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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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불교 ㅡ 현재의 주류 불교

 

원문: Historical Background 섹션의 ‘Counterfeit Buddhism – Current Mainstream Buddhism’ 포스트

 

가짜 불교(오늘날 주류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 같이 보이지만 원래 가르침과는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우리가 논의한 바와 같이, 붓다께서는 그것을 예견하셨습니다.

 

2023년 6월 30일 작성; 2023년 7월 4일 개정(#4)

 

가짜 금 ㅡ 붓다께서 말씀하신 비유

 

1. 붓다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심오한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평범한(일상적인) 해석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가르침이 빠르게 묻히기 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행하게도, 아래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그 예상은 붓다께서 열반에 드신 후 500여년 만에 실현되었습니다. 

 

  • * 심오한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경향은 부처님의 재세시에도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처음 20여년 동안, 붓다께서는 빅쿠들에게 어떤 위나야(규율)도 선언하지 않으셨습니다. 붓다께서 위나야 규율을 제정하기 시작한 후에도(그것은 부처님의 반열반 이전에 빅쿠의 경우에는 227가지, 빅쿠니의 경우에는 311가지로 증가했음), 많은 이들이 부적절하게 행위하기 시작했고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못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 * 따라서, 아라한의 초기 ‘급등’ 이후, 부처님의 말년 동안에도 [깨달음의] 진전이 느려졌습니다. 

  • * 한 때, 마하-깟사빠 존자께서는 확립된 위나야(규율)에도 불구하고 왜 아라한이 더 적게 나오는지에 대해 붓다께 문의하셨습니다.

 

2. 그 질문과 부처님의 답변은 ‘Saddhammappatirūpaka Sutta (SN 16.13)’에 있습니다. 여기서, ‘삿담마(saddhamma, ‘sath’+’dhamma’)는 ‘좋은/참된 가르침’을 의미하고 ‘빠띠루-빠(patirūpa)’는 ‘모조’(진짜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는 것)를 의미합니다.

 

  • * 마하-깟사빠 존자께서는 붓다께 “규율이 더 적었지만 아라한들이 더 많았습니다(bhikkhū aññāya). 그러나 지금은 규율이 더 많지만 아라한들이 더 적습니다. 왜 그렇습니까?”라고 문의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의미만 나타냄). “나의 가르침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이들은 초기에 아라한과를 얻었다. 남아 있는 그들이 이 심오한 담마를 이해하는 것은 더 어렵다. 더 많은 위나야 규율이 있더라도(sikkhāpadāni), 그들이 마음을 길들여 깊은 가르침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것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예견하셨습니다. “참된 가르침의 모조품이 나타날 때 참된 가르침은 묻힐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금과 가짜 금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짜 금이 나타나면 진짜 금이 묻히는 것과 같다. 내 담마와 가짜 담마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붓다께서는 시간 한계를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3. 고따마 부처님의 붓다 사사나(Buddha Sāsana, 붓다 가르침)는 5000년 정도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띠삐따까(Tipitaka)에서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의 주석서에 있을 수 있으나, 필자는 그런 주석서도 보지 못했습니다.

 

  • * 위에서, 붓다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이 ‘(참된 가르침처럼 보이는) 가짜 가르침’이 자리잡으면서 자신의 가르침이 점차 묻힐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 그것은 2000여년 전 쯤에(부처님의 반열반 후 대략 500여년, 인도에서 대승 불교가 나타남과 함께) 일어났습니다.

  • * 따라서, 붓다께서는 다가올 쇠퇴를 미리 보셨지만, 사람들 중에 적어도 소따빤나가 있는 한, 자신의 가르침은 그것의 가치를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짜 담마와 함께 대승이 출현함

 

4. 기원전 100년 경에, 인도의 일부 사람들은 빠알리 숫따-(Pāli suttā)를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산스크리트 번역의 일부는 기원후 1000년 경 후에 인도에는 불교 관련 문헌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들에 살아 남았습니다. ‘The Questions of Nālaka’는 산스크리트어로 번역된 숫따- 중의 하나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번역된 그런 숫따-중에서 살아 남은 숫따-는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며, 그것들은 Sutta Central 사이트에 있습니다. ‘Sanskrit Canonical Discourses’를 참조하세요.

 

  • * 기원전 100년경부터 시작하여, 대승 철학자 그룹은 산스크리트 수트라-(Sanskrit sutrā)를 편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들은 빠알리 숫따의 번역도 아니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습니다. 그들은 옛 해석이 쓸모없게 되었고 새로운 개념으로 ‘업그레이드’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 * 단 한가지 위안은 그것들이 수트라-(sutrā)(‘숫따_suttā’에 대응하는 산스크리트어 낱말임)이기 때문에 대승 버전을 구별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수트라-(sutrā)를 본다면, 그것은 나가르주나와 같은 철학자들이 편찬한 것입니다. 물론, 현존하는 소수의 번역은 예외이지만, 그것들은 번역으로 식별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것들은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를 산스크리크어 아니트야(anitya), 둑카(duḥkha), 및 아나-트마(anātma)로 직역한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필자는 그것을 다음 포스트에서 다루겠습니다. 

* 모든 원래 숫따(suttā)는 빠알리 띠삐따까(Pāli Tipiṭaka)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테라와다가 인도의 대승 불교의 절정기 중에 대승 왜곡(아닛짜, 둑카, 및 아낫따를 산스크리트 낱말인 아니트야, 둑카, 아나-트마로 대체한 것을 포함)의 일부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그 빠알리 숫따들에 대한 대부분의 현재 번역은 잘못되었습니다.

 

5. 위에 주어진 비유에서, 가짜 금이 나타나면, 그것이 더 싸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널리 사용됩니다.

 

  • * 같은 식으로, 붓다께서 가르치신 깊은 의미의 근본 개념이 이해하기 쉽고(그러나 잘못된) 피상적이고 평범한 설명에 의해 대체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잘못된 설명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릅니다. 그 때문에 테라와다 불교도들은 마하-야-나(대승) 철학자들이 제시한 ‘개선 제안’ 중의 일부를 기꺼이 채택하였습니다.

  • * 예를 들어,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는 어떤 언어에서 단 하나의 낱말로 번역될 수 없는 복합 빠알리 용어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부처님의 반열반 후 불과 500여년 만에 산스크리트어로 아니트야(anitya)(‘anithya’로 발음됨)와 아나-트마(anātma)(‘anāthma’로 발음됨)로 처음 번역되었습니다. 

  • * 지금과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더 단순한 설명을 재빨리 채택하였습니다. 그것들은 역사학자 Edward Conzer(에드워드 콘즈)가 나타내 보인 바와 같이 ‘낡은 가르침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에드워드 콘즈의 역사 연대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붓다께서는 그 시기를 예측하셨다

 

6. 붓다께서는 ‘가짜 담마의 출현’ 시기도 미리 보셨습니다. ‘Gotamī Sutta (AN 8.51)’ 숫따에서, 붓다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의 ‘온전한 찬란함(절정기)’은 500여년 동안만 지속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빠리닙바-나 후, 약 500년 후에 대승이 출현한 것과 일치합니다.

 

  • * 붓다께서는 빅쿠니 상가의 설립 후에 그 예측을 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처음에 빅쿠니 상가의 설립을 거절하셨습니다. 빅쿠니 상가의 설립 후에, 붓다께서는 자신의 반열반 후 1000여년간 지속되는 것 대신에, 500여년만 지속될 것이라고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 붓다께서 예측하신 바와 같이, 절정기는 부처님의 반열반후 약 500년 동안만 지속되어 기원후 대략 100년까지 이어졌습니다. 대승 불교의 출현은 기원전 100년 쯤에 점차적으로 시작되어, 기원후 400~500년 쯤에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위키피디아 기사인 ‘History of Buddhism’ 중의 ‘Mahāyāna Buddhism(대승불교)’ 섹션을 참조하세요.

  • * 그러나, 붓다께서는 또한 (인간 영역에서) 자신의 가르침은 다음 세대로 가르침을 계속 전할 수 있는 인간 중에 적어도 소따빤나가 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에드워드 콘즈의 역사 연대기

 

7. 이 역사 연대기는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가 그의 저서 ‘A Short History of Buddhism’(1980년; 최종판 2008년)에 자세히 논의되어 있습니다. 콘즈에 따르면, 불교의 역사는 간편하게 다음과 같이 네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 1) 고대 불교, 훗날에 테라와-다(Theravāda)로 알려지게 된 것과 대체로 일치함.

  • 2) 마하-야-나(Mahāyāna, 대승)의 일어남,

  • 3) 탄트라(Vajrayāna, 금강승)와 선(Ch’an, Zen)의 일어남,

  • 4) 더 이상의 분할이 없음.

 

8. 마하-야-나(대승)의 전성기 동안, 그것은 약 500년 동안 매우 영향력이 있게 되었습니다. 에드워드 콘즈가 “이 문헌의 창작은 인류 역사에 알려진 가장 중요한 창조적 에너지의 분출 중 하나이며, 약 4~5세기 동안 지속되었다.”라고 말한 바와 같습니다.

 

  • * 콘즈의 책에 대해 논의한 ‘에드워드 콘즈의 역사 연대기’ 포스트를 읽어보기를 적극 권합니다.

  • * 1800년대에 유럽인들이 지배했을 때, 인도에는 불교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손상이 이미 가해졌으며 그 결과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하-야-나의 영향은 테라와다 불교의 왜곡으로 이어졌다

 

9. 필자는 (대승, 금강승, 티벳, 및 다른 버전에 비해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장 가까운) 오늘날 주류의 테라와다 불교 문헌들 조차도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의 많은 부분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잘못된 테라와다 해석 ㅡ 역사 연대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유럽인들이 1800년대에 불교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그 오염된 버전을 발견했습니다. 새로 발명된 인쇄기로, 그 버전은 전 세계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초기 유럽 학자들의 아닛짜 및 아낫따에 대한 잘못된 해석’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나, 빠알리 띠삐따까는 소수의 빅쿠 세대에 의해 충실히 보존되어 왔습니다. ‘붓다 담마의 보존’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매 100~200년마다(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원고의 수명) 야자나무 잎에 띠삐따까 전체를 다시 썼습니다. 그것은 또한 2000여년 동안 싱할라 글자의 변화를 고려하는 의도하지 않은 이점을 주었습니다.

  • *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떻께 그렇게 빨리 왜곡되었을까요? 붓다께서는 첫 법문에서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깨달음의 밤 동안에 발견하신 세계관은 알려진 어떤 세계관과도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된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음

 

10. 붓다께서는 붓다후드(붓다의 지위)를 얻은 밤 동안에 깨달은 심오한 (그리고 상상할 수 없이 다른) 세계관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근본 문제를 설명하셨습니다.

 

  • *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pavattana Sutta)는 붓다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후에 설하신 첫 숫따입니다.

  • * ‘Dhammacakkappavattana Sutta (SN 56.11)’에는 “..붑뻬 아나숫수떼수 담메수.(..pubbe ananussutesu dhammesu.)”라는 구절이 12번이나 나옵니다. 그것은 “내가 발견한 이 담마는 이전에 세상에 알려진 적이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 * 그것은 우리 세상에 대한 모든 평범한(세간적) 견해/인식에 반대되는 가르침입니다.   그 때문에, 많은 깊은 개념이 그 더 심오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쉽게 대체될(그리고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쉽게 왜곡되기 쉬운 근본 원인입니다. 사람들은 쉬운 세간 개념으로 향하여 가기 쉽습니다. 분명한 예는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가 호흡 명상이라고 현재 깊이 뿌리내린 것입니다.

 

11. 붓다께서는 자신의 담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반복하여 강조하셨습니다.

 

  • * 우리가 알다시피, 아난다 존자는 탁월한 기억력을 지녔습니다(아난다 존자는 숫따 삐따까(경장) 전체를 기억했고, 그것을 첫 불교 회의(결집 모임)에서 암송하였습니다).

  • * 하지만, 아난다 존자가 빠띳짜 사뭅빠-다를 이해하기 쉽다고 붓다께 말했을 때, 붓다께서는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훈계하셨습니다. ‘Mahānidāna Sutta (DN 15)’을 참조하세요.

 

12. 부처님의 세계관과 인간에 의해 제안된 모든 다른 세계관 사이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행복이 이 물질 세계에 있다고 인식하는데, 그들은 바라는 배우자든, 또는 금, 자동차, 주택 등과 같은 비싼 것이든 ‘세간의 가치있는 것들’을 얻을 수 있을 때 매우 기뻐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새로 발견된 세계관은 그 세상 것들을 추구하는 것은 ㅡ 의심의 여지없이 ㅡ 괴로움/고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 괴로움/고통은 내생뿐만 아니라 현생에서도 나타난다. 괴로움/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이해함에 의해 이 생 자체에서 경험될 수 있다.”

 

  • * 그  마지막 부분의 진리를 알면 아닛짜(anicca) 특성을 참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면 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ce)로 번역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달을 것입니다

  • * 따라서, ‘열반의 지복’은 이 생에서 경험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길은 소따빤나(Sotapanna)가 되어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를 부지런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필자는 앞으로 몇 달 동안 [그것에 대해] 더 많이 쓸 것입니다. 

  • * ‘방 안의 코끼리’ 섹션의 ‘일생 중의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During a Lifetime)’ 서브섹션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빠띳짜 사뭅빠-다’ 섹션의 ‘평이한 말로 설명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in Plain English)’ 서브섹션도 참조하세요.

 

대승불교가 입힌 상상할 수 없는 해로움

 

13. 붓다께서는 띠삐따까(Tipiṭaka)를 산스크리트어로 번역조차 금지하셨습니다. ‘초기 유럽 학자들의 아닛짜 및 아낫따에 대한 잘못된 해석’ 포스트의 #13을 참조하세요. 그러나, 테라와다 빅쿠들은 인도에서 마하-야-나(대승)의 절정기 동안에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 * 그 기간 동안에, (산스크리트 수트라-에 기반한) 마하-야-나(대승)가 스리랑카에서도 매우 영향력이 있게 되었는데, 아누라다뿌라(Anuradhapura)에 있는 마하-위하-라(Mahāvihāra)의 테라와다 센터의 빅쿠들은 몇 가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조치를 취하고 관련성(적절함)을 유지하였습니다. 한 때, 마하-야-나(대승) 가르침을 채택한 아바야기리 위하-라(Abhayagiri Vihāra)의 영향하에 있었던 왕에 의해 ‘마하-위하-라’가 불타서 묻혔는데, 그것은 나중에 재건되었습니다. 

  • * 그 자세한 내용은 냐-나몰리 빅쿠의 ‘The Path of Purification’(BPS Pariyatti, 1999년 판)의 소개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책 전체의 pdf 버전은 위 링크에서 볼 수 있는데, 소개 부분은 p.36 ~ p.111에 걸쳐 있으며 깊이 알고 싶으신 분은 그것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필자는 소개 부분을 분리하여 pdf로 만들었는데, ‘The-Path-of-Purification-Introduction’을 클릭하여 보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 * 아래에서, 필자는 빅쿠 냐-나몰리의 소개 부분에서 일부 발췌한 것을 제시하겠습니다.

 

빅쿠 냐-나몰리의 소개 부분에서 몇 가지 하이라이트

 

14. p.36의 아래에서 시작하여 p.38의 위까지

“그러나, 그 사실들을 다루기 전에, 그리고 그것들이 지향되는 것을 보이도록, 먼저 조금 벗어나서 빠알리 문헌들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세 개의 주요 역사적 시기로 분류되는지 주목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 

‘첫째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초기 또는 고전 시기는 기원전 6세기에 띠삐따까(Tipiṭaka) 그것으로 시작되어 기원후 약 5세기에 밀린다빵하-(Milindapañhā)로 끝난다. 이 저술들은 인도에서 만들어져 스리랑카로 전해졌으며, 그것들은 빠알리어로 유지되었지만 싱할라 글자로 쓰여졌다. 기원후 1세기가 되자, 산스크리트어(대승의 출현과 무관) 또는 자국어(지방어)들은 아마도 인도 본토의 모든 불교 학교에서 공부/연구의 매개체로 빠알리어를 대체했을 것이다. 스리랑카의 문학 활동은 쇠퇴하였고, 아래에서 나타나듯이, 기원후 150년과 350년 사이에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빠알리 르네상스는 기원후 약 400경 스리랑카와 남인도에서 진행되었고 바단따-짜리야 붓다고사(Bhadantācariya Buddhaghosa)에 의해 실행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을 ‘중간(둘째)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주된 인물의 다수가 인도인이었고, 남인도 본토의 여러 센터에서 발전되고 버마로 퍼졌고, 약 12세기까지 계속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재개된 문학 활동은 스리랑카에서 다시 쇠퇴가 계속되었고 11세기에 마가(Magha)의 끔찍한 침략으로 빛을 잃었다.

 

두 번째 르네상스, 즉 시기로 일컬어 ‘셋째 시기’는 스리랑카의 회복과 함께 [중간 시기가 끝난] 다음 세기에 시작되고, 버마(미얀마)의 주요 정치적 변화와 어느 정도 일치한다. 스리랑카에서 셋째 시기는 여러 세기 동안 계속되었고, 버마에서는 훨씬 더 길게 계속되었지만, 인도에서는 그 시기쯤 또는 바로 그 후에 모든 형태의 불교가 사라졌다.”

(필자의 코멘트 : 불행히도, 붓다고사는 상황을 더 나쁘게만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빠알리 편집물인 위숫디막가(Visuddhimagga)에서,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를 호흡 명상으로 잘못 해석했습니다. ‘붓다고-사의 위숫디막가 ㅡ 집중된 분석’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p.46에서:

기원후, 1세기에, 산스크리트 불교(‘히-나야-나_Hīnayāna’와 아마도 그때의 마하-야-나)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외국으로 퍼졌다. 아바야기리(Abhayagiri) 사원은 자연적으로 이러한 중요한 발전들 중의 일부를 연구하고 옹호하느라 바빴을 것이고, 대사원[마하-위하-라]은 새로운 것을 제공할 것이 없었을 것이다. (코멘트: 강조한 것은 필자가 표시한 것인데, 냐-나몰리 빅쿠는 특별히 그 변경된 ‘히-나야-나_Hīnayāna’를 ‘산스크리트 불교’라고 칭했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따라서, 경쟁자는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 앞서 나가고 최신인 것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기존 기관은 아마도 싱할라어로 된 전통적인 표현에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자료, 새로운 영감, 그리고 국제적인 연관의 부족으로 뒤처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기존 기관은 띠삐따까 학습을 개발하는 데 이미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본토에서 테라와-다는 의심할 여지 없이 동일한 곤경에 더 깊이 빠져 있었다).

 

어쨋든, 1세기 이후로 그 건설적인 학문이 고갈되고, 대신에 Bhātika Abhaya 왕의 통치(BCE 20 ~ CE 9)와 함께 두 사원 사이에 공개적인 긴 논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상황은 실로 길게 끌며, 다음 3세기 동안 점진적으로 악화되고, 눈에 뛰는 정보가 거의 없다. Vasabha 왕의 통치 시기(CE 66~110)에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주석서에 마지막으로 언급된 것으로 보이며, 그로부터 그 직후에 주석은 폐쇄되었고(또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았고), 더 이상 추가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제 과거의 것에만 의존하고 있는 대사원[마하-위하라]은 그 자체가 이단들에 감염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가르침의 사슬을 끊어버리게 하고 싱할라어 문헌 자료에 추가하는 것을 그치게 한 직접적인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상황이 악화되었고 음모에 의해 더욱 복잡해졌으며 Mahāsena 왕의 통치 시기(서기 277~304년)에는 상황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 * 발췌는 여기서 마칩니다.

 

15. 마하-야-나 개념을 쉽게 채택한 아바야기리(Abhayagiri)는 마하-위하-라 테라와다 센터(위 인용에서 대사원)와 오랫동안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 * 개념을 잘 잡기 위해서는 전체 소개 부분(pp. 36~111)을 읽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 * 또한, 콘즈의 저서(그리고 또한 ‘위키피디아’같은 다른 자료)에 언급된 기간은 바뀔 수 있다는 것에 유의하세요. 최초의 문서화된 역사 기록은 기원후 450년 경에 편찬된 싱할라 마하-왐사(Mahāvamsa)에 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기원후 400년까지 많은 ‘검증되지 않은 역사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된 가르침은 관심있는 사람들이 추구한다

 

16. 현재의 주류 불교와 확연한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 인터넷 포럼에서 몇 년을 보낸 후, 필자는 최근 그러한 ‘참여’가 스트레스를 받고, 필자의 진전에 방해가 되고, (그들의 해석이 올바르다고 믿고 있는)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필자는 이 웹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것에 집중하고 모든 토론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붓다 담마는 토론을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논쟁하는 것은 결실이 없습니다. 필자가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더 일찍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 * 어느 버전이 올바른지를 결정하는 것을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필자의 책임은 필자가 할 수 있는 한, 필자의 이해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 * 어느 버전이 올바른지 누군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 붓다께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 누구든지 숫따, 위나야, 및 아비담마란 세 가지 바구니(띠삐따까) 내에서 일관성을 확인함으로써, 그것을 알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 * 빠알리 삼장(띠삐따까) 만이 2000여년 동안 변경되지 않고 빠알리어로 남아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남아 있습니다.  현재 번역된 대부분은 심각한 오류가 있으며, 필자의 포스트들 중의 많은 부분이 그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총명한 아이들도 알 수 있는 명백한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기 위해, ‘방 안의 코끼리’라는 새로운 섹션도 시작했습니다. 또한 ‘붓다 담마: 비인지성과 자기 일관성’ 포스트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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