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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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따빤나 ㅡ 붓다의 '광대 세계관'을 가진 자

 

원문: Paṭicca Samuppāda 섹션의 ‘Sotapanna – One With the “Wider Worldview” of the Buddha’ 포스트

- 2021년 10월 25일 작성; 2021년 10월 27일 개정(#4)

 

소개

 

1. 우리는 ‘세상의 기원(발생)’(로까 사무다야, loka samudaya)과 ‘괴로움의 기원(발생)’(둑카 사무다야, dukkha samudaya)에 관한 최근 몇 개의 포스트에서 많은 자료를 다루었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틸락카나, 사성제’( ‘Paṭicca Samuppāda, Tilakkhana, Four Noble Truths’ )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 * 우리가 보았듯이, 붓다께서는 세상의 기원(발생)(재탄생 과정에서 각자의 새로운 태어남)을 괴로움의 기원(발생)으로 동일시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특정한 존재(예를 들면, 천신 영역의 존재)가 극도의 괴로움이 없더라도 미래에 (낮은 영역에서) 괴로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 * 우리는 그 포스트들에서 관련 숫따(sutta, 경)로부터 직접 인용한 빠알리 인용문을 사용했습니다.

  • * 어떤 사람들은 (당연히) 빠알리 낱말을 보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여기서는 간단한 영어로 요약하여 핵심 결론을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 * 그 포스트들에서 논의된 개념은 보통 사람의 견해/인식과 반대이기 때문에 필자는 그렇게 하고자 합니다. 핵심 메시지를 이해한 후, 다시 돌아가 해당 포스트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필자가 단 한 구절도 왜곡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숫따(sutta)를 주의깊게 살펴보아도 좋겠습니다.

  • * 필자는 띠삐따까(Tipiṭaka)에 기반하여 깊이 생각한 토론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필자의 글들이 띠삐따까(Tipitaka)에 있는 내용과 모순된다면, 그 부분을 인용/제시하여 토론하시면 좋겠습니다. 부처님의 주된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은 닙바-나(열반)에 이르는 길을 따르기 전에 필수적입니다!

 

붓다께서 언급하신 괴로움 ㅡ 재탄생 과정에서

 

2.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고요하게 함으로써 일상의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집중 명상 수행에 참여합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훨씬 더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 * 그 문제는 붓다께서 가르치신 ‘광대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한 모든 이들에게는 불가피하게 재탄생 과정에서 겪는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고통)입니다.

  • * 붓다께서는 31 영역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설명하셨는데, 그 중 보통 사람은 인간 영역과 동물 영역이라는 두 영역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우리의 삶은 이 육체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31 영역의 어디에나 태어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가 인간 영역과 동물 영역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레벨의 고통(괴로움)이 있는 사악처(아빠-야, apāyā)에 재탄생하게 됩니다.

  • * 다음 포스트에서 그 ‘광대 세계관’의 타당성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지금은] 최근 포스트에 대한 요약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괴로움은 세상에는 불가피하게 있고 닙바-나에는 없다

 

3. 이전 두 개 포스트의 주된 두 가지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1. 괴로움과 감각적 즐거움은 모두 31 영역의 세상, 즉 31 영역 중에 재탄생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상위 영역에서는 괴로움보다 행복함이 더 많은 반면, 하위 4가지 영역(사악처)에서는 견딜 수 없는 괴로움(고통)이 있습니다. 주어진 유정체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서 보내기 때문에 고통(괴로움)이 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2. 2. 닙바-나(열반)(아라한의 죽음 후)에는 괴로움이나 감각적 즐거움이 없습니다. 닙바-나에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학 언어로 말하면, ‘이 세상과 닙바-나(열반)는 상호 배타적입니다.’ 물질적 대상과, 그것들에 대한 느낌과 인식 등은 모두 이 세상에 속하며, 닙바-나에는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까지도 닙바-나(열반)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묘사’하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 [열반을 묘사할] 그런 용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닙바-나(열반)를 확실하게 묘사하는 유일한 방법은 ‘닙바-나에는 괴로움(고통)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붓다께서 항상 열반을 묘사하신 방법입니다.

  • * 또다른 매우 중요한 점은 닙바-나(열반)는 또한, “라-각카요 도삭카요 모학카요 ㅡ 이당 윳짜띠 닙바-난”띠(“rāgakkhayo dosakkhayo mohakkhayo-idaṁ vuccati nibbānan" ti), 즉 “라-가(rāga)가 끝남, 성냄/증오가 끝남, 무지/미혹함이 끝남이 닙바-나(열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닙바-나빤하- 숫따( ‘Nibbānapañhā Sutta (SN 38.1)’ )를 참조하세요.

  • * 닙바-나(열반)을 라-각카야(rāgakkhaya)와 동일시하는 것은 우리의 현재 논의에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그것은 아래 #7에서 논의할 것입니다.

 

4. 니로다 사마-빳띠(Nirodha Samāpatti, 멸진정/상수멸)에 들어있는 아라한만이 완전한 ‘닙바-나(열반)의 지복’(괴로움이 전혀 없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라한은 니로다 사마-빳띠(Nirodha Samāpatti)에 한 번에 최대 7일 동안만 머무를 수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아라한의 육체는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심장도 박동을 멈춤), 업 에너지가 체온을 유지합니다.

 

  • * 그러나, 막가 팔라(magga phala)의 네 단계를 진행하여 올라가면서 ‘닙바-나(열반)의 지복’을 점점 더 많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정신적 스트레스의 감소 레벨’은 띠삐따까(Tipiṭaka)에서 ‘마음의 쿨링 다운(냉각/열내림)’으로 언급되었습니다.

  • * 반면에, 육체적 고통(통증, 부상, 질병, 등)은 아라한의 육체가 죽을 때까지 지속됩니다. 아라한도 육체가 죽을 때까지 이 세상에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죽음과 함께 아라한은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것이 바로 '빠리닙바-나(Parinibbāna)’, 즉 ‘완전한 닙바-나(열반)’입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재탄생하는 것도 없고 고통(괴로움)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의 실상

 

5. 우리 모두는 친구와 가족 속에서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실상(현실)은 아무도 그것을 결코 유지/지속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살았던 사람은 누구나 죽음으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다시 태어날지조차 모릅니다.

 

  • * [죽고 나서] 몇 년 후에, 이 인간 바와(human bhava)의 업 에너지가 더 남아 있으면, 우리는 인간 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정신적 몸’, 즉 ‘간답바 까-야(gandhabba kāya)’만 가질 것입니다. 물론, 그때에도 우리는 어디에 태어날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 * 인간 바와(human bhava)의 업 에너지가 더 남아 있지 않다면, 우리는 어디에 재탄생[바와의 변경]할지 전혀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생을 어떻게 살았는가에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전생에 어떤 종류의 업 에너지를 축적하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 * 그러나, 닙바-나(열반)의 단계에 도달한 사람들(성자들)은 낮은 영역에 재탄생하는 것을 제거했습니다. 소따빤나(Sotapanna)는 사악처(아빠-야-, apāyā)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까다-가-미(Sakadāgāmi)는 6가지 데와(Deva, 천신) 영역에만 태어날 것입니다. 아-나-가-미(Anāgāmi)는 특정한 브라흐마(Brahma) 영역에만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그 성자들은 모두 비교적(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내에 완전한 닙바-나(열반)에 도달할 것입니다.

 

소따빤나가 되는 것의 중요성

 

6.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 영역보다 높은 영역에 괴로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인간 영역, 특히 동물 영역에 있는 괴로움(고통)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동물 영역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유일한 아빠-야(apāya, 악처)입니다. 붓다께서는 다른 세 가지 가장 낮은 영역의 괴로움(고통)을 묘사하셨는데, 그 묘사는 무섭습니다. 그것이 불교의 주된 목표가 소타빠나 단계에 도달하는 것인 이유입니다.

 

  • * 대부분의 인간은 인간 영역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괴로움(고통)을 완전히 이해할 수조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성취하고자 하는 ‘미래 즐거움’에 대한 예상(기대)의 몰아침들로 ‘가리워져(덮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동물 세계에 있는 괴로움(고통)을 볼 수 있습니다. 소따빤나(Sotapanna)는 4가지 가장 낮은 영역(사악처) 모두에 재탄생하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우선]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하도록 장려해야 합니다.

  • *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하면, 인간 영역에 있는 괴로움(고통)을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소따빤나(Sotapanna)는 여전히 데와(Deva) 영역 또는 브라흐마(Brahma) 영역의 삶이 좋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 * 그러므로, 소따빤나(Sotapanna) 단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더 높은 영역에 있는 괴로움(고통)을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 더 높은 영역의 삶은 [언젠가] 끝날 것이고, 사람들은 [결국] 더 낮은 영역에 태어나는 것으로 끝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 *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유일한 요건은 ‘부처님의 광대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단지 그 이해(즉,  올바른 세계관에 도달하는 것)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양의 오염원(번뇌)을 제거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삽바-사와 숫따’( ‘Sabbāsava Sutta (MN 2)’ )에서 분명한 시각/견해로 오염원(번뇌)을 제거하는 것(닷사나- 빠하-땁바-, dassanā pahātabbā)입니다. 우리는 다른 관점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먼저 논의해 보겠습니다.

 

라-각카요 닙바-난’ ㅡ 닙바-나는 윤회 여정의 끝이다

 

7. 예외 없이, ‘라-가(rāga)’에 대해서 현재 영어로는 ‘greed(탐욕/탐함)’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greed(탐욕/탐함)’은 빠알리어로 ‘lobha(로바)’입니다. 더욱이, 왜 닙바-나(열반)가 ‘로박카요 도삭카요 모학카요 ㅡ 이당 윳짜띠 닙바-난’띠(lobhakkhayo dosakkhayo mohakkhayo-idaṁ vuccati nibbānan’ ti)?로 정의되어 있지 않은지 궁금해 한 적이 있는지요? 세 가지 부도덕한 뿌리가 로바(lobha), 도사(dosa), 및 모하(moha)이기 때문에, 이 정의(‘라-각카요’ 대신 ‘로박카요’로 정의하는 것)가 논리적으로는 더 타당한 선택(정의)이 될 것입니다.

 

  • * ‘라-가(rāga)’의 올바른 ‘빠다 니룻띠(pada nirutti, 어원)는 ‘라-(rā)’ + ‘악가(agga)’에서 유래합니다. 여기서, ‘라-(rā)’는 (윤회 여정에서) ‘여행하다’를 의미하고 ‘악가(agga)’는 ‘우선권을 주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라-가(rāga)’는 ‘여행/떠돌아다님(윤회 여정)’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윤회조차 믿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이 지속되는 한, 여전히 세상을 즐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갈망하는 사람은 어떤 종류의 라-가(rāga)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 * 라-가(rāga)는 이 세상에 누릴 즐거움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일어납니다(즉, 세상을 닛짜 특성/본질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단지 라-가(rāga)로는 매우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부도덕한 행위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까-마 라-가(kāma rāga)가 로바(lobha) 레벨로 높아져야 합니다.

  • * 윤회 여정은 까-마 로까(kāma loka), 루빠 로까(rupa loka), 및 아루빠 로까(arupa loka)라는 세 가지 유형(이 세 가지 유형은 31 영역으로 세분됨) 중 하나로 여행하는 것입니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각자는 이 세상 것들에 대한 갈망에 따라 태어나게 됩니다.  까-마 라-가(kāma rāga)를 가질 때, 까-마 로카(kāma loka)의 11가지 영역 중의 한 곳에 태어납니다. (적어도 일시적으로) 까-마 라-가(kāma rāga)를 극복한(그리고 ‘루빠-와짜라 자-나/색계 선정’을 기르는) 자는 여전히 루빠 라-가(rupa rāga)를 가질 수 있으며 따라서 루빠 로까(rupa loka)의 16가지 영역 중의 한 곳에 태어날 것입니다. 까-마 라-가(kāma rāga)와 루빠 라-가(rupa rāga)를 극복한(그리고 그리고 ‘아루빠-와짜라 자-나/무색계 선정’을 기르는) 자는 아루빠 로까(rupa loka)의 4가지 영역 중의 한 곳에 태어날 것입니다

  • * 열반을 얻으려면, 세 가지 유형의 라-가(rāga)를 모두 영구적으로 극복해야 하며, 따라서 그것이 ‘라-각카요 닙바-난(rāgakkhayo nibbānan)’입니다.

 

8. 우리 논의의 관련된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시리즈의 이전 두 포스트에 있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면, 재탄생 과정이 멈추지 않는 한, 미래의 괴로움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괴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은 죽어도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 * 포스트를 다시 읽고 그것에 대해 숙고해 보세요. 붓다께서는 (31영역 중의 어디에든) 새로 태어나는 것은 괴로움이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 이 핵심 포인트를 이해할 때까지 윤회의 괴로움(재탄생 과정에서 미래 괴로움)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 * 그것은 31영역 중에 재탄생하는 과정에 대한 ‘부처님의 광대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 * 그 결정적인 점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가 됩니다. 그 이해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뿌리를 내리면 그 순간에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 * 그것은 삽바-사와 숫따(Sabbāsava Sutta, MN 2)에 따라 위 #6에 언급된 분명한 시각/견해로 오염원(번뇌)를 제거하는 것(닷사나- 빠하-땁바-, dassanā pahātabbā)입니다. 그것이 소따빤나(Sotapanna)의 성스런 삼마- 딧티(Noble Sammā Diṭṭhi, ‘성스런 올바른 견해’)입니다.

 

소따빤나는 삼마- 딧티가 있는 성스런 팔정도에서 시작한다

 

9. 그것이 바로 소따빤나(Sotapanna)로서 성스런 팔정도를 시작할 수 있는 시점입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 단계 아래의 다른 이들은 여전히 평범한(세속적인) 팔정도에 있습니다(소따빤나 아누가-미는 소따빤나가 될 것입니다). 마하-짯따-리-사까 숫따( ‘Mahācattārīsaka Sutta (MN 117)’ )는 두 가지 팔정도에 대해 설명합니다. ‘마하- 짯따-리-사까 숫따(대 40가지에 대한 법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두띠야사-리뿟따 숫따( ‘Dutiyasāriputta Sutta (SN 55.5)’ )에서 붓다께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소따빤나 단계를 논의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 ‘Sotāpanno, sotāpanno’ti hidaṁ, sāriputta, vuccati. Katamo nu kho, sāriputta, sotāpanno”ti?, 즉 “사리뿟따여, 사람들이 ‘소따빤나(Sotāpanna), 소따빤나(Sotāpanna)’라고 말하는데, 소따빤나(Sotāpanna)는 누구인가?” 라고 물으셨습니다.

  • *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Yo hi, bhante, iminā ariyena aṭṭhaṅgikena maggena samannāgato ayaṁ vuccati sotāpanno, svāyaṁ āyasmā evaṁnāmo evaṅgotto”ti, 즉 “세존이시여, 성스런 팔정도를 시작한 자가 소따빤나(Sotāpanna)입니다.”라고 대답하셨고, 이 대답에 대해 붓다께서는 동의하셨습니다.

 

10. 더욱이, 여러 숫따에서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는 ‘괴로움에 대한 진리를 이해함’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 * ‘괴로움에 대해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진리’는 우리가 논의했던 것처럼 ‘괴로움의 기원(발생)은 (각 재탄생을 하는) 세상의 기원(발생)’이라는 것입니다.

  • * 예를 들어, ‘삿짜위방가 숫따( ‘Saccavibhaṅga Sutta (MN 141)’ )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Katamā cāvuso, sammā diṭṭhi? Yaṁ kho, āvuso, dukkhe ñāṇaṁ, dukkhasamudaye ñāṇaṁ, dukkhanirodhe ñāṇaṁ, dukkhanirodhagāminiyā paṭipadāya ñāṇaṁ, ayaṁ vuccatāvuso: ‘sammā diṭṭhi’.”

  • * 우리가 보았듯이, ‘둑카 사무다야(dukkha samudaya)’는 ‘로까 사무다야(loka samudaya)’와 동일하고, ‘둑카 니로다(dukkha nirodha)’는 ‘로까 니로다(loka nirodha)’와 동일하며, ‘둑카니로다가-미니야- 빠띠빠다-(dukkhanirodhagāminiyā paṭipadā)’는 ‘로까니로다가-미니야- 빠띠빠다-(lokanirodhagāminiyā paṭipadā)’와 동일합니다.

  • * 그것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런 진리에 관한 앎인 ‘둑케 냐-낭(dukkhe ñāṇaṁ)’입니다.

 

성스런 팔정도에서 다른 7가지 요소를 기를 수 있는 자는 소따빤나다

 

11. 그러므로,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 즉 ‘세상에 대한 올바른 시각(견해)’에 도달하려면 우선 ‘부처님의 광대 세계관’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점에서 사람들은 이 세상의 결실없는/위험한 본질(아닛짜 본질/특성)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괴로움에 대한 제1성제를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또한 틸락카나(Tilakkhana)(이 세상의 특성)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괴로움이 원인과 조건으로 인해 일어나는 방식)를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 * 소따-빤나(Sotāpanna)는 미래 생에서도 그 이해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완전한 깨달음으로] 완성되는데 몇 번 더 태어나더라도 소따빤나(Sotapanna)는 성스런 길(도)에서 나머지 일곱 단계를 기르고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에 도달할 것입니다.

  • * 그렇기 때문에 먼저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가 되기 위해서는 사성제/띨락카나/빠띳짜 사뭅빠-다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비록 띠삐따까(Tipitaka)에는 ‘쭐라-소따빤나’라는 그 용어가 없지만,  때때로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는 쭐라-소따빤나(Cula-Sotapanna, 작은 수다원)라고도 합니다.

  • * 이 포스트는 결국 긴 포스트가 되었지만,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에센스(본질/정수)가 여기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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