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google":["PT Serif","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Nanum Barun Gothic"]}

 

삭까-야 딧티 ㅡ '나와 내 것' 견해

 

원문: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Sakkāya Diṭṭhi – “Me and Mine” View’ 포스트

- 2020년 6월 23일 작성

 

‘나와 내 것’이라는 견해 ㅡ 약 100년 동안만

 

1. 보통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들을 ‘나’ 또는 ‘내 것’으로 여기는 것이 이롭다는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전 몇 개의 포스트에서 논의했듯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루-빠(rūpa)는 자신의 물질적 몸(육체)입니다. 그리고 ‘내 것’으로 여겨지는 부모, 배우자, 자녀, 친구 등이 있습니다. 이 시리즈, 즉 다섯 무더기(오온)의 ‘다섯 무더기(오온) - 띨락카나에 연결(Five Aggregates – Connection to Tilakkhaṇ)’ 서브 섹션에 있는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 * 그 모든 것들은 약 100년 동안만 유지된다는 것은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 죽으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더라도, ‘나’와 ‘내 것’이 되는 것은 다른 육체와 다른 세트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전생에 우리가 누구였는지조차 모를 것입니다. 우리는 전생에 우리가 가졌던 그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 * 그것이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할 ‘큰 그림’입니다. 그 큰 그림은 오직 부처님 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 * 주어진(특정) 유정체가 태어남/죽음 과정을 겪는 ‘31 영역이라는 더 넓은 세계의 진정한 본질’을 발견하는 것은 어떤 다른 사람에게도 불가능합니다.

  • * 그러나 일단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참된 제자가 설명하시면, 사람들은 그 가르침에서 진리를 볼(알) 수 있습니다.

 

‘나와 내 것’ 견해는 부도덕한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2. ‘나’와 ‘내 것’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때때로 부도덕한 행위를 하도록 강제(강요)됩니다. 그것을 곰곰이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거짓말을 하거나, 훔치거나, 다른 이들을 해칠 경우, 그런 행위는 항상 ‘나 또는 내 것을 돌보는 것’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 * ‘나와 내 것’에 대한 이 잘못된 견해(sakkāya diṭṭhi, 삭까-야 딧티)는 ‘나와 내 것’에 대한 인식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딧티(diṭṭhi)는 ‘견해/관점’을 의미합니다.

  • * ‘나와 내 것’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제거한 후에도 그 잘못된 인식은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나’에 대한 인식 또는 ‘나’라는 고유한 감각(느낌)은 아라한 단계에서만 사라질 것입니다.

  • * 그러나, ‘나와 내 것’을 바탕으로 행하는 것이 이롭지 않다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매우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않는 데는 충분합니다. 소따빤나(Sotapanna)가 될 때 그 ‘봄(이해를 통한 앎)’이 일어납니다.

  • * 물론,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붓다께서는 “이 담마는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내 것’ 견해는 의지력으로 제거될 수 없다 ㅡ 그것은 ‘진정한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사라진다

 

3.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논리는 기본적인 원리가 없이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기본적인 원리는 재탄생 과정, 깜마(kamma)의 법칙,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가 어떻게 새로운 태어남을 일으키는가 등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열 가지 잘못된 견해를 제거하고 가띠(gati), 아누사야(anusaya) 등과 같은 기본 개념을 배워야 합니다. ‘밋차- 딧티, 간답바, 및 소-따빤나 단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 모든 것을 종합하여 ‘광대 세계관(wider world-view)’의 진리를 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기초가 없이는 그 ‘큰 그림’을 보고 그것의 진실(진리)을 깨닫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 믿기 힘들겠지만, 그 ‘큰 그림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시작을 알 수 없는 재탄생 과정에서 우리 마음 속에 축적된 ‘쓰레기(번뇌, 오염물)’의 99%가 제거됩니다.

  • * 고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ero)께서 이 주제에 대해 설하신 법문을 최근에 영문으로 편집한 The Way to Nibbāna 파일을 읽어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그 ‘큰 그림’은 부처님에게서 배워야 한다

 

4. 만약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참된 제자로부터 위의 것을 듣지 못했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총명하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알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 * 붓다께서는 그런 사람을 ‘앗수따와- 뿌툿자노(assutavā puthujjano)’라고 칭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담마를 듣지 못한 무지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 *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 ‘새로운 담마(Dhamma)’에 동의할 수 없고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것을 파악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잘못된 견해를 쉽게 버리려고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우리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 * 필자도 전생에 그것을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재탄생 과정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 *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도덕적 생활을 하고 공덕을 행해야, 내생에 이해가 올 수 있습니다.

 

누가 앗수따와- 뿌툿자노인가?

 

5. 많은 숫따(sutta)에서 붓다께서는 앗수따와- 뿌툿자노(assutavā puthujjano)를 묘사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빠띠빠다- 숫따(Paṭipadā Sutta ,SN 22.44)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까따마- 짜, 빅카웨, 삭까-야 사무다야가-미니- 빠띠빠다-? 이다, 빅카웨, 앗수따와- 뿌툿자노 아리야-낭 아닷사-위- 아리야담맛사 아꼬위도 아리야담메 아위니-또, 삽뿌리사-낭 아닷사-위 삽뿌리사담맛사 아꼬위도 삽뿌리사담메 아위니-또, 루-빵 앗따또 사마누빳사띠, 루-빠완땅 와- 앗따-낭; 앗따니 와- 루-빵, 루-빠스밍 와- 앗따-낭. 웨다낭산냥상카-레윈냐-낭 앗따또 사마누빳사띠.” 

(“Katamā ca, bhikkhave, sakkāya samudayagāminī paṭipadā? Idha, bhikkhave, assutavā puthujjano ariyānaṃ adassāvī ariyadhammassa akovido ariyadhamme avinīto, sappurisānaṃ adassāvī sappurisadhammassa akovido sappurisadhamme avinīto, rūpaṃ attato samanupassati, rūpavantaṃ vā attānaṃ; attani vā rūpaṃ, rūpasmiṃ vā attānaṃ. Vedanaṃsaññaṃsaṅkhāreviññāṇaṃ attato samanupassati.”)

 

번역: “빅쿠들이여, 그리고 정체성 견해(identity view)가 창시되는 길은 무엇인가? 빅쿠들이여, 여기, 담마(Dhamma)를 듣지 못한 무지한 사람은 .. 형체(form)을 자아(self)로 여기고 ... 웨다나(vedana)를 자아로 ... 산냐(sañña)를 자아로 … 상카-라(saṅkhāra)를 자아로 … 윈냐-나(viññāṇa)를 자아로 여긴다.

 

  • * ‘루-빵 앗따또 사마누빳사띠(rūpaṃ attato samanupassati)’는 네 가지 방식 중 하나로 형체(자신의 몸을 뜻함)를 ‘나’로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그 사람은 네 가지 방식 중 하나로 다른 네 가지 무더기 각각을 ‘나’로 여깁니다. 

  • * 따라서, 다섯 무더기 각각을 네 가지 방식으로 ‘내 것’으로 여기면, ‘자아견(self-view)’ 또는 ‘정체성 견해(identity view)’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20가지 유형의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 즉 ‘위-사띠왓투까- 삭까-야 딧티 (vīsativatthukā sakkāya diṭṭhi)’입니다.  넷띠빠까라나(Nettipakaraṇa)의 ‘나야사뭇타-나(Nayasamuṭṭhāna)를 참조하세요.

  • *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에 대한 올바른 설명을 듣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하는/무지한’ 사람, 즉  앗수따와- 뿌툿자노(assutavā puthujjano)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하는 이유입니다. 설명을 들어도, 이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담마’를 이해하는(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따와- 아리야사-와꼬 ㅡ 담마를 듣고 이해한 자

 

6. 앗수따와- 뿌툿자노(assutavā puthujjano)의 반대는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듣고 이해한 ‘수따와- 아리야사-와꼬(sutavā ariyasāvako)’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 것에 들러붙는 것의 위험을 압니다.

 

  • * 수따와- 아리야사-와꼬(sutavā ariyasāvako)를 논의한 SN 35 안에 많은 숫따가 있습니다(특히 SN 35.1 ~ SN 35.12). 예를 들어 ‘앗잣따-닛짜-띠-따-나-가따 숫따(Ajjhattāniccātītānāgata Sutta, SN 35.7)’에서는, “짝쿵, 빅카웨, 아닛짱 아띠-따-나-가땅; 꼬 빠나 와-도 빳쭙빤낫사. 에왕 빳상, 빅카웨, 수따와- 아리야사-와꼬 아띠-따스밍 짝쿠스밍 아나뻭코 호띠; 아나-가땅 짝쿵 나-비난다띠; 빳쭙빤낫사 짝쿳사 닙비다-야 위라-가-야 니로다-야 빠띠빤노 호띠. 소땅 아닛짱 … 가-낭 아닛짱 …(Cakkhuṃ, bhikkhave, aniccaṃ atītānāgataṃ; ko pana vādo paccuppannassa.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atītasmiṃ cakkhusmiṃ anapekkho hoti; anāgataṃ cakkhuṃ nābhinandati; paccuppannassa cakkhuss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o hoti. Sotaṃ aniccaṃ … ghānaṃ aniccaṃ …)”라고 설하십니다.

 

번역: “빅쿠들이여, (현재는 말할 것도 없고) 과거와 미래의 눈은 아닛짜 특성이 있다. 이것을 보고, 배운 성스런 제자는 과거의 눈에 들러붙지 않고, 미래의 눈을 즐기기를 기대하지 않고, 현재의 눈에 대해 들러붙지 않고, 냉정하고, [형성되는 것을] 그치게 하는 실천을 한다. 귀 … 코 …”

 

  • * ‘아닛짜(anicca)’를 ‘무상한(impermanent)’으로 번역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과거의 눈’은 이미 파괴되었습니다. 그것의 무상함(impermanence)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구절이 나타내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즐거워하고, 미래에 그런 눈을 즐기기를 바라는 것은 이롭지(유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앗수따와- 뿌툿자노’는 ‘삭까-야 딧티’를 지닌다

 

7. 그래서,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 정체성 견해 또는 자아 견해)는 자신의 몸을 ‘나’로 여기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물론, 자신의 웨다나(vedana), 산냐(sañña), 상카-라(saṅkhāra), 윈냐-나(viññāṇa) ‘자아(self)’로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다섯 무더기 중 하나 이상을 ‘내 것’으로 보는 사람은 누구나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지니고 있습니다.

 

‘삭까-야딧티 숫따(Sakkāyadiṭṭhi Sutta, SN 22.155)’에서 붓다께서는 “루-뻬 코, 빅카웨, 사띠, 루-빵 우빠-다-야, 루-빵 아비니윗사 삭까-야 딧티 웁빳자띠. 웨다나-야 사띠 … 산냐-야 사띠 … 상카-레수 사띠 … 윈냐-네 사띠, 윈냐-낭  우빠-다-야, 윈냐-낭 아비니윗사 삭까-야 딧티 웁빳자띠.(rūpe kho, bhikkhave, sati, rūpaṃ upādāya, rūpaṃ abhinivissa sakkāya diṭṭhi uppajjati. Vedanāya sati … saññāya sati … saṅkhāresu sati … viññāṇe sati, viññāṇaṃ upādāya, viññāṇaṃ abhinivissa sakkāya diṭṭhi uppajjati.)”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 그 의미는 “루-빠(rūpa)에 ‘몰입하여’ 루-빠(rūpa)에 초점을 맞추고 (자신의 마음에) 그것들을 가까이 유지할 때, 정체성 견해(identity view)가 일어난다.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및 윈냐-나(viññāṇa)에서도 마찬가지다.”입니다.

 

그 다음, 붓다께서는 “땅 낑 만냐타, 빅카웨, 루-빵 닛짱 와- 아닛짱 와-”띠?(“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rūpaṃ niccaṃ vā aniccaṃ vā”ti?)라고 물으셨습니다.

 

  • * 그 의미는 “비쿠들이여, 그 루-빠(rūpa)들은 닛짜 특성(nicca nature)인가, 아닛짜 특성(anicca nature)인가?”입니다.

  • * 아닛짜(anicca)와 닛짜(nicca)는 여러가지(그러나 관련된) 의미를 지닌 복잡한 빠알리 낱말입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아닛짜 ㅡ 진정한 의미’(Anicca – True Meaning)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 * 그 두 낱말은 좋아함 또는 바램을 의미하는 ‘잇짜(icca)’ 또는 ‘잇차-(icchā)’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잇짜, 닛짜, 아닛짜 ㅡ 중요한 관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아래 #9에서, “땅 낑 만냐타, 빅카웨, 루-빵 닛짱 와- 아닛짱 와-”띠?(“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rūpaṃ niccaṃaniccaṃ vā”ti?)의 올바른 의미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먼저, 그 흔하게 잘못된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빠알리어의 ‘닛짜와 아닛짜’를 산스끄리뜨어의 ‘니뜨야와 아니뜨야’와 동일시한 것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 

 

8. “땅 낑 만냐타, 빅카웨, 루-빵 닛짱 와- 아닛짱 와-”띠?(“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rūpaṃ niccaṃaniccaṃ vā”ti?)의 잘못된 번역은, “빅쿠들이여, 그 루-빠(rupā)들은 영구적(영원)인가, 비영구적(무상)인가?”입니다.

 

  • * 그것은 현재 대부분의 영문 텍스트에 나타나는 영어 번역이며, 잘못된 번역입니다.

  • * ‘닛짜(nicca)’라는 빠알리 낱말은 ‘영구적인(영원한)’을 의미하지 않고, ‘아닛짜(anicca)’라는 빠알리 낱말은 ‘비영구적인(무상한)’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 * 그러나 산스끄리뜨 낱말인 ‘니뜨야(nitya)’와 ‘아니뜨야(anitya)’는 각각 ‘영구적인(영원한)’과 ‘비영구적인(무상한)’을 의미합니다.

  • * 잘못된 산스끄리뜨 낱말로 빠알리 낱말을 혼란시킨 그 중대한(심각한) 오류는 많은 사람들이 붓다 담마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 * ‘영구적인(영원한)’을 의미하는 빠알리 낱말은 ‘니야따(niyata)’와 ‘두와(dhuva)’입니다. 영구적임(무상함)은 ‘아니야따(aniyata)’ 또는 ‘앗두와(addhuva)’로 표현됩니다.

  • * 아무리 생각해도, 필자는 이들 모든 ‘배운 빅쿠들과 학자들’이 띠삐따까(Tipitaka, 빠알리 삼장)를 꼼꼼히 검토하여 이것을 알아내는데 시간을 좀 할애하기를 왜 거부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잘못된 담마(Dhamma)를 가르치는 것이 범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붓다께서는 담마(Dhaam)를 취급하는 것은 뱀을 다루는 것과 같다고 훈계하셨습니다. 잘못되게 [뱀의] 꼬리를 잡으면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땅 낑 만냐타, 빅카웨, 루-빵 닛짱 와- 아닛짱 와-”띠? 의 올바른 번역

 

9. 사실, 이 시리즈에는 고통의 근본 원인이 어떻게 세상 것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것에 기반한 ‘나’와 ‘내 것’에 대한 견해에 묶여 있는지 더 깊이 철저히 조사하는 숫따(sutta)가 더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난다 숫따(Ānanda Sutta, SN 22.159)는 위 #7에서 논의한 내용을 더 분명하게 합니다. 그 숫따(sutta)에서 붓다께서는 아-난다 존자(Ven. Ānanda)에게 ‘나’와 ‘내 것’이라는 견해로 루-빠(rūpa)에 들러붙는 것이 어떻게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지고, 그래서 잘못된 견해인지를 설명하십니다. 그 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 * “땅 낑 만냐시, 아-난다, 루-빵 닛짱 와- 아닛짱 와-”띠?(Taṃ kiṃ maññasi, ānanda, rūpaṃ niccaṃ vā aniccaṃ vā”ti?)

  • * “아닛짱, 반떼(Aniccaṃ, bhante)”.

  • * “양 빠나-닛짱 둑캉 와- 땅 수캉 와-”띠?(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ā taṃ sukhaṃ vā”ti?)

  • * “둑캉, 반떼(Dukkhaṃ, bhante)”.

  • * “양 빠나-닛짱 둑캉 위빠리나-마담망, 깔랑 누 땅 사마누빳시뚱: ‘에땅 마마, 에소하마스미, 에소 메 앗따-’”띠?(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 kallaṃ nu taṃ samanupassituṃ: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 * “노 헤땅, 반떼(No hetaṃ, bhante)”.

 

번역:

 

  • * “아난다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누구든지 자신이 좋아하는(원하는) 대로 루-빠(rūpa)를 유지할 수 있는가?”

  • * “유지할 수 없습니다(아닛짱, aniccam), 부처님.”

  • * “어떤 것을 자신이 좋아하는(원하는) 대로 유지할 수 없다면, 고통(괴로움)이 되겠는가? 행복이 되겠는가?”

  • * “고통(괴로움)이 됩니다. 부처님.”

  • * “어떤 것이 자신이 좋아하는(원하는) 대로 유지될 수 없고, 고통(괴로움)이 되고, 예상치 못한 변화가 있다면, ‘이것은 내 것이고, 나는 이것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또는 정체성)다’라고 여기는 것이 현명한가’?”

  • * “현명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그 다음, 붓다께서는 다른 네 가지 무더기(정신 무더기)인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및 윈냐-나(viññāṇa)에 대해 물으십니다.

 

  • * 아난다 존자께서는 그것들도 내 것이나 나의 정체성이라고 여기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다섯 무더기를 ‘나와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가?

 

10. 요점은 이 숫따(sutta)들이 다섯 무더기를 ‘나 또는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합한지/현명한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 * 그것은 오직 ‘나’에 대한 견해에만 관련이 있습니다. 그 견해를 제거하는 것이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 * 그 사람은 여전히 ‘나’에 대한 느낌/인식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라한 단계에서만 없어집니다.

  • *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아낫따’를 ‘무아’로 잘못 번역하여)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우스꽝스럽습니다. 우리 모두가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 * 아낫따(anatta) 개념은 다음 포스트에서 논의하겠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나’에 대한 잘못된 견해와 잘못된 인식을 가진 자는 재탄생 과정에서 어찌할 수 없이 난감하게 될 것임을 말해 줍니다. 그 ‘나’는 ‘나’에 대한 그 잘못된 견해/인식으로  헤아릴 수 없는 ‘나쁜 탄생’을 겪을 것입니다.

 

각자는 인간, 데와, 브라흐마, 동물, 지옥 중생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ㅡ 어느 것이 ‘나’인가?

 

11. 생각해 보세요. ‘나’는 사람, 동물, 브라흐마, (또는 그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 가능한 많은 유정체 중의 하나) 입니까? 이것이 바로 이 세상에 대한 부처님의 ‘큰 그림’을 이해하지 않고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이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 * 그 ‘큰 그림’은 31영역으로 된 이 세상 안에서 ‘멈추지 않는 재탄생 과정(non-stop rebirth process)’입니다.

  • * 그것은 또한 깜마(kamma)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법칙을 포함합니다. 여기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다양한 존재(bhava)가 어떻게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강한 깜마)로 인해 일어나는지를 설명합니다.

  • * 인간, 데와(Deva, 천신), 브라흐마(Brahma, 범천), 동물, 지옥 중생 등과 같은 다양한 존재로 이어지는 것은 (‘아윗자-’ 또는 ‘모-하’로 행해진) 그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입니다.

  • * 모든 유정체는 무지(아윗자- 또는 모-하)로 인해 상응하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좋거나 나쁜 깜마)를 생성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미래 탄생을 준비’합니다. 그것이 ‘담마와 과학’ 섹션에 있는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 포스트 시리즈의 결론이었습니다. ‘생명의 기원 ㅡ 각자는 자기 자신의 미래 생을 만든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 아윗자-(avijjā)[모-하를 포함하는 개념]는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제거할 때 엄청난 비율로 줄어듭니다. 그것은 ‘아스미 마-나(asmi māna)’가 제거되는 아라한 단계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google":["PT Serif","PT Sans"],"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Nanum Barun Gothic"]}
{"google":["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