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아-나-빠-나사띠 ㅡ 개요
원문: Elephants in the Room 섹션의 ‘Ānāpānasati – Overview’ 포스트
- 2022년 6월 2일 작성; 2022년 6월 5일 개정; 2022년 10월 26일 개정; 2022년 12월 20일 개정; 2023년 1월 12일 재작성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가 호흡 명상이 아니라는 것은 띠삐따까(Tipitaka)의 증거가 보여줍니다. 전자는 닙바-나로 이어질 수 있지만, 후자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또한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사이의 관계를 논의할 것입니다.
아-나-빠-나사띠와 빠띳짜 사뭅빠-다 사이의 관계
1. '담마-'와 '상카-라' 사이의 차이 포스트에서, 우리는 (로바, 도사, 및 모하를 수반하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로 행한 행위(깜마)가 재탄생과 미래 괴로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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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담마(dhammā)는 아꾸살라ㅡ물라(또는 아눌로마)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바와(bhava)로 생성된 깜마 에너지입니다. ‘아꾸살라ㅡ물-라 우빠빳띠 빠띳짜 사뭅빠-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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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과정은 닙바-나로 이어지는 ‘빠띨로-마 빠띳짜 사뭅빠-다 ㅡ 닙바-나로 가는 열쇠’에서는 반대입니다. 여기서 상카-라의 다른 유형(‘꾸살라ㅡ물-라 빳짜야- 상카-라)은 아꾸살라ㅡ물라(또는 아눌로마) PS를 통해 생성된 담마-(dhammā)들을 중지시키는 것을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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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두 가지 PS 과정은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빠알리 핵심어의 왜곡’ 포스트에 나란히 논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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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의 육성은 닙바-나(Nibbāna)로 이끈다고 아-나-빠-사띠 숫따(Ānāpānasati Sutta, MN 118)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는 빠띨로-마 빠띳짜 사뭅빠-다(Paṭilōma Paṭicca Samuppāda)를 분명히 완수시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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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흡 명상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호흡 명상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시리즈의 포스트들에서 실제 관계의 일부 실마리를 밝혀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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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모두에 대한 띠삐따까 문헌의 현재 번역이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방 안의 코끼리 ㅡ 명백하게 잘못된 번역
2. ‘방 안의 코끼리’ 시리즈에서, 필자는 ‘띠삐따까의 낱말별 번역(직역)’,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 및 ‘띨락카나(Tilakkhana)’라는 세 가지 범주 하에 띠삐따까(Tipitaka)에 대한 많은 노골적인 오해를 논의합니다[역자주: ‘자나와 까시나’ 범주가 추가됨]. 그 첫 번째 범주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번역과 관련된 문제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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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다음 이유 때문에 이것들을 ‘방 안의 코끼리’라고 부릅니다. 필자는 띠삐따까(Tipitaka)의 현재 영어 번역에서 많은 모순을 지적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이 웹사이트를 따라온 사람들은 이 문제들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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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필자는 잘 알려진 토론 포럼에서 이 문제들을 지적했을 때 강한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ce)으로, 그리고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를 호흡 명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에게는 ‘검은 안경을 벗고’ ‘진실을 본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3. 어떤 이들은 “나는 당신과 그 저명한 스승들 중에서 누가 올바른 해석(이해)을 하는지 결정할만큼 빠알리어를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모순들을 알기 위해 빠알리어에 대한 지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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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빠알리 핵심어의 왜곡’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어린 아이도 그런 명백한 모순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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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확고히 심어진 잘못된 견해들, 특히 현재의 ‘테라와다 조직(체제)’이 그런 해석의 배후에 있을 때에 그것들을 제거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필자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물론, 필자는 고 와하라까 테로님으로부터 이 해석들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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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퓨어 담마] 토론 포럼과 위에서 언급한 다른 포럼에서도 코멘트로부터 필자가 알 수 있듯이, 일부 사람들이 이해했다는 것을 보니 안도감이 듭니다.
방 안의 첫 번째 코끼리 ㅡ 띠삐따까에 대한 낱말별 번역(직역)
4. 필자는 이미 ‘띠삐따까의 낱말별 번역(Word-for-Word Translation of the Tipiṭaka)’ 카테고리 하에 포스트를 올렸고 나중에 더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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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에 대한 제1의 숫따는 ‘Ānāpānassati Sutta (MN 118)’입니다. 향후 포스트에서 이 숫따의 주된 구절을 논의하겠습니다. 그전에, 아래에 나타내 보인 바와 같이 배경을 좀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빠알리어에서 아-나빠-나(Ānapāna)와 사띠(sati)라는 두 낱말이 결합하여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가 되었음에 주목하세요. 따라서,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와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라는 두 낱말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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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비교하기 위해 위 링크에 있는 영어 번역을 사용하겠습니다. 그것은 영어와 빠알리어 구절이 서로 옆에 배치되어 있으므로 누구나 특정 구절에 대한 필자의 번역과 쉽게 비교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특정 [영어] 번역을 [비교의 대상으로] 선택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현재 영어 번역은 비슷하게 잘못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Anapanasati Sutta: Mindfulness of Breathing (MN 118.)’을 참조하세요.
방 안의 세 번째 코끼리 ㅡ 아-나-빠-나사티 바-와나-는 호흡 명상이 아니다
5.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는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이 아닙니다. 호흡 명상은 불교 명상이 아닙니다. 힌두교도들은 호흡 명상을 실천합니다. ‘Pranayama’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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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들은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가 사마타 바-와나-(Samatha Bhāvanā)로서 첫 단계이고, 그 다음, 사람들은 ‘통찰 명상’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속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는 그 단독으로 아라한과를 얻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라는 점을 많은 숫따에서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 아래 #9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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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이, 사람들은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가 호흡 명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하면 올바른 통찰 명상을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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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의 단계들을 완료하면, 사띠빳따나 바-와나-(Satipatthana Bhāvanā)의 단계들을 완수하게 된다고 아-나-빠-나사띠 숫따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띠빳타나 바-와나-(Satipatthana Bhāvanā)는 동일한 단계들을 더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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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에 대한 소개는 ‘바와나(명상)’ 섹션의 5번부터 8번 포스트에 있습니다. 다음은 ‘세 번째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 3 – Ānāpānasati)’ 서브 섹션의 포스트들의 주제에 대한 개요입니다.
호흡은 상윳따 니까-야의 아-나빠-나 왁가에 언급되지 않았다
6.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에 관한 섹션 전에, 상윳따 니까-야(Saṁyutta Nikāya)의 아-나빠-나 왁가(Ānapāna Vagga)에는 숫따 소모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나(Āna)’ + ‘아-빠-나(āpāna)’에서 유래한 아-나빠-나(Ānapāna)에 포함된 개념을 주는데, 그 두 낱말은 ‘받아들이고(꾸살라)’ ‘버리는(아꾸살라 또는 오염)’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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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빠-나 왁가(Ānapāna Vagga)에 있는 그 섹션에는 ‘Aṭṭhikamahapphala Sutta (SN 46.57)’로 시작하여 ‘Ānāpāna Sutta (SN 46.66)’로 끝나는 여러 숫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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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링크에 있는 영어 번역을 읽어 보면 ‘호흡’이라는 낱말은 거기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SN 46.66에서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를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mindfulness of breathing)’으로 영어로 잘못 번역한 것은 ‘호흡’이라는 낱말이 그 숫따에 언급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잘못된 번역은 위 링크의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사이트의 번역에 있는 것입니다. (주: 필자는 보통 빠알리어와 영어 번역을 옆으로 나란히 배치한 것을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로부터 인용하여 제공합니다. 그것이 필자가 그들의 번역에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숫따 센터럴 사이트의 번역에 있는 많은 낱말의 잘못된 번역에 대해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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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에, 그 숫따들은 사람들이 아-나빠-나 사띠(Ānapāna sati)를 기르기 위해서 올바르게 ‘받아들이고’ ‘버리는’(아-나빠-나, Ānapāna)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어떤 핵심 개념들을 간략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7. 예를 들어, 첫 번째 숫따는 사람들이 ‘앗티까 산냐-(aṭṭhika saññā)’를 어떻게 기르는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즉 ‘결실없는’ 본질입니다. 위 첫 번째 링크에 있는 영어 번역에서는 ‘앗티까 산냐-(aṭṭhika saññā)’를 ‘골격(뼈대/해골)이라는 인식(perception of a skeleton)’으로 번역한 것을 보면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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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낱말별로 그대로 대응시켜 번역하는 것은 그런 우스꽝스런(터무니없는) 말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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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티(aṭṭhi)라는 낱말은 ‘뼈’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절은 필자가 나중에 설명할 것처럼, 비유를 제공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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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리즈에서 다른 숫따들은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에 있는 다양한 유형의 명상을 간략히 언급하고 있으며, 그 시리즈는 ‘Ānāpāna Sutta (SN 46.66)’에서 “빅쿠들이며,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가 개발되고 길러졌을 때 그것은 매우 결실있고 유익하다..”고 간략히 말씀하시면서 끝납니다.
빅쿠가 걸인인가?
8. 숫따 센트럴 번역에서 또다른 흔한 문제는 번역자가 빅쿠(Bhikkhu)를 항상 걸인(mendicant)으로 번역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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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ndicant(걸인)의 정의를 ‘mendicant definition’에서 참조하세요. 빅쿠(bhikkhu)는 ‘beggar(걸인/거지)’가 아닙니다. 빅쿠(bhikkhu)를 ‘beggar(걸인/거지)’라고 칭하는 것은 모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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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사전에서, 두 번째 정의는 종종 대문자로 표시되는데, 수도원 생활과 외부 종교 활동을 병행하고 원래 개인 재산이나 공동체 재산을 소유하지 않는 (프란체스코회와 같은) 종교 체제(단체)의 구성원입니다. ‘mendicant’를 참조하세요. 하지만 왜 모호한 정의를 사용할까요? 게다가 숫따 센트럴의 번역에서는 대문자가 없습니다(Mendicant가 아니라, 대부분 mendicant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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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쿠(bhikkhu)라는 용어를 이해하려면, ‘11 results for bhikkhusutta’에 있는 숫따(sutta)들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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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쿠(bhikkhu), 아닛짜(anicca), 및 아낫따(anatta)와 같은 낱말에 관한 쉬운 해결책은 싱할라어에서 한 것과 같이 동일한 빠알리 낱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어떤 언어에도 그런 빠알리 낱말에 대응하는 단일 낱말은 없습니다!
아-나빠-나 상윳따는 아-나-빠-나사띠 바-와나- ㅡ 단독으로 ㅡ 아라한과에 이른다고 말한다
9. 상윳따 니까-야(Saṁyutta Nikāya)의 아-나빠-나 상윳따(Ānapāna Saṁyutta)에는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 단독으로 아라한과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밝히는 20개의 숫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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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리즈는 ‘Ekadhamma Sutta (SN 54.1)’로 시작합니다. 에까담마(ekadhamma)는 ‘하나의 담마’를 의미하며, 이것은 아라한과에 이르는데 필요한 것은 이 하나가 전부라는 것을 내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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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리즈는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가 모든 상요자나(saṁyojana), 아누사야(anusaya), 및 아-사와(āsava)를 제거하는 것으로 명시하는 짧은 숫따로 끝납니다. 그것이 닙바-나(Nibbāna)로 이어진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Āsavakkhaya Sutta (SN 54.20)’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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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이 숫따 시리즈는 그것만으로 충분한 증거를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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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기 어렵게도, 이 링크의 번역자들(그리고 다른 잘 알려진 스승들)은 이 번역들을 하는 동안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필자가 계속 말하지만, 숫따를 번역하는 것이 마음이 없는, 기계적 과정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위험한 관행입니다. 깊은 의미를 가진 많은 숫따들은 상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숫따 해석 -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아-나-빠-낫사띠 숫따(MN 118)
10. 붓다께서는 ‘Ānāpānassati Sutta (MN 118)’에서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를 설명하셨습니다. 이 숫따에서 정당성을 밝히기에 충분한 두 개의 인용문을 보겠습니다.
“Ānāpānassati, bhikkhave, bhāvitā bahulīkatā cattāro satipaṭṭhāne paripūr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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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빅쿠들이여,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바-와나-, Bhāvanā)를 개발하고 길렀을 때, 네 가지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 (바-와나-, Bhāvanā) 섹션을 완료한다.”
“Nāhaṁ, bhikkhave, muṭṭhassatissa asampajānassa ānāpānassatiṁ vadā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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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빅쿠들이여, 나는 (삼마-, sammā) 사띠(sati)를 가지지 않은 자들에게 이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바-와-나, Bhāvanā)를 가르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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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틸락카나’를 이해하지 못한 모든 자는 삼마- 사띠(sammā sati)를 가지지 않습니다.
위 링크에 있는 영어 번역에서는 그 빠알리 구절을 “마음챙김이 없고 알아차림이 없는 사람에게는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의 계발이 없다고 나는 말한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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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설명했듯이, 그것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마음챙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번역자는 사띠(sati)가 삼마- 사띠(Sammā Sati)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소따빤나 단계 이상에 있는 성자만이 삼마- 사띠(Sammā Sati)를 가집니다. 예를 들어, ‘Mālukyaputta Sutta (SN 35.95)’를 참조하세요. 링크한 마커(지표)에서 “Rūpaṁ disvā sati muṭṭhā”, 즉 “(삼마- 사띠를 가지지 않는 자는) 매력적인 광경을 보면 마음챙김이 없어진다”입니다. 숫따의 그 아래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그것은 모든 6가지 감각에 대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나-빠-나사띠에서 앗사-사/빳사-사는 호흡에 대한 것이 아니라 꾸살라/아꾸살라에 대한 것이다
11. 그 번역자들이 위 결정적인 점들을 어떻게 놓쳤을까요? 필자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필자는 그들 모두가 어떻게 그런 중요한 구절을 놓쳤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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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다시피, 위 링크의 영어 번역자들은 필자의 진술을 반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글쓰는 방식을 보면, 그들이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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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경전 내의] 자기 일관성(self-consistency)을 정말로 검토하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숫따[번역문]를 양산하려는 의도였음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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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가능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근에 아무도 (팔정도를 기르는 맥락에서) 앗사-사(assāsa)와 빳사-사(passāsa)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계적으로 들이쉬고 내쉬는 평범한 의미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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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흡 명상도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라-각카요(rāgakkhaya), 도삭카요(dosakkhaya), 모학카요(mohakkhaya), 즉 닙바-나(Nibbāna)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12. 한 낱말이 (문맥에 따라)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모든 언어에서 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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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에서 간단한 예를 보겠습니다. “다음 교차로에서 오른쪽(right)으로 방향을 바꾸세요.(Turn right at the next junction.)”와 “당신이 맞습니다.(You are right.)”는 완벽한 문장(진술)입니다. ‘right’라는 낱말은 두 문맥에서 매우 다른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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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삐따까 숫따에 대한 이들 번역자들은 팔정도를 기르는 것에서 앗사-사(assāsa)와 빳사-사(passāsa)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나-빠-낫사띠까타- ㅡ 빠띠삼비다-막가에 있는 자세한 설명
13. 띠삐따까(Tipitaka)내에 있는 주석인 ‘빠띠삼비다-막가(Paṭisambhidāmagga)’의 아-나-빠-낫사띠까타-(‘1.3. Ānāpānassatikathā’)에는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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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상세한 설명을 번역하는(또는 번역해서) 책을 쓸 수도 있습니다! 향후 포스트에서, 필자는 아-나-빠-나사띠 숫따(Ānāpānassati Sutta, MN 118)에서 사용된 핵심어를 설명하기 위해 이 자료를 이용하겠습니다.
세간(평범한) 버전의 아-나-빠-나사띠
14. 분명히, 어떤 바보라도 ‘호흡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직 호흡에만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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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가지 유형의 올바른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sati)가 있습니다. 세간(평범한) 버전의 아-나-빠-나사띠는 Mahācattārīsaka Sutta (MN 117)에서 묘사된 세간(평범한) 팔정도를 완성합니다. 그 숫따는 팔정도에서 처음 다섯 단계의 두 가지 버전을 묘사합니다. 필자는 마커(지표) 6.2에서 삼마- 딧티의 두 가지 버전을 묘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링크하였습니다. 그 아래 네 단계의 두 가지 버전은 마커 12.2, 18.2, 24.2, 및 30.2에 있습니다. 그 다음 그것들은 두 가지 길에서 다른 상태의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로 이어집니다. (또한 이 숫따는 아-나-빠-나사띠 숫따(MN 118) 바로 전에 나온다는 점에 주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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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빠-나사띠의 세간 버전은 다음을 포함합니다. 좋은 도덕적인 것을 받아들여 좋은 가띠(gati)를 기르고, 나쁜 가띠(gati)를 버리며,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배우고(받아들이고), 그 가르침과 관련 내용(재탄생 이야기, 유체이탈 경험, 임사 체험과 같은 것)을 숙고하여 잘못된 견해를 버리는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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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세간) 버전을 숙고하면,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틸락카나를 이해하고 로꿋따라(성스런) 길을 시작하고 아-나-빠-나사띠 숫따(MN 118)에서 묘사된 아-나-빠-나사띠를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요약
15. 필자가 다른 포스트를 쓰지 않고도 아-나빠-나사띠가 ‘호흡 명상’인지에 대한 문제의 정당성을 밝히는데 충분한 정보를 제공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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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후에 더 많은 정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세간(평범한) 길에서 성스런 길로 전환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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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스런 길로 전환은 근본적으로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제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관계는 아-나-빠-나사띠 숫따(MN 118)가 아니라 다른 숫따에 있으며 또한 위 #13에서 언급된 띠삐따까 주석인 빠띠삼비다-막가(Paṭisambhidāmagga)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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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동안에, 토론 포럼에 개시된 새로운 주제인 Posts on ‘Elephants in the Room에 여러분의 의견/질문을 게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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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에 대한 모든 포스트들은 ‘세 번째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 3 – Ānāpānasati)’ 서브 섹션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