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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찟따 - 우리 경험과 행위의 기초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Citta – Basis of Our Experience and Actions’ 포스트

- 2019년 9월 22일 작성; 2019년 11월 14일 개정

 

소개

 

1. 우리는 [본 섹션의] ‘자아가 있는가?’ 시리즈에서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 MN 148)의 첫 몇 구절을 논의했습니다. 잠시 쉬면서 다른 관점에서 배운 내용을 살펴 보는 것이 좋습니다.

 

  • * 붓다께서는 자신을 ‘위밧자와-디(vibhajjavādi)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붓다께서 주어진 실체나 개념을 더 근본적인 레벨에서 고찰하기 위해 깊이 들어가고 세분화하여 매우 상세히 설명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그것은 오늘날 과학자들이 하고 있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과학자들은 물질을 먼저 분자 면에서 설명했고, 그 다음 원자로 설명했습니다. 나중에, 과학자들은 원자가 핵과 그 주위의 궤도에 있는 전자로 구성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다음, 과학자들은 핵을 조사했고 (글루온, 그리고 쿼크 같은 이름으로 된) 더 근본적인 입자가 핵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 * 더 깊이 조사함으로써, 물리학자들은 또한 양자 역학을 생각해 냈습니다. 물질과 에너지는 작은 단위로 ‘양자화’됩니다. 그것은 바로 그것들(더 근본적인 입자)이 패킷(packet) 또는 퀀타-(quantā, 단수로는 quantum)로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2,500년 보다 더 전에 붓다께서는 물질과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 가장 작은 ‘퀀텀(quantum, 양자)’은 숫닷-타까(suddhāṭṭhaka)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의 논의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감각 경험은 양자화된다 - 그것은 패킷으로 입력된다

 

2. 여기서는 양자 역학에 대해 논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 MN 148)를 검토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숫따(sutta)를 지루하게 번역하는 전통을 깨고, 또한 숫따(sutta)의 자료에 대한 더 나은 통찰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논의는 숫따(sutta)의 다음 섹션으로 진행하기 전에 유익할 것입니다.

 

  • * 아래에서 보게 될 것처럼, 과학자들은 이제 막 정신 현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 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약간의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붓다께서 2500년 보다 더 전에 하셨던 정신 현상에 대한 상세한 분석에 근접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 우리는 생각이 연속적이라고 느낄지 몰라도, 정신 에너지는 또한 양자화됩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 가장 작은 단위는 ‘찟따(citta)’입니다. 찟따(citta)는 10억분의 1초보다 더 짧은 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우리는 하나의 단위 찟따(citta)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한 생각(a thought)’으로 번역되지만,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 * 우리가 보통 ‘생각(thought)’이라고 여기는 것은 수십억 개의 찟따-(cittā)로 구성됩니다(citta의 복수형이 cittā이지만, 때때로 필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이 더 쉽기 때문에 cittā로 쉽게 씁니다). 그런데, citta는 ‘chiththa’로 발음됩니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3. 먼저 지난 50여년 동안 과학이 이룩한 진전을 살펴 보겠습니다. 과학은 아직 마음에 관해서는 매우 초기 단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최근에 약간의 진전을 이루었고, 우리는 그것들이 붓다 담마(Buddha Dhamma)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과학 발견은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더 깊은(심오한) 개념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 불과 50년 전만 해도 과학자들은 처리 속도를 높이는 것만으로 컴퓨터가 ‘의식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훨씬 더 빠른 컴퓨터가 있지만, 물론 의식을 지니지 않습니다. 컴퓨터가 결코 의식하게 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의하겠습니다.

  • * 다음 비디오는 뇌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인 헤닝 벡(Henning Beck)의 ‘What is a Thought?(생각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발표(프레젠테이션)입니다.

https://youtu.be/oJfFMoAgbv8

 

컴퓨터에는 인식(산냐-)이 없다

 

4. [비디오의] 4:00분에,  과일과 야채로 이루어진 ‘얼굴’이 보입니다. 실제 사람의 얼굴은 아니지만, 그것이 얼굴을 나타낸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는 데는 한 순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 * 그러나 헤닝 벡(Henning Beck)이 지적하듯이, 컴퓨터는 결코 거기에 그려진 것이 사람 얼굴을 나타낸다는 것으로 알아볼 수 없습니다.

  • * [비디오의] 9:20분에 헤닝 벡(Henning Beck)은 의자를 식별하는 것에 대한 논의를 시작합니다. 다시 말하여, 컴퓨터는 의자 역할을 하기에는 명백하지 않는 구조를 식별하는 데에는 문제에 부딪칩니다.

  • * 이 두 경우에서, 컴퓨터에 없는 것은 산냐-(saññā, 영어로 대략 ‘perception’으로 번역됨)입니다. 심지어 동물들도 그들의 생존과 관련된 대상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는 주인과 그 집에 살고 있는 다른 애완 동물을 즉시 알아볼 수 있습니다. 개는 좋아하는 음식 등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산냐-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웨-다나-, 산냐-, 기쁨, 슬픔, 등은 뇌에서 일어날 수 없다 

 

5. [비디오의] 6:00분쯤, 헤닝 벡(Henning Beck)은 사람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를 포함하여 과학자들이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우리 생각이 매우 빠르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느낌(vedana, 웨다나), 지각(saññā, 산냐-), 기쁨 등을 가진 생각이 어떻게 비활성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진 뇌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습니다.

 

  • * 원자와 분자가 뇌 및 컴퓨터의 구성 요소라는 점에서, 뇌는 컴퓨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둘 다 정보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뇌는 컴퓨터와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합니다. 그것은 수십억 개의 뉴런이 팀으로 작동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뇌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알아내는 데 근접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 미래에는, 과학자들은 어떻게 그 뉴런(neuron)들이 천 배나 높은 처리속도의 컴퓨터보다 훨씬 더 빠르게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 * 그러나 과학자들은 여전히 사람이나 동물이 어떻게 주변 환경을 알아보고 감정(행복, 슬픔, 등)을 생성할 수 있는지 알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 * [비디오의] 11:00분쯤, 헤닝 벡(Henning Beck)은 학습과 이해의 차이에 대해 논의합니다. 그것은 뛰어난 점입니다.

 

웨-다나-, 산냐-, 기쁨, 슬픔, 등은 ‘정신적 몸’에서 일어난다 

 

이전 포스트인, ‘아-야따나 사이의 접촉이 위빠-까 윈냐-나로 이어진다’에서, 필자는 식물과 나무가 기본적인 형태의 웨-다나-(vēdanā)와 산냐-(saññā)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그곳의 #3, #4 참조). 그러나 식물과 나무는 기쁨과 슬픔과 같은 감정을 생성할 수 없습니다. 나무에는 업 에너지에 의해 창조된 정신이나 ‘정신적 몸’이 없습니다. 

 

6. 같은 식으로, 뇌는 생각을 생성할 수 없습니다. 비활성 원자와 분자로 구성된 실체에서 느낌과 감정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요? 유정체(living being)의 ‘정신적 몸’은 업 에너지에 의해 창조됩니다.

 

  • * 의식의 기본 단위인 찟따(citta)가 생성되기 위해서는 유정체(living being)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그 살아 있는 실체의 본질은 물질적 몸(육체)이 아니라 ‘정신적 몸’입니다.

  • * 그 ‘정신적 몸’은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 또는 간답바(gandhabba)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 마음 자리)와 (보기, 듣기, 냄새맡기, 맛보기, 신체 접촉을 위해) 그 주위에 위치한 5가지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로 구성됩니다. 정신적 몸은 물질적 몸(육체)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비활성이고 조밀한 물질적 몸(육체)에 생명을 주는 ‘에너지 몸’에 더 가깝습니다.

  • *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는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와 5가지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가 육체적 심장 부근에 겹치는 물질적 몸(육체) 내의 에너지 장(energy field)으로 시각화될 수 있습니다.

 

7. 우리 뇌는 대상을 식별하는(알아보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기쁨과 슬픔과 같은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위 #4에서 논의했듯이, 동물도 사물을 식별하고 느낌과 감정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 * 웨다나(vedana), 산냐-(saññā)뿐만 아니라 기쁨과 슬픔과 같은 감정을 생성하는 것은 정신적 몸(마노-마야 까-야 또는 간답바)입니다.

  • *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정신 현상은 간답바(gandhabba)의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 마음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8. 세부 사항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뇌는 보거나, 듣거나, 냄새맡거나, 맛보거나, 신체 접촉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을 경험하는 것은 마음 자리(hadaya vatthu, 하다야 왓투)입니다.

 

  • *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육체는 정신적 몸(마노-마야 까-야 또는 간답바)을 지원하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육체가 죽으면,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는 즉시 몸을 떠납니다. 시체를 만질 때, 거기에 ‘생명’이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명백합니다.

  • * 생체(living body)는 전류가 흐르는 ‘활선(live wire)’과 같습니다. 사람이 활선을 만지면, 전기 충격(감전)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활선에 전류가 없으면, 금속 와이어일 뿐입니다.

  • * 이와 마찬가지로, 비활성 육체에 ‘생명’을 주는 것은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입니다.

 

마노-마야 까-야는 존재에서 존재로 바뀐다

 

9. 존재가 죽으면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는 어떻게 될까요? 이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 브라흐마(Brahma)가 죽어 인간 존재가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브라흐마(Brahma, 범천)에서 인간으로 전환은 그 브라흐마가 죽는 순간에 일어납니다. 이것을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 순간이라고 합니다 (‘쭈띠_cuti’는 죽는다는 의미이고, ‘빠띠산디_patisandhi’는 새로운 존재를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그 브라흐마는 마음 자리(하다야 왓투, hadaya vatthu)와 2가지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보기 및 듣기 위함)를 가졌습니다. 반면에, 새로운 존재에서 인간은 5가지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보기, 듣기, 냄새 맡기, 맛보기, 신체 접촉을 위함)를 갖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인간의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는 브라흐마(Brahma)의 ‘하다야 왓투’와는 다를 것입니다.

  • * 그래서, 새로운 인간 존재의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는 브라흐마의 ‘마노-마야 까-야’와는 매우 다릅니다.

  • * 그 인간 존재가 죽을 때 동물 존재가 된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러면, 그 쭈띠-빠디산디(cuti-patisandhi) 순간에, 그 새로운 동물 존재는 그 존재의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와 5가지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를 갖게 될 것입니다.

 

10. 그 3가지 존재는 비록 동일한 생명흐름(lifestream)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릅니다.  그렇다면, 영혼 또는 자아로 간주될 만한 것이 무엇일까요? 

 

  • * 그 때문에 붓다께서는 한 탄생에서 다른 탄생으로 가는 ‘영혼(soul)’이나 ‘자아(self)’ 또는 ‘아-뜨마(ātma)’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위 예에서 브라흐마(Brahma)로 시작된 동일한 생명흐름(lifestream)이 인간이 되고, 그 다음에는 동물이 되었습니다. ‘영혼’이나 ‘자아’ 또는 ‘아-뜨마’를 정의하는 본질은 무엇일까요?

  • * 그것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Chachakka Sutta – No “Self” in Initial Sensory Experience’ 포스트에 있습니다. 먼저, 찟따(citta)가 생성되는 메카니즘에 대해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찟따는 웨-다나-, 산냐-, 및 다른 많은 ‘내장’ 정신 요소를 가진다

 

11. 찟따(citta)는 인식의 기본 단위로서, 우리는 스스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것은 12개 또는 그 이상의 찟따(citta)의 묶음으로 옵니다. 그들 찟따의 묶음(일련의 찟따)은 찟따 위티(citta vithi)입니다. 우리가 느끼거나 경험하는 것은 수많은 양의 그런 찟따 위띠(citta vithi)입니다.

 

  • * 5가지 육체 감각 중의 하나에서 감각 입력으로 인해 일어나는 모든 찟따 위티(citta vithi)에는 17개의 찟따(citta)가 있습니다. 그것은 빤짜드와-라 찟따 위티(pancadvāra citta vithi)입니다.

  • * 반면에, (‘담마-_dhammā’로 인해) 마음에서 직접 일어나는 찟따 위티(citta vithi)는 최소 12개의 찟따(citta)를 가지며, 다양한 갯수의 찟따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노-드와-라 찟따 위티(manōdvāra citta vithi)입니다.

 

12. 우리가 보통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초당 수십억의 그런 찟따 위티(citta vithi)가 일어나 누적된 결과(효과)입니다.

 

  • * 그 찟따-(cittā) 각각은 적어도 7가지 정신 요소(cētasikā, 쩨-따시까-)를 가집니다. 그 ‘보편 쩨-따시까-(universal cētasikā)’에는 웨-다나-(vēdanā) 및 산냐-(saññā)가 포함됩니다. 웨-다나- 쩨-따시까(vēdanā cētasika)는 감각 입력을 느끼게 합니다. 산냐- 쩨-따시까(saññā cētasika)는 그 감각 입력을 구별하여 알아보는(인식하는) 것입니다.

  • * 오직 유정체만이 7개 또는 그 이상의 쩨-따시까(cētasikā)가 내장된 기본 인식단위(citta)를 수십억분의 1초 내에 생성할 수 있습니다.

  • * 그 때문에 컴퓨터나 로보트는 결코 의식하게 될 수 없습니다. 깜마 에너지(kammic energy)만이 마음 자리(하다야 왓투, hadaya vatthu)가 있는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뇌의 중요한 역할

 

13. 비록 뇌 자체는 찟따(citta)를 생성할 수가 없지만, 감각 대상에 대한 정보를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에 도달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Brain – Interface between Mind and Body’ 포스트에 있습니다. 우리 눈으로 이미지를 포착한 이후에 이어지는 일련의 일들에 대해 간략히 논의해 봅시다.

 

  • * 눈 뒤쪽에 있는 망막(retina)은 포착된 이미지를 시신경(optical nerve)을 통해 뇌의 시각 피질(visual cortex)로 보냅니다. 그 다음, 뇌의 해당 부분은 그 신호를 마음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분석합니다. 그 [분석된] 정보는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의 짝쿠 빠사-다 루-빠(cakkhu pasāda rūpa)로 전송됩니다. 그러면, 짝쿠 빠사-다 루-빠(cakkhu pasāda rūpa)는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와 접촉합니다. 그 ‘충격’으로 인해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는 17번 진동합니다.

  • *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의 그 17번 진동은 17개의 찟따-(cittā)로 된 찟따 위티(citta vithi)가 발생하는 것에 해당합니다. 그것이 짝쿠드와-라 찟따 위티(cakkhudvāra citta vithi)의 기원입니다. 그 세부 사항들을 반드시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관심 있는 사람들은 ‘Does any Object (Rupa) Last only 17 Thought Moments?’에서 상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 * 다른 네가지 육체 감각(귀, 코, 혀, 및 몸)을 통해 오는 감각 입력은 위와 동일한 식으로 작동합니다. 

 

14. 감각 입력은 뇌에 의해 감각 신호가 처리된 후 정신적 몸(mental body)의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에 온다는 것을 정확히 기억하세요. 예를 들어, 우리가 나무를 볼 때, 눈으로 포착된 나무의 이미지는 뇌에서 먼저 처리됩니다.

 

  • * 그 다음, 뇌는 그 처리된 신호를 짝쿠 빠사-다 루-빠(cakkhu pasāda rūpa)에 전달하며, 이어서 그것은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로 이동합니다.

  • * 그 이미지를 느끼거나 경험하고 나무를 보는 것은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입니다.

  • *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감각적 경험조차도 일련의 ‘감각 패킷(sensory packet)’으로 인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나무를 볼 때 그 이미지는 연속적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패킷(packet) 또는 스냅샷(snapshot)으로 들어옵니다.

  • * 사실, 그것은 비디오 카메라 또는 영화 필름이 작동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Vision Is a Series of “Snapshots” – Movie Analogy’ 포스트에서 그것을 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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