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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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것'과 '삭까-야 딧티' 사이의 차이

 

원문: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Difference Between “Me and Mine” and Sakkāya Diṭṭhi’ 포스트

- 2020년 6월 16일 작성

 

‘나와 내 것’의 제거는 단계적 과정이다

 

1. 이전 포스트에서, ‘나’와 ‘내 것’이라는 인식은 고통(괴로움)의 근본 원인이라고 논의하였습니다.  ‘나 및 내 것 ㅡ 고통(괴로움)의 근본 원인’을 참조하세요.

 

  • * 우리는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에 도달할 때까지 ‘나’라는 인식을 제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논의했습니다.

  • * 그러므로, 실천의 시작에서 그것을 초점으로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 * 먼저, 10가지 유형의 잘못된 견해(micchā diṭṭhi)를 제거할 필요가 있습니다. 깜마(kamma)/위빠-까(vipāka)의 진실, 재탄생 과정의 존재,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 순간에 정신적 몸(인간 간답바의 경우에는 간답바)의 창출 등을 이해하기 전에는 닙바-나(Nibbāna)에 이르는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밋차- 딧티, 간답바, 및 소-따빤나 단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두 번째 단계는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 포스트에서 논의하겠습니다. 

 

딧티, 산냐, 및 찟따 위빨라-사 ㅡ 모든 나쁜 습관을 제거하는 데 있어 세 가지 장애

 

2. 위빨라-사(vipallāsa)는 마음 속의 ‘왜곡’을 의미합니다. 관련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잘못된 견해를 바탕으로 현명하지 못한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명확히 하기 위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 * 술에 중독된 알코올 중독자를 생각해 보세요. 중독은 자신이 가진 어떤 문제를 잊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것이 좋다거나, 단지 ‘술취한 상태’를 즐기는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 * 좋은 친구의 권유에 따라, 그 사람은 음주의 결과에 대해 배우기 시작합니다. 술은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술취한 상태에서 부도덕한 행위를 하게 되어, 나쁜 재탄생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자신이 음주에 대해 잘못된 견해, 즉 음주에 대한 딧티 위빨라-사(diṭṭhi vipallāsa)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합니다. 이제 그 사람의 마음에는 음주에 대한 딧티 위빨라-사(diṭṭhi vipallāsa)가 없습니다.

  • * 하지만, 그 사람은 ‘술을 마시고 싶은’ 유혹이 여전히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전처럼 술에 취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이따금 술 한잔 하고 싶은 바램(욕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술을 마시고 있다면,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산냐- 위빨라-사(saññā vipallāsa)는 여전히 있습니다. 그것을 없애기 위해, 그는 음주의 부정적인 결과를 계속 생각하고, 또 다른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도 계속 물리칠 필요가 있습니다.

 

3. 그 사람이 그 [술 끊는] 실천을 계속하면, 그 다음, 그는 그 산냐 위빨라-사(saññā vipallāsa)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욕망의 흔적(자취)은 찟따 위빨라-사(citta vipallāsa)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극도의 유혹을 받으면 그는 ‘술 한잔하는 것’을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찟따 위빨라-사(citta vipallāsa)입니다. 이제, ‘지속적인 실천’에 따른 또 다른 영향(효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도 처리할 것입니다.

 

  • *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몸은 단 한잔의 술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음주로 만족을 얻기 보다는, 그 대신에 두통이 생길 지도 모릅니다. 그 때, 그는 자발적으로 단 한 잔의 술도 포기할 것입니다. 

  • * 그것은 우리의 신체 기능이 ‘마음 상태’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맨처음부터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띨락카나(Tilakkhana)(아닛짜 특성)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동안에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상당한 진전을 이룬 후에 분명해집니다.

  • * 그것은 간단한 설명입니다. 더 상세한 내용은 ‘위빨라-사(딧티, 산냐, 찟따)는 상카-라에 영향을 미친다’ 포스트에 있습니다.

 

‘딧티 위빨라-사’만 소따빤나 단계에서 제거된다

 

4.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서는 어떤 것을 ‘나’ 또는 ‘내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결실없다는 것을 지혜로 보기만 할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이전 포스트에서 보았듯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몸입니다.

 

  • * 붓다께서는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섯 부분으로 나누셨습니다. 하나는 육체적인 개체이고 네 가지는 정신적 개체입니다. 그것은 ‘나’를 ‘내 몸’과 ‘내 마음’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마음 현상은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우리는 어떤 것들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웨다나, vedana) 그것들을 인식합니다(산냐-, saññā).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생각하고(saṅkhāra), 어떤 기대들을 지니고 행합니다(윈냐-나, viññāṇa).

  • * 우리는 그 다섯 개체, 즉 다섯 무더기를 상세히 논의하였습니다. 다섯 무더기(The Five Aggregates, Pañcakkhandha) 서브 섹션에 있는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 * 그 다섯 무더기(빤짜 칸다-, pañca khandhā)에 대한 갈망이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 오취온)입니다.

  • * 우리는 그 다섯 무더기가 결실있고 오래 지속하는 행복을 준다는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갈망합니다. 그 잘못된 견해가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입니다. 

 

‘삭까-야’는 ‘빤쭈빠-다-낙칸다-’를 의미한다

 

5. 쭐-라웨달라 숫따(Cūḷavedalla Sutta, MN 44)로 설해진 바와 같이, 삭까-야(sakkāya)는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 pañca upādāna khandhā)를 의미합니다.

 

  • * 삭까-야(sakkāya)의 의미를 보면, 그것은 ‘사쓰(sath)’ + ‘까-야(kāya)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쓰(sath)’는 ‘좋은’을 의미하고, ‘까-야(kāya)’는 ‘모음(더미)’을 의미합니다.

  • * 다섯 무더기(오온)에서, 우리는 다섯가지 무더기(모음, 더미)를 지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기억하는 것처럼, ‘루-빠 무더기’는 자신의 내부 루-빠(internal rūpa)와 외부 루-빠(external rūpa)를 포함합니다. 그것들은 현재 루-빠(present rūpa), 과거 루-빠(past rūpa), 및 ‘미래 루-빠(future rūpa)의 심상화(마음속 그림)’를 포함합니다.

  • * 그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몸, 즉 ‘내부 루-빠(internal rūpa)’(그 현재 상태, 그 과거의 기억, 및 그 미래 상태에 대한 기대)입니다. 그 내부 루-빠(internal rūpa)들은 한결같이 루-빠 우빠-다-나 칸다-(rūpa upādāna khandhā)에 있습니다.

  • * 그 루-빠 우빠-다-나 칸다-(rūpa upādāna khandhā)는 우리가 좋아하거나 갈망하는 외부 루-빠(external rūpa)도 포함합니다. 그것에는 자신의 가족, 친구, 소유물(재산) 등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 * 그 다음, 다른 네 가지 무더기는 루-빠(rūpa)를 수반하는 자신의 정신 특성을 포함할 것입니다.

  • * 우리는 모든 다섯가지 우빠-다-나 칸다-(upādāna khandhā)가 좋거나 결실있다(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사쓰 까-야(sath kāya)입니다(사쓰 까-야(sath kāya)는 삭까-야(sakkāya)로 압운됨). 

  • * 더 자세한 내용은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 ㅡ 빠띳짜 사뭅빠-다의 결정적 단계’ 포스트에 있습니다.

 

‘삭까-야 딧티’는 ‘빤쭈빠-다-낙칸다-’가 결실있다고 하는 견해를 의미한다

 

6. 이제 우리는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다섯 무더기의 그 부분들을 좋아하고 갈망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들이 결실있고 오래 지속하는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 * 우리가 갈망하는 그 모든 것들이 즐거움을 줄 때 행복하게 됩니다. 그것(행복)은 그것들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그대로 머무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걱정하고 괴로워합니다.

  • * 삭까-야딧티 숫따(Sakkāyadiṭṭhi Sutta, SN 22.155)는 #5 및 #6에서 논의한 것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7. 삭까-야딧티 숫따(Sakkāyadiṭṭhi Sutta, SN 22.155)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루-뻬 코, 빅카웨, 사띠, 루-빵 우빠-다-야, 루-빵 아비니윗사 삭까-야딧티 웁빳자띠. 웨다나-야 사띠 … 산냐-야 사띠 … 상카-레수 사띠 … 윈냐-네 사띠, 윈냐-낭 우빠-다-야, 윈냐-낭 아비니윗사 삭까-야 딧티 웁빳자띠.”

(“rūpe kho, bhikkhave, sati, rūpaṃ upādāya, rūpaṃ abhinivissa sakkāyadiṭṭhi uppajjati. Vedanāya sati … saññāya sati … saṅkhāresu sati … viññāṇe sati, viññāṇaṃ upādāya, viññāṇaṃ abhinivissa sakkāya diṭṭhi uppajjati.”)

 

번역: 다양한 루-빠(특히 자신의 몸)에 들러붙고, 그것에 높은 가치를 둘 때, 삭까-야 딧티(정체성 견해, identity view)가 생긴다. 그런 ‘루-빠(rūpa)’와 연관된 웨다나(vedana),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및 윈냐-나(viññāṇa)에 들러붙고 그것들에 높은 가치를 둘 때, 정체성 견해(identity view)가 생긴다.

 

  • * 달리 말하면, 이 세상이 결실있고 오래 지속하는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으로 본다면,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지니는 것입니다. 

  • * 그 잘못된 견해로 인해, 사람들은 세상 것을 충분하게 모아 행복이 오래 지속되게 보장함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 * ‘완전히 통제함’이라는 그 인식은 앗따(atta)로도 표현됩니다. ‘사람’이라는 평범한 의미는 보통 ‘장음 a’가 있는 앗따-(attā)로 표현된다는 점에 주목하세요.

  • * 그러므로, ‘앗따(atta)’라는 빠알리 낱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완전히 통제함’이라는 궁극적(절대적, paramattha) 의미는 ‘앗따(atta)’로 표현됩니다.  평범한(상대적, vohāra) 의미는 ‘사람’을 나타내는 ‘장음 a’가 있는 ‘앗따-(attā)’입니다.

  • * 이에 대해 더 논의해 보겠습니다.

 

‘앗따’는 평범한(오하-라) 의미와 절대적(빠라맛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8. 궁극적 의미에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살아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교류에서 ‘나’와 ‘내 것’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야 합니다. 붓다께서도 당신 자신의 전생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종종 “내가 이 개념을 설명해 보겠다”라는 말씀으로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

 

  • * 더욱이 붓다께서는 사회에서 인정된 통상적인 규범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나’ 또는 ‘자아’가 없다는 사실을 강요하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 *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를 얻고도 여전히 재가 생활을 했던 부유한 사람들과 심지어 왕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라한 단계에서는 빅쿠가 되어야 합니다[역주: 재가 생활을 할 수 없는 마음 성향이므로 빅쿠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 * 띠삐따까(Tipiṭaka) 전체에서 ‘앗따(atta)’라는 낱말은 여러 가지 다른 의미로 나타납니다. 주어진 맥락(문맥)에서 적절한 의미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 * 그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 두 문맥, 즉 “turn right”와 “you are right”에서 ‘right’라는 낱말을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방향’을, 두 번째는 ‘올바른(또는 옳은)’을 의미합니다.

 

앗따는 평범한 용법에서 ‘나’를 의미한다

 

9. ‘앗따-(attā)’가 사람을 뜻하는 구절이 띠삐따까(Tipitaka)에 많이 있습니다. 다음은 몇 가지 예입니다.

 

  • * 담마빠다(Dhammapada, 법구경) 6.80 게송에서, “앗따-낭 다마얀띠 빤디따-(Attānaṃ damayanti paṇḍitā)”는 “현명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다스린다”를 뜻합니다.

  • * 담마빠다(Dhammapada, 법구경) 21.291 게송에서, “앗따노 수카밋차띠(Attano sukhamicchati)”는 “각자는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다”를 뜻합니다. 또한, ‘수카밋차띠(sukhamicchati)’는 ‘수캄(sukham)’ + ‘잇차띠(icchati)’로 합성된 낱말로서, 그 속에 잇짜(icca, 바램)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 * 앗따디-빠 숫따(Attadīpa Sutta, SN 22.43)에서, “앗따디-빠- 위하라타(attadīpā viharatha)”는 “그대 자신의 섬을 만들라”를 뜻하며, “각자는 자기 자신의 피난처를 구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 * ‘앗따-(attā)’의 절대적 또는 궁극적(paramattha) 의미는 다음 포스트에서 논의하겠습니다.

 

무엇이 나(앗따-)에 있는가?

 

10. 고대부터 사람들은 ‘나’(또는 빠알리어로 ‘앗따-, attā’)를 어떻게 정의할 지에 대해 생각해 왔습니다. 물론, 자신의 몸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자신의 정신 활동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생각, 감정(느낌), 인식(지각)은 각 사람마다 다릅니다.

 

  • * ‘나(me)’, ‘자아(self)’ 또는  ‘앗따-(attā)’의 일부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루-빠(rūpa), 웨다나(vedana),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및 윈냐-나(viññāṇa)라는 다섯 가지 개체에 포함됩니다.

  • * 오직 부처님 만이 철저히 분석하여 그 다섯 가지 기준으로 사람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모든 부처님들이 그 분석으로 가르칩니다.

  • * 물론, 각 부처님은 각 시대에 그것을  스스로 알아 내십니다.

  • * 보통 특정한 겁(eon)에 최대로 부처님 한 분만이 출현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 겁(eon)은 다섯 분의 부처님이 출현하는 특별한 겁입니다. 이전 부처님(깟사빠 부처님, Buddha Kassapa)의 가르침의 잔재는 베다의(Vedic) 가르침을 통해 널리 퍼졌고 고따마 붓다(Buddha Gotama)께서 [왕자로] 태어 나셨을 때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 용어는 고따마 부처님 이전에도 있었다 ㅡ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11. 고따마 부처님(Buddha Gotama)은 그 이전의 베다 문헌(Vedic literature)에 그 용어들이 나타나 있기 때문에 베다(Veda)로부터 그 ‘다섯 가지 면으로 분석한 것(오온)’을 채택하였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 * 고따마 부처님(Buddha Gotama) 이전에 이 지구상에는 깟사빠 부처님( Buddha Kassapa)이 계셨습니다. 깟사빠 부처님(Buddha Kassapa)의 가르침(특히, 핵심 개념에 대한 진정한 의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깜마(kamma),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다섯 무더기(오온), 및 기타 많은 개념을 포함하여 많은 용어가 베다의(Vedic) 가르침에 통합되어 많은 세대에 걸쳐 전달되었습니다. 물론, 베다의(Vedic) 가르침은 산스끄리뜨(Sanskrit)어를 사용했는데, 산스끄리뜨(Sanskrit)는 빠알리(Pāli)어 또는 마가다(Magadha)어에서 유래(파생)하였습니다. 산스끄리뜨(Sanskrit)는 ‘~에서 유래된(파생된)’을 의미합니다(‘san’ + ‘krutha’, 싱할라어로는 ‘සන් කෘත’ 또는’ සංස්කෘත’).

  • * 깜마(kamma), 닙바-나(Nibbāna),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와 같은 빠알리 낱말은 산스끄리뜨어에서는 대부분 ‘r’ 음을 추가하여 ‘더 인상적인 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세 가지 빠알리(Pāli) 낱말은 산스끄리뜨어에서는 각각 까르마(karma), 니르와-나(nirvāna), 및 쁘라띠-뜨야사무뜨빠-다(Pratītyasamutpāda)가 되었습니다.

  • * 다섯 무더기(빤짜 칸다,  pañca khandha)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다의(Vedic) 가르침은 그것들을 다섯 스깐다스(skandhas)로 취하였습니다.

 

깜마, 닙바-나, 빠띳짜 사뭅빠-다 등은 누구의 개념인가?

 

12. [이에 대해] 전체를 완전히 설명하려면 아마 책 한권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띠삐따까(Tipiṭaka)에는 고따마 붓다께서 여러 브라만(Brahmin)들에게 그들의 가르침 중의 많은 부분이 깟사빠 부처님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신 사례가 여럿 있습니다.

 

  • * 예를 들어, 마-간디야 숫따(Māgandhiya Sutta, MN 75)에서, 고따마 붓다께서는 베다(Veda)의 한 구절을 인용한 브라만(Brahmin)과 대화를 나눕니다. 요컨대, 고따마 붓다께서는 그 구절이 처음에 깟사빠 부처님에 의해 발언되었고 진정한 의미가 없는 채로 베다(Veda)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Arōgyā Paramā Lābhā..’ 포스트에서 그것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 * 싯다르타 왕자가 태어 났을 때, 그런 베다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많은 중요한 개념들이 잘못 해석되어, 다소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 * 온라인 포럼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따마 붓다께서 베다 개념(Vedic concept)을 채택한 것인지 궁금해 하기 때문에, 필자는 위에서 언급했습니다. 그런 개념은 원래 깟사빠 부처님(Buddha Kassapa)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러나 모든 부처님은 자신의 노력으로 그것들을 발견합니다.

  • * 그 다음, ‘인간의 진화’에 관한 질문이 있습니다. 인간의 진화는 없었습니다. 인간은 지구 태초에 (브라흐마와 같은 몸으로) 지구에 존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모든 것들을 논의하기 위해 책 한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필자는 ‘Buddhism and Evolution – Aggañña Sutta (DN 27)’ 포스트에서 [지구의] ‘태초’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습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 개념을 더 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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