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명상에 대한 잘못된 통념들
원문: Bhāvanā (Meditation) 섹션의 ‘Myths about Meditation’ 포스트
- 초기 포스트; 2018년 9월 11일 개정; 2019년 12월 17일 개정; 2021년 3월 10일 개정
닙바-나는 (의례) 의식들로는 가능하지 않다
1. 한 번은 명상 수련회(meditation retreat)에 참석했습니다. 모두가 다리를 꼬고(결가부좌를 하고) 바닥에 앉아 있었지만, 잠시 후 많은 사람들이 ‘통증을 참을 수 없었고’ 다리를 쭉 뻗거나 꼼지락거렸습니다. 불편한 자세로 인한 고통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필자의 눈에는) 분명했습니다. 그 명상 수련회는 이틀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명상을 한 명상가였고 연화좌(결가부좌)가 편안했던 사람들 외의 다른 사람들은 수련회가 많이 만족스러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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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무의미한 (의례) 의식은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하기 전에 제거해야 하는 일련의 잘못된 견해의 일부입니다. 이 특별한 관행은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āmāsa), 즉 ‘(의례) 의식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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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관행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연화좌(결가부좌)로 앉는 것은 명상의 필요 조건이 아닙니다. 명상은 숙고하는 것이며, 앉거나 서거나 걷거나 눕는 모든 자세에서 할 수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 명상하는지 알아야 한다!
2. 명상의 목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탐욕, 증오, 무지를 우리 마음에서 제거하고 닙바-나(Nibbāna)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근본 개념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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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단지 일상적인 스트레스로부터 약간의 ‘쿨링 다운(열내림)’을 달성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근본 개념이 작용합니다. 우리는 탐하고 미워하고 무지한 생각이 우리 마음에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수록 우리 마음은 더 편안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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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호흡 명상’을 ‘불교 명상’과 자동적으로 연관시키고 그것(호흡 명상)을 하는데 다년간 보내고 결국 낙담하게(그만두게) 됩니다. 이와 관련된 한 사람(빅쿠)의 이야기인 Meditation-Experience-of-Paññobhāsa-Bhikkhu 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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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바른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apānasati Bhāvanā)는 호흡 명상이 아닙니다. 이 ‘바와나(명상)’ 섹션에 있는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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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정화는 마음을 일시적으로 안도시키는 방법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아라한 지위(Arahantship)’까지 성취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아무도 자신의 진전을 모니터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진전을 감시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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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식 명상’을 할 때, 편안한 자세로 앉는 것이 좋습니다. 연화좌(결가부좌)를 연습한 사람은 그 자세를 취할 수 있습니다. 연화좌를 잘하는 사람은 몇 시간 동안 그 자세를 취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의자에 앉는 것입니다. 의자는 잠이 들 정도로 너무 편안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생각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
2. 악한 생각을 제거하는 것은 항상 할 수 있고 해야 합니다. 붓다께서는 “바-와나-야 바훌리까타-야(bhāvanāya bahuleekathāya)”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가능한 언제든지, 가능한 많이 명상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능한 모든 자세, 즉 ‘앉기, 서기, 걷기, 눕기’라는 모든 자세로 행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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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난다 존자(Ven. Ananda)는 그 네 가지 자세 중 어느 것도 아닌 상태에서 아라한과(Arahanthood)를 얻은 유일하게 알려진 사람입니다. 존자는 첫 번째 담마 상가-야나-(Dhamma Sangāyanā, 불교 결집회의) 전에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가 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아라한뜨(Arahant)만이 [상가-야나-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난다 존자(Ven. Ananda)는 숫따 삐따까(Sutta Piṭaka, 경장) 전체를 기억하고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존자는 상가-야나-(Sangāyanā)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상가-야나-(Sangāyanā) 전날 밤, 존자께서는 노력에 지쳤습니다. 하지만 존자는 침대에 들어가면서 여전히 담마 개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존자는 침대에 앉아서 다리를 들어 누웠다. 존자의 머리가 베개에 닿기 전에, 그 [담마의] 특별한 요점이 존자에게 분명해졌고, ‘아라한뜨 팔라 찟따(Arahant phala citta)’가 실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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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1과 관련하여 띠삐따까(Tipiṭaka)의 또 다른 이야기는 꼬살라 왕의 대신(장관)인 산따띠(Santati)라는 분에 관한 것입니다. 그 분은 붓다께서 말씀하신 단 한 구절인 Dhammapada Verse 142 를 들으면서 아라한과(아라한뜨후드, Arahanthood)를 얻었습니다.
모든 생각을 제거하는 것은 아산냐- 영역에 태어남으로 이어진다
3. 닙바-나(Nibbāna, 열반)를 마음에서 산냐-(saññā, 지각)를 제거하는 것으로 묘사하는 많은 명상 프로그램을 필자는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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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열반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에서 모든 생각을 제거해야 한다고 그릇되게 조언합니다. 한 번은, 천신(Deva, 데와)이 이와 동일한 생각을 “닙바-나(Nibbāna, 열반)는 모든 생각을 제거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붓다께 표현하였습니다. 붓다께서는 “아닙니다. 닙바-나(Nibbāna, 열반)는 탐하고 증오하고 무지한 생각을 제거함으로써 실현됩니다.”라고 답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마노-니와라나 숫따(‘Manōnivarana Sutta, SN 1.24’)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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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 장소, 또는 어떤 물질적인 것에 대해) 생각이 떠오를 때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그것을 잊어라고 말합니다. 붓다께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붓다께서는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의미하신 것은 아닙니다. 세상것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영원토록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환생이란 무엇인가? - 생명 흐름의 개념’ 포스트에서 논의한 것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붓다께서는 ‘자아(self)’와 ‘무아(no-self)’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모든 현상을 설명합니다. 그것들은 원인으로 인해 일어나며 그런 이유가 없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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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어떤 사람이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제거하는) 아산냐-(asaññā) 명상을 기른다면, 그 사람은 아산냐- 브라흐마(asañña Brahmā) 영역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 영역에서는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그곳에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다가 인간계로 돌아와 재탄생 과정을 모두 다시 시작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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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명상 기법은 모두 위험합니다. 그것(모든 생각을 없애는 것)을 개발함에 따라 그 사람은 무엇을 잘 잊게(건망증이 들게) 될 수 있습니다. 산냐-(saññā, 지각)는 외부 대상을 인식하는 것과 관련된 중요한 정신적 요소입니다. 기억을 잃기 시작하면 잘못된 [수행] 길을 가고 있다는 신호일 것입니다.
닙바-나는 탐욕, 분노, 무지의 제거다
4. 아라한은 생각이나 인식을 생성하는 능력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아라한은 탐욕, 증오, 및 (4가지 성스런 진리에 대한) 무지를 제거했습니다. 생각들은 사람 또는 사물을 식별할 수 있는 산냐(saññā)와 함께 아라한에게 일어납니다. 아라한들은 다른 모든 사람과 꼭같이 보거나, 듣거나, 맛보거나, 냄새맡거나, 감촉하거나, 어떤 곳에 대해 생각할 수 있으며, 온 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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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한 차이는 아라한은 어떤 것에 대해 탐욕스럽거나, 증오하거나, 무지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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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닙바-나(Nibbāna)의 개념은 간단합니다. 즉, “라-각카요- 닙바-낭, 도-삭카요- 닙바-낭, 모-학카요- 닙바-낭(rāgakkhayō Nibbānam, dōsakkhayō Nibbānam, mōhakkhayō Nibbānam)”입니다.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생각을 제거함에 따라 닙바-나에 가까워진다
5. 그리고,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 이전에도 탐욕, 증오, 무지를 제거하는 데 진전이 있으면 쿨링 다운(cooling down, 열내림/불이 사그라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잘 잊어버리는(망각하는) 대신에 자신의 마음은 더욱 예리하고 주의깊습니다. 어떤 것을 상기(기억)하는 능력이 더 적은 것이 아니라 더 좋습니다. 우울하거나 비관적이지 않고,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가 탐욕, 증오, 무지로 오염된 마음과 연관되어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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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균적인 인간 마음에서 끊임없는 스트레스는 탐욕, 분노, 및 무지로 인해 일어납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 스트레스를] 좀 경감하기 위해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경감(안도)이 일시적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은 그런 즐거움을 얻기 위해 부도덕한 행위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상황을 훨씬 더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영구적인 안도를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부도덕한 행위(거짓말, 도둑질, 성적 비행 등)로 축적된 나쁜 깜마(bad kamma)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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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문에 ‘청정하고 소박한 삶’을 시작하면 바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명상을 시작하기 위한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부도덕한 행위를 한다면 아무리 ‘명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도 진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8가지 큰 오염행위를 줄이기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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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 처방하신 것은 간단하면서도 심오했습니다. 깨끗한 삶을 살면서 5가지 장애(빤짜니와라나, pancanivarana)의 마음을 맑게 하고 제대로 된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를 하기 시작하면, 자신의 마음이 더 명확하게 보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전이 빨라집니다. 그 자신이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의 진정한 의미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나타나서 순간적으로 파괴되고 다시 나타나는가?
6. 필자가 들은 또 다른 시리즈의 법문에서는 상급의 수행자가 어떻게 물질 세계의 ‘형성/해체(붕괴)’를 실제를 볼 수 있는지를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붓다 담마’ 섹션의 ‘대통합 이론인 담마’ 서브섹션에 있는 포스트에 설명된 무상(impermanence)을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재형성되기 직전에 ‘세상이 사라 졌을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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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찟따(citta)는 결코 단일 단위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찟따 위티(citta vithi)가 5가지 육체적 감각 입력(눈, 귀, 코, 혀, 몸) 중 하나를 통해 들어오는 외부 감각 입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17개의 찟따(citta)를 갖는 찟따 위티(citta vithi)(찟따의 시리즈)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초당 수십억의 생각 순간(thought moment)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부처님만이 그런 빠른 시간 스케일을 실제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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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그런 세부 사항을 사리뿟따 존자에게 요약하여 설명하셨고, 사리뿟따 존자와 그 계보의 제자들이 붓다께서 주신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정신적/물질적 현상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완성하는데 수백 년이 걸렸습니다. 그들은 세 번째 담마 상가-야나-(Dhamma Sangāyanā)에 이르러서만 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 Piṭaka)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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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담마(Abhidhamma)에 관한 많은 교재에서도 때때로 “.. 루빠(rupa)는 수명이 매우 짧다 – 그것은 단지 17개의 의식 순간 동안만 지속된다. 일어난 루빠는 거의 즉각 사라진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 기술은 잘못되었습니다. 그 짧은 수명은 ‘하다야 루빠(hadaya rupa)’의 수명입니다. 하다야 루빠(hadaya rupa)는 5가지 육체적 감각 중 하나를 통한 감각 사건에 의해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에서 생성됩니다. 하다야 루빠(hadaya rupa)의 수명은 외부 감각 사건, 즉 17개의 생각(의식) 순간을 경험하는 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은 외부 루빠의 인상을 파악합니다.) ‘모든 물체(루-빠)는 17 마음순간 동안만 지속되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거짓 가르침은 마하-야-나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7. 마하-야-나(Mahāyāna, 대승) 가르침의 문제점은 과학과 기술의 진보로 인해 분명해졌습니다. ‘Key Problems with Mahāyāna Teachings’ 포스트와 ‘Saddharma Pundarika Sutra (Lotus Sutra) – A Focused Analysi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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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 포스트에서 언급한 ‘거짓 가르침’ 중의 어떤 것은 테라와-다(Theravāda) 불교 국가, 특히 스리랑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명상 전이나, 적어도 명상 중에 순수한 담마를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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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길을 알지도 못한 채로 어떻게 부처님의 길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바-와나-야 빠하-땁바-(Bhāvanāya pahātabbā)(명상을 통해 번뇌를 제거)는 ‘닷사네나 빠하-땁바-(dassanena pahātabbā)(진정한 담마를 이해함으로써 잘못된 견해로 인한 번뇌를 근절) 뒤에 옵니다. 그것은 또한 팔정도에서,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가 처음이고,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가 마지막에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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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모든 사람들이 가능한 한 많이 포스트를 읽고 담마를 배우기를 매우 권장합니다. 붓다 담마에 대한 친숙한 면과 상관없이, ‘세 단계 실천’ 섹션의 첫째 섹션인 ‘도덕적 삶과 기본 원칙’에 있는 포스트들은 바탕이 되기 때문에 적어도 한 번쯤은 읽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필자는 경험을 통해 아래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기본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관련된 고급 자료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더 나은 느낌이 반드시 올바른 길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8. 잘못된 접근 방식을 뽑아내 없앨 때, 이해해야 할 핵심 포인트는 ‘더 나은 느낌’을 주는 방법이 많다는 것입니다. 마약 사용자는 마약을 복용함으로써 즉시 ‘안정된 상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i) 일시적인 해결책이고 (ii)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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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흡 명상이나 까시나 명상과 같은 아나리야(anariya, 비불교적) 명상에 ‘중독’되는 것은 좀 나을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생에 어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것들에 중독됩니다. 비록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그것들은 장기적으로(결국) 해로운 영향을 끼칩니다. 왜냐하면 아빠-야-(apāyā)에 재탄생하지 않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 이 인간 생에서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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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 기법을 사용하여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한다고 해서 그것이 해결책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접근 방식의 근저에 있는 기본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필자는 그들이 하는 것으로 기분이 더 좋아지기 때문에 그들의 기법(방식)을 확신하는 여러 그룹을 만났습니다. 방금 논의한 바와 같이, ‘좋은 경험’은 올바른 접근 방식을 통한 ‘더 나은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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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이론’이나 ‘접근 방식’에 대해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비판적으로 조사/검토하고 그것이 우리 주변에서 보는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사람들이 다르게 태어나는지 설명할 수 있을까요? 유사하게,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잘 살고, 왜 어떤 사람들만 끔찍한 질병에 걸리고, 왜 동물은 고통을 겪지만 여전히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즉, 왜 그들은 제한/제약된 마음을 가지는) 것일까요? 오직 순수한 붓다 담마(Buddha Dhamma)만이 이 모든 것 그리고 그 이상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정식(공식) 명상과 일상(비공식) 명상
9. 마지막으로, 일단 증거를 보고 길을 결정하면, 정식(공식) 명상 또는 일상(비공식)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정식(공식) 명상에 참여하려면, 다음 중의 어떤 명상 세션을 선택하여 시간과 장소를 배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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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적인 앉기 명상(좌선) 또는 걷기 명상(행선) 세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명상을 위한 유일한 정식(공식) 방법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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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야(Ariya),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한 사람이 전하는 법문을 듣는 것은 탁월한 정식 명상 세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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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마 개념, 예를 들면 아닛짜(anicca)에 대해 [책을] 읽고 숙고하는 것도 또한 정식(공식) 명상입니다. 마음이 평온할 때 [책을] 읽거나 [법문을] 듣는다면,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10. 일상(비공식) 명상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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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히 담마 개념을 생각하거나 담마 개념을 명확히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명상입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워 있거나, 진료실에서 기다리고 있거나,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 등이 될 수 있습니다. 공상을 하거나 탐욕스럽거나 증오스럽거나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대신에, 사람들은 담마를 숙고하며 그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다섯가지 장애를 억누르거나 제거하면 사마-디에 이른다
11. 이 모든 경우에 5가지 장애를 억제하여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담마 개념에 집중되면 더 깊은 사마디(Samādhi)에 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일상(비공식) 명상을 하는 습관을 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운전 중일 때나 일터에서 일에 집중할 때 등에는 명상하는 것을 피하세요! 그것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이해력을 기르면서, (결과를 염두에 두며) 지혜를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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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가지 장애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열쇠 - 5가지 장애’ 포스트에 논의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