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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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과 담마 ㅡ 소개

 

원문: Quantum Mechanics and Dhamma 섹션의 ‘Quantum Mechanics and Dhamma – Introduction’ 포스트

- 2018년 3월 13일 작성; 2019년 1월 9일 개정; 2019년 11월 15일 개정; 2021년 6월 5일 개정; 2022년 8월 10일 개정

 

소개

 

1. 이 섹션에서는 다음  두 가지 문제를 논의하겠습니다.

 

  1. a) 비국소성(non-locality)에 기반한 양자 역학(QM)의 새로운 해석이 제시되며, 여기서 파동-입자 이중성(wave-particle duality)은 부정확하고 불필요한 가정입니다. 기존의 모든 실험 데이터는 이 새로운 해석과 상호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2. b) 이 해석은 불교(붓다 담마)에서 깜마(kamma)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사이의 관계에 대한 더 깊은 통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리처드 파인만의 관련 연구

 

2. 필자는 지난 20년 동안의 일부 새롭고 흥미로운 실험적 관찰을 기반으로 양자 역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공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필자는 몇 가지 수학 방정식으로 간단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연구는 고(故)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의 연구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 * 이 [섹션의] 자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수준의 물리학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양자역학(QM)에 대한 배경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만 여기에 있는 내용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 * 필자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 섹션의 내용을 따라가기 위해 양자역학(QM)을 배우기 시작하기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붓다 담마를 배우는 데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물론, 누구나 일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몇 개의 포스트를 읽고 참조하세요.

  • * 이 [연구] 프로젝트가 끝나면, 필자는 특히 깜마(kamma)로 인해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가 어떻게 자연스럽게 구체화되는지에 관해 붓다 담마(Buddha Dhamma)과 깊은 연결(관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과학적 합의의 ‘본래에 어긋나는 것’

 

3. 2년 전에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필자는 Gayanath Fernando 교수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제안된 양자역학(QM) 해석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논문 검토자(심사자)를 설득하지 못했고 논문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마지막 버전의 PDF 파일을 여기에 첨부합니다. “A Self Consistent Interpretation of Quantum Mechanics Based on Nonlocality”입니다.

 

  • * 그러나 논문은 여러 저널에서 거절되었는데, 물리학자들은 ‘광속 장벽(light speed barrier)’이 깨질 수 있다는 믿음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빠르게 전파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 * 우리의 요점은 두 개의 ‘연결된 전자’ 사이에 실제로 ‘이동’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 * 그러나, 위 논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2015년에 자연의 비국소성(nonlocality)이 확고히 자리 잡은 것은 아이러니(모순적)입니다.

 

근본적 개념들

 

4. 메커니즘의 요지를 설명하겠습니다. 반대 스핀(예를 들어, A는 스핀 업이고 B는 스핀 다운)을 가진 두 개의 전자를 동시에 생성하는 기술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우주를 가로질러 반대편 끝까지도 보낼 수 있고, 그것들은 ‘얽힌(entangled)’ 상태로 있습니다.

 

  • * A와 B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얽힌(entangled)’ 상태로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입자 A의 스핀이 뒤집히면, 입자 B의 스핀도 동시에 뒤집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마치 그것들이 우주를 가로질러 서로 순간적으로 상호 작용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 * 기본 개념은 두 전자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연결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비국소성(non-locality)’이라고 합니다. 이것에 대해 잘 소개하고 있는 외부 웹사이트가 ‘Nonlocality and Entanglement’입니다.

  • * 기본 개념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양자 얽힘 ㅡ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깜마(업) 영향은 공간 제한이 없다

 

5. 필자는 깜마(kamma)가 우주 전체에 순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개념을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입자들이 자연에서 이러한 ‘연결됨(연결성, connected-ness)’을 갖는다면, 그것을 정신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 * 이 다리는 깜마(업) 에너지(‘윈냐-나_viññāna’라고도 함)입니다. 우리는 자와나 찟따(javana citta)로 우리 마음에서 이 에너지들을 생성합니다. 그것은 아비담마(Abhidhamma)에 있는 주제입니다. ‘리빙 담마’ 섹션의 ‘나-마 & 루-빠에서 ‘나-마루-빠’로(Nāma & Rūpa to Nāmarūpa)’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5-1. 이 섹션에서, 필자는 붓다 담마에 대한 양자역학(QM)의 이 새로운 해석의 함의를 논의하고 몇 가지 핵심 개념을 제공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토론 포럼에서 계속 거론되는 핵심 문제는 ‘깜마(kamma)에서 의도가 무엇이며, 자연이 깜마를 지은 사람과 그 깜마의 영향을 받는 사람의 연결(관계)을 어떻게 아는가?’하는 것입니다. 

 

  • * 예를 들어, 출생 직후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양육되었으며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X라는 사람을 생각해 보세요. 그의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물론 모르고, X가 나중에 친아버지를 죽인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것은 여전히 아-난따리야 깜마(ānantariya kamma, 무간업)입니다. 자연은 깜마(kamma)/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자동으로 관리하므로, 자연은 그 두 사람 사이의 연결(관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양자역학의 최근 실험에서 확증

 

6. 이것이 양자역학(QM)으로부터 어떤 단서를 얻을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비국소성(nonlocality)은 제안된 양자역학(QM) 해석의 핵심 특징입니다. 필자는 향후 포스트에서 비국소성(nonlocality)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할 것입니다(또한  ‘양자 얽힘 ㅡ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자연의 비국소성(nonlocality)은 자동적으로 깜마(kamma)/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실행합니다.

 

  • * 물론 붓다께서는 그 당시에 사람들에게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과 같은 개념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메커니즘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 * 더욱이, 그런 세부 사항을 아는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연결(관계)을 만드는 시점에 있으므로, 그렇게(언급)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것은 붓다 담마(Buddha Dhamm)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7. 필자는 이 섹션에서 기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여러 포스트를 작성할 계획이며, 양자역학 개념에 익숙하고 지식 있는 독자들의 의견을 환영합니다. 필자는 게시된 각 포스트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토론 포럼에 ‘Quantum Mechanics – A New Interpretation’이라는 제목의 새 포럼을 열었습니다.

 

  • * 누구나 이 포스트들과 토론 포럼의 포스트들을 읽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질문을 하거나 코멘트를 하려면 토론 포럼에 등록해야 합니다. 포럼에 등록하는 지침은 ‘General Information and Updates’에 있습니다.

  • * 이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와 양자역학(QM)의 연결(관계)에 대해 제안된 것의 배후에 있는 핵심 아이디어를 간략히 논의해 보겠습니다.

 

깜마에서 의도 ㅡ 양자역학과 관계

 

[1]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어떻게 판단할 것이지 평가하는 데에는 두 가지 주요 단계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i)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중의 어떤 것이 의도일까요? 예를 들어, 그것은 목숨을 빼앗거나, 도둑질하거나, 거친 말을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영향(작용 효과)을 받는 사람은 이 단계에 관여되지 않습니다. “cetana ham bhikkhave kammaṃ vadami” 구절에 있는 ‘쩨따나(cetana)’는 사람이 깜마(kamma)를 지을 때 단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와 (그리고 연관된 쩨따시까_cetasika) 중의 어떤 것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두입니다.

ii) 그 다음, 그 깜마- 위빠-까(kammā vipāka)의 강도는 그 깜마-(kammā)에 의해 영향(작용 효과)을 받는 유정체의 의식의 수준(질), 즉 도덕적 질에 기반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동물을 죽이는 것보다 더 강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가져옵니다. 마찬가지로, 아라한에게 보시하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주어진 상황을 분석하는 가장 좋은 길(방법)입니다.

 

[2] 또 다른 예에서, 띨락카나(Tilakkhana)에 대한 최근 법문(discourse)에서, 필자는 어떤 사람이 폭탄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경우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틸락카나 ㅡ 영어 법문’에 있는 ‘법문 2’를 참조하세요.

 

  • * 그의 의도(cetanā, 쩨따나-)는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관련된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는 ‘빠-나띠빠-따(pānatipāta)’, 즉 생명을 앗아가는 것입니다.

  • * 이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갑니다. 그 사람은 누가 죽었는지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로 만약 살인자의 부모 중의 한 명이 폭탄으로 죽었다면, 그는 아-난따리야 빠-빠 깜마-(ānantariya pāpa kammā)를 지은 것이 됩니다. 아라한이 죽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따빤나(Sōtapanna)가 죽었다면, 그것은 아-난따리야 깜마-(ānantariya kammā)는 아니지만 여전히 수천 명의 보통 사람을 죽인 것과 맞먹습니다.

  • * 따라서, 깜마(kamma)을 지을 때 쩨따나(cetana)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중의 어떤 것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 이상일 수 있습니다. 폭격의 경우, ‘빠-나-띠빠-따(pānātipātā)’ 외에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 잘못된/그릇된 견해)’와 ‘탐욕’도 있을 수 있습니다.

  • * 위의 두 단계로 다양한 상황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3] 우리는 다섯 가지 아-난따리야 깜마-(ānantariya kammā)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깜마-들은 너무 심각해서 다음 생에 니라야(niraya, 지옥)에서 그 위빠-까(vipāka)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아-난따리야) 깜마-(kammā)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아라한을 죽이고, 부처님에게 상해를 입히고, 그리고 상가에 분열을 일으키는(실제로 잘못된 버전의 붓다 담마를 전파하려는 것을 의미함) 것입니다.

 

  • * 보통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난따리야 깜마-(ānantariya kammā)가 아니기 때문에, 누가 죽임을 당하느냐에 따라  ‘깜마-(kammā)의 강도’가 달라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 * 모든 다른 나쁜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도 이와 유사합니다. 아라한을 해치는 것은 보통 사람을 해치는 것보다 수백만배나 강할 것입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아나-가-미(Anāgāmi),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소-따빤나(Sōtapanna)를 해치는 것은 상응하는 수준의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 * ‘생명의 가치’는 그 생명체(유정체)의 ‘정신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삶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동물의 삶의 가치를 인간의 삶의 가치와 [동등한 레벨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동물들 사이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으며, 고릴라나 개가 벌레보다 ‘더 지각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우리 모두는 낮은(천한) 벌레로 태어난 적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지만, 의도적으로(불필요하게) 어떤 지각 있는 존재(유정체)의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4] 자신의 행위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살아 있는 사람의 지위(정신 상태)를 ‘자신이 어떻게 알겠는가’라는 문제에 관해서는,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연(자연법)이 안다는 것입니다.

  •  

  • * “우리는 모두 상호 연결되어 있다”라는 이 점은 이제 양자 역학에 의해 입증되었습니다. ‘양자 얽힘 ㅡ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것은 깜마-/위빠-까(kammā/vipāka)을 이해하는 핵심 요인입니다. 제안된 양자역학(QM) 해석은 이것을 훨씬 더 깊은 수준에서 보여줄 수 있습니다.

 

[5] 위 논의는 ‘깜마의 세부사항 ㅡ 의도, 영향받는 자, 깜마 빠타’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보려면 그 포스트를 읽어보세요.

 

 

[6] 양자역학(QM)에 대한 논의는 다음 포스트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오늘날 광자(photon)가 입자인지 파동인지, 즉 양자역학에서  ‘파동-입자 이중성’에 대해 너무 많은 혼란이 있습니다. 필자는 다음 몇 개의 포스트에서 ‘파동-입자 이중성’의 문제를 다룰 것입니다.

 

  • * 우리는 파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입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의할 것입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파동 함수(wave function)’를 ‘파동(wave)’으로 혼동합니다. 파동 함수는 입자의 움직임을 나타낼 수 있는 수학적 개념입니다. 파동함수는 파동이 아닙니다.

  • * 우리는 광자가 파동이 아니라 입자라는 것을 논의할 것입니다. 파동 함수가 광자를 나타낼 수 있다 하더라도, 광자는 이중성(입자성 및 파동성)이 없습니다.

 

필자가 항상 말하듯이, 더 심층적인 문제를 다루기 전에 그런 근본적인 실체를 알아야(또는 정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논의 중에 특정 낱말이 의미하는 바를 재정의하는 데 수렁에 빠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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