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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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낫따락카나 숫따 내의 아낫따 ㅡ 제2부

 

원문: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Anatta in Anattalakkhaṇa Sutta – Part 2’ 포스트

- 2021년 9월 26일 작성; 2022년 8월 25일 개정[영문법 및 경미한 사항 개정임]

 

이전 포스트의 요약

 

1. 이전 포스트인 ‘아낫따락카나 숫따 내의 아낫따 ㅡ 제1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 * 아낫따락카나 숫따(Anattalakkhaṇa Sutta)는 다섯 무더기(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의 본질(특성)을 묘사(설명)합니다. 그것은 특히 아낫따(anatta) 본질(특성)을 다룹니다. 그것을 쉽게 하기 위해, 우리는 숫따(sutta)를 세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참고하기 위해 이전 포스트를 인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 숫따(sutta)의 중간(두 번째 부분)에서, 붓다께서는 아닛짜(anicca) 특성과 둑카(dukkha) 특성과의 관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아래에서 그것을 논의하겠습니다.

  • * 숫따(sutta)의 세 번째 부분에서, 붓다께서는 세상의 참된 본질을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라고 이해하는 성자는 다섯 무더기에 들러붙지 않는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따라서 도(길)를 완성한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에게는 빤쭈빠-다-낙칸다 (pañcupādānakkhandha)가 없습니다.

  • * 왜냐하면 성자는 “상킷떼나 빤쭈빠-다-낙칸다- 둑카-(saṃ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즉 “간단히 말해서, 괴로움의 근원은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라는 다섯 무더기에 대한 갈망이다”라는 구절을 이해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 숫따에 있는 불교의 에센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참조 포스트는 다섯 (고행)수행자에게 처음 설하신 숫따(sutta)인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pavattana Sutta)의 에센스(정수)에 대해 논의한 포스트입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잇차-(icchā, 갈망/좋아함)는 아닛짜(anicca)와 관련이 있습니다. ‘잇짜, 닛짜, 아닛짜 ㅡ 중요한 관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붓다께서는 다섯 (고행)수행자에게 설하신 이 두 번째 숫따(sutta)에서 틸락카나(Tilakkhana)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십니다. 아닛짜(anicca) 본질(특성)이 있는 것들에 대한 들러붙음은 둑카(dukkha)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세상 것들은 에센스(실속)/실질이 없기 때문에, 즉 세상의 실체(빤짝칸다/오온)는 에센스(실속)가 없는 아낫따(anatta) 본질/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그것들을 ‘내 것’으로 취하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아낫따락카나 숫따의 첫 번째 부분

 

2. 숫따(sutta)의 시작부분에서, 루빡칸다(rupakkhandha)에 관해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루-빵, 빅카웨, 아낫따-. 루-빤짜 히당, 빅카웨, 앗따- 아바윗사, 나이당 루-빵 아-바-다-야 상왓떼이야, 랍베타 짜 루-뻬: ‘에왕 메 루-빵 호뚜, 에왕 메 루-빵 마- 아호시-’띠. 야스마- 짜 코, 빅카웨, 루-빵 아낫따-, 따스마- 루-빵 아-바-다-야 상왓따띠, 나 짜 랍바띠 루-뻬; ‘에왕 메 루-빵 호뚜, 에왕 메 루-빵 마- 아호시-’띠.”

(“Rūpaṁ, bhikkhave, anattā. Rūpañca hidaṁ, bhikkhave, attā abhavissa, nayidaṁ rūpaṁ ābādhāya saṁvatteyya, labbhetha ca rūpe: ‘evaṁ me rūpaṁ hotu, evaṁ me rūpaṁ mā ahosī’ti. Yasmā ca kho, bhikkhave, rūpaṁ anattā, tasmā rūpaṁ ābādhāya saṁvattati, na ca labbhati rūpe: ‘evaṁ me rūpaṁ hotu, evaṁ me rūpaṁ mā ahosī’ti.”)

 

먼저, 이전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여기서 ‘루-빵(rūpaṁ)’은 어떤 사람들이 인식하는 루빡칸다(rupakkhandha)(단지 자신의 몸이 아니라 루빠 무더기)를 가리킵니다.

 

루-빵, 빅카웨, 아낫따-(Rūpaṁ, bhikkahave, anattā)’는 ‘루빠 무더기는 에센스(실속)가 없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아낫따 ㅡ 체계적 분석(Anattā – A Systematic Analysis)’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 * 위 구절의 나머지 부분은 루빠 무더기가 왜 에센스(실속)가 없는지를 설명합니다. “만약 루빠 무더기가 에센스(실속)가 있다면(그리고 자신의 통제하에 있다면), (‘루빠 무더기’의 부분인) 내 몸은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고, ‘내 몸(또는 어떤 다른 루빠)이 내가 좋아하는 식으로 되게 하고, 내가 좋아하지 않은 식으로 되지 않게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루빠(rupa)가 나의 통제하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예기지 않은 변화에 직면할 수 있고, ‘내 루빠가 이렇게 되게 하고, 내 루빠가 그렇게 되지 않게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여기서 이 구절은 사람의 육체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어떤 사람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모든 루빠(rupa)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게 되겠지만, 그것이 자신의 몸이든 다른 어떤 외부 루빠든, 그것들은 모두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따라 진화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루빠, 현재 존재하는 모든 루빠,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루빠에도 해당됩니다. 즉, 그것은 루빡칸다(루빠 무더기)에 해당됩니다!

 

  • * 그 다음, 그 구절은 다른 네 가지 무더기, 즉 웨다낙-칸다(vedanākkhandha), 산냑-칸다(saññākkhandha), 상카-락칸다(saṅkhārakkhandha), 및 윈냐-낙칸다(viññāṇakkhandha)에 대해 반복됩니다.

  • * 여기서 ‘아낫따/아낫따-(anatta/anattā)’라는 낱말은 모든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즉, 각자의 세상)의 결실없는 특성(본질)을 가리킵니다.

 

아낫따락카나 숫따의 두 번째 부분

 

3. 숫따(sutta)의 두 번째 부분은 “땅 킹 만냐타, 빅카웨, 루-빵 닛짱 와- 아닛짱 와-’띠?(Taṁ kiṁ maññatha, bhikkave, rūpaṁ niccaṁ vā aniccaṁ vā'ti?)”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붓다께서는 그것들이 자신의 통제하에 있을 수 없는 이유를 분명히 나타내 보이십니다.

 

  • * 핵심 이유는 다섯 무더기 모두가 아닛짜(anicca)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것들은 각자의 바람이나 희망에 따라 진화하지 않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진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논의한 바와 같이, 아닛짜(anicca) 특성은 둑카(dukkha)로 이어지며, 그것이 바로 ‘통제하려는’ 모든 노력이 성공하지 못하고 통제할 수 없고 어찌할 수 없이 난감하게 되는(아낫따, anatta) 이유입니다. 그것은 “야드 아닛짱 땅 둑캉; 양 둑캉 따드 아낫따-(Yad aniccaṁ taṁ dukkhaṁ; yaṁ dukkhaṁ tad anattā)”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 * 그 다음, 붓다께서는 “양 빠나 아닛짱 둑캉 위빠리나-마담망, 깔랑 누 땅 사마누빳시뚱: ‘에땅 마마, 에소하마스미, 에소 메 앗따-’띠?(Yaṁ pana aniccaṁ dukkhaṁ vipariṇāmadhammaṁ, kallaṁ nu taṁ samanupassituṁ: ‘etaṁ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라고 결정적 질문을 하십니다.

  • 번역: “만약 어떤 것이 (내가 바라는 것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본성에 따라 진화하고 괴로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고, 이것은 나에게 유익하고 피난처일 수 있다’고 여겨야 하겠는가?”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 * ‘에땅 마마, 에소하마스미, 에소 메 앗따-(etaṁ mama, esohamasmi, eso me attā)’라는 구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에소하마스미(esohamasmi)는 ‘에소 아항 아스미(eso aham asmi)’의 축약형입니다. 그리고 ‘마마(mama)’는 ‘내 것’을 의미하고, ‘아항 아스미(aham asmi)’는 ‘나다(I am)’를 의미하며, ‘메(me)’는 ‘나에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위와 같이 번역할 수 있습니다.

 

4. 그 마지막 구절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그것은 ‘자아(self)’에 대한 현재의 오해를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어떤 사람들은 자아(self)를 영혼처럼 ‘영구적 실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아(self)’보다는 ‘나(me)’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 * 알다시피, 붓다께서는 ‘나(me)’라는 말을 자유롭게 사용하셨습니다. 그것은 유정체가 재탄생 과정(윤회)에 있는 한, '나(me)'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아(self)’가 영구적 ‘영혼(soul)’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것도 ‘자아(self)’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 * 반면에, ‘앗따/앗따-(atta/attā)’라는 낱말은 이 숫따에서 ‘나(me)’ 또는 ‘자아(self)’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이 숫따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다섯 무더기(빤짝칸다-, pañcakkhandhā)에 관한 것입니다.

  • * 사성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빤짝칸다-, pañcakkhandhā)을 닛짜/수카/앗따(nicca/sukha/atta) 특성(본질)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떤 세상 것, 즉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 오취온)에 들러붙으며, 그것이 미래 괴로움의 기원(근원)입니다. 이것은 “상킷떼나 빤쭈빠-다-낙칸다- 둑카-(saṃ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로 표현됩니다.  ‘첫 숫따에 있는 불교의 에센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5. 붓다께서는 삿따 숫따( ‘Satta Sutta, SN 23.2’ )에서 라-다(Rādha)에게 ‘삿따(satta)’, 즉 ‘(범부)중생’이 의미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Rūpe kho, Rādha, yo chando yo rāgo yā nandī yā taṇhā, tatra satto, tatra visatto, tasmā sattoti vuccati. Vedanāya … saññāya … saṅkhāresu … viññāṇe yo chando yo rāgo yā nandī yā taṇhā, tatra satto, tatra visatto, tasmā sattoti vuccati”

 

  • 번역(의미만): “라-다(Rādha)여, 열의/바람(찬다, chanda), 라-가(rāga, 욕망), 그리고 물질 형태(rūpa, 루-빠)에 높은 가치를 두는 인식(nandī, 난디-)이 있을 때, 형태에 대한 집착(삿또, satto), 강한 집착(위삿또, visatto)이 있고, 그러면 무지한 중생(삿또, satto)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열의/바람(찬다, chanda), 라-가(rāga, 욕망), 그리고 웨다나-(vedanā) … 산냐-(saññā) … 상카-라(saṅkhāra) … 윈냐-나(viññāṇa)에 높은 가치를 두는 인식(nandī, 난디-)이 있을 때, … 그러면 중생(삿또, satto)이라고 말한다.”

  • * 우리는 ‘다섯 무더기와 띨락카나 ㅡ 소개’라는 소개 포스트에서 그것을 논의했습니다.

  • * 이것이 (막가 팔라를 얻은 자를 제외하고) 31 영역의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유정체가 삿따(satta, 범부 중생) (산스크리트어로 ‘satva’)인 이유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전의 붓다까지도 보디삿따(Bodhisatta), 즉 ‘붓다의 깨달음(붓다후드, Buddhahood)을 얻기로 되어 있는 삿따(satta)’입니다.

  • * 살아 있는 아라한도 현재의 몸은 '나(me)'라는 인식으로 행해진 과거 깜마(kamma)로 인해 생겨났습니다. 그 몸은 그 과거 깜마의 결과이며 아라한과(Arahanthood)를 얻은 후에도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아라한이 죽을 때, 새로운 생명/몸은 생기지 않습니다. 그때까지 아라한은 '나는(I)'와 '나를(me)'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 말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붓다께서도 그렇게 그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아낫따락카나 숫따의 세 번째 부분

 

6. 숫따(sutta)의 마지막 세 번째 부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Evaṁ passaṁ,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rūpasmimpi nibbindati, vedanāyapi nibbindati, saññāyapi nibbindati, saṅkhāresupi nibbindati, viññāṇasmimpi nibbindati. Nibbindaṁ virajjati; virāg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 * 번역: “빅쿠들이여, 이렇게 보고, (위의 진리를 이해한) 성자는 루-빠(rūpa),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및 윈냐-나(viññāṇa)에 들러붙지 않는다.  그 마음은 ‘마음을 기쁘게 하는’ 그것들이 가치 없다는 것을 알고 (이 세상에서) 해방된다. 해방되면, 자신이 해방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 번역:그는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재탄생이 부서졌고(없어졌고), 거룩한 삶을 살아왔고, 해야할 일을 다했고, (고통/괴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에) 이 존재의 상태는 더 이상 없다’.”

 

요약

 

7. 위 내용이 아낫따락카나 숫따(Anattalakkhaṇa Sutta)의 간략한 요약입니다. 결론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 * 첫 번째로 주목할 점은 다섯 무더기(빤짝칸다, pañcakkhandhā)에 대한 분석이라는 것입니다. 빤짝칸다-(pañcakkhandhā)는 각자의 세상을 나타내므로, 숫따는 31 영역으로 된 세상의 아낫따(anatta) 특성에 관한 것입니다.

  • * 두 번째 부분에서, 붓다께서는 아낫따(anatta) 특성은 아닛짜(anicca) 특성의 결과라고 말씀하십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내부든 외부든) 모든 루빠(rupa) 또는 그 루빠로 인한 정신적 인상(즉, 웨나다-, 산냐-, 상카-라, 윈냐-나)는 자신의 원함/바람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그보다 그것들은 그 자연적 과정에 대한 자신의 무지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적 과정으로 인해 일어납니다. 그 과정이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입니다. 우리는 웨다나-(vedanā), 상카-라(sañkhāra), 윈냐-나(viññāṇa)가 ‘아윗짜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ñkhāra)’로 시작하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바와 빳짜야- 자-띠(bhava paccayā jāti)’ 단계는 내부 루빠(internal rupa)의 일어남을 묘사합니다. 그 세부 사항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 * 마지막으로, 붓다께서는 세상은 결실없고, 가치 있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것이 붓다께서 붓다 담마가 세상에 결코 알려진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특성을 이해한 성자만이 성스런 팔정도를 닦고 이 괴로움이 가득한 세상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습니다. 즉,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 알다시피, 이 숫따(sutta)는 고도로 축약되어 있다. 숫따(sutta)를 글자 그대로 직역(낱말별로 그대로 대응시켜 번역)하는 것으로는 그 내장된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깊은 숫따(sutta)는 자세히 설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숫따 해석 ㅡ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향후 포스트에서, 특히 아닛짜(anicca)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연결시키기 위해 숫따(sutta)를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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