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팟사 빳짜야- 웨-다나-....'바와'까지
원문 : Paṭicca Samuppāda 섹션의 ‘Phassa paccayā Vedana….to Bhava’ 포스트
- 2021년 5월 25일 재작성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 과정에서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는 실제로는 ‘삼팟사 빳짜야- 삼팟사ㅡ자-ㅡ웨다나-(samphassa paccayā samphassa-jā-vedanā)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팟사와 삼팟사 사이의 차이
1. 이전 포스트에서 ‘팟사(phassa)와 ‘삼팟사(samphassa)’의 차이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팟사와 삼팟사 사이의 차이’를 참조하세요.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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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사(phassa)’는 순수한 정신적 접촉입니다. 그것은 단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몸 접촉하거나, 자기 자신의 좋아함/싫어함이 없이 단지 마음에 나타나는 임의적 생각일 뿐입니다. 팟사(phassa)는 보편 쩨따시까(universal cetasika)며 모든 찟따-(cittā)에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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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사람도 감각 입력이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들어올 때 ‘팟사(phassa)’를 가집니다. 예를 들어, 길을 걷다가 길에 떨어져 있는 값비싼 반지를 보게 될 수 있습니다. 그 초기에 ‘보는 것’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한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팟사(phassa)를 수반합니다. 그러나 이제 탐욕스런 생각이 일어나고, 그는 그것을 집어서 재빨리 주머니에 넣습니다. 그는 (탐욕스런 생각과 함께) 삼팟사(samphassa)로 그 행위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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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ūla Paṭicca samuppāda)가 일반적으로 웃데사(uddesa), 즉 간결한 진술로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사(salāyatana paccayā phassa)’로 쓰여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살라-야따나 빳짜야- 삼팟사(salāyatana paccayā samphassa)’와 관련됩니다. 아래 #3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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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아라한 성자만이 항상 단지 팟사(phassa)를 가지며, 아라한은 결코 삼팟사(samphassa)를 갖지 않습니다.
인드리야와 아-야따나 사이의 차이
2. 우리는 또한 ‘인드리야(indriya)와 ‘아-야따나(āyatana)의 차이, 즉 감각 기능이 어떻게 어느쪽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지를 논의했습니다. ‘나-마루-빠 빳짜야- 살라-야따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거기서 논의했듯이, 이 6가지 인드리야는 사띠(sati), 사마-디(samādhi), 삿다-(saddhā), 위리야(viriya), 및 빤냐-(paññā)라는 빤짜 인드리야(pañca indriya) 5가지와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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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기본 감각 기능은 6가지 인드리야(indriya)입니다. 갈망/분노/무지로 사용될 때, 그것들은 아-야따나(āyatana)가 됩니다. 그것들이 6가지가 있으므로, 6가지의 아-야따나(āyatana), 즉 ‘살라-야따나(salāyatana)가 있습니다.
간략한 설명과 상세한 설명(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3.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ūla Paṭicca samuppāda) 과정은 무지(아윗자-, avijjā)로 시작하고, 우리는 6가지 인드리야를 살라-야따나(salāyatana)로 사용함으로써 깜마(업)을 축적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때에, 우리의 감각 기능은 위에서 언급된 포스트들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오염된 접촉, 즉 삼팟사(samphassa)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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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사(salāyatana paccayā phassa) 단계는 실제로는 ‘살라-야따나 빳짜야- 삼팟사(salāyatana paccayā samphassa)’이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간결하게 하기 위해,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사(salāyatana paccayā phassa)로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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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식으로,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ēdanā)’라는 다음 단계는 실제로는 ‘삼팟사 빳짜야- 삼팟사ㅡ자-ㅡ웨다나-(samphassa paccayā samphassa-jā-vedan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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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삐따까(Tipiṭaka)에서 구절들을 간결하게 쓰는 것은 일반적입니다. 그런 구절들은 이 포스트들에서 필자가 하고자 노력하는 것처럼 상세히 설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숫따 해석 ㅡ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를 참조하세요.
예로서 상세히 설명
4. 지금까지의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단계를 복습으로 검토하기 위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길거리 폭력조직에 속한 친구들과 교제하게 되는 십대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친구들은 그 십대에게 삶을 즐길 필요가 있고 삶을 즐기기 위해 돈을 벌려면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부모가 그 십대와 밀접하게 관계하지 않으면, 그런 삶의 방식이 위험하는 것을 설명할 사람이 없으며, 그 십대는 이 잘못된 비전(견해), 즉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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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무지(avijjā, 아윗자-)로 인해, 그 십대는 그 폭력조직의 일원과 같이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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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 십대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은 폭력조직 활동과 관련된 생각이고, 마약과 술로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a paccayā viññāna)’ 단계입니다. 따라서, 그때 그의 마음에는 상응하는 ‘오염된 마음가짐’이 자리잡습니다. 폭력조직 활동을 하는 동안, 그 십대의 생각은 그것들에 집중되고, 다른 시간 중에도 그의 잠재 의식에 있는 것은 그런 활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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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뒤따라서 ‘윈냐-나 빳짜야- 나-마루-빠(viññāna paccayā nāmarūpa)’ 단계로 이어집니다. 그 십대는 돈을 벌기 위해 마약을 어떻게 판매하고 조직원들과 어울려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 등, 다양한 폭력조직 활동에 대해 생각하고 시각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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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그 십대의 6가지 감각 기능은 모두 ‘아-야따나(āyatana)’가 됩니다. 그것들은 모두 폭력조직 활동을 최적화하는 방법을 찾고 ‘즐기는 방법’을 생각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것이 ‘나-마루-빠 빳짜야- 살라-야따나(nāmarūpa paccayā salāyatana)’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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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필연적으로 그 십대가 하는 감각 접촉은 그런 활동에 맞춰 조정됩니다. 이것이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사(salāyatana paccayā phassa)’ 단계, 또는 더 분명하게는 ‘살라-야따나 빳짜야- 삼팟사(salāyatana paccayā samphassa)’ 단계입니다. 그 감각 접촉들은 탐욕, 증오, 무지로 오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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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 따라, 그 십대의 느낌의 대부분은 그런 오염된 감각 접촉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라이벌 폭력조직들을 상대하면서 화를 내고, 그 조직원들을 때리는 것을 즐거워하고, 술을 마시고 마약을 사용하는 등의 즐거움을 얻습니다. 따라서, ‘(삼)팟사 빳짜야- 삼팟사ㅡ자-ㅡ웨-다나-( (sam) phassa paccayā samphassa-jā-vēdanā)’ 단계가 뒤따라 일어납니다.
들러붙게 됨(땅하-)
5. 이제 우리는 그 십대가 어떻게 폭력조직 활동에 점점 더 많이 몰입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그것들로부터 즐거움을 얻습니다. 폭력조직 활동은 평소의 습관이 됩니다. 그는 탐욕과 증오를 통해 폭력조직 활동에 매이거나 들러붙게 됩니다. 이것이 ‘삼팟사ㅡ자-ㅡ웨-다나- 빳짜야- 땅하-(samphassa-jā-vēdanā paccayā taṇhā)’ 단계입니다. ‘땅하 ㅡ 탐함과 미워함과 미혹함을 통해 어떻게 들러붙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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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한 활동을 계속할수록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그는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때에도 그런 활동들을 생각합니다. 그는 그것들에 대한 꿈을 꾸는 등, 그것들은 그의 ‘잠재 의식’에서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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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혼자 속으로 말하는 것)도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이며 위빠-까(vipāka)를 가져올 깜마(kamma)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빠-다-나는 사람이 [대상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한다
6. 폭력조직 활동에 대한 그런 강한 들러붙음은 ‘우빠-다-나(upādāna)로 이어집니다. 우빠-다-나(upādāna)는 ‘우빠(upa)’ + ‘아-다-나(ādāna)’로 합성된 낱말로서, ‘우빠(upa)’는 ‘가까운(밀접한)’을 의미하고, ‘아-다-나(ādāna)’는 ‘끌어당김’ 또는 ‘매료시킴’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폭력조직 활동이 그에게 매우 가까워(밀접해)집니다. 그것들은 그가 하루 종일 생각하고, 말하고,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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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특히 어떤 특정 행동에 끌릴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알코올, 마약, 또는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특정한 것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될 것이고, 그것이 그가 열정적으로 따를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부추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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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폭력조직의 조직원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하며 즐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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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이제 그(그의 마음)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시작하는 PS의 모든 단계들을 반복적으로 경험할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실제로 새로운 존재(바와, bhava)를 위한 깜마 에너지를 축적하는 단계입니다.
7. 이것은 미래의 존재(바와, bhava)를 준비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그의 폭력조직이 라이벌인 폭력조직의 조직원들을 해치는 것으로 악명이 높게 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들은 누군가를 때리거나 어떤 경우에는 죽이는 것을 즐깁니다. 그는 폭력적인 동물의 마음 성향을 가질 것입니다. 그는 쉽게 흥분하고 화를 낼 것입니다.
이것이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upādāna paccayā bhava)’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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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바와(bhava)’는 순박한 십대의 그것에서 때때로 폭력적인 동물의 그것으로 대폭 변했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는 선형적(직진) 과정이 아니다
8. 따라서, 우리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에서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upādāna paccayā bhava)’로 진행하는 이 과정은 선형적 순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일부 단계는 앞뒤로 진행합니다. 예를 들어,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는 필연적으로 역방향인 ‘상카-라 빳짜야- 아윗자-(saṅkhāra paccayā avijjā)’로도 진행됩니다. 즉, 그가 잘못된 일을 하면 할수록, 그것은 그의 무지를 확고하게 합니다. 그가 그 부도덕한 행위들을 즐기기 시작하면, 그는 그것이 미래에 그에게 행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의 마음은 점점 더 5가지 장애의 두 가지 주요 요소인 까-막찬다(kāmacchanda, 강한 탐욕)와 브야빠다(vyapada, 강한 증오)로 덮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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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가지 장애는 명확하게(분별있게) 생각하는 그의 능력을 억압하고, 아윗자-(avijjā, 무지)가 자랍니다. 따라서 ‘상카-라 빳짜야- 아윗자-(saṅkhāra paccayā avijjā)도 또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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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십대의 하향(나쁜 방향) 진행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는 그런 ‘내 순환/반복(inter-loop)’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와의 개념
9. ‘바와(bhava)’의 개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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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상카-라(saṅkhāra) (신체적 행동, 말, 또는 생각)를 행할 때마다, 상응하는 깜마(kaama)(기본적으로 행위)가 행해집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도 행위는 물리학에서와 같은 반작용(반응 또는 결과)을 일으킵니다. 정신 현상을 다룰 때 반작용(깜마 위빠-까, kamma vipāka)은 나중에 생길 수 있으며, 때로는 많은 생이 지난 후에 생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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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문에 과학은 정신 현상을 다루는(파악하는) 방법을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반작용’(깜마 위빠-까)은 이생이나 심지어 내생에서 늦게 생기기 때문에 이 작용(행위)/반작용(결과), 즉 ‘깜마/깜마 위빠-까(kamma/kamma vipāka)’ 관계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든 상카-라가 나쁜 것은 아니다
10. 모든 업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깜마(및 해당 상카-라)는 해롭지 않습니다. 즉 어떤 깜마(kamma)는 강력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아라한도 죽을 때까지는) 살아 있기 위해 상카-라(saṅkhāra)를 행해야 합니다. 아라한들도 걷고 말하고 세상 것들에 대해 생각해야 하며, 이 모든 것이 깜마(kamma)(상카-라, saṅkhāra)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들을 (깜마와) 특별히 구분하기 위해 끼리야(kriya) 범주에 포함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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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 에서, 우리는 탐욕, 증오, 및 무지를 수반하는 깜마(kamma)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일어날 때마다 그런 깜마(kamma)(상카-라, saṅkhāra)는 강력합니다. 그것들은 중대한 결과, 즉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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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하게 강한 (‘상카-라’를 통한) 깜마(kamma)를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 (또는 깜마 빠타_kamma patha)라고 합니다. 부모를 죽이는 것은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입니다. 그것은 부도덕하기 때문에,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 apuñña + abhisaṅkhāra)라고 합니다. 그것은 끔찍한 결과(강한 ‘깜마 위빠-까_kamma vipāka”)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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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것도 또한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입니다. 그것은 도덕적인 것이므로,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 puñña + abhisaṅkhāra)라고 합니다. 그것은 좋은 결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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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논의했듯이, 그 좋거나 나쁜 결과는 이생에서도 분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생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빠띠 잇짜’는 ‘사마 웁빠-다’로 이어진다
11. 좋거나 나쁜 깜마(kamma)로 인한 결과(반작용, 깜마 위빠-까)가 어떻게 생기는가는 깜마 비-자(kamma bīja, 업 씨앗)라고도 부를 수 있는 바와(bhava)의 개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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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거나 나쁜 깜마(kamma)를 행할 때마다 그 결과를 가져올 잠재력은 자신에게 계속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같은 것을 많이 행할수록 그 깜마 에너지는 커집니다. 그런 행위는 그 깜마(kamma)에 상응하는 바와(bhava, 존재)를 준비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것이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빠띠 잇짜’가 ‘사마 웁빠-다’로 이어짐)의 의미입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ㅡ '빠띠+이치차' + '사마+웁빠-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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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십대가 폭력적인 행동을 계속하면, 그는 그 결과를 가져오기에 적합한 바와(bhava), 즉 업 씨앗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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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생 중에, 이 바와(bhava)는 대부분 그와 유사한 행위를 행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은 그의 존재 상태, 즉 바와(bhava)가 됩니다. 그는 계속 폭력적으로 행동하고 때로는 동물처럼 행동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의 ‘동물같은 가띠’ 또는 ‘동물같은 습관’이 길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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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바와(bhava)’는 ‘깜마 바와(kamma bhava)’라고 불리며, 그는 일생 동안 그 존재로 여러 번 태어날 수 있습니다. ‘이답빳짜야- 빠띳짜 사뭅빠-다(idappaccayā Paṭicca samuppāda)’는 그것을 묘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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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이 바와(bhava)가 그 생활 방식을 유지하면서 더 강해지면, 실제 ‘동물 바와(animal bhava)’로 태어날만큼 충분히 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빠빳띠 빠띳짜 사뭅빠-다(upapatti Paṭicca samuppāda)에서 묘사됩니다.
이답빳짜야따- 빠띳짜 사뭅빠-다
12. 십대에 대한 예로 돌아가서, 그 십대는 그 존재 상태(바와, bhava)를 얻는 것이 더 쉬워집니다. 그는 쉽게 자극되고, 큰 양심의 가책없이 누군가를 해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체 ‘이답빳짜야따- 빠띳짜 사뭅빠-다(Idappaccayatā 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은 하루에 많이 실행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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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문에 그런 행위를 조기에 중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올바른 ‘아-나-빠-나(ānāpāna)’ 또는 ‘사띠빳타-나(satipatthāna)’를 배웠다면, 그런 행위를 계속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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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나이에는 환경(부모, 가족, 친구, 선생님 등)이 자신의 생에서 그처럼 매우 큰 역할을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전생에서 유래한 좋거나 나쁜 경향(gati, 가띠)을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들 중의 어느 것이 자라게 되는지는 특히 어린 나이에 환경에 의해 자신의 삶이 어떻게 지향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충분히 나이가 들면, 물론 노력에 따라 대폭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빠빳띠(웁빳띠) 빠띳짜 사뭅빠-다
13. 주어진 ‘깜마 바와(kamma bhava)가 반복된 행위로 강해짐에 따라, 그것은 ‘우빠빳띠 바와(upapatti bhava)’가 될 수 있습니다. 즉, 깜마 씨앗은 이제 충분히 강해져서, 인간으로서 현 존재의 마지막에 새로운 바와(bhava, 존재)로 빠띠산디(patisandhi)(재탄생)가 됩니다. 이것은 인간 존재의 마지막 찟따 위티(citta vithi)에서 일어나는 쭈띠ㅡ빠띠산디(cuti-patisandhi, 죽음ㅡ재생연결) 전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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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른 포스트에서 논의되었으며, 다음 포스트에서도 논의될 것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존재(재탄생), 즉 우빠빳띠 바와(upapatti bhava)를 일으킬 수 있는 강한 업 씨앗(kamma seed)이라는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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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강한 업 씨앗은 우빠빳띠 바와(upapatti bhava)가 또한 여러 생에 걸쳐 자랄 수 있도록 하기에 적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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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는 전생에서 획득한 그런 좋거나 나쁜 강한 깜마 씨앗(strong kamma seed)를 많이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빠띠산디(patisandhi)가 되기에 충분히 강력한 모든 선하고 악한 업 씨앗(kamma seed) 중에서, (인간으로서 현재 바와의 업 에너지가 고갈되면) 죽을 때 가장 강한 것이 마음의 맨앞에 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서 자세히 논의할 것이지만, ‘바와(bhava)와 ‘자-띠(jāti) 사이의 차이는 ‘바와 및 자띠 - 존재 상태와 거기로 태어남’ 포스트에서 논의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를 마무리할 다음 포스트인 ‘바와 빳짜야- 자-띠….자라-, 마라나,…’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논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