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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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따라-바와(중유) ㅡ 간답바와 관련 없음

 

원문: Buddha Dhamma 섹션의 ‘Antarābhava – No Connection to Gandhabba’ 포스트

- 2020년 12월 11일 작성; 2020년 12월 12일 개정(#7 개정 및 #8 추가)

 

안따라-바와(중유) ㅡ 용어를 이해할 필요

 

1. 안따라-바와(antarābhava)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개념이 아닙니다. 안따라-바와(antarābhava, ‘antara’ + ‘bhava’)는 ‘바와(bhava) 사이’를 의미합니다. 두 존재(바와, bhava) 사이에는 그런 ‘간극’이 없습니다. 그것은 대승 불교가 공식적으로 출현하기 전에도 있었던 이단적인 견해였습니다.

 

  • * 현재의 일부 테라와딘(Theravadin, 테라와다불자)들은 간답바(gandhabba)  상태(정신적 몸, ‘마노마야 까-야_manomaya kāya’)는 안따라-바와(antarābhava)와 동일하므로 [간답바 상태가] 거부되어야 한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 * 하지만, 간답바(gandhabba) 상태는 인간 바와(human bhava) 전체를 포괄하는 상태이며, 그 상태 내에서 물질적 인체로서 많은 재탄생이 있습니다.

  • * 필자는 용어를 명확히 하고 또한 이 크게 오해된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 두 개의 재탄생 이야기를 이용하겠습니다.

 

제프리 킨의 재탄생 이야기

 

https://youtu.be/aQHp9bGVDB8 

 

2.  존 고든(John Gordon) 장군은 [미국의] 남북 전쟁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근년에 제프리 킨(Jeffrey Keene)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 * 그들(존 고든과 제프리 킨)은 동일한 간답바(gandhabba)(정신적 몸, ‘마노마야 까-야_manomaya kāya’)에 기인한 두 개의 ‘인간 몸’입니다. 그 두 탄생(고든 장군 및 제프리 킨)은 동일한 ‘인간 바와(human bhava)’ 내에 있습니다.

  • * 고든 장군이 죽자, 정신적 몸(간답바)이 그 시체에서 나왔습니다. 그 다음, 그 간답바(gandhabba)는 적합한 자궁을 기다리며 ‘빠라로까(paraloka, 하계)’에 있었습니다.

  • * 수많은 년이 지난 후, 그 간답바는 제프리 킨의 어머니의 자궁으로 끌려 들어갔고, 그렇게 해서 그는 그 육체로 태어난(자-띠,  jāti) 것입니다.

  • * 그러므로, 고든(Gordon) 장군과 제프리 킨(Jeffrey Keene)은 동일한 ‘생명 흐름(lifestream)’에 있습니다. 그들은 ‘동일한 인간 바와(human bhava)’에 속합니다.

  • * 이것은 재탄생에 대한 부처님의 입장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프리 킨(Jeffrey Keene)은 고든(Gordon) 장군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프리 킨의 삶은 고든 장군의 삶과 돌이킬 수 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 * 두 번(고든 장군과 제프리 킨) 물질적 인체로 다시 태어난(자-띠, jāti) 것은 인간의 동일한 정신적 몸(간답바, gandhabba)입니다.

 

3. 몇 가지 더 관찰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 * 고든(Gordon) 장군과 제프리 킨의 육체는 놀라울 정도로 닮았지만, 모든 경우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신체 특징(그들의 DNA)도 또한 자녀의 신체 특징의 요인이 됩니다.

  • * 그 두 삶 사이에는 커다란 시차가 있습니다. 그 사이에 육체로 더 많은 태어남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 연이은 삶 사이의 시간 간격은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며칠 또는 몇 달만일 수 있지만, 더 일반적으로는 여러 해의 간격이 있습니다.

  • * 간답바(gandhabba)는 ‘자궁을 선택하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성관계 후에 여성의 자궁에 접합자(수정란, zygote)가 생성되면 부모의 일반적인 가띠(gati)에 어울리는 간답바가 자궁으로 당겨집니다. ‘임신, 낙태, 및 피임에 대한 불교의 설명’을 참조하세요.

 

제임스 라이닝거의 재탄생 이야기

 

https://youtu.be/Uk7biSOzr1k 

 

4. 관련 사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재생 시작에서: 해설자는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 돌아올(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 * 돌아오거나 다시 태어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육체적으로) 다른 모습을 가진 동일한 생명 흐름(lifestream)입니다. 그 연이은 태어남(자-띠, jāti)은 동일한 인간 바와(human bhava) 내에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동일한 ‘생명 흐름(lifestream)’입니다. ‘환생이란 무엇인가? - 생명 흐름의 개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재생시각 30초에서: 제임스 휴스턴 2세(James Houston, Jr.)는 1945년 3월 3일 태평양 상공에서 격추되어 전사했습니다. 제임스 라이닝거(James Leininger)는 (그때로부터) 약 60년 후에 태어났으며, ‘일본군에 의해 격추된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재생시각 3분 20초에서: 해설자는 “죽은 사람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 * 그것은 상황을 올바르게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육체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동일한 생명 흐름입니다!

 

재생시각 4분에서: 보통, 아이의 전생에 대한 기억은 7~8년 정도 지나면 사라집니다.

 

재생시각 5분에서: 제임스 라이닝거(James Leininger) 자신의 [비행기] 격추 사건 이야기.

 

재생시각 7분 30초에서: 제임스 라이닝거(James Leininger)는 그의 전생에 친구였던 잭 라슨(Jack Larson)의 이름을 말했으며, 그의 비행기는 [항공모함] ‘나토마(Natoma)’ 호에서 이륙했다고 정확하게 말합니다. 이것은 강력한 증거입니다.

 

재생시각 8분 20초에서: 그는 자신을 ‘제임스 3세’라고 표현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전생에 제임스 휴스턴 2세(James Houston, Jr)(즉, 제임스 2세)였기 때문입니다.

 

재생시각 10분 40초에서: 아버지인 브루스 라이닝거(Bruce Leininger)는 그의 아들이 ‘마쳐야(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돌아온 것 같다고 말합니다.

  • *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고, 또한 31 영역의 어떤 곳에 그에 해당하는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

 

재생시각 10분 55초에서: 제임스 휴스턴 2세(James Houston, Jr.)와 남매 사이인 앤 배런(Anne Barron)의 코멘트.

 

재생시각 11분 30초에서: 재탄생을 믿지 않는 커츠 교수(Prof. Kurtz)의 코멘트. 커츠 교수는 2살된 아이인 ‘제임스 라이닝거(James Leininger)’의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 결정은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더 많은 재탄생 이야기와,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 및 유체이탈경험(Out-of-Body Experience)과 같은 다른 유형의 증거가 있습니다. ‘재탄생(윤회)의 증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 연이은 태어남은 다른 바와에 있는가?

 

5. 위의 두 이야기는 인간 바와(human bhava)와 인간 자-띠(human jāti)라는 두 가지 개념을 명확히 할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 * 간답바(gandhabba) 상태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다음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제임스 휴스턴(James Houston)과 제임스 라이닝거(James Leininger)는 두 개의 다른 바와(bhava)에 있습니까?

  • * 그들이 “그렇습니다.”라고 답하면, 다음이 틀림없이 진실일 것입니다. 그 두 인간 바와(human bhava) 사이에서, 그 생명 흐름은 틀림없이 동물 바와(animal bhava)나 데와 바와(Deva bhava) 같은 다른 바와로 있었을 것입니다.

  • * 그러나, 붓다께서는 인간 바와(human bhava)를 얻는 것이 극히 어렵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연이은 인간 바와 사이에는 수백만 년 또는 수십억 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영역에 재탄생하는 기회를 붓다께서 묘사하신 방법’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그 두 번의 연이은 탄생(자-띠, jāti)이 동일한 인간 바와 내에 있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바와 및 자띠 - 존재 상태와 거기로 태어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제3차 불교 모임(결집 회의)에서 상정된 ‘안따라-바와’ 문제는 다른 문제였다

 

6. 제3차 불교 모임(결집 회의)에서 안따라-바와(antarābhava)라는 개념이 논의되었고 그것은 거부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 Piṭaka)의 까타-왓투(Kathāvatthu) 섹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 그 문제와 관련하여 간답바(gandhabba)에 대한 논의는 없었습니다. 다음 포스트인 ‘까타-왓투에 있는 안따라-바와 논의 ㅡ 간답바와는 관련없다’에서 그것을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 * 그러므로, 간답바 상태를 안따라-바와(antarābhava, 중유)로 이해하는(여기는) 것은 중대한 오류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간답바 상태는 전체 인간 바와(whole human bhava)를  포괄합니다[역주: 인간 육체를 가지거나 가지지 않는 간답바 상태를 모두 포함한다는 의미임].

 

자아(Self)와 무아(No-Self) 문제에 대한 통찰

 

7. 이것은 또한 ‘자아(Self)’와 ‘무아(No-Self)’ 문제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 * 제임스 라이닝거(James Leininger)는 제임스 휴스턴(James Houston)과 동일할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 매우 다른 삶을 살았고 똑같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위 #2에서 언급한 제프리 킨(Jeffrey Keene)은 고든(Gordon) 장군과 동일할까요? 육체적으로 유사함이 있지만, 그들은 서로 매우 다르고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듯이, 그 두 개인의 육체는 완전히 다릅니다. 제임스 휴스턴의 육체는 오래 전에 분해되었습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그 ‘생명 흐름(lifestream)’은 데와(천신), 브라흐마(범천), 동물 등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에센스[변하지 않고 영원한 본질]도 생에서 생으로(life-to-life), 특히 바와에서 바와로(bhava-to-bhava) 전해지지 않습니다. 데와 바와(Deva bhava, 천신 바와)는 인간 바와(human bhava) 또는 동물 바와(animal bhava)와 매우 다릅니다. 그것이 붓다께서 불변의 '자아(self)' 또는 '영혼(soul)'이라는 견해를 거부하신 이유입니다.

  • * 그러나, 그 각 경우에 두 삶 사이에는 분명히 강한 연결이 있습니다. 제임스 휴스턴(James Houston)이 없다면 제임스 라이닝거(James Leininger)도 없을 것이다. 제임스 라이닝거는 그 동일한 ‘생명 흐름(lifestream)’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듯이, 그 두 개인의 육체는 완전히 다릅니다. 제임스 휴스턴의 육체는 오래 전에 분해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정신적 몸(mental body)에는 끊어지지 않은 연결이 있습니다. 사실, 제임스 라이닝거는 제임스 휴스턴의 정신적 특성(예: ‘아누사야_anusaya’)을 일부 물려 받았음에 틀림없습니다(중간에 어떤 변화는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붓다께서는 ‘무아(no-self)’라는 견해도 거부하셨습니다. 윤회(saṃsāric) 과정이 있는 한, 그 생명 흐름(lifestream) 내의 어떤 두 단계 사이에는 끊어지지 않은 (정신적) 계보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내 것’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 

 

8. 진짜 문제는 이 세상에 ‘내 것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가치있는 어떤 것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시각/인식으로 행해진 부도덕한 행위는 동물 바와(animal bhava)와 같은 ‘나쁜 바와(bad bhava)’로 이끄는 깜마(업) 에너지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우려/걱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붓다께서 첫 법문에서 ‘상킷떼나 빤쭈빠-다-낙칸다- 둑카-(saṃ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즉, ‘간단히 말해서, 괴로움/고통의 근원은 루-빠(rūpa), 웨다나(vedana),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윈냐-나(viññāna)라는 다섯가지 무더기에 대한 갈망/갈애다(빤쭈빠-다-낙칸다, pancupādānakkhandha)’라고 첫 법문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 * 인간 바와(human bhava)는 [그 수명이] 100년보다 훨씬 더 길지만, 중생들은 인간 바와뿐만 아니라 훨씬 더 나쁜 바와에 걸쳐있는 긴 재탄생 과정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고통/괴로움이 있는 다른 존재(바와)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 * 인간 바와(human bhava)가 끝나고 ‘나쁜 바와’(예를 들어, 동물 바와)’가 잡혀질 때, 그 동물은 이전의 인간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동물 바와는 이전의 인간 바와와 ‘인과 관계’가 있습니다. 동물 바와(animal bhava)에 있을 때, 예를 들어, 그 동물은 이 문제들에 대해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동물 바와는 여전히 ‘나와 내 것’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물은 완전히 무력하며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아낫따(anatta) 특성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견해, 즉 “이것은 내 것이고, 나는 이것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self)다.”라는 잘못된 견해를 가진 결과입니다. 그것이 바로 “ ‘에땅 마마, 에소하마스미, 에소 메 앗따-’띠(‘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 ti)”라는 빠알리 구절의 의미입니다.

  • * 그 바와의 변화는 인간 바와(human bhava)의 끝인, 쭈띠-빠띠산디(cuti-paṭisandhi, 죽음-재생연결) 순간에 일어납니다. 그 전에 많은 인간 몸의 ‘죽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 #2에서 고든(Gordon) 장군과 제프리 킨(Jeffrey Keene)은 단일 인간 존재(bhava) 내에서 단지 두 번의 탄생(자-띠, jāti)이었습니다. 그것이 이 맥락에서 바와(bhava)와 자-띠(jāti)의 차이입니다. ‘바와 및 자띠 - 존재 상태와 거기로 태어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것들은 복잡한 문제입니다. [어느 정도 공부하여] 견인력을 좀 얻는 것이 관건이고, 그러면 더 쉬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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