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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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낫따(세간적 해석) – 변하지 않는 자아는 없다


원문 :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Anattā(Mundane Interpretation) –No “Unchanging Self” ’ 포스트

- 2018년 12월 5일


1. 요즘, 대부분 사람들은 핵심 빠알리 용어인 ‘아낫따(anatta)’를 단지 '무아(no-self)'로 번역합니다. 그러나,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 나타나는 아낫따(anatta)를 몇 개만 보면, 문맥에 따라 다른 식으로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 사실, 앗타(attha), 아따(atta) 및 아따-(attā)라는 낱말은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를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 영어에서도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낱말 ‘right’는 ‘you are right'와 ’turn right'에서 다른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같은 음으로 발음되지만, 낱말 'write'는 'right'의 그 두 가지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을 뜻합니다.


2. 비록 좀 심오한 숫따(sutta) 이지만, 아-난다 숫따(Ānanda Sutta, SN 44.10)는 아낫따(anatta)를 설명하기 시작하는 바탕으로 적당합니다. 지금처럼, 붓다 재세시에 많은 사람들은 자아 또는 영혼(attā)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앗따-(attā)의 세간적 의미입니다.


* 왓차곳따(Vacchagotta)는 붓다께 와서, “낑 누 코, 보 고따마, ‘앗탓따-’띠?(kiṃ nu kho, bho gotama, ‘atthattā’ti?)”, 즉 ‘고따마 선생님, 자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바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 ‘앗탓따-(atthattā)’는 ‘앗타(attha) + 앗따-(attā)’로 합성된 낱말입니다. 여기서, ‘앗타(attha)’는 ‘진실, 진리’를 의미하고, 이 경우에 왓차곳따(Vaccagotta)가 뜻한 것으로 ‘앗따(attā)’는 ‘자아’가 됩니다. 따라서, ‘앗탓따-(atthattā)’라고 말하여, 왓차곳따(Vacchagotta)가 뜻하는 바는 ‘앗따-(attā)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바릅니까?’입니다.


3. (이 질문에 대해) 붓다께서는 침묵하셨고, 왓차곳따(Vacchagotta)는 부정 형태로 다시 질문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낑 빠나, 보 고따마, ‘낫탓따-’띠?(Kiṃ Pana, bho gotama, ‘natthattā’ti?)”, 즉, ‘고따마 선생님, 자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바르지 않습니까?’였습니다. (이 질문에도) 붓다께서 질문에 답하지 않자, 왓차곳따(Vacchagotta)는 일어나 떠나갔습니다.


* 낫탓따-(natthattā)는 ‘나(na) + 앗타 (attha) + 앗따-(attā)’로 세 낱말이 합성된 낱말이며, ‘앗탓따-(atthattā)’의 부정입니다.

* 빠알리어에서 이러한 낱말의 합성을 ‘Kāmaccandha and Icca – Being Blinded by Cravings’ 포스트에서 좀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4. 왓차곳따(Vacchagotta)가 떠났을 때, 아난다 존자는 붓다께서 질문에 답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 붓다께서는 자신이 긍정의 대답(즉, ‘자아가 있다’는 것)을 한다면, ‘그러한 자아가 있다’고 하는 잘못된 견해를 가진 자들에게 동의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이 잘못된 견해는 사싸따와-다(sassatavāda), 즉 ‘영속하는 실체(오늘날 ‘영혼’이라고도 함)가 있다‘는 견해입니다.

* 또한, 붓다께서는 자신이 부정의 대답(즉, ‘자아가 없다’는 것)을 한다면, ‘그러한 자아가 없다’고 하는 잘못된 견해를 가진 자들에게 동의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이 잘못된 견해는 웃쩨다와-다(ucchedavāda), 즉 ‘몸이 죽으면 그 자는 끝난다(재탄생이 없다)’는 견해입니다.

* 붓다께서는 '자아(self)의 견해(sassatavāda_사싸따와-다)'와 '무아(no-self)의 견해(ucchedavāda_웃쩨다와-다)'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5. (경의) 그 구절만 보아도, 아낫따(anatta)를 무아(no-self)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붓다 재세시에 브라만들의 한 파에서 받아들인 잘못된 견해를 가지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즉, 잘못된 견해는 웃쩨다와-다(ucchedavāda)라는 그 견해입니다.


*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사이트에 올려진 영어 번역이 위 4번에서 설명한 의미와 같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Ānanda  Is There a Self? (SN 44.10)’를 보세요. 그 번역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난다여, 왓차곳따(Vacchagotta) 유행자가 ‘자아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자아가 있다’고 대답했다면, 영원론자들인 고행자들과 브라만들의 편에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자아가 없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자아가 없다’고 대답했다면, 단멸론자들인 고행자들과 브라만들의 편에 있는 것이 될 것이다.”

* 그래서 이 구절의 번역은 필자의 위 설명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설명하는 것과 같이,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사이트에서는 그 다음 구절의 번역을, ‘삽베 담마- 아낫따-(sabbe dhammā anattā)’에서 무아(no-self)와 동일한 의미를 사용하며 모순이 됩니다.


6. 그 다음, 붓다께서는, 왓차곳따(Vacchagotta)가 그때에 ‘삽베 담마- 아낫따-(sabbe dhammā anattā)’에 있는 아낫따-(anattā)의 깊은 의미, 즉 아낫따(anatta) 특질에 대해 혼란스러워할 것이기 때문에, 이 주제에 대한 어떤 논의도 왓차곳따(Vacchagotta)를 혼란스럽게 하게 될 것이라고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한짜-난다, 왓차곳따싸 빠립바-자까싸 ‘앗탓따-’띠 뿟토 사마-노 ‘앗탓따-’띠 브야-까레이양, 아삐 누 메 땅, 아-난다, 아누로망 아바위싸 냐-나싸 웁빠-다-야: ‘삽베 담마- 아낫따-’띠?(Ahañcānanda, vacchagottassa paribbājakassa ‘atthattā’ti puṭṭho samāno ‘atthattā’ti byākareyyaṃ, api nu me taṃ, ānanda, anulomaṃ abhavissa ñāṇassa uppādāya: ‘sabbe dhammā anattā’ti?)”

“노 헤땅, 반떼(No hetaṃ, bhante)”


* 사실, 이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혼란입니다. 사람들은 ‘삽베 담마- 아낫따-(sabbe dhammā anattā)’의 ‘아낫따 특질(anatta nature)’을 ‘아낫따-(anattā)’의 ‘무아(no-self)’ 의미와 동일시합니다.

* ‘삽베 담마- 아낫따-(sabbe dhammā anattā)’는 ‘모든 담마-(dhammā)는 아낫따 특질(anatta nature)이 있다’, 즉 ’모든 담마-(dhammā)는 실속이 없다‘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낫따 특질(anatta nature)’을 이해하지 못하면, 실속이 없고 난감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7.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의 번역에서, 동일한 세간적 의미(무아_no-self)가 ‘삽베 담마- 아낫따-(sabbe dhammā anattā)’에 있는 아낫따(anatta)에 적용되었습니다.


* 앞 6번의 빠알리 구절은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사이트에 “아난다여, 왓차곳따(Vacchagotta) 유행자가 ‘자아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자아가 있다’고 대답했다면, (왓차곳따에게) ‘모든 현상은 무아(non-self)’라는 그 앎이 일어나서 나의 가르침과 일치하게 되었을 것인가?”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 무엇보다 먼저, ‘모든 현상은 무아(non-self)’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담마-(dhammā)는 어쨌든 자아(self)를 가질 수 없습니다. 바르게 번역하려면 ‘모든 현상은 진짜 실속(본질)이 없다’는 것과 같이 번역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 또한, ‘모든 현상은 무아(non-self)’라는 그 말은 앞 5번에 있는 그 전 구절의 숫따 센트럴 번역과 모순됩니다. 그 전 구절에서는 ‘자아(self)’와 ‘무아(no-self)’를 붓다께서는 모두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8. 빠알리 낱말의 실제 의미를 파악하지 않고, 그리고 낱말이 사용된 문맥에 따라 정확하게 결정되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글자 그대로 직역하여 경을 번역하면 위험합니다.


* 그러므로, 왓차곳따(Vacchagotta)의 혼란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혼란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아주 분명할 것입니다.

* 그러나, 왓차곳따(Vacchagotta)는 그 구별을 나중에 이해할 수 있었고 빅쿠(bhikkhu)가 되어 아라한 성자에 이르렀습니다.

* 오늘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도 또한 언젠가 진실을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9. 아낫따(anatta)의 더 심오한 의미는 더 많은 기초 자료가 다루어진 후에 앞으로 상세히 다루어짐에 따라 명확해질 것입니다. 더 많은 기본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일반적인 영어 낱말을 사용하여 아낫따(anatta)와 같은 특정한 핵심 빠알리 용어를 번역하기만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 당분간, 아낫따(anatta)의 더 심오한 의미를 다루는 것을 미루고 ‘자아(self)’와 ‘무아(no-self)’라는 의미에서 ‘앗따-(attā)’와 ‘아낫따-(anattā)’에만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10. 주어진 유정체는 31영역 중 어느 곳에나 태어날 수 있습니다(실제로 몇 영역에는 아나-가-미(Anāgāmi) 성자만 태어날 수 있습니다). ‘31 Realms of Existence’ 도표와, ‘31 Realms Associated with the Earth’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그러나 요점은 이 생의 사람은 다음 생에서 천신이나 범천이나 동물이나 아귀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가 사람과 똑같은 ‘자아(self)’를 가지고 있을까요?

* 따라서, ‘변하지 않는 자아(self)’가 없다는 것은 정말 분명합니다.


11. 한편, 사람은 근본적인 원인도 없이 다음 생에서 그냥 천신이나 범천이나 동물이나 아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작위로 되는 과정이 아닙니다.


* 이 생에서 다음 생으로의 ‘생명흐름’이 계속됩니다. 그 연결은 이 생과 이전의 생에서 축적된 각자의 가띠(gati, 성향)와 각자의 깜마 위빠까(kamma vipaka, 업보)로 이루어집니다. 이 잊혀진 중요한 핵심 용어인 ‘가띠(gati) 또는 가티(gathi)’는 많은 포스트에서 다루어졌습니다.

* 이것이 ‘자아(self)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이유입니다. 이 생에서 다음 생으로 흐르는 ‘성격 속성들(personality attributes)’이 있습니다.

* 그것은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PS, 연기_Dependent Origination)로 설명되는 것입니다. 아는 바와 같이, PS(연기)주기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nkhāra, 무명에서 상카라가 연기)’로 시작하여 ‘바와 빳짜야- 자-띠(bhava paccayā jāti, 바와에서 태어남이 연기)’를 거칩니다. PS(연기)주기는 어떻게 아윗자-(avijjā, 무명)가 미래의 태어남(자-띠, jāti)로 이끄는지를 설명합니다.

* 대략 말하면, 높은 수준의 ‘아윗자-(avijjā) 또는 모하(mōha)’는 아빠-야(apāya, 악처)에 태어남으로 이끕니다.


12. 그러므로, 위 10번과 11번에서, 왜 붓다께서는 ‘변하지 않는 자아(self)’와 ‘무아(no-self)’를 받아들이지 않으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 그보다는, 현대 과학과 마찬가지로 원인과 결과에 근거한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의 원리에 따라 다음 생(탄생)이 있습니다. PS(연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그러나 깜마(kamma, 업)와 캄마 위빠-까(kamma vipāka, 업보)에 대한 이해만으로 이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기본적으로,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와 빠-빠 깜마(pāpa kamma, 부도덕한 행위)는 악처에 태어남으로 이끌고, 다사 꾸살라(dasa kusala)와 뿐나 깜마(punna kamma, 도덕적 행위)는 선처에 태어남으로 이끕니다.

* 이것은 ‘Kusala and Akusala Kamma, Punna and Pāpa Kamma’ 포스트에서 다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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