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google":["PT Serif","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Nanum Barun Gothic"]}


아닛짜 – 좋아하는 것을 계속 유지할 수 없음


원문 :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Anicca – Inability to Keep What We Like’ 포스트

2019년 5월 26일 재작성(제목변경 포함)


이 포스트의 원래 제목은 "아닛짜 - 어떤 것도 계속 유지할 수 없음”입니다. 필자는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pavattana Sutta, SN 56.11)에 있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새로운 제목으로 다시 썼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Dhammacakkappavattana Sutta’ 포스트를 보세요.


1. 첫 번째 성스런 진리는 아닛짜(anicca) 특성이 괴로움(고통)의 근본 원인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붓다께서 가장 먼저 설하신 숫따(sutta)에서 괴로움에 대한 첫 번째 성스런 진리를 어떻게 요약하셨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이당 코 빠나, 빅카웨, 둑캉 아리야삿짱:

자-띠삐 둑카-, 자라-삐 둑카-, 브야-디삐 둑코, 마라남삐 둑카-앙, 압삐예히 삼빠요고 둑코, 삐예히 윕빠요고 둑코, 얌삣창 날라바띠 땀삐 둑카-앙 - 상낏떼나 빤쭈빠-다-낙칸다- 둑카-”

(“Idam kho pana, bhikkhave, dukkham ariyasaccam: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byādhipi dukkho, maraṇampi dukkhāṃ, appiyehi sampayogo dukkho, piyehi vippayogo dukkho, yampicchaṃ nalabhati tampi dukkhāṃ—saṃ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번역: “빅쿠들이여, 괴로움의 성스런 진리는 무엇인가?

태어남은 괴로움이고, 늙음은 괴로움이고, 병듦은 괴로움이고, 죽음은 괴로움이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것과 연관되는 것은 괴로움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괴로움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괴로움이다. - 간단히 말해서, 고통의 근원은 루-빠(rūpa),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nkhāra), 및 윈냐-나(viññāna)라는 ‘5가지 무더기에 대한 갈망(빤쭈빠-다-낙칸다, pancupādānakkhandha)’이다.” 

이 세상에서 갈망하는 모든 것은 ‘빤쭈빠-다-낙칸다(pancupādānakkhandha)’, 즉 ‘오온(빤짝칸다,  pancakkhandha)에 대한 우빠-다-나(집착upādāna) 또는 갈망’을 나타냅니다. 


2. 굵은 글씨로 된 첫 번째 부분은 우리가 괴로움의 형태라고 생각하는 것, 즉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을 나타냅니다.


  • *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태어남은 죽는 순간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충격을 주는 사건입니다. 산도(birth canal)에서 나오는 것은 엄마와 아기 모두에게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태어남은 괴로움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늙음, 병듦, 및 최종적 죽음이 모든 태어남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 우리는 또한 늙거나 병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확실히 죽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들 중 하나라도 경험해야 한다면, 그것은 괴로움입니다.

  • *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젊음을 유지하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절대로 죽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조건을 가질 수 있다면 영원히 행복할 것입니다.

  • * 그래서, 붓다께서 첫 법문에서 초점을 둔 괴로움은 재탄생 과정(윤회)과 관련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3. 그것이 위 1번 구절의 두 번째 부분(굵은 글씨가 아님)이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것과 연관되는 것은 괴로움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분리되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 * 기본적으로, 우리 모두는 좋아하는 것들과 분리되거나 싫어하는 것들과 함께 있어야 할 때 슬픔을 경험했습니다.

  • * 젊은 나이 (예를 들면, 15 ~ 25 세)에 즉시 태어나서, 나이가 들거나 병들지 않고 그 나이에 머물면서 결코 죽지 않는다면, 그것이 우리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삶이 되고 싶다고 해도 결코 얻지 못할 것입니다.

  • * 그 대신, 우리는 태어날 때(산도를 통해 이 세상에 오는 것은 고통임), 늙을 때, 병들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을 때 괴로움(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좋아하지 않는 네 가지 것으로부터 떨어질(분리될) 방법이 없습니다.

  • *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재탄생 사이클(윤회)에서 이것을 계속해서 할 것입니다. 게다가, 또한 동물 영역을 포함한 가장 낮은 4가지 영역에서 상황이 훨씬 악화될 수 있습니다.


4. 이 두 부분은 위 1번에 있는 구절의 세 번째 부분(굵은 글씨)에서  “얌삣짱 날라바띠 땀삐 둑카-앙(Yampiccam nalabhati tampi dukkham)”라는 간결한 문장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Yampiccam nalabhati tampi dukkham”은 실제로는 전체 문장인 “Yam pi iccam na labhati tam pi dukkham”이 운에 맞춰 단축된 버전입니다.


  • * ‘얌 삐 잇짱(yam pi iccam)’은 ‘좋아하거나 갈망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나 라바띠(na labhati)’는 ‘얻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땅 삐 둑캉(tam pi dukkham)’은 ‘괴로움으로 이끄는’을 의미합니다.

  • * 그러므로, 그 구절은 단순히 ‘자신이 갈망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말합니다.

  • * 이것은 더 일반적인 진술이며 모든 상황에 적용됩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며,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스트레스입니다.

  • * 또한, 무엇을 갈망하는 것이 많을수록 결국에는 참고 견뎌내야 할 괴로움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5. ‘닛짜(nicca)’라는 낱말의 부정은 ‘아닛짜(anicca, ‘na’ + ‘icca’)입니다. [이것은 빠알리어 조어법에서] ‘아나-가-미(anāgāmi)’가 ‘나(na)’ + ‘아-가-미(āgāmi)’에서 유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질(특성)이 ‘닛짜(nicca)’이기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아닛짜(anicca)’입니다. 즉, 좋아하는 것을 장기적으로 가지고 있거나 함께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이 괴로움(고통)의 근본 원인입니다. 삶의 대부분을 행복하게 살지는 모르지만, 죽을 때는 [좋아하는] 그 모든 것을 뒤에 남겨두고 떠나야 합니다.


  • * 더 깊은 점은 우리 모두가 좋은 영역에 태어나기를 좋아하지만, 미래에 대부분의 태어남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 따라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빠띳짜 사뭅빠-다( Paticca Samuppāda, 연기)에 기반을 두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 * 덧붙여서, 빠알리 낱말 ‘icca’와 ‘anicca’는 ‘ichcha(잇차, 잇짜)’와 ‘anichcha(아닛차, 아닛짜)’로 발음됩니다.

  • * 자신이 원하거나 갈망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잇짜(icca)의 반대’이며, ‘나 잇짜(na icca)’ 또는 ‘아닛짜(anicca)’입니다. 이것은 ‘나 아-가미(na ā­gami)’가 ‘아나-가-미(Anā­gāmi)’가 되는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이 두 가지는 빠알리 산디(Pāli sandhi) 규칙, 즉 두 단어를 함께 연결할 때의 규칙입니다. 위에서 ‘나 아-가미(na ā­gami)’는 ‘돌아오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나-가-미(Anā­gāmi)’의 맥락에서, 그것은 ‘까-마 로-까(kā­ma lōka, 낮은 11가지 영역의 욕계)로 돌아오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6. 그러므로,  “얌삣짱 날라바띠 땀삐 둑카-앙(Yampiccam nalabhati tampi dukkham)”은 붓다께서 설하신 첫 숫따인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pavattana Sutta)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입니다. 그 구절은 부처님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하며, 5명의 고행자들이 소-따빤나(수다원) 단계에 도달하게 한 구절입니다.


  • * 잇짜(icca)와 잇차(iccha) (싱할라어에서 ඉච්ච와 ඉච්ඡ)는 띠삐따가(Tipitaka, 삼장)내의 서로 다른 숫따(sutta) 중에서 서로 바꿔쓸 수 있게 사용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마지막 음절에 강세를 둔 잇차(iccha)는 ‘강한 잇짜(icca)’, 즉 ‘강한 들러붙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 * ‘잇짜(icca, 좋아함)’라는 낱말은 ‘딴하-(tanhā, 들러붙게 됨)’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딴하-(tanhā)는 잇짜(icca) 때문에 자동으로 일어납니다.

  • * 이 세상의 본질은 ‘아닛짜(anicca)’입니다. 즉, 우리는 갈망하는 것을 결코 얻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에는(적어도 죽음에서는) 이 모든 것을 남겨두고 고통(괴로움)을 당할 것입니다. 그것이 둑카(dukkha)입니다.


7. 닛짜(nicca)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만족스럽게 유지할 수 있다는 인식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 * 이것이 정말로 그렇다면, 자신은 행복합니다. 즉, 수카(sukha)가 일어나거나 적어도 괴로움(고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경우 자신은 통제되고, 결실있는 어떤 것, 즉 앗따(atta)가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영원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며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 * 사람은 보통 그 닛짜 산냐-(nicca saññā)를 가지고 물질적인 것들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죽을 때는 모든 재산을 뒤에 두고 떠나야 하므로, 자신의 삶은 (노령을 인한 고통에 더하여) 항상 절망과 고통(괴로움)으로 끝납니다.

  • * 자신이 진정한 ‘아닛짜(anicca) 특성’을 깨닫기까지는 재탄생 과정(윤회)에 갇히게 될 것이고, 그 고유의 아닛짜(anicca) 특성 때문에 많은 고통(괴로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기르라고 충고하셨습니다.

  • * 닛짜(nicca)의 반대로서 아닛짜(anicca)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존재의 3가지 특성 – 영어 법문’ 포스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8. 그러므로, 비록 [무상이 고통(괴로움)의 원인으로]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고통(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무상(impermanence)이 아닙니다.


  • * 세상은 본질적으로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붓다 담마’ 섹션의 ‘대통합 이론인 담마’ 서브 섹션을 참조하세요). 그러나 무상(impermance) 자체만으로는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무상하기에 고통이라면), 아무도 그 사실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아무도 고통(괴로움)을 끝낼 수 없을 것입니다(그리고 ‘닙바-나’를 달성할 수 없을 것입니다).

  • * 고통(괴로움)으로 이끄는 것은 닛짜(nicca)라는 잘못된 인식(산냐-, saññā)입니다. 그 인식은 담마(Dhamma)를 배우고 숙고함으로써, 즉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기르므로써 바뀔 수 있습니다.

  • * 마음이 아닛짜(anicca)라는 올바른 인식을 한번 받아 들이면, 소-따빤나(수다원), 사까다-가-미(사다함), 아나-가-미(아나함), 및 아라한뜨(아라한)의 4단계를 거쳐 고통의 소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또한, ‘Does Impermanence Lead to Suffering?’ 포스트 등을 보세요.


9. 위에서 말한 점은 ‘Celebrities Who Have Aged the Worst’ 에 있는 [유명 연예인의 노년 비교] 사진을 통해 설명될 수 있습니다.


  • *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면서 이 피할 수 없는 변화를 겪을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애써 노력하더라도 어떤 것을 만족스럽게 계속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만족스럽게 계속 유지할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의 본질입니다.

  • * 지금, 물론 이 유명인들 (또는 그들의 팬) 중 누구라도 비교 사진을 보고 슬퍼질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육체를 만족스럽게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 * 그러나 이 유명인들 중 누구와 사이가 나쁜 사람은 그 사진을 보고 행복해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유명인에게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이 경우에는 용모가 나빠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 * 따라서, 무상(Impermanence)은 피할 수 없는 어떤 것이며,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의 속성입니다. 그러나 아닛짜(anicca)는 누군가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위의 경우에서, 유명인의 육체는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모두에게 괴로움을 초래하지는 않았습니다.

  • * 반면에, 아닛짜(anicca) 특성은 모두에게 고통(괴로움)으로 이끕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미래의 고통(괴로움)을 멈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 오랜 분투 후에도 원하는 어떤 것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쩔 줄 모르고 우울하고 불만족스럽게 됩니다. 즉 “양 삐 잇짱 나 라바띠 땅 삐 둑카-앙(yam pi iccam na labati tam pi dukkhām)”입니다. 여기서, ‘나 라바띠(na labati)는 ‘얻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닛짜(nicca)라는 잘못된 인식(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능한 충족감)은 항상 결국에는 두카(dukha, 고통, 괴로움)로 이끕니다.


  • * [잘못된] 마음가짐(심적경향)은 어떤 것이 영원하지 않고 부서진다고 해도 항상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여 자신이 원하는 충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패(패하지 않음)의 감각을 주는 것은 무상(영구적이지 않음)이 아니라, 항상 그것(무상한 것)을 대체하는 것을 찾아 자신의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심적경향)입니다.

  • * 그러나, 붓다의 ‘광대 세계관(the wider world view)’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 세상에서 장기적 행복’이 가능하다는 이 마음가짐이 환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 우리가 이 생에서 무엇(세간적인 것)을 달성하든, 죽을 때는 그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나야 합니다. 

  • * 그리고 새로운 생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시작이 없는 때부터 해 왔던 것입니다.

  • * 물론 우리는 어떤 것을 만족스럽게 계속 유지하고자 노력하면서 부도덕한 일을 하고, 나쁜 깜마 위빠까(kamma vipaka)를 생성하며, 사악처(apaya, 아빠야)에서 엄청난 고통(괴로움)을 겪게 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11. 쌍윳따 니까-야(Samyutta Nikāya)의 아닛짜 왁가(Anicca Vagga)에 있는 앗잣따닛짜 숫따( Ajjhattanicca Sutta, SN 35.1 ), 바히라닛짜 숫따( Bahiranicca Sutta, SN 35.4 ), 및 야다닛짜 숫따( Yadanicca sutta, SN 22.15 )를 포함하여 많은 숫따(sutta)에서, 붓다께서는 이 세상의 세가지 특성(아닛짜, 둑카, 아낫따)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야다닛짱 땅 둑캉, 땅 둑캉 따다낫따(yadaniccam tam dukkham, tam dukkham tadanatta)”라고 하셨습니다.  펼쳐 쓰면, “야드 아닛짱 땅 둑캉, 땅 둑캉 따드 아낫따(yad aniccam tam dukkham, tam dukkham tad anatta)”입니다.

그 뜻은 “어떤 것이 자신의 만족대로 유지될 수 없다면(또는 상황에 따라 관리될 수 없다면), 고통(괴로움)이 일어나고, 그래서 결국 자신은 무력하다(어쩔 수 없다)”입니다. 


12. 도입(소개) 포스트인 ‘아닛짜, 둑카, 아낫따 - 잘못된 해석’의 6번의 불렛(구분점)에서 검토했던 것과 동일한 예를  살펴 보겠습니다.


  • 위 구절에서 ‘어떤 것’을 ‘두통’이라고 하면, 그 구절은 “두통이 자신의 만족대로 유지(관리)될 수 없다면(즉, 자신이 두통을 제거할 수 없다면), 고통(괴로움)이 일어나고, 그래서 자신은 무력하다(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 마찬가지로, 이전 포스트에서 살펴본 것을 모두 대체할 수 있고, 그것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반면에, 아닛짜(anicca)가 ‘무상(impermanence)’을 의미하는 경우, 그 구절은 “두통이 무상하다면(영구적이지 않다면), 고통이 발생하고, 그래서 자신은 무력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맞지 않습니다. 두통이 영구적이 될 때만 고통이 일어날 것입니다!


13.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이 세 가지 특성에서 면제되지 않습니다. 비록 어떤 때는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라도, 우리가 하는 그 어떤 것도 늙고, 병들고, 마침내 죽는 현실(사실)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 후, 다음 생에서 그리고 그 다음….으로 계속 그 사이클이 반복됩니다.



14. 그러나 좋은 소식은,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사라지지 않는 유형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히 적어도 닙바-나의 소따빤나(수다원) 단계에 도달할 경우에 가능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Three Kinds of Happiness – What is Niramisa Sukha?’ 포스트와, ‘닙바-나는 이해하기 어려운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5. 띠삐따까(Tipitaka)에서 아닛짜(anicca)의 개념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되어져 있습니다. 두 가지가 ‘아닛짜 - 생멸(생성과 괴멸)을 반복함’ 포스트와 ‘아닛짜 - 세속적인 것들의 무가치함’ 포스트에서 더 논의됩니다.

{"google":["PT Serif","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Nanum Barun Gothic"]}{"google":["PT Serif","PT Sans"],"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Nanum Barun Gothic"]}
{"google":["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