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Gödel’s Incompleteness Theorem’ 포스트
- 2021년 3월 6일 개정; 2021년 3월 24일 개정(#2 추가)
소개
1. 수학자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은 불완전성 정리(Incompleteness Theorem)에서, 시스템 내부에서 시스템의 완전한 ‘진리’ 또는 ‘완전한 설명’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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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어떤 과학자가 발견한 어떤 이론도 ‘궁극적인 진실(진리)’이라고 증명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시스템 안에 있으면 시스템의 전체 그림을 이해할 수 없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그러니까(요컨대) 시스템의 일부만 연구할 수 있습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대한 간단한 설명
2. 다음 동영상은 자세한 설명 없이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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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생시각 8분에서, 그는 “ ‘이 세상’의 바깥에 있는 것은 ‘물질’도 아니고, 에너지도 아니고, 공간도 아니고, 시간의 바깥이다(시간도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바깥’ 즉 닙바-나(Nibbāna, 열반)에서만 ‘완전하고 자기 일관적인 그림’을 얻을(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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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닙바-나(열반)에 도달하시자, 붓다께서는 ‘바깥에서 보실’ 수 있었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실’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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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에서 보는 자는 그 누구도 이 세상에 대한 궁극적인 진실(진리)을 결코 알아낼(찾아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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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두 번째 비디오는 흥미롭습니다. 그는 ‘우주의 바깥’을 신(절대자)에게 할당합니다(신/절대자의 영역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는 그의 결론은 완벽합니다.
잘못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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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절대자)’ 또는 ‘창조주’에 관한 핵심 질문은 ‘그 절대자가 시스템의 안에 있는가, 아니면 시스템의 바깥에 있는가?’입니다. 그 절대자가 [시스템의] 안에 있다면, 그는 또한 ‘괴델의 정리’에 종속됩니다(괴델의 정리의 대상이 됩니다). 만약, 그 절대자가 바깥에 있다면, 그가 어떻게 바깥에서 세상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세상/시스템의] 안과 바깥은 상호 배타적입니다!
닙바-나는 이 세상의 바깥이다
3. 붓다께서는 마음을 개발하여 ‘이 세상’을 초월하셨습니다. 31 존재 영역에 대한 설명에 대해서는 ‘붓다 담마’ 섹션의 ‘대통합이론인 담마’(The Grand Unified Theory of Dhamma)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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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또한 인간이 증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붓다께서 2500여년 전에 ‘이 세상’에 대해 그렇게 많은 것을 설명하실 수 있었다는 것을, 그 증거를 조사함으로써 그 진실을 받아들입니다. '이 세상'이란 지구나 이 우주뿐 아니라 모든 존재(유정체)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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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붓다께서는 육체가 죽을 때까지 이 세상에 사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마음은 이 세상을 초월하셨습니다. 닙바-나(열반)를 얻는 것은 붓다후드(부처님의 지위) 또는 아라한뜨후드(아라한과의 지위)에서 도달됩니다. 그 닙바-나(열반)는 육체가 죽을 때 빠리닙바-나(Parinibbāna, 반열반/무여열반)에서 완성됩니다.
4. 필자가 위에서 언급한 것을 반증(오류를 입증)하는 유일한 방법은 붓다 담마(Buddha Dhamma) 내에서 비일관성을 찾는 것입니다(이것은 과학자들이 과학 이론을 평가할 때 사용되는 것과 동일한 방법입니다). 필자는 [일관성 없는] 어떤 것도 [붓다 담마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붓다 담마: 비인지성과 자기 일관성’을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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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 일관성이 없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지난 2500여년 동안 수많은 ‘변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이트에서 일관성이 없는 어떤 것을 발견하면 필자에게 알려주십시오.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필자의 부주의나 무지로 인한 것이며, 그것들을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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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것이 일관성 없는 ‘이런저런 것들’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잘못된 곳에 퍼즐 조각이 있으면 퍼즐을 푸는 데 방해가 될 뿐인 것처럼, 어딘가에 잘못된 정보가 있으면 ‘붓다 담마의 순수한 버전을 알아내는’ 데 진전이 느려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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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필자는 ‘퍼즐의 큰 조각’이 여기 잘못된 곳에 있다고 믿습니다.
필자는 과학자들이 붓다 담마에 흥미를 가지게 되기를 희망한다
5.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은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정말로 즐겼을 것입니다. 그가 살아서 여기의 자료를 살펴보고 비일관성(모순점)을 지적한다면 엄청날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파인만, 괴델, 하이젠베르크, 드 브로이, 사간 등 필자가 존경하는 많은 과학자들은 부처님의 메시지를 쉽게 파악(이해)했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순수한 담마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데이비드 봄(David Bohm)이 가까이 다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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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세대의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순수한 담마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6. 이 포스트로부터 잘못된 인상(오해)이 없기를 바랍니다. 필자는 특히 과학과 물리학을 사랑합니다. 순수한 담마를 발견하기 전에는 물리학이 필자의 열정이었고 여전히 새로운 발견들에 처지지 않고 따라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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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비활성 물질이 어떻게 작용(거동)하는지 발견하는 것은 전체 존재에 대한 지식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것을 필자는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전까지는 물질에 대한 모든 것을 발견할 수도 없습니다. 붓다께서는 “마노 뿝방가마- 담마-...(mano pubbaṅgamā dhammā…)”, 즉 “마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7.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1905년에 특수 상대성 이론을, 1915년에 일반 상대성 이론을 소개했습니다. 첫 번째는 뉴턴의 세 가지 운동 법칙이 대략적으로만 정확하며, 속도가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두 번째는 뉴턴의 중력 법칙 또한 대략적으로만 정확하며, 중력이 매우 강해지면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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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의식 레벨’을 초월하는 기술을 개발할 때까지는 뉴턴의 운동 법칙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습니다. ‘기술 이용에 의한 의식 확장’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것들(뉴턴의 운동 법칙)은 우리의 ‘탐지 감도(probing sensitivity)’ 내에서는 문제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과학자들은 상대성 이론의 방정식을 사용하여 달로 가는 ‘로켓 궤적’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것에는 뉴턴의 방정식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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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식으로, 과학이 발견한 모든 것은 우리의 시야을 넓혀주지만 결코 ‘궁극의 해답’을 주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정화하는 것만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찾을(알) 수 있습니다. ‘마음을 청정하게 함에 의한 의식 확장’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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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진술은 지금 당장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퓨어담마] 웹사이트에 있는 자료를 살펴보면, 차츰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검증(테스트) 가능한 예측
8. ‘좋은 이론’은 모두 ‘검증(테스트) 가능한 예측’에 관한 것입니다. 홈페이지에서 언급했듯이, 필자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 대한 자료를 ‘자연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이론’으로 제시하려고 노력합니다. 필자가 많은 에세이(포스트)에서 가리켜 보였듯이, 이 세상의 본질(특성)에 대한 많은 ‘예측’ 또는 ‘진술’은 오랫 동안, 특히 지난 몇 백년 동안 과학에 의해 정확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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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그 기록만으로도 또 다른 예측을 할 수 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부분적으로만 옳고 한정된 기간 동안만 옳다는 것이 증명될 것입니다. 진화론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기술을 사용하여 과거 사건을 추적할 수 있는, 이 행성의 최근 과거에 대해서만 옳습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으로 신뢰성 있게 측정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연대는 약 50,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가 그 한계를 100만 년으로 설정하더라도, 그것은 이 지구의 40억 년 이상의 수명에 비하면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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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론에서 올바르게 언급된 것은 종(species)이 생겨나기에 적합하고 그리고 존속(생존)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될 때, 종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붓다 담마의 일부 측면은 세간 해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9. 그러나, 우리 마음에 맞지 않는 개념을 말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것은 믿음이 상실되게 할 뿐입니다. 수백 년 전에서 현재로 시간 여행을 하여 온 사람에게 스위치를 돌리는 것만으로 전구가 어떻게 켜질 수 있는지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전류의 개념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것을 ‘마술 속임수’라고 믿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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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그 당시 적어도 최고 제자(상수 제자)가 알 수 없는 자연의 어떤 세부사항은 밝히지 않으셨습니다. 띠삐따까(Tipiṭaka)에 있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때, 아빈냐-(abhiññā, 신통)력에서 부처님 다음으로 뛰어났던 목갈라나 존자(Ven. Moggallana)는 깃자꾸따(Gijjakuta) 산 근처에서 뻬따(peta, 아귀) 영역에 있는 많은 존재들을 보았습니다. 뻬따(peta, 아귀) 영역에 있는 존재들은 [뛰어난] 신통력을 가진 자들만이 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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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신통(아빈냐-, abhiññā)력을 가진 아라한 중 어느 누구도 그 뻬따(peta)를 볼 수 없었고, 그 아라한들은 목갈라나 존자(Ven. Moggallana)에게 “어떻게 우리는 뻬따들을 볼 수 없습니까?”라고 물었고, 목갈라나 존자는 그 아라한들에게 부처님에게 물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그 아라한들에게 자신도 이전에 그 뻬따(peta)들을 실제로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빅쿠들이 왜 붓다께서는 그것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는지를 물었을 때,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대 스스로가 확인할 수 없는 말을 하면, 그것은 의심만 생기게 한다. 그 때문에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목갈라나(Moggallana)가 그 뻬따(peta)들을 보았으므로, 그것을 확인할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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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후드와 관련된 논란들(Buddhahood Associated Controversies)’ 서브섹션 및 ‘붓다 담마 ㅡ 과학적 접근(Buddha Dhamma – A Scientific Approach)’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10. 오늘날에도 신통(아빈냐-, abhiññā)력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영역에 있는 이 존재들의 일부를 볼 수 있습니다. 필자의 스승이신 와하라까 테로께서도 그들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필자는 그 존재들을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빈냐-(abhiññā, 신통) 능력을 개발하려면, 제4선정(자나-, jhāna)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하며 그다음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필자가 그 단계에 이르면, 여기에 언급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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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닙바-나(열반)을 얻기 위해 아빈냐-(abhiññā, 신통)력이나 자나-(선정)를 개발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전에 자나-(선정)를 개발하지 않고도 아라한과(Arahanthood)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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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닙바-나(Nibbāna, 열반)의 ‘쿨링 다운(cooling down, 열 내림)’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자체가 실천 수행을 계속하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닙바-나를 맛보는 방법’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참고 자료
이 주제에 대해 더 많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다음 참고 자료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누구에게도 ‘궤도를 벗어나는’ 것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필자는 기존의 모든 과학적 이론이 모두 시스템 내에서 생성되었기 때문에 불완전하다는 점을 가리켜 보여주기 위해 이 섹션을 포함했습니다. 붓다께서는 '이 세상'을 초월하여, 완전한 세계관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Ernst Nagel과 James R. Newman의 ‘Gödel’s Proof(2001년)’.
John L. Casti와 Werner DePauli의 ‘Gödel – A Life of Logic(2000년)’.
Rebecca Goldstein의 ‘Incompleteness: The Proof and Paradox of Kurt Gödel(2005년)’.
Francesco Berto의 ‘ There’s Something About Gödel(2009년) ’.
Douglas R. Hofstadter의 ‘Gödel, Escher, Bach – An Eternal Golden Braid(197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