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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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가지 근본원인 - 로까 사무다야(괴로움의 발생)와 로까 니로다야(열반)

 

원문(첨부파일) : Living Dhamma 섹션의 ‘Six Root Causes – Loka Samudaya (Arising of Suffering) and Loka Nirodhaya (Nibbāna)’ 포스트

2018년 6월 19일; 2018년 12월 23일 개정; 2021년 6월 3일 재작성

 

로-까 사무다야(Lōka Samudaya)는 ‘전체 새로운 세계의 생성’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죽고 다시 태어날 때, 그것은 ‘그 사람이 새로운 세상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재탄생 과정의 멈춤은 로-까 니로-다야(lōka nirōdhaya)이며, 그것은 닙바-나(Nibbāna)와 동일합니다.

 

‘사무다야’와 ‘니로-다야’의 의미 

 

1. 로-까 사무다야(Lōka Samudaya, Samudaya = san + udaya)는 괴로움이 가득한 ‘이 세상’이 일어나는 것을 뜻하고, 로-까 니로다야(Lōka nirōdhaya, nirōdhaya = nir + udaya)는 ‘이 세상’이 영구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이 세상’은 31영역으로 이루어진 더 넓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 * 그러나,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빠알리어든 어떤 언어든) 낱말의 의미는 문맥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로-까 사무다야(lōka Samudaya)는 ‘전체 새로운 세계/우주의 생성’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함축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를 통한 명료한 설명

 

2. 데와(Deva, 천신)가 죽고 브라흐마(Brahma, 범천)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가정해 보세요. 데와(천신)의 세계는 브라흐마(범천)의 세계와는 매우 다릅니다. 데와는 6가지 감각 경험을 모두 경험할 수 있지만, 브라흐마는 맛, 냄새, 육체 접촉을 경험할 수 없으며, 따라서 브라흐마 로까(Brahma loka)에는 음식, 향기, 및 고형의 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데와가 죽으면 그것은 그의 데와 세계의 끝이며, 이제 그는 완전히 다른 브라흐마 세계에 태어납니다.

 

  • * 그 데와(천신)에게 죽음이 왜 끝이 아닐까요? 그것은 그 ‘생명 흐름(lifestream)’이 깜마 에너지(깜마 비자, kamma bija)를 축적하고 있으므로, 브라흐마 바와(Brahma bhava) 뿐만 아니라 미래에 더 많은 바와(bhava)를 시작하기 때문에 끝이 아닙니다. 그래서, 브라흐마(범천)가 미래에 죽을 때 그는 동물 영역을 포함하여 다른 영역에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수십억의 인구에 비교해 볼 때, 이 지구에는 그 인구의 무수한 배의 동물이 있습니다(개미의 수는 수조입니다). ‘Rebirth – Connection to Suffering in the First Noble Truth’의 #2를 참조하세요.

  • * 그 예는 다음을 설명합니다. (i) 재탄생 과정 중에, 한 영역의 자신의 세계는 주기적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미래에도 많은 영역들 중에 존재(바와, bhava)를 유지/존속시키는 축적된 바와(bhava) 에너지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ii) 그 과정은 아윗자-(avijjā) (그리고 땅하-, taṇhā)가 흔적도 없이 제거될 때, 즉 아라한 단계에 도달했을 때에만 끝날 것입니다. 그 존재(아라한)의 마지막에, 그 ‘순수한 마음’은 새로운 바와(bhava)를 움켜잡지(upādāna, 우빠-다-나) 않을 것입니다. ‘우빠-다-나와 우빠-다-낙칸다의 개념’( ‘Concepts of Upādāna and Upādānakkhandha’ ) 서브섹션의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 * 또 다른 매우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재탄생이 가장 낮은 네 영역(apāyā, 아빠-야-)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재탄생 과정에서 최종 결과(전체적 결과)가 고통/괴로움인 이유입니다.

  • * 그러므로, 로-까 사무다야(lōka Samudaya)는 새로운 바와(bhava) (업 에너지)의 축적을 의미합니다. 로-까 니로-다야(Lōka nirōdhaya)는 닙바-나(Nibbāna, 열반)를 의미합니다.

 

붓다 담마에서 원인과 결과 ㅡ 빠띳짜 사뭅빠-다

 

3. 위 #2에 있는 예는 ‘생명’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을 제공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이 생만을 생각하며 사는 경향이 있으며, 우리가 죽은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염려하지 않습니다. 위의 부처님의 세계관은 다음과 같은 다른 두 세계관과는 다릅니다. (i) 다른 모든 주요 종교에서는 사후에 영원히 행복한 곳(천국)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ii) 유물론자(또는 무신론자)는 죽음이 끝이며 닙바-나(열반)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믿습니다. ‘담마와 과학’ 카테고리의 ‘생명의 기원’ ( ‘Origin of Life’ ) 을 참조하세요.

 

  • * 그러나 붓다 담마는 원인과 그 원인의 결과에 기초합니다. 주어진(특정) 유정체(중생)에게 세상이 일어나는 원인(hētu, 헤뚜)이 있는 한, 그 유정체(중생)는 반복해서 재탄생합니다. 그 재탄생 과정 동안, 인간 영역 이상의 ‘좋은 영역’에서 경험하는 어떤 일시적인 행복보다 아빠-야-(apāyā, 악처/사악처)에서 훨씬 더 많은 고통/괴로움을 겪습니다.

  • * 그 원인들(로-바_lōbha, 도-사_dōsa, 모-하_mōha)을 제거하면, 재탄생 과정이 중단되고, 고통/괴로움에서 벗어나고 닙바-나(Nibbāna, 열반)에 도달하게 됩니다.

 

닙바-나는 무엇인가?

 

4. 궁극적인 답은 아비담마(Abhidhamma)에 있는 다음 설명에 있습니다. ‘궁극 실재’로 축소하여 말하면, 찟따(citta), 쩨따시까(cetasika), 루빠(rupa), 및 닙바-나(Nibbāna)라는 4가지만 있습니다.

  

  • * 처음 세가지는 31영역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에 속합니다. 닙바-나(Nibbāna)는 이 세상에 속하는 어떤 것도 지니지 않습니다.

  • * 닙바-나(Nibbāna)에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은 많은 숫따(sutta)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닙바나는 존재하지만, 이 세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31영역에서 생명은 6가지 근본원인으로 인해 생긴다

 

5. 세상을 일어나게 하는 근본원인(물-리까 헤-뚜, mūlika hētu)은 6가지가 있으며, 로-바(lōbha, 탐함), 도-사(dōsa, 미워함/성냄) 및 모-하(mōha, 10가지 유형의 잘못된 견해를 가짐)와, 아로-바(alōbha, 탐함 없음), 아도-사(adōsa, 미워함/성냄 없음), 및 아모-하(amōha, 모-하가 없음)가 그것입니다. 후자 3가지는 단지 표면적으로 그런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아로-바(alōbha), 아도-사(adōsa), 아모-하(amōha)의 평범한(세간) 버전입니다.

 

  • * 로-바나 도-사나 모-하 중의 하나 이상이 작용할 때, 네 가지 악처로 재탄생되게 하는 깜마 씨앗(깜마 삐-자, kamma beeja)이 생성됩니다. 달리 말하면, 나쁜 강성상카-라(아뿐냐 아비상카-라, apunna abhisankhāra)가 생기고, 이어서 나쁜 윈냐-나(viññāna) 등이 생겨서, 나쁜 바와(bhava)와 나쁜 태어남(자-띠, jāti)으로 이어지게 됩니다.(연기, Paticca Samuppada 섹션의 항목을 참조하세요)

  • * 같은 식으로, 평범한(세간) 아로-바나 아도-사나 아모-하 중의 하나 이상이 인간계 이상의 선처로 재탄생되게 하는 깜마 씨앗(깜마 삐-자, kamma beeja)을 생성합니다. 거기서는, ‘좋은 윈냐-나(viññāna)’ 등으로 좋은 강성상카-라(뿐냐 아비상카-라, punna abhisankhāra)가 생기고, 그것은 좋은 바와(bhava)와 좋은 태어남(자-띠, jāti)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궁극적 실재에서 ‘좋은 영역’은 없다

 

6. 그러나, 인간계 이상의 그 좋은 영역(선처)도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늙음과 죽음은 모든 영역에서 불가피합니다. 

 

  • * 또 다른 관점에서 그것을 살펴보면, 3가지 근본 원인의 두 세트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동전의 한 면만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 (아나가미/아라한 단계에 더 가까워져) 사성제를 정말로 이해할 때에만, ‘이 세상’의 어떤 영역에 태어나는 것이 무익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 그 때문에 길을 순차적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불자는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로-바, 도-사, 모-하는 아빠-야(악처)에 태어나게 한다 ㅡ 평범한(세간) 아로-바, 아도-사, 아모-하는 좋은 영역(선처)에 태어나게 한다 

 

7. 로-바(lōbha, 탐함), 도-사(dōsa, 성냄), 및 모-하(mōha, 미혹함)는 아빠-야-(apāyā, 악처/사악처)로 가게 하는 음식(아-하-라, āhāra)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낄레-사(kilēsa, 오염원)라고 합니다. 그것은 아빠-야-(악처)에 태어나게 하는 깜마 씨앗(깜마 삐-자, kamma beeja)을 생기게 하는 음식이라는 뜻입니다.

 

  • * 같은 식으로, 평범한(세간) 아로-바(alōbha, 탐함 없음)는 인간(manussa, 마눗사)계와 천신계(deva realm)로 가게 하는 음식(아-하-라, āhāra)입니다.

  • * 아로-바(alōbha, 탐함 없음)와 아도-사(adōsa, 성냄 없음)의 평범한(세간) 버전은 범천계(brahma realm)으로 가게 하는 음식(아-하-라, āhāra)입니다.

  • * 아로-바(alōbha, 탐함 없음)와 아도-사(adōsa, 성냄 없음)에는 모두 어떤 레벨의 아모하(amoha)가 포함되어 있지만, (사성제를 이해함에 따라 오는 지혜인) 빤냐(paññā)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 * 그러나, 아모-하(amōha)는 쩨-따시까(cētasika, 정신요소)가 아닙니다. 그래서, 팔정도에서 기르는 것은 빤냐- 쩨-따시까(paññā cētasika)입니다. 빤냐-(paññā)는 아라한 단계에서 최적화됩니다.

 

평범한(세간) 아모하가 있는 모든 6가지 근본 원인은 재탄생 과정(윤회)가 계속되게 한다

 

8. 6가지 근본원인은 모두 재탄생 과정을 계속되게 합니다. 그러나 재탄생 과정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나쁜 근본원인 3가지(로-바, 도-사, 모-하)만 없애면 됩니다(그리고, ‘빤냐-_paññā’를 기르면 됩니다). “rāgakkhayō Nibbānan, dōsakkhayō Nibbānan, mōhakkhayō Nibbānan”는 ‘탐함을 없애고, 성냄을 없애고, 미혹함을 없애는 것이 열반’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Sāmaṇḍaka Sutta – SN 39.1’를 참조하세요.

 

  • * 열반(닙바-나)에 이르는 길은 3가지 부도덕한 근본원인(뿌리)을 줄이고 3가지의 평범한(세간) 도덕적 근본원인(뿌리)과 빤냐-(paññā)를 기르는 것을 포함합니다.

  • * 열반을 얻기 위해서는 선처에 있어야 하므로, 우선 악처에 태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나쁜 근본원인 3가지(로-바, 도-사, 모-하)는 악처에 태어날 수 있게 하므로, 또한 낄레사(kilēsa, 오염원)라고 부릅니다.

  • * 선처(특히, 인간계)에 일단 태어나면, 성자(아리야)로부터 성스런 진리들을 배울 수 있고, 충분히 공부/수행하여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점진적으로 평범한(세간) 아모하(amoha)에서 빤냐-(paññā)로 상승시킵니다.

 

빤냐-는 평범한 아모하가 아니다 ㅡ 그것은 성스런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9. 평범한(세간) 아모하(amoha)는 로바(탐욕, lobha)와 도사(증오/분노, dosa)가 없는 것뿐입니다. 더 깊은 (로꼿따라/출세간, lokottara) 아모하(amoha)는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 또는 틸락카나를 이해하는 것과 동일)를 이해하는 빤냐-(paññā, 지혜)입니다. 그 세 가지(사성제/연기/삼특상) 중 하나를 이해하면 다른 두 가지도 이해합니다.

 

  • * 네 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를 이해할 때, ‘좋은 영역’에 태어나려는 갈망도 잃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닛짜(anicca) 특성/본질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또한 (‘아윗자-_avijjā’가 있는) 다양한 유형의 상카-라(saṅkhāra)를 육성하는 것이 어떻게 31영역 중의 하나에 태어남으로 이어지는지를 참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 * 아라한 단계에서 빤냐-(paññā, 지혜)가 최적화될 때, 그 마음은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에서 어떤 재탄생으로 이끄는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upādāna paccayā bhava)’ 단계를 거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빠-다-나와 우빠-다-낙칸다의 개념’( ‘Concepts of Upādāna and Upādānakkhandha’ ) 서브섹션의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 * 그것은 팔정도의 마지막 8번째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 정정)를 완성하면 (‘빤냐-_paññā’가 최적화될 때) 삼마- 냐-나(Sammā Ñāna, 바른 앎) 단계에 이르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삼마- 위뭇띠(Sammā Vimutti, 바른 해탈)를 얻습니다. 즉, “dasa angehi samannāgatō Arahant”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 * 로꼿따라 아모하(lokottara amoha)를 논의하기 전에, 6가지 근본 원인을 좀 더 논의해 보겠습니다.

 

모하와 평범한(세간) 아모하는 모든 보통 인간(뿌툿자노)에게 일어난다

 

10. 생각은 (평범한/세간 아모하에 기반한) 좋은 근본원인 3가지나 (모하에 기반한) 나쁜 근본원인 3가지와 함께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 * 도덕적 행위(뿐냐 깜마, puñña kamma)는 평범한(세간) 아모하(amoha)로 행해지고 뿐냐 아비상카라(puñña abhisaṅkhāra, puññābhisaṅkhara)를 수반합니다. 부도덕한 행위(빠-빠 깜마, pāpa kamma)는 모하(moha)로 행해지고 아뿐냐 아비상카-라(apuñña abhisaṅkhāra, apuññābhisaṅkhara)를 수반합니다.

  • * 뿐냐 깜마-(puñña kammā)는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위빠-까(vipāka)를 가져옵니다. 빠-빠 깜마-(Pāpa kammā)는 스트레스가 쌓인 마음으로 이어지고 나쁜 위빠-까(vipāka)로 이어집니다.

  • * 보통 사람에게 아윗자-(avijjā)는 평범한(세간) 아모하(amoha)와 함께 하더라도 아누사야(anusaya)로 (숨겨져) 남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행한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엄밀히 말할 때 꾸살라 깜마(kusala kamma)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일어나는 뿐냐-비상카라 (puññābhisaṅkhara)에 속합니다.

 

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에 있는 ‘꾸살라-물라 빳짜야- 상카-라’

 

11. 누군가 성스런 진리를 따르기 시작할 때, 그 아윗자- 아누사야(avijjā anusaya)는 단계적으로 제거됩니다. 그래서, 적어도 어떤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실제로는  꾸살라 깜마(kusala kamma)가 됩니다.

 

  • * 그것이 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의 상카-라(saṅkhāra) 유형이 ‘꾸살라-물라 빳짜야- 상카-라(kusala-mula paccayā saṅkhāra)’인 이유입니다. 따라서 그런 상카-라(saṅkhāra)는 ‘꾸살라 상카-라(kusala saṅkhāra)’라고 말해도 됩니다. 

  • * 꾸살라(kusala)는 ku(꾸)와 sala(살라)의 합성어이며, 부도덕함(ku)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모든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는 아로-바(alōbha, 탐함 없음), 아도-사(adōsa, 성냄 없음), 및 아모-하(amōha, 미혹함 없음)라는 3가지 좋은 근본원인을 수반하며, 성스런 진리를 이해함과 함께 합니다.

  • * 알다시피,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ara)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의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 하에서 나옵니다. ‘상카-라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에서는 모든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꾸살라 깜마(kusala kamma)입니다. 그러나 아라한(Arahant)은 오염원/번뇌가 없으므로, 다루어지는(작용하는) 아꾸살라(akusala)가 없습니다. 따라서, 아라한이 행하는 모든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업력이 없는 좋은/선한 행위일 뿐인) 뿐냐 끼리야-(puñña kriyā)입니다.

 

뿐냐 깜마-와 꾸살라 깜마 사이의 차이

 

12. 뿐냐 깜마-(puñña kammā)는 더 높은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자비로운 행위입니다. 그러나, 성스런 진리에 대한 어떤 이해가 없이 뿐냐 깜마-(puñña kammā)를 행할 때, 아윗자-(avijjā)가 간접적으로 수반됩니다. 이것을 ‘우빠니사 빳짜야-(upanisa paccayā)라고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별도의] 포스트를 작성하겠습니다. 평범한(세간) 아모-하(amōha)로 행하였더라도 아윗자-(avijjā)가 뿐냐 깜마-(puñña kammā)의 간접적 요인이 됩니다.

 

 

13. 그러므로, 아윗자-(avijjā)를 제거하지 않더라도, 즉, 빤냐-(paññā, 지혜)를 계발하지 않고도 뿐냐 깜마(puñña kamma)를 행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보시하거나 다른 이들을 연민하는 등의 행위를 합니다. 그것이 기억해야 할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 * 10가지 유형의 사견 중의 어떤 것을 가진 자는 어느 누구도 모-하(mōha, 미혹함)를 제거하지 못했으며 빤냐-(paññā, 지혜)를 계발하는 일의 시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보시와 같은) 선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자와나(javana, 속행) 강도는 10가지 유형의 사견을 제거한 사람과 비교하여 볼 때 높지는 않습니다.

  • * 그런데, 꾸살라 찟따(kusala citta, 선한 마음)의 자와나 강도는 세상의 3가지 특성(틸락카나, Tilakkhana)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훨씬 높아집니다. 아비담마에서 말하는, ‘냐-나(ñāna)가 함께 하는 찟따(ñāna sampayutta citta)’의 자와나 강도가 높습니다. 여기서 냐-나(ñāna)는 지혜를 뜻하며, 이 지혜는 성스런 진리/띨락카나/빠띳짜 사뭅빠-다에 대한 이해가 높아짐에 따라 자라게 됩니다.

 

두 가지 팔정도

 

14. 성스런(출세간) 팔정도에 이르기 전에 사람들은 평범한(세간) 팔정도를 따라야 합니다. ‘마하- 짯따-리-사까 숫따(대 40가지에 대한 법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선행은 두 레벨로 행해집니다. 평범한(세간) 팔정도에서는 뿐냐 깜마(puñña kamma)를 행할 수 있습니다. 성스러운 진리를 이해하기 시작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동일한 행위가 ‘꾸살라 깜마(kusala kamma)’가 됩니다. ‘뿐냐 깜마 – 다나, 실라, 바와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다시 말해서,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어느 정도까지 오염되어 있으며, 틸락카나(Tilakkhana)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성스런 길(팔정도)에서 더 강력한 꾸살라 깜마(kusala kamma)가 됩니다.

  • * 예를 들어, ‘평범한(세간) 아-로바(mundane alōbha)’에서, 사람은 어떤 것에 대한 갈망을 잃고 다른 사람들과 그것을 나누고자 합니다. ‘출세간 아-로바(lōkōttara alōbha)’에서는 이 세상 것들의 무가치함을 앎으로써, 갈망을 잃습니다.

 

성스런 진리를 이해할 때까지, 모든 깜마는 재탄생 과정을 존속시킨다

 

15. 가장 도덕적인 보통 사람(뿌툿자노, puthujjano)이라고 해도, 세상의 3가지 특성(틸라카나, Tilakkhana)을 이해함에 따라 3가지 나쁜 근본원인이 마음에서 제거될 때까지 현생이나 내생에서 나쁜 강성상카-라(abhisankhāra)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3가지 나쁜 근본원인은 아누사야(anusaya, 잠재성향)로 감춰져 있다가 적당한 조건하에서 표면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 * 예를 들면, X가 유혹 대상을 접하면, 로-바(lōbha, 탐함)가 함께하는 마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 * 하지만, 다른 때에 X가 굶주린 사람을 보면, 아로-바(alōbha, 탐함 없음), 아도-사(adōsa, 성냄 없음), 및 아모-하(amōha, 미혹함 없음)가 함께하는 마음이 일어나, 그 사람을 돕는 행을 할 수 있습니다.

  • * 아라한 성자는 6가지 근본원인을 모두 제거한 자이지만, 굶주린 사람을 보면 빤냐-(paññā, 지혜)에서 나오는 적절한 행을 합니다. [역자 추가글: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제공하거나 제공하지 않거나 탐-진-치나 불탐-부진-불치에 의한 마음으로는 행하지 않습니다.] 이 행을 ‘끼리야(kriya) 행’이라고 하며, 이는 과보가 없이 ‘작용만 하는 행’입니다.

 

닙바-나 ㅡ 로-바, 도-사, 모-하의 완전한 제거

 

16. 로-바(lōbha), 도-사(dōsa), 모-하(mōha)를 억누르거나 일시적으로 제거하면, 평범한(세간) 수준의 아로-바(alōbha), 아도-사(adōsa), 및 아모-하(amōha)로 이어집니다. 그 때, 그 사람은 사성제(四聖諦)를 이해할 수 있고, 빤냐-(paññā)를 길러 빤냐-(paññā)가 닙바-나의 아라한 단계에서 절정에 달하면, 로-바(lōbha), 도-사(dōsa), 모-하(mōha)가 남김없이 사라집니다.

 

  • * 재탄생 과정(윤회)의 무익함과 위험함을 일단 이해하면,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바라지(기대하지) 않고 '선행'을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닙바-나(열반)를 얻기 위한 기대, 즉 재탄생 과정을 멈추기 위한 기대만으로 ‘선행’을 하게 됩니다.

  • * 그것이 바로 ‘아닛짜(anicca) 특성/본질을 보는 것’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이 세상의 행복을 기대하며(바라며) 우리가 하는 모든 노력은 환상(허상)일 뿐입니다. 그런 모든 노력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와 함께 합니다. 그래서 ‘꾸살라-물라 빳짜야- 상카-라(kusala-mula paccayā saṅkhāra)’로만 행합니다.

  • * 그것이 이해할 핵심 개념입니다. 세 가지 부도덕한 뿌리를 제거하는 평범한(세간) 팔정도가 진전하면서 10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가 제거됩니다. 그 때에,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띨락카나(Tilakkkhana)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고 빤냐-(paññā)가 자라나기 시작하며, 31 영역 중에 재탄생하는 6가지 근본 원인이 모두 줄어들고 사라집니다. 그것이 로-까 니로-다야(lōka nirōdhaya), 즉 닙바-나(Nibbāna, 열반)입니다.

 

요약

 

17. 이 포스트는 길었습니다. 필자는 가능한 한, 많은 핵심 포인트를 포함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고도로 축약되어 있으며, 세부 사항을  파악하려면 링크된 포스트를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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