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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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곡된/잘못된 산냐-'에 들러붙음을 극복하면 닙바-나로 이어진다

     

    원문: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Overcoming Attachment to “Distorted/False Saññā” Leads to Nibbāna’ 포스트

     

    산냐-(saññā)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하나는 ‘세상의 것들’을 인식하는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의 것들에 끌리거나 반발하는 ‘만들어진(made-up)’ 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산냐-의 두 번째 측면은 아윗자-(avijjā)로 이어지는데, 그것은 결국 삭까-야 딧티(세상 것들이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잘못된 견해), 땅하(감각적 즐거움을 갈망), 그리고 마-나(나/내것이라는 감각)가 작용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것들은 단계적으로 제거되고, 마-나는 아라한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2024년 9월 28일 작성

     

    산냐-의 세 가지 유형

     

    1. 이전 포스트에서, 산냐-의 세 가지 범주를 논의했는데, (i) 감각 입력을 인식하는 ‘타고난 감각’, (ii) 생존을 최적화하기 위해 세상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타고난 감각’, (iii) 감각 경험에 대한 ‘왜곡된 평가/묘사’라는 ‘타고난 감각’이 그것입니다. 그것을 검토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산냐-의 두 가지 측면 ㅡ 유익함과 위험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타고난 감각’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통해 우리 몸에 내장되므로 마음에 자동적으로 떠오릅니다.

    • * 거기서 논의된 처음 두 가지 범주는 유익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하기도 합니다. 첫 번째는 특정한 유형의 나무, 음악, 음식, 또는 아버지/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이나 특정 색깔 등 감각 입력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범주는 주로 동물 영역에서 발견되는데, 단순한 새 둥지부터 개미가 만든 정교한 ‘거대 도시’에 이르기까지 길 안내나 거주지를 건설하는 지침에 대한 내장된 감각을 제공함으로써 동물의 생존에 도움을 줍니다.

    • * 논의된 세 번째 범주는 괴로움(고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것은 감각 경험에 대한 ‘잘못된/왜곡된 산냐’입니다.

    • * 잘못된/왜곡된 산냐-가 어떻게 세 가지 로까-(lokā)에서 일어나는지에 대한 개관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범주 모두 ‘내장’되어 있다 

     

    2. 모든 세 가지 유형의 산냐-는 각 유정체에 ‘내장(built-in)’되어 있습니다.

     

    • * 인간과 동물들은 완전히 업 에너지에 의해 창조된 ‘정신적 몸’으로 먼저 태어납니다. 업 에너지는 마음(마노)에 의해 창조되었으므로, 정신적 몸은 마노마야 까-야(manomaya kāya, ‘마음이 만든 몸’)라고 불립니다. 그것은 또한 띠삐따까에서 ‘간답바(gandhabba)’라고 불립니다. ‘간답바 상태 - 삼장에 있는 증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 마노마야 까-야가 자궁속으로 끌려 들어가면, 조밀한 육체(‘sarira’: 때로는 ‘karaja kāya’라고 함)와 함께 태어납니다. 인간 간답바는 수천년 동안 살 수 있으므로, 여러번 (약 100년의 수명을 가진) 육체와 함께 태어날 것입니다. 더 자세한 것은 ‘리빙 담마’ 섹션의 ‘멘탈 바디 ㅡ 간답바(Mental Body – Gandhabba)’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 * 알다시피, 6가지 데와 영역에 있는 데와-와 20가지 브라흐마 영역에 있는 브라흐마는 단지 하나의 몸(kāya)으로만 태어납니다. 그들은 ‘오빠빠-띠까(즉각적) 탄생’(화생)입니다. 그들은 삶의 전 기간 동안 그 마노마야 까-야로 삽니다.

    • * 산냐-의 세 가지 유형 모두는 유정체와 연관된 각 까-야에 내장됩니다. 산냐-의 세 가지 유형 모두 마노마야 까-야(간답바)와 인간 또는 동물의 육체에 내장됩니다. 

     

    세 가지 유형의 산냐-에 대한 이유

     

    3. 생명 흐름은 자연 법칙(빠띳짜 사뭅빠-다와 깜마의 법칙)에 따라 자동적으로 세상의 영역에서 영역으로 이동합니다.

     

    • * 우리는 현재 인간으로 살고 있지만, 우리의 깊은 과거에 (아나-가-미들에게 예약된 영역을 제외하고) 31영역의 대부분에 태어났습니다.

    • * 따라서, 우리 각자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 외에도 브라흐마 영역과 6가지 천상의 대부분에 여러 번 살았습니다. 우리는 인간과 더 높은 영역을 합한 것보다 가장 낮은 네 가지 영역(사악처, 아빠-야)에 태어난 횟수가 훨씬 많습니다.

    • * 인간 영역의 우리 존재가 끝나면, 우리의 생명 흐름은 가능한 가장 강한 깜마 비자(업씨앗)에 붙잡히게 됩니다. 

    • * 예를 들어, 자-나를 육성했다면, 해당하는 브라흐마 영역에 재탄생할 것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니고 브라흐마입니다. 그 브라흐마는 인간일 때의 이전 생에 대해 알지 못할 것입니다(동일한 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과거 생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그 반면에, 예를 들어 부모를 죽였다면, 네 가지 가장 낮은 영역 중의 하나, 아마도 니라야(niraya, 지옥)라고 하는 가장 낮은 영역에 태어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예에서, 그 결과는 아-난따리야 깜마(ānantariya kamma)기 때문에 확실합니다. 아-난따리야 깜마가 없으면, 가능한 가장 강한 깜마 비자가 다음 생을 결정하게 됩니다.

     

    ‘왜곡된/잘못된 산냐-’는 세 가지 로까-와 연관된다

     

    4. 이 세상의 모든 존재에는 특정한 유형의 ‘왜곡된/잘못된 산냐-’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존재들은 세 가지 로까-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6가지 감각 기능을 모두 갖춘 이들은 까-마 로까(사악처, 인간 영역, 및 6가지 데와 영역)에 삽니다. (세 가지 감각 기능과 숫닷타-까 레벨의 미묘한 몸을 지닌) 루빠-와짜라 브라흐마들은 루빠 로까의 16가지 영역에 삽니다. 마음만을 가진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들은 아루빠 로까의 4가지 영역에 삽니다. 또한, ‘성향(가띠)은 어떻게 바와와 자-띠로 이어지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까-마 로까의 유정체들은 잘못된/왜곡된 까-마 산냐-를 받아들입니다. 루빠 로까 브라흐마들은 잘못된/왜곡된 자-나 산냐-를 받아들입니다. 아루빠 로까 브라흐마들은 잘못된/왜곡된 아루빠 사마-빳띠 산냐-를 받아들입니다.

    • * 왜곡된 산냐-는 인간과 동물의 육체와 정신적 몸(그리고 브라흐마의 미묘한 몸)에 내장되어 있으므로, 그것은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막가 팔라에 도달한 후나 아라한 단계에 도달한 후에도, 그 내장 산냐-는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아라한도 꿀을 달콤한 것으로 맛볼 것입니다.

    • * 그러나, 이 세상의 어떤 것도 고유하게 아릅답고/추하거나 맛있고/맛없는 본질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아라한들은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그 왜곡된/잘못된 산냐-에 들러붙지 않습니다.  

     

    루빠 로까에 있는 브라흐마의 특징

     

    5. 인간 영역에서 분리되어 ‘루빠 로까’의 16가지 영역 중의 하나에 브라흐마로 태어난 인간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 * 브라흐마는 우리와 같은 육체가 없습니다. 브라흐마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물질의 흔적만 있는) ‘정신적 몸’만 가집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 * 브라흐마의 ‘몸’에 있는 물질의 양은 작은 개미 한 마리나 바이러스/박테리아 하나의 몸보다 훨씬 더 적습니다.

    • * 브라흐마의 몸에는 물질의 거의 없지만, 그 미묘한 몸은 상당한 공간 차원에 걸쳐 펴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 브라흐마에는 우리가 어떤 두 사람 사이의 차이를 볼 수 있듯이, ‘식별 가능한 특징’이 있을 것입니다. 

    • * 예를 들어, 붓다께서 바까 브라흐마를 방문하셨을 때, 인간 몸이 아니라 ‘브라흐마 몸’과 같이 미묘/미세한 ‘정신적 몸’으로만 그곳에 가셨습니다. ‘Brahmanimantanika Sutta (MN 49)’을 참조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까 브라흐마는 부처님을 알아보았고, 부처님도 바까 브라흐마를 알아보셨습니다.

     

    6. 루빠 로까 브라흐마는 육체가 없으므로 숨을 쉴 필요가 없습니다. 브라흐마 영역은 지구의 훨씬 위에, 대기가 없는 곳에 있다고 추정됩니다.

     

    • * 브라흐마는 성 기관이 없고 따라서 성관계 개념이 없습니다. 브라흐마는 먹을 필요가 없고 냄새 감각이 없습니다. 브라흐마는 오직 보고, 듣고, 그리고 생각할 수만 있습니다.

    • * 그러므로, 까-마 산냐-가 브라흐마에게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 대신에, 브라흐마의 마음은 주로 자-나 상태에 있는데, 대신에 자-나 산냐-를 가질 것입니다.

    • * 더욱이, 브라흐마는 그 자-나 산냐-를 즐길만한 것으로 인식합니다. 그것은 루빠 로까 브라흐마-와 연관된 ‘왜곡된/잘못된 산냐-’입니다.

    • * 인간 영역과 달리, [그곳에는] 먹고 살고 옷이나 집이나 차를 사는 것에 대한 걱정이 없습니다. 도둑질이나 거짓말이나 누군가를 해칠 필요가 없습니다. 브라흐마는 그 존재 기간 동안 ‘자족적(self-sufficient)’입니다. 

    • * 그러므로, 까-마 라-가(kāma rāga)와 빠띠가(paṭigha)는 브라흐마 존재의 전 기간 동안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까-마 라-가와 빠띠가 상요자나는 여전히 브라흐마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맛, 냄새, 또는 (성관계를 포함한) 감촉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그것들은 그 존재 중에 촉발될 수 없을 뿐입니다. 일단 까-마 로까에 재탄생하면, 까-라 라-가가 다시 촉발될 수 있습니다.

     

    브라흐마-는 왜 ‘까마 산냐-’를 가지지 않는가?

     

    7. 루빠 로까 브라흐마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자-나를 육성해야 합니다. 더 낮은 자-나를 지닌 이들은 더 낮은 브라흐마 영역 등에 태어납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해 호흡이나 까시나 명상을 하여 육성된 아나리야 자-나입니다. 물론, 그들은 일반적으로 부도덕한 행위와 성적인 행위와 다른 감각적 행위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 * (최근 전생에 자-나를 육성하지 않았다면) 자-나를 육성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 * 누구든지 자-나를 육성한 사람은 ‘감각적 (까-마) 즐거움’보다 ‘자-나의 즐거움’을 선호할 것입니다. 따라서, 아나리야 자-나를 육성한 뿌툿자나도 까-마 라가를 가라앉혔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까-마 산냐-를 일시적으로 극복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여전히 비싼 식사가 맛있음을 느끼지만, 그것을 더 구하여 그것에 들러붙지 않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나에서 더 나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산냐- 니로다’ = 닙바-나

     

    8. 그 사람이 더 높은 자-나로 진전하여 아루빠 사마-빳띠를 육성하면, 그는 ‘자-나의 즐거움’도 열등함으로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그는 ‘자-나 산냐-’에서 오는 ‘자-나의 즐거움’을 극복하고 ‘아루빠 사마-빳띠 산냐-’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 * 우리가 상상하기는 쉽지 않지만, ‘아루빠 사마-빳띠 산냐-’조차 극복하는 것이 최상인데, 그것은 니로다 사마-빳띠(nirodha samāpatti)라 불리며, 거기서는 모든 유형의 산냐-가 없습니다. 이것은 육체가 죽은 후에 모든 아라한의 상태에 상당합니다. (모든 자-나와 아루빠 사마-빳띠를 거친) 우바또바-가 아라한(ubhatobāgha Arahant)만 니로다 사마-빳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 ‘Nibbedhika Sutta (AN 6.63)’에서, 붓다께서는 “성스런 팔정도는 산냐-의 그침, 즉 닙바-나로 이어지게 한다”라고 표명하셨습니다. 거기서 언급된 바와 같이, 그것은 팟사의 그침과 함께 일어납니다. 여기서 팟사의 그침은 ‘삼팟사(samphassa)’의 그침, 즉 ‘라-가, 도사, 모하라는 오염원과 함께 접촉’하는 것의 그침을 의미합니다.

    • * 더욱이, 여기서 산냐-의 그침 ‘왜곡된/잘못된 산냐-’에 들러붙음을 극복하는 것만 의미하며, 살아 있는 동안 산냐-를 잃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살아 있는 붓다 또는 아라한은 세 가지 유형의 모든 산냐-를 여전히 가지지만, 그 마음은 그것들의 어떤 것에도 들러붙지 않습니다.

     

    9. ‘왜곡된/잘못된/오도하는 산냐-’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 답은 “ ‘왜곡된/잘못된/오도하는 산냐-’의 존재에 대한 무지 ”입니다

    • * 붓다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까지, 아무도 ‘왜곡된/잘못된/오도하는 산냐-’에 대한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감각적 즐거움, 자-나의 즐거움, 그리고 사마-빳띠의 즐거움이 실재한다고 진심으로 믿습니다.

    • * 따라서, 유정체는 그 영역과 연관된 타고난 또는 내장된 ‘왜곡된/잘못된/오도하는 산냐-’에 자동적으로 들러붙게 됩니다. 그것은 재탄생 과정을 영구화하고, 사람들은 세상의 본질에 대한 이 사실이 이해될 때까지 그것을 결코 멈출 수 없게 됩니다.

    • * ‘왜곡된/잘못된/오도하는 산냐-’의 존재에 대한 무지가 잘못된 견해(특히 삭까-야 딧티), 세상에서 즐거움을 갈망함(땅하-), 그리고 ‘나/내것’이라는 감각(마-나)으로 이어집니다.

     

    잘못된 견해의 근본 원인은 (왜곡된) 산냐-다

     

    10. 한 때, 유행자 왓차곳따는 붓다께 “다양한 잘못된 견해가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 * 붓다께서는  ‘Saññāya kho, vaccha, aññāṇā, saññāsamudaye aññāṇā, saññānirodhe aññāṇā, saññānirodhagāminiyā paṭipadāya aññāṇā.’라고 답하셨습니다. 여기서, ‘aññāṇā’는 ‘무지’ 또는 ‘알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 * 따라서, 붓다께서는 사람이 산냐-의 참된 본질, 산냐-의 기원, 그리고 그 (왜곡된) 산냐-를 제거하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양한 유형의 잘못된 견해(diṭṭhi)가 생긴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는 한가지 길(방법)입니다.

    • * ‘Saññāaññāṇa Sutta (SN 33.3)’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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