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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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력의 네가지 기초(사따라 잇디빠다)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The Four Bases of Mental Power (Satara Iddhipada)’ 포스트


필자는 이 포스트의 제목을 ‘네가지 성취 요인’이라고 했었습니다. 그 말은 이 네가지 정신 자질을 올바르게 평가하지 못하므로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그것들은 빠알리어 또는 싱할라어에서 ‘사따라 잇디빠다(satara Iddhipada)’라고 하며, 세간적이든 출세간적이든 어떤 목표를 성취하는데 중요한 요인을 의미합니다.  


  • * 잇디(iddhi)는 전통적으로 신비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멀리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먼 곳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등의 능력이 있는 요기(금욕 수행자)들은 신통력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은 이 네가지 요인의 힘을 이용하여 [마음의] 오염을 억제하여 그러한 신통력을  얻었습니다. 

  • * 닙바나를 얻으려고 수행할 때, 마음에서 오염을 제거하는데 동일한 요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 경제적 독립 달성, 학업이나 스포츠에서 뛰어남, 건강 증진 등의 세간적 목표를 이루는 데도 동일한 요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요인들은 찬다(chanda, 좋아함 그러나 집념에 가까운 좋아함), 찟따(citta, 생각), 위리야(viriya, 노력), 및 위만사(vimansa, 분석) 입니다. 찬다(chanda)는 탐욕이 아니며,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결의입니다.


  • * 어떤 혁신자, 사업가, 과학자, 건축가 등 사실 자신의 직업에 전문가인 사람이라면, 그 요인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지라도 이 요인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1.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과도하게 좋아하는 것과 같이 더) 좋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좋아함으로 번역될 수 있는 찬다(chanda)라고 합니다. 그것은 탐욕이 아니라 순수한 자질이며 그것이 자라서 삶의 목표가 됩니다.


2. 이 [좋아함의] 집념을 가질 때, 항상 그것에 대한 계속 생각합니다. 밤에 일어나 화장실에 갈 때, 그것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것은 잠에서 깨어 났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찟따(citta)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생각 또는 숙고’라고 부르겠습니다.   


3. 그래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위리야, viriya)을 합니다. 수영선수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트랙을 돌고, 과학자/혁신자가 식사하는 것도 잊고, 혁신자가 어떻게 제품의 성능을 향상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면서 깨어 있는 것 등이 이러한 노력입니다.


4. 노력하는 사람은 현재의 노력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 또는 개선이 가능한지에 대해 항상 주시를 하고 있습니다.  관련된 개념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면, 항상 더 나은 설명,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드는 방법 등을 찾고 있습니다. 이것은 추론/조사(위만사, vimansa)입니다.


  • * 이러한 요인은 서로를 지원합니다. 이 때문에 일단 (느리게) 시작되면 폭발적인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은 서로에게 먹이를 공급하며 프로젝트는 자체 유지됩니다. 이것을 ‘지수 성장(exponential growth)’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프로젝트를 완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선형 외삽법(linear extrapolation)’으로 계산하기는 어렵습니다.

  • * 길(팔정도)를 시작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개념을 흡수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개념이 올바른 경우(즉, 모순되지 않은 경우), 진전은 매우 빠르게 이루어집니다.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ada)의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하여, 생각조차 하지 않은 방식으로 도움이 될 자원을 끌어들일 것입니다. ‘끌림의 법칙, 습관, 성격(가띠), 및 갈망(아-사-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필자는 과학자로서 그리고 이제 길(팔정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경험으로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2013년까지 4년 넘게 [길을] 실천한 후, 필자는 길(팔정도)에서 느리고 정상적인 진전만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많은 것을 버리고 계속 더 나은 설명을 찾으려고 할 정도로 진전했습니다. 2013년 중반 이후, 진전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때가 바로 끌림의 법칙(‘끌림의 법칙, 습관, 성격(가띠), 및 갈망(아-사-와)’ 포스트 참조)으로,  순수한 담마를 만나게 된 때입니다.


  • * 그런데, 이것은 붓다께서 바와나(bhavana, 명상)라고 하신 과정입니다. 항상 숙고하고, 명확하게 하고, 조사하는 등의 실천을 합니다. 즉, “아세위따야, 바위타야, 바훌리까타야, ….(asevitaya, bhavithaya, bahuleekathaya,…)”입니다.

  • * 앉거나, 서 있거나, 걷거나, (침대에) 누워 있는 4가지 자세 모두에서 명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더 공식적인(격식을 갖춘) 앉은 자세 중 하나로 앉는 것이 더 잘 집중할 수 있습니다.


성스런 팔정도를 육성할 때의 더 깊은 의미


아비담마에 기초한 분석에 대해서는 ‘Javana of a Citta – The Root of Mental Power’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 찬다(chanda)는 적절한 의복으로 마음을 감싸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삼마 와짜(samma vaca), 삼마 까만따(samma kammanta), 및 삼마 아지와(samma ajiva)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가 증가함에 따라 닙바나(Nibbana)를 좋아하게 부채질하는 것입니다. 찬다(chanda)는 ‘차(cha)’ + ‘안다(anda)’로 합성된 말이며, ‘차(cha)’는 마음이고, ‘안다(anda)’는 ‘아두마(anduma, 옷)’입니다.


  • * 그런데, 찬다(chanda)가 ‘까-마찬다(kāmachanda, kāma + cha + anda)’에 사용될 때, 안다(anda)는 ‘눈 먼(blind)’이라는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즉, 이 경우, 까-마찬다(kāmachanda)는 ‘마음이 까마(kāma, 감각 즐거움)에 의해 눈 먼 것’을 의미합니다.


2. 여기서 찟따(citta)는 닙바나를 얻는 마음 가짐(마음 성향)을 의미합니다.


3. 그러나, 닙바-나(Nibbāna)에 대한 좋아함(호감)과 마음 가짐(마음 성향)이 있더라도 노력(위리야, viraya)이 필요합니다.


4.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향해야 합니다. 따라서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하고 삼마 딧티(samma ditthi)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위만사(vimansa, 조사/추론)가 필요합니다.


5. 잇디(Iddhi)는 자람(grow)를 의미하고 빠다(pada)는 ‘방향으로 향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잇디빠다(iddhipada)와 함께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설정하는 방향으로 가속합니다. 따라서, 찬다(chanda), 찟따(citta), 위리야(viriya), 위만사(vimansa)의  4가지 요인이 모두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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