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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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냐-나’ - 미래 기대를 포함하는 의식


원문: Living Dhamma 섹션의 ‘Viññāna – Consciousness Together With Future Expectations’ 포스트

-  2019년 1월 1일


1. 윈냐-나(viññāna)는 ‘냐-나(ñāna)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매우 간단한 표현에서,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의 결과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윈냐-나( Viññāna)는 또한 ‘오염된 의식’을 의미합니다.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 또는 아라한 바와)에 도달하면, ‘오염이 없는 순수한 의식’을 갖게 됩니다.


  • * 윈냐-나 니로-다(viññāna nirōdha), 즉 윈냐-나(viññāna, 오염된 의식)의 일어남이 멈추는 것이 닙바-나(Nibbāna)에 이르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표현된 경이 많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간결한 표현을 ‘드와야따-누빳사나-숫따(Dvaya­tānu­passa­nā­sutta, Sutta Nipata 3.12)’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양 낀찌 둑캉 삼보띠, 삽방 윈냐-나빳짜야-;

윈냐-낫사 니로데나, 낫티 둑캇사 삼바오.

(Yaṃ kiñci dukkhaṃ sambhoti, Sabbaṃ viññāṇapaccayā;

Viññāṇassa nirodhena, Natthi dukkhassa sambhavo.)”


번역:

"무슨 고통이 일어나든지, 모든 것은 윈냐-나(viññāṇa) 때문에 일어난다.

윈냐-나(viññāṇa)가 일어나지 않으면, 고통이 있는 존재는 없다.”


  • * (아래에서) 윈냐-나(viññāṇa)의 개념을 간단한 방식으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2. 윈냐-나(viññāna)는 느낌(vēdanā, 웨-다나-), 인식(saññā, 산냐-) 및 개별 정신 요소(cētasika)의 세트를 아우르며 포함합니다. 그들 모두는 함께 일어나고, 발생하는 쩨-따시까(cētasika)의 세트는 각 사람의 가띠(gati, 습관 / 성격)에 따라 다릅니다.


  • * 윈냐-나(viññāna)를 설명하기 위해 보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상황을 간단하게 하기 위해 일부 세부 사항은 생략하겠습니다.

  • * 보는 것(봄)은 찟따(citta)의 연속으로 발생합니다. 그러나 찟따(citta)가 9단계의 빠른 과정으로 오염될 때, 윈냐-낙칸다(viññānakkhandha, 윈냐-나의  꾸러미)로 끝납니다. 그리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윈냐-나(viññāna, 오염된 의식)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윈냐-나(viññāna)에만 촛점을 맞추세요.


3. 예로서, X가 여성(Y)을 보았을 때, 그것은 보는 것(봄), 즉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라고 합니다.


  • * 그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로 X는 Y를 매력적인 여성으로 인식하며, 그것은 산냐-(saññā)라고 합니다. X가 Y를 볼 때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있으며, 그것이 웨-다나-(vēdanā)입니다. X는 또한 마음에 욕정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그것이 정신 요소(cētasika, 쩨-따시까)입니다.

  • * 그 모두는 동시에 일어나며, 그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는 그 모든 것( (웨-다나-, 산냐-, 및 다른 유형의 쩨-따시까)을 포함합니다.


이제, Y가 X의 직장에 새로운 직원으로 막 들어왔다고 가정해 보세요.


  • * Y를 본 후, X의 마음에는 다른 미묘한 기대, 즉 Y와 사귀는 데이트를 하고자 하고 언젠가 Y와 결혼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 * 그 생각은 X의 마음에 숨은 채로 남아 있을 것이며, 적절한 때, 특히 Y를 다시 볼 때, 또는 예를 들어 누군가 Y의 이름을 언급할 때 다시 나타날 수 있습니다.

  • * 그것이 X의 마음 속에 숨어있는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입니다. 그것에는 Y와 가까운 관계를 가질 기회를 얻으려는 기대가 있습니다.


4. 그러면, X가 며칠 동안 Y를 보았고 몇번 말을 건네기도 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X가 Y와 소통할 때마다, Y와 가까운 관계를 가지려는 윈냐-나(viññāna)는 X의 마음에서 자랄 것입니다.


  • * 뿐만 아니라, X는 Y를 가끔 생각하기도 할 것이며, 그 생각은 Y와 가까운 관계를 가지기 위한 윈냐-나(viññāna)가 자라게 하는 것을 또한 도우게 될 것입니다.

  • * 그것은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에서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nkhāra paccaya viññāna)’ 단계를 통해 일어납니다.


5. 얼마 후,  X는 Y의 남편이 직장에서 만나기 위해 왔을 때, Y가 결혼한 상태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해 보겠습니다.


  • * 이제, 즉각적으로, ‘Y와 가까운 관계를 가지려는 X의 윈냐-나(viññāna)’는 소멸될 것입니다.

  • * X는 Y가 행복하게 결혼했고 그녀와 관계를 가지려고 생각하는 것조차 소용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6.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윈냐-나(viññāna)에는 많은 유형이 있습니다. 사소한 것들은 단지 무언가  하여지거나, 뭔가를 사거나, 새 직장(직업)을 얻는 등의 기대입니다.


  • * 상카-라(sankhāra), 또는 ‘그 기대를 생각하고 그것을 말하고 행동(와찌 상카-라와 까-야 상카-라를 포함)함으로써 또한 그것을 행할 계획을 세우는 것’은 윈냐-나(viññāna)를 자라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nkhāra paccaya viññāna)’ 단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 * 다른 예로서, X가 특정 유형의 자동차를 구입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 생각 또는 기대는 항상 ‘그의 마음 배후’에 있을 것입니다. 도로에서 그와(생각하는 것과) 같은 차를 보면, 그 윈냐-나(viññāna)가 깨어나고 다시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 * 이제, 어느 날 X가 그 차를 사면, 그는 자동차를 사는 것에 더 이상 관심이 없으므로 그 윈냐-나(viññāna)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 기대가 채워진 것입니다.


7. 기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더 복잡한 유형의 윈냐-나(viññāna)는 X가 관여하는 특정 유형의 활동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이들은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빠띠산디 윈냐-나(patisandhi viññāna)’가 될 수 있습니다.


  • * 예를 들어, X가 자선 단체 등에 시간과 돈을 기부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거듭하면, 비록 그가 알지 못하더라도 데-와(dēva, 천신)의 ‘심적 경향’을 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도덕적인 윈냐-나(viññāna)’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할 것이고 데-와(천상) 영역에 재탄생하는 것으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 * 따라서, 윈냐-나(viññāna)는 다양한 유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윈냐-나(viññāna)에는 6가지 기본 유형이 있습니다. X가 Y를 보았을 때 관련되었던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를 제외하고, 위 예의 모든 윈냐-나는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에 속합니다.


8. 우리의 감각 중 하나가 물리적 세계에서 무언가를 감지하면, 윈냐-나(viññāna)의 5가지 유형 중 하나가 발생합니다.


  • * 우리는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 봄), 소따- 윈냐-나(sōta viññāna, 들음), 가-나 윈냐-나(ghāna viññāna, 냄새 맡음), 지와- 윈냐-나(jivhā viññāna, 맛봄), 및 까-야 윈냐-나(kāya viññāna, 감촉)를 통해 물리 세계에서 무언가를 인식하게 됩니다.


9.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이 5가지 유형의 윈냐-나(viññāna)는 우리 마음에 외부 감각 대상(광경, 소리, 냄새, 맛, 및 감촉)을 가져오기만 합니다.


  • * 그 다음,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가 이어 받아 행동을 결정하고, 필요한 경우 ‘미래 기대’ 또는 ‘미래 계획’을 만듭니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기대를 구축하는 것은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입니다.

  • * 우리는 보고 듣는 것들의 대부분을 무시합니다. 하지만 어떤 것에 매력을 느낀다면, 보고 듣는 것 등을 다시 시작할 것이고 다른 관련 계획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로 행해집니다.


10. 당연히 빠띠산디 윈냐-나(patisandhi viññāna)는 매우 중요한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입니다. 그것은 미래 탄생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 * 이것은 복잡한 주제이지만, 매우 부도덕한 행위에 관여할 때, 자라는 빠띠산디 윈냐-나(patisandhi viññāna)는 자신이 원하는 바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 * 예를 들어, X가 연쇄 강간범이라고 가정해 볼 때, 그는 소녀들을 강간하여 일시적인 감각 만족을 얻습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은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 동물에 상응하는 윈냐-나(viññāna)를 기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기르고 있는 부도덕한 윈냐-나(viññāna) 때문에 동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 * 그러므로, 윈냐-나(viññāna)와 가띠(gati, 또는 gathi) 사이의 연결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1. 닙바-나(Nibbāna)의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할 때, 그런 비도덕적이고 일시적으로 잠시 지속되는 감각 즐거움의 무의미함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종류의 ‘부도덕한 윈냐-나(viññāna)’는 그의 마음에 육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 * 다른 말로 하면, 숨겨진 부도덕한 가띠(gati)는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서 영구히 제거될 것입니다.

  • * 그것은 위 4번에서 X가 ‘Y와 가까운 관계를 가지려는 윈냐-나(viññāna)’를 잃는 것과 유사합니다. 이 경우, X는 그 윈냐-나(viññāna)를 가지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고, 그리고 그 윈냐-나(viññāna)가 사라졌습니다.


12. 필자는 두 가지 주요 아이디어를 전달하기 위해 이것을 아주 간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 윈냐-나(viññāna)는 복잡한 개념입니다. 따라서 윈냐-나(viññāna)를 단지 ‘의식’으로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 *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는 상카-라(sankhāra, ‘san’ + ‘khāra’)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 사이클의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nkhāra paccaya viññāna)’ 단계를 통해 그것들을 기릅니다.

  • * 이것이 빠알리어에서 ‘산(san)’이 ‘핵심 뿌리말’인 이유입니다. ‘What is “San”? Meaning of Sansāra (or Samsāra)’ 포스트를 보세요.


13. 여러 번 말했듯이, 실제 ‘붓다 담마’는 심오하며, 배우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지 낱말별(word-by-word)로 심오한 숫따(sutta, 경)를 번역하거나 그 번역문을 읽는 것만으로는 결국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 * 물론, 깔라마 숫따(Kalama Sutta, AN 3.65)같은 어떤 숫따(sutta)들은 낱말별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한 지침을 주는 기본 숫따(sutta)들입니다. 그러나 아닛짜(anicca), 아낫따(anatta), 또는 닙바-나(Nibbāna)를 논하는 심오한 숫따(sutta)는 산냐-(saññā), 윈냐-나(viññāna), 상카-라(sankhára) 등이 의미하는 것과 같은 더 심오한 기본 지식이 필요합니다.

  • * 핵심 용어를 단 하나의 (영어) 단어로 번역하는 대신에, 그 의미를 익혀서 빠알리어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필자는 독자들이 윈냐-나(viññāna)에 대한 위와 같은 논의를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14. 마지막으로, 필자는 심오한 숫따(sutta)를 낱말별(word-by-word)로 번역하는 ‘교학 빅쿠(scholar bhikkhu)’들이 적어도 이 ‘포스트 시리즈’를 읽어 보고 심오한 의미를 논하는 ‘핵심 숫따(key sutta)’를 번역하는 방식을 바꾸기를 희망합니다. 이런 ‘교학 빅쿠’들은 마하 딴하상카야 숫따(Maha Tanhasankhaya Sutta, MN 38)에서 윈냐-나(viññāna)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사띠 빅쿠(Sati bhikkhu)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 * 께왓따 숫따(Kevaṭṭa Sutta, DN 11)는 그런 숫따(다른 많은 것들 중에서)로, 왜 닙바-나(Nibbāna)가 ‘윈냐-나 니로다(viññāna nirodha)’인지를 설명해 줍니다.

  • * 그들은 윈냐-나(viññāna)의 의미를 이해할 때까지 그런 심오한 숫따(sutta)를 번역해서는 안됩니다.

  • * 그들을 충실히 따르는 추종자들은 그들 때문에 어둠 속에 있게 됩니다. 이것은 ‘맹인이 맹인을 이끈다’는 참으로 슬픈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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