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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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닛짜, 둑카, 아낫따 ㅡ 왜곡 연대기

     

    원문: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Anicca, Dukkha, Anatta – Distortion Timeline’ 포스트

     

    아닛짜(anicca), 둑카(dhkkha), 및 아낫따(anatta)는 불교의 근본 개념입니다. 그 참된 의미는 부처님의 반열반후 약 500년 만에 마하-야-나 불교의 일어남과 함께 땅속에 묻혔습니다.

     

    2023년 7월 10일 작성 

     

    소개

     

    1. 아래 논의된 바와 같이, 아닛짜, 둑카, 및 아낫따(흔히 ‘띨락카나’라는 말로 표현됨)는 부처님 가르침의 뿌리에 있는 근본 개념입니다. 그것들은 사성제와 빠띳짜 사뭅빠-다의 레벨에 있습니다. 틸락카나를 이해하면, 사성제와 빠띳짜 사뭅빠-다를 이해할 것입니다.

     

    • * 부처님 가르침의 올바른 해석은 부처님의 반열반후 약 500년 만에 마하-야-나 불교의 일어남과 함께 땅속에 묻혔습니다. ‘가짜 불교 ㅡ 현재의 주류 불교’ 포스트에서 그 연대기를 논의했습니다.

    • * 여기서는 틸락카나(Tilakkhana)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통상 받아들여진 세계관 ㅡ 틸락카나의 반대

     

    2. 보통 사람의 일반적 견해/믿음은 세상이 좋은 곳이라는 것이며, 우리가 충분히 열심히 일하면, 행복하고 번영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특히 부유하고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 * 대부분의 종교들은 어떻게 도덕적인 삶을 살고 도덕적인 삶을 살므로써 괴로움을 최소화하는 길을 가르칩니다.

    • * 그들은 또한 사람이 이 생 후에는 영원히 (창조주와 함께) 천국에 있거나 (대단히 고통이 심한) 지옥에 있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사람들은 오직 현생을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서만 심판되어 천국이나 지옥에 가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틸락카나 ㅡ 세상의 세 가지 특성

     

    3. 붓다께서는 또한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몇가지 매우 중요한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i) 일부 괴로움(고통)은 부유하고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그들 삶의 최전성기에도 관련되어 있다. 더욱이, 건강이 쇠퇴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은 모두에게 피할 수 없다.

    (ii) 그것을 한 생의 행위에 기반하여 판단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신생아가 며칠/몇달 후에 죽는다면, 그 아기는 어떻게 심판되어 천국 또는 지옥에 태어날까?

    (iii) 생은 죽음 후에 계속되는데, 대부분의 미래 재탄생은 훨씬 더 많은 괴로움과 관련되어 있다.

     

    • * 붓다께서는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라는 단지 세 낱말을 사용하여 (이 생과 재탄생 과정의 생 모두의) 세상의 본질을 요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낱말 각각을 설명하는 책을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 * 그것들을 합하여 띨락카나(Tilakkhana)라고 하지만, 띠삐따까(Tipitaka)에 그 낱말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띨락카나(Tilakkhana)에서 ‘ti’는 ‘셋’을 의미하고 ‘lakkhana’는 특성을 의미하므로, 그것은 ‘세 가지 특성’을 나타내는 간결한 방식입니다.

    • * 붓다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특성(띨락카나)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통상 받아들여진 세계관과 정확히 반대를 묘사합니다. 그것이 붓다께서 자신의 가르침은 ‘이전에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틸락카나의 결정적 중요성

     

    4. 세상의 아닛짜, 둑카, 및 아낫따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여러 숫따에 설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Sutavanta Sutta (SN 22.123)’는 닙바-나의 소따빤나 단계를 구하는 사람은 틸락카나를 숙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 그리고 식별번호 3.2~3.5에서, 숫따는 닙바-나의 더 높은 단계도 틸락카나를 숙고함을 통해 도달된다고 말합니다. 

    • * 위 링크의 영어 번역은 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ce)으로 그리고 아낫따(anatta)를 무아(not-self)로 잘못 번역하고 있다는 것에 유의하세요.

    • * 우리는 틸락카나를 이해하는 것은 사성제와 빠띳짜 사뭅빠-다를 이해하는 것과 동등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들 중의 한 가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두 가지를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빠띳짜 사뭅빠-다 또는 틸락카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성제를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섹션의 ‘빠띳짜 사뭅빠다, 틸락카나, 사성제(Paṭicca Samuppāda, Tilakkhana, Four Noble Truths)’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5. ‘Velāma Sutta (AN 9.20)’는 “yo ca accharāsaṅghātamattampi aniccasaññaṁ bhāveyya, idaṁ tato mahapphalataran” ti”, 즉, “손가락을 튕기는 동안이라도,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기르는 것은 매우 유익할 것이다(mahapphala).”라고 말합니다. 그 숫따는 붓다나 백명의 빠쩻까 붓다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보다 더 공덕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 * 물론, 아닛짜 산냐-를 육성하려면, 아닛짜(anicca) 개념을 우선 이해해야 합니다. ‘주요 담마 개념’섹션의 ‘아닛짜 - 진정한 의미(Anicca – True Meaning)’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 * 세상의 아닛짜 본질은 기본적으로 그것이 결실이 없고 세상 것에 들러붙는 것이 심지어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이해는 동시에 세 가지 특성을 모두 보고 닙바-나의 소따빤나 단계를 얻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라는 잘못된 견해를 제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 * 필자는 틸락카나(Tilakkhana)에 대한 이 섹션의 이전 포스트들을 좀 더 깊이 있게 수정할 계획입니다. 

    • * 띨락카나는 무상(impermanence), 고(suffering), 및 무아(no-self)라는 세 낱말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둑카(dukkha, dukha+khaya)도 단순히 ‘괴로움(고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괴로움(고통)은 멈춰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첫 숫따에 있는 불교의 에센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틸락카나는 무상, 고, 및 무아로 표현될 수 없다

     

    6. 아닛짜, 둑카, 아낫따는 모든 언어에서 단 하나로 대응하는 낱말이 없고 긴 설명이 필요합니다. 빠알리 띠삐따까에서도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는 백 개가 넘는 숫따로 논의되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 * 띠삐따까 주석인 빠띠삼비다막가(Paṭisambhidāmagga)는 (‘Vipassanākathā’ 섹션에서) 다음 낱말들이 아닛짜 본질을 나타내는데 사용될 수 있다고 가리켜 보이는데, Palokatoti (파괴될 예정인), Calatoti (불안정한/흔들리는), Pabhaṅgutoti (깨지기 쉬운), Vipariṇāmadhammatoti (예상치 않는 변화를 겪게 되는), Vibhavatoti (닳아 없어지는 경향), Saṅkhatatoti (마음에 의해 형성된), Maraṇadhammatoti (죽음을 피할 수 없는)입니다.

    • * 위 링크에서 아낫따에 대한 유사한 낱말의 목록을 보면, Paratoti (자기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Rittatoti (가치/의미 없는), Tucchatoti (무시되는), Suññatoti (어떤 의미깊은 것이 없는), Asārakatoti (어떤 유익함이 없는)로 되어 있습니다. 아낫따(anatta)를 무아(no-self)로 번역한 것은 또한 위 목록에서 Paratoti (자기자신에게 속하지 않는)에만 가깝습니다.

    • * 마지막으로, 위 링크에는 둑카(dukkha)에 대해서는 25가지 유의어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것들 중의 일부는 Rogatoti(질병에 시달리는), Gaṇḍatoti (감염된 상처같은), Sallatoti (날카로운 창으로 찔린), Bhayatoti (위험에 시달리는), 및 Asaraṇatoti (어찌할 수 없게 되기 쉬운)입니다.  

    • * 다른 유의어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적용될 것입니다. 무상(impermanence), 고(suffering), 및 무아(no-self)라는 낱말은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의 참된 의미의 작은 일부 의미만 전달합니다.

    • * 그 유의어들의 일부는 여러 숫따에서 논의됩니다. 예를 들어, ‘Palokadhamma Sutta (SN 33.84)’에서는 Paloka, ‘Udāna sutta (SN 22.55)’에서는 Vibhavatoti, ‘Abhaya sutta (AN 4.184)’에서는 Maraṇadhammatoti가 논의됩니다.

     

    의미가 어떻게 왜곡되었는가?

     

    7. 오늘날,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는 통상 무상(impermanence), 고(suffering), 및 무아(no-self)라는 단 3가지 낱말로 번역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 * ‘가짜 불교 ㅡ 현재의 주류 불교’ 포스트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붓다께서 예견하신 바와 같이, 부처님의 반열반 후 500여년 만에 마하-야-나 불교의 출현과 함께 땅 속에 묻히기 시작했습니다.

    • * 그것은 빠알리 낱말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가 산스크리트 낱말인 아니트야(anitya), 두흐카(duḥkha), 및 아나-트마(anātma)로 대체되었을 때입니다.

     

    불교의 점진적 변형

     

    8. 마하-야-나의 출현과 참된 가르침의 동시적인 침몰은 수백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또한 ‘에드워드 콘즈의 역사 연대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변형은 빠알리 숫따를 산스크리트어로 직역하는 것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직역된 것들 중의 소수만 살아남았습니다. ‘Sanskrit Canonical Discourses’를 참조하세요. 유럽인들이 인도를 정복하기 훨씬 전에 인도에서 불교(심지어 마하-야-나)의 흔적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 산스크리트화된 빠알리 숫따들은 인도 밖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것들 중의 하나가 ‘The Questions of Nālaka’입니다. 필자는 ‘nityaṁ duḥkham anātmeti sarvakleśapradāraṇīṁ’가 있는 구절(@SC 17)로 연결하였습니다.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를 산스크리트어 아니트야(anitya), 두흐카(duḥkha), 및 아나-트마(anātma)로 번역한 것은 또한 위키피디아 기사 ‘Three marks of existence’에도 있습니다.

    • * (주: 빠알리 숫따-들을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기 시작한 후에, 나가르주나 같은 철학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산스크리트 수트라-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것들은 빠알리 숫따-들의 번역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의 저술이었습니다. 그것은 후에, 마하-야-나가 절정기에 이를 때 일어났습니다. ‘가짜 불교 ㅡ 현재의 주류 불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문제는 산스크리트어 낱말인 아니트야(anitya), 두흐카(duḥkha), 및 아나-트마(anātma)무상(impermanence), 고(suffering), 및 무아(no-self)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합적인 빠알리 낱말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가 단순한 산스크리어 낱말인 아니트야(anitya), 두흐카(duḥkha), 및 아나-트마(anātma)로 먼저 대체되었습니다. 그다음 그 산스크리트 낱말의 의미가 마하-야-나의 절정기 중에 테라와다에 합병되었습니다. 그것은 마하-야-나주의자들에 의한 ‘불교의 매우 필요한 개정과 단순화’로 환영받았습니다. 

    • * 예를 들어, 빠알리 띠삐따까(Pāli Tipiṭaka)가 여전히 빠알리 낱말인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를 지니고 있지만, 2005년 싱할라어 번역은 산스크리트어 낱말인 아니트야(anitya)와 아나-트마(anātma)의 의미에 해당하는 싱할라어 낱말인 අනිත්ය and අනාත්ම를 사용합니다. 같은 식으로, 이제 그 낱말들은 빠알리 낱말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가 아니라 산스크리트어 낱말인 아니트야(anitya)와 아나-트마(anātma)(이 낱말들이 겉보기에 유사하므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데, 그것들은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짐)에 해당하는 impermanence(무상) 및 no-self(무아)라는 영어로 직역됩니다.

     

    9. 따라서, (아닛짜, 둑카, 및 아낫따와 같은) 핵심 빠알리 낱말을 번역하는 관행은 수 세기 전 마하-야-나의 전성기 중에 산스크리트어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산스크리트 낱말인 아니트야(anitya)와 아나-트마(anātma)가  구체적으로 무상(impermanence)과 무아(no-self)를 의미하는 반면, 빠알리 낱말인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는 위의 #6에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 다양한 가능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 * 그런데, 붓다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을 어떤 언어로 설명하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일부 핵심어의 직역은 가능하지 않고 결정적인 잘못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빠알리어와 산스크리트어는 동일한 어근을 가질 수 있으므로 그것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았습니다. (산스크리트화 전의) 싱할라어는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에 대한 정확한 빠알리 낱말(අනිච්ච, අනත්ත)을 사용했지만, 2005년 띠삐따까의 싱할라어 번역은 산스크리트 낱말인 아니트야(anitya), 아나-트마(anātma)(අනිත්ය, අනාත්ම)을 사용했습니다.

    • * 아니트야(anitya)와 아나-트마(anātma)라는 낱말은 빠알리 띠삐따까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켜 보이는 것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전적으로 산스크리트어 낱말입니다.

    • * 붓다께서는 산스크리어와 어떤 연결은 자신의 가르침이 왜곡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아셨습니다.

     

    붓다께서는 띠삐따까를 산스크리어로 번역하는 것을 금하셨다

     

    10. 부처님의 재세시 중에, 산스크리트어로 된 베다 문헌의 전문가인 Yameḷa와 Kekuṭa라는 이름의 두 브라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빅쿠가 되어 붓다께 빠알리 숫따를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해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필자는 ‘초기 유럽 학자들의 아닛짜 및 아낫따에 대한 잘못된 해석’ 포스트의 #12에서 그것을 간략히 언급했지만, 띠삐따까(Tipiṭaka)의 위나야 삐따까(Vinaya Piṭaka, 율장)에 나타나는 대로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음 인용은Vinaya texts : Davids, T. W. Rhys (Thomas William Rhys), 1843-1922, tr : Free Download, Borrow, and Streaming : Internet Archive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관련 섹션은 p149의 하단에서 시작됨)

     

    “1. 그 때에  말솜씨가 뛰어나고 발음도 뛰어나며, 브라만 태생으로 Yameḷa와 Kekuṭa라는 이름의 두 형제가 있었다. 이들은 붓다께서 계신 곳에 갔고, 그곳에 갔을 때 붓다께 예경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렇게 앉아서 그 빅쿠들은 붓다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부처님, 현재 (세상에서) 다른 이름, 다른 계보, 다른 태생, 다른 가족의 빅쿠들이 출가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방언/지방어로 (반복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오염시킵니다. 부처님, 부처님의 말씀을 (산스크리트) 구절로 우리가 변환하게 해 주십시요.’

     

    ‘어리석은 이들이여, 너희들이 어떻게 ‘부처님, 부처님의 말씀을 (산스크리트) 구절로 우리가 변환하게 해 주십시요.’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어리석은 이들이여, 이것은 개종하지 않은 사람들의 개종이나 개종한 사람들의 증가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개종하지 않은 사람들은 계속 개종하지 않게 하고, 개종한 사람들은 뒤돌아 가는 것으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붓다께서는 그 빅쿠들을 꾸짖었을 때, 법문을 하시고 빅쿠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빅쿠들이여, 너희들은 붓다의 말(buddhavacanaṁ)을 (산스크리트) 구절로 바꾸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는 자는 둑까따(dukkaṭa) 범계를 하는 것이다. 빅쿠들이여, 붓다는 너희들이 자신들의 방언/지방어로 붓다의 말을 각각 배우도록(sakāya niruttiyā) 허락한다’ ”

     

    • * 인용의 끝

    • * 위 번역의 버전은 또한 ‘Chulavagga 5.33’에 있습니다.

     

    11.  위 인용의 끝 부분의 규율은 “na, bhikkhave, buddhavacanaṁ chandaso āropetabbaṁ. Yo āropeyya, āpatti dukkaṭassa. Anujānāmi, bhikkhave, sakāya niruttiyā buddhavacanaṁ pariyāpuṇitun”ti.의 번역입니다. 

     

    • * 따라서, 붓다께서는 붓다 담마를 산스크리트어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계목을 만드신 것이 아주 분명합니다. 붓다께서는 또한 그들 자신의 방언/지방어로 사람들에게 붓다 담마를 가르치도록(sakāya niruttiyā) 분명히 허락하셨습니다. 여기서 ‘sakāya niruttiyā’는 ‘그들의 방언/지방어로 의미를 설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일부 사람들은 부처님의 반열반 후 500여년 만에 빠알리 숫따를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빠알리 낱말인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를 산스크리트 낱말인 아니트야(anitya)와 아나-트마(anātma)로 대체한 것은 나가르주나와 그 후 다른 사람들의 단순화 노력의 촉매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띠삐따까를 낱말별로 그대로 직역하는 것의 위험함에 대한 주요 예입니다.

     

    산스크리트어 ㅡ 음악적 상음/배음

     

    12. (일부 구절은 빠져 있지만) Sutta Central 사이트의 위나야 삐따까에는 동일한 묘사에 대한 빠알리 영어 번역이 ‘Khuddakavatthukkhandhaka’에 있습니다. Sutta Central 영어 번역에서, 산스크리트어를 의미하는 빠알리 낱말(chandasa)은 metrical(운율의/운문의)으로 번역되었습니다.

     

    • * 거기의 ‘metrical’ 낱말은 ‘Metre (music)’에서 유래합니다. 산스크리트어를 ‘음악적 상음/배음’을 가진 언어라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빠알리어와 산스트리트어는 붓다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믿어지는 마-가디(Māgadhi)어에 뿌리를 두었습니다. 예를 들어, 담마(dhamma)와 깜마(kamma)는 다르마(dharma)와 까르마(karma)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쁘라띠-트야사무트빠-다(Pratītyasamutpāda)’로 변화되었습니다(또는 산스크리트화되었습니다). 베다의 브라만들은 (소리가 의미를 나타내는) 음성체계를 무시하고 ‘음악적 상음/배음’이 있는 정교하게 들리는 낱말을 만들었습니다.

    • * 옛날에는, 낮은 카스트의 사람들은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금지되었습니다.

    • * 그런데, 띠삐따까(Tipiṭaka)도 트리삐따까(Tripiṭaka)로 산스크리트화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싱할라인들은 오늘날에도 띠삐따까(Tipiṭaka) 대신에 트리삐따까(Tripiṭaka)라는 낱말을 사용하는데, 그 자체가 스리랑카의 테라와다 불교에 마하-야-나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 사람들은 산스크리트화된 낱말들에서 음악적 상음/배음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테라와다 빅쿠들은 위 사실들을 모른다

     

    13. 대부분의 테라와다 빅쿠들은 필자가 위에서 설명한 것을 모릅니다. 그들은 Sutta Central 웹사이트의 통상 관행인, 띠삐따까를 영어로 낱말별로 그대로 직역하는 재앙적 관행을 고수합니다. 물론, 2005년에 띠삐따까(Tipiṭaka)를 싱할라어로 번역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많은 다른 빅쿠들이 그 관행에 관여합니다(이것은 빠알리 핵심어가 싱할라어에서 동일한 낱말을 가지므로 좀 덜 심각한 문제입니다.)

     

    • * 상황을 더 나쁘게 하는 것은 그들이 (‘무상_impermanence’과 ‘무아_no-self’로) 아니트야(anitya)와 아나-트마(anātma) 번역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산스크리트어의 사용을 금지한 위나야 규율을 어기고 있습니다

    • * 물론,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를 호흡 명상으로 번역하는 것과 같은 다른 잘못된 번역이 있습니다.  ‘방 안의 코끼리’ 섹션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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