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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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로-다와 와야 ㅡ 서로 다른 두 개념

 

원문: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Nirodha and Vaya – Two Different Concepts’ 포스트

 

니로-다(Nirōdha)는 미래 결과가 일어남을 멈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2022년 12월 1일 개정; 2023년 1월 5일 개정(#9)

 

1.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의 닙바-나(Nibbāna, 열반)에서는 생각이 멈춘다고 믿으며, 생각을 멈추려고 노력하는 여러 불교 그룹들이 있습니다. 즉, 그들은 붓다께서 생각을 멈추는 법을 45년 동안 사람들에게 가르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은 대승불자들이 닙바-나(열반)를 해석하는 것보다 닙바-나(열반)를 훨씬 더 해롭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 * 우리가 깊이 잠들거나 무의식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때에 우리가 아라한과를 얻는다는 것일까요?

  • * 붓다께서는 우리에게 부도덕한 생각을 멈추고 도덕적 사고를 고취시키라고 권하셨습니다. 그것이 마음을 정화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수행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나-빠-나는 무엇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진실을 말하면, 아라한들은 마음이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은 지극히 맑고 순수합니다. (아라한이 되면) 사실, 실제로 기억력이 향상됩니다.

  • * 모든 생각을 멈추면 지각과 기억이 상실될 수도 있습니다.

 

2. 닙바-나(Nibbāna, 열반)에 대한 많은 오해는 붓다께서 사용하셨던 결정적으로 중요한 빠알리 낱말의 참된 의미가 오해되기 때문에 생깁니다. ‘닙바-나(열반)의 개념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대승 선조들이 순야-따(suñyāta, 공)의 개념을 어떻게 왜곡했는지’에 대해 검토한 바 있습니다. ‘순야-따(또는 순냐-따)(텅빔/공)는 무엇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3.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여러 핵심 낱말은 조그만 변화도 없이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오해의 대부분은 그런 핵심 빠알리 낱말이 오해되고 또한 잘못 번역되기 때문에 생깁니다. 붓다(Buddha)의 가르침은 마-가디(Māghadhi)어로 설해져 빠알리(Pāli)어 ( Pāli는 ‘정렬, 정돈’을 의미)에서 구두 전승에 적합한 형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산스크리트어 번역본을 원본으로 사용하고 그 산스크리트 낱말을 해석하려고 할 때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4. [잘못 번역되고 잘못 해석된] 핵심 낱말 중의 세 낱말은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닛짜, 둑카, 아낫따 - 잘못된 해석’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잘못 번역되고 잘못 해석된] 다른 3가지 핵심 낱말로서 니로-다(nirōdha), 카야(khaya) 및 와야(vaya)가 있습니다. 이 세 낱말은 유사하지만 매우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이 낱말들의 기원을 살펴보겠습니다.

 

  • * 니로-다(nirōdha)는 ‘니르(nir)’와 '우다야(udaya)'가 합해져 나온 용어입니다. 여기서, '니르(nir)'은 ‘멈춤’을 의미하고 ‘우다야(udaya)’는 ‘일어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니로-다(nirōdha)’는 어떤 것이 ‘일어남을 멈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는 모든 것은 하나 이상의 원인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따라서, 어떤 것이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의 원인을 제거해야 하며, 그러면 그것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 * 산(saṅ)은 상카-라(saṅkhāra)를 통해 일어나는 세상 모든 것의 원인이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러나 발생하는 모든 것은 쇠퇴의 자연 법칙에 따르는데, 이것(쇠퇴함)이 카야(khaya)입니다.

  • * ‘산(saṅ)’과 ‘카야(khaya)’는 함께 갑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의 의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빠알리(pāli)어 또는 싱할라(sinhala)어에서 상크야-(saṅkhyā)는 수(산술)를 의미하고, 산(saṅ)은 더함(또는 곱함)을 의미하고, 그래서 ‘구축 또는 발생’ 의 원인이 됩니다. 카야(khaya)는 뺌(또는 나눔)을 의미하고, 그래서 ‘쇠퇴 또는 파괴’ 로 이끕니다.

  • * 이 ‘발생’과 ‘파괴’를 겪는 것을 ‘상카따(saṅkhata)’라고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상카따(saṅkhata)’입니다.

 

5.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saṅkhata, 상카따)은 그것이 일어나기 시작한 순간부터 쇠퇴하기(khaya, 카야)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아기가 태어났을 때 아기 몸에 있는 모든 세포는 몇 달 후에 죽을 것이지만, 죽은 세포보다 더 많은 세포가 생겨납니다. 그 아기가 약 20세의 젊은 사람이 될 때까지는, 주어진 시간에 죽은 세포보다 더 많은 세포가 생겨나서, 아기가 젊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약 40세가 될 때까지 (죽은 세포와 생겨난 세포가) 거의 균형을 이루고, 그 이후에는 카야(khaya) 과정이 지배적으로 시작되어 사람은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 사람은 죽게 됩니다. 이것이 ‘와야(vaya)’입니다.

 

  • * 일단 일어나기 시작하면, 상카따(saṅkhata)는 멈춰질 수 없습니다. 그것(상카따)은 자연적 성장과정을 겪게 되고, 겉으로 보기에 성장의 정지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한순간도 정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것(상카따)은 파괴됩니다. 누군가 자살을 하면 이 [육체의] 삶은 끝나겠지만, 남아 있는 에너지(바와 또는 바왕가의 에너지)는 즉각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처음부터]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뿐입니다.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상카따(saṅkhata)를 멈추는 이것을 니로-다(nirōdha)라고 합니다.

 

6. 상카따(saṅkhata)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고, 산(saṅ)으로 인해 생겨났으며, 필연적으로 쇠퇴(khaya, 카야)하고, 결국 파괴(vaya, 와야)됩니다. 모든 유정체도 상카따(saṅkhata)고, 산(saṅ)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아윗자-, avijjā) 갈애(땅하, tanha)로 이 세상 것들에 매달리므로, 상카-라(saṅkhāra)를 통해 산(saṅ)을 축적합니다. 땅하(tanha)에 대해서는 ‘땅하- ㅡ 탐함과 미워함과 미혹함을 통해 어떻게 들러붙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우리의 마음에서 점차적으로 로-바(lōbha, 탐함), 도-사(dōsa, 성냄), 모-하(mōha, 미혹함)를 제거함으로써 땅하-(tanhā, 갈애)와 아윗자-(avijjā, 무명)를 제거할 때, (세상을) 명료하게 보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또한 그런 번뇌(아-사와, āsava)의 카야(khaya) 과정이며, 이로써 우리는 점차적으로 마음에서 이 세 가지 번뇌(아-사와, āsava)를 제거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닙바-나로 가는 방법 ㅡ 아-사와의 제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마음이 순수할 때(즉, 모든 번뇌가 제거될 때), 어떤 상카-라(saṅkhāra)도 행하지 않으므로 상카따(saṅkhata)가 발생할 수 없습니다. 그 단계에서, 그 유정체는 미래의 모든 형성(일어남)에 대한 니로-다(nirōdha)를 얻었습니다. 즉, 닙바-나( Nibbāna)를 달성한 것입니다.

 

7. 이제 삼장(띠삐따까, Tipiṭaka)에서 잘 알려진 구절을 들어, 그 의미가 어떻게 쉽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지 보겠습니다.

 

  • * 세 번째 성스런 진리는 ‘둑카 니로-다 삿짜(dukkha nirōdha sacca)’입니다(여기서 ‘sacca’는 ‘sachcha’로 발음되고, ‘sacca’는 진리임). 즉, 그 괴로움은 일어남이 멈춰질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둑카 니-로다 삿짜’를 ‘존재하는 괴로움(고통)이 멈춰질 수 있다’라고 잘못 해석합니다. 우리의 현재 삶은 이전의 원인에 의해 야기된 상카따(saṅkhata)입니다. 이 삶과 그리고 관련된 모든 괴로움(고통)은 멈춰질 수 없으며 죽을 때까지 그 자연적 원인을 겪어야 합니다. 이것이 아라한(붓다 포함)이 과거 업(과거 원인)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괴로움(고통)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 * 그러나, 아라한은 미래 괴로움(미래 고통)이 일어나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니로-다(nirōdha)의 또다른 의미가 이것을 가리키고 있는데, 니로-다(nirōdha)는 ‘ni’와 ‘rōda’의 합성어이며, 여기서 ‘로-다(rōda)’는 바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니로-다(nirōdha)는 또한 ‘윤회(sansaric) 과정에서 바퀴를 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따라, 늙음, 병 및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몸을 가지는 재탄생이 없습니다. 그래서, 닙바-나(Nibbāna)는 ‘미래 괴로움(고통)을 가져올 수 있는 원인을 제거함’입니다.

 

8. 위과 같은 이유 때문에 닙바-나(Nibbāna)는 ‘사우빠디세사 닙바-나(saupadisesa Nibbāna, 유여열반)’와 ‘아누빠디세사 닙바-나(anupadisesa Nibbāna, 무여열반)’라는 두 종류입니다.

 

  • * 어떤 사람이 닙바-나(Nibbāna)를 얻을 때, 그 사람은 31영역 세상에 아직 살고 있으므로 ‘사우빠디세사 닙바-나(saupadisesa Nibbāna, 유여열반)’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아직 자연적 파괴를 겪어야 할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한번에 7일까지 ‘니로-다 사마빳띠(nirōdha samapatti, 멸진정)’에 들어가서 열반의 지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 * 그 사람이 죽을 때, 더 이상의 재탄생이 없고 닙바-나(Nibbāna, 열반)가 완결됩니다. 이 닙바나(열반)의 완결 상태를 ‘아누빠디세사 닙바-나(anupadisesa Nibbāna, 무여열반)’라고 하며, 괴로움(고통)이 영구히 끝납니다.

 

9. 마지막으로, 31영역 세상의 모든 것이 상카따(saṅkhata)는 아닙니다. 모든 것은 ‘담마-(dhammā)’로 나타내며, ‘담마-(dhammā)’는 상카따(‘상카라’는 그 자체가 ‘상카따’임)와 나-마곳따(nāmagotta)를 포함합니다. 나-마곳따(nāmagotta)는 정신계에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모든 사건(경과)의 기록이며, 이것만이 세상(31영역)에서 참으로 영원한 것입니다. ‘담마-와 상카-라 사이의 차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것이 바로 붓다께서 마지막으로 ‘vayadhammā saṅ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ā’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이는 ‘모든 죽게 되어 있는 담마-가 상카-라(또는 상카따)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노력하여 산(saṅ)을 밝혀 식별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삼빠-데타-(sampādethā)는 'saṅ + pa + detha'로 합성된 용어입니다. ‘Parinibbāna Sutta (SN 6.15)’을 참조하세요.

  • * 시작없는 때부터 우리 모두는 오래된 상카따(saṅkhata)가 파괴될 때마다 새로운 상카따(saṅkhata)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행위를 삶의 과정(사는 동안)과 재생연결시(죽을 때)에 무수히 반복해 왔습니다. 우리는 브라흐마-(Brahmā, 범천)나 데와(deva, 천신)나 인간이었을 때가 있었지만, 사악처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반열반에 드실 때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그렇게 많은 고난으로 가득차 있는 이 무의미한 윤회 과정을 멈추고, 닙바-나(Nibbāna, 열반)에서 영원한 행복을 얻으라’고 권고하셨습니다.

  • * 그런데, 닙바-나(Nibbāna, 열반)는 원인으로 인해 형성되지(일어나지) 않는 유일한 ‘실재(엔티티)’입니다. 그것은 원인이 없기 때문에 아상카따(asaṅkhata)입니다. 아상카따(asaṅkhata)는 ‘a + saṅkhata’로 합성된 용어이며, ‘상카따가 아닌’ 또는 ‘조건지어지지 않은’의 뜻입니다. 닙바나에는 원인으로 인해 일어나는 모든 것의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도달됩니다. 즉, 상카따(saṅkhata)의 니로-다(nirōdha)가 자동적으로 닙바-나(Nibbāna)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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