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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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아윗자-'와 '위빠-까 윈냐-나/깜마 윈냐-나'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Mōha/Avijjā and Vipāka Viññāṇa/Kamma Viññāṇa’ 포스트

- 2019년 12월 14일 작성; 2019년 12월 15일 개정

 

지금까지 논의의 요약

 

1. ‘붓다의 세계관(Worldview of the Buddha)’ 서브섹션에서, 우리는 붓다께서 감각 경험을 어떻게 설명하셨는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붓다께서는 ‘유정체’가 어떻게 주어진 감각 경험에 ‘들러붙음’(땅하-, taṇhā)을 기반으로 미래 존재 (bhava, 바와)를 위한 업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지를 가르치셨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논의한 바와 같이, ‘들러붙음’은 탐욕, 증오 또는 현명하지 못한 마음가짐(mindset)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습니다.

 

  • * 먼저, 우리는 6가지 감각(내부 아-야따나, internal āyatana) 중 하나가 외부 아-야따나(external āyatana)와 접촉할 때 아-람마나(ārammana)(광경, 소리, 냄새, 맛, 감촉, 담마-)가 마음에 오면 감각 사건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논의했습니다. 감각 입력을 알게 되는 것은 6가지 유형의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 즉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 소-따 윈냐-나(sōta viññāṇa), 가-나 윈냐-나(ghāna viññāṇa), 지와- 윈냐-나(jivhā viññāṇa), 까-야 윈냐-나(kāya viññāṇa),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ṇa) 중의 하나입니다.

  • *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ṇa)를 포함하여 그 6가지 유형의 윈냐-나(viññāṇa)는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입니다. 그것들은 업 에너지를 생성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경험들’입니다.

 

2. 그 다음, 감각 경험에 즉시 ‘들러붙게’ 되거나’ ‘매이게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땅하-(taṇhā) 생성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가 자동적으로 따라옵니다. 그것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PS) 사이클의 중간 단계입니다.

 

  • * ‘오염된 가띠(gati)’가 있을 때만 들러붙습니다(땅하-, taṇhā). 그것은 감각 경험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무지와도 연관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 들러붙으면, (‘와찌- 상카-라’로) 생각하고 말하기 시작하고, 오염된 마음으로 (‘까-야 상카-라’로) 행동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를 통해 그 상카-라(saṅkhāra)가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빠-다-나(upādāna)’, 즉 ‘그 아-람마나(ārammana)를 가까이 끌어당기는 것’의 일부입니다.

  • * 따라서, #2로 여기 요약된 것은 PS(연기)의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가 어떻게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PS(연기) 과정을 시작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아-람마나(ārammana)로 시작하는(‘차착까 숫따, MN 148’에 자세히 설명됨) PS(연기) 사이클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차트로 요약

 

3. 위에서 논의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논의에 도움이 되도록 아래 차트를 만들었습니다.

 

 

 

위 차트는 ‘Response to a ārammana with Mōha’, ‘Response to a ārammana with Avijjā’, 및 ‘Response to a ārammana by an Arahant’에서 다운받아 쉽게 보거나 인쇄할 수 있습니다.                

 

  • * 위 모든 차트에서 언급된 빠띳자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연기)는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ūla Paṭicca Samuppāda)’입니다. 그 PS(연기) 과정은 미래의 시달림(고통, 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 * 그러므로, 아라한에게 일어나지 않는 상카-라(saṅkhāra)는 ‘나쁜 또는 부도덕한 상카-라(saṅkhāra)’일 뿐입니다. 아라한(Arahant)은 여전히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āra),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 및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를 생성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아라한들은 ‘뿐냐 끼리야-(kriyā)’, 즉 ‘도덕적 행위’를 합니다. 그런 ‘도덕적 행위’는 ‘뿐냐 아비상카-라(puñña abhisaṅkhāra)’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라한들은 아닛짜 특성(anicca nature)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중요한 점은 나중에 논의하겠습니다.

 

‘모하-’와 ‘아윗자-’ 사이의 차이

 

4. 첫번째 차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 차트는 ‘도덕적으로 완전히 눈먼’ 극단적인 경우의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그 마음은 오염원으로 덮어 있습니다(모-하, mōha). 그런 사람은 마치 동물처럼 마음에 들어오는 모든 유혹에 따라 갑니다. 그 사람의 ‘나쁜 가띠(bad gati)’는 더 강해지기만 할 뿐입니다.

 

  • * 두번째 차트는 아윗자-(avijjā)를 지닌, 넓은 범위에 걸쳐 있는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아윗자-(avijjā)는 모-하(mōha)의 낮은 형태입니다. 10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amicchā diṭṭhi)를 제거하면, 모-하(mōha)는 아윗자-(avijjā) 수준으로 감소합니다. 옳고 그름을 아는 모든 사람은 보통(평균적인) 사람이며 여기에 해당합니다. 또한, 여기에는 아리야-(Ariyā, 성자)(‘소-따빤나 아누가-미, Sōtapanna Anugāmi’ 이상)이지만 아직 아라한과(Arahanthood)에 이르지 못한 성자들도 포함됩니다.

  • * 물론, 어떤 아리야-(Ariyā, 성자)도 아빠-야가-미(apāyagāmi)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아나-가-미(Anāgāmi) 성자는 감각적 즐거움 등에 대해 갈망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닙바-나(Nibbāna)의 더 높은 단계로 감에 따라, 그 성자는 아-람마나(ārammana)(감각 입력)에 점점 더 적게 들러붙습니다.

  • * 그러나 평범한 사람(범부 중생)은 (관습 기준에 따라 아무리 도덕적이라고 해도) 아빠-야가-미(apāyagāmi) 행위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 아-람마나(ārammana)가 유혹을 받을만큼 충분히 강하다면, 그런 아빠-야가-미(apāyagāmi)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 아라한(Arahant, 아라한뜨)은 완전히 정화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나쁜 가띠(bad gati)’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라한 성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ūla 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번째 차트에 나와 있습니다.

 

‘위빠-까 윈냐-나’와 ‘깜마 윈냐-나’ 사이의 차이

 

5. 위 차트는 또한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와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의 차이를 명확히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모든 감각 경험은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입니다.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는 차트의 상단에 표시된 것처럼 6가지 감각 기능 중의 어떤 것을 통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아라한(Arahant) 성자를 포함한 모든 유정체는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를 경험합니다. 즉, 모든 유정체는 보고 듣는 등을 할 수 있습니다.

 

  • * 만약 누군가가 아-람마나(ārammana)에 들러붙게(taṇhā, 땅하-) 되면, PS(연기)의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를 시작합니다. 그것은 ‘그 아-람마나(ārammana)를 가까이 끌어 당기기 (upādāna, 우빠-다-나)’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먼저,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로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감각 경험에 관여된 ‘나(me)’라는 감각으로 그렇게 합니다. 이미 논의했듯이, 감각 입력을 경험하는 ‘나(me)’ 또는 ‘자아(self)’는 필요하지 않습니다.차착까 숫따 - 초기 감각 경험에서는 자아가 없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그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의 시작에서, PS(연기)의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 단계로 그 아-람마나(ārammana)에 대해 상카-라(saṅkhāra)를 생성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PS(연기) 사이클이 ‘시작 단계’에서 시작할 때이고, 그 다음에 끝까지 실행됩니다.

  • *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 단계 후에 PS의 다음 단계는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a paccayā viññāṇa)’입니다. 그 윈냐-나(viññāṇa)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입니다. 그것은 오직 마음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에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ṇa)입니다. 이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는 처음 두 개의 차트의 하단에 나타나 있습니다. 아라한(Arahant) 성자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를 생성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 번째 차트에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가 없습니다.

 

‘나’ 또는 ‘자아’라는 견해(사견)와 산냐(지각)로 생성된 깜마 윈냐-나

 

6. #5의 마지막 불렛(글머리 기호)으로부터, 아라한(Arahant, 아라한뜨)인 경우에만 마음이 아꾸살라ㅡ물-라 PS(Akusala-Mūla PS)를 거치지(겪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 * 그것은 오직 아라한만이 모든 감각 입력(아-람마나, ārammana)에 들러붙는 것의 무익함을 ‘보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라한에게는 ‘나( me)’나 ‘자아(self)’의 감(감각)이 없습니다.

  • * 그것은 다음 포스트에서 자세히 논의할 점입니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 미리 아는 것이 좋습니다.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에 대해 논의할 때 앞으로 있을 포스트(게시물)을 따라갈 수 있도록 지금까지 제시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아라한(Arahant) 단계 아래의 모든 이들은 적어도 몇 가지 감각 입력에 들러붙습니다. 그 때문에 아라한 단계 아래의 모든 이들은 적어도 아윗자- 아누사야(avijjā anusaya)의 흔적을 남깁니다.

  • * 보통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그 때문에 붓다께서는 ‘자아(self)’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요점은 닙바-나(Nibbāna)의 아라한(Arahant) 단계 아래에 있는 모든 이에게는 ‘가띠(gati)’를 지닌 ‘자아(self)’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 * 그러나,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 이상의 모든 이들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내 것’이라고 취하는(들러붙는) 것이 결실(실속)이 없고 또한 미래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보는 것(seeing)’은 지혜로 보는 것이며, 로-꿋따라(lōkuttara)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입니다. 낚시 바늘에 매달린 맛있는 미끼를 무는 물고기는 그것이 많은 고통(괴로움)을 당할 것임을 보지 못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보통 인간은 감각적 즐거움에 숨겨진 고통(괴로움)을 ‘볼’ 수 없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향후 포스트(게시물)에서 논의하겠습니다.

  • * 띨락카나(Tilakkhana),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어느 정도 이해하면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가 됩니다. 그 후에도 ‘나(me)’에 대한 산냐-(saññā, 지각)이 있습니다. 그 지각(인식)은 더 높은 단계의 막가 팔라(magga phala)와 함께 감소하고 아라한 단계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자아 또는 무아로 시작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 

 

7. 위 # 5에서 요약한 바와 같이(그리고 거기에 언급된 포스트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아-람마나(ārammana)에 대한 들러붙음은 즉각 일어납니다. 그것은 의식적인 사고를 요하지 않으며, 그래서 멈출 수 없습니다. ‘나쁜 가띠(bad gati)’가 있는 한, 어떤 감각 입력 (아-람마나, ārammana)에 들러붙게 됩니다.

 

  • * 땅하-(taṇhā)를 제거하는 길은 자신의 ‘나쁜 가띠(bad gati)’를 줄이고 최종적으로 제거하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인간은 PS(연기)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 * 사실, PS(연기) 과정에는 ‘자아(self)’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아(self)는 ‘영혼(soul)’이나 ‘아-뜨마(ātma)’처럼 ‘변하지 않는 자아(unchanging self)’가 아닙니다. 필자는 그것을 ‘동적 자아(dynamic self)’라고 부릅니다. 이에 대해서는 ‘환생이란 무엇인가? - 생명 흐름의 개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 자아(self)는 아라한 단계에 도달하면 사라집니다!

 

8. 그러므로, 아라한(Arahant)가 될 때까지는, 감각 입력에 어떻게 반응할 지를 결정하는 ‘자아(self)’가 있습니다. 위의 두번째 차트에서 볼 수 있듯이, 누구나 주어진 감각 입력에 유혹될 때 일어나는 ‘나쁜 와찌- 상카-라(bad vacī saṅkhāra)’를 멈출 수 있습니다. 그것에 실패하면 신체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를 멈출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나쁜 의식적 생각, 나쁜 말, 또는 나쁜(부도덕한) 행동을 인지하는 즉시, 멈춰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띨락카나(Tilakkhana),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어느 정도 이해하여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가 되면, 자신의 ‘아빠-야까-미 가띠(apāyagāmi gati, 악처로 가게 하는 가띠)’가 사라집니다. 

  • * 그때까지는, 어떤 유혹을 멈추기 위해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또는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 바-와나-(Bhāvanā)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공식(정식) 명상 기간(meditation session)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공식(정식) 명상 기간을 가지더라도, 일상 생활을 할 때 마음챙김으로 행하지 않으면, [그 명상 기간은] 전혀 쓸 데가 없습니다. 그 때(일상 생활할 때)가 대부분의 오염된 생각과 행동을 일으키는 때입니다.

  • * 정식 명상은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한 후에 더 적절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바-와나-야 빠하-땁빠-(bhāvanāya pahātabbā)’가 삽바-사와 숫따(Sabbāsava Sutta, MN 2)에서 마지막에 오는 것입니다. 거기서, ‘올바른 시각(견해)을 통한 제거’인 ‘닷사네나 빠하-땁빠-(dassanena pahātabbā)’가 그 목록의 첫 번째입니다. 그것이 소-따빤나(Sōtapanna)가 되기 위해 필요한 ‘올바른 비전(시각, 견해)’입니다. 먼저 무엇에 대해 명상해야 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깜마 윈냐-나’는 미래 기대를 가진다

 

9.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와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의 실제 차이는 무엇일까요?

 

  • *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는 감각 경험을 겪게 합니다. 우리는 짝꾸 윈냐-나(cakkhu viññāṇa)로 보고, 소-따 윈냐-나(sōta viññāṇa)로 듣고, 지와- 윈냐-나(jivhā viññāṇa)로 맛보고, 가-나 윈냐-나(ghāna viññāṇa)로 냄새를 맡고, 까-야 윈냐-나(kāya viñññāṇa)로 촉감을 느끼고,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ṇa)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합니다.

  • *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를 통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탐욕(탐함)이나 증오(미워함)를 통해 아-람마나(ārammana)에 들러붙게 될 때, 기대가 있습니다. 그 아-람마나(ārammana)를 좋아한다면, 더 많이 원합니다. 그 아-람마나(ārammana)를 싫어한다면, 그것이 사라지기를(없어지기를) 원합니다.

  • * 그러므로,  의식적으로 생각하고(vacī saṅkhāra, 와찌- 상카-라), 행동을 취할 때(kāya saṅkhāra, 까-야 상카-라), 그런 상카-라에는 ‘기대’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 상카-라(saṅkhāra)는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a paccayā viññāṇa)’를 통해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로 이어집니다.

 

10.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에 있는 그 ‘기대’는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의 마음에 의해 생성된 에너지입니다. 그것들은 담마-(dhammā)로, ‘거기 외부 세계[나-마 로까, 정신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마난짜 빳띠짜 담메- 짜 웁빳자-띠 마노- 윈냐-낭(manañca paṭicca dhammē ca uppajjāti manō viññāṇaṃ)"의 담마-(dhammā) 일부입니다.

 

  • * 그러므로, 다른 5가지 유형의 루-빠(rūpa)가 ‘거기 외부 세계[루-빠 로까, 물질계]’에 있는 것처럼, 담마-(dhammā)도 ‘거기 외부 세계[나-마 로까, 정신계]’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것은 소-따 인드리야(sōta indriya)를 통해 소리가 감지되는 것처럼 마나 인드리야(mana indriya)를 통해 감지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 기대가 주기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다시 떠오르는 방법, 즉 우리가 미래 계획을 상기하는 방법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것을 ‘잠재 의식(subconscious, 무의식)’이라고 칭했습니다. 물론 그는 실제 메커니즘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 * 담마-(Dhammā)도 루-빠(rūpa)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단지 숫닷-타까(suddhāṭṭhaka) 레벨 아래에 있는 에너지일뿐입니다. 그것들은 “아니닷사낭 압빠띠강 담마-야따나빠리야-빤낭(anidassanaṃ appaṭighaṃ dhammāyatanapariyāpannaṃ)”입니다. 즉, 그것들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질 수도 없습니다.” '루-빠'란 무엇인가? – '담마-'도 '루-빠'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다섯 가지 육체적 감각 기능을 통해 감지되는 다른 다섯 가지 유형의 루-빠(rūpa)는 숫닷-타까(suddhāṭṭhaka) 레벨 위에 있습니다. 현대 과학은 이 다섯 가지 유형만을 알고 있습니다.

  • * 다음 포스트에서 담마-(dhammā)에 대해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새로운 시리즈에 대한 모든 포스트(게시물)은 이 ‘담마와 과학’ 섹션 중의 ‘생명의 기원’ 서브섹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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