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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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윗자- 빳짜야- 상카-라-

 

원문 : Paṭicca Samuppāda 섹션의 ‘Avijja paccayā Saṅkhāra’ 포스트

- 2019년 4월 26일 개정; 2019년 8월 29일 개정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nkhārā)’는 ‘부도덕한/결실없는 행위와 생각은 무지를 근본 원인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윗자- 니로-다(avijjā nirōdha)가 ‘상카-라 니로-다(saṅkhāra nirōdha)’로 이어진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ūla 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의 그 다음 모든 항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모든 고통(괴로움)은 아윗자-(avijjā)를 제거함에 따라 일어나지 않습니다.

 

1. 아윗자-(Avijjā)(대략적으로 무지로 번역됨)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의되는데, 사성제를 알지 못함, 성스런 팔정도를 이해하지 못함, 자연의 세 가지 특성을 이해하지 못함, 둑카(dukkha)를 이해하지 못함 등으로 정의됩니다.

 

  • * 이 모든 정의가 올바르지만, 그것들에 대해 읽는 것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은 부도덕하고 현명하지 못한 행위(그리고 생각)로 인해 고통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 * 빠띳자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은 세 종류의 고통(괴로움)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명확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도덕한/결실없는 것들을 생각합니다(그리고 행합니다).

 

2. 이 시리즈는 ‘평이한 말로 설명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처음 두 개의  포스트를 읽지 않았다면 그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필자는 위 세 가지 용어를 평이한 말로 설명했고, 빠알리(Pāli) 낱말을 사용하지 않고는 그같은 의미를 쉽게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 * 그래서, 일단 그것들을 명확히 설명하면, 이 빠알리 용어들을 사용해야 포스트를 적당한 분량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늘 이전의 소개 포스트들로 돌아가서 읽고 기억을 새롭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3.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nkhārā)’는 통상적으로 ‘무지가 정신적 형성으로 이어진다’로 해석합니다. 그 해석은 근본 개념을 전달하지 못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필자는 ‘부도덕한/결실없는 행위는 무지를 근본 원인과 조건으로 한다’가 더 나은 번역이라고 믿으며,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먼저, 부도덕한 행위와 결실없는 행위 사이의 차이를 살펴 보겠습니다.

 

  • * 우리는 사악처에서 겪는 둑카 둑카(dukkha dukkha)가 가장 심한 고통(괴로움) 형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원인은 열가지 오염 행위, 즉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로 행해진 부도덕한 행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가장 나쁜 유형의 상카-라는 사악처에서 겪는 둑카 둑카(dukkha dukkha)의 원인입니다.

  • * 왜 우리는 사악처에서 가장 나쁜 종류의 둑카 둑카(dukkha dukkha)를 일으키는 그런 강한 부도덕한 행위를 할까요? 그런 행위의 결과에 대한 매우 높은 수준의 무지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재탄생을 믿지 않는다면 그런 부도덕한 행위가 어떻게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결국, 인생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 그런 높은 수준의 무지는 모-하(mōha)(가려진, 완전히 눈먼 마음을 의미함)라고 하며, 가장 가까운 영어 낱말은 delusion(착각, 망상)입니다.

  • * 다른 사람을 계획하여 죽이는 살인자가 좋은 예입니다. 그는 그것을 잘 계획할 수 있다면 경찰(또는 검찰)에 잡히지 않고, 그러면 자신의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찰(또는 검찰)에 잡히는 것에 관계없이, 훨씬 더 나쁜 결과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 대가로 미래의 태어남에서 무수히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4. 따라서, 살인(또는 살생), 도둑질 등과 같은 부도덕한 행위는 미래 고통(괴로움)의 가장 나쁜 종류로 가장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됩니다. 이것들은 가장 나쁜 형태의 상카-라(sankhārā)입니다.

 

  • * 상카-라(sankhārā) 범위(영역)의 다른 쪽에는 이 생에서 낮은 수준의 상카-라 둑카(sankhārā dukkha)로 이어지는 ‘결실없는 행위(unfruitful action)’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강한 들러붙음이나 싫어함을 통해 사물/사람들에게 들러붙게 되면, 그것은 이 생에서 정신적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그런 ‘결실없는 행위(unfruitful action)’는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심각한 문제로 자랄 수 있는 나쁜 습관들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탐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은 그것들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고, 결국 과도하게 탐하고 증오(분노)하는 형태로 강하게 자라서, 부도덕한 행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것이 빠딧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단계들을 통해 어떻게 일어나는지 논의할 것입니다.

  • * 물론, 결과의 가혹함은 행위의 심각함과 본질에 달려 있으며, 나중에 자세히 논의할 바와 같이 ‘빠띠(pati)+잇짜(icca)’가 ‘사마(sama)+우빠다(uppada)’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의미에 대해서는 “ 빠띳짜 사뭅빠-다 ㅡ '빠띠+이치차' + '사마+웁빠-다' ”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부도덕한 행위를 기꺼이(자발적으로)도 할 때, 그 결과도 더 강해지고 같은 종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비교적 사소한 형태의 고통(괴로움)을 초래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심각한(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실없는 행위들(unfruitful acts)’이 있습니다.

  • * 따라서, 상카-라 둑카(sankhārā dukkha)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오계를 넘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필자는 일부를 반복적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이 본질적인 개념을 확실히 전달하고 싶습니다.

 

이제 상카-라(sankhārā)를 ‘부도덕한/결실없는 행동, 말, 및 생각’으로 번역하는 것이 왜 ‘정신적 형성’으로 번역된 것보다 더 나은 번역인지 분명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상카-라(sankhārā)는 모두 정신적인 것입니다.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ā)와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ā)는 행동과 말로 이끄는 그 생각들입니다.

 

5. 이제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nkhārā)’가 ‘무지가 정신적 형성으로 이어진다’로 번역된 것의 다른 잘못된 측면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빳짜야-는 무슨 의미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무지(아윗자-, avijjā)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나쁜 범죄자라도 항상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는 않으며 항상 결실없는 행위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런 행위를 할 때, 그것은 무지를 근본 원인으로 하여 이루어집니다.

  • *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담마(Dhamma)를 더 많이 배울수록 무지를 더 많이 제거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부도덕하거나 결실없는 것들, 즉 어떤 유형의 ‘(아비)상카-라-’를 생각하거나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6. 생각해야 할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는 우리가 상카-라-(sankhārā)에 대해 어떤 종류의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상카-라-(sankhārā)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ā) (신체적 행위로 이어지는 것),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ā) (말로 이어지는 것), 및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ā) (우리의 가띠로 인해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 * 우리가 옳고 그름을 안다면, 신체 행위와 말의 대부분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어떤 끔찍한 말을 시작하고 그 문장을 말하는 중간에 스스로 멈출 수도 있습니다.

  • * 마음의 감정 상태에 따라,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평소 침착한 사람이라도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갖는 것을 보게 되면 격노(분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심지어 그 순간의 격분한 열기로 그 남자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 * 우리는 또한 (평소) 도덕적인 사람이 유혹당하여 부도덕한 일을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특히 ‘보상이나 인식된 즐거움’이 충분히 큰 경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이 ‘사악처에 떨어지는 것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위험입니다.

  • * 더 많은 내용은 ‘상카-라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7. 세 번째 범주인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ā)는 의지력으로 즉시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는 탐욕/증오가 가득한 생각을 통제하기 힘들었던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마음은 우리를 사방 팔방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그런 생각들은 보통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생각’을 포함하고, 또한 모든 종류의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환상도 포함합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그런 생각을 멈추고 그 결과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 * 이것들은 습관(가띠, gati)과 갈망(아-사-와, āsāva)을 변화시킴으로써 완화되고 궁극적으로 멈춰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위에서 논의된 ‘충동’ 또는 ‘유혹’으로 행해진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ā)와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ā)에 적용됩니다.

  • * 그리고 그것은 모든 상카-라-(sankhārā)가 결실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세 가지 특성을 이해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다음 단계에서 이것을 분석할 것입니다.

 

8. 따라서 비결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서서히 나쁜 습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면, 점차적으로 그런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ā)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 *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습관과 갈망의 이런 변화의 중요한 부분이 이 세상의 세 가지 특성을 이해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이들은] (동물을 포함하여) 다른 이들을 해쳐서 자신의 감각적 즐거움을 얻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좋은 삶(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에 큰 차이를 만듭니다.

  • *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는 것과는 달리, 감각적 즐거움으로 가득찬 삶은 ‘좋은 삶, 평화로운 삶’이 아닙니다. 사치스러운 삶은 결국 ‘부담스러운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감각적 즐거움을 받아들이는 우리 몸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깨달음 자체가 마음의 쿨링 다운(cooling down, 가라앉음)으로 이어집니다. 어쨌든, 더 논의하면서 이 개념들과 함께 더 많은 것을 숙고하면, 이 개념들은 서서히 분명해질 것입니다.

 

9. 요약하면, 모든 세 가지 유형의 고통(괴로움)은 매우 부도덕한 행위부터 겉으로 결백해 보이는 결실없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카-라-(sankhārā)로 인해 일어납니다. 모든 상카-라-(sankhārā)는 아윗자-(avijjā)로 인해 일어납니다.

 

  • * 그것이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nkhārā)”가 “자라-(jarā), 마라나(marana), 소-까(sōka), 빠리데-와(paridēva), 둑카(dukkha),.....”라는 모든 종류의 고통(괴로움)으로 끝나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의 첫 번째 단계인 이유입니다.

  • * 아라한(Arahant) 단계에서는 아윗자-(avijjā)가 제거되었으므로, 즉 빤냐-(paññā)가 최적화되었으므로 재탄생으로 이어지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사우빠디세사 닙바-나(Saupadisesa Nibbāna, 유여열반)입니다. 아라한 성자는 육체가 죽을 때, 다시 태어나지 않으며, 그래서 그 때에  모든 상카-라(saṅkhāra)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아누빠디세사 닙바나(Anupadisesa Nibbāna), 빠리닙바-나(Parinibbāna), 완전한 닙바-나(complete Nibbāna)라고 합니다.

  • * 그것이 ‘아윗자- 니로-다(avijjā nirōdha)’가 어떻게 ‘상카-라 니로-다(saṅkhāra)’로 이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도덕한/결실없는 행위를 원인으로 하여 고통(괴로움)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간단하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세상의 진정한 본질(특성)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에 대한 무지로 인해 그런 활동을 합니다. 여기서는 무지가 어떻게 상카-라-(sankhārā)를 일으키는지 논의했습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상카-라-(sankhārā)가 어떻게 윈냐-나(viññāna)(오염된 의식)로 이어지는지 논의하겠습니다. 그것은 둑카(dukkha, 고통/괴로움)로 이어지는 다음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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