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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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카 특성을 지닌 것에 들러붙으면 둑카로 이어진다

 

원문: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Attachment to Things with Dukkha Lakkhana Leads to Dukkha’ 포스트

- 2021년 8월 23일 작성; 2022년 12월 13일 개정

 

둑카(dukkha)는 보통 고통/괴로움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둑카 웨다나-(dukkha vedanā)입니다. 그러나 행복을 가져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은 ‘둑카 락카나(dukkha lakkhana)’를 지니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1성제에서 그것을 둑카 삿짜(Dukkha Sacca) (괴로움에 관한 진리)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둑카 삿짜(괴로움에 관한 진리)

 

1. 우리는 다양한 맥락에서 ‘둑카(dukkha)’라는 낱말을 접합니다.

 

(i) 둑카 웨다나-(dukkha vedanā)는 불쾌감에서부터 화상을 입거나 칼에 베이는 것과 같은 고통스러운 느낌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는 느낌입니다.

(ii) 둑카 락카나(dukkha lakkhana)는 틸락카나(Tilakkhana)에서 괴로움/고통의 특성이며 둑카 웨다나-(dukkha vedanā)가 아닙니다.

(iii) 둑카 삿짜(Dukkha Sacca)(첫 번째 성스런 진리), 그것은 다시 둑카 웨다나-(dukkha vedanā)가 아니라 둑카 락카나(dukkha lakkhana)가 이 세상에 내재되어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 보입니다. 즉, 이 세상 것들에 들러붙으면 (장기적으로/결국) 괴로움/고통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에 들러붙은 경향이 있기 때문에, 둑카 삿짜(Dukkha Sacca)는 ‘마음을 즐겁게 하는’ 그것들에 고통/괴로움이 숨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읽고, 숙고하는 등으로써) 이해하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iv) 둑카칸다(dukkhakkhandha)는 둑카 삿짜(Dukkha Sacca)를 모르는 것으로 인해 아윗자-(avijjā)로 행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유형의 고통/괴로움을 포함합니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설명합니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과정은 “에와메땃사 께왈랏사 둑칵칸닷사 사무다요- 호-띠(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ō hōti)”, 즉, “그것이 전체 괴로움(고통)의 덩어리가 일어나는 방식이다”라는 것으로 끝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칸다(khandha)’는 ‘무더기/더미’를 의미합니다.

 

둑카 웨다나-의 여러 유형

 

2. 웨다나(vedana)는 사람이 느끼는 것으로서, 행복/유쾌함(sukha, 수카), 슬픔/불쾌함(dukkha, 둑카), 중립(adukkhamasukha, 아둑카마수카) 느낌입니다. 

 

  • * 둑카 웨다나-(dukkha vedanā)는 몇 가지 다른 유형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부상이나 질병과 같이) 육체로 느껴집니다. 다른 어떤 것은 (우울함과 같이) 마음이 만든 것이고, 이것들은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 (‘산_saṅ’에 의해 생성된 ‘웨-다나-_vēdanā’)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산(saṅ)’은 ‘탐욕, 분노, 무지’를 의미합니다. 아라한(Arahant)은 첫 번째 유형은 느끼지만 두 번째 유형은 느끼지 않습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두 번째 범주는 우리의 개인적인 편견으로 인해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예를 들어, 사람 X)을 보면 불쾌한 느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X는 제3자(Y)의 친구일 수 있는데, Y는 X를 보고 즐거운 느낌이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마음이 만든 느낌’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우리가 X와 친해지면, 그 후 X를 볼 때, 우리에게도 유쾌한 느낌이 생길 수 있습니다.

 

띨락카나의 둑카 락카나(괴로움 특성)

 

3. 둑카 락카나(dukkha lakkhana)는 느낌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 것들에 ‘숨겨진’ 고유한 특성이나 본질입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 * 개념을 얻도록 몇 가지 간단한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 유리는 ‘깨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즉, 그것은 딱딱한 표면에 떨어지면 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리는 깨지기 전까지는 ‘깨지는 특성’만 지니고 있습니다.
    – 독이 조금 들어간 음료는 병나게 하거나 죽음을 유발하기까지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것을 마셔야만 병들거나 죽을 수 있습니다.

  • * 마찬가지로, 세상 것들(특히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에도 ‘고통/괴로움의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것들에 들러붙어야만 고통/괴로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람 X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가정해 보세요. X가 우리에게 가까운 사람일 때만 우리는 슬퍼지고 괴로워질 것입니다(예를 들어, 부모일 때가 그런 경우임). X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한다면, 우리는 X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통받지 않을 것입니다. X에 대한 들러붙음이 강할수록, 우리가 느끼는 괴로움/슬픔(도마낫사 웨다나-, domanassa vedanā)이 더 강해집니다.

  • * 우리가 논의한 바와 같이,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둑카 락카나(dukkha lakkhana, 둑카 특성)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i) 우리는 둑카 락카나(dukkha lakkhana)를 지닌 몸으로 태어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부상을 당하거나 병에 걸리는 것과 같이 몸에 생기는 모든 둑카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ii) 사람(친구, 친척 등)과 사물(집, 자동차 등)에도 둑카 락카나(dukkha lakkhana)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과 사물에 더 적게 들러붙음으로써 그 고통/괴로움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들러붙지 않는 것은 이해와 함께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며 억지로 강제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에 주의(관심)를 기울이기도 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논의하겠습니다.

  • * 우리는 이전 포스트인 ‘틸락카나에서 둑카는 특성이다 ㅡ 둑카 웨다나-가 아니다’에서 둑카 락카나를 논의했습니다. 다음 포스트들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둑카 삿짜(첫 번째 성스런 진리)

 

4. 둑카 삿짜(Dukkha Sacca)(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는 재탄생 과정에 있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괴로움을 분명히 나타내 보입니다. 재탄생은 (인간계와 동물계를 포함하여) 31 영역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동물의 고통은 물론, 인간의 고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괴로움은 다른 3가지 낮은 영역에서 훨씬 더 가혹합니다.

 

  • * 둑카 삿짜(Dukkha Sacca)는 또한 괴로움/고통의 근본 원인은 세상의 즐거움에 대한 탐욕(또는 들러붙음)이라고 설명합니다. 감각적 즐거움에는 고통/괴로움이 숨겨져 있습니다. 오직 부처님만이 숨겨진 괴로움/고통을 발견할 수 있고 그런 괴로움/고통이 어떻게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통해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즐거움을 얻기 위해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결과는 대부분 나중에, 많은 경우에 내생에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 * 고도로 정화된 마음을 가진 부처님만이 감각적 즐거움에 숨겨진 위험(고통)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미끼에 감춰진 괴로움/고통을 볼 수 없듯이, 우리는 부처님이 설명하지 않으면, 감각적 즐거움에 숨겨진 괴로움/고통을 볼 수 없습니다.

 

육체적 괴로움과 죽음 ㅡ 이해하기 힘든가?

 

5.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토론 포럼에서 인용해보면 “태어남과 죽음은 자아(self)에 대한 견해일 뿐이다”는 것입니다. 이 유형의 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머리를 모래 속에 파묻을 때’[역주: 궁지에 몰린 타조들의 행동양식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현실을 외면할 때’의 의미임], 즉 특정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 척함으로써 특정 상황을 피하려고 할 때 일어납니다.

 

  • * 고통은 실제(현실)입니다. 자신을 꼬집어 보세요. 그것이 아프지 않나요? 누군가가 총상이나 칼에 맞아 죽을 때의 고통을 상상해 보세요.

  • * 다음과 같은 동물 비디오는 비록 바이러스성이고 오락용으로 만들어졌지만, 그것들은 야생에서 동물들이 경험하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생생한 예를 제공합니다. 그들은 [그냥] 죽어 먹히는 것이 아니라, 산 채로 잡아 먹힙니다. 그런 유형의 고통을 받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https://youtu.be/gro91YAhrjo [비공개 동영상으로 전환되었음]

  • * 그 동물들은 모두 과거에 인간이었습니다. 더욱이, 오늘날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에[인간 간답바의 수명이 다했을 때] 동물 영역에 태어날 것입니다.

  • * 비록 우리는 다른 3가지 더 낮은 영역의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을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동물계에 있는 가혹한 괴로움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 영역에도 고통이 있지만, 야생의 동물은 훨씬 더 많은 고통을 겪습니다.

  • * 야생에는 ‘늙은 동물’이 없습니다. [동물 본능에 따른 약육강식의 야생에서는] 늙어 느려지기 시작하자마자 더 큰 동물들에게 잡아 먹힙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순서의 발견

 

6. 위의 비디오는 둑카 웨다나-(dukkha vedanā)(특히, 육체적 고통)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 * 그러나 그런 둑카 웨다나-(dukkha vedanā)는 원인 없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동물의 전생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해당하는 ‘나쁜 깜마(bad kamma)’를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나쁜 깜마가 그런 나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 * 그것이 붓다께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단계를 알아내신 방법입니다. (아비상카-라에 기반한) 부도덕한 행위는 아윗자-(avijjā)로 행해지고 미래 존재(바와, bhava)와 태어남(자-띠, jāti)으로 이어집니다. 붓다께서는 전생을 추적함으로써 그것을 알아내셨습니다. 그 발견은 깨달음(붓다의 깨달음)에 이르신 날의 밤에 일어났습니다. 그것에 대해 간단히 논의해 보겠습니다.

  • * 붓다께서는 먼저 ‘뿝베 니와-사-눗사띠 냐-나(pubbe nivāsānussati ñāna)’를 얻어 인간의 이전 탄생을 되돌아보셨습니다. 여기서, ‘뿝베(pubbe)’는 ‘이전’을 의미하고, ‘니와사(nivasa)’는 ‘집’을 의미하며, ‘아눗사띠(anussati)’는 ‘회상(상기)’를 의미하며, 따라서 그것은 주어진 간답바(gandhabba)의 연이은 거주지를 회상(상기)하는 앎을 의미합니다. 주어진 인간 바와(bhava)에서, 간답바는 많은 다양한 ‘집’, 즉 육체를 가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냐-나(ñāna)를 통해, 사람은 매우 오랜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러 인간 바와에서, 과거의 인간 탄생을 (관찰해) 볼 수 있습니다.

 

7. 두 번째 냐-나(ñāna, 앎)인 쭈뚜빠빠-다 냐-나(cutupapāda ñāna)는 부처님의 능력을 확장시켜 모든 유정체에 대해 모든 영역의 모든 이전 재탄생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여기에서 쭈뚜빠빠-다(cutupapāda)(cuti는 ‘바와_bhava’의 끝을 의미하고, upapāda는 ‘태어남’을 의미함)는 과거에 다양한 영역(지옥계, 동물계, 천신계 등)에 일어난 모든 유형의 재탄생을 나타냅니다.

 

  • * 그것을 통해 붓다께서는 다양한 유형의 깜마(kamma)가 어떻게 그 안에서 상응하는 존재(바와, bhava)와 태어남(자-띠, jāti)으로 이어지는지, 즉 어떻게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가 ‘바와(bhava)’와 ‘자-띠(jāti)’로 이어지고 “자-띠 빳짜야- 자라-, 마라나, 소까ㅡ빠리데-와ㅡ둑카ㅡ도-마낫수빠-야사- 삼바완’띠(jāti paccayā jarā, marana, soka-paridēva-dukkha-dōmanassupāyasā sambhavan’ti)”로 끝나는 지를 아실 수 있었습니다.

  • * 그 앎으로, 붓다께서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아-사왁카야 냐-나(āsavakkhaya ñāna)’를 얻으셨습니다. 그것은 갈망(‘아-사와_āsava’, 들러붙음의 다른 낱말)이 어떻게 미래의 재탄생으로 이어지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하게 합니다. 우리는 땅하-/아-사와(taṇhā/āsava) 때문에 아윗자-(avijjā)로 상카-라(saṅkhāra)를 생성합니다

  • * 붓다후드(Buddhahood, 붓다의 깨달음)에 이르게 한 것은 ‘아-사왁카야 냐-나(āsavakkhaya ñāna)’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닙바-나로 가는 방법 - 아-사와의 제거’와 ‘안따라바와 및 간답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붓다께서는 다양한 숫따(sutta)에서 그 과정을 설명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AN 8.11, MN 4, MN 85 및 MN36이 있습니다. ‘웨란자 숫따( ‘Verañja Sutta (AN 8.11)’ )는 짧은 경입니다.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의 영어 번역은 ‘At Verañja (AN 8.11)’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붓다 담마의 에센스(정수) ㅡ 괴로움은 감각적 즐거움에 숨겨져 있다

 

8. 보통 사람들은 고통의 근본 원인이 그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기쁘게(즐겁게) 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들러붙음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랍니다.

 

  • * 원인과 그 결과(효과) 사이에는 시간 지연이 있기 때문에 이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깜마(kamma)는 같은 생 중에 그 위빠-까(vipāka)를 가져오지만, 대부분의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는 생의 나중에나 미래의 태어남에서도 구체화(실현)됩니다.

  • * 그러나, 시간을 들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의 깊게 살펴보세요. 그러면 '감각적 즐거움에는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이 숨겨져 있다'는 말씀의 진실을 '볼(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런 들러붙음에 기반한 부도덕한 행위(예: 살생, 도둑질, 뇌물 수수 등)에 대해서는 좀 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 그런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그리고 재탄생 과정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심오한 담마를 이해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게다가 과거에 그런 ‘나쁜 깜마’를 행했다면, 그 위빠-까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앙굴리말라(Angulimala)가 거의 1000명을 죽였지만 부처님을 만난 지 몇 주 내에 아라한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앙굴리말라 이야기 - 붓다 담마에 대한 많은 통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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