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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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따빤나- ㅡ 단지 성스런 길을 가기 시작함

 

원문: Paṭicca Samuppāda 섹션의 ‘Sotapannā – Just Starting on the Noble Path’ 포스트

- 2021년 11월 1일 작성

 

소따빤나(Sotapanna)는 성스런 길의 시작 단계에 있으며, 까-마 라-가(kāma rāga), 루빠 라-가(rupa rāga), 및 아루빠 라-가(arupa rāga)를 극복해야 합니다.

 

닙바-나에 도달하는 것은 단계적 과정이다

 

1. 최근 포스트들에서, 필자는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를 개략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 포스트들을 보고 일부 사람들은 낙담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을 결코 닙바-나(Nibbāna)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다만 그것이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세계관'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단계적 과정입니다. 소따빤나(Sotapanna)조차도 ‘이 세상’에 들러붙지 않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라한의 특성(마음성향)이 소따빤나에게 있다고 여깁니다.

 

  • *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감각적 욕망을 억누르는 노력에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나’ 또는 ‘자아(self)’라는 타고난 감각을 없애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부처님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먼저 소따빤나(Sotapanna)가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불자는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인가?’ 포스트를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 * 어떤 사람들은 또한 ‘호흡 명상’으로 아나빠나사띠/삿띠빳타나를 하는 데 시간을 낭비합니다. 오직 소따빤나(Sotapanna)만이 그것들을 제대로 기르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아-나-빠-낫사띠 숫따( ‘Ānāpānassati Sutta (MN 118)’ )의 시작 부분에서, 붓다께서는 설법을 듣고 있는 모든 빅쿠들이 다양한 단계의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 즉 소따빤나 단계 이상에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 *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사이트에 있는 영어 번역, ‘Mindfulness of Breathing (MN 118)’을 참조하세요. 물론, 제목은 상당히 오도하고(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고, 숫따의 뒷부분은 번역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인 비구들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필자의 논점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 묘사는 숫따의 시작에 가까운 부분에서 “빅쿠들이여, 이 모임에는 재잘거림(prattle)이 없다. 이 모임에는 수다/잡담(chatter)이 없다. 순전히 심재로 이루어진 [빅쿠 상가] 모임이다…”로 시작하며, 숫따의 시작에 가깝습니다.

 

2. 같은 숫따에 “Nāhaṁ, bhikkahave, muṭṭhassatissa asampajānassa ānāpānassatiṁ vadāmi.”라는 구절도 있습니다. 이 구절은 위 영어 번역에서 “잊어버리는 자, 완전히 알아차리지 못하는 자가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을 개발하고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 * 그러나 그 빠알리 구절의 참된 의미는 “사띠(sati)를 어디에 확립해야 할지 모르는(뭇탓사띳사,  muṭṭhassatissa) 자와,  산(san, 오염원)을 어떻게 가려내는지/해결하는지 모르는(아삼빠자-낫사, asampajānassa) 자에게 나는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를 가르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 * 그러므로, 우리가 이전 포스트에서 논의한 부처님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가 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소따빤나(Sotapanna)에 대한 어떤 다른 속설(잘못된 통념)을 불식시키는 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소따빤나 ㅡ 이 세상의 아닛짜 특성/본질을 안다

 

3. 이전 포스트에서 설명했듯이, 세상에 대한 잘못된 견해(세상 것이 결실있고/유익하다는 견해)를 제거함으로써,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합니다. 그 잘못된 견해는 세상이 ‘닛짜(nicca) 특성/본질’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 * 우리는 열 가지 윤회 족쇄(상요자나, saṁyojana)로 ‘이 세상’에 묶여 있습니다. 그것들은 ‘정신적 족쇄(결박)’입니다.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서는 10가지 족쇄 중에 3가지만 끊어지고, 3가지 모두는 잘못된 견해에만 관한 것입니다.
    (i) 먼저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가 있는데, 이것은 ‘닛짜(nicca) 세계관’이라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그 족쇄가 끊어지면 다른 두 가지 족쇄가 동시에 끊어집니다.
    (ii) 위찌낏짜(vicikicca)는 붓다께서 이 세상의 참된 본질을 발견하셨다는 것과, 그 담마가 올바른 세계관이라는 것과, 부처님의 성스런 제자들(성자들)이 윤회의 괴로움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iii)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amāsa)는 (더넓은/광대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없이) 일련의 의례의식을 따르는 것만으로 괴로움의 소멸을 이룰 수 있다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4. 소따빤나(Sotapanna)는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 즉 ‘올바른 세계관’을 지니고 있으며 더 이상의 도움 없이도 성스런 길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소따빤나는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에 도달하는 다른 7단계도 알고 이해합니다. 그것은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아나-가-미(Anāgāmi),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라는 세 단계를 더 거쳐 이루어집니다. 사까다-가-미(Sakadāgāmi) 및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 끊어지는 두 가지 주된 족쇄는 까-마 라-가(kāma rāga,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와 빠띠가(patigha, 그런 갈망을 충족시키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을 때 속상함/화냄의 경향)입니다.

 

  • * 붓다께서는 소따빤나(Sotapanna)가 더 높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체계적인 방법을 마련/제시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먼저 아-나-빠-낫사띠 숫따(Ānāpānassati Sutta)에서 그것들을 설명하셨고, 마하- 사띠빳타-나(Mahā Satipaṭṭhāna Sutta, DN 22)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셨습니다. 아-나-빠-낫사띠 숫따(Ānāpānassati Sutta, MN 118)에는 “Evaṁ bhāvitā kho, bhikkhave, ānāpānassati evaṁ bahulīkat”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빅쿠들이여, 그것이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가 개발되고 길러져 네 가지 마음챙김의 기초(짜따-로 사띠빳타-나, cattāro satipaṭṭhāna)를 이루는 방식이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는 바로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의 간략한 버전입니다.

 

까-마 라-가를 제거하여 아나-가-미 단계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다

 

5. 질문: 소따빤나(Sotapanna)가 세상 것들에 대한 갈망이 닙바-나(Nibbāna)에 이르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을 안다면, 왜 소따빤나가 그런 갈망을 잃는 것이 어려운가? 왜 붓다께서는 그것(갈망을 잃게 하는 것)을 더 쉽게 하기 위해 그 과정을 체계화하셨을까? 이 질문에 대해 짧게 답하면, 소따빤나가 이 세상에 대한 잘못된 견해(딧띠, diṭṭhi)를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있는 ‘마음을 기분좋게 하는 것들(mind-pleasing things)’에 대한 잘못된 인식(산냐, saññā)은 여전히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 * 술 중독자의 비유는 그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술을 끊으려면 먼저 올바른 견해, 즉 술이 건강에 해롭다는 올바른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술 중독자들은 음주와 관련된 ‘좋은 산냐(술이 좋다는 산냐)’를 제거하는 두 번째 단계에서 막히게 됩니다. 그는 음주의 나쁜 결과에 대해 틀림없이 끈질기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식으로, 소따빤나(Sotapanna)는 감각적 즐거움이 괴로움/고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비록 알지만, 감각적 즐거움과 관련된 ‘좋은 산냐(감각적 즐거움이 기분좋다는 산냐)’를 제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와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 명상이 필요한(요구되는) 곳입니다.

  • * ‘산냐-와 그 진정한 의미’라는 포스트를 읽고 산냐-(saññā)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딧티(diṭṭhi)와 산냐-(saññā) 사이의 차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위빨라-사(딧티, 산냐, 찟따)는 상카-라에 영향을 미친다’ 포스트에 있습니다.

 

6.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감각적 즐거움을 완전히 삼가할 필요가 있다고 잘못 믿습니다. 물론,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부도덕한 행위는 삼가해야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까-마 라-가(kāma rāga)는 소따빤나(Sotapanna) 단계 이후에만 제거될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제거될 수 있다 하더라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 * 간단한 비유는 술 중독자입니다. 음주의 해로운 결과를 먼저 ‘보지(알지)’ 않고서는 그 (음주)습관을 없앨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견해를 얻은’ 후에도 (음주) 충동이 올 때에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술 중독자는 음주의 나쁜 결과에 대해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소따빤나(Sotapanna)가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 /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 바-와나-(Bhāvanā, 명상)를 하는 동안 행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그것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 어떤 의심(의문)이 있으면, 위의 #1, #2를 주의 깊게 다시 읽어 보세요(그리고, 거기에 링크된 참고 문헌을 읽어보세요).

  • * 이제 좀 더 흔한 속설(잘못된 통념)을 불식시키기 위해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의 몇 가지 주된 특징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띠삐따까에 따라 본, 소따빤나 단계

 

7.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대한 귀중한 정보는 소따-빳띠상윳따(Sotāpattisaṁyutta)에 있으며, SN 55.1부터 SN 55.74까지 일련의 숫따들에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 * 첫 번째 숫따인 ‘짝까왓띠라-자 숫따( ‘Cakkavattirāja Sutta (SN 55.1)’ )에서는 소따빤나(Sotapanna)가 전 세계를 다스리는 황제보다 더 낫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황제는 아빠-야-(apāyā, 악처/사악처)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빠-야-(apāyā)에 속하는 네 영역은 또한 니라야(niraya, 지옥), 동물, 뻬따(peta, 아귀), 및 위니빠-따 아수라(vinipāta asura)라고 합니다. 더욱이, 소따빤나(Sotapanna)는 붓다, 담마, 상가에 대한 깨지지 않는 믿음(아웩짭빠사-데나, aveccappasādena)을 지니고 있으며 깨지지 않는 도덕 품행(아리야깐-따 실-라, ariyakānta sīla)를 지니고 있습니다.

  • *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한 사람은 스스로 그것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빠타마긴자까-와사타 숫따( ‘Paṭhamagiñjakāvasatha Sutta (SN 55.8)’ )에 있는데, 자신이 4가지 아빠-야(apāyā)에서 벗어났음을 아는 것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자신이 원한다면 그 성취를 자유롭게 선언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성취를 말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비록 그것을 자랑해서는 안된다고 하더라도, 위의 숫따는 붓다께서 그것(선언하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통념(속설)이 더 있습니다.

 

소따빤나 단계에 대한 더 많은 속설(잘못된 통념)

 

8. 소따빤나(Sotapanna)는 닙바-나(Nibbāna)가 무엇인지 보았을 뿐이고 그 길을 알고 있지만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그의 새로운 마음성향(마음가짐)은 어떤 아빠-야가-미 깜마(apāyagāmi kamma) (‘아빠-야_apāyā’에 재탄생으로 이어질 부도덕한 행위)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 * 사라까-니(Sarakāni)는 술을 많이 마시는 나이많은 바라문(Brahmin)이었습니다. 그는 노년에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소따빤나(Sotapanna)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 얼마 후에 그는 죽었고, 붓다께서는 그가 데와 로까(Deva loka, 천신계)에 태어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 중독자가 데와 로까(천신계)에 태어난다는 생각을 비웃었습니다. 붓다께서는 그들이 붓다 담마를 알지 못하였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그 이야기(설명)는 ‘빠타마사라나-니삭까 숫따( ‘Paṭhamasaraṇānisakka Sutta (SN 55.24)’ )에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앙굴리말라(Angulimala)가 거의 천명을 죽였지만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9. 또 다른 잘못된 통념(속설)은 소따빤나(Sotapanna)가 감각적 즐거움을 갈망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재세시에는 결혼하여 보통 가정생활을 한 수백만의 소따빤나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 주요한 여성 재가 제자였던 위사-까-(Vishākā, 또는 Visākā)는 7살의 나이에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여 결혼하였고 20명 이상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녀는 성관계를 삼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나-가-미(Anāgāmi)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전히 까-마 라-가(kāma rāga)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부부관계 외의 성관계는 하지 않았습니다.

 

  • * 소따빤나(Sotapanna)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강한 깜마(kamma, 업)에는 여섯 가지 유형만 있습니다. 즉, 어머니, 아버지, 또는 아라한을 죽이는 것, 부처님을 해치는 것, ‘상가베다(saṅghabheda, 상가분열)을 일으키는 것, 그리고 붓다 담마가 아닌 다른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바후다-뚜까 숫따( ‘Bahudhātuka Sutta (MN 115)’ )에 있습니다. 따라서, 소따빤나가 오계 중의 어떤 것도 어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통념(속설)입니다. 그것들을 어길 수 없는 자는 아라한입니다.

  • *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소따빤나(Sotapanna)의 지위를 저하(최소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소따빤나는 결코 아빠-야(apāya,악처)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소따빤나는 빠띳자 사뭅빠-다 과정을 이해한다

 

10. ‘두띠야사-리뿟따 숫따( ‘Dutiyasāriputta Sutta (SN 55.5)’ )에서 붓다께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소따빤나 단계를 논의하셨습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성스런 팔정도를 시작한 자가 소따빤나(Sotāpanna)입니다. 그 숫따(sutta)에서는 또한 어떻게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Sappurisasaṁsevo hi, Bhante, sotāpattiyaṅgaṁ, saddhammassavanaṁ sotāpattiyaṅgaṁ, yoniso manasikāro sotāpattiyaṅgaṁ, dhammānudhammappaṭipatti sotāpattiyaṅgan” ti, 즉, “세존이시여, 필요한 조건은 성자와 교류하는 것, 참된 가르침을 듣는 것,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 및 그 가르침에 맞추어 실천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핵심은 올바른 담마를 먼저 이해한 사람이 가르치지 않는 한, 사람들은 올바른 담마를 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것은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평범한 번역은 ‘적절한 주의’)라는 용어로, 이것은 ‘다양한 유형의 태어남(‘바와_bhava’와 ‘자-띠_jāti’)이 어떻게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ada)를 통해 일어나는지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같은 시리즈에 있는 ‘빠타마바야웨루-빠산따 숫따( ‘Paṭhamabhayaverūpasanta Sutta (SN 55.28)’ )에서는 다음과 같이 요니소마나시까-라(yonisomanasikāra)를 설명합니다. “Idha, gahapati, ariyasāvako paṭiccasamuppādaññeva sādhukaṁ yoniso manasi karoti—iti imasmiṁ sati idaṁ hoti, imassuppādā idaṁ uppajjati; iti imasmiṁ asati idaṁ na hoti, imassa nirodhā idaṁ nirujjhati; yadidaṁ avijjāpaccayā saṅkhārā, 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ṁ …pe…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다시 말하면,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이해할 때 요니소마나시까-라(yonisomanasikāra)가 있는 것입니다.

  • * 필자는 위에서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대해 가장 중요한 사실의 요약만을 제공했습니다. 접할 수 있는 영어 번역이 일부 면에서는 정확하지 않더라도 훑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에, 그 시리즈의 첫 번째 숫따에 대한 링크로,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사이트에 있는 영어 번역인 ‘A Wheel-Turning Monarch (SN 55.1)’이 있습니다.

 

요약

 

11. 도덕적 삶을 사는 것은 필요하지만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술 중독자가 음주와 관련된 위험(건강 위험)을 먼저 보아야 하는 것처럼,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재탄생 과정의 위험을 반드시 보아야 합니다.

 

  • * 많은 사람들이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대해 잘못된 생각(통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 몇 가지를 다루었습니다.

  • * 소따빤나 아누가-미 / 소따빤나(Sotapanna Anugāmi / Sotapanna) 단계는 성스런 길(팔정도)의 끝이 아니라 시작 단계입니다. 소따빤나(Sotapanna)는 ‘이 세상’에 머무르는 것(재탄생 과정)의 위험을 이해했지만, (자신을 까-마 로까, 루빠 로까, 및 아루빠 로까에 묶는) 까-마 라-가(kāma rāga), 루빠 라-가(rupa rāga) 및 아루빠 라-가(arupa rāga)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소따빤나(Sotapanna)는 까-마 로까(kāma loka)의 가장 낮은 영역들(사악처)을 극복했고, 따라서 재탄생 과정에 있는 대부분의 괴로움에서 벗어났습니다.

  • * 많은 사람들은 ‘무엇에 대해 명상해야 할지’를 이해하기도 전에 ‘명상’을 시작합니다. 물론 '호흡명상'을 하고 있다면, 배울 것이 없습니다. 호흡 명상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사마타 바-와나(Samatha Bhāvana)’로 사용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괴로움의 끝’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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