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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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사-다(즐거운 것으로 인식한 즐거움)'가 어떻게 둑카로 이어지는가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How Perceived Pleasures (Assāda) lead to Dukkha’ 포스트

- 2016년 3월 11일 작성; 2017년 10월 31일 개정; 2020년 2월 10일 개정

 

1.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본질은 우리가 즐거움이라고 인식하는 것(assāda)이 사실은 미래 고통(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것이고, 그것을 앗사-다(assāda)의 아-디-나와(ādīnava, 위험함)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이해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이해하기가 미묘한(섬세한) 점이며 이를 ‘보기’ 위해서는 마음을 어떤 정도로 깨끗이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집중된 마음이 필요합니다.

 

  • * 적어도 마음이 고요할 때 이 포스트들을 읽어야 합니다. 그것은 담마(Dhamma)를 이해하는 것에 큰 차이를 가져 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특히 이 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지만, 마음 상태가 바뀔 수 있습니다. 흥분된(들뜬) 마음도 담마를 깊이 파악할 수 없습니다. 필자는 2년 전 초기 포스트 몇 개에서 이것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음 정화의 중요성’ 포스트를 보세요.

  • *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1. Introduction to Buddhist Meditation’ 포스트로 시작되는 ‘바와나(명상)’ 섹션에 있는 처음 몇 개 포스트들을 모두가 읽어 보기를 매우 추천합니다.

  • * 붓다 담마(Buddha Dhamma, 불교를 처음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된 곳에서 시작합니다. ‘[불교를 시작할 때부터] 정말 이 모든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대답은 '아닙니다’ 입니다. 위험하거나 적어도 결실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은 자발적으로 포기할 것입니다.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는 이러한 이해에서 비롯됩니다.

 

2. 여기서 핵심은 ‘바와(bhava)’와 ‘자-띠(jāti)’가 자신의 가띠(gati)에 따른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와(bhava)’가 ‘우빠-다-나(upādāna)’를 통해 일어나고, ‘우빠-다-나(upādāna)는 자신이 좋아하거나 즐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Paṭicca Samuppāda – ‘Pati+ichcha’+‘Sama+uppäda’ "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바와(bhava)는 ‘존재를 가져올 잠재력’을 의미하며, 그 존재는 [단지]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갈망하는 것(upādāna, 우빠-다-나)에 따른 것입니다. 우빠-다-나(upādāna)는 자동적으로 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어도 초기 반응은 자동적이며, 그것은 쭈띠 빠띠산디(cuti-patisandhi) 순간에 중요합니다. 아래를 참조하세요.

  • * 만약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의 감각적 즐거움을 갈망한다면, 까-마 로-까(kāma lōka)의 바와(bhava)와 자-띠(jāti)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 * 더 중요한 것은,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고 동물 가띠(animal gati, 동물 성향), 쁘레타 가띠(pretha gati, 아귀 성향), 아수라 가띠(asura gati, 아수라 성향), 또는 니라야 가띠(niraya gati, 지옥중생 성향)로만 할 수 있는 행들을 꺼려하지 않고 한다면, [인간계와 천상계에서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기를]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4악처에 태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 * 각자는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감각적] 욕구를 기르면서 그것들(4악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4악처의 위험들을 보아야 합니다.

 

3. 4악처를 총칭하여 아빠-야-(apāyā)라고 합니다. 아빠-야에 가게 되어 있는 자들은 두가띠(dugati)를 지닙니다. ‘두가띠(dugati)’라는 낱말은 ‘두(du)’ + ‘가띠(gati)’, 즉 부도덕한 습관(성격)에서 유래합니다.

 

  • * 반면에, 도덕적 성격을 가진 자들은 수가띠(sugati)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좋은(su) 가띠(gati)를 의미합니다.

  • * 때로는 아빠-야-(apāyā) 자체를 두가띠(dugati)라고도 하며, 더 높은 영역을 수가띠(sugati)라고도 합니다.

  • * 주어진 특정 사람은 수가띠(sugati)와 두가띠(dugati)를 모두 지닐 수 있습니다. 두가띠(dugati)가 표면화되는 가능성(즉, 아누사야, anusaya)이 영구적으로 제거되면 소따-빤나(Sōtapanna)가 됩니다.

 

4. 사악처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더 높은 영역, 즉 수가띠(예를 들면, 천상계)의 아닛짜(anicca) 특성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천상(dēva, 데-와)계가 행복으로 가득차 있다고 인식합니다. 마음이 적어도 소따-빤나 레벨로 정화되기 전까지는 천상계에 태어나는 것의 헛됨(부질없음)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 * 그러나 동물계와 인간계에는 우리가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가시적 고통(괴로움)이 있습니다.

  • * 데-와 로-까(dēva lōka, 천상계)를 포함하여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루-빠 로-까(rūpa lōka, 색계) 또는 아루-빠 로-까(arūpa lōka)의 아닛짜 특성을 이해하기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 * 이 때문에 각 레벨에서 담마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것은 단계적 과정입니다.

 

5. 담마 짝까 빠왓따나 숫따(Dhamma Cakka Pavattana Sutta)에서, 붓다께서는 3 라운드(겹)의 속박(tiprivattaya, 띠쁘리왓따야)을 묘사하셨습니다. Dhammacakkappavattana Sutta 에 있는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그 세 겹의 벽을 통과하는 것은 닙바-나의 네 단계(소따-빤나, 사까다-가-미, 아나-가-미, 아라한뜨)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 * 각 단계에서, ‘더 멀리 보는’ 지혜(ñāna, 냐-나), 즉 더 높은 영역의 아닛짜 특성을 보는 지혜를 얻습니다. 따라서 체계적으로 진전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과정은 다음 예와 유사합니다. 어둡지만 볼 수 있는 네 개의 필름층으로 덮여 있는 안경을 끼고 있는 사람을 시각화해 봅시다. 하나의 필름층을 통해서는 볼 수 있지만, 4개의 필름층이 모두 있으면, 그 사람은 사실상 장님입니다.

  • * 순수한 담마를 접하지 못한 보통 사람은 네 층 모두로 덮인 안경을 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은 눈 앞의 주변만 겨우 볼 수 있지만 그외 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눈 앞의 주변에만 관심이 있으며, 그리 멀리 않는 곳에 있는 어떤 위험도 볼 수 없습니다..

 

6. 붓다 담마를 처음 접할 때, 더 많은 빛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어두운 안경을 사용하더라도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으며, 그 정도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더 많이 배우기에 충분합니다.

 

  • * 담마(Dhamma)의 다양한 면에 대해 배울 때, 훨씬 더 큰 숨겨진 세계가 있다는 증거를 볼 수 있으며, 어느 시점에서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 재탄생하는 것의 위험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가 그 어두운 필름의 한 층이 떨어지는 것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빤짜니-와라나(마음을 덮는 다섯 가지 요인)가 영구적으로 제거되기 때문에 큰 [진전]단계입니다.

  • * 이제 그 사람은 훨씬 더 잘 볼 수 있으므로, 까-마 로-까(kāma lōka)의 높은 영역, 즉 인간계와 천상(데-와)계의 위험함을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인간계와 관련된 감각적 즐거움의 위험함을 이해하고, 그 이해가 일어날 때 사까다-가-미 단계(Sakadāgāmi stage, 다시는 인간계에 태어나지 않는 단계)에 도달하고, 두번째 필름층이 떨어집니다.

  • * 두 가지 더 높은 단계(‘아나-가-미_Anāgāmi’와 ‘아라한뜨_Arahant’)에서 남은 2개의 필름층이 떨어지는데, 아라한뜨(Arahant)  단계에서만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특성)을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 * 따라서, 모든 것을 한 번에 파악하려고 하거나, 보통의 감각적 즐거움을 강제적으로 포기하려고 하는 것은 쓸데없습니다. 그러나, 두가띠(dugati)(아빠-야-, apāy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 극단적인(부도덕한) 행위를 포기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7.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사람들은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극단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부, 지위 또는 직함을 얻기 위해 기꺼이 도둑질하고 거짓말하고 심지어 살인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더 높은 감각적 즐거움으로 이어진다고 인식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마음이 만든 것이며, 단지 앗사-다(assāda)입니다.

 

  • * 더욱이 그들은 그런 앗사-다(assāda)에 빠져 기본적인 도덕행을 팽개치는 것의 위험함(아-디-나와, ādīnava)를 보지 못합니다. ‘오계 – 붓다께서 의미하신 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아빠-야-(apāyā), 즉 두가띠(dugati)에 태어나기에 적합한 가띠(gati)를 기릅니다.

  • * 사람들은 그런 감각적 즐거움을 최대 100년 정도 즐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 태어났을 때 그곳에서 빠져나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다가올 수백만 년 동안 그곳에 갇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위험입니다.

  • * 이것이 붓다께서 하시는 일의 차이입니다. 세상에 부처님이 없으면(출현하지 않으면), 인간은 다른 29영역, 특히 4가지 가장 낮은 영역(사악처)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8.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 태어나게 하는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는 특별히 빠-빠 깜마(pāpa kamma)라고 합니다. 빠-빠 깜마(pāpa kamma)에 대한 가장 가까운 의미의 번역은 ‘가장 나쁜 종류의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일 것입니다.

 

  • * 이전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로-바, 도-사, 모-하(lōbha, dōsa, mōha)’와 ‘라-가, 빠띠가, 아윗자-(rāga, paṭigha, avijjā)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 ‘로-바, 도-사, 모-하’ 대 ‘라-가, 빠띠가, 아윗자-’ ”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빠-빠 깜마(pāpa kamma)는 ‘탐함, 미워함, 무지’의 강한 버전인 ‘로-바(lōbha), 도-사(dōsa) 및 모-하(mōha)’로 행해집니다.

  • *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 도달하면 더 가벼운 버전인 ‘라-가(rāga), 빠띠가(paṭigha), 아윗자-(avijjā)’가 남게 됩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소따-빤나는 여전히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기를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즐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소따-빤나(Sotāpanna)는 아빠-야-(apāyā)에 태어나게 하는 어떤 일도 본질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극도로 압박을 받더라도 소따-빤나는 그런 빠-빠 깜마(pāpa kamma)를 행하지 않습니다.

 

9. 필자는 그런 빠-빠 깜마(pāpa kamma)가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행해짐을 보여주는 분석을 하였습니다. 사람은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지녔을 때, 8가지 로-바 찟따(lōbha citta) 중에서 가장 강한 ‘딧티 삼빠윳따 찟따(diṭṭhi sampayutta citta)’를 일으키는 숨겨진 능력(diṭṭhi āsava, 딧티 아-사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Akusala Citta – How a Sōtapanna Avoids Apayagami Citt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검색 박스를  사용하여 관련 게시물을 많이 찾을 수 있지만, 여기 ‘잘못된 견해(밋짜- 딧티) - 더 간단한 분석’ 포스트에 간단한 설명이 있습니다. 

 

10. 생각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어떤 요인이 다음 바와(bhava)와 그에 따른 자-띠(jāti, 탄생)를 지배적으로 결정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지배적 결정요인은 과거의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씨앗) 또는 현재 자신의 가띠(gati)입니다.

 

  • * 우리 모두는 과거에 매우 공덕스러운 행위와 부도덕한 행위를 모두했습니다. 그것들은 쉽게 제거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현재 바와(the current bhava)’의 마지막, 즉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 죽음-재생연결) 순간에 그 깜마 씨앗 중의 어떤 하나를 ‘기꺼이 붙잡지(willingly grasp)’ 않는다면, 깜마 씨앗은 새로운 바와(bhava)를 생기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 도달하면, ‘아빠-야-(apāyā)에 적합한 가띠(gati)’를 영구적으로 잃게 됩니다. 즉, 가장 낮은 4가지 영역(사악처)의 바와(bhava)에 대한 우빠-다-나(upādāna)를 잃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바와(bhava)를 위한 강한 깜마 씨앗이 있다고 해도, 그것들은 그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 순간에 잡혀질 수 없습니다.

  • * 아라한 단계에서, 과거로부터 축적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깜마 씨앗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31영역의 바와(bhava)에 대한 우빠-다-나(upādāna)를 잃게 됩니다.

  • * 이 때문에 999명을 죽인 앙굴리말라(Angulimala)가 7일 내에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31영역 어디에 대해서도 재탄생에 대한 갈망을 잃었습니다. ‘앙굴리말라 이야기 - 붓다 담마에 대한 많은 통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소따-빤나(Sotāpanna)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낮은 4가지 영역(사악처)으로 재탄생하기에 접합한 가띠(gati)를 제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11. 반복해 말하면, 부도덕한 행위를 피하고 적극적으로 도덕적 행위를 하는 것은 나쁜 깜마 씨앗을 만드는 것을 막거나 좋은 깜마 씨앗을 생성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나쁜 가띠(gati)를 바꾸기 위한 것입니다. 

 

  • * 우리가 구하고 있는 더 중요한 최종 결과는 마음성향, 즉 가띠(gati)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두가띠(dugati)를 없애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빠-야-(apāyā)의 위험을 보는 것은 쉽습니다.

  • * 아빠-야-(apāyā)에 재탄생하기에 적합한 두가띠(dugati)를 잃었을 때,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 죽음-재생연결) 순간에 그런 바와(bhava)를 붙잡지 않습니다.

  • * 아라한 단계에서 두 종류[두가띠와 수가띠]의 가띠(gati)를 잃을 때까지, 우리는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 순간에 그런 좋은 바와(bhava)만을 붙잡도록 수가띠(sugati)를 기를 필요가 있습니다.

 

12. 두가띠(dugati)를 제거하면 자동적으로 다음 단계로 진전합니다. 아빠-야 가띠(apāya gati), 즉 두가띠(dugati)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까-마 가띠(kāma gati)’, 즉 ‘까-마 로-까(kāma lōka)에 묶이는 감각적 즐거움’의 나쁜 결과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 * 같은 식으로, ‘까-마 가띠(kāma gati)’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루-빠(rūpa) 및  아루-빠(arūpa) 가띠(gati)’, 즉 ‘루-빠(rūpa) 및  아루-빠(arūpa) 로-까(lōka)에 묶이는 선정 즐거움’의 아닛짜(anicca) 특성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 * 그렇기 때문에 ‘자아가 없다’ 또는 ‘나가 없다’와 같은 것에 명상하는 것은 전혀 쓸모 없습니다. 자아의 느낌 (또는 더 정확하게는 ‘마-나_māna’라는 상요-자나_samyōjana)는 아라한 단계에서만 제거되며, 이는 두가띠(dugati)를 잃는 것과 비교하여 무한히 멀리 떨어져 있는 단계입니다.

  • * 31영역에 있는 어떤 것의 흔적이라도 갈망하는 한, ‘자아’ 또는 ‘나라는 감각’에 대한 인식은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이해해야 할 중요한 점은 앗사-다(assāda), 즉 ‘마음이 만든 즐거움’을 즐기기 위해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결실없고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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