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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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눗사띠와 아누빳사나- ㅡ 마음 챙김과 오염물(번뇌) 제거

     

    원문: Bhāvanā (Meditation) 섹션의 ‘Anussati and Anupassanā – Being Mindful and Removing Defilements’ 포스트

    - 2018년 4월 16일 작성; 2022년 8월 10일 개정

     

    아눗사띠와 아누빳사나-

     

    1. 아눗사띠(Anussati)와 아누빳사나-(anupassanā)는 관련이 있지만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두 개의 빠알리(Pāli) 낱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유형의 아눗사띠(anussati)를 깜맛타-나(kammatthāna, 명상 주제)로 잘못 사용하기 때문에 [두 낱말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 * 사람들이 아나빠-나(Anapāna)와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를 이해한다면, 그것들은 같은 것을 말하는 다른 방식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목표(닙바-나, Nibbāna)를 바라 보는 다양한 각도와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 즉 길(팔정도)을 기르는 방법입니다.

    • * 닙바-나(Nibbāna, 열반)는 탐욕(탐함), 증오(미워함), 무지(어리석음) (로바_lobha, 도사_dosa, 모하_moha)를 자신의 마음에서 제거함으로써 얻어진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억해야 할 유일한 것은 띨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 과정을 완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거기에 어떻게 도달하는가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입니다.

    • * ‘아누(anu)’는 두 가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는 ‘~에 따라’ 또는 ‘이 과정을 통해’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쁜 윈냐-나(viññāna)를 위한 ‘음식’인데, 이것은 본질적으로 껠레스(keles) 또는 낄레사(kilesa), 즉 오염물(번뇌)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로 관련이 있는 것은 첫 번째 의미입니다.

    • * 이제 우리는 이 두 낱말의 기원을 알 수 있습니다(빠다 니룩띠, pada nirukti).

     

    붓다-눗사띠, 멧따-눗사띠, 아수바-눗사띠, 마라나-눗사띠

     

    2. 먼저, ‘아누(anu)’ + ‘사띠(sati)’에서 유래한 아눗사띠(anussati)를 살펴 보겠습니다. 물론, 사띠(sati)는 (배후에 ‘띨락카나_Tklakkhana’가 있는) 마음 가짐 (마음 성향, 사고 방식)입니다. 따라서, 아눗사띠(anussati)는 닙바-나(Nibbāna)를 얻는 데 초점을 맞춘 마음 가짐을 의미합니다.

     

    • * 아눗사띠(anussati)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지만, 항상 자신이 [이 4가지를] 스스로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은 4가지가 ‘짜뚜라-락카-(caturārakkhā)’, 즉 ‘네가지 보호수단’으로 함께 묶어져 있으며, 그것은 문제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 * 이것은 다음 구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필자는 ‘띠삐따까_Tipiṭaka’에서 출처를 찾지 못했음).

     

    “Buddhānussati metta ca, asubham maranānussati; iti ima caturārakkhā, Bhikkhu bhaveyya silava”

     

    번역: “붓다-눗사띠(Buddhānussati), 멧따-눗사띠(mettānussati), 아수바-눗사띠(asubhānussati), 마라나-눗사띠(maranānussati); 이것이 빅쿠가 실라(sila, 계)를 기르는(도덕적 행위) 네 가지 보호수단이다”.

     

    • * 이것들은 마음이 오염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항상 명심해야 할 네 가지입니다.

     

    3. 우리는 ‘붓다(buddha)’가 ‘바와(bhava) + 웃다(uddha)’ (‘바와’를 뿌리 뽑는 것), 즉 미래의 고통/괴로움을 멈추기 위해 재탄생 과정을 중단하는 것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이미 압니다. 따라서, 붓다-눗사띠(Buddhānussati)는 그 핵심 메시지를 마음에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아수바(asubha)는 ‘결실 없는’ 그리고 ‘해로운’도 의미합니다.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낚시 바늘에 끼워진 맛있는 지렁이를 물고 고통/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것과 같이, 장기적으로(결국) 해롭습니다. 따라서 아수바-눗사띠(asubhānussati)는 첫눈에 반하는 물질적인 것들의 나쁜 결과를 항상 생각하며 사띠한다(마음챙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멧따-눗사띠(Mettānussati)는 모든 생명체(유정체)가 같은 배를 타고 있고 장기적으로(결국) 고통/괴로움을 겪으므로 그들 모두에 대해 자비로운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각자의 진행(진전)에 따라(평범한 멧따에서 아리야 멧따까지) 다양한 레벨에서 실천될 수 있습니다.

    • * 특히 삼특상(띨락카나, Tilakkhana)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되면, 이 세상에서 행복을 구하는 것은 결실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미래의 고통/괴로움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 깨달음이 있으며, 죽음은 언제든 올 수 있기 때문에 길(팔정도)을 닦기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4. 따라서, 이들 네 가지 유형의 아눗사띠(anussati)는 항상 마음에 유지하는 것이 좋은 네 가지 유형의 ‘마음 챙김’입니다. 명상할 때 뿐만 아니라 사회와 교류할 때 훨씬 더 중요합니다.

     

    • * 이들 네 가지 보호수단은 실천(연습)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동안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 또는 아나빠-나(Anapāna)를 유지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것입니다.

    • * 예를 들어, 누군가 어떤 고약한(불쾌한) 말을 한다고 가정해 보세요. 화를 내고 보복하는 대신, 자신의 목표가 ‘바와 웃다(bhava uddha)’이며 이를 위해서는 아수바(asuba) 본질(특성)을 보고 멧따(mettā)를 기르는 것임을 즉시 떠올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을 하기 위한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마라나-눗사띠, maranānussat).

     

    5. 많은 경우에 그렇듯이, 그 네 가지 보호수단은 평범한(세간)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평범한(세간) 의미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은 평범한(세간) 의미입니다.

     

    • * 붓다-눗사띠(Buddhānussati)는 부처님의 아홉 가지 지고한 덕성을 숙고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숙고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 * 아수바-눗사띠(Asubhānussati)는 ‘몸의 불결함(더러움)’을 숙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해입니다. 사람들은 육체의 실제 본질을 숙고하기 위해 아수바 바-와나(asubha bhāvana)를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어떤 남성 또는 여성의 육체는 젊을 때는 유혹적(매력적)일 수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하(쇠퇴)됩니다.

    • * 멧따-눗사띠(Mettānussati는 “모든 존재가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계속 반복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금, 이렇게 [세간/평범한 의미로]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 * 마라나-눗사띠(Maranānussati)는 “지-위땅 아니야땅, 마라낭 니야땅(jīvitaṁ aniyataṁ, maranaṁ niyataṁ)”, 즉 “이 삶은 영원하지 않고, 죽음은 확실하다”를 암송(낭송)하는 것입니다. 그 말(진술)은 사실이지만, 그 암송(낭송) 만으로는 오염물(번뇌)을 제거하고 마음을 정화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아닛짜-누빳사나-, 둑카-누빳사나-, 아낫따-누빳사나-, 아수바-누빳사나-

     

    6. 이제 아누빳사나-(anupassanā)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아눗사띠(anusssati)와 달리 아누빳사나-(anupassanā)는 정식 명상과 더 관련이 있습니다.

     

    • * 빳사(passa)는 아나-빠-나 바-와나(anapāna bhāvana)를 논의할 때 ‘앗사 빳사(assa passa)’를 해석하는 중에 언급했듯이 ‘제거하다’를 의미합니다. ‘[7] 아-나-빠-나는 무엇인가?’ 포스트의 #3을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아누빳사나-(anupassanā)는 앞에 결합된 접두사에 따라 오염물(번뇌)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아누빳사나-(anupassanā)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 중 세 가지는 띨락카나(Tilakkhana)와 직접 관련이 있는 아닛짜-누빳사나-(aniccānupassanā), 둑카-누빳사나-(dukkhānupassanā), 아낫따-누빳사나-(anattānupassanā)이고, 네 번째는 아수바-누빳사나-(asubhānupassanā)입니다.

    • * 보통 사람들은 이 세상을 닛짜(nicca), 수카(sukha), 앗따(atta) 및 수바(subha) 특성(본질)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닙바-나(Nibbāna)의 핵심은 [이 세상을]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및 아수바(asubha)라는 참된 특성(본질)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7. 따라서, 아닛짜-누빳사나-(aniccānupassanā)는 아닛짜(anicca) 특성에 대해 숙고함으로써 오염물(번뇌)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이와 유사하게, 둑카-누빳사나-(dukkhānupassanā) 및 아낫따-누빳사나-(anattānupassanā)는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 특성을 숙고함으로써 오염물(번뇌)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우리는 지금까지는 아수바-누빳사나-(asubhānupassanā)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소따빤나(Sotāpanna) 성자가 사까다-가-미(Sakadāgāmi) /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그렇게(매우) 매력적으로 보이는 감각적 즐거움의 나쁜 결과를 숙고하는 것으로써 더 중요해집니다.

     

    8. 그러므로,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 도달하려는 사람에게는 처음 세 가지 아누빳사나-(anupassanā)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수바-누빳사나-(asubhānupassanā)는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므로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더 유익할 수도 있습니다).

     

    • * 우리는 따-빠(tāpa)(마음의 타오름 또는 ‘마음의 흥분’)가 까-막찬다(kāmacchanda)와 이야빠-다(vyāpāda), 즉 탐욕과 증오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둘 다 과도한 탐욕, 즉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과도한 욕망으로 인해 눈이 멀어 일어납니다. ‘쿨링 다운 과정(닙바-나) – 근본원인은 어떻게 제거되는가’ 포스트 및 ‘Kāma Guna, Kāma, Kāma Rāga, Kāmaccanda’ 포럼 토픽을 참조하십시오.

    • * 명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리빙 담마’ 섹션의 ‘리빙 담마 - 근본(Living Dhamma – Fundamentals)’ 서브섹션에 있는 것과 같은 기본 사항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토론 포럼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기본 사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깊은 개념’에 대해 너무 많이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담마 이해: 단계별 과정

     

    9. 우리는 또한 이 아누빳사나-(anupassanā)들에 대한 정식 명상을 바로 시작할 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계별 과정입니다. 띨락카나(Tilakkhana),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해야 합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아닛짜, 둑카, 아낫따(Anicca, Dukkha, Anatta)’ 서브 섹션을 참조하세요.

     

    • * 그 이전에도 평범한(세간) 팔정도를 육성하여 세간 10가지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 잘못된 견해)를 제거할 필요가 있습니다. ‘붓다 담마에서 독특한 것은 무엇인가?’ 포스트에 있는 도표를 참조하세요.

     

    그 이유는 ‘탐구하는 마음을 위한 붓다 담마 - 제1부’ 포스트에서 논의되었습니다. 다음 두 가지 견해 중 하나가 있으면, 틸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 * 내생에는 천국이나 지옥에 영원히 있을 것이다.

    • * 현생이 자신이 가지는 전부이고, 자신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며, 재탄생이나 지옥이나 천국은 없다.

     

    10. 이 두 가지 견해가 닙바-나(Nibbāna, 열반)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다음은 몇 가지 주요 이유입니다.

     

    • * 위의 견해 중 어느 것도 깜마(kamma)의 법칙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깜마의 법칙은 자신의 행위가 그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그 결과는 단지 지옥이나 천국(그리고, 그곳에 영원히 갇혀 있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 * 재탄생 과정(윤회)이 없다거나 간답바(gandhabba) 개념은 잘못되었다는 것과 같은 잘못된 견해를 제거하지 않고는 일관성 있는 그림(세계관)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밋차- 딧티, 간답바, 및 소-따빤나 단계’를 참조하세요.

    • * 위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둑카(dukkha)의 본질(특성)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즉, 대부분의 미래 고통/괴로움은 아빠-야-(apāyā)에 있으며, 아빠-야-(apāyā)에 그렇게 탄생되게 힘을 주는 강력하고 부도덕한 자와나 찟따(javana citta)로 행해지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멀리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결론

     

    11. 필자는 몇 가지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도과를 빨리 얻고 싶은 욕망 때문에 필수적인 것을 건너뛰는 많은 사람들을 필자는 알 수 있습니다. 필자는 그들의 열정에는 존경을 표하지만, 사람들이 잘못된 희망을 갖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단지 개념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즉,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멀리해야 합니다(그리고, 위 #10에 링크된 포스트를 참조하여, ‘밋차- 딧티_micchā diṭṭhi’가 다사 아꾸살라 중에서 가장 나쁘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 * 결론(요점)은, 참으로 아닛짜(anicca) 특성(본질)을 볼 수 있다면,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가질 것이고 아빠-야-(apāyās에 대한 높은 수준의 두려움, 즉 ‘둑캉 바얏떼나(dukkham bhayattena)’로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피할 것입니다.

    • * 따라서, 그 사람은 닙바나-(Nibbāna)에 도달하고자 하는 바람(열망)인 붓다-눗사띠(Buddhānussati)를 자동적으로 하게 됩니다.

    • * 더욱이, 세상에 있는 그 유혹적인(매력적인) 것들이 사실은 아수바(asubha) 특성(본질)을 가진다는 것이 마음 속으로 스며들 것입니다. 그 사람은 또한 모든 유정체가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멧따-눗사띠(mettānussati)를 하게 됩니다.

     

    12. 마지막으로, 그 사람은 또한 마라나-눗사띠(maranānussati)가 마음에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즉, 그것은 그 시기를 전혀 알 수 없는 죽음이 오기 전에 서둘러 길(팔정도)을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 ‘Paṭhamamaraṇassati Sutta (AN 6.19)’를 보면, 붓다께서 빅쿠들에게 죽음이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인식하여 지체없이 길(팔정도)을 닦으라고 권고하셨으며, 그리고 마라나-눗사띠(maranānussati)는 특정한 깜맛타-나(kammatthāna)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 * 숫따(sutta)에 대해 또다른 영어 번역은 ‘Mindfulness of Death’에 있습니다.

     

    이 포스트에 대한 토론 내용은 포럼 토픽 ‘Anussati and Anupassanā – Being Mindful and Removing Defilements’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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