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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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담마 헤뚭빠바와..'와 '양낀찌 사무다야 담망..'


원문 : Living Dhamma 섹션의 ‘Ye Dhammā Hetuppabhavā.. and yam kińci samudaya dhammam..’ 포스트

2016년 8월 16일


이 포스트에서는 4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 띨락카나(Tilakkhana, 삼법인),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 및 팔정도 사이의 상호 연관성을 보여주는 두 개의 유명한 핵심 구절을 분석할 것입니다. 이것들은 붓다 담마(Buddha Dhamma)로부터 이득을 얻으려면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주요 개념입니다.


“예 담마- 헤뚭빠바와-,

떼상 헤-뚱 따타-가또 아-하;

떼샨짜 요 니로-도-,

에왕와-디- 마하-사마노-

(Ye dhammā hetuppabhavā,

Tesaṃ hētuṃ tathāgato āha;

Tesañca yo nirōdhō,

Evaṃvādī mahāsamaṇō)”


  • * 앗사지 존자로부터 이 구절을 듣는 것만으로, 우빠띳사(나중에 사리뿟따 존자)는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근본 개념이며,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에서 자세히 설명됩니다.

  • * 올바른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재탄생 과정(윤회)을 일으키는 어떤 담마-(dhammā, 실제로는 깜마 삐자_kamma beeja)든, 그 발생 원인을 붓다께서 언명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또한 어떻게 그 원인이 일어나지 않게 멈춰질 수 있는지(그리고, 그래서 윤회를 그치게 할 수 있는지) 설명하셨습니다. "

  • * 먼저, 어떻게 이와 같이 번역하게 되었는지 간단히 논의해 보겠습니다.


1. ‘예 담마-(ye dhammā)’는 ‘그 담마-’를 뜻합니다. 그 구절에서 복합 낱말은 헤뚭빠바와-(hetuppabhavā)입니다. 이것은 ‘헤-뚜(hētu)’와 ‘빠(pa)’와 ‘바와(bhava)’가 조합된 것이며, 각각 ‘원인’, ‘반복된’, ‘존재’를 뜻합니다. 이들이 조합된 것은 ‘헤뚭빠바와-(hetuppabhavā)’로 운이 맞추어 졌습니다. 이렇게 운이 맞추어지는 것은 ‘담마 짝까 빠왓따나(dhamma cakka pavattana)’가 ‘담마짝깝빠왓따나(dhammacakkappavattana)’로 되는 것과 같습니다.


  • * 그래서, 헤뚭빠바와-(hetuppabhavā)는 ‘반복된 탄생으로 이끄는 원인, 또는 재탄생(윤회)을 계속하게 하는 원인’을 의미합니다.

  • * 헤뚭빠바와-(hetuppabhavā)와 빠밧사라(pabhassara) 두 낱말 모두 ‘빠(pa)’와 ‘바(bha)’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Pabhassara Citta, Radiant Mind, and Bhavanga’를 참조하세요.

  • * 그래서, “예 담마- 헤뚭빠바와-(ye dhammā hetuppabhavā)”는 ‘재탄생 과정 또는 상사-라(윤회)를 계속하게 하는 그 담마’를 뜻합니다.


2. 떼상(tesam)은 ‘떼(te)’와 ‘산(san)’이 조합된 낱말이며, ‘로-바(lōbha), 도-사(dōsa), 모-하(mōha)라는 세가지 산(san)’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그 헤-뚜(hētu, 원인)입니다.


  • * 비록 6가지 근본 원인이 있지만, 그 3가지를 제거하면 결국 모두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6가지 근본원인 - 로까 사무다야(괴로움의 발생)와 로까 니로다야(열반)’ 포스트를 보세요.

  • * 물론 ‘산(san)’은 누구나 재탄생 과정(윤회)의 원인이 되는 오염물이며, 기본적으로 그것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입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 중 ‘산(san)’ 서브섹션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래서, “떼상 헤-뚱 따타-가또 아-하(Tesaṃ hētuṃ tathāgato āha)”는 ‘붓다께서는 그 세가지 원인이 무엇인지 언명하셨다’는 의미입니다.


3. 다음 부분인, “떼샨짜 요 니로-도-(tesañca yo nirōdhō, 또는 te san ca yo nirōdhō)”에는 ‘니로-도(nirōdha)’라는 두번째 복합 핵심 낱말이 있습니다.  ‘니로-다(nirōdha)’는 ‘니(nir)’ + ‘우다야(udaya)’로 조합된 것입니다. 여기서 ‘니(nir)’는 ‘멈춤’을 의미하고, ‘우다야(udaya)’는 ‘일어남’을 의미합니다.


  • * 그래서 ‘니로-다(nirōdha)’는 ‘어떤 것이 일어남을 멈춤’의 의미입니다. ‘니로다와 와야 - 서로 다른 두 개념’ 포스트를 보세요.

  • * 니로-다(nirōdha)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씨앗을 파괴함으로써 식물이 생겨나는 것(즉, 존재하게 되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니로-다(nirōdha)란 낱말의 실제 맥락에, ‘씨앗의 생성을 멈추게 함으로써 식물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 멈춰질 수 있다는 것’을 넣어 보세요.

  • * 동일한 방식으로, 미래 존재(바와, bhava)는 부합하는 윈냐-나(깜마 삐자, kamma beeja)의 형성이 멈춤으로써 멈춰질 수 있습니다. 즉, 바와 니로-다(  bhava nirōdha)는 윈냐-나 니로-다(viññāna nirōdha)에 의해 성취됩니다.


4. PS(빳띳짜 사뭅빠-다, 연기)에서 뒤로 더 진행하면, 순서대로 윈냐-나 니로-다(viññāna nirōdha)는 (아비)상카-라 니로-다((abhi)sankhāra nirōdha)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아래도 보세요. 물론, 아비상카-라 니로-다(abhisankhāra nirōdha)는 순전히 의지력으로는 이루질 수 없습니다. 빤냐(panna, 지혜)를 기르고 아윗짜-(avijjā)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것은 틸락카나(Tilakkhana), 즉 결국 난감하게 하는(특히 사악처에 태어났을 때) 이 괴로움(고통)으로 가득한 31 영역 세상에 집착하는 것의 무익함을 이해하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 * 그래서 ‘윈냐-나 니로-다(viññāna nirōdha)’가 ‘아윗짜-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nkhāra)’ 단계에서 시작하는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ticca Samuppāda (PS, 연기)’ 사이클이 개시되지 않는 것으로 이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이제 “떼샨짜 요 니로-도-, 에왕와-디- 마하-사마노-(tesañca yo nirōdhō, evaṃvādī mahāsamaṇō)”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합니다. “붓다, 즉  마하-사마노- (mahāsamaṇō) 께서는 그 오염원이 일어나는 것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셨습니다.”


  • * 윈냐-나 니로-다(viññāna nirōdha)는 아비상카-라(abhisankhāra)의 멈춤을 통해 달성되며, 실천면에서 말하면 다사 아꾸살라를 삼가하는 것에 의해 달성됩니다. 그것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를 통해 몸으로 행해진 3가지 아꾸살라와,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를 통해 말로 행해진 4가지 아꾸살라와,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를 통해 마음으로 행해진 3가지 아꾸살라를 수반합니다.

  • * 상카-라(sankhāra)와 윈냐-나(viññāna) 같은 핵심 낱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Mental Aggregates’ 서브섹션의 포스트를 보세요.

  • * 의식적인 생각이 또한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라는 것을 깨닫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Correct Meaning of Vacī Sankhāra’ 포스트를 보세요. 문제가 되는 중요한 것은 부도덕한 말이나 행동만이 아니라 부도덕한 몽상도 중요합니다.


6. 윈냐-나 니로-다(viññāna nirōdha)를 달성하는 방법은 물론 성스런 팔정도입니다. 성스런 길을 따라 갈 때, 아윗짜(avijjā)가 제거되고  그래서 더 이상 PS사이클이 개시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자-띠 빳짜야- 자라-, 마라나, 소-까….(jāti paccayā jarā, marana, sōka,..’ 단계가 없을 것이며 더 이상 이 단계에 의한 괴로움(고통)이 없을 것입니다.


  • * 뻬따꼬빠데사(Petakopadesa)에서 이 구절은 사성제(cattāri ariyasaccāni)를 표현하는데 사용됩니다. 이제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7. 두 번째 관련 구절인 “양 낀찌 사무다야 담망 삽방 땅 니로-다 담만(yaṃ kiñci samuda­ya­ dhammaṃ sabbaṃ taṃ nirōdha dhamman)”은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pa­vat­ta­na Sutta (SN 56.11)’)에 있습니다.


  • * 번역: “괴로움(고통)을 일으키는 담마-(dhammā), 즉 어떤 ‘사무다야 담마-(samudaya dhammā)가 있다면, 그런 모든 담마-(dhammā)는 (성스런 팔정도를 통해) 일어나는 것을 멈출 수 있다.”

  • * “양 낀찌 사무다야 담망(yaṃ kiñci samuda­ya­ dhammaṃ)”은 ‘결국 괴로움(고통)으로 이끄는 어떤 담마’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삽방 땅 니로-다 담만(sabbaṃ taṃ nirōdha dhamman)”은 ‘그런 모든 담마는 니로-다 담마(nirōdha dhammā), 즉 일어나는 것을 멈출 수 있는 담마’라는 뜻입니다.


8. 그러나 구절을 단지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이 구절에 뿌리박혀 있는 메시지를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 * 지금까지 배운 것으로부터, 사무다야 담마(또는 깜마 삐자)는 윈냐-나(viññāna)에 의해 생성된다는 것을 압니다. 윈냐-나(viññāna)는 오염된 의식(defiled consciousness)으로 번역되는 것이 가장 낫습니다.

  • * 윈냐-나(viññāna)는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로 인해 뒤따라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를 행하는 이유는 아닛짜(anicca) 특성을 모르고 있다는 것, 즉 아윗짜(avijjā)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 * 그것은 빠띳짜 사뭅빠따(paticca samuppāda, 연기)가 말하는 것입니다. 즉, “아윗짜- 빳짜야- 상카-라,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 윈냐-나 빳짜야- 나-마루빠(avijjā paccayā sankhāra, sankhāra paccayā viññāna, viññāna paccayā nāmarupa)”는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 바와 빳짜야- 자-띠(upādāna paccayā bhava, bhava paccayā jāti)”로 이어지고, 이는 “자-띠 빳짜야- 자라-, 마라나,...”로 결국 모든 괴로움(고통)의 덩이가 됩니다.


9. 그래서, 다시 한번 사무다야 담마(samudaya dhamma)가 아윗짜-(avijjā)로 행해진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로 인해 일어나는 ‘오염된 윈냐-나(defiled viññāna)’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를 통해 오염된 윈냐-나(defiled viññāna)를 기르지 않는다면(즉,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행하는 것을 멈춘다면), 모든 유형의 괴로움(고통)으로 이끌게 되어 있는 태어남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유형의 괴로움(고통)은 “자라-(jarā, 늙음), 마라나(marana, 죽음), 소-까(sōka, 불행), 빠리데와(parideva, 불행한 거품이 계속 올라오며 불행의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상태), 둑카(dukkha, 육체적 부상, 질병 등), 도-마나사(dōmanassa, 오래 지속되는 우울증), 우빠-사-야(upāsāya, 기절하거나 자살할 생각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 극한의 괴로움(고통)) 등입니다”.

  • * 위에서 언급한 고통은 주로 인간 영역에 대한 것입니다. 네 개의 가장 낮은 영역(사악처)에 태어난다면, 그것은 훨씬 더 나빠질 것이며, 대부분 육체적 괴로움(고통), 즉 두카(dukha)입니다.


위에서는 깜마 삐-자(kamma beeja, 업 씨앗)의 형성을 멈추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현생와 전생 중에 이미 쌓아 놓은 깜마 삐-자(업 씨앗)는 어떻게 될까요? 그것들은 위빠-까(vipāka, 과보)를 가져와서 괴로움(고통)으로 가득찬 새로운 바와(bhava)와 자-띠(jāti)가 시작되게 하지 않을까요?


10. [위 의문 또는 질문의] 열쇠는 ‘두 번째 기회’를 얻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까마 위빠-까(Kamma vipāka)는 결정적이지 않습니다. 즉, 깜마 삐-자(kamma beeja, 업 씨앗)는 자동으로 위빠-까(vipāka, 과보)를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 * 웁빳띠 PS(uppatti PS, 재생연결시의 연기) 사이클에서, 깜마 삐-자(kamma beeja)는 연기 사이클의 처음 두 단계, 즉 ‘아윗짜-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nkhāra)’와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nkhāra paccayā viññāna)’로 형성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윈냐-나(viññāna)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라고 합니다.

  • * 그러나 그 깜마 삐-자(kamma beeja, 업 씨앗)가 미래에 그에 해당하는 위빠-까(vipāka)를 다시 가져오려고 할 때, 그것들은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마음이 그 깜마 삐-자(kamma beeja, 업 씨앗)를 만들기 위해 행해지는 깜마(kamma)에 해당하는 ‘니밋따(nimitta)’라고 하는 ‘표시’로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11. 따라서 웁빳띠 PS(uppatti PS, 재생연결시의 연기) 사이클에서, ‘윈냐-나 빳짜야- 나-마루빠(viññāna paccayā nāmarupa)’ 단계가 훨씬 늦게 시작되며 미래 삶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12. 이것은 예시를 통해 가장 잘 설명됩니다. 사람 X가 이 생에서 다른 사람을 죽인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것은 마노(mano), 와찌(vaci), 까-야(kāya)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를 많이 포함하며, 그 모든 것들은 ‘까-야 아비상카-라(kāya abhisankhāra)’를 통해 살해하는 순간에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깜마 삐-자(kamma beeja)로 이끄는 오염된 심적경향(마음가짐), 즉 윈냐-나(viññāna)에 기여를 합니다.


  • * 이제, 그 깜마 삐-자(kamma beeja)는 미래에 그것의 위빠-까(vipāka, 과보)를 가져오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 * 몇 년 후 X가 죽지만, 그 인간 바와(human bhava)에 업 에너지가 더 남아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경우에, 그 깜마 삐-자(kamma beeja)는 위빠-까(vipāka, 과보)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X는 육체(사체)를 떠나 간답바(gandhabba)로서 적합한 자궁을 기다릴 것입니다.

  • * 그러나, 예를 들어, X가 부모 중 한분을 죽인 경우에는 그것은 아-난따리야 깜마(ānantariya kamma)이므로, 그 깜마 삐-자(kamma beeja)는 이 생을 마감할 때 그것의 위빠-까(vipāka,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3. 두 경우 모두, ‘윈냐-나 빳짜야- 나-마루빠(viññāna paccayā nāmarupa)’ 단계는 다음 방식으로 새로운 바와(bhava), 예를 들면 니라야(niraya, 지옥)로 이끄는 연기 사이클의 나머지를 시작할 것입니다.


  • * 자, 이제 X가 현생이든 인간으로 내생이든 관계없이 임종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죽는 순간 바로 직전에, 그 깜마 삐-자(kamma beeja, 업 씨앗)는 X의 마음에 그 깜마(kamma)의 표시(니밋따, nimitta라고도 함)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살인 사건의 장면이거나 자신이 태어나려고 하는 니라야(niraya, 지옥)의 장면일 수 있습니다.

  • * X가 의도적으로 이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 심적 경향(마음가짐)이 다시 돌아올 것이고 기본적으로 살인의 원인이 된 오염된 심적 경향(viññāna, 윈냐-나)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X는 들어오는(나타나는) 니밋따(nimitta)를 가질 것이며, 이것이 ‘윈냐-나 빳짜야- 나-마루빠(viññāna paccayā nāmarupa)’ 단계로 그때 X의 마음에 떠오르는 나-마루빠(nāmarupa)입니다.


14. X의 모든 6가지 감각 기능은 그 표시(니밋따, nimitta)에 따라 변형할 것입니다. 이것이 ‘나-마루빠 빳짜야- 살라-야따나(nāmarupa paccayā salāyatana)’ 단계입니다. 물론 니밋따(nimitta)는 오직 하나를 통해서만 올 것입니다. 이 경우, 그 살인 사건의 장면이나 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그의 마음은 이제 어떤 감각과 마찬가지로 ‘살라-야야따나 빳짜야- 팟사, salāyatana paccayā phassa)’ 단계로 접촉을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ēdanā)’ 단계로 이어집니다. 즉, X는 이제 ‘웨-다나- 빳짜야- 딴하-(vēdanā paccayā tanhā)’ 단계에서 시작하여 마음 속에서 범죄를 다시 일으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15. 그러나, 이 단계들에서 결정적인 점은 ‘웨-다나- 빳짜야- 딴하-(vēdanā paccayā tanhā)’ 단계와, ‘딴하- 빳짜야- 우빠-다-나(tanhā paccayā upādāna)’ 단계에서 일어납니다. 니라야(niraya, 지옥)에 태어나게 하는 니밋따(nimitta)가 죽음의 순간에 나타나는 경우에,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한 사람은 그 니밋따(nimitta)를  붙잡지 않을 것입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의 마음은 ‘아닛짜(anicca) 특성’의 진리를 파악하고 더 높은 수준의 빤냐(panna, 지혜)를 지니고 있으므로, 그 니밋따(nimitta)를 붙잡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앙굴리말라가 거의 1000명의 사람은 죽인 후에도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앙굴리말라 존자에게) 그 과거의 깜마 삐-자(kamma beeja, 업 씨앗)는 싹이 트지 않았습니다.


16. 그러므로, 그 니밋따(nimitta)는 그 사이에 X가 소-따빤나(Sōtapanna)로 되어 그 다음 다른(좋거나 나쁜) 니밋따가 나타나게 되면, 효력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니밋따가 나타나는) 과정은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upādāna paccayā bhava)’ 단계에서 소-따빤나 성자가 적절한 새로운 바와(bhava)를 붙잡을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 * 이것이 ‘소-따빤나 성자가 그 위빠-까를 가져오는 것에서 어떻게 ‘아빠-야가-미 깜마 삐-자(apāyagāmi kamma beeja, 악처로 이끄는 깜마 씨앗)’을 피하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 * 물론, X가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면, 니라야(niriya, 지옥)에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17. 이것이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으면, 포럼에서 서슴치 말고 질문하세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에 대해서는 ‘Kamma Viññāna – Link Between Mind and Matter’ 포스트에 자세히 논의되어 있습니다.


  • * 과거의 깜마(kamma)가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와 함께 위빠-까(vipāka)를 가져오려고 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Avyākata Paticca Samuppāda for Vipāka Viññāna’ 포스트에 자세히 논의되어 있습니다.

  • * 물론,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웨-다나-(vēdanā), 딴하-(tanhā), 우빠-다-나(upādāna), 등 이 모든 용어들이 의미하는 바를 정말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 용어에 대해서는 ‘Mental Aggregates’ 서브섹션의 포스트들을 보세요.

  • * 이 포스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닙바나(Nibbana)에 이르는 길, 즉 미래 괴로움(고통)을 멈추는 방법을 정말로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출세간 삼마- 딧티(lokottara Sammā Ditthi)를 지니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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