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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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빠-나사띠 ㅡ 개요

 

원문: Elephants in the Room 섹션의 ‘Ānāpānasati – Overview’ 포스트

- 2022년 6월 2일 작성; 2022년 6월 5일 개정(#11 추가)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가 호흡 명상이 아니라는 것은 띠삐따까(Tipitaka)의 증거가 보여줍니다. 전자는 닙바-나로 이어질 수 있지만, 후자는 그럴 수 없습니다.

 

소개

 

1. ‘방 안의 코끼리’라는 시리즈에서, 필자는  ‘띠삐따까의 낱말별 번역(직역)’,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 및 ‘띨락카나(Tilakkhana)’라는 범주 하에 띠삐따까(Tipitaka)에 대한 많은 노골적인 오해를 논의합니다.[역자주: ‘자나와 까시나’ 범주가 추가됨] 

 

  • * 필자는 다음 이유 때문에 이것들을 ‘방 안의 코끼리’라고 부릅니다. 필자는 띠삐따까(Tipitaka)의 현재 영어 번역에서 많은 명백한 모순을 지적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이 웹사이트를 열심히 따라온 사람들은 이 문제들을 알고 있습니다.

  • * 그러나, 필자는 잘 알려진 토론 포럼에서 이 문제들을 지적했을 때 강한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ce)으로, 그리고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를 호흡 명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에게는 ‘검은 안경을 벗고’ ‘진실을 본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2. 어떤 사람들은 “나는 당신과 그 저명한 스승들 중에서 누가 올바른 해석(이해)을 하는지 결정할 만큼 빠알리어를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모순들을 알기 위해 빠알리어에 대한 지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 * 예를 들어,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빠알리 핵심어의 왜곡’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어린 아이도 그런 명백한 모순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 필자는 확고히 심어진 잘못된 견해들, 특히 현재의 ‘테라와다 조직(체제)’이 그런 해석의 배후에 있을 때에 그것들을 제거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필자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물론, 필자는 고 와하라까 테로님으로부터 이 해석들을 배웠습니다.)

  • * 토론 포럼의 코멘트로부터 알 수 있듯이, 일부 사람들이 이해했다는 것을 보니 안도감이 듭니다. 

 

방 안의 첫 번째 코끼리 ㅡ 띠삐따까에 대한 낱말별 번역(직역)

 

3. 필자는 이미 ‘띠삐따까의 직역(Elephant in the Room 1 – Direct Translation of the Tipiṭaka)’ 카테고리 하에 포스트를 올렸고 나중에 더 올리겠습니다.

 

  • *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에 대한 이 첫 포스트에서, 필자는 향후 포스트들에 대한 지도를 그리겠습니다. 아래에 나타낸 바와 같이, 이 서브섹션을 여러 범주로 나누었습니다.

  • *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에 대한 제1의 숫따는 ‘Ānāpānassati Sutta (MN 118)’입니다. 향후 포스트에서 이 숫따의 주된 구절을 논의하겠습니다. 그전에, 아래에 나타내 보인 바와 같이 배경을 좀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빠알리어에서 아-나빠-나(Ānapāna)와 사띠(sati)라는 두 낱말이 결합하여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가 되었음에 주목하세요. 따라서,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와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라는 두 낱말을 볼 수 있습니다.

  • * 필자는 비교하기 위해 위 링크에 있는 영어 번역을 사용하겠습니다. 그것은 영어와 빠알리어 구절이 서로 옆에 배치되어 있으므로 누구나 특정 구절에 대한 필자의 번역과 쉽게 비교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특정 [영어] 번역을 [비교의 대상으로] 선택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현재 영어 번역은 [서로] 매우 유사합니다. 예를 들어, ‘Anapanasati Sutta: Mindfulness of Breathing (MN 118)’을 참조하세요.

 

방 안의 두 번째[역자주: 세 번째로 변경] 코끼리 ㅡ 아-나-빠-나사티 바-와나-는 호흡 명상이 아니다

 

4.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는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이 아닙니다. 호흡 명상은 불교 명상이 아닙니다. 힌두교도들도 호흡 명상을 실천합니다.

 

  • * 어떤 사람들은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가 사마타 바-와나-(Samatha Bhāvanā)로서 첫 단계이고, 그 다음, 사람들은 ‘통찰 명상’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속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는 그 단독으로 아라한과를 얻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

  • * 더욱이, 사람들은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가 호흡 명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하면 올바른 통찰 명상을 할 수 없습니다!

  • * 붓다께서는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의 단계들을 완료하면, 사띠빳따나 바-와나-(Satipatthana Bhāvanā)의 단계들을 완료하게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띠빳따나 바-와나-(Satipatthana Bhāvanā)는 동일한 단계들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 * 다음은 ‘방 3에 있는 코끼리 ㅡ 아-나-빠-나사띠’ 서브 섹션의 향후 포스트들의 주제에 대한 개요입니다.

 

호흡은 상윳따 니까-야의 아-나빠-나 왁가에 언급되지 않았다

 

5.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에 관한 섹션 전에, 상윳따 니까-야(Saṁyutta Nikāya)의 아-나빠-나 왁가(Ānapāna Vagga)에는 숫따 소모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나(Āna)’ + ‘아-빠-나(āpāna)’에서 유래한 아-나빠-나(Ānapāna)에 포함된 개념을 주는데, 그 두 낱말은 ‘받아들이고(꾸살라)’ ‘버리는(아꾸살라 또는 오염)을 의미합니다.

 

  • * 아-나빠-나 왁가(Ānapāna Vagga)에 있는 그 섹션에는 ‘Aṭṭhikamahapphala Sutta (SN 46.57)’로 시작하여 ‘Ānāpāna Sutta (SN 46.66)’로 끝나는 여러 숫따가 있습니다.

  • * 위 링크에 있는 영어 번역을 읽어 보면 호흡이라는 낱말은 거기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 대신에, 그 숫따들은 사람들이 아-나빠-나 사띠(Ānapāna sati)를 기르기 위해서 올바르게 ‘받아들이고’ ‘버리는’(아-나빠-나,  Ānapāna)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어떤 핵심 개념들을 간략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6. 예를 들어, 첫 번째 숫따는 사람들이 ‘앗티까 산냐-(aṭṭhika saññā)’를 어떻게 기르는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즉 ‘결실없는’ 본질입니다. 위 첫 번째 링크에 있는 영어 번역에서는 ‘앗티까 산냐-(aṭṭhika saññā)’를 ‘골격(뼈대/해골)이라는 인식(perception of a skeleton)’으로 번역한 것을 보면 흥미롭습니다!

 

  • * 낱말별로 그대로 대응시켜 번역하는 것은 그런 우스꽝스런(터무니없는) 말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 앗티(aṭṭhi)라는 낱말은 ‘뼈’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 올바른 의미는 나중에 설명할 것처럼 그것이 아닙니다.

  • * 그 시리즈에서 다른 숫따들은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에 있는 다양한 유형의 명상을 간략히 언급하고 있으며, 그 시리즈는 ‘Ānāpāna Sutta (SN 46.66)’에서 “빅쿠들이며,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가 개발되고 길러졌을 때 그것은 매우 결실있고 유익하다..”고 간략히 말씀하시면서 끝납니다.

 

아-나빠-나 상윳따는 아-나-빠-나사띠 바-와나- ㅡ 단독으로 ㅡ 아라한과에 이른다고 말한다

 

7. 상윳따 니까-야(Saṁyutta Nikāya)의 아-나빠-나 상윳따(Ānapāna Saṁyutta)에는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 단독으로 아라한과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밝히는 20개의 숫따가 있습니다.

 

  • * 그 시리즈는 ‘Ekadhamma Sutta (SN 54.1)’로 시작합니다. 에까담마(ekadhamma)는 ‘하나의 담마’를 의미하며, 이것은 아라한과에 이르는데 필요한 것은 이 하나가 전부라는 것을 내포합니다.

  • * 그 시리즈는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가 모든 상요자나(saṁyojana), 아누사야(anusaya), 및 아-사와(āsava)를 제거하는 것으로 명시하는 짧은 숫따로 끝납니다. 그것이 닙바-나(Nibbāna)로 이어진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Āsavakkhaya Sutta (SN 54.20)’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이 숫따 시리즈는 그것만으로 충분한 증거를 주고 있습니다.

  • * 믿기 어렵게도, 이 링크의 번역자들(그리고 다른 잘 알려진 스승들)은 이 번역들을 하는 동안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필자가 계속 말하지만, 숫따를 번역하는 것이 기계적 과정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위험한 관행입니다. 깊은 의미를 가진 많은 숫따들은 상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숫따 해석 -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아-나-빠-낫사띠 숫따(MN 118)

 

8. 붓다께서는 ‘Ānāpānassati Sutta (MN 118)’에서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를 설명하셨습니다. 이 숫따에서 정당성을 밝히기에 충분한 두 개의 인용문을 보겠습니다.

 

“Ānāpānassati, bhikkhave, bhāvitā bahulīkatā cattāro satipaṭṭhāne paripūreti.”

 

  • * 번역: “빅쿠들이여,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바-와나-, Bhāvanā)를 개발하고 길렀을 때, 네 가지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 (바-와나-, Bhāvanā) 섹션을 완료한다.” 

 

“Nāhaṁ, bhikkhave, muṭṭhassatissa asampajānassa ānāpānassatiṁ vadāmi.”

 

  • * 번역: “빅쿠들이여, 나는 (삼마-, sammā) 사띠(sati)를 가지지 않은 자들에게 이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바-와-나, Bhāvanā)를 가르치지 않는다.”

  • *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틸락카나’를 이해하지 못한 모든 자는 삼마- 사띠(sammā sati)를 가지지 않습니다.

 

아-나-빠-나사띠에서 앗사-사/빳사-사는 호흡에 대한 것이 아니라 꾸살라/아꾸살라에 대한 것이다 

 

9. 그 번역자들이 위 결정적인 점들을 어떻게 놓쳤을까요? 필자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필자는 그들 모두가 어떻게 그런 중요한 구절을 놓쳤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 * 알다시피, 위 링크의 영어 번역자들은 필자의 진술을 반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글쓰는 방식을 보면, 그들이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 * 그들은 [경전 내의] 자기 일관성(self-consistency)을 정말로 검토하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숫따[번역문]를 양산하려는 의도였음에 틀림없습니다. 

  • * 하나의 가능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근에 아무도 (팔정도를 기르는 맥락에서) 앗사-사(assāsa)와 빳사-사(passāsa)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계적으로 들이쉬고 내쉬는 평범한 의미를 사용했습니다.

  • * 호흡 명상도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라-각카요(rāgakkhaya), 도삭카요(dosakkhaya), 모학카요(mohakkhaya), 즉 닙바-나(Nibbāna)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10. 한 낱말이 (문맥에 따라)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모든 언어에서 흔합니다.

 

  • * 영어에서 간단한 예를 보겠습니다. “다음 교차로에서 오른쪽(right)으로 방향을 바꾸세요.(Turn right at the next junction.)”와 “당신이 맞습니다.(You are right.)”는 완벽한 문장(진술)입니다. ‘right’라는 낱말은 두 문맥에서 매우 다른 의미입니다.

  • * 띠삐따까 숫따에 대한 이들 번역자들은 팔정도를 기르는 맥락에서 앗사-사(assāsa)와 빳사-사(passāsa)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나-빠-낫사띠까타- ㅡ 빠띠삼비다-막가에 있는 자세한 설명

 

11. 띠삐따까(Tipitaka)내에 있는 주석인 ‘빠띠삼비다-막가(Paṭisambhidāmagga)’의 아-나-빠-낫사띠까타-(‘1.3. Ānāpānassatikathā’)에는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 * 이 상세한 설명을 번역하는(또는 번역해서) 책을 쓸 수도 있습니다!

 

요약

 

12. 필자가 다른 포스트를 쓰지 않고도 정당성을 밝히는데 충분한 정보를 제공했기를 바랍니다.

 

  • * 그러나, 위와 동일한 순서가 아니더라도 필자는 더 자세한 내용을 제공하겠습니다. 위의 일부 섹션들은 추가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 * 그 동안에, 토론 포럼에 개시된 새로운 주제인 Posts on ‘Elephants in the Room에 여러분의 의견/질문을 게시해 주세요.

  • * 또한 이전 서브섹션인 ‘띠삐따까의 직역(Direct Translation of the Tipiṭaka)’에 있는 포스트들에 대한 의견/질문도 위 새로운 주제에 게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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