습니다. 

  • *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무지로 인해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를 기꺼이 껴안습니다(우빠-다-나/땅하-).

  • * 숫따-에서, 루빠는 ‘루빠 우빠-다-낙칸다(rupa upādānakkhandha)’, 즉 ‘마음이 생성한 루빠’를 의미한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따라서, 특별히 말하지 않으면, 숫따-에서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는 항상 마음에 일어나는 해당하는 ‘우빠-다-낙칸다’를 지칭합니다.

  • * 그 때문에 다섯 가지 유형의 ‘우빠-다-낙칸다’를 갈망하는 한,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따라서, ‘마-라’는 재탄생 과정에서 (반복되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태어남이 있는 한, 죽음이 있을 것입니다.

 

‘다사 마-라세나-’는 ‘열 가지 오염원’이다

 

5. 그러므로 ‘다사 마-라세나-’ 중의 ‘마-라’는 마-라 데와뿟따(Māra Devaputta)가 아니라 ‘죽음’, 즉 ‘마라나(marana)’를 나타냅니다. 

 

  • * ‘다사 마-라세나’, 즉 ‘열 가지 오염원’은 우리를 재탄생 과정에 계속 갇히게 하고 죽음을 영구화합니다. 31 영역 어디에서나 모든 태어남은 죽음으로 끝납니다.

  • * 죽음(그리고 괴로움/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모두의 안에 감춰진 ‘빠밧사라 찟따(pabhassara citta)(‘pabhasara citta’가 아님), 즉 ‘순수한 마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참된 행복은 괴로움이 없는 것이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6. ‘다사 마-라세나-(dasa mārasenā)’, 즉 ‘열 가지 오염원’은 빤쭈빠-다-낙칸다( pañcupādānakkhandha )에 들러붙는 것의 근본 원인입니다. 또한, ‘Dhammacakkappavattana Sutta (SN 56.11)’에서, 빤쭈빠-다-낙칸다가 되는 것을 둑카로 표현하셨는데,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즉 “간단히 말하여, 다섯 가지 취착의 무더기가 괴로움/고통이다.”입니다.   

 

  • * 마음이 ‘마음이 만든 루빠’(‘나-마루빠’와 동일하며, 루빠 우빠-다낙칸다와 동일함)가 계속 생성되는 한, 재탄생 과정의 ‘탄생/죽음 사이클’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식으로, 마음이 ‘마음이 만든 웨다나-’(‘삼팟사ㅡ자-ㅡ웨다나-나-마루빠’와 동일하며, 웨다나- 우빠-다낙칸다와 동일함)가 계속 생성되는 한, 재탄생 과정의 ‘탄생/죽음 사이클’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유사하게, 왜곡된 산냐-(distorted saññā)(또는 ‘산냐- 위빨라사’)에 들러붙는 것에 대해서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가 생성되고, ‘산 쩨따나-(san cetanā)’를 수반하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가 생성되는 것입니다.

  • * 주:  ‘cetanā’는 ‘chethanā’로 발음됩니다.

 

다른 마-라 숫따-들

 

7. 여러 숫따-가 동일한 ‘마-라 숫따(Māra Sutta)’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고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는데, SN 23. 11, SN 23. 23, SN 23.24, SN 23. 35, SN 23.36.입니다.

 

  • * ‘Paṭhamasamiddhimārapañhā Sutta (SN 35.65)’는 다른 접근의 마-라(Māra)를 묘사합니다.

  • * ‘Māra Sutta (SN 46.43)’에서, 붓다께서는 ‘마-라의 군단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삿따 봇장가(satta bojjhaṅga)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우리가 위해서 논의한 그 오염원을 의미합니다.

 

열 가지 오염원은 빤짜 우빠-다-낙칸다로 이어진다

 

8. 우리의 보디삿따께서 깨달음의 밤에 대항하여 싸우신 다사 마-라세나-(dasa mārasenā)는 까-마(감각적 즐거움)로 시작되는 열 가지 유형의 오염원입니다. 그것은 정신적인 전투였습니다

 

  • * ‘Padhāna Sutta (Snp 3.2)’에서는 붓다께서 어떻게 ‘다사 마-라세나’, 즉 ‘열 가지 오염원’을 극복하셨는지에 대한 설명을 기술하고 이 열 가지 오염원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 * 여러분은 링크 주소에서 다음 수정 사항과 함께 숫따의 영어번역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표식 1.4에서 “족쇄에서 피난처를 찾기 위해서” 대신에, “이 세상에 들러붙는 것에서 벗어나는 길을 발견하기 위해”로 읽으십시오. 

  • * 표식 2.1에서, ‘나무찌-(Namucī)’는 보디삿따에게 접근하여 그 노력을 포기하고 재가 생활로 돌아가 삶을 즐기도록 확신시키려고 힘쓴 마-라 데와뿟따를 지칭합니다. 표식 3.3에서, 마-라 데와뿟따는 보시삿따에게 “사십시요, 선생님! 삶이 더 좋습니다! 재가 생활을 하면서, 공덕을 쌓을 수 있습니다(puññāni kāhasi.)”라고 말합니다. 

  • * 알다시피, (꾸살라 깜마가 되게 노력하는 것이 없이) 뿐냐 깜마(puñña kamma)를 짓는 것으로는 닙바-나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낄레사 ㅡ 아꾸살라, 꾸살라, 및 뿐냐 깜마와 관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열 가지 오염원에 대한 논의

 

9. 열 가지 오염에 대한 묘사는 ‘Padhāna Sutta (Snp 3.2)’의 표식 12.1에서 시작됩니다.

 

1) 까-마(kāma, 감각적 즐거움): “Kāmā te paṭhamā senā”, 즉 “감각적 즐거움은 당신의 첫째 군단입니다.”

 

  • * 모든 유정체는 빤짜 까-마(pañca kāma)에 대한 타고난 갈망을 지닙니다. 이 갈망(까-마 라-가)는 특히 맛, 냄새, 및 촉감(성관계)라는 3가지 밀접한 접촉에 기반합니다. 그러나, 다섯 가지 육체 감각 기능은 모두 완전히 ‘그런 밀접한 접촉을 경험하는 데 몰입’하기 위해 이용되며, 따라서 ‘빤짜 까-마’라는 용어며, 6가지 데와 영역, 인간 영역, 및 사악처에서 경험됩니다. 

  • * 하지만, 간혹 일부의 유정체는 빤짜 까-마로서 만족하지 못하여 ‘자-나(선정)의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루빠 로까’에 재탄생하는데, 그곳에는 세 가지 ‘밀접한 접촉’이 없습니다.

  • * 그 요기(수행자)들의 일부는 자-나-(jhānā)를 넘어서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upāvacara samāpatti)를 육성합니다. 그들은 ‘아루빠 로까’에 재탄생하는데, 그곳에는 마음만 있습니다.

  • * 루빠 로까와 아루빠 로까에서는 모두 세상에 들러붙는 강도가 더 낮습니다. 그것들은 ‘루빠 라-가(rupa rāga)’ 및 ‘아루빠 라-가(arupa rāga)’입니다. 그러나 인간 영역에 돌아오면, 그들은 모두 ‘까-마 라-가(kāma rāga)’와 함께 빤짜 까-마(pañca kāma)에 다시 몰입합니다. ‘까-마 라-가는 루빠 라-가와 아루빠 라-가를 압도한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세상은 ‘까-마 라-가’를  중심으로 회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께서는 ‘빤짜 까-마’, 즉 ‘까-마 라-가’를 목록의 최상부에 두셨습니다.  까-마는 두 가지 관련된 의미를 가지는데, ‘좋아함/갈망함’과 ‘닙바-나의 강한 적’입니다. ‘까-마 라-가’를 극복한 아나-가-미는 아라한과를 향한 길을 잘 가고 있습니다. 그는 루빠 라-가아루빠 라-가, 즉 ‘자-나/사마-빳띠의 즐거움’에 대한 갈망을 제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2) 아라띠(arati, 닙바-나를 좋아하지 않음): ‘라띠(rati)’(‘rathi’로 발음)는 ‘좋아함’을 의미하지만, 여기서 ‘아라띠(arati)’(rati의 반대)는 구체적으로 ‘닙바-나를 좋아하지 않음’을 지칭합니다. (특히) 일부 불교도조차도 닙바-나가 단멸(절멸)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닙바-나를 두려워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닙바-나는 고사하고, 불교를 모릅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닙바-나를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3) 쿱삐빠-사-(khuppipāsā, 들뜸에 대한 갈증): 여기서, ‘삐빠-사(pipāsa)’는 갈증을 의미하고, ‘쿠(khu)’는 ‘감각적 끌림’을 가리키는 ‘낮은/저열한’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은 감각 입력에 들러붙을 때 들뜨게 되며, 따라서, 쿱삐빠-사-(khuppipāsā)는 ‘정착되지 않은/들뜬 마음’(‘kuppa’라고 함)으로 이어집니다. 반면에 닙바-나는 마음을 ‘고요하고 시원’하게 만듭니다. 그 때문에 그것은 ‘아꿉빠 쩨또위뭇띠(akuppã cetovimutti)’입니다.

 

4) 땅하(taṇhā, 탐함, 성냄, 미혹함을 통해 들러붙는 경향): ‘세상의 아람마나(arammana)에 들러붙는 것’은 자연적인 경향이며, 그것은 논의한 바와 같이,  ‘왜곡된 산냐-’에 기반한 감각 입력에 ‘수바/아수바 산냐-(subha/asubha saññā)’를 자연적으로 제공합니다. ‘왜곡된 산냐-(산자-나-띠)에 속음 ㅡ 들러붙음(땅하-)의 기원’와 ‘세 단계 실천’ 섹션의 ‘인식(산냐-) 이해를 통한 소따빤나 단계(Sotapanna Stage via Understanding Perception (Saññā))’ 서브섹션에 있는 다른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5) 티나밋다(thinamiddha, 무기력한 마음):  닙바-나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마음은 (까-마 로까에 있는 중에)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를 경험하지 못할 때마다 ‘무기력한 기분’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은 우울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까-마 앗사-다에 완전히 관여한 사람들은 그것이 없으면 우울해질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반면에, 닙바-나를 최소한 잠깐이라도 본 모든이들은 담마를 배우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할 것이고, 자연적으로 과도한 까-마 앗사-다와 우울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6) 비-루-/바야(Bhīrū/Bhaya,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까-마 앗사-다’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아라한만이 모든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인데, 사실 아라한은 육체의 죽음을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 있는 아라한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육체의 고통이 멈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려움은 소따빤나 단계 아래의 자들(범부중생)에게 최대인데, 이는 아빠-야-에서 고통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빠-야-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자들도 죽음과 ‘까-마 앗사-다’를 잃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7) 위찌낏짜(vicikicca, 의심): 이것은 구체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의심하는 것을 지칭합니다. “깜마(kamma)와 깜마 위빠까(kamma vipaka)가 있는가?” “재탄생 과정이 정말로 있는가?” “아빠-야-가 정말로 있는가?” “내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내가 단멸될 것인가?” 등의 의심입니다. 그런 의심은 닙바-나를 추구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습니다. 또다른 원인은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음인데, 그것들의 대부분은 ‘내장된 왜곡된 산냐-’로 인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곡된 산냐-(산자-나-띠)에 속음 ㅡ 들러붙음(땅하-)의 기원’와 ‘세 단계 실천’ 섹션의 ‘인식(산냐-) 이해를 통한 소따빤나 단계(Sotapanna Stage via Understanding Perception (Saññā))’ 서브섹션에 있는 다른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8) 막코 탐보(makkho thambho, 붓다 담마 또는 표준 도덕까지도 배울 수 없는 ‘둔감한/경직된’ 마음): ‘막코(makkho)’는 ‘지우다’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도덕을 지우다’를 명시적으로 가리킵니다. 그것이 일어날 때, 마음은 거칠게 될 수 있고 ‘(붓다의 가르침을) 배울 수 없습니다’. 도덕성이 좋은 사람도 잘못된 견해로 인해 마음이 경직될(둔감하게 될) 수 있습니다. 도덕적이지만 재탄생을 믿지 않는 물질주의자(유물론자)인 몇몇 친구들에게서 필자는 이것을 자주 보는데, 불행하게도 이것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흔합니다.   

 

9) 라-보 실로꼬 삭까-로, 밋차-랏도 짜 요 야소(Lābho siloko sakkāro, Micchāladdho ca yo yaso, 물질적 이득과 칭찬을 추구함): ‘라-바(Lābha)’와 ‘삭까-라(sakkāra)’는 ‘물질적 부를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부당하게 얻은 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높이 평가하고 칭찬(yasa)할 것이라고 믿습니다(Micchāladdho ca yo yaso). 

 

10) 마-나(māna, 자신을 높이 평가함): 자신을 칭찬하는 반면(Yo ca attānaṁ samukkaṁse), 그들은 다른 이들을 멸시(경멸)합니다(Pare ca avajānati).

 

  • * 위의 내용이 붓다께서 ‘마라 군단’이라고 칭하신 10가지 오염원(번뇌)에 대한 간단한 논의입니다. 

 

까-마 라-가가 주범이다

 

10. 대부분의 오염원(번뇌)는 위 목록의 첫번째인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 즉 까-마(kāma)로 인해 우리들의 마음에 일어납니다.

 

  • * 대부분의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는 까-마 라-가(kāma rāga)와 함께 일어납니다. 이것이 기억해야 할 결정적인 점입니다.

  • * ‘까-마 라-가는 루빠 라-가와 아루빠 라-가를 압도한다’ 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까-마 로까 위의 20가지 영역의 브라흐마들은 자-나/사마-빳띠의 즐거움만 갈망합니다. 그들은 말(거짓말, 잡담, 등)과 행동(살생, 훔침, 성적비행)으로 하는 아꾸살라 행을 할 수 없습니다.

  • * 따라서, 닙바-나(Nibbāna)를 향한 매우 중요한 단계는 아나-가-미 단계에 도달함으로써 까-마 로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10가지 오염원(번뇌)을 통제할 수 있다 

 

11. ‘Padhāna Sutta (Snp 3.2)’이 끝에서 보디삿따(bodhisatta)는 마-라 데와뿟따(Māra Devaputta)에게 “마-라여, 그것이 당신의 군단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지혜가 부족한 자(asura, 아수라)는 군단을 물리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싸움에서 이기면, (닙바-나의) 궁극적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Jetvā ca labhate sukhaṁ).

 

  • * 붓다께서는 ‘마-라 데와뿟따(Māra Devaputta)가 그 10가지 오염원(번뇌)을 보디삿따(Bodhisatta)의 마음에 지시했다’는 의미로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점에 우리는 유의해야 합니다.

  • * 모든 그 10가지 오염원은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아무도 다른 이의 마음에 그것들을 지시할 수 없습니다.

  • * 보디삿따의 마음도 10가지 오염원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보디삿따는 그것들을 성공적으로 극복하셨고 빤냐-(지혜)를 육성함으로써 7가지 아누사야/10가지 상요자나를 자신의 마음에서 제거함으로써 그것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새로운 포스트 시리즈

 

16. 필자는 빤짜 우빠-다-낙칸다(pañca upādānakkhandha)가 어떻게 빠띳짜 사뭅빠-다에 따라 일어나는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주: 빤짝칸다는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결코 발생하지 않음) ‘붓다 담마ㅡ상급’ (Buddha DhammaㅡAdvanced)’이라는 새로운 포스트 시리즈(섹션)를 시작했는데,  일부 포스트는 새롭게 작성하고, 다른 포스트들은 응집력 있는 그림을 제공하기 위해 구 포스트들을 재작성할 것입니다.

 

 

13. 다른 섹션에 나열될 수도 있지만, ‘Buddha Dhamma – Advanced’ 섹션에 나열된 모든 포스트에 대해, 포럼 스레드(forum thread) ‘Posts in the ‘Buddha Dhamma – Advanced’ Section’에서 코멘트를 하고 질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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