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그대는 명상에서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가?
원문: Bhāvanā (Meditation) 섹션의 ‘Are you not getting expected results from meditation?’ 포스트
- 2017년 12월 1일 개정
어떤 사람들은 명상을 하는 동안, 마음으로 ‘이 세상에 대한 모든 들러붙음(애착)을 버리려고’ 노력함으로써 닙바-나(열반)의 행복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이 이 세상의 위험함(재탄생 과정)을 진정으로 깨달을 때까지는, 마음은 그 들러붙음(애착)을 버릴(포기할) 수 없습니다.
-
* 자신의 마음가짐(마음성향, mindset)이 ‘버리는 것(포기하는 것)’을 잘 받아들이게 되기 전에,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특성)을 보아서 적어도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
* 소따빤나 단계 이전에도, 아래에 설명된 것과 같이 10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 사견)를 제거해야 합니다.
1. 부처님 시대에 뽀-띨라(Pōtila)라는 빅쿠가 있었습니다. 그는 깊은(심오한) 담마 개념을 잘 알고 있었고 유명한 스승이었습니다. 그는 신통(abhiññā, 아빈냐-)력도 개발했지만,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그의 데-사나(dēsana, 법문)은 심오했고 아나-가-미(Anāgāmi, 불환자) 단계(적어도 소-따빤나 단계)에 있는 자만이 그 법문에 따라 아라한과(Arahanthood)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부처님을 만나러 가서 경의를 표하고, 부처님에게 자신이 이전(과거생)에도 여러 부처님 시대에 담마를 가르치는 스승이었으며 많은 이들이 열반(아라한과, Arahantship)에 이르도록 도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어떤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를 얻었는지 물으셨고, 뽀-띨라 빅쿠는 자신이 [어떤 막가 팔라도] 얻지 못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툿짜 뽀-띨라(Thucca Pōtila)”라고만 말씀하시고, 뽀-띨라 빅쿠의 관심을 다른 문제로 돌렸습니다. 빠알리어와 싱할라어로 툿짜(thucca)는 ‘경멸할 만한’ 또는 ‘저열한’을 의미합니다.
2. 그래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에 대해 부처님의 칭찬을 기대했던 뽀-띨라 빅쿠(bhikkhu Pōtila)는 다른 사람을 돕기 전에 자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혼자서(혼자 힘으로) 노력했지만, 어떤 진전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법문하는 것과 동일한 지시에 따라 ‘모든 들러붙음(애착)을 포기하기(버리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
* 그가 다른 빅쿠들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그들(다른 빅쿠들)은 그의 스승이 되기를 꺼렸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그는 담마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가르치는 능력을 잘 알고 있었던 이 아주 젊은(나이 어린) 아라한에게 가서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 나이 어린 아라한은 자기가 지시하는 대로 뽀-띨라 빅쿠(bhikkhu Pōtila)가 모든 것을 행하는데 동의하기만 한다면 돕겠다고 했고, 뽀-띨라 빅쿠는 [그것에] 동의했습니다.
-
* 그 나이 어린 아라한은 특이한 깜맛타-나(kammaṭṭhāna, 지침)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뽀-띨라 빅쿠((bhikkhu Pōtila)를 넓은 진흙뻘로 데리고 가서, 진흙뻘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멈추라고 할 때까지 계속 걸어가라고 했습니다. 뽀-띨라 빅쿠는 진흙뻘 속에 들어가 어기적 어기적 계속 걸어가기 시작했고, 진흙이 계속 차올라 턱까지 올라갔을 때 멈추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 시점에서는 진흙이 [그를 감싸서] 무거워서 그는 거의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3. 그 나이 어린 아라한은 뽀-띨라 빅쿠에게 “누군가 그와 같이 진흙 속에 갇혀 있으면,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는 것에 대한 그 어떤 지식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먼저 진흙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
* 그리고, 뽀-틸라 빅쿠에게 돌아 나오라고 지시했습니다. 뽀-띨라 빅쿠는 진흙이 턱까지 차올라 그를 두껍고 무겁게 감쌀 때까지 계속 나아갔기 때문에, 돌아서 나오는데 처음에는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주 힘들게 진흙 속에서 몸을 끌고 나오는 동안, 뽀-띨라 빅쿠는 그 나이 어린 아라한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거기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진흙에서 빠져나올 수 없으며, 진흙에서 벗어나려면 엄청난 의지력을 필요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뽀-띨라 빅쿠는 자신이 훨씬 더 낮은 도덕 레벨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
* ‘포기하는 것(버리는 것)’은 잘못된 비전/견해(밋차- 딧티, micchā diṭṭhi)와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과도한 욕심(탐욕)을 제거한 마음이 되어야 일어납니다. 그것에 대해 단지 읽거나 듣는 것만으로는 이것들(들러붙음/애착)은 제거될(포기될/버려질) 수 없습니다.
4. 물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유, 특히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에 대해 말씀하신 이유의 타당성에 대해 읽고, 듣고, 숙고함으로써 그 [들러붙음/애착의] 일부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깜마(또는 자신의 행위)가 이 생이나 다음 생에서 그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재탄생 과정이 타당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머지 유형의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도 깜마와 재탄생과 관련이 있습니다. 10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는 ‘밋차- 딧티, 간답바, 및 소-따빤나 단계’ 포스트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
*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제거하는 두 번째 수준(단계)은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밋차- 딧티, 간답바, 및 소-따빤나 단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5. 꿀에 갇힌 개미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는 비유가 훨씬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꿀에 갇힌 개미의 비유에서는 진흙과는 달리, 감각적 즐거움이 매력적이라서 꿀에서 빠져 나가고자 하는 동기가 부여될 수도 없습니다. 꿀에 갇힌 개미들은 꿀을 즐기느라 너무 바빠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비록 개미들이 꿀에 거의 붙지 않고 꿀에서 움직일 수 있을 때라도, 꿀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나가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 꼭같이, 사람이든 하찮은 벌레든 모든 유정체는 감각적 즐거움에 탐닉하는(빠지는) 것을 좋아하고 따라서 그것에 갇히게 됩니다.
-
* 그리고, 누군가 ‘꿀단지’에서 빠져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도, 적어도 처음에는 어렵습니다.
-
* 그 때문에, 사람들은 사악처에 태어나면 상상할 수 없는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으로, 재탄생 과정(윤회)에 머무는 것의 위험함을 보아야 합니다. 더 높은 영역에 태어나려고 노력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오래 가지(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닛짜(anicca)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31영역 세상에서 피난처를 찾으려고 노력하더라도, 결국 그것(31영역 세상에서 피난처를 찾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6. 많은 노력으로, 뽀-띨라 빅쿠는 [진흙뻘에서] 천천히 나오면서 진흙이 허리 높이까지 낮아졌고, 진흙에서 벗어나는 가벼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제 더 빨리 움직여 진흙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진흙에서 벗어났을 때 안도감을 느꼈고, [그 나이 어린 아라한은] 가서 샤워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제 그는 비누로 몸을 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흙 속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비누와 물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가 여전히 진흙 속에 갇혀 있었던 동안에는 그가 기억하고 있었던 깊은(심오한) 담마가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
* 결국, 누군가 진흙에서 나올 때, 그것은 소-따빤나(수다원) 수준과 같습니다. 그 사람은 여전히 진흙으로 덮여 있습니다. 즉, 그 사람은 여전히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 사람은 자신이 샤워를 하고, 비누와 삼퓨를 사용하고, 그 진흙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7. 뽀-띨라 빅쿠가 하고 있었던 것은 아-나가-미(Anāgāmi, 아나함/불환자)가 아라한과(Arahanthood)를 얻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깊은(심오한) 담마에 대해 법문하는 것이었습니다. 뽀-띨라 빅쿠의 법문을 통해 혜택(이득)을 본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나-가-미(Anāgāmi)들이었습니다. 뽀-띨라 빅쿠는 진정한 이해없이 법문을 암송하고 있었지만,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 어린 아라한의 그 깜맛타-나(kammaṭṭhāna)을 사용한 후, 뽀-띨라 빅쿠는 소-따빤나(수다원) 단계에 도달할 수 있었고 곧 아라한(Arahant)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나리야, 즉 적어도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의 지시를 받아 소-따빤나 단계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면, 혼자 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워 더 높은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뽀-띨라 빅쿠의 법문으로부터 혜택을 볼 수 있었던 자들은 소-따빤나 이상(대부분 아나-가-미) 뿐이었습니다.)
-
* 필자는 뽀-띨라 빅쿠와 관련된 이 실제 사건이 매우 중요한 점을 부각시킨다고 믿습니다. 담마의 깊은(심오한) 개념에 대해 아무리 많이 [듣거나] 읽어도 마음이 어느 정도 정화되지 않으면 그 개념이 [마음에] 스며들기(흡수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잘못된 개념(사견)과 강한 들러붙음(애착)으로 덮여있는 짙은 안개를 먼저 돌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초기 ‘저항의 벽’을 돌파하면 더 깊은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로-바, 도-사, 모-하’ 대 ‘라-가, 빠띠가, 아윗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8. 체계적인 길을 따라 진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초적인 덧셈/뺄셈을 배우지 않고는 고등학교 수학을 배울 수 없듯이, 기본 개념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살생, 훔치기, 성적 비행, 거짓말, 험담, 술/마약/권력/미모/돈 등에 취하는 행위를 한다면, 마음을 기본 수준으로 진정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려운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진흙(거기에 갇혀 있는 것이 기분이 좋기 때문에, 꿀에 더 가까움) 속에 갇혀 있습니다.
-
* 그리고 진흙(또는 꿀)에 갇혀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명상을 해도 장기적인 안도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명상 수행처에 가서 그 모든 ‘꿀로 가득한’ 즐길거리에서 벗어나 평온함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모든 유혹이 있는 ‘현실의 삶’으로 돌아온 후에 곧 사라집니다.
-
* 사람들은 진흙(또는 꿀, 초기에는 진흙이 먼저 꿀처럼 보이기 때문)을 서서히 통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아무리 많이 [담마를 듣거나] 읽더라도, 마음이 실상을 볼 수 있는 단계를 마련할 때까지는 [진전에]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
* 그런데, 이것은 '자아가 없다'('나'가 없다)고 명상하는 사람도 진전이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먼저 ‘자신을 위해 물질적인 것은 축적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완전히 거짓말하고, 다른 사람을 해치고, 성적 비행을 하는 등의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9. 다음은 필자가 권하고 싶은 대략적인 ‘단계-단계’입니다(물론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꿀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입니다).
A. 감각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 다른 이들을 다치게 한다면, 우선 [그 행위를] 중단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과도한 탐욕으로 인해 [그 행위에] 갇히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이중으로 위험한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즐거운 것’에 들러붙게 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해쳐서 나쁜 업을 축적하는 것입니다.
-
* 예를 들어, 만약 어떤 사람이 재미로 동물을 죽이고(스포츠), 다른 사람의 귀중품을 훔치고, 다른 결혼한 사람이나 어린 아이들과 성관계를 맺거나, 누군가를 해치는 계획을 하거나(보복을 위한 경우에도 해당), 또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누군가에 대해 나쁜 소문을 퍼뜨리거나, 술에 취해 다른 사람들을 언어적/신체적으로 학대한다면, 그 모든 것들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
* 그런 부도덕한 행위는 최악이며, 빠-빠 깜마(pāpa kamma)라고 합니다. 로-바(lōbha)와 도-사(dōsa, dvēsha)가 여기에 관련되어 있으며, 그 사람의 마음은 완전히 무지(mōha, 모-하)로 덮여 있다고 합니다. ‘로-바, 도-사, 모-하’ 대 ‘라-가, 빠띠가, 아윗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이 단계에 있는 자들은 진흙뻘에 깊이 빠져, 진흙이 턱까지 오게 된 자들입니다.
B. 한 단계 더 낮은 것은 다른 이들을 직접 해치지는 않더라도 극단적인 탐욕으로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물론 항상 극단적인 탐욕으로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그 사람은 진흙이 허리에서 어깨 높이까지만 올라갑니다. 이것들은 보통 극단으로 치닫음으로써, 행복이라고 여겨진 것들을 추구하기 위해 행하는 것들입니다.
-
* 알코올로 ‘충분히 높은 [감각 즐거움] 상태’를 얻을 수 없을 때, 사람은 마약을 시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감각이 둔감화(탈감각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향에 빠져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많은 영화 배우 등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어떤 것도 고도로 ‘탈감각화된’ 마음에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 극단적인 행위의 또 다른 징후(표시)는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상대적입니다. 작지만 편안한 집에 살고 있는데, 그저 자원을 늘리므로써 그것을 위해 더 큰 집으로 이사하고 싶다면, 그것은 극단적인 탐욕의 표시입니다. 물려받거나 돈을 벌어 맨션(저택)에 이미 살고 있고 재정적 부담이 없다면, 그것이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집이든 자동차이든 어떤 것이든 그것이 더 고급일수록 보통 그것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 것 때문에 그에 따른 정도의 들러붙음(애착)이 불가피합니다.
-
* 그런 극단적 탐욕은 누군가 [그 탐욕 행위를] 방해할 때, 또한 증오하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 이 단계에서도 ‘빠-빠 깜마(pāpa kamma)’를 행할 수 있으며, 증오 행위가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게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가능성을 논의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경우를 많이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아무도 어떤 사람을 위해 이것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오직 각 사람만이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현명한 사람도 자신을 위해 어떤 종류의 판단을 할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그런 판단을 할 수는 없습니다.
C. 자신이 위의 A 또는 B 단계에 있는 경우, ‘세 단계 실천’ 섹션의 ‘도덕적인 삶과 기본 원칙’ 서브 섹션에 있는 해당 포스트를 읽어 보는 편이 좋습니다. 자신이 진전함에 따라 되돌아가서 그 포스트들을 [다시] 읽고, 자신이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사실입니다. 깨끗한 마음은 훨씬 더 쉽게 그것들을 봅니다.
-
* A 또는 B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이 ‘바와나(명상)’ 섹션에서 처음 3개의 포스트(# 1 ~ # 3), 즉 ‘1. 불교 명상 입문’, ‘2. 명상의 기본’, 및 ‘3. 두 번째 레벨 ㅡ 마음 정화의 핵심’ 포스트를 먼저 읽어 보세요.
D. 일단 B 단계에 이르면, ‘주요 담마 개념’ 섹션에 있는 포스트들을 읽기 시작하고, 특히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배우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주요 담마 개념, 특히 아닛짜, 둑카, 아낫따를 배우고 이해하는 것)은 다음 단계를 시작하게 되기 위한 진짜 핵심 단계입니다. 일단 어떤 견인(끌기)이 시작되면, 그 사람이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올바른 개념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에 수백년 동안 [성자에 이르기가] 힘들었습니다. 일단 어떤 견인이 시작되면, 바-와나-(bhāvanā) 중의 어떤 것을 하기 시작해도 좋습니다.
-
* 칼 세이건(Carl Sagan)이 말했듯이, “.. 단지 50여년 동안 우월감과 권력을 가지기 위해 말할 수 없는 잔혹 행위를 저지른 그 모든 황제들과 왕들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그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창백한 푸른 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세이건 박사는 [붓다 담마의 삼특상을] 몰랐지만, 그것은 아닛짜(anicca)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
* 그 모든 황제들과 왕들은 앞으로 수십억 년 동안 동물이나 하위 영역(사악처)에 갇혀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자신의 재산(수입)에 따라 살면서 도덕적 생활을 한 농민은 수십억 년 동안 데-와(dēva, 천신)/브라흐마(brahma, 범천) 영역에서 살 수 있습니다.
-
* 여기서 요점은 최대(기껏해야) 80~100년 동안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거나 부(재산)를 축적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어떤 것도 우리가 만족할 만하게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10억 달러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 몸이 닳아 오래되면(노쇠하면) 어떤 감각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까요? 우리 몸의 그 어떤 부분이라도 만족스럽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보톡스(botox)와 같은 임시 조치로 ‘노화 과정을 이기려고’ 하지만 모든 그런 효과도 또한 일시적입니다.
-
진흙이나 꿀에 갇혀 있으면,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의 의미를 정말로(실제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E. 진흙에서 나와서 (몸에 진흙이 묻은 상태로) 걷기 시작할 때, 그것은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와 같습니다. 비록 누구의 도움이 자신의 진전 과정을 촉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더라도, 이제 그 사람은 어떤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스스로 문제를 알아낼(해결할) 수 있습니다.
-
* 많은 숫따-(suttā)를 외우고 있거나 아비담마 (abhidhamma) 개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는 전혀 가까이 있지 않습니다.
-
* (배우는 것이 큰 역할을 하지만) 우리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가 단지 개념을 배우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님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붓다 담마는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배운 것을 사용하는 것에 관한 것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면 실재(실상)를 더 잘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붓다 시대에는 문맹자들이 듣는 것만으로 담마를 배울 수 있었고, [그것으로] 아라한과까지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E-1. 마지막 단계는 그런 데-와(dēva, 천신)/브라흐마(brahma, 범천) 영역에 태어나는 것조차 일시적인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그들은 모두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오랫동안 사악처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이 세상의 본질이며, 이 세상에서 감각적 즐거움은 누구에게나 나쁜 행위를 하도록 유혹(유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 단계와 B 단계를 넘어서서 소-따빤나(Sōtapanna)가 되기 전까지는 그 단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F. 필자가 사띠빳타-나 숫따Satipaṭṭhāna Sutta)에 관해 쓰고 있는 일련의 포스트들은 A 단계부터 이 과정도 자세히 설명합니다. 따라서 해당 포스트들도 처음부터 읽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 소개 포스트들은 빠알리(Pāli) 낱말이 많이 있지만,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것들은 나중에 [의미가] 분명(명확)해질 것입니다.
-
* 길(팔정도)를 따라 가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이따끔 그 [길을 따르는] 경향을 깰(어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걷는 법을 배우는 아이는 여러 번 넘어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끔 부도덕한 행위를 할 때 낙담합니다. 자신이 실수를 했고 그것이 자신의 마음을 괴롭힌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 자신이 진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각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인내를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걷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입니다.
G. 물론 필자는 웹 사이트에 오는 각 사람의 수준을 모릅니다. 각 사람만이 위 단계들과 관련하여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
*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고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전부입니다.
-
* [이 웹사이트에는] 기초 수준부터 매우 고급 수준까지 다양한 자료가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자료가 게시될 예정입니다. 이것은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이며, 또한 어떤 학자 또는 관심있는 사람이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의 깊이를 확실히 가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
* 실제로 담마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더 자세한 내용을 찾는 것을 즐거워하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른 어떤 유형의 ‘즐거운 활동’도 ‘담마를 통한 즐거움’에 필적할 수 없습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궁극적인 ‘자연 현상에 관한 책(book of nature)’입니다.
-
* 더욱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 폭넓게 읽는 것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이해에 기반한 믿음인 삿다-(sadhhā)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대 과학이 알고 있는 것은 부처님께서 알고 있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적은지 알면, 삿다-(sadhhā, 합리적 믿음)을 쌓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빤냐(paññā, 지혜)와 삿다-(sadhhā, 합리적 믿음)는 함께 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