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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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사 빳짜야- 웨-다나-....땅하-까지

 

원문 : Paṭicca Samuppāda 섹션의 ‘Phassa paccayā Vēdanā….to Tanhā’ 포스트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 과정에서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는 실제로는 ‘삼팟사 빳짜야- 삼팟사ㅡ자-ㅡ웨다나-(samphassa paccayā samphassa-jā-vedanā)입니다. 그것은 자동적으로 들러붙음(땅하-)으로 이어집니다.

 

2021년 5월 25일 재작성; 2023년 6월 3일 새로운 제목과 함께 재작성

 

삼팟사는 오염된 접촉이다

 

1. 이전 포스트에서 ‘팟사(phassa)와 ‘삼팟사(samphassa)’의 차이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팟사와 삼팟사 사이의 차이’를 참조하세요.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 ‘팟사(phassa)’는 순수한 정신적 접촉입니다. 그것은 단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몸 접촉하거나, 자기 자신의 좋아함/싫어함이 없이 단지 마음에 나타나는 임의적 생각일 뿐입니다. 팟사(phassa)는 보편 쩨따시까(universal cetasika)며 모든 찟따-(cittā)에 나타납니다. 보통사람이든 아라한이든, 감각 접촉은 팟사(phassa)와 함께 일어납니다.

  • * 그러나, 그 감각 접촉은 보통사람에게는 오염된 접촉(삼팟사)로 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길을 걷다가 길에 떨어져 있는 값비싼 반지를 보게 될 수 있습니다. 그 초기에 ‘보는 것’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한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팟사(phassa)를 수반합니다. 그러나 이제 탐욕스런 생각이 일어나고, 그는 그것을 집어서 재빨리 주머니에 넣습니다. 그는 삼팟사(samphassa, 오염된 접촉)로 그 행위를 했습니다.

  • * 따라서,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ūla Paṭicca samuppāda)가 일반적으로 웃데사(uddesa), 즉 간결한 진술로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사(salāyatana paccayā phassa)’로 쓰여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살라-야따나 빳짜야- 삼팟사(salāyatana paccayā samphassa)’와 관련됩니다.

  • * 오직 아라한 성자만이 항상 단지 팟사(phassa)를 가지며, 아라한은 결코 삼팟사(samphassa)를 갖지 않습니다.

 

2. ‘오염된 접촉’ 때문에, 마음이 만든 웨다나-(삼팟사ㅡ자-ㅡ웨다나-)가 보통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으며 아라한에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 * 그 ‘마음이 만든 웨다나-(mindㅡmade vedanā)’가 기쁘고/즐거운 것이면, 즉시 탐함으로 그 감각 접촉에 들러붙을 것입니다.

  • * 그것이 즐겁지 않은 웨다나-면,  예를 들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볼 때, 화냄/불쾌함으로 들러붙을 것입니다.

  • * 그 감각 입력의 특성이 확실하지 않으면, 또한 중립 웨다나-로 들러붙을 수 있는데, 그것은 아윗자-(무지)로 인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감각 입력에 들러붙음(땅하-)는 순간적이다

 

3. 위의 모든 경우에, 들러붙음은 순간적이고, 그것을 땅하-(taṇhā)라고 합니다.

 

  • * 땅하-(taṇhā)는 ‘들러붙게 되는’을 의미합니다.  땅하-(tanhā)라는 낱말은 ‘장소, 자리’를 뜻하는 ‘thán’ + ‘융합되는/용접되는 또는 들러붙는’을 뜻하는 ‘hā’에서 유래합니다(싱할라어로는 හා වීම). taṇhā에 있는 ‘tan’은 ‘thunder’에 있는 것과 같이 발음된다는 것에 유의하세요. ‘빠알리 낱말 ㅡ 쓰기와 발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우리는 무엇에 들러붙을까요? 우리는 감각 입력, 즉 아-람마나(ārammaṇa)에 들러붙습니다.

  • * 감각 입력(아-람마나)은 루-빠 땅하-, 삿다 땅하- 내지 담마 땅하-를 통해 들러붙음으로 이어지게 될 가능성이 있는 6가지 감각 기능을 통해 들어옵니다. ‘Taṇhā Sutta (SN 27.8)’를 참조하세요. 물론, 우리는 모든 감각 입력에 들러붙지는 않습니다.

 

4.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 행복(수카, sukha)을 줄 수 있고 그래서 결실있고(앗따, atta) 추구할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견해/인식에 기반하여 특정한 감각 입력에 들러붙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얻기를 좋아하고(잇짜, icca) 우리가 싫어하는 그것들을 없애고 싶어하는데, 그것은 세상에 대해 닛짜(nicca) 특성의 감각을 일으킵니다.

 

  • *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우리의 가띠(gati)에 기반합니다. 사람이 어떤 유형의 아-람마나(대상)에 들러붙는 매칭 가띠를 가지고 있다면, 들러붙음은 순간적으로 일어나 드러납니다. 그것은 성냥개비로 성냥갑의 거친 표면을 긋는 것과 같으며, 성냥개비는 즉시 불이 붙습니다.

  • * 그 들러붙음은 각자의 아누사야/가띠에 기반하여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 * 땅하-(taṇhā)는 순수한 의지력으로는 직접 제거될 수 없습니다. 땅하-를 제거하는 열쇠는 어떤 유형의 아-람마나에 들러붙는 우리의 가띠를 서서히 감소시키는 것입니다.

 

땅하-를 감소시키는 것은 우빠-다-나 단계에서 행하는 것으로만 할 수 있다

 

5. 우리는 그런 아-람마나에 들러붙은 가띠를 어떻게 점차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을까요? 그런 가띠(gati)를 감소시키는 열쇠는 우빠-다-나의 다음 단계에 있으며, 그것은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로 시작합니다.

 

  • * 일단 들러붙으면, 그 아-람마나(ārammaṇa)에 ‘알면서 들러붙어 머물러 있는 것’이 우빠-다-나(upādāna)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노, 와찌, 및 까-야 상카-라의 순서로 아비상카-라를 축적하기 시작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와찌 상카-라의 초기 단계에서 들러붙어 있음을 알게 되는데, 이곳이 우리가 속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지점입니다.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관심이 있으면, 우리는 밖으로 말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또한 와찌 상카-라를 수반합니다. 그 관심이 쌓이면, 우리는 까-야 상카-라로 행할 수도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몇 시간까지도 와찌(vaci) 및 까-야(kāya) 상카-라(saṅkhāra)를 행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 * 땅하-의 순간적인 단계와는 달리, 마음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우빠-다-나 상태에 머물 수 있습니다

  • * 마음챙김을 함으로써, 우리는 그 우빠-다-나를 멈출 수 있고, 그리고 들러붙는 가띠를 줄일 수 있는데, 그것이 아래 도표에서 개괄한 바와 같이 아-나-빠-나사띠 / 사띠빳타-나(Ānāpānasati / Satipaṭṭhāna)의 핵심입니다.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 Taṇhā is Automatic

 

‘현명하지 못한 가띠’가 육성됨

 

6.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부도덕하거나 현명하지 못한 가띠는 땅하-로 일련의 사건들을 빠르게 연속적으로 촉발하는 것입니다.

 

  • * 다양한 유형의 가띠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빠띳짜 사뭅빠-다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 * 아누사야(anusaya)가 생에서 생으로 옮겨가지만, 다양한 유형의 가띠가 일생 동안 길러집니다

  • * 들러붙는 가띠가 없으면, 땅하-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 * 그러나, 아누사야가 뿌리뽑힐 때까지, 다양한 감각 입력에 대해 가띠(gati)가 길러질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가띠가 일단 길러지면, 해당하는 아-람마나에 들러붙음(땅하-)은 피할 수 없습니다.

 

(마음챙김으로) 가띠를 제거하는 것이 아누사야/땅하를 뿌리뽑는 핵심이다

 

7. 우리가 아-람마나에 들러붙는(땅하-) 때마다, 우리는 해당하는 가띠와 연관된 아누사야를 강화시킵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빠-다-나 단계에서 아-람마나에 들러붙음을 멈출 때마다, 해당하는 가띠와 아누사야도 감소합니다.

 

  • * 그 때문에 성스런 길의 육성은 아-나-빠-나사띠 / 사띠빳타-나(Ānāpānasati / Satipaṭṭhāna)를 수반합니다. 

 

신생아는 아누사야가 있지만, 그것은 가띠가 아니다

 

8. 신생아는 어떤 가띠(gati)도 가지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유형의 아누사야(anusaya)는 그 아기의 마음에 감춰져 있습니다. 다양한 유형의 아누사야는 변화를 계속하지만 특정 생명흐름과 함께 남아 있습니다.

 

  • * 아기가 자라고 뇌가 발달함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가띠가 획득됩니다. 획득되는 가띠의 유형은 환경에 많이 의존합니다.

  • * 예를 들어, 자라는 아이는 음주, 약물(마약) 섭취, 싸움하는 것에 흥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활동을 하는 가띠는 몇 달 내에 획득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땅하로 가띠가 육성

 

9. 길거리 폭력조직에 속한 친구들과 교제하게 되는 십대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친구들은 그 십대에게 삶을 즐길 필요가 있고 삶을 즐기기 위해 돈을 벌려면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부모가 그 십대와 밀접하게 관계하지 않으면, 그런 삶의 방식이 위험하다는 것을 설명할 사람이 없으며, 그 십대는 이 잘못된 비전(견해), 즉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받아들입니다.

 

  • * 따라서 무지(avijjā, 아윗자-)로 인해, 그 십대는 그 폭력조직의 일원과 같이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입니다.

  • * 그러면,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 십대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은 폭력조직 활동과 관련된 오염된 생각(아비상카-라)과 기대(깜마 윈냐-나)이며, 마약과 술로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a paccayā viññāna)’입니다. 따라서, 그때 그의 마음에는 상응하는 ‘오염된 마음가짐(윈냐-나)’이 자리잡습니다. 폭력조직 활동을 하는 동안, 그 십대의 생각은 그것들에 집중되고, 다른 시간 중에도 그의 잠재 의식에 있는 것은 그런 활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 * 이제 그 십대는 새로운 가띠를 획득했습니다.

 

10. 다양한 유형의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를 개발하는 것은 해당하는 가띠의 육성과 직접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깜마 윈냐-나가 자람에 따라, 해당하는 가띠도 자랍니다.

 

  • * 그것은 뒤따라서 ‘윈냐-나 빳짜야- 나-마루-빠(viññāna paccayā nāmarūpa)’로 이어집니다. 그 십대는 돈을 벌기 위해 마약을 어떻게 판매하고 조직원들과 어울려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 등, 다양한 폭력조직 활동에 대해 생각하고 시각화합니다.

  • * 따라서, 그 십대의 6가지  감각 기능은 모두 ‘아-야따나(āyatana)’가 됩니다. 그것들은 모두 폭력조직 활동을 최적화하는 방법을 찾고 ‘즐기는 방법’을 생각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것이 ‘나-마루-빠 빳짜야- 살라-야따나(nāmarūpa paccayā salāyatana)’입니다. 이제는 그 가띠가 성숙되었고 즉시 촉발될 준비가 되었습니다

  • * 이제 모든 감각 접촉(아-람마나)은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사(salāyatana paccayā phassa)’, 또는 더 분명하게는 ‘살라-야따나 빳짜야- 삼팟사(salāyatana paccayā samphassa)’에 속하는 폭력조직 활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그것은  자동적으로 삼팟사ㅡ자-ㅡ웨-다나-와 땅하-로 이어집니다.

  • * 더 자세한 내용은 ‘땅하-와 우빠-다-나 사이의 차이’ 포스트에 있습니다.

 

가띠는 우빠-다-나 단계에서만 부서질 수 있다

 

11.  ‘땅하-와 우빠-다-나 사이의 차이’ 포스트에서 더 논의된 바와 같이,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는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결정적인 단계입니다.

 

  • * 우빠-다-나(upādāna)는 ‘우빠(upa)’ + ‘아-다-나(ādāna)’로 합성된 낱말로서, ‘우빠(upa)’는 ‘(마음에) 가까운/밀접한’을 의미하고, ‘아-다-나(ādāna)’는 ‘끌어당김’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그것은 더 많은 와찌(vaci) 및 까-야(kāya) 상카-라(saṅkhāra)에 관여함으로써 ‘그 아-람마나에 머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그것은, 물론 해당하는(상응하는) 깜마 윈냐-나와 가띠를 더 강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12. 그 악순환은 십대가 그 하향길에 머무는 것의 위험함을 이해할 때에만 부서질 수 있습니다.

 

  • * 누군가 그런 행위를 계속하는 것의 심각한 결과(아-디-나와, 위험함)를 그에게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 * 마음챙기고 그런 습관(가띠)를 부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길(방법)입니다.  

 

주: 이 포스트는 ‘팟사 빳짜야- 웨-다나-....바와까지’ 포스트를 대체합니다. 관련 포스트인 ‘땅하-와 우빠-다-나 사이의 차이’를 읽는 것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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