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google":["PT Serif","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Nanum Barun Gothic"]}


니라-미사 수카


원문 :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Nirāmisa Sukha’ 포스트

- 2017년 9월 15일, 2018년 7월1일 개정


1. 잃어버린 붓다 가르침의 또 다른 매우 중요한 측면은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의 중요성입니다.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하고, 성냄을 포기하고, 담마를 배워 미혹함을 포기할 때 행복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포기에 의한 행복을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라고 불립니다. 이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는 담마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한 부분입니다.


2. 오늘날 우리가 가지는 다른 오도된 인식과는 달리, 붓다께서는 ‘아-미사 수카(āmisa sukha, 감각적 즐거움)를 가져서는 안된다’고는 결코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집착하는 유일한 이유는 접하여 즐길 수 있는 감각적 즐거움 때문입니다.


* 붓다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러한 감각적 즐거움은 일시적이며,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재산을 물려받아 전 생애를 호화롭게 산다고 하더라도, 다음 생 또는 다음 생들에서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진짜 괴로움(dukkha)은 사악처(apaya, 가장 낮은 4개 영역)에 있습니다.

*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는 괴로움이 없는 곳에 나타납니다.

* 니라-미사 수카는 어떤 사람이 삶 내내 만성 두통으로 시달렸는데, 어느 시점에서 그 두통이 없어졌을 경우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 어떤 면에서, 우리는 모두 자각조차 못하는 기본적인 ‘만성 두통’을 겪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으며 ‘더 나은 상태’가 있음을 깨닫지도 못합니다.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로 스트레스가 감소된 것을 느끼기 시작할 때만 (‘더 나은 상태’가 있다는)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더 높은 단계의 닙바-나(Nibbāna)를 얻으려고 시도하기 위한 ‘정말로 고무적인 깨달음’입니다.


3.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는 우리 모두가 누리는 감각적 즐거움, 즉 아-미사 수카(āmisa sukha)와 비교하여 차원이 다릅니다. 그것은 또한 선정의 즐거움(Jhanic pleasure)과도 질적으로 다릅니다. 명상가들이 잘 아는 것처럼 선정의 즐거움은 감각적 즐거움보다 나은 차원입니다.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는 감각적 즐거움보다 훨씬 더 나은 차원입니다.


* 아-미사 수카(āmisa sukha, 감각적 즐거움)와 선정의 즐거움은 일시적이며, 오래가지 않습니다.

*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는 성스런 8가지 길(출세간 팔정도)를 시작하자마자 증가하기 시작하고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서 영속화됩니다. 더구나 아라한 단계까지 이 모든 진보는 바로 이 생에서 성취될 수 있습니다.


4.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는 ‘(진정한 이해없이) 그냥 어떤 것을 단지 포기’하거나 모든 것을 남겨 두고 은둔하는 것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진정한 이해없이 그냥 어떤 것을 단지 포기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오해입니다.


* 붓다께서는 누구에게도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드시) 포기하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정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소따빤나(수다원) 단계를 얻고 아나가미(불환자) 단계까지 이른 부유한 사람들도 있었고 왕들도 있었습니다.

* 모든 것을 포기하지는 않아도 됩니다. 보시할 때에도 자신과 가족의 생활을 위해 충분한 양이 남아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은 보시하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5. ‘세상 것들을 포기하는 것’은 이 세상의 실제 본질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통해 이루어져야합니다. (붓다 재세시에)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 것들을 포기하고 출가자가 되었지만, 세상 것들에 대한 갈망이 결실없고 실속없다는 것을 보았을 때에만 출가하였습니다.


6. 무엇을 받아들이기 전에 어떤 유익함이나 즐거움을 보아야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의 본질입니다.


* 누군가 자신의 마음이 어떤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하도록 강제할 수 있지만, 그렇게 강제해서는 그 포기 상태가 오래 유지될 수 없습니다. 담마를 오해하는 무지에서 그렇게 포기하려고 힘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로는 결국 불만족한 상태로 끝나고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하려는 노력도 그만두게 됩니다.

* (아-미사 수카를 포기하기 위해서는) 마음은 ‘아-미사 수카(āmisa sukha, 감각적 즐거움)와 비교하여 더 나은 선택(옵션)이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길(팔정도)을 가기 시작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기 시작할 때 점차적으로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7. 붓다께서는 이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의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하셨습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바다 건너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설 때 새장에 갇힌 새를 함께 가져갔습니다. 도중에 난처하게 되거나 그들이 육지에 가까이 있는지 어떤지를 알고 싶을 때, 새를 풀어 주었습니다. 새는 날아다니다가 육지를 발견하지 못하면 배로 되돌아 올 것입니다.


* 마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아-미사 수카, āmisa sukha)보다 더 좋은 것이 아니라면, 뭔가 새로운 것(니-라미사 수카, nirāmisa sukha)에 달라붙지 않을 것입니다.

* 독자인 Siebe가 보여준 대로(2018-06-30), #6, #7의 요점은 ‘Cūḷadukkhakkhandha Sutta (MN 14)’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합당한 번역은 ‘14. Lesser Discourse on the Stems of Anguish ( https://legacy.suttacentral.net/en/mn14 )’에서 볼 수 있습니다.


8. 하지만, 처음에는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가 눈에 뛸 정도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흐려진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깨끗이 하는 데는 얼마간 시간이 걸립니다.


* 그것은 요즘에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 시작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기술 개발에만 머물도록 일치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중들이 그 기술을 통한 이득을 일단 알게 되면, 날아오르게 됩니다.

( http://en.wikipedia.org/wiki/Technology_life_cycle 참조 )

* 그러나 신기술과는 달리,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는 증가하기 시작하면, (소따빤나_수다원 단계에 도달한 후에는) 결코 내려가지 않습니다.

* 소따빤나(Sotapanna, 수다원) 단계와 이어지는 다른 세 단계에서 ‘양자 점프(순간적인 큰 변화)가 일어나며, 이 중 마지막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서 완전하고 영구적으로 됩니다. 그러나 아라한조차도 과거의 깜마(업)에 의한 깜마 위빠까(kamma vipaka)를 겪게 될 것이며, 그 생이 끝날 때까지는 여전히 고통을 야기하는 육체적 우환(질병 등)을 갖게 될 것입니다.


9. 아-미사 수카(āmisa sukha)와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의 차이점은 ‘Nirāmisa Sutta (Samyutta Nikaya 36.31)’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 위 경(Sutta)은 다른 여러 언어로 번역된 것과 함께 ‘영어 번역’과 ‘싱할라어 번역’을 ‘Sutta Central site’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s://suttacentral.net/ 사이트에서는 경전 대부분을 볼 수 있으므로 유용합니다.

    • * 그러나, ‘Sutta Central site’에서도, 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ce)으로 잘못 번역하고 아낫따(anatta)를 무아(no-self)로 잘못 번역한 것을 포함하여, 많은 주요 빨리(Pāli) 용어가 잘못 번역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google":["PT Serif","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Nanum Barun Gothic"]}{"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Nanum Barun Gothic"]}
{"google":["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