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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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까-야 딧티(유신견)와 띨락카나(삼법인)


원문 :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Sakkāya Ditthi and Tilakkhana’ 포스트

2019년 6월 14일


1.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를 제거하면(위찌깃짜_vicikicca 및 실랍바따 빠라-마-사_silabbata parāmāsa와 함께) 소따빤나(Sotapanna)가 되고 4가지 가장 낮은 영역(아빠야, apaya)에는 결코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 * 이 거대한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의 변화(dassanena pahābba, 닷사네나 빠하-압바)입니다.

  • * 그것은 단지 도덕적 행위를 하기만 해서는 달성될 수 없습니다. 사실,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āmāsa)는 도덕적 삶을 사는 것 자체가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입니다.

  • *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를 제거하려면 자연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본 원칙은 띨락카나(Tilakkhana), 즉 자연의 3가지 특성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로 설명됩니다.

  • * 이 포스트에서는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를 제거하는데 도움이 될 이 관계를 조사할 것입니다.


2. 삭카-야 딧티(Sakkāya ditthi)는 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 Pitaka, 논장)에 속하는 담마상가니-(Dhammasaṅgaṇī)의 ‘닷사네나빠하-땁바두까( 2.3.2.13.1. ­Dassa­ne­napa­hātab­baduka )’에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습니다.


“까따메 담마- 닷사네나 빠하-땁바-? 띠-니 산뇨자나-니 - 삭까-야딧티, 위찌낏짜-, 실랍바따빠라-마-소.”

(“Katame dhammā dassanena pahātabbā? Tīṇi saññojanāni—sakkāyadiṭṭhi, vicikicchā, sīlab­bata­parāmāso.”)


  • 번역: 올바른 시각을 통해 제거해야 하는 담마(dhamma)는 무엇인가?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 위찌깃짜(vicikicca), 및 실랍바따 빠라-마-소(silabbata parāmāso)라는 3가지 산뇨자나-(saññojanā, 흔히 오늘날 부르는 상요자나_samyojana, 족쇄) 이다.


“땃타 까따마- 삭까-야딧티? 이다 앗수따와- 뿌툿자노 아리야-낭 아닷사-위- 아리야담맛사 아꼬위도 아리야담메 아위니-또 삽뿌리사-낭 아닷사-위- 삽뿌리사담맛사 아꼬위도 삽뿌리사담메 아위니-또 루-빵 앗따또 사마누빳사띠, 루-빠완땅 와- 앗따-낭, 앗따니 와- 루-빵, 루-빠스밍 와- 앗따-낭. 웨다낭 … 뻬 … 산냥 … 뻬  상카-레 … 뻬 … 윈냐-낭 앗따또 사마누빳사띠, 윈냐-나완땅 와- 앗따-낭, 앗따니 와- 윈냐-낭, 윈냐-나스밍 와- 앗따-낭. 야- 이와루-빠- 딧티 딧티가땅 … 뻬 … 위빠리야-삭가-호 - 아양 윳짜띠 삭까-야딧티.”

(“Tattha katamā sakkāyadiṭṭhi? Idha assutavā puthujjano ariyānaṃ adassāvī ariyadhammassa akovido ariyadhamme avinīto sappurisānaṃ adassāvī sap­purisa­dhammassa akovido sap­purisa­dhamme avinīto rūpaṃ attato samanupassati, rūpavantaṃ vā attānaṃ, attani vā rūpaṃ, rūpasmiṃ vā attānaṃ. Vedanaṃ … pe … saññaṃ … pe … saṅkhāre … pe … viññāṇaṃ attato samanupassati, viññāṇavantaṃ vā attānaṃ, attani v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smiṃ vā attānaṃ. Yā evarūpā diṭṭhi diṭṭhigataṃ … pe … vipari­yāsag­gāho—ayaṃ vuccati sakkāyadiṭṭhi”.)


  • 번역: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는 무엇인가? 담마(Dhamma)를 배우지 않은 사람으로, 성자와 연관이 없고 잘 알지 못하고 훈련되지 않는 사람은 ‘나는 내 몸이고, 내 몸은 나이고, 내 몸은 내 안에 있고, 나는 내 몸 안에 있다’고 간주한다.  그 사람은 웨다나-(vedanā), ... 산냐(sañña), ... 상카-라(saṅkhāra), … 윈냐-나(viññāṇa)를 동일한 4가지 방식으로 인식한다(예 : 나는 내 윈냐-나이고, 내 윈냐-나는 나이고, 내 윈냐-나는 내 안에 있고, 나는 내 윈냐-나 안에 있다) - 그것이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다.”


이것은 ‘Sakkāya Ditthi is Personality (Me) View?’ 포스트에서 논의한 ‘Cūḷa­ve­dalla Sutta (Majjima Nikaya 44)’에 있는 정의와 정확히 동일합니다. 이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에 대한 정의는 ‘Dutiya­isi­datta Sutta (SN 41.3)’를 포함하여 더 많은 숫따에 있습니다.


3. 핵심은 “루-빵 앗따또 사마누빳사띠, 루-빠완땅 와- 앗따-낭, 앗따니 와- 루-빵, 루-빠스밍 와- 앗따-낭(rūpaṃ attato samanupassati, rūpavantaṃ vā attānaṃ, attani vā rūpaṃ, rūpasmiṃ vā attānaṃ)”가 의미하는 것과, 이와 유사하게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a), 상카-라(saṅkhāra), 및 윈냐-나(viññāṇa)가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를 가질 때, 그 사람은 5가지 무더기(오온)에 대해 각각 4가지의 잘못된 인식을 가집니다.


  • * 이것은 ‘20가지 유형의 삭까-야 딧티’, 즉 ‘위-사띠왓투까- 삭까-야딧티 (vīsativatthukā sakkāyadiṭṭhi)’라고 합니다.

  • * 처음 4가지 요소는 자기 자신의 몸에 관한 것입니다. 자신의 몸에 대한 그 4가지 잘못된 인식은 ‘웃쩨다 딧치(uccheda diṭṭhi, 단멸견)’를 가지는 사람들, 즉 ‘자신은 죽음 후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난다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 * 그 다음 동일한 방식의 4가지 요소는 4가지 나-마(nāma, 정신) 실재, 즉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a), 상카-라(saṅkhāra), 및 윈냐-나(viññāṇa)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들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는 사람들은 사-싸따 딧티(sāssata), 즉 자신의 앗따-(attā, 자아 또는 영혼)는 영구하고 영원하다고 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 * 브라흐마자-알라 숫따(Brahmajāla Sutta, DN 1)에서, 붓다께서 60가지 더 잘못된 견해를 말씀하시지만, 그것들은 위 두 가지의 변형입니다. 따라서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를 제거하면 이 세상에 대한 모든 잘못된 견해가 제거됩니다.

  • * 다음 포스트에서 이 두 경우에 대한 띠삐따까(Tipitaka, 삼장)의 참고 자료를 먼저 제시하겠습니다.


4. 삭까-야(sakkāya)의 정의는 [다음과 같이] ‘삭까-야빤하 숫따( Sakkā­ya­pañhā Sutta, SN 38.15 )’에 있습니다.

“ ‘삭까-요, 삭까-요’띠, 아-유소 사-리뿟따, 윳짜띠. 까따모 누 꼬, 아-유소, 삭까-요”띠? “빤찌메, 아-유소, 우빠-다-낙칸다- 삭까-요 윳또 바가와따-, 세이야티당 - 루-뿌빠-다-낙칸도, 웨다누빠-다-낙칸도, 산뉴빠-다-낙칸도, 상카-라루빠-다-낙칸도, 윈냐-누빠-다-낙칸도. 이메 코, 아-유소, 빤쭈빠-다-낙칸다- 삭까-요 윳또 바가와따-”띠.”

(“ ‘Sakkāyo, sakkāyo’ti, āvuso sāriputta, vuccati. Katamo nu kho, āvuso, sakkāyo”ti? “Pañcime, āvuso, upādā­nak­khan­dhā sakkāyo vutto bhagavatā, seyyathidaṃ—rūpupā­dā­nak­khan­dho, vedanupā­dā­nak­khan­dho, saññu­pādā­nak­khan­dho, saṅ­khā­ru­pādā­nak­khan­dho,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Ime kho, āvuso, pañcu­pādā­nak­khan­dhā sakkāyo vutto bhagavatā”ti.”)


번역: “삭까-야(sakkāya)는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입니다. 즉, 루-뿌빠-다-닥칸다(rūpupā­dā­nak­khan­dha), 웨다누빠-다-낙칸다(vedanupā­dā­nak­khan­dha), 산뉴빠-다-낙칸다(saññu­pādā­nak­khan­dha), 상카-루빠-다-낙칸다(saṅ­khā­ru­pādā­nak­khan­dha), 윈냐-누빠-다-낙칸다(viñ­ñāṇupā­dā­nak­khan­dha)”입니다.


  • * 따라서,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는 ‘5가지 무더기(빤짝칸다, pañcakkhandha)가 좋고 유익하다’는 잘못된 시각이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 * 삭까-야(sakkāya)라는 낱말은 ‘사트(sath)’ + ‘까-야(kāya)’에서 유래하고, ‘삭까-야(sakkāya)’로 음운됩니다. ‘사트(sath)’는 ‘좋은’을 의미하고, ‘까-야(kāya)’는 ‘집합’ 또는 ‘무더기’(이는 또한 부분의 집합체인 육체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삭까-야(sakkāya)’는 ‘자기 자신의 몸을 포함하는 5가지 무더기(오온)가 결실있고 유익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그런 시각 또는 심적 경향(마음 가짐), 즉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는 그것들에 대한 갈망(우빠-다-나, u­pādā­na)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5. 사람이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라는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있을 때, 빤짝칸다(pañcakkhandha)의 일부는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 (빤짜 우빠-다-나 칸다, panca u­pādā­na khandha)가 됩니다. 그것들은 자신의 가띠(gati, 성향)를 바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각자는 그 당시 자신의 가띠(gati)를 바탕으로 어떤 것에 들러붙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각자의 가띠(gati)는 계속 변하며, 특히 재탄생할 때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나쁜 환경(조건) 속으로 재탄생하면 ‘나쁜 가띠(bad gati)’가 개발되기 쉽습니다.


  • * 깜마(kamma)는 그 시점에 하나의 좋거나 나쁜 가띠(gati)로 행해집니다. 그 깜마들은 훨씬 나중에, 심지어 내생에 적절한 조건하에서 위빠-까(vipāka)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 * 이것이 우리가 ‘좋은 깜마 위빠-까(vipāka)’와 ‘나쁜 깜마 위빠-까(vipāka)’를 모두 받게 되는 이유입니다.

  • * 이것이 또한 우리가 ‘변하지 않는 앗따-/영혼/아-뜨마(attā/soul/ātma)’가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유정체는 그 당시 자신의 가띠(gati)를 기반으로 과거에 행했던 것을 바탕으로 좋은/나쁜 위빠-까(vipāka)를 그냥 만나는 ‘삶흐름(lifestream)’입니다. 적절한 조건에서 2가지 종류(좋은/나쁜 깜마) 모두 위빠-까(vipāka)를 가져옵니다.


6. 위 5번에서 논의된 것은 ‘짜뚯타아밥밧타-나 숫따( Catut­tha­abhab­baṭ­ṭhāna Sutta, AN 6.95 )’에 간결하게 설해져 있습니다.


번역: “견해에서 도과를 달성한 소따빤나(또는 더 높은 도과를 성취한 자)(딧티삼빤노 뿍갈로, diṭṭhisampanno puggalo)는 즐거움이나 고통을 스스로 만든다(사양까땅, sayaṃkataṃ)는 생각이나, 다른 이가 만든다(빠랑까땅, paraṃkataṃ)는 생각이나, 둘 다가 만든다(사양까딴짜 빠랑까딴짜, sayaṃkatañca paraṃkatañca)는 생각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아밥보, abhabbo).

또한 그들(성자들)은 즐거움이나 고통이 우연히 생기거나, 자신이 만들지 않았거나, 다른 사람이 만들지 않았거나, 둘 다에 의해 만들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아사양까-랑 아딧짜사뭅빤낭, 아빠란까-랑 아딧짜사뭅빤낭, 아사얀까-란짜 아빠란까-란짜 아딧짜사뭅빤낭; asayaṃkāraṃ adhiccasamuppannaṃ, aparaṅkāraṃ adhiccasamuppannaṃ, asayaṅkārañca aparaṅkārañca adhiccasamuppannaṃ).

–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빠띳짜 사뭅빠-다’에 따라) 원인과 조건으로 인해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견해에서 도과를 달성한 소따빤나(또는 더 높은 도과를 성취한 자)가 되돌아갈 수 없는 6가지 것들이다.”


  • * 조만간 즐거움이나 고통으로 이끄는 그것들을 하는 앗따-(attā)나 영혼이나 아-뜨마(ātma)는 없습니다.

  • * 그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즐거움 또는 고통)는 다음 두 가지로 인해 구체화됩니다. (i) 원인은 그 당시에 삶흐름(lifestream)의 가띠(gati)에 기반하여 과거에 생성되었고, (ii) 나중에 적절한 조건이 이용가능할 때 그에 상응하는 위빠-까(vipāka)가 구체화됩니다.

  • * 그 과정은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로 설명됩니다.

  • * 이런 이유로 가띠(gati)를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과거에 ‘나쁜 가띠(gati)를 가졌을 것이며, [그래서] 지금은 좋은 가띠(gati)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들은 지금 나쁜 위빠-까(bad vipāka)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 * 이것이 붓다께서도 나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견뎌야 하신 이유입니다. 비록 ‘가띠(gati)가 남아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붓다께서는 나쁜 가띠(gati)가 있었을 때 행해진 과거 깜마(kamma)의 결과를 견뎌야 하셨습니다.


7. ‘삭까-야딧티 숫따( Sakkā­ya­diṭṭhi ­Sutta, SN 22.155 )’에서,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해져 있습니다. 


“끼스밍 누 코, 빅카웨, 사띠, 낑 우빠-다-야, 낑 아비니윗사 삭까-야딧티 웁빳자띠-”띠? “루-뻬 코, 빅카웨, 사띠, 루-빵 우빠-다-야, 루-빵 아비니윗사 삭까-야딧티 웁빳잣띠. 웨다나-야 사띠 … 산냐-야 사띠 … 상카-레수 사띠 … 윈냐-네 사띠, 윈냐-낭 우빠-다-야 윈냐-낭 아비니윗사 삭까-야딧티 웁빳자띠”.

(“Kismiṃ nu kho, bhikkhave, sati, kiṃ upādāya, kiṃ abhinivissa sakkāyadiṭṭhi uppajjatī”ti? “rūpe kho, bhikkhave, sati, rūpaṃ upādāya, rūpaṃ abhinivissa sakkāyadiṭṭhi uppajjati. Vedanāya sati … saññāya sati … saṅkhāresu sati … viññāṇe sati, viññāṇaṃ upādāya, viññāṇaṃ abhinivissa sakkāyadiṭṭhi uppajjati”.)


번역: “빅쿠들이여,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무엇에 들러붙고 무엇에 집착하여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가 일어나게 이끄는가? 그것은 루빠(형태: 사물과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형태에 들러붙고 형태에 집착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것은 이와 비슷하게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nkhāra), 윈냐-나(viññnana)로 인해 일어난다”.


붓다께서 설명하십니다:

“땅 낑 만냐타, 빅카웨, 루-빵 닛짱 와- 아닛짱 와-”띠?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rūpaṃ niccaṃ vā aniccaṃ vā”ti?)

“빅쿠들이여, 어떻게 생각는가? 루빠(rupa)는 자신이 만족하는 대로 유지될 수 있는가?”


“아닛짱, 반떼”

(“Aniccaṃ, bhante”).

 “그것들은 만족하는 대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스승님”.


“양 빠나-니짱 … 뻬 … 아삐 누 땅 아누빠-다-야 삭까-야딧티 웁빳제이야-”띠?

(“Yaṃ panāniccaṃ … pe … api nu taṃ anupādāya sakkāyadiṭṭhi uppajjeyyā”ti?) 

“그것을 이해하면, 무언가 자신이 만족하는 대로 유지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겪고 파괴된다면, 자신이 그것에 들러붙어서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생성하겠는가?”


“노 헤땅, 반떼”

(“No hetaṃ, bhante”).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스승님”.


그리고 다른 4가지 무더기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설명하십니다:

“웨다나- … 산냐 … 상카-라 … 윈냐-낭 닛짱 와- 아닛짱 와-”띠?

(“Vedanā … saññā … saṅkhārā … viññāṇaṃ niccaṃ vā aniccaṃ vā”ti?)


“아닛짱, 반떼”

(“Aniccaṃ, bhante”).


“양 빠나-니짱 … 뻬 … 아삐 누 땅 아누빠-다-야 삭까-야딧티 웁빳제이야-”띠?

(“Yaṃ panāniccaṃ … pe … api nu taṃ anupādāya sakkāyadiṭṭhi uppajjeyyā”ti?) 


“노 헤땅, 반떼”

(“No hetaṃ, bhante”).


“에와 빳상 … 뻬 … 나-빠랑 잇탓따-야-띠 빠자-나-띠”띠.”

(“Evaṃ passaṃ … pe …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8. 따라서, 자신이 그 개체의 아닛짜(그리고 둑카 및 아낫따) 특성을 알지 못할 때에만, 5가지 무더기(오온)에 들러붙어 그것들을 자기 자신(또는 자신의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한 들러붙음은 (그 중 어느 것도 자신이 만족하는 대로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예외없이) 고통으로 이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들에 대한 갈망을 잃습니다.


  • * 이러한 이해는 그 자체로 우선 자신이 아빠야(악처)에 재탄생하기에 적합하게 하는 부도덕한 깜마(kamma)를 지을 수 없는(아밥보, abhabbo) 정도로 갈망을 잃게 합니다. 그러한 우빠-다-나(upādāna, 가까이 끌어당김)를 잃을 때 자신은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 죽음-재생연결) 순간에 또한 그러한 생각을 붙잡지도 못합니다. 

  • * 이 낱말 ‘아밥보(abhabbo)’는 많은 번역문에서 올바르게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하지 않을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행은 자동적입니다. 그러한 행위가 부도덕한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정 유형의 가티(gati)가 (막가 팔라로) 영구적으로 제거되면, 그 사람의 마음은 그러한 부도덕한 행위를 할 수가 없습니다.

  • * 그런 ‘나쁜 가띠(gati)’를 기를 때, 그 자는 우빠-다-나(upādāna)되어 나쁜 태어남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가져오기 위해서 적절한 조건을 필요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꾹꾸라와띠까 숫따( Kukku­ra­vatika Sutta, MN 57 )’(영어 번역은  ‘The Dog-Duty Ascetic (MN 57)’ 참조)에서, 붓다께서는 세니야(Seniya)가 기르고 있는 그 ‘개 가띠(dog gati)’가 어떻게 그를 개로 태어나게 이끄는지를 설명하십니다.

  • * 반대로, 그런 ‘나쁜 가띠(gati)’를 영구적으로 제거할 때, 그런 나쁜 영역에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라따나 숫따( Ratana Sutta, Snp 2.1 )’에서 “짜뚜-하빠-예히 짜 윕빠뭇또, 짯짜-비타-나-니 아밥바 까-뚱(Catūhapāyehi ca vippamutto, Chac­cābhi­ṭhānāni abhabba kātuṃ)” 구절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그 의미는 “아리야(Ariya)는 6가지 높은 부도덕한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4가지 아빠야(apaya)에서 벗어났다”입니다.


9. 이제,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의 설명에서 ‘앗따-(attā)’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빠띠빠다- 숫따( Paṭipadā Sutta, SN 22.44 )’는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를 제거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까따마- 짜 빅카웨, 삭까-야니로다가-미니- 빠띠빠다-? 이다 빅카웨, 수따와- 아리야사-와꼬 아리야-낭 닷사-위- 아리야담맛사 꼬위도 아리야담메 수위니-또, 삽뿌리사-낭 닷사-위- 삽뿌리사담맛사 꼬위도 삽뿌리사담메 수위니-또, 나 루-빵 앗따또 사마누빳사띠, 나 루-빠완땅 와- 앗따-낭; 나 앗따니 와- 루-빵, 나 루-빠스밍 와- 앗따-낭. 나 웨다나-앙 앗따또 … 나 산냥 … 나  상카-레 … 나 … 윈냐-낭 앗따또 사마누빳사띠, 나 윈냐-나완땅 와- 앗따-낭; 나 앗따니 와- 윈냐-낭, 나 윈냐-나스밍 와- 앗따-낭. ..”

(“Katamā ca, bhikkhave, sakkā­ya­nirodha­gāminī paṭipadā? Idha,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ariyānaṃ dassāvī ariyadhammassa kovido ariyadhamme suvinīto, sappurisānaṃ dassāvī sap­purisa­dhammassa kovido sap­purisa­dhamme suvinīto, na rūpaṃ attato samanupassati, na rūpavantaṃ vā attānaṃ; na attani vā rūpaṃ, na rūpasmiṃ vā attānaṃ. Na vedanāṃ attato … na saññaṃ … na saṅkhāre … na viññāṇaṃ attato samanupassati, na viññāṇavantaṃ vā attānaṃ; na attani vā viññāṇaṃ, na viññāṇasmiṃ vā attānaṃ. ..”)


  • * 번역: “빅쿠들이여, 그리고 ‘5가지 무더기와 동일시함(sakkāya diṭṭhi)’을 그치는 것으로 이끄는 길은 무엇인가? 빅쿠들이여, 여기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 형태를 앗따-(attā)로 … 웨다나-(vedanā)를 앗따-(attā)로 … 산냐(saññā)를 앗따-(attā)로 … 상카-라(saṅkhāra)를 앗따-(attā)로 … 윈냐-나(viññāṇa)를 앗따-(attā)로 … 앗따-(attā)를 윈냐-나(viññāṇa) 안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

  • * 구절의 전체 번역에 대해서는 위 2번을 참조하세요. 


10. 위의 정의를 ‘아낫따락카나 숫따( Anatta­lak­kha­ṇa Sutta, SN 22.59 )의 다음 구절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루-빵, 빅카웨, 아낫따-. 루-빤짜 히당, 빅카웨, 앗따- 아바윗사, 나이당 루-빵 아-바-다-야 상왓떼이야, 랍베타 짜 루-뻬: ‘에왕 메 루-빵 호뚜, 에왕 메 루-빵 마- 아호시-’띠. 야스마- 짜 코, 빅카웨, 루-빵 아낫따-, 따스마- 루-빵 아-바-다-야 상왓따띠, 나 짜 랍바띠 루-뻬: ‘에왕 메 루-빵 호뚜, 에왕 메 루-빵 마- 아호시-’띠.”

(“Rūpaṃ, bhikkhave, anattā. Rūpañca hidaṃ, bhikkhave, attā abhavissa, nayidaṃ rūpaṃ ābādhāya saṃvatteyya, labbhetha ca rūpe: ‘evaṃ me rūpaṃ hotu, evaṃ me rūpaṃ mā ahosī’ti. Yasmā ca kho, bhikkhave, rūpaṃ anattā, tasmā rūpaṃ ābādhāya saṃvattati, na ca labbhati rūpe: ‘evaṃ me rūpaṃ hotu, evaṃ me rūpaṃ mā ahosī’ti.”)


  • 번역: “비쿠들이여, 형태(물질적 몸)는 아낫따-(anattā, not attā)다. 빅쿠들이여, 만약에, 자신의 몸이 앗따-(attā)라면, 그것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고, ‘내 몸은 이렇게 하자, 내 몸은 이렇게 하지 말자’고 말하여 그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몸이 아낫따-(anattā)이기 때문에, 쇠퇴하고 병에 걸리게 되고, ‘내 몸을 이런 식으로 하자, 내몸을 이런 식으로 하지 말자’고 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 최근의 포스트인 '아낫따락카나 숫따' 내의 아낫따-, 영혼이나 아-뜨마 없음’에서,  자신의 육체나 4가지 정신적 무더기와 연관될 수 있는 앗따-(attā)나 영혼이나 아-뜨마(ātma)가 없다는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11. 다시, ‘아낫따락카나 숫따( Anatta­lak­kha­ṇa Sutta, SN 22.59 )에 다음과 같이 설해져 있습니다. 


“땅 킹 만냐타, 빅카웨, 루-빵 닛짱 와- 아닛짱 와-”띠? “아니짱, 반떼”. “양 빠나-닛짱 둑캉 와- 땅 수캉 와-”띠? “둑캉, 반떼”. “양 빠나-닛짱 둑캉 위빠리나-마담망, 깔랑 누 땅 삼마누빳시뚱: ‘에땅 마마, 에소하마스미, 에소 메 앗따-’”띠? “노 헤땅, 반떼. .” .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rūpaṃ niccaṃ vā aniccaṃ vā”ti? “Aniccaṃ, bhante”.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ā taṃ sukhaṃ vā”ti? “Dukkhaṃ, bhante”.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 kallaṃ nu taṃ samanupassituṃ: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No hetaṃ, bhante..”.)


번역: “ “빅쿠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태는 자신이 만족하는 대로 유지될 수 있는가?” - “아닙니다, 스승님” - “결국 파괴되는 그러한 특성을 가진 것은 고통으로 이끄는가? 행복으로 이끄는가?” - “고통으로 이끕니다. 세존님.” - “그런 것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간주하는 것이 사려깊은 것인가? “사려깊지 않습니다. 스승님”.


그리고, 

“따스마-띠하, 빅카웨, 양 낀찌 루-빵 아띠-따-나-가따빳쭙빤낭 앗잣땅 와- 바힛다- 와- 올라-리깡 와- 수쿠망 와- 히-낭 와- 빠니-땅 와- 양 두-레 산띠께 와-, 삽방 루-빵: ‘네땅 마마, 네소하마스미, 나 메소 앗따-’띠 에와메땅 야타-부-땅 삼맙빤냐-야 닷탑방”

(“Tasmātiha, bhikkhave, yaṃ kiñci rūp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sabbaṃ rūp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번역: “빅쿠들이여, 따라서 어떤 종류의 형태이든, 즉 과거든 미래든 현재든, 내부든 외부든, 거칠든 미세하든, 열등하든 우월하든, 멀든 가깝든 모든 형태(이것은 루빡칸다의 11가지 루빠 유형임)는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바른 지혜로 정말로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 이 말씀은 4가지 정신적 무더기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있습니다.


12. 따라서,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는 자신이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할 때에만 영구히 제거됩니다.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은 아닛짜(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를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유지할 수 없음)이고, 그래서 자신은 [언젠가는] 아빠야(악처)의 고통을 포함하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Anicca – True Meaning’에 있는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 * 그래서, 각자는 이 재탄생 과정(윤회)에서 정말로 무력합니다. 이것이 아낫따(anatta)입니다. ‘아낫따 - 이 세상에는 피난처가 없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것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na’ + ‘attā’, ‘anattā’). '아낫따락카나 숫따 내의 아낫따-, 영혼이나 아-뜨마 없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 세상에 존재(바와, bhava)와 고통으로 가득한 상응하는 태어남(자-띠, jāti)이 생기는 것은 자신이 진정한 본질(특성)의 반대방향으로 가려고 하여, (아윗자-, avijjā로 인해) 상카-라(sankhāra)를 생성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입니다.

  • * 그것을 이해할 때, 가장 나쁜 종류인 ‘아뿐나 아비상카-라(apunna abhisankhāra, 부도덕한 행위로 이어지는 행)’부터 시작하여 상카-라(sankhāra)를 생성하는 것을 멈출 것입니다. 이것이 소-따빤나(Sōtapanna) 성자가 성스런 길(Noble Path)에서 시작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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