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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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성제의 둑카(고통, 괴로움)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The Suffering (Dukkha) in the First Noble Truth’ 포스트

- 2020년 2월 29일 작성

 

소개

 

1. 이전 포스트인 ‘붓다 담마의 틀’에서 우리는 붓다께서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pavattana Sutta, SN 56.11.)에서 드러내신 붓다 담마의 틀을 논의했습니다. 그것은 ‘30,000 피트 시각(고차원 시각)’입니다.

 

  • * ‘30,000 피트 시각’은 ‘큰 그림(big picture)’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높은 수준(고차원)에 이른 것을 나타내는 일반적 표현(구절)입니다. 기회가 될  때 상업용 비행기를 타고 약 30,000 피트 상공을 순항할 때 창 밖을 내다보고 구름들, 땅의 넓은 구역, 어쩌면 산맥 등 보이는 것에 주목해 보세요. [그러나 그 때의] 실상은 너무 높이 있으므로 [지상에 있는] 대부분의 것을 정확하게는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 * 500 ~ 1000 피트 사이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보면,  새롭고 더 높은 관점에서 보는 잇점이 있으면서 우리가 바라보는 것을 알아볼(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이 포스트를 시작으로, 우리는 붓다 담마에 대해 ‘1000 피트 시각(보기)’를 취하여, 특히 첫 번째 성스런 진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 우선, 붓다께서 우리가 이해하기를 바라신 '고통(괴로움)'을 알아내야 합니다.

  • * 그런데, 필자는 지난 5년 동안 이전에 이런 개념에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이 웹 사이트에는 현재 500개 이상의 포스트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리즈의 포스트는 체계적으로 접근하게 하는 뛰어난 방식입니다. 필요에 따라 기존 포스트를 참고하겠습니다. 참고 포스트를 읽어 확실하게 해 보세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둑카(고통, 괴로움)는 무엇인가?

 

2. 이전 포스트의 #6 및 #7에서, 숫따(sutta)의 섹션 4 ~ 섹션 7( Dhammacakkappavattana Sutta – Printout 문서 파일 참조)에서 12번 나타내는 “..붑베 아나눗수떼수 담메수 짯쿵 우다빠-디, 냐-낭 우다빠-디, 빤냐- 우다빠-디, 윗자- 우다빠-디, 아-로꼬 우다빠-디,(..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라는 구절을 언급했습니다.

 

  • * ‘아나눗수떼수(ananussutesu)’라는 낱말은 ‘나(na)’ + ‘아눗수따(anussuta)에서 유래하며, ‘듣지 못한’의 뜻입니다. 붑베(pubbe)는 ‘이전’을 의미하므로, “..붑베 아나눗수떼수 담메수..(..pubbe ananussutesu dhammesu..)”는 (이전의 붓다 시대를 제외하고) 세상에 결코 알려지지 않은 담마(가르침)를 의미합니다 .

  • * 첫 번째 성스런 진리는 ‘둑카 삿짜(Dukkha Sacca)’이므로, 그것은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고통(괴로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문서 파일의 섹션 3과 이전 포스트의 #5에 있습니다. ‘삿짜(sacca)’는 ‘sachcha’로 발음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이에 대해서는 ‘띠삐따까 영어(Tipiṭaka English)’에 대한 2개의 포스트, 즉, ‘Tipiṭaka English” Convention Adopted by Early European Scholars – Part 1’와 ‘Tipiṭaka English” Convention Adopted by Early European Scholars – Part 2’를 참조하세요.

  • * 고통(괴로움)에 대한 첫 번째 성스런 진리: 태어나는 것은 고통(괴로움)이고, 늙는 것은 고통(괴로움)이며, 병드는 것은 고통(괴로움)이고, 죽는 것은 고통(괴로움)이다. 원하지 않은 것과 함께 있는 것은 고통(괴로움)이다. 원하는 것과 떨어지는 것은 고통(괴로움)이다. 원하는(잇짜-, icchā)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고통(괴로움)이다. 간단히 말해서, 5가지 집합 요소(오온)에 집착하는(우빠-다-나, upādāna) 것은 고통(괴로움)이다.

 

고통(괴로움)에 대한 첫 번째 성스런 진리

 

3. 고통(괴로움)에 대한 첫 번째 성스런 진리에 관한 위 기술에서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부분”은 밑줄 및 굵은 글씨로 강조 표시를 하였습니다. 

 

  • * “늙는 것은 고통(괴로움)이며, 병드는 것은 고통(괴로움)이고, 죽는 것은 고통(괴로움)이다. 원하지 않은 것과 함께 있는 것은 고통(괴로움)이다. 원하는 것과 떨어지는 것은 고통(괴로움)이다.”는 누구나 압니다.

  • * “원하는(잇짜-, icchā)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고통(괴로움)이다.”는 것 또한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사람들이 숙고(고려)하지 않는 심오한 함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심오한 함의를 보기 위해서는 “더 넓은 세계관(광대 세계관)”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 * 그러나 붓다께서는 왜 “태어나는 것은 고통(괴로움)이다”라고 하셨을까요? 왜 붓다께서는 “간단히 말해서, 5가지 집합 요소(오온)에 집착하는(우빠-다-나, upādāna) 것은 고통(괴로움)이다”라고 하셨을까요?

  • * ‘상킷떼나(saṃkhittena)’라는 낱말을 ‘간단히’로 번역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상킷떼나 빤쭈빠-다-낙칸다- 둑카(saṃ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라는 구절은 “간단히 말해서, 5가지 집합 요소(오온)에 집착하는(우빠-다-나, upādāna) 것은 고통(괴로움)이다”는 뜻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그것은 나중에 논의하겠습니다.

  • * 대신, 문서 파일 섹션 8의 ‘띠빠리왓따(Tiparivaṭṭa)’에 대한 섹션 8(문서 파일 중)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이전 포스트의 #8에서 간략하게 논의했습니다. 여기서 [논의를] 조금 더 확장하겠습니다.

 

띠빠리왓따 ㅡ 세 겹의 굴레(속박)

 

4. ‘띠빠리왓따(Tiparivaṭṭa)’라는 단어는 ‘3’을 의미하는 ‘띠(ti)’와 ‘회(겹)’을 의미하는 ‘왓따(vaṭṭa)’(실제로는 원형 벽)에서 유래했습니다. ‘빠리왓따(parivaṭṭa)’는 완전한 원형 벽입니다. 따라서, 띠빠리왓따(tiparivaṭṭa)라는 낱말은 3개의 동심 벽이 있는 감옥 한 가운데 갇힌 유정체의 모습으로 시각화하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 * 대부분의 고통(괴로움)은 첫 번째 장벽(겹) 내에 있습니다. 첫 번째 장벽을 극복하면, 4가지 가장 낮은 영역(사악처, 즉 니라야, 뻬따, 아수라, 및 동물 영역)에서 자유로워집니다.

  • * 다음으로 고통(괴로움)이 감소된 레벨은 첫 번째 벽과 두 번째 벽 사이에 있으며, 이것은 7가지 영역(인간 및 6가지 데와 영역)에 해당합니다. 인간 영역에는 고통(괴로움)과 행복(즐거움)이 모두 있습니다. 6가지 데와(Deva) 영역은 인간 영역에 비해 고통(괴로움)이 훨씬 적고 ‘즐거움’이 훨씬 더 높은 레벨입니다.

  • * 20가지 브라흐마(Braham) 영역은 두 번째 벽과 세 번째 벽 사이에 있습니다. 그 중 16가지는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upāvacara Brahma) 영역에 있고 다른 4가지는 더 높은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arupāvacara Brahma) 영역에 있습니다. 이들 더 높은 영역에는 어떤 고통(괴로움)도 거의 없습니다. 자-나(jhāna, 선정)을 기를 수 있는 인간도 그런 ‘선정의 즐거움(jhānic pleasure)’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 31영역은 ‘31 Realms of Existence’ 및 ‘지구와 관련된 31 존재계’에서 논의했습니다.

 

재탄생 과정에는 즐거움보다 괴로움(고통)이 훨씬 더 많다

 

5. 그러면, 단지 선행(깜마)을 하여 데와(Deva) 영역에 태어나 그런 천상의 즐거움(행복)을 누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는 자-나(jhāna)를 개발하여 브라흐마(Braham) 영역에 태어나 무수한 년 동안 선정의 즐거움(jhānic pleasure)을 누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제는 그런 즐거움이 (재탄생 과정에서) 매우 짧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재탄생 과정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 모든 유정체가  훨씬 더 많은 고통(괴로움)을 겪게 합니다.

 

  • * 어떤 특정 유정체도 상위 영역보다 사악처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특히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인간영역에 재탄생하는 기회를 붓다께서 묘사하신 방법’ 을 참조하세요.

  • * 예를 들어, 데와두따 숫따(Devaduta Sutta, MN 130)와 같은 많은 숫따(sutta)에서 묘사된 것처럼 사악처에서 고통(괴로움)을 받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동물 영역은 다른 세 영역보다 상대적으로 더 낫고, 우리는 동물 영역에서 그들이 겪는 고통(괴로움)을 볼 수 있습니다.

 

깜마 에너지의 힘

 

6. 어떤 영역에 태어나는 것은 그 자신의 행위(깜마, kamma)로 인한 것입니다. 선행은 좋은 태어남으로 이어지고, 악행은 나쁜 태어남으로 이어집니다. 강한 (좋거나 나쁜) 깜마(kamma, 업)와 연관된 높은 강도의 정신적 에너지(깜마 에너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화난 사람을 보면, 이 ‘깜마 에너지(kammic energy)’가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화난 생각은 육체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그 얼굴은 일그러지고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그 화난 사람은 또한 그 에너지를 끌어 올려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을 죽이는 행동까지 합니다.

 

  • * 그런 ‘힘있는(강력한) 생각’(자와나 찟따, javana citta)은 나쁜 행위나 선한 행위를 할 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른 영역에 태어남을 일으키는 업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 * 어떤 영역의 수명은 해당하는 업 에너지의 강도에 따라 정해집니다.

  • * 인간은 삶을 즐기려는 자신의 바람(잇짜-, icchā)으로 부도덕한 행위(akusala kamma, 아꾸살라 깜마)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는 사악처(아빠-야-, apāyā)에 재탄생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따라서 깜마(kamma, 업)의 법칙에 대해 배우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논의하겠지만, 그것들은 결정적이지 않습니다.

  • *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행함으로 인해 나쁜 영역에 재탄생하고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피함으로 인해 좋은 영역에 재탄생하는 것에 대해 읽어 보면 좋은 숫따(sutta)가 빠타마니라야삭가 숫따(Paṭhamanirayasagga Sutta, AN 10.211)입니다. 링크된 것에는 2가지 영어 번역판이 있습니다.

  • * 또한, 많은 숫따(sutta)와 함께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와 다사 꾸살라(dasa kusala)가 논의된 것으로, ‘Anguttara Nikāya – Suttā on Key Concepts’ 에 있는 포스트를 참조해 보세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고통(괴로움)을 이해하려면 더 넓은 세계관(광대 세계관)이 필요하다

 

7. 위의 내용으로부터, 첫 번째 성스런 진리에서 고통(괴로움)은 고통(괴로움)이 [단지] 있다고 인식함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통증과 고통, 질병, 부상 등과 관련된 ‘평범한(세간적 의미의) 고통(괴로움)’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 * 위의 #4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사악처(apāyā, 아빠-야-)에서 가능한 미래의 고통에 대해 가장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어떻게 하면 아빠-야-(apāyā)에 재탄생하지 않는지를 알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보았듯이, 그것은 닙바-나(Nibbāna)의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 *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완화하거나 평범한(세간적) 자-나(jhāna, 선정)를 기르기 위해 ‘호흡 명상’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경감(안도감)을 줄 것이지만 붓다께서 다루셨던 고통(괴로움)이 아닙니다.

  • * 달리 말하면, ‘평범한(세간적) 고통(괴로움)’은 웨다나-(vedanā)에 포함됩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육체와 관련된 ‘까-이까 둑카 웨다나-(kāyika dukkha vedanā)’ 또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관련된 ‘도-마삿나 웨다나-(dōmanassa vedanā)’입니다. ‘선정의 즐거움(jhānic pleasure)’조차도 웨다나-(vedanā)이고 ‘이 세상’(특히, 브라흐마 영역)에 속합니다.

  • * 그러나 지혜(빤냐-, paññā)로 미래의 재탄생(특히 사악처에 재탄생)에 있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고통(괴로움)’을 보야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첫 번째 성스런 진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로꿋따라 삼마- 딧티(lokuttara Sammā Diṭṭhi)’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부처님의 이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가르침’을 믿을 수 있을까? 

 

8. 이것은 우리가 논의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문제입니다. 위에서 논의한 많은 개념은 자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동물 영역을 제외하고는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 있는 가혹한 고통을 직접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 * 우리는 먼저 붓다께서 가르치신 ‘사전(준비) 자료’를 보고 그렇게 합니다. 그것들에서 자명한 진리를 볼 수 있을 때, 우리가 스스로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신뢰가 커집니다. 그것이 부처님(Buddha)과 그 가르침(Buddha Dhamma)에 대한 믿음/확신(삿따-, saddhā)을 쌓는 것입니다.

  • * 대학 교육을 받기 전에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거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먼저 붓다 담마의 기본 원리를 배워야 합니다.

  • * 깜마(kamma, 업)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 재탄생 과정이 타당하다는 것, 그리고 그와 관련된 개념이 필수적입니다. 그것은 ‘평범한(세간적인)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를 기르는 것입니다.

  • * 그 후에야 ‘로꿋따라 삼마- 딧티(lokuttara Sammā Diṭṭhi)’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악처의 가혹한 고통을 ‘볼(알)’ 수 있는 능력이 있게 됩니다.)

  • * 붓다께서는 마하- 짯따-리사까 숫따(Mahā Cattārisaka Sutta, MN 117)에서 그것을 명확하게 밝히셨습니다. 그것은 다음 포스트에서 논의하겠습니다. 

 

좋거나 나쁜 행위는 훨씬 나중에 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9. 이것은 또 다른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우리 행위가 가져오는 ‘가까운 결과’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 X가 누군가의 집을 털면서 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X는 잡히지 않고 그 집에서 훔친 귀중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 * 그러나, 사람 X의 부도덕한 행위(깜마)는 자연법(담마)에 따라 처벌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행에 상응하는 결과(깜마 위빠-까, kamma vipāka)는 이 생이 아니라면 미래 생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은 강한 악업(bad kamma)은 사악처 중의 한 영역에 재탄생되게 하는 원인도 됩니다. 마찬가지로, 연민심이 있는 행위와 같은 선업(good kamma)을 행하는 자는 데와(Deva, 천신) 영역에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

  • * 어떤 종류의 행위(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의 업(Kammic) 결과는 엄격합니다. 자연은 그것을 자동으로 시행합니다. 누군가의 행위를 재검토하는 ‘상위 존재’는 없습니다. 자연에는 다양한 복잡함을 자동으로 고려하는 내장 메커니즘(built-in mechanism)이 있습니다. 그런 깜마(kamma, 업)의 법칙은 복잡할 수 있지만, 우리는 타당한 일반적인 개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그것들을 논의할 것입니다.

  • *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경험할 수 있는 것만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재탄생을 믿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 재탄생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강력한 잘못된 견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께서 말씀하신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가르침’을 이해(파악)할 수 있기 전에 열 가지 유형의 잘못된 견해를 잘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구적으로 좋거나 나쁜 사람은 없다

 

10. 아무도 영구적으로 ‘좋은(선한) 사람’이나 ‘나쁜(악한) 사람’은 아닙니다. 최소한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 수다원도)가 될 때까지 성격/습관(gati, 가띠)이 바뀔 수 있습니다. 가띠(gati)는 요즘 극소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기는 하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빠알리(Pāli) 용어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자세히 논의할 또 다른 주제입니다.

 

  • * ‘좋은 가띠(good gati)’를 지닌 사람은 ‘좋은 행위’를 더 많이 할 가능성이 높고, ‘나쁜 가띠(bad gati)’를 지닌 사람은 ‘나쁜 행위’를 더 많이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 그러나, ‘좋은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도 유혹이 충분히 높으면 악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종종 뇌물 또는 성폭행 혐의로 구금된 ‘선한 사람들’에 대해 듣습니다.

  • * 이와 마찬가지로,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힌 사람도 특정 조건에서 공덕 행위를 할 수도 있습니다.

  • * 각자의 가족, 친구 및 동료는 새로운 가띠(gati)를 형성하고 예전 가띠(좋거나 나쁜 가띠)를 제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 이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은 ‘9. Key to Ānapānasati – How to Change Habits and Character (Gati)’를 참조하세요.

 

사견을 지닌다는 것은 주요한 ‘아꾸살라 깜마’다

 

11. 모든 영역은 그 수명이 유한합니다. 누구도 영원히 ‘좋은 영역’에 살거나 ‘나쁜 영역’에 영원히 갇히지는 않습니다. 우리 각자 모두는 31영역의 대부분에 여러 번 반복하여 있어 왔습니다. 재탄생 과정은 식별할 수 있는 시작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생명의 기원 – 추적할 수 있는 기원이 없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일반적으로, 공덕 행위(꾸살라 깜마, kusala kamma)는 좋은 재탄생(인간 및 상위 영역에 있는 유정체)으로 이어집니다. 악한 행위(아꾸살라 깜마, akusala kamma)는 나쁜 존재(사악처, 아빠-야의 중생)로 이어집니다.

  • *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한 가지 핵심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일반적인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세상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지니는 것만으로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중의 하나입니다.10가지 부도덕한 행위(다사 아꾸살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도덕한 행위를 ‘나쁜 육체적 행위(살생, 도둑질, 성적 비행)’와 ‘나쁜 말(거짓말, 험담 등의 수다 잡담, 중상 모략하는 말, 거친 말)’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마음(탐욕스러운 생각, 증오하는 생각, 그리고 잘못된 견해)으로 세가지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를 행할 수 있습니다.

  • * 그것이 첫 번째 성스런 진리의 첫 번째 단계(‘띠빠리왓따_tiparivaṭṭa’의 첫째 회)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12. 마음으로, 즉 자신의 생각만으로 행하는 세 가지 아꾸살라 깜마(skusala kamma)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탐욕스러운 생각(abhijjā, 아빗자-), 분노하는 생각(vyāpāda, 브야-빠-다), 및 잘못된 견해(micchā diṭṭhi, 밋차- 딧티)입니다.

 

  • * 그 세 종류의 악한 생각들은 나쁜 말과 신체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더욱이 잘못된 견해는 앞으로 보게 될 것처럼, 또한 탐욕과 분노의 근본 원인이기도 합니다.

  • * 믿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잘못된 견해는 대부분의 인간이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 재탄생하는 주된 이유입니다.인간영역에 재탄생하는 기회를 붓다께서 묘사하신 방법’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 포스트를 통해, 바로 우리는 세계관을 좀 더 확장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모두가 여기에 탑승하고 있는지(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위 문제에 대해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필수적인 근본(기본)’을 잘 이해하지 않고서 심오한 숫따(sutta)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유익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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