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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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 아꾸살라와 아낫따 – 결정적인 연결



원문: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Dasa Akusala and Anatta – The Critical Link’ 포스트

- 2017년 4월 2일; 2017년 11월 10일; 2018년 9월 1일; 2019년 6월 6일 개정


1. 이 중요한 포스트는 붓다 담마의 심오한 가르침(아닛짜_anicca, 둑카_dukkha, 아낫따_anatta)과 실천, 즉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를 삼가고 다사 꾸살라(dasa kusala, 10가지 선)를 늘려감으로써 마음을 깨끗이 하는 실천 사이의 연결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 띨락카나(Tilakkhana, 세상의 3가지 특성)는 이론적인 면(세상의 본래 모습, 특질)을 나타내고,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는 [불선의] 실천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둘 사이의 연결이 중요합니다.

  • * 이 ‘둘 사이의 연결’이 띠삐따까(Tipitaka, 삼장) 밖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을 필자는 보지 못했습니다.[의역: 삼장에 언급되어 있는 ‘둘 사이의 연결’에 대해서는 무시되었습니다.]


2. 앞 포스트인 ‘아낫따 – 어느 앗따의 반대말일까?’에서, 왜 빠알리 낱말인 ‘앗따(atta)/아낫따(anatta)’가 ‘자아(self)/무아(no-self)’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실속 있는(with essence)/실속 없는(no essence)’ 또는 ‘진실(truth)/진실 아님(untruth)’ 또는 ‘유용한(useful)/유용하지 않은(not useful)’ 또는 ‘보호된(protected)/도움이 안 되는(helpless)’를 뜻하는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 * 또한, 어떻게 빠알리 낱말인 ‘앗따(atta)/아낫따(anatta)’가 산스크리트(Sanskrit) 낱말인 ‘아르타(artha)/아나르따(anartha)’(싱할라어로는 අර්ථ/අනර්ථ)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진실(truth)/진실 아님(untruth)’ 또는 ‘유용한(useful)/유용하지 않은(not useful)’의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하였습니다.

  • * 마침내, 아낫따(anatta)가 {그래서 둑카(dukkha)와 아낫따(anatta)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를 행함에 따라 나타난 것이라는 사실에 이르렀습니다.


3. 최근,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aya, 증지부)의 많은 숫따(sutta, 경)가 다양한 개념을 간단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많은 숫따(sutta, 경)는 바로 한 구절로 핵심 개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Anguttara Nikāya – Suttā on Key Concepts’를 보세요.


  • * 여기서는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aya, 증지부)에 있는 짧은 길이의 경 3개를 검토하고자 합니다. 이 경들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와 ‘띨락카나(Tilakkhana, 세상의 3가지 특성)’ 사이의 연결을 명확하게 하는데 이용될 수 있습니다.


4. 첫째, 꾸살라 숫따(Kusala Sutta)는 사두왁가(Sadhuvagga)에 있는 경(AN 180)으로서, 바로 한 구절로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 * “..까따만짜 빅카웨, 아꾸살랑? 빠-나-띠빠-또-, 아딘나-다-낭, 까-메수밋차-짜-로-, 무사-와-도-, 삐수나- 와-짜-, 빠루사- 와-짜-, 삼팝빠라-뽀-, 아빗짜-, 브야-빠-도-, 밋차-딧티 아꾸살랑..(..katamanca bhikkhave, akusalam? pānātipātō, adinnādānaṃ, kāmesumicchācārō, musāvādō, pisunā vācā, parusā vācā, samphappalāpō, abhijjhā, vyāpādō, micchādiṭṭhi akusalaṃ..)”

  • * 위 구절은 전통적으로, "살생, 도둑질, 성적 비행, 거짓말, 헐뜯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 탐함, 미워함, 잘못된 견해가 불선이다"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것들은 ‘Ten Immoral Actions (Dasa Akusala)’ 포스트에서 논의되었습니다.

  • * 숫따(sutta)의 마지막 구절인 그 다음 구절에서, 다사 꾸살라(dasa kusala)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의 반대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웨라마니_veramani는 ‘~을 삼가하다’를 의미합니다.): “..까따만짜 빅카웨, 꾸살랑? 빠-나-띠빠-따- 웨라마니, 아딘나-다-나 웨라마니, 까-메수밋차-짜-라- 웨라마니, 무사-와-다- 웨라마니, 삐수나- 와-짜- 웨라마니, 빠루사- 와-짜- 웨라마니, 삼팝빠라-빠- 웨라마니, 아빗짜- 웨라마니, 브야-빠-다 웨라마니, 삼마-딧티 꾸살랑 띠.(..katamanca bhikkhave, kusalam? pānātipātā veramani, adinnādānā veramani, kāmesumicchācārā veramani, musāvādā veramani, pisunā vācā veramani, parusā vācā veramani, samphappalāpā veramani, abhijjhā veramani, vyāpāda veramani, sammādiṭṭhi kusalaṃ ‘ti.)”

  • * 그래서, 꾸살라(kusala)와 아꾸살라(akusala)는 그 경(sutta)에서 명확하고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5. 그리고 바로 그 다음 경인 앗따 숫따(Attha Sutta, AN 181)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의 항목으로 아낫토-(anatthō)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 * “..까따모 짜 빅카웨, 아낫토-? 빠-나-띠빠-또-, 아딘나-다-남, 까-메수밋차-짜-로-, 무사-와-도-, 삐수나- 와-짜-, 빠루사- 와-짜-, 삼팝빠라-뽀-, 아빗짜-, 브야-빠-도-, 밋차-딧티 - 아얌 윳짜띠, 빅카웨, 아낫토-..(..katamo ca bhikkhave, anatthō? pānātipātō, adinnādānaṃ, kāmesumicchācārō, musāvādō, pisunā vācā, parusā vācā, samphappalāpō, abhijjhā, vyāpādō, micchādiṭṭhi – ayam vuccati, bhikkhave, anatthō..)”

  • * 숫따(sutta)의 마지막 구절인 그 다음 구절에서, 앗토-(atthō)가 아낫토-(anatthō)의 반대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빠-나-띠빠-따- 웨라마니, 아딘나-다-나 웨라마니, 까-메수밋차-짜-라- 웨라마니, 무사-와-다- 웨라마니, 삐수나- 와-짜- 웨라마니, 빠루사- 와-짜- 웨라마니, 삼팝빠라-빠- 웨라마니, 아빗짜- 웨라마니, 브야-빠-다 웨라마니, 삼마-딧티 - 아얌 윳짜띠, 빅카웨, 앗토-. 띠.(pānātipātā veramani, adinnādānā veramani, kāmesumicchācārā veramani, musāvādā veramani, pisunā vācā veramani, parusā vācā veramani, samphappalāpā veramani, abhijjhā veramani, vyāpāda veramani, sammādiṭṭhi – ayam vuccati, bhikkhave, atthō. ‘ti.)”

  • * 이것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가 ‘진실한 본성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본성에 반하여 행할 때,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아낫따 – 어느 앗따의 반대말일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Anguttara Nikāya – Suttā on Key Concepts’ 포스트에 이 점을 확인해 주는 짧은 경(sutta)이 더 많이 있습니다.


6. 위 두 짧은 숫따(sutta)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명백하게 해줍니다.


  • * 아낫따(anatta)는 자아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 * 아낫따(anatta)는 그 핵심이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를 행함으로 인해 재탄생 과정(윤회)에서 난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 * 그래서, 닙바나(Nibbana, 열반)에 이르는 것은 그 핵심이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를 피하는 것, 즉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7.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aya)에는 그것[‘다사 아꾸살라/다사 꾸살라’와 관련된 핵심 개념]을 모두 합쳐서 정리한 여러 경이 있습니다. 빳꼬로하니 왁가(Paccorohanivagga)에 있는 빠따마 아담마 숫따(Patama Adhamma Sutta, AN 10.113)의 첫째 구절은 다음과 같이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 * “아담모- 짜, 빅카웨, 웨디땁보- 아낫토- 짜; 담모- 짜 웨디땁보- 앗토- 짜(Adhammō ca, bhikkhave, veditabbō anatthō ca; dhammō ca veditabbō atthō ca“).

  • * 빠따마 아담마 숫따(Patama Adhamma Sutta)의 다른 구절을 설명하는 또 다른 포스트를 쓸 예정이지만, (여기서)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쉽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빅쿠들이여, 아담마(adhamma)는 아낫따-(anattā, 난감함)에 이르게 하고, 담마(dhamma)는 앗따-(attā, 피난처로 닙바나)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 * 더욱이 '아낫따(anatta)'를 '무아(no self)'로 잘못 해석된 것에 여전히 집착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위 구절의 번역이] 다음과 같은 어리석은 말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빅쿠들이여, 아담마(adhamma)는 '무아(no self)'에 이르게 하고, 담마(dhamma)는 자아(self)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 * 이 잘못된 해석의 근본 원인은 ‘Misintepretation of Anicca and Anatta by Early European Scholars’ 포스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8. 담마-(dhammā)는 사람이 지니는 원칙, 즉 ‘어떤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으로 ‘좋은 담마(good dhamma)’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 * 아담마(adhamma) 또는 아담마-(adhammā)는 [‘담마’ 또는 ‘담마-’의] 반대이며, 부도덕한 생활입니다. 사람이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에 끌려 행하면, 아담마(adhamma)에 끌려 행하는 것이며, 즉, 이것이 ’아담마-(adhammā)‘를 지니는 것입니다.

  • * 이것은 다음 예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냄새’라는 낱말을 ‘나쁜 냄새’라는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실제 좋은 냄새’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특별히 ‘좋은 냄새’라고 말합니다.

  • * 이와 같은 식으로, 자신이 지니는 담마-(dhammā)는 좋거나 나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좋은 담마-(good dhammā)’를 나타내기 위해 ‘담마-(dhammā)’라는 낱말을 씁니다. ‘나쁜 담마-(bad dhammā)’는 ‘아담마-(adhammā)’입니다.


9. 보통 '담마(dhamma)'라는 용어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 쓰이는 것과 같이 가르침이나 원리(원칙)를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담마-(dhammā, 끝 글자가 긴 ‘a')라는 용어는, 사람이 ’과거 깜마(past kamma)‘의 결과로서 지니는 것을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 '루-빠'란 무엇인가? – '담마-'도 '루-빠'다! ”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담마-(dhammā)은 깜마 비자(kamma bija, 업 씨앗)와 동일합니다.


  • * 문맥에 따라 의미를 알아낼 수 있어야 하고, 주어진 구절에서 그 용어(낱말)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10.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서 어떤 숫따(sutta)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 위의 설명과 일치할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 위 3개의 숫따(sutta)는 띨락카나(Tilakkhana)의 심오한 의미(이론)와 실천(실라_계를 통해 마음을 정화, 즉 다사 아꾸살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사이에 핵심 연결 관계를 보여 준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연결 관계를 보기 위해 수백 개의 숫따(sutta)를 분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 * 온라인 토론 게시판에 가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다른 사이트로부터 숫따(sutta)를 인용하여, 대개 빠알리어의 핵심 용어에 대해 잘못된 의미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 그 증거가 있다고 하면서 올리는 긴 게시물을 모두 읽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당연히 그 게시물 간에는 대개 모순이 있습니다.

  • * 이것이 필자가 이 웹 사이트(pure dhamma)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주된 이유였습니다. 필자는, 핵심 빠알리 용어를 진정한(심오한) 의미로 쓴다면 모든 것이 모순 없이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1. ‘많은 텍스트의 주요 문제점은 핵심 용어의 일반적인(관습적인) 의미를 취하여 그것을 잘못된 곳에 적용한다는 것’임을 명심하는 것도 좋습니다.



12. 앞 포스트인 ‘아낫따 – 어느 앗따의 반대말일까?’에서, 아낫따(anatta)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간단히 언급했습니다. 이제 그 연결 관계가 훨씬 더 분명해지기를 바랍니다.


  • *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에 이끌려 행하는 것은 결국 고통(괴로움)으로만 이어지고 그래서 구할 길이 없이 난감하게 되고 어찌할 수 없게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로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합니다.

  • * 이 개념은 아낫따(anatta)에 대한 싱할라 낱말인 아나르타(anartha)로 아주 분명합니다. 앞 포스트에서 검토한 아나르타(anartha)는 글자 뜻 그대로 ‘완전히 쓸모없고 해로움만 가져올 수 있는 것을 함’을 의미합니다.


13. 다사 아꾸사라(dasa akusala)를 행하는 것이 미래의 삶(내생)에서만 ‘나쁜 위빠-까(bad vipāka, 나쁜 과보)’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착각(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도덕한 생각을 하는 것조차 이 삶 자체에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리빙 담마’ 섹션의 시작부분 포스트들에서 상세히 논의되었습니다. ‘리빙 담마’ 섹션은 다음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합니다.


1)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를 행하는 것을 삼가기 시작할 때, 니라-미사 숙카(nirāmisa sukha)라고도 불리는 확실한 안도감을 경험할 수 있으며, 이것이 초기에는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2) 니라-미사 숙카를 경험하기 시작할 때,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 특성과 같은 담마의 심오한 측면도 또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만이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로 인해 야기되는 ‘장기 깜마 위빠-까(long-term kamma vipāka)’를 실제로 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장기 깜마 위빠-까를 본다’는 것은 그것(다사 아꾸살라)들이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 태어나는 것으로 이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14. 앗따(atta)는 많은 텍스트에서 때로는 ‘앗타(attha, ‘h' 추가)’로 표기되며, 각 표기는 평범한 의미 또는 심오한 의미를 포함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예를 들면, 옛 싱할라 주석서들은 ‘앗타까타-(atthakathā)’라고 불립니다. ‘앗타까타-(atthakathā)’는 ‘진리에 관한 설명들’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까타-(kathā)는 ‘이야기’를 뜻합니다.


  • *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는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주석서가 있는데, 바로 빠띠삼비다막가(Patisambhidamagga), 뻬따꼬빠데사(Petakopadesa) 및 넷띱빠까라나(Nettippakarana)입니다. 많은 싱하라 주석서 중에서 이 세 개만이 [원래의 주석 그대로] 살아남아 전해지는 주석서입니다.

  • * 반면에, 붓다고사(Buddhaghosa) 스님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주석은 앗따까따-(atthakathā)에 속하지 않습니다.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는 널리 보급되어 있고 인기 있는 대중적인 주석서이지만, 잘못된 주석서의 하나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Buddhaghosa’s Visuddhimagga – A Focused Analysis’을 참조하세요.


15.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제 “담모- 짜 야타- 담모-, 야타- 앗또-(Dhammō ca yathā Dhammō, yathā attō)" 구절에서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위 7번에서 언급한 ‘빠따마 아담마 숫따(Patama Adhamma Sutta)’에 있습니다.


  • * 이 구절은 "사람이 진실한(야타-, yathā) 담마를 지닐 때, 그 사람은 진리를 이해한다(그리고, 미래에 구할 길이 없이 난감하게 되고 어찌할 수 없게 되는 것에서 피한다)"는 의미입니다.

  • * 사람이 담마-(dhammā)을 지니고 아담마-(adhamm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띨락카나(Tilakkhana, 세상의 삼특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이 재탄생 과정(윤회)에서 아낫따(anatta, 난감하여 어찌할 수 없음)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앗따(atta, 피난처)를 가질 것입니다.

  • * 이 포스트는 ‘이론과 실천’ 사이에 간단하지만 결정적 연결 고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포스트입니다. 이 연결이 파악될 때까지, 관련이 있는 다른 포스트를 읽고 돌아와서 이 포스트를 다시 읽는 것이 좋습니다.

  • * 이 기본 개념은 띨락카나(Tilakkhana, 세상의 삼특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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